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가 9월 하순에 나온다고 해서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디테일을 많이 잊었는데 읽다보니 아, 이 사람, 이 장면, 다시 머리 속에 떠오른다. 젤리 처럼. 몽글몽글. 


그런데 학생들과 교사들 사이의 갈등이랄까, 긴장감과 수위가 걱정되는 정도였다. 선생들이 학생을 기절시키고 옷을 벗기고 ... 여학생은 기간제 남교사의 자취방으로 몰래 들어가고.... ????


몇년 만에 내 시선이 달라진건지 (전에 읽으면서는 웃기다, 하면서 지나쳤던 거 같은데) 내가 기억하는 안은영 주위 인물들은 그저 발랄랄라 만화 캐릭터 같아서 무시했는지도 모른다. 고등학생들은 어른도 아니고 어린이도 아닌데, 실은 교사들이라고 어른의 모든 자격을 갖춘 이들도 아니다. 물론. 나보코프 교수님이 소설을 일상에, 인물에 대입하는 '짓'하지 말라고 했는데 계속 그러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게 재밌거등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괴물, 혹은 악당에 대항해 싸우는 (아, 이건 원작가가 '교사'라고 했다) 웹툰 하나가 생각났다. 매지컬 고삼쓰. 남선생 하나는 소녀 옷을 챙겨입고 매직봉을 휘두르는 엽기적인 장면이 많다. (아주 흉해서 웹툰을 보다 말았다) 미친 설정에 미친 캐릭터들.... 하지만 우리나라 고삼들은 미치지 않고는 겪어낼 수 없는 시간 아닌가. 



보건교사 안은영 드라마를 기다리며 계속 책을 읽겠지만 기억보다 (학생 교사 사이의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느슨하고 귀엽게 지루하다. 드라마 여주는 정유미, 남주는 남주혁. ㅋ 온도, 조명, 습도의 그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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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덧: 아니다. 재미있고, 착하고, 달콤하다. 25일 공개한다는 드라마, 아마 그 금요일 나는 뾰로롱 야광검을 들고 젤리를 씹으면서 드라마를 완주할지도, 아니 완주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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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막내가 개학을 한다. 

개학인데 진짜 같지 않은 개학.

등교는 하는데 온라인 줌 등교를 한다. 

몸은 집에 있지만 정신과 마음은 (걸어서 십 분 거리의) 중학교 2층 3분단의 그 자리에 앉겠지.


거리를 두고 친구들이랑 팔꿈치 악수도 하고

쿨하게 턱짓으로 '카트 좀 했더라, 너?' 안부도 전하겠지. 


시간은 간다. 이 시절도 다 지나갈거다. 

나도 언젠간 이 업보 같은 점심 밥상에서 놓일 날이 있겠지.

그날을 위해 기록을 남겨 둔다. 


널 위해 내가 그 귀한 애호박전도 만들고 그랬다?

마지막 사진의 피처럼 붉고 맵던 비빔국수도 기억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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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8-24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유부만두 2020-08-24 15:59   좋아요 0 | URL
사진 잘 찍었죠?

잠자냥 2020-08-24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하나에 4천 5백원이라는 그 귀한 애호박전!

유부만두 2020-08-24 16:00   좋아요 0 | URL
저 땐 3천원 대였어요. 호방하게 한 개 다 부쳐버렸지 뭐에요!

수이 2020-08-24 15: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날 똑같은 것만 해먹이는 제가 너무 부끄러워지는 화려한 음식들!!

유부만두 2020-08-24 16:00   좋아요 0 | URL
사진을 자세히 보세요. 메뉴가 돌고 돕니다.
제 비법은 한그릇 음식하기! 사진은 일단 찍어둔다!

단발머리 2020-08-25 1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나 아름답고 화려한 밥상이에요. 물개박수를 칩니다. 👏🏻👏🏻 👏🏻👏🏻👏🏻

유부만두 2020-08-26 07:36   좋아요 0 | URL
사이 사이 배달음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했습니다.
벗.뜨.
오늘 발표로 9/11까지 온라인 수업이네요. 다시 한 번, 기합을 넣고 식단 궁리 (한그릇 음식! 주기적 반복과 잔반 없기!)를 시작해야해요.
 

책 좋아하는 부모를 갖는다는 건 어떤걸까? 난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환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 환상이 종종 힘들 때도 만든다고 한다. 


저자의 아버지는 딸 아이에게 "삐삐 롱스타킹" 책을 읽어주는데, 아이가 화장실에서 넘어져 눈꺼풀이 찢어져서 안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속상해했는데 아버지는 이 외눈박이 해적 같은 모습을 위로하기 위해서 해적 아버지를 둔 삐삐 이야기를 읽어준다. 하지만 아이는 의도와는 달리 삐삐에게 압도되어 겁을 집어먹고 만다. 할로윈 땐 옆집의 과한 호러 집 장식에 공포를 느끼는 아이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슬리피 할로의 전설"을 읽어주기도 하는데 이는 아이가 더한 공포를 갖게 했다. 좀더 자란 아이는 하교길에 친구들과 동네의 귀신집으로 소문난 폐가에 들렀다 오곤 했는데 아버지는 그런 아이에게 "안녕, 스카우트, 오늘은 부 래들리 찾았니?" 라고 박자를 맞춰주기도 한다. 


