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엔 연극이나 공연 등을 작년에 비해 많이 보지 못했는데, 어찌하다보니 새 팀에 온 후 몇 주 안돼 이틀 연속으로 문화생활을 이유로 칼퇴근을 하게 됐다. 어제는 백건우 피아노소나타 연주회, 그리고 오늘은 반고흐 전시회. 그러니까 마치 웰빙주의 문화소비형 웬디가 된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걸. 그저 그간 힘들었던 것에 대한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다. 오늘은 어쩐지 민망하고 미안해서 미술관 간다는 얘기도 안하고 퇴근했다. 어제 피아노 연주회를 간다니 다들 '우아 선아'라고 놀렸다. 우아00은 예전에 페이퍼에서 소개한 바 있는 우리 우아한 L대리님의 수식어다. 난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필 이틀 연속이었던 건, 하필 월광이 어제고, 반고흐전이 40% 할인되는 T클럽데이가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우아는 커녕 대중적 취향인지라, 제일 유명한 월광이 제일 좋고, 할인에 집착하는지라 40% 할인되는 날 간 거다. 하필 이어진 이틀. 같은 날이 아니라 다행이다. 흐흐.

연주회장 1층에는 로렌초의 시종 님이 있었다. 시작 전에 문자를 보냈더니 인터미션 때 답이 왔다. 그리고 연주회를 마치고 '급 감동의 물결이 메아리쳐요'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려는 내게 로렌초님은 '상서로운 불길함'이라는 소감을 보내줬다. 갑자기 급 감동의 물결이 메아리친다는 나의 감상이 초유치버전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 내가 이렇다. 하하하. 그치만 정말 마음 속에서 감동의 물결이 메아리를 친 걸 날더러 어쩌란 말인지. ㅋㅋ

난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소리가 제일 좋았다. 나이를 조금씩 들어가면서, 조금씩 첼로, 플룻, 등의 그럴듯하고 멋져보이는 악기로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악기소리를 바꾸는 친구들이 생길 때에도, 난 여전히 피아노를 제일 좋아했다. 첼로를 켜거나 플룻을 부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나는 잘 알지 못하나, 피아노를 잘 친다는 것,(여러가지 의미로)이 얼마나 어려운 지 알기 때문에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난 피아노를 잘 치지 못하는데, 올 초 다시 M에게 피아노를 배우면서 '반주'를 배우겠다고 했다. 두달쯤 지나 서로의 사정으로 그만 뒀지만. 근데 어제 음악회장을 나오면서 난 외쳤다. '연주'를 배울 거야. 무조건 '연주'를 할 거야. 월광 1악장 정도는 어떻게, 되지 않을까?

연주회장에서 직접 연주를 듣는 기쁨은 물론 음악 그 자체가 주는 것도 있지만, 하나 하나 곡이 바뀔 때, 악장이 바뀔 때의 그 짧은 시간마다 그 곡의 연주를 준비하는 연주자의 자세를 볼 수 있다는 데에도 있는 듯 하다. 베토벤의 장송곡으로 쓰였다는 곡을 준비할 때, 월광 연주를 시작하기 전의 잠깐의 '가다듬음'을 위한 텀을 보고 느끼며, 나도 함께 준비하면서 들을 수 있어 더 좋았고, 연주자의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도 좋았다. 물론 난 3층 맨앞 구석 자리에서 있어서 상세히 볼 수는 없었지만. 계단을 내려와서는, 아아아~ 저기는 소리도 다를 거야, 라며 울부짖었다는 거.

반고흐전은, 그냥 계속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고흐의 삶이야 뭐 워낙 유명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지만, 그래도 전시회장을 하나씩 다닐 때마다 적혀 있는 그의 삶의 행적들을 보며, 당신 정말 힘들었군요, 라는 말이 계속 절로 나온다. 저런 삶이 또 어디 있담, 정말. 심리학 공부를 좋아하는 민정언니의 나름 심리학적 그림 해석들도 재밌었다. 미술치료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반고흐의 그림으로 제일 처음 시작하지 않을까 싶었다.

2

발표는 잘 마친 편이다. 실은 내일 하나 더 남았는데, 이렇게 페이퍼 쓰며 놀고 있는 사건. 어제 팀 대상 리허설 때 어렵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어서 '대중의 언어'를 습득해야겠다며, 쉬운 부분만 설명하고 어려운 부분은 넘어갔다. 내 보고서가 깊이 들어갈수록 좀 헷갈린다. 실은 나도 가끔. 덕분에 후배 혜진씨는 동기에게 오늘 교육이 무지 어렵다며 겁을 주었다가 이내 민망해졌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잔머리만 는다고, 오늘은 뽀대나는 부분까지만 설명하고, 질문은 내일 한꺼번에 받겠다고 했다. 버벅대든 어쩌든, 내일 하자고. 아무도 내 속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일은 윗분들이 아무도 안계신 날이다. 하하하!

요즘 교육에 잘 안들어오시는 전무님께서 들어오셨다. 이번 보고서는 전무님께 두번이나 기안을 올리고 바쁜데 굳이 하지 말라,고 한 걸 우겨서 한 것이니, 실은 들어오실 줄 알았다. 들어오시는 순간 숨이 막히는 것 같다. 눈을 질끈 감아버리려 했으나 곱지 않은 전무님의 표정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나가시면서 한마디 하시려는 것 같길래 뭐라고 하시려나, 각오하는 순간, 옆방에서 교육을 듣던 이국장님이 건너오셔서 '선아야 정말 대단하구나!' 라는 말씀을 해주신다. 사내에서는 이국장님이 전무님보다 이쪽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이시기에, 국장님이 칭찬한 부분을 전무님이 뒤집을 경우엔 전무님이 잘 이해를 못하신 게 되버리는 상황이다. 이 묘함이라니. 결국 점심시간에 마주친 전무님께서 '고생 많았다. 선수가 다 되간다'고 칭찬을 하신다. 앗싸. 마음은 늘 고고한척 회사에 다녀도 결국 칭찬 한두마디에 녹아버리는 어쩔 수 없는 직장인인가보다 나도. 전무님이야 뭐 어쩔 수 없이 칭찬을 하신 것 같지만, 일단은 넘어갔으므로 안심.

