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 내 삶은 늘 주중은 피폐, 주말은 충만,인가보다. 주중이 5일이고 주말이 2일인게 슬플 따름이다. 그나마 금요일 저녁부터 내가 주말로 쳐주니 다행이다. 그리고 오늘은 제일 제일 싫은 일요일 밤이다. 이제 12시간쯤 지내면 다시 피폐해질 예정
* 금요일 저녁엔 K가 준 연극 티켓으로 대학로에서 연극을 봤다. 그러고보니 대학로에서 연극을 본 건 오랜만이라는 생각. 작년에는 연극을 거의 못보기도 했고, 최근에 본 것들은 국립극장에서 한 것들이어서 더 그런듯.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작년은 지금까지 살면서 대학로에 가장 많이 갔던 한 해였구나. 대학로의 미덕은... 지하철에서 앉아 갈 수 있다는 거? (아줌마 아줌마 ㅋㅋ)
* 대학로에서 고민 끝에 찾아간 청국장 집은 정말이지, 정말 맛있었다. 우리가 배가 고팠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청국장 뚝배기와 반찬이 담긴 쟁반을 나르는 것조차 힘겨워보이는 나이드신 할머님들께서 하는 청국장 가게, 김치찌개와 청국장을 시켰는데, 해장국과 청국장을 시켰지? 라고 세번이나 물어보고 그렇게 아니라고 말씀했건만 결국 해장국과 청국장을 가져오신 할머님께, 죄송한데 해장국은 먹지 않는다며 다시 김치찌개를 가져다 달라고 말하는 걸 그리 미안하게 여기도록 만들 수 밖에 없는 분위기,랄까. (해장국이 아니라 다른 거였다면, 아마 그냥 먹었을지도. 해장국을 먹지 않는 건 내가 아니라 C이고,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메뉴에서 유일하게 C가 먹지 않는 메뉴) 그런데 김치찌개도, 청국장도 정말 정말 맛있어서, 우리는 8시에 연극이 시작되는데 7시 55분까지 밥을 먹고 뛰어갔다. 남은 밥에 아쉬운 군침을 살짝 날려주며 ^-^ 다음에 대학로 오면 여기 또 가자, 라고 약속을 하며 나왔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와 동숭 아트센터까지 걸어가서 우회전 한 후 패밀리마트 있는 쪽까지 살짝 내려가면 보이는 흰 간판이 달린 집. 상호는 모르겠네. ㅋㅋ (이봐이봐 역시 먹는 얘기가 제일 길어, 막 배고파질라그래)
* 공연장에서 우연히 P를 만났다. 스태프 목걸이를 달고 있었다. P는 고등학교 동창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 중 하나이다. 얼굴도 예쁜 것이 소탈하기까지 해서 내가 좀 듬뿍 좋아해줬었다. 2년 전엔가 지하철에서 만났을 때는 목에 독특하고 패셔너블한 재질의 목도리도 아닌 것이 스카프도 아닌 것이,를 감고 있길래 예쁘다고 칭찬해 줬더니 그녀는 매우 부끄러워하며, 목이 추운데 목도리를 하고 나오기는 부담스러워서 집에 있는 긴 양말을 꺼내서 살짝 감았다고 이야기해줬다. 발가락 부분은 뒤로 보냈다며 ;; 아, 저 오묘한 색의 줄무늬가 양말이었구나. 그녀가 아니면 누구도 소화할 수 없었을 거야. 근데 P가 왜 거기 있을까, 연극을 전공한 P는 이제 연극을 하지 않겠다고 말을 했었는데. 내가 밥을 10분만 덜먹었어도 연극 시작 전에 P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텐데, 식탐을 원망하며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청국장은 맛있었으니까 ;;)
* 연극은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흐뭇한 작품이었다. 뻔한 거 알면서도 미소짓게 되는 작품이었달까. 늦게 들어온 커플이 죄송하다며 우리 자리 쪽으로 비집고 들어와 구석으로 몰려와 나는 속으로 좀 툴툴거렸는데 그 커플이 늦은 이유는 나중에 밝혀졌다. 프로포즈 석을 산 커플이었던 거다. 나이가 조금 있어보이는 30대 중반쯤으로 추정되는 커플. (아니면 어쩌지? -_-) 연극이 끝난 뒤 무대에서 진행해주는 프로포즈 시간을 이용해 남자가 여자에게 준비한 깜짝 프로포즈를 보는데, 나는 또 혼자 눈물이 흘러 민망해 죽는 줄 알았다. 도무지, 남의 프로포즈를 보면서 주책맞게 울 건 또 뭐람. 그 커플이 잘생기고, 미끈하고, 예쁘고, 세련된 커플이었으면 나는 와~~ 하며 박수를 치긴 했겠으나, 눈물이 나지는 않았을 거다. 아마도, 나는 그들의 투박함 때문에 마음이 동한 것 같은데, 그다지 유창하지 못했던 연애편지를 읽어주던 남자의 마음이 진심으로 여겨졌기 때문인가보다. 편지 내용은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데, 거기서 무릎을 꿇고 편지를 읽는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 자리를 예매하고, 준비하며, 조심스럽게 여자를 데려온 그 마음이 고스란히(라고 하면 과장이겠지만) 느껴졌던 것 같다. 부끄러워하면서도 연신 눈물을 훔치던 여자와, 연극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내내 달뜬 기분이었을 남자의 마음을 상상하면서 나도 모르게 그랬던 것 같다.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내가 그들의 행복을 빌어줬다 해도 남의 프로포즈 구경하면서 우는 건 쪽팔린 짓인듯 하여 얼른 눈물을 훔치는데 불이 켜지고, 뒤에서 누군가가 함께 온 사람을 타박하는 소리가 들린다. "너는 왜 우니?" 순간 드는 괜한 안도. 아, 나 그렇게 이상한 성향은 아니구나. 흐흐
* C가 연애를 시작하면서 나는 나도 C도 모르게, C에게 많은 것들을 배려했다. 사실 작년에 영화나 연극을 많이 보지 못했던 데에는 그런 이유도 컸다. C의 남자친구도 이런 나의 노고를 알아줘야 하는데 말이지. ㅋㅋ 오랜만에 C와 대학로에 오고, 함께 지하철을 타니 스물 일곱살이 된 것 같은 기분. 오랜만에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도무지 이게 얼마만인지. 그럼에도 공유한 게 많아, 처음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와 나누는 이야기들은 참 편하고, 깊고, 즐겁다.
// 금토일, 3일치 얘기를 쓰려고 했는데, 어랄라 금요일만 이만큼이네 -_- 내가 무슨 이야기를 얼마나 더 하고 싶은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한번 잘라줘야겠다 흐흐 ^-^ 나머지는 나좀 치워주세요 하고 울고 있는 어린 송아지같은 내 방좀 달래주고 와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