이번주 출간된 학술교양서 가운데 가장 관심이 가는 책은 중국현대사의 지식인들에 관한 책 <20세기 중국 지식인을 말하다>(길, 2011)이다. 주섬주섬 모으고 있는 분야의 책이기 때문이다. 진작에 주문했지만 배송은 내주에 된다고 하는데, 내주쯤엔 리스트라도 만들어놓을 참이다. 참고로 국내 연구자들이 쓴 <중국 근대지식체계의 성립과 사회변화>(길, 2011)도 같이 출간됐다.   

  

경향신문(11. 09. 24) 단절된 중국사회 속에서 지식인들의 길 찾기

중국에서 마오쩌둥(毛澤東) 시기 찬밥 신세였던 지식인이 개혁개방 이후 재등장한 것은 지식인과 현대화 과정과의 긴밀성에서 비롯한다. 지식(인)에 대한 담론은 주관적 호불호의 차원 이전에 중국사회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시기에 반드시 대면해야 하는 이슈다. 이 책의 출판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중국에서 지식인 문제의 최고 전문가인 쉬지린(許記霖, 화동사대 교수)이 엮은 방대한 역작을 국민대 중국인문사회연구소 HK 사업단이 번역해 내놓았다. 목차를 펼쳐보면 현재 중국의 지식지형을 좌지우지하는 지식인들, 황핑(黃平), 위잉스(余英時), 두웨이밍(杜維明), 천핑위엔(陳平原,) 첸리췬(錢理群), 장칭(章淸), 쎄융(謝泳), 첸무(錢穆) 등 화려한 집필진으로 이뤄져 있다. 중국 대륙만이 아니라 대만, 홍콩, 미국 등에서 활동하는 범중화권 지식인들이 망라돼 있다. 이들의 지식(인)론을 통해 현재 중국의 주요 지식인들이 국가와 사회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전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아있는 고민의 결을 느낄 수 있다.

쉬지린 교수는 서문에서 20세기 이후 ‘단절된 사회’ 속의 지식인의 불안한 위치가 지금도 이어진다고 진단한다. 그는 단절을 세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사대부의 중추적 기능이 상실되면서 국가와 사회가 단절된 것이 그 하나다. 그럼으로써 서로 다른 계층 사이에 공통의 가치관과 제도가 결핍돼 공통의 지향이 상실됐다는 것이 그 둘째다. 마지막으로 지식인들이 주변화되면서 그 내부에서조차 단절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중국의 20세기 대표 지식인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루쉰(1881~1936), 차이위안페이(1868~1940), 후스(1891~1962), 쑨원(1866~1925), 량치차오(1873~1929), 옌푸(1853~1921).

이런 현재적 문제의식을 머금은 이 책은 여러 학자들의 것을 엮어 만든 것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지식(인)에 대한 계보학적 성찰’이라는 저변을 관통하는 단서가 미리 마련돼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고대부터 현재까지를 대상으로 한다. 편의적으로 나누면 크게 네 시기다.

첫째, 춘추 전국시기에 형성돼 1905년 과거제가 폐지되기까지 사대부 문화가 지배한 시기. 둘째, 서양과의 충돌 이후 신지식인 집단이 출현하고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겪게 되는 시기. 셋째, 사회주의 건설 이후 지식의 자율성이 상실된 시기. 넷째, 개혁개방 이후 지식이 재건되고 지식인이 재출현하면서 지식인 논의가 무성해지는 시기이다.