내일 교육은 아예 간략한 스크립트를 썼다. 어려운 걸 혹시나 실수로 설명하게 되는 우를 범할까봐, 최대한 간단하게, 숭덩숭덩 넘어간다는 게 내일의 전략이다. 부족한 시간을 핑계삼아. 전시회 가기 전 덕수궁 앞에서 혼자 스크립트를 펴놓고 연습했다. 생각해보니 코미디다. 하하하.

3

이번주말에 있을 송년모임을 좀 유난스럽게 준비중이다. 흐흐. 그럴만큼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긴 하다. 올해의 나를 설명하는 책, 영화, 음반 중 한가지를 들고가 선물해야 하고, 내년에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나타내주는 노래를 찾아가 같이 들으며, 그게 누가 선택한 노래인지를 맞히는 퀴즈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가장 많이 맞힌 사람들에게 저 책, 영화, 음반들이 상품으로 돌아간다.

디제이를 맡은 웬디양은 노래를 취합해가 씨디로 구워, 모두의 내년 소망을 담은 노래를 선물할 계획이다. 물론 나를 나타내는 노래도 뽑아야 되는데, 이게 은근 머리가 아프다. 내가 바라는 나의 내년 모습은 어느 노래에 담겨 있을까. 아니, 그 전에 내가 바라는 내년 나의 모습은 뭘까. 내일 좀 열심히 고민하고, 열심히 찾아봐야겠다. 뭐든 하나만 고르는 걸 어려워하는지라, 책이든, 음반이든, 영화든 고민이 좀 되긴 하지만, 일단은 좀 설렌다. 흐흐-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Mephistopheles 2007-12-13 0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치아카 센빠이를 어서 빨리 찾기 바래요 노다메 웬디양님.
2. 대체 하시는 일의 정체가 뭘까 궁금해지는군요. 혹시 페인트모션으로 일관된 페이퍼의 내용 이면엔 국정원 직원이라는 반전이.?
3. 결정되어지면 그 음악과 영화와 책을 좀 알려주시길..^^

웽스북스 2007-12-13 10:03   좋아요 0 | URL
1. 남자는 피아노를 잘치면 500점쯤 따고 들어가죠 ^^
2. 뭐 합법적인 사기꾼 비슷한 겁니다
3. 흐흐 일단 오늘 좀 열심히 서치해보려고요
4. 메피님, 하루에 2시간 주무시죠?

마늘빵 2007-12-13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왠지 웬디양님의 발표를 듣고 싶은...

웽스북스 2007-12-13 10:44   좋아요 0 | URL
제 발표를 듣고 대학시절 친구는 쇼핑호스트같다고 얘기했고요 -_-
어떤 선생님은 코미디언의 기질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
앞에 나가면 꼭 웃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유머 코드가 대중적이지 못해서 꼭 혼자 실실거리면서 발표를 합니다 ;;
사람들은 황당해해요 ㅋㅋㅋㅋ
얼른 끝내고 싶어서 말은 속사포처럼 빨리하지요 ㅋㅋ
오늘 발표를 들은 후배는 랩하셨어요 -_- 라고 하시던데요

마늘빵 2007-12-14 10:41   좋아요 0 | URL
오 그만큼 능숙하단 말씀이신데 배우고픈데요? ^^

웽스북스 2007-12-14 13:02   좋아요 0 | URL
푸하하 나 저게 '배고픈데요'로 보인 사건 ㅋㅋ
일단 마이크 잡으면 떨지는 않아요 ㅋㅋ
하지만 남들이 발표를 잘한다고 별로 인정은 안해준다는 거

춤추는인생. 2007-12-13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웬디님 저도 랩같은 발표회 듣고 싶어요.ㅎㅎ
어릴적에는 발표같은거 참 잘했는데 전 갈수록 목소리도 작아지고 나가기도 싫어지고. 큰일이예요 ^^

웽스북스 2007-12-13 19:16   좋아요 0 | URL
이게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인 것 같아요
저도 학년이 올라갈 수록 손들 때 아이들의 시선을 먼저 살피게 됐었거든요
저학년때는 저요~ 막 이러면서 발표했었는데 ;
지금도 손들고 말하고, 이런 건 못해요- 시키는 발표나 하는 거죠 ㅋㅋ

깐따삐야 2007-12-13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웬디양님 주말의 DJ~ 랩도 막 하구 음악도 막 틀구... ㅋㅋ 설레고 좋겠어요.^^

웽스북스 2007-12-13 19:20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 랩은.....의도치않은...... ㅋㅋ
그래도 주말 송년모임은 좀 설레요 헤헤 ^^
 


한 때 내 별명이 드라마 아가씨였다. 자칭, 타칭이었다. 드라마를 남들보다 많이 본 건  아닌데, 보기 시작하면 좀 집착해서 보는 습성을 지니고 있었다. 일단 드라마를 볼 때의 원칙은

1. 1회부터 본다
2. 빼놓지 않고 본다

이다. 따라서 난 남들이 입소문으로 재밌다고 하기 전에, 내가 볼 드라마를 스스로 간택하여, 1회부터 빼놓지 않고 보곤 했다. 그래서 남들 다본 드라마 중에 내가 안본 것들도 꽤 된다.

저 두가지 이유는, 내가 드라마 아가씨로서 요즘 드라마를 거의 못보고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내가 도무지 드라마를 빼놓지 않고 볼 수 있는 여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사에 들어간 이후로는 거의 본방송을 보지 못하고 다운로드로 근근히 연명하는데, 궁금한 건 못참는 성격이라 이미 완결된 드라마를 다운로드해서 보는 경우엔 거의 잠도 안자고 보는 편이다. 백수 시절, 네멋대로 해라는 하루만에 봤었고, 대장금도 며칠에 걸쳐 (일주일 안쪽) 다 봤고, 드라마 카이스트도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난 각기 다른 저 세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한다.