어머니는 자신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비밀의 화원"을 아이 침대 옆에 두면서 은근 압력을 넣기도 하고 아이들의 정서에 좋지 않다고 판단한 금박 장정의 (그것도 친척 아주머니의 선물이었던) 양장본 그림동화집을 오랫동안 다락방에 숨겨두었다. 파스타를 좋아해서 식사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조리하는 아버지는 가끔 엄마가 국수를 삶을 때 제대로 저으라고 계속 잔소리를 한다. 이에 짜증이 난 어머니는 "알았어, 빅 앤서니!" 라고 받아치는데 빅 앤서니는 동화 스트레가 노나 시리즈에 나오는 마녀의 얼뜨기 도제 이름이다. 저자가 4학년 땐 아이에게 어머니는 집 길건너 건물에 실비아 플라스가 살았었다고 얘기도 해준다. 그게 누군지 아이는 몰랐지만. 고등학생 딸아이가 첫사랑이 끝나고 침대에서 울자 그 옆에 슬쩍 "레베카"를 갖다 준다. 


포스팅을 많이 쓰곤 있지만 이 책이 그렇게 아주아주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언급한 책들 중 많은 것들을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어서 샘이 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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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0-08-21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자의 부모님들이 굉장한 애서가였나봐요 모든 양육을 책과 연관 짓는게 신기하네요 아이입장에서는 좀 질릴 것 같기도 해요....

유부만두 2020-08-21 13:58   좋아요 1 | URL
그렇죠? 그래도 저 저자는 책을 좋아하고 문학을 전공했다고 하니 어쩜 독서에는 천성이 필요한지도 모르겠어요.

전 아이들이 책을 그닥 안 읽어서 이젠 포기했어요.

moonnight 2020-08-21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굉장한 부모님이네요 @_@;;;;;; 저런 분들이 제 부모님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현실감 없지만-_- (지금의) 저라면 좋을 것 같긴 한데 ㅎㅎ

제 조카들도 책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는 것 같아요. 아기때부터 나름 노력했지만ㅎㅎ;;

사실 책보다 축구를 더 좋아한다는 게 기뻐요 홋홋^^

유부만두 2020-08-22 11:35   좋아요 0 | URL
아이와 같은 책을 읽고 얘기하는 ‘로망‘이 제겐 있었어요. 하지만 그건 이미 예전에 포기했어요. 이젠 아이 숙제로, 아이 핑계로 산 동화, 청소년 도서를 제가 먼저 읽습니다. 요즘 청소년 도서는 제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보여주거든요. 라떼엔 없던 문화죠.

조카들이 축구를 즐긴다니 멋진데요?
울리집 막내도 축구를 좋아해서 맨유 유니폼을 인터넷 쇼핑몰에서 사줬더니 그걸 입고 집에서 방방 뛰고 있어요;;;;
 

책 읽다가 케익 사오는 사람,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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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0-08-17 16: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맥주 사온적 있어서 발 들어봅니다!ㅎ

유부만두 2020-08-17 21:32   좋아요 1 | URL
맥주도 독서의 멋진 짝이지요.
어디 케익과 맥주 뿐입니까. 전 어묵탕, 떡볶이 사러 야밤에 나간 적도 있는데요.

파이버 2020-08-17 2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케잌 너무 예쁘고 맛있어보여요! 생크림이라니 배우신 분...

유부만두 2020-08-17 21:33   좋아요 1 | URL
실은 저 책의 표지 처럼 생긴 ‘나폴레옹 케익‘을 사러 갔는데 없었어요.
대신 쪽 케익을 두어 개 사려고 했는데 미니 케익 값이 쪽 케익 세 개 값이라 사왔어요. 전 조금만 맛보고 애들이 즐겼어요. ^^

파이버 2020-08-17 21:44   좋아요 1 | URL
나폴레옹 케익이 뭔지 몰라서 검색해보고 왔는데, 겹겹이 쌓여있는 모양이 책장 같아서 신기합니다. 조각케이크도 크기에 비해 은근 비싸더라구요...ㅠ
 

루스 긴즈버그는 대학생 때 나보코프의 문학수업을 들었다. 그녀의 기록에는 강의실에 함께 앉아 있었던 나보코프의 부인, 베라에 대한 묘사가 짧게 있다. (난 그 강의록을 정리한 '나보코프의 문학 강의'를 천천히 읽는중이다) 




쇼맨십 강한 나보코프의 강의에 고개를 젓는 베라. 

부인이 교수 남편의 강의실에 앉는 것이 이상했지만 검색해보니 베라는 편집자로서 남편의 작업을 많이 도왔다고. 톨스토이 부인이 필사한 것 이상으로 그의 소설 작업에 참여했고 남편의 유언을 어기면서 '오리지널 오브 로라'의 원고를 지켜냈으며 말년엔 '창백한 불꽃'을 러시아어로 번역했다. 



















베라 나보코프에 대한 책은 두 권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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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20-08-09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랐어요...위대한 작가보다 더 위대한 아내들!

유부만두 2020-08-09 16:50   좋아요 1 | URL
베라의 이야기를 더 찾아 읽으려고요. 사진만 봐도 멋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