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란 선택의 문제가 책중독자뿐 아니라 뇌과학자에게도 관심거리라는 걸 알려주는 책이 출간됐다. 리드 몬터규의 <선택의 과학>(사이언스북스, 2011). 저자는 버지니아 공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저명한 신경과학자라 한다. 책소개에는 "의사결정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리드 몬터규가 소개하는 fMRI(기능성 자기공명 영상장치) 연구의 최전선"이라고 돼 있다. 이런 의사결정의 문제를 다루는 신경과학을 특별히 신경경제학이라고 부른다고 하며 저자는 그 창시자 중 한 사람이다. 사실 번역서의 제목보다는 원제 '왜 이 책을 선택했는가(Why choose this book?)'가 더 와닿는다. 하루에도 몇번씩 장바구니에 책을 담고 거기서 몇권씩 골라 '자동적으로' 주문하곤 했는데, 하루 주문을 쉰 김에(배송은 거르지 않았다) <선택의 과학>과 더불어 한번 자문해봐야겠다. 왜 이 책을 선택했는지...     

한국일보(11. 09. 24) 최선의 판단을 하려는 뇌, 가끔은 실수도 한다

1975년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콜라업계 2인자 펩시콜라가 도발적인 실험을 했다. 상표를 가린 채 사람들에게 펩시콜라와 코카콜라를 마셔보게 하고 뭐가 더 맛있지 물었다. 소비자의 52%가 펩시콜라를 택했다. 펩시는 이 모습을 담아 TV에 광고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댈러스에서 펩시콜라의 시장점유율은 6%에서 14%로 크게 올랐다. 의기양양해진 펩시는 펩시 챌린지(Pepsi Challenge) 캠페인을 전국으로 넓혔다. 1979년 미국에서 펩시콜라의 판매량은 역사상 처음으로 코카콜라를 앞섰다. 도전은 성공으로 끝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영광의 날은 한때였다. 코카콜라 판매량은 다시 펩시콜라를 추월했다. 펩시 챌린지가 계속 성공할 수 없었던 이유는 뭘까.

미국 버지니아공대 물리학과 교수인 리드 몬터규가 쓴 <선택의 과학>은 펩시가 '맛의 함정'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탄산음료에서 시원함과 청량함을 기대한다. 맛은 더 좋을지 몰라도 펩시콜라는 이런 이미지가 약했다. 이는 상표를 붙이고 시음한 사람들 대부분이 코카콜라가 더 낫다고 답한 또 다른 실험에서 잘 드러난다. 저자는 미각뿐 아니라 기대, 보상 등 뇌의 활동이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연인들이 음식점에 갈 때 분위기 좋은 집을 택하는 것도 괜한 게 아니란 얘기다.

일상은 선택의 연속이다. 인간은 하루에 150번 넘게 크고 작은 선택을 한다고 한다. 몇 시에 일어날까, 차를 갖고 회사에 출근할까, 점심 메뉴로 뭐가 좋을까, 퇴근하고선 뭘 할까 등. 그러나 저자는 주장한다. 선택의 가장 큰 비밀은 선택이 없단 사실이며, 인간의 모든 행위는 뇌의 가치판단에 근거한다고. 가치판단은 어떤 행위를 할 때 드는 비용과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보상을 따지는 행위다.

가치판단에 관여하는 부위는 중뇌와 전전두피질. 뇌의 중간에 있다 하여 중뇌라 불리는 이곳엔 도파민 신경세포 1만5,000~2만5,000개가 몰려 있다. 이 세포는 특정 행위에 대한 보상을 담당한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실 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도파민 신경세포가 호르몬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뇌의 앞부분에 위치한 전전두피질은 여러 행위를 저울질해 우선순위를 정한다. 뇌의 각 부위는 최선의 가치판단을 하려고 부지런히 움직인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보상을 누리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이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다.

최후통첩게임이란 게 있다. A에게 일정 금액을 주고 그 중 얼마를 B와 나누라고 한다. B가 A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A, B 모두 돈을 갖는다. B가 거부하면 둘 다 돈을 얻지 못한다. A가 100달러를 받아 그 중 5달러를 B에게 줬다고 해보자. B 입장에선 A가 1달러를 준다 해도 공짜 이익이 생기는 거니 넙죽 받을 거라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뇌가 느끼는 이득의 가치가 현저히 차이나기 때문이다.

이득의 가치는 '내 이득_계수×(남의 이득-내 이득)'이란 공식으로 계산한다. 계수는 전체 액수 분의 내 이득. 위 상황을 여기에 대입하면 '5달러-5/100×(95달러-5달러)'로, 내 이득의 가치는 0.5달러란 계산이 나온다. 5달러를 받아도 뇌의 신경계는 그것의 가치를 0.5달러로 판단해 B는 A가 주는 금액을 거부하게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는 과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1997년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주택에선 유사 종교인 헤븐스 게이트(천국의 문) 교단의 남녀 39명이 집단 자살을 했다. 이들은 헤일 밥 혜성의 꼬리 너머에 자신들을 '다음 단계'로 데려갈 우주선이 있다고 믿어 집단으로 목숨을 끊었다.

저자는 재배치란 뇌과학의 개념을 끌어 이 기이한 현상을 설명한다. 약물 중독자의 신경계는 마약물질로 교란되고, 거기에 적응하도록 변화한다. 이 경우처럼 다음 단계로 간다는 생각 역시 신경계를 변화시키고, 죽음을 오히려 보상받는 행위로 인식하게 했다는 것이다.

정재승 카이스트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 책을 읽는 내내 자연스러웠던 선택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고 선택의 순간마다 왕성하게 신호를 주고받는 뇌 활동이 비로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때쯤이면 <왜 이 책을 선택했는가(Why choose this book?)>란 책의 원제에 관한 답을 찾게 될지 모른다.(변태섭기자) 

11. 09. 24.  

 

P.S. 안 그래도 오늘 오후 의정부도서관에 강의를 나가면서 가방에 넣고 간 책의 하나는 석영중의 <뇌를 훔친 소설가>(예담, 2011)였다. 부제대로 '문학이 공감을 주는 과학적 이유', 구체적으론 뇌과학적 이유를 현단계 뇌과학의 성과를 바탕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알라딘에는 뇌과학 카테고리가 따로 설정돼 있는데, 이 분야의 책으론 폴 새가드의 <뇌와 삶의 의미>(필로소픽, 2011)과 김종성의 <뇌과학 여행자>(사이언스북스, 2011)가 신간이다. 과거 천문학처럼 뇌과학도 이젠 '교양' 범주에 속하므로 이런 정도의 책들은 읽어줘야겠다...   

 

한편, 책의 추천사를 쓴 정재승 교수에 따르면 신경경제학 분야에서 리드 몬터규와 자웅을 겨루는 학자는 에모리대학교의 정신과 의사 그레고리 번스이다. 그의 책으론 <만족>(북섬, 2006)과 <상식 파괴자>(비즈니스맵, 2010)가 있다. <아이코노클라스트>는 <상식 파괴자>와 같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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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1-09-28 08:27   좋아요 0 | URL
며칠전 서유헌의 <엄마표 뇌교육>이라는 책을 주문하면서 '뇌과학'에 좀 흥미가 생기던 차에 읽게 된 책소개입니다. 저에게 유용한 정보네요. 감사합니다. 리드 몬터규, 그레고리 번스 노트해두고 갑니다.

로쟈 2011-09-29 22:11   좋아요 0 | URL
뇌과학은 알라딘에도 따로 분류항목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