다른 두 드라마는 워낙 유명하니 넘어가고, 비교적 덜 유명한 카이스트에 대해 잠깐 얘기해 보자면 카이스트는 대학을 졸업하고 보니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드라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은근 마니아가 있는 명작이다. 다음 카페 내에, 카이스트 시즌1 멤버 그대로 (작가와 피디까지) 다시 드라마를 찍는 것을 추진하는 모임이 있었다. 물론 추진을 적극적으로 했다기보다는 그냥 같이 향수에 젖는 모임이었고, 나는 뒤늦게 카이스트를 좋아하게 되어 눈팅족으로 함께했다. 이 모임은 이은주가 사망한 뒤에 희망을 잃었다. 이은주가 연기했던 구지원 캐릭터도, 강성연이 연기했던 민경진 캐릭터도, 너무너무 좋아한다. 내가 가진 모습과 갖고 싶은 모습, 갖지 못할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

그렇지만 회사에 다닌 이후로는 다운로드 받아서 보기를 결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집착할 내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시작을 못하는 슬픔. 올 해는 한국 드라마 두개, 일본 드라마 하나를 봤는데, 셋 다 매우 좋았다. 예전엔 드라마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수용하고 시작일을 눈빠지게 기다렸다가 선택해서 보는 얼리어답터였다면, 요즘은 검증된 드라마만을 보는 후기 수용자. 한국 드라마 썸데이는 김민준과 배두나 때문에 봤는데 꽤 괜찮은 편이었고, 고맙습니다,는 정말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봤다. 올 한 해 이 드라마 때문에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리고 일본 드라마는 노다메 칸타빌레. 깔깔 웃으면서 봤었지. 노다메양을 사랑하면서, 치아키 센빠이는 멋있지만 실은 좀 느끼하다고 생각하면서. '다시 이몸을 차면 용서하지 않을 거야'에서 실은 닭살이 좀 올라왔다며 -_-

후기 수용자의 장점이 검증된 드라마를 본다는 데 있기에 실패 확률이 적다는 데 있다면, 단점은 같이 흥분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고맙습니다 끝나고 석달 있다가 나 고맙습니다 보며 질질 울고 있어요, 라고 말하면 누군가 응 그 드라마 나도 좋았어, 라고 말은 해주지만 두손을 부여잡고 같이 흥분하기에 이미 상대의 감흥은 많이 다운돼 있기 때문이다. 스포일러나 되어주지 않는다면 감지덕지한 일이다. 다음날 드라마 기사를 검색하며 맘설레하는 일도 못한다.

아일랜드를 보던 때, 나는 아일랜드 팬카페와 수많은 주변 아일랜드 팬인 친구들과 함께 울고 웃었다. 재복이 말대로라면 '대구리 빠개지도록' 고민한 거지. 아 도무지 그 의미는 뭐였던 거야, 라며 떠다니는 수많은 기호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음회를 기다리며, 세계를 아일랜드가 하는 날과 하지 않는 날로 구분했었다. 이제 그런 재미를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저 두가지 원칙을 없애면 되는데, 1회부터 못봐도, 매번 못챙겨봐도 그냥 보면서 그 순간을 함께하면 되잖아, 근데 저 원칙을 잘 못없애겠다. 드라마도 내게는 잘 완성된 하나의 작품이어서, 한 회를 빼놓고 보면 마치 소설을 100페이지쯤 건너뛰고 읽은 것 같은 아쉬움이 든다. 그래서 본방송으로 챙겨볼 경우에도 수요일 드라마를 못보면 목요일 드라마도 안봤다. 리모콘 쪽으로 부들부들 가려는 손을 꼭 부여잡으며 참아야 하느니라,를 외쳤다. 내 원칙이 스스로의 발목을 붙잡는 셈이다.

참, 나는 드라마만큼 시트콤도 좋아한다. 드라마는 작가주의, 시트콤은 PD 주의를 표방하는데, 작가주의 라인업은 아래와 같다

웬디양의 드라마 작가주의 라인업

인정옥 (아일랜드, 네멋대로 해라)
노희경 (꽃보다아름다워, 굿바이솔로, 거짓말)
이경희 (고맙습니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고은님 (첫사랑 - 드라마는 요거 하나,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시나리오)

요 라인업 드라마들은 가능한 한 챙겨보려 하고,
그 외에도 여기 빼놓고 넘어가기 아까운 드라마로

결혼하고 싶은 여자 (사랑스런 명세빈에게 녹았었지)
러브레터 (아, 안드레아!)
떨리는 가슴 (얼마전 마노아님이 언급하셨던, 종합선물세트같은 드라마)

시트콤은 PD 주의인데, 이는 시트콤 PD의 경우 늘 함께 해오는 작가들과 함께하기 때문에 PD의 브랜드네임만 보더라도 확실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시트콤 PD 주의 라인업은 아래와 같다

웬디양의 시트콤 PD 주의 라인업

노도철 (안녕 프란체스카, 소울메이트, 두근두근 체인지)
김병욱 (순풍산부인과, 웬만해선그들을막을수없다, 똑바로살아라, 거침없이 하이킥)
김석윤 (달려라 울엄마, 올드미스다이어리)

이 3명의 PD는 각각 우리나라 시트콤 계의 한 획씩을 그은 PD이다. 나는 이 셋을 정말이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좋아한다. 안녕 프란체스카와 거침없이 하이킥, 똑바로 살아라, 올드미스 다이어리 중에 제일 좋은 작품을 고르라는 질문은 평생 누구도 내게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노도철 PD  옆의 커플같은 신정구도 빼놓을 수 없다. 나는 소울메이트 쪽을 함께한 조진국 작가보다는 프란체스카와 두근두근체인지를 함께한 신정구 작가의 코드를 좋아한다. 신정구 작가는 두근두근체인지로 시트콤 작가 상을 수여할 때 '춤이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라며 춤을 추며 소감을 얘기할 때 알아봤다. ㅋㅋ

쓰다보니 너무 길어졌다. 애국주의는 아니지만, 나는 미국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보다는 한국 드라마, 한국 시트콤이 제일 좋다. 내가 물론 미국이나 일본 쪽 작품을 충분히 접해보지 않았던 이유도 있지만, 그리고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접해볼 의향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아직 만나지 못한 한국의 드라마들을 더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올해도 놓친 드라마들이 너무 많았다. 얼렁뚱땅 흥신소 같은 작품은 정말 너무 궁금하고, 보고 싶고, 모두가 열광했으나 혼자만 못봤던 하얀거탑도 꼭 보고 싶다. 언제쯤 볼 수 있을까?