내용적으로는 인물뿐 아니라 인물을 둘러싼 지식인 사회의 인프라구조인 매체, 사단, 학회 등 지식사회의 권력 네트워크가 논의의 주제와 소재로 다뤄진다. 방법론에서 필자들은 사회사적, 사상사적 접근을 동원하면서 지식의 텍스트와 컨텍스트를 고루 추적하고 있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첸리췬이 쓴 ‘베이징 대학 교수의 다른 선택’이라는 글이다. 이 글은 강사였던 루쉰과 유력한 교수였던 후스가 학내의 같은 사건에 대해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지식권력과 개인의식 및 타자의식의 차이에 따라 어떻게 다른 반응을 보여주는가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중국의 근대에도 지식인의 주의주장을 ‘지식장의 권력관계’라는 요소와 분리해서 볼 경우 언제든 엉뚱하고도 허구적인 해석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중국 지식인 문제에서 간과해선 안되는 것은 인구의 70~80%가 농민으로 구성돼 있는 특수 상황으로부터 나오는 여러 사회적 문제로부터 발생한 요청들에 의해 변형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즉, 여전히 제국적 규모의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관료와 지식인이라는 사대부의 이중적 신분의 전통을 어떻게 현대적으로 계승·변형해갈 것인가 하는 부분이 여전히 중요하게 고민돼야 하는 지점이다.

한국인이 중국 지식인 사회에 대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의 하나인 체제내 지식인과 반체제 지식인의 구분 기준도 이 문제와 밀접히 관련돼 있다. 이 문제는 중국의 전통적 지식인의 원형, 농민인구 문제 그리고 사회주의 경험 등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와 함께 왜 그럴까를 질문해야 한다고 본다. 중국의 내재적 메커니즘을 살피고 인정하면서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바로 이런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이 책이 유용하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중후반 자본주의 강화 정책에 따라, 전 사회가 시장화하면서 공공영역이 상업화되는 보편적 현실 속에서, 그리고 인터넷에 의해 지식인이 또 다시 주변화되는 시대에, 지식인이 어떤 위상을 취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격적 분석이 빠져 있다는 것이 아쉽다.(조경란 | 연세대 국학연구원 HK 연구교수) 

11. 09. 24.  

P.S. 기사의 필자인 조경란 교수의 책으로 <중국 근현대 사상의 탐색>(삼인, 2003)도 이 분야의 가이드가 될 만한 책이다. 일단 분량이 단출하다. <현대 중국사상과 동아시아>(태학사, 2008)과 번역서 <중국 민족주의 신화>(지식의풍경, 2006)도 관심도서인데, 그래도 이 분야에서 길잡이가 될 만한 전공학자가 있다는 게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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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세기 중국의 지식지형과 지식인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1-10-09 12:06 
    '10월의 읽을 만한 책'의 카테고리로 '중국의 지식인'을 만들어놓고 <20세기 중국의 지식인을 말하다>등을 올려놓았었는데,마침 관련서평이 눈에 띄기에 한번 더 옮겨놓는다.개인적으로 지식인 문제는 관심을 갖고 있는 아이템 가운데 하나이다.그간에 서구 지성사에 가려져왔던 '중국의 지식인' 문제가 지식인 문제 일반을 다룰 때도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으리란 생각을 해본다. '한국의 지식인' 문제와 견주어볼 수도 있겠고...교수신문(11. 10. 04
 
 
Daniel 2011-09-24 13:36   좋아요 0 | URL
선생님의 폭넓은 독서 분야를 보면서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드러커는 주기적으로 분야를 바꿔가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었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도 인생계획(?)을 세우시고 몇살때부터는 이런 부분을 읽으리라 하시나요.
아니면 그야말로 책 하나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계속 관심을 넓히시는지요.
제 생각엔 둘다이실 것 같은데^^;;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로쟈 2011-09-24 23:00   좋아요 0 | URL
거창한 계획을 세워두고 읽진 않습니다.^^ 관심있는 주제나 분야의 책들을 꾸준히 사모으고 기회가 될 때 몰아서 읽는 편입니다. 나이를 먹으며 관심분야가 더 넓어지고 있어서 애를 먹고는 있습니다.^^;

Daniel 2011-09-26 06:4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관심분야가 넓어지실수록 다음 책들이 다루는 영역도 더 풍성해지겠네요. 물론 기존 책에서 다루신 것들만 해도 저같은 일반독자에겐 차고 넘치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