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등교를 하다 말다 내 일상(이랄 것도 없는 매일)은 발이 묶인 느낌이다. 창밖의 단풍이 지난주엔 예뻤는데 오늘은 가지만 남았다. 나는 매일 게으르고 바쁘면서 한가하다. 책의 문장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스칼렛의 외모에 대한 묘사는 계속 바뀐다. 아름답고 매혹적이라는 묘사가 많은데 스칼렛이 작정하고 애슐리에게 고백하기로 마음먹고, 꿩대신 닭, 챨스의 청혼에 답을 해버린 날이라 더욱 그렇다. 


파티에서 만난 낯설고 무례한 레트 버틀러. 그에게 약점을 잡혀버린 스칼렛. 챨스와 애슐리에 대한 묘사가 우습지만 절묘하다. 하지만 곧 휘몰아친 전쟁 속에서 스칼렛은 순식간에 유부녀-미망인-애 딸린 미망인 으로 신분이 바뀐다. 예전보다 더 좁아진 활동 범위 안에서 우울은 그녀를 집어삼킨다. 


남편의 친척댁, 보기 싫은 멜라니의 초대로 애틀란타로 간다. 그곳은 전쟁이 몰고온 활기로 가득 찬 젊은 도시라 뭔가를 해볼 수 있을 것만 같다. 신분과 가문을 중시하는 딱딱한 조지아, 폐쇄적인 남부지만 새로운 생명을 뿜어내는 곳. 어쩌면 스칼렛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이 소설의 조지아는 급변하는 세계 정세 따위는 무시하고 대지주 가문들 끼리의 무사태평만 노래하는 19세기 구한말 분위기와도 비슷하다. 백인 빈민층에 대한 멸시와 (인종차별은 깔고 있으면서) 북부 양키에 대한 적대감이 뚜렷하게 보인다. 마치 미대선의 민주당 공화당의 대결처럼. 링컨은 공화당이었다지만. 


영화 <스윗 홈 앨러배마>의 남부는 정겹고 투박하며 솔직한 흙과 함께 사는 고향의 모습이다. 대비되는 뉴욕 '양키'들은 겉치례와 계산 속의 거짓말, 무엇보다 얄미운 말투로 드러난다. 여전히 식민시대의 대저택엔 하녀복을 입은 흑인여인이 손님을 맞이하고 마을 축제는 남북전쟁을 재현하는 코스튬 플레이다. 들판에 화약 연기를 올리고 대포와 총포를 앞세워 달리고 쓰러져 시체를 연기하는 이들은 '남부 정신'을 외치며 결속을 다진다. 천방지축, 당돌한 남부의 아가씨는 7년만에 고향에 돌아와서 마음을 확인하며 자신의 가식을, 북부 억양과 양키 겉모습을 벗어버린다. 스칼렛과는 아주 다르지만 닮은 여인. 


그런 남부가, 조지아가 이번엔 바이든에게 표를 주었단 말이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psyche 2020-11-15 0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아 다시 봤다는!

유부만두 2020-11-15 07:3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놀랐어요.
 

계속 되는 집밥에 나도 아이들도 물리기 시작했다.

국수를 많이 먹었고, 김밥도 많이 만들었다. 

가지와 오크라 튀김이 인기 있는 가을이었다. 몸무게가 늘지 않았다면 거짓말.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단발머리 2020-11-02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쮸릅쮸릅!!!!!! 정말 말로 형언하기 힘든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영양만점 완전집밥이네요! 👍🏼👍🏼👍🏼👍🏼👍🏼

유부만두 2020-11-03 09:37   좋아요 0 | URL
영양만점...은 자신 없고요, 완판 완료 증량 보장 입니다.
사진 중 하난 외식 ‘마라샹궈‘ 에요. 역시 외식이 더 낫다고 깨달았어요.

잠자냥 2020-11-0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진짜 풍요롭습니다.... 츄릅... 하 배고프다.
가지 튀김 파스타 먹어 보고 싶어욧. ㅎㅎ

유부만두 2020-11-04 08:54   좋아요 0 | URL
가지 튀김 정말 맛있어요. 굽거나 볶아도 좋지만 튀김은 정말 !!!!
 