PS

쓸모없는 사견을 하나 붙이자면 나는 미드, 일드, 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사실은 물냉, 비냉, 이라는 말을 듣는 것처럼 거슬린다. 이건 개인적인 이유의 까칠함이고, 미드, 일드, 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에 대한 비하나 악감정의 표현은 아니다. 이 까칠함을 전체로 확산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냥 뭔가 말이 되다 만듯한 느낌이라는 생각이 나 혼자만 든다. 이 말을 거슬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살면서 나 한명 밖에 못봤으니, 뭐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니다만, 그냥 난 마음에 안드는 말이라고 소심하게 제일 흐린 회색으로 한번 얘기해보고 싶었다.




댓글(14) 먼댓글(1)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지붕뚫고 하이킥
    from 내가되는꿈 2009-09-20 21:14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독서량이 바닥을 치고 있는 요즘, 사실 가을은 드라마의 계절이 아닐까, 라는 의구심을 스스로에게 품게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나를 버닝하게 만든 두 드라마는 선덕여왕(이건 다 알라딘 또 모님 때문) 그리고 지붕 뚫고 하이킥 (빨리 시작한 건 옆에서 부채질 해준 알라딘 치 모님 때문이기도 하고 ㅋ) 이 두 작품 모두 실은 이전에 페이퍼로 쓴 적이 있는 나의 드라마 작가주의와 시트콤 PD 주의에 부합하는 작품들이어
 
 
깐따삐야 2007-12-13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이스트 민경진 케릭터 와빵 좋아요. 항상 봐도 딱부러지는 웬디양님 페이퍼.^^

웽스북스 2007-12-13 01:4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정말 와빵 좋아요 흐흐 와~ 빵 좋아요 막 이러고 ㅋㅋ
제 페이퍼가 딱부러지는 이미지였군요, 흐흐 삶이 그게 안되니까 페이퍼라도 그러고 싶었나봅니다

antitheme 2007-12-13 0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이스트는 저도 열심히 봤었습니다.

웽스북스 2007-12-13 01:41   좋아요 0 | URL
흐흐 은근 인기가 많았었나보네요 ^^

Mephistopheles 2007-12-13 0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처음부터 보고 흠뻑 몰입했던 최근(?)드라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 였던 기억이 납니다.

웽스북스 2007-12-13 01:42   좋아요 0 | URL
아이고 최근이라기엔 너무 3년전인 사건 ㅠ_ㅠ
메피님도 많이 바쁘셔서 드라마 잘 못보시죠? 흑

순오기 2007-12-13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에 거론된 드라마중에 제대로 본 게 하나도 없네요.
그래도 아일랜드가 그 중 많이 본 것이네... ^^

웽스북스 2007-12-13 01:43   좋아요 0 | URL
아일랜드는 시청률이 낮았는데, 본 사람은 주변에 은근 디게 많아요
다들 어둠의 경로로 봤나, 이니면 내 주변 사람들만 많이 본건가 ㅋㅋ

마늘빵 2007-12-13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네 멋대로 해라,가 좋았고, 아일랜드,를 제대로 못 본 것이 한이라는. 네 멋대로 해라의 이나영 캐릭터와 아일랜드의 김민정 캐릭터를 매우 좋아해요. 그런 여자 어디 없나.

웽스북스 2007-12-13 10:09   좋아요 0 | URL
아, 아일랜드는 왜 제대로 못보셨나요- 슬프답 ㅠ_ㅠ
네멋,을 좋아했다가 아일랜드에서 인정옥에게 돌아선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흔치 않게 아일랜드를 먼저 보고 후에 네멋을 챙겨봤었답니다. 네멋 할 때는 이상한 드라마 보느라 못봤었어요. 그리고 저는 아일랜드를 더 좋아해요 ^^ 이나영과 김민정 캐릭터는 굉장히 매력적인 캐릭터죠. 전 가끔 이재복이 그립답니다. 그래서 김민준 나오는 드라마를 좀 챙겨보는데 이재복은 없더라구요. 역시 인작가언니만이 가능하다는! ㅋㅋ

프레이야 2007-12-1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에 드라마아가씨 한 명 있어요. 제 작은딸이라고.. ㅎㅎ

웽스북스 2007-12-17 22:51   좋아요 0 | URL
어머, 혜경님 작은 딸이 벌써 아가씨에요? ^^

다락방 2007-12-17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유명한 드라마들 중 뭐 어느것 하나 본게 없어요.
한때 『거침없는 사랑』이 제가 올인하던 드라마여요.
시트콤은 『논스톱』을 제일 좋아했구요, 지금은 『김치치즈스마일』에 푸욱 빠져지내요. 후훗 :)

웽스북스 2007-12-17 22:50   좋아요 0 | URL
흐흐 논스톱은 우리 현빈동생 나올 때 한참 봤었는데 ㅋㅋ
 


오늘의 태그에 참여하면서, 왠지 중앙통제에 순응하는 내가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시키는 주제에 대해 글을 하나씩 꼬박꼬박 쓰니까. 가능하면 출제자의 의도를 살짝 빗나가는 재미가 있는, 그러니까 좀 태그를 광의적으로 보는 글을 써야지,라는 생각으로 처음에 시도했던 건데, 이런 태그는 빼도박도 못한다. 올해의 책,이라니- 너무나 주제가 명확한 것이지. 약속한 건 죽이되든 밥이되든 하고 보는 성격이니, 이것도 참 병인양 하여 잠못들어 하노라-

실은 나중에 정리할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뭐 이 기회에 정리해두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페이퍼는 그러니까, 저 옆에 목록에 있는 편파적 별다섯 목록의 책에 대한 소개가 되겠다. 리뷰를 쓰지 않고 넘어간 책들도 있어 지금 다시 기억들을 끄집어내려니 살짝 난감하긴 하지만 말이다.

