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극장에 이틀 연속 갔다. 이 두번의 극장방문의 공통점은
1. 우연히도 둘다 다큐멘터리였다는 것
2. 기쁘게도 둘다 알라디너와 함께였다는 것
어제 본 다큐멘터리는 마이클무어의 <식코> 그리고 오늘 본 다큐멘터리는 황윤 감독의 <어느 날 그 길에서> 였다.
식코를 보러 가면서 깐따삐야님과 이야기하기를, 내가 화씨911을 끝까지 안봤었다고 얘기를 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내가 당시에 끝까지 보고, 아래와 같은 평을 남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어쩔거야 기억력 ㅜㅜ)
똑똑한 사람인 건 알겠고
영화의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이 영화 보고는 마이클 무어한테 정이 안가네
이번에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을 똑부러지게 알고, 자신이 알고 있는 강약 중간약 조절의 기법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그래서, 본인이 뻔히 알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천연덕스럽게 '어머 그런가요? 나는 마치 바보가 된 기분이에요' 라고 말하면서 커뮤니케이션 효과의 극대화를 시도해보이는 게 좀 얄미워보였다고나 할까.
그렇지만, 어쨌든 그런 커뮤니케이션 방법으로 쉽고 간결하게 민간의료보험 제도의 폐해에 대해 이해하고, 심각성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도 인정할 수 밖에 없으니, 그래서 누구든 한번쯤은 봤으면 좋겠다,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그리고 꼭 필요한 얘기를 적절한 시기에 꽤 선정적으로 내뱉을 줄 아는 저런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까지 인정하게 되니, 아...! 정말 얼마나 얄미운 사람인가...!
또 한편의 다큐멘터리는 '어느날 그길에서'라는 작품이었다. 30개월을 지리산 주변 고속도로를 조사해 얼마나 많은 야생 동물들이 차에 치여 죽어가는가에 대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조사하던 과정과 결과에 대한 것들을 담고 있는데, 투박하면서도 참 섬세한 느낌이다. 마이클무어의 커뮤니케이션 방법과는 반대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역시나 나는 순진해서(?) 이런 쪽에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더 마음이 간다.
한국고속도로공사에서는 1년에 길에서 죽는 야생동물의 수를 3천마리 정도로 추정했는데, 실제로 조사한 결과 수십만마리의 야생동물들이 길에서 죽는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다. 사람의 삶에만 기구한 이야기가 존재하는 게 아니다. 길에서 죽은 엄마동물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그 앞을 서성거리다가, 차가 오면 피하고, 또 다시 서성거리다가 그만 그 옆에서 차에 치여 죽어버린 동물의 삶, 차에 치여 죽을뻔한 것을 겨우 살려 한달을 키우고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낸 후, 12번의 도로를 건너 힘들게 며칠간 겨우겨우 자신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 다시 그 자리에서 똑같이 사고를 당해, 정말 처참하게 죽어버린 팔팔이(멸종위기의 삵)의 기구한 삶, 그 앞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 팔팔이가 보고 싶어 길을 건너 찾아오다가 결국 차에 치어 죽은 수컷 삵의 사랑도 슬픈 드라마다. 두꺼비가 많아 두꺼비 '섬'자가 붙었다는 섬진강변 도로에서는 1년에 7천여마리의 두꺼비의 주검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이름이 붙여져있다. (아, 나는 또 그 길을 얼마나 좋아하는가 ㅜㅜ) 죽은 엄마 고라니의 뱃속에 들어있던 아기고라니들이 튀어나와 함께 죽음을 당한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밀렵보다 무섭다는 로드킬(길에서 야생동물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야생동물 멸종의 더 공포스러운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직접적인 원인과 결과를 발견하기 위해 해당 동물 주검 발생지를 도로지도에 점으로 표시했는데, 충격적이게도 조사를 마친 후, 그 점들은 이어져 길이 되었다. 어느 곳에서 특별히 더 발생하기도 하지만, 거의 모든 지점에서 끊임없이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조사를 위해 길을 나선 연구원들은 '평소에 만나고 싶었던 동물들을 길위에서 모두 만나게 됐다'라는 다소 슬픈 어조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갑작스레 차도 위에서 야생동물을 맞닥뜨려 사고를 내게 되는 경우에는, '쟤들이 왜 인간의 공간으로 내려와 사고를 당할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실은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아 잘 모르지만, 아마 나도 무심결에 그랬을 것 같다) 이건 굉장히 폭력적인 생각이다. 그들의 행동 반경 내에 있는 길이고, 오래도록 다니던 길이다. 그곳을 뚫고 들어온 건 인간이었다. 적반하장도 유분수다. 그것도 모자라 우리의 20분, 30분 단축을 위해 2차선을 4차선으로 늘리고, 똑같은 길을 가는 도로를 하나 더 만들겠다고, 끊임없이 그들의 터전을 훼손하고 생을 위협하고 있는 우리들, 어쩌면 빠름과 편리함에 젖어있던 우리 모두가 그들의 생에 대한 공동 책임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30분이 그들의 생명보다 귀하다고는, 그 누구도 이야기할 수 없으니. 다큐멘터리에 함께한 이들은, 지금 그들의 보존을 위한 대책을 강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실은 이제 그만 과도한 개발을 '멈춰달라는' 이야기에 더욱 힘을 싣는 듯 하다. 이제는 제발 멈추고, 공존하는 삶을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누군가 꼭 기억해줬으면 한다.
이 두 편의 다큐멘터리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말을 하고 있지만, 실은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비슷한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지금 우리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점. 지금 열심히 가고 있는 그 방향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는 점, 사람이든, 동물이든, 약자들과 공존하는 것보다는, 경제적 이기와 빠르고 편리한 것들이 주는 마약같은 달콤함에 젖어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 두 작품 모두, 지금 나에게, 또 당신에게, 즉 우리에게 꽤 의미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