중국 춘추전국시대 부터 남북조 시대 까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오늘 아침은 빵도 있고 죽도 있어서 여유를 부릴 수 있다. 커피 대신 녹차를 우려 마시고 있다. 마루에 널어둔 아이 교복은 다 말랐다. 식탁 위에는 밤새 큰아이가 간식을 먹은 흔적이 남아있다. 책을 읽기전에 블로그에 들어왔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스칼렛이 드디어 파티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레트 버틀러를 만났다. 그에 대한 나쁜 소문을 들었지만 어쩐지 그의 검은 눈동자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그래도 스칼렛의 마음 속에선 애슐리에게 고백하고 야반도주 하려는 당찬 계획이 진행중이다. 인물들 묘사가 흥미롭다. 사람들은 자신의 관심사를 감추질 못한다. 그 관심사가 그 사람 자체가 되어 온몸에 드러나서 옷이나 표정처럼 감싸고 있다. 어머니를 일찍 여읜 맏딸은 집안을 건사하느라 자신을 가꾸질 못하고 부끄럼장이 미남은 여자들의 장난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속마음을 감추지 않는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혈통'이다. 키우는 종마 처럼 그들은 '핏줄'에 집착한다. 친척끼리만 결혼하는 집안들에대해, 그들의 유럽 전통 가문에 대해 헐뜯으며 '좋은 혈통'을 받아서 대를 잇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 곧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델러웨이 부인>은 천천히 읽고 있는데 그렇게 읽어야 맞는 책 같다. 단어는 쉽지만 쉼표가 많고 문장은 계속 이어진다. 조금씩 끊어 읽으며 쉬엄쉬엄 이 부인의 회상, 기억, 관찰과 추측을 함께 짚어가고 있다. 옛날 남자 피터를 떠올리다 그 '멍청한' 인도 여자들에 까지 생각이 가 닿는다. 시혜하는 기분으로 걷는다. 우아하려고 애쓰는 부인. 꽃집 밖에 서 있던 그 차, 타고 있던 고관대작, 어쩌면 왕가 사람에 대한 생각과 길을 건너던 부부의 이력을 거쳐 어쩐지 고결한 기분에 꼿꼿하게 몸을 세우고 거리를 걸어내려간다. 이층버스 위에 아무렇게나 탄 '서민'들에 대해 까탈스런 시선을 던지고 먼 미래에 이 도시에 남을 것들에 대해서 상상하고 있다. 


시간이 금방 간다. 오늘은 점심 약속이 있는데 오랜만이라 외출에 겁이 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칼렛의 부모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
아일랜드에서 형제 많은 집에서 자란 아버지 제랄드, 첫사랑에 실패하고 고향을 등진 프랑스계의 우아한 어머니 엘렌. 제랄드가 맨손으로 미국으로 건너와서 자리 잡는 과정과 그 시대의 서술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여자의 ‘바른’ 길과 결혼에 대한 훈계와 그에 반발하는 스칼렛 (비록 고래뼈로 만든 코르셋을 조이면서)의 모습은 현대극 같기도 하다. 그리고 ... 남부 목화 농장의 노예들.

책 읽다가 간식으론 스윗 스칼렛 포도.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0-10-14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포도 이름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책이랑 딱이네요!!!

유부만두 2020-10-14 21:54   좋아요 0 | URL
그렇죠? ^^

파이버 2020-10-14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도의 붉은색이 보석처럼 예쁘네요~

유부만두 2020-10-14 21:55   좋아요 1 | URL
예쁘고 또 달콤해요.

Falstaff 2020-10-14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엔 용서할 수 없는 게 몇 개 있는데요, 첫문장도 포함됩니다.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이 아니지만....˝
세상에나! 스칼렛, 하면 비비언 리가 저절로 떠오르는 게 인지상정인데 비비안 리 보고 미인이 아니라고요? 이거, 뒤집어지는 겁니다.
두 번째, 작가 마거릿 미첼 여사가 전형적인 남부 백인 우월주의자로 심지어 이 책을 통해 KKK단까지 미화시켰다는 점이고요.

ㅎㅎㅎ 근데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습니다. 크너센의 아동용 오페라 <히글리 피글리 팝>과 <거친 것들이 사는 곳>의 음반 표지를 위해서 사용했던 괴물들이네요. 재미있습니다. 그림은 약간 다릅니다만.

유부만두 2020-10-14 22:01   좋아요 0 | URL
용서할 수 없는 게 많은 책이에요. 초원의 집 처럼 이 책도 저자의 행보와 더불어 재평가 되고 비판 받고 있어요. 하지만 요즘 남부에선 되려 더 인기라는데 ...왜 하필 전 지금 이걸 읽고 있는 걸까요? ;;;;

하지만 정말 재미있게 썼더라고요. (이런 젠장) 아버지/어머니 결혼 이야기나 풍광 묘사, 사람들 배경과 심리(랄 것도 없지만) 묘사가 재미있어요. 성공/전쟁/재건에 거친 사랑이 더해지니 우리나라 (예전) 주말 드라마 같은 느낌도 들어요. 첫문장 읽으면서 저도 바로 비비안 리 생각에 고개를 저었어요. 그나저나 스칼렛이 16살, 엄마가 32살인데 아빠가 환갑인 가족이라 러시아 소설인줄 알았어요.

프로필은 그림책 작가 모리스 샌닥의 1979년 독서캠패인 포스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