내가 책을 좋아하는 기준은 지극히 이기적이다. 꼭 모든 사람이 좋아할만한 책이 아니더라도, 그 책이 내게 어떤 화두를 던져준다면 나는 그 책을 편애한다. 그게 감성적인 이유든, 이성적인 이유든 마찬가지다. 지금부터 저 책들을 편애하는 이유에 대해 적어볼 작정이다. 써놓은 리뷰가 있는 책들은 리뷰에서 몇마디를 가져올 셈이고, 리뷰가 없는 책들은 그냥 짧게 몇마디 적어놓으련다. (무순)

1. 마음을 보다

밤의 피크닉 - 온다리쿠

이 책이 온다리쿠의 책 중에서 제일 좋았어, 라고 말하면 가끔 놀라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책이 제일 좋건 그건 내 맘이지. 나는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는 삼월의 붉은 구렁을,이나 굽이치는 강가에서,보다 이 책이 훨씬 좋았다. (그렇다, 고작 세 권을 읽은 것이다)
이 책은 오히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이건 정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온다리쿠의 매력. 흔들리기에 오히려 빛나던 청춘, 그 때이기에 할 수 있던 고민들, 가질 수 있던 마음들, 그리고 여전히 내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이 안에 있었다.
실은 흔들림을 거부하고, 그저 얼른 앞으로만 나가며 어른이 되려 하는 도오루의 모습을 보며 너무 나 자신과 동일시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도오루가 그토록 자신을 붙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토록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던 것은, 흔들리기 시작하면 본인도 본인을 겉잡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음의 방비', 실은 나 자신을 지키는 게 뭐가 그렇게 대수로운 문제라고. 그저 조금 흔들리고 무너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스스로를 이렇게 지키려 애써왔는지 모르겠다. 감정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이 두렵고, 실은 저 바닥에 어떤 마음들이 존재함을 알면서 마주치지 않으려 빙빙 돌아가려 애쓰는 내 안의 모습들을 도오루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허둥대지 않으려 늘 애써 여유롭고, 애써 쿨했으나, 실은 누구보다 허둥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험소년 - 아다치미츠루

오늘을, '살아가며', 예전의 어느 한 때에 비한다면 지금은 다소 현실을, '알고있다고 믿는' 나처럼, 일단 몸과 나이는 '어른인' 사람들이, 우연한 계기로 과거를 떠올리고, 과거의 꿈을 떠올리며, 그 때의 자신을 만나게 된다는, 이 단편집속 작품의 설정들은 내가 아다치 미츠루의 배너를 알라딘에서 보고, 아다치미츠루의 작품을 읽던 그 대학 1,2학년  시절을 잠시나마 떠올렸던 그 마음만큼이나 아련하다. 철없고 순수하던 마음이 아련하다 못해 아찔하기까지 한 그 때를 떠올리는 마음은 마지막 작품인 '스케치북' 속의 남자가 10년 전 그 카페에서의 자신을 떠올리고는 앉아있기가 불편해져 이내 카페를 나설 수 밖에 없던 마음과 닮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을 떠올리는 일이 내게 아찔하다는 것은 그 시절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철이 들었거나, 혹은 성숙했음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것일텐데, 그 시절보다 내가 철이 들었다는 건 다소 슬픈 현실인지도 모르겠고, 철이 들었다는 것이 꼭 성숙함을 근거로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실은 진짜 철이 들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 이 책은 만화책이어서 그런지 아다치미츠루의 인기 때문에 꾸준히 나갔음에도 리뷰가 별로 없나보다. 땡스투를 많이 안겨준 책 ㅋㅋ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사실 내가 시에는 문외한을 넘어서 무뇌아에 가깝다. 지금도 시를 잘 모르고, 여전히 많은 시들은 나로 하여금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올 초 누군가의 소개로 백석의 시를 읽은 후, 잘 사지 않던 시집을 몇 권 사 읽기 시작했고, 꼭 시를 읽어야만 할 것 같은 밤을 몇 번 맞이했다.
시야 늘 그렇지만, 읽을 때마다 자꾸만 새로운 즐거움을 만나게 되는데, 백석의 이 시집 역시 여전히 내게 그렇다. 그래서 마음이 눅진하게 피어오르는 것 같은 밤이면 나는 가끔 이 시집을 열어 본다. 반듯하니 잘 생긴 (현빈을 닮았다고 했다가 욕을 먹었던 기억이) 시인의 사진을 표지로 한 시집을 열어보면, 순수하고 투박하고 뜨거운 시인의 마음이 날 것 그대로 담겨져 있다. 말글이 너무 예뻐 몇몇 시들은 소리내어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역시나 첫마음을 줬던 시(흰 바람벽이 있어)가 여전히 가장 좋고, 소리내어 읽는 글맛을 느끼고 싶을 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제격이다. (푹푹 눈이 나린다.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해하지 못한 시들도 아직 많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새로운 시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퐁퐁 솟을 거라는 기대감

2. 세상을 보다

간디의 물레 - 김종철

책의 내용에 공감하고, 또한 저자의 이야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별 넷과 다섯 사이에서 고민한 이유는 이 책의 현실의 대안으로서의 가능성에 대한 회의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 지구 상에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이상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날은 냉정히 말하면 오지 않을 것이다. 일단 나만 해도, 마음 굳게 먹어도 눈 앞의 달콤한 유혹 앞에 무너지는걸. 그럼에도 별 다섯을 준 이유는, 그렇다 해도, 우리 모두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야 그나마 현실에서 바꿔나갈 수 있는 크고 작은 것들을 찾게 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마음을 바꾸는 책이 큰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을 위해 저자는 이 책 256페이지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마음만으로 되겠느냐고 하겠지만 마음없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바리데기 - 황석영

자신과의 화해가 곧 세계와의 화해의 시작이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결국 세계란 개개인으로 이루어진 곳이기는 하지만, 그래서 세계에 대한 책임을 개개인에게 묻는 것이 틀린 논리는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힘들게 세상을 견뎌낸 사람들에게 그건 너무 가혹한 물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틀린 말이 아니기에 더욱 가혹했을지도 모른다. 너가 그들을 뒤돌아보지 못했잖아, 너가 그들을 미워했잖아, 결국 너부터야, 라는 마치 어르신에게 혼나는 듯한 황석영 선생님의 직설적인 메시지는 참 강하면서도 아프게 다가온다.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가혹하지만 그게 정답으로 가는 첫 걸음임을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별다섯 리스트에 없는 책이다. 실은 별 넷을 줬었다. 내가 감히 황석영 선생님께 별 넷을 줄 만한 인물은 되지 못하지. 내 별은 실은 기대치를 반영하기도 하고, 황석영 선생님께는 늘 기대치가 높기 때문에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어 별 넷을 줬지만, 여기에 올리기에는 손색이 없다는 판단이 들어 넣었다.

3. 교회를 보다

평화의 얼굴 - 김두식

전쟁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취하면서도 병역 및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의 문제 앞에 민감하게 고민해 보지 못했던 스스로를 돌아 본다. 나 역시 어느 정도는 기성 교회의 시각에 젖어 있던 부분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역시 '나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진지하게 고민할 기회가 없었음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이 책은 이런 나로 하여금 그들에 대해 또한 나에 대해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줬으며 향후에도 끊임없이 관심을 갖겠다는 다짐의 시작이 됐다. 

 
* 미디어 취재와 편집,이라는 별 쓸모없는 전공 수업을 듣느라 김두식 선생님의 명강의 '시민사회와 법'을 듣지 못하고 졸업한 건 아직까지도 천추의 한이다
 
무례한 기독교 - 리처드마우

작년에 선물 받아 읽고 넣어놨다가 다시 읽을 수 밖에 없었던 책. 올해 아프간 피랍 사건이 일어난 후, 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모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나는 내 목소리를 도무지 정리할 수가 없어, 이 책을 꺼내 들었다.
리처드마우의 무례한 기독교.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생각과 마음을 정리해나갈 수 있었다. 아니다, 실은 내가 얻었던 건 내 마음과 생각에 대한 어떤 권위의 지지와, 그로 인한 확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설명하지 못하던 내 마음과 생각들을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그 누군가의 존재는 가끔 참 고맙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이 책은 우리에게 '시민 교양'을 이야기한다. 시민교양이라는 번역이 참 평범하고 재미 없게 느껴진다면 '비일상적 정중함'이라는 말로 다시 풀어서 이해해도 좋겠다. 공존에 대해 고민하면서도 기본을 절대 놓지 않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균형을 잡고 싶은 누군가에게 자꾸만 읽히고 싶어진다.

* 그러고보니 이 책은 오늘 입대한 M에게 가 있나보다. (못받다니 ㅠ_ㅠ)

침묵 - 엔도슈사쿠

영화 밀양을 보고나서 몇 번이나 리뷰를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끝내 못썼던 것처럼 이 책 역시 끝내 리뷰를 쓰지 못한 책이다. 그냥 어쩐지 나의 깜냥으로는 감당이 안됐다고 할 수도 있겠고, 여전히 결론짓지 못한 것들이 마음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겠다. 도무지 이 작가는 이 책의 결말을 어떻게 감당하려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계속 가지고 읽었으며, 이 책의 결말은 한편으로는 충격이고, 또 한 편으로는 감동이었다.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주류 기독교계의 반발이 심했다고 하는데,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자신의 틀 안에서만 하나님의 성품을 해석하고 이해하려 하는 것만큼 편협한 태도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편협한 사람이고, 지긋지긋하게도 인간적인 기치지로같은 사람이었음을, 결국은 인정할 수 밖에 없게 하는 책. 소설로서의 재미도 훌륭하다. 


* 작가 이름으로 태그를 작성하니, 참 서로들 안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하하! 
읽은 책은 100권도 안되면서 별 다섯 준 책은 또 왜이리 많은지,
세보지는 않았지만 10권에 한권 꼴인듯 하다, 내가 좀 후하긴 하다 ^^

* 아쿠타가와류노스케의 단편집은 문고판으로 읽었던 관계로
리뷰를 좀 더 큰 단편집 읽은 후로 미뤄놨었다. 사놓고는 아직까지 읽지 못했긴 했지만
그러므로 지금도 작성하지 않는다, 실은 좀 귀찮다 하하하하!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7-12-11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바리데기, 침묵... 밖에 못 봤지만 기독교 신앙을 갖던 초기에 읽고 충격받았던 작품으로 두고 두고 내게 질문을 던지던 침묵에 나도 침묵했지만, 오늘은 침묵에 추천한다!

웽스북스 2007-12-11 01:00   좋아요 0 | URL
주옥같은 작품들을 대신하여 제가 추천을 받는군요
그저 영광입니다 ^^

Mephistopheles 2007-12-1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빼도 박도 못하는 태그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곁다리를 건너는 페이퍼를 작성해버린 1人

웽스북스 2007-12-11 01:00   좋아요 0 | URL
메피님 실은, 굉장히 부러웠어요 ㅋㅋ

깐따삐야 2007-12-11 0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읽어 본 책은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뿐이네요. 웬디양님 골고루 읽으셨당. '침묵' 읽어보고 싶네요.

웽스북스 2007-12-11 01:16   좋아요 0 | URL
침묵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좀 엇갈리는 편이에요 ^^ 깐따삐야님이 올해의 책 선정하셔서 작성하시면 거기엔 또 제가 읽은 책이 얼마 없지 싶어요- 다양해보이지만 실은 제가 읽은 책들은 편협하고 좁고, 적답니다. 세상엔 참 좋은 책들이 많아요 그쵸? ㅎㅎ

Hani 2007-12-11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웬디님이 추천하신 책 중에 읽어본 책이 없다는..ㅠㅠ 편애하신 이유를 찬찬히 읽어보고 마음에 담아두고 갑니다^^

웽스북스 2007-12-11 09:21   좋아요 0 | URL
이건 그야말로 편애라 다른 사람들도 좋을 거라고는 장담할 수가 없답니다 ㅋㅋ 그래도 덧글들을 보니 모두의 코드에 공통으로 사랑스러운 책도 보이는 것 같네요 흐흐흐

302moon 2007-12-11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석 시집과 밤의 피크닉, 저도 편애하는 책:) 글, 잘 읽었습니다.

웽스북스 2007-12-12 00:34   좋아요 0 | URL
같은 책을 편애하고 있었군요 반갑습니다!
 

   
 

앞에서 우리는 김훈의 소설이 문제적이라 했다. 김훈의 소설이 새삼 지금 이곳에서 문학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도 중요한 아이콘으로 부각되는 까닭은 그의 소설에 나타나는 바로 저 불가피의 감각과 인간의 동물성에 대한 안쓰러운 긍정이 포스트-IMF 시대 한국사회의 예민한 정치적 무의식의 성감대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그 무의식이란 물론 IMF 이후 개전의 여지가 없는 듯 더욱 강화되어가는 강고한 시장과 경쟁 씨스템 속에서 나날의 삶을 불안과 생존의 절박을 떠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조건에서 나오는 것이다. 거기에 있는 것은 삶을 압박하는 거대한 씨스템의 위력에 짓눌려 느끼는 불가피한 무력함이고, 이른 바 먹고 사는 것을 당장에 해결해야 할 지난한 과제로 맞닥뜨리는 데서 오는 불안과 비애이며, 살아남아야 한다는 비루한 생존 (혹은 성공)의 요구 밑에 다른 모든 가치를 종속시키는 정신적 빈곤의 자발적인 내면화다. 김훈의 소설이 건드리는 대중독자의 성감대는 바로 이 지점이다. 거대한 불가피 앞의 무력한 우울과 신음을 통절하게 그리는 동시에 그것을 유려하게 미학화하는 김훈의 소설은 독자들이 떠안고 있는 저 비루한 삶의 감각을 적절히 환기시키면서도 거기에 정신적, 미학적 품격을 부여해주는 것이 아닌가.

김훈의 소설이 갖는 호소력은 그렇게 대중이 겪는 자발적, 비자발적 굴욕의 현실감각을 적절히 환기해주는 데서 오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거기에 너무 가까이 가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적 소재는 그 삶의 감각을 적절히 거리화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하드보일드와 미려함, '사실'에 대한 산문적 집요와 한시적 여운이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문체의 흡인력 또한 그것을 거들고 있다.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 김훈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어쩌면 거기에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지난한 생물학적 당위에 압도된 스스로의 비루한 삶에 대한 긍정의 위안과 속화된 보편주의-나만이 그렇 것이 아니라 고래로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라는-의 알리바이를 제공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것은 물론 작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일어나는 사건이지만 김훈 소설의 논리와 메씨지가 그와 전혀 무관한 것도 아니다. 특히 그와 관련해서 인간사의 지난한 사실의 세목들을 진지하게 대면하게 하는 김훈 소설의 미덕이 거꾸로 프레임에 의해 선택된 것일 수 밖에 없는 그 사실을 부당하게 특권화해 오히려 한층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현실의 문제를 은폐하는 위험 또한 안고 있는 것이라는 점은 이 대목에서 덧붙여둘 수 있겠다.




창작과비평 가을호 '김훈소설이 묻는 것과 묻지 않는 것' - 김영찬

 

 

 


끄덕 끄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휴일 출근길
김연수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사서 선물로 받은 '비매품'
그의 산문집 읽Go 듣Go 달린다를 읽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흐흐

그 첫 파트인 읽Go 에는 김연수가 여러 권의 책들을 읽으며 쓴 느낌들이 적혀 있는데
나는 이 파트를 읽으며, 이런 파트를 만들어봐야지, 하고 생각했다

책이 책을 부르다
그러니까 책에서 책을 소개하고 있는 문구들을 옮겨적어보는 것.
물론 마음에 드는 것만

나는 책을 읽으며, 그 책을 통해 다른 책을 소개받는 일을 좋아한다
작가란 대부분 작가 이전에 왕성한 독서가들일테니 ^^


아, 김연수 좋아! ^^


1. 브루클린 풍자극

폴 오스터의 주인공은 소설에서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책'을 만드는데, 낸 골딘의 작품을 들여다 보노라면 그 어리석음이 무엇인지 이해할 만하다. 그건 바로 타인의 삶 속으로 깊이 개입하지 않으려는 태도다. (중략)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거리를 따라 걸으며 "그 때까지 살아왔던 어느 누구 못지 않게 행복했다"고 생각한다.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에 첫번째 비행기가 충돌하기 딱 46분 전인 2001년 9월 11일 오전 여덟시의 일이다. 아무리 쿨한 삶을 살아간다 해도 하얀 구름처럼 쏟아져내리는 그 죽음과 재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소설은, 사진은, 시는 세상 모든 것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른다. 본직적으로 예술은 그처럼 뜨겁기만 하다.

* 폴오스터의 책은 한 권 (공중곡예사) 이후로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싫었다기보다는 너무 흔해보여서였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유라니 하하! (실은 최근 알랭드보통에 대한 관심이 떨어진 것도 비슷한 이유이니, 이런 호기가 또 어딨나 싶다)

2,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카잔차키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게 되면 절대로 세상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듯 삶은 불가해하다느니 어쩌니 떠들어댈 수 없게 된다. 결국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 읽고 나면 당장 책을 집어 던지고 밖으로 뛰쳐나가 세상의 모든 것을 처음인 듯 바라보고 듣고 냄새맡게 만든다. 세상에 이런 책이 어디 있을까? 그런 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는 한 번 읽고 나면 당분간 읽지 않아도 좋은 책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잔뜩 찌푸린 얼굴로 방에 틀어박혀 사는 게 지겹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면 그 때가 바로 조르바를 다시 만나야 할 시간이다. 일단 첫 장만 넘기면 된다. 그 다음에는 낄낄거리며 읽고 나서는 책을 집어 던진 뒤 밖으로 뛰어나가게 된다.

* 조르바를 다시 만나야 할 시간인걸까? 하지만 난 절대 조르바같이 될 수 없다는 스스로의 한계를 너무 잘 알고 있음

3. 적과 흑 - 스탕달

속물적인 태도와 자존심이 그처럼 가깝다는 사실은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오묘한지를 보여주는 일이다. 이 기나긴 소설에서 쥘리앵은 독자가 지루해할 틈도 주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지점까지 자신을 몰고 간다. 그건 속물적인 태도 때문이기도 하고 자존심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두 가지 상반된 마음이 공존하는 사람이기에 쥘리앵 소렐을 경멸할 사람은 이 세상에는 없다 (중략)
나는 쥘리앵 소렐, 드 레날 부인, 마틸드 등을 한없이 그리워한다. 그들은 권총을 가까운 곳에 놓고서는 호랑이와 친해지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는 책장을 덮은 뒤에 두고 두고 생각해볼 문제다. '불안에 대한 갈구'라고 스탕달은 이 책의 어딘가에 써 놓았다. 그래. 이 시대가 시시하게 된 것은 이제 불안을 갈구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내면적 안전보장의 시대. 다들 더 높이 오르려고 하기보다는 다만 전락하지 않으려는 시대. 쥘리앵 소렐이 21세기에 더 매력적인 까닭은 여기에 있다.

4. 아Q정전 - 루쉰

이번에는 아Q정전을 읽으면서 한 번도 웃지 않았다. 너무나 쓸쓸하고 외롭기만 했다. 혼자여서 그런 게 아니었다. 삶이 자신의 의지에서 한 번 벗어나기 시작하면 자기 얼굴이 꼭 다른 사람의 얼굴처럼 보일 때가 있다.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삶을 어떻게 짐작할 수 있을까? 머저리 아Q. 가끔 나는 처형 직전에 노래 하나를 끝까지 부르지 못한 아Q를 완전히 이해하기도 하고, 전혀 납득하지 못하기도 한다.



5. 소년의 눈물 - 서경식

서경식씨는 여기에 '나는 될 수 있으면 이 대목에 시선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라고 썼다. 참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서경식씨는 왜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했던 대목을, 오랫동안 싫어했던 소설의 한 구절을 이렇게 나이가 들어서도 잊지 못하는 것일까? 소년들이 결국 인정해야만 하는 사실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리라.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사람만, 내 처지와 너무나 꼭같아서 차라리 혐오스럽던 책들만 오랫동안 자기 안에 살아남는다는 것. 올 봄에 도쿄에 갔을 때 누군가 서경식씨를 만나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만나보고도 싶지만 만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든다고 대답했다. 서경식씨라면 보자마자 나를 소년 취급할지도 모르겠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12-08 08: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는 나와 전혀 다른 남을 접할 수 있어 좋습니다.
특히 책 목록을 볼 때면 이런 책도 있구나 하지요.
대부분 처음 보는 책일지라도 여기 저기서 같은 제목을 보게 되면 어느 순간 익숙해지고
결국 나중에는 제가 직접 대하게 되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좋은 책들과 좋은 시간 가지세요.
아침에 만나서 더 반갑네요.

웽스북스 2007-12-08 10:54   좋아요 0 | URL
이 책들을 소개한 책(읽고듣고달린다)은 비매품이어서 읽어보시라고 할 수가 없는 게 참 아쉬운 책이랍니다. 참 좋아요 이책 ^^

Hani 2007-12-08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 다른 좋은 책을 소개받는 일은 즐거운 일이에요. 또 다른 블로거를 통해서 좋은 책들을 소개받는 일도 기분좋은 일이죠. 김연수 작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작가인데.. 만나보고 싶네요^^

웽스북스 2007-12-08 13:16   좋아요 0 | URL
충분히 만나볼 만한 작가에요 ^^ 저도 아직 3-4권 정도 밖에 읽지 못했지만, 그냥 시간을 두고 종종 만나고 싶은 생각이에요- 지금까지는 소설만 봤는데 이번에 저 책 보면서 산문도 괜찮겠다 싶어서 다음엔 산문을 읽어볼까 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

깐따삐야 2007-12-08 2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점점 나이 먹을수록 고전이 이래서 고전이구나, 하게 되더라구요. '적과 흑'. 제게는 '폭풍의 언덕'만큼이나 재밌었던 소설입니당.^^

웽스북스 2007-12-09 01:23   좋아요 0 | URL
가끔은 어린시절, 뭣도모르던 시절에 읽었던 고전들이 좀 아깝게 느껴지기도 해요- 다시 읽어보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들. 물론 다시 읽겠다고 결심하기가 쉽지는 않지만요 ㅠ

stella.K 2007-12-10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김연수의 책을 사면 그 책을 끼워준단 말입니까? 확인 들어 갑니다. 후다닥!

웽스북스 2007-12-09 20:35   좋아요 0 | URL
아....어쩌나 이벤트 기간이 끝난 걸로 알고 있어요ㅠㅠ
http://larvatus.egloos.com/ 대신 이곳을 소개해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