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소한 추위가 기승을 부려 꽁꽁 얼어붙은 날씨에 알라디너들은 후끈 달아오른 논쟁을 펼쳤다. 눈이 아파서 다 읽어 보진 않았지만, 스스로 X라고 이름붙인 사람이 정군님을 콕 찍어서 매도한 페이퍼는 좀 낯뜨거웠다. 중복 서평의 문제는 양심의 문제도 아니고, 사소한 제도의 맹점에 대한 논의라고 생각하지만, 그 글들을 보면서 나는 왜 읽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왜 리뷰를 올리는지도...
왜냐 하면, 그 X의 (이렇게 쓰니 똑 욕같지만, 그이의 닉넴이 그거였으니...) 이야기 중에 이렇게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단 말인가? 뭐, 이런 구절을 읽고는, 리뷰를 올리기 위해 읽는 것인가?하는 의문을 남겼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왜 읽는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좋은 계기였다. 기분은 별로 안 좋았지만...
난 책을 읽으면, 더 정확하게 말해서 종이로 된 책갈피를 넘기고 앉아 있으면 행복하다. 그래서 책을 읽는다.
둘째로, 나는 아이들 앞에서 쇼를 하는(별로 재미는 없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지식을 나름대로의 양념과 버무려서 보여주고 들려줘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무미건조하게 수업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열심히 읽는다. 그리고 아이들 독후감을 읽으려면, 내가 우선 읽어 둬야 독후감의 평가가 가능하다는 이유도 크다.
셋째로, 책 많이 읽는 내가 좋아졌다. 그래서 부지런히 읽게 된 것 같다. 남들은 건강을 위해 등산도 하고, 헬스도 다니고 한다지만, 나는 내 운명대로 살기로 했다. 다만 살은 좀 빼야겠다. 혈압이 관리를 필요로 하므로. 그렇지만, 책을 읽는 나, 그래서 글을 읽고 간단한 메모를 남겨 리뷰 개수를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가끔 이 달의 마이리뷰에 뽑혀 5만원의 적립금을 받기도 했고(이적지 3번 받았다.2003년,04년, 05년에 1번, 작년엔 못 받았다.ㅠㅠ), 달인인지 뭔지가 돼서 10만원의 적립금을 받은 적도 있다. 심심치 않게 '신청합니다'를 복사해 붙인 덕에 일 년에 몇 권 씩은 서평 작성을 위한 도서를 기증받기도 하며, 간혹 적립금을 눌러 보면, 몇십 원씩의 thanks to가 쌓여 있기도 하다.
아, 간혹은 매주 5000원씩 주는 적립금(30명인가 준다던데)도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그리고 마이리뷰에 뽑히거나 해서 적립금 받은 것과 혼자 보기 아까운 책(만델라 자서전같은...)을 선물로 받았을 때는 '이벤트'를 열어서 책을 선물해 준 적도 몇 번 있었던 것 같다.(나는 낯을 가려서 여러 분들의 서재로 나들이를 잘 다니지 않고 주로 내가 필요한 페이퍼를 남기거나 리뷰를 적는데 그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이벤트에서 선물을 드리는 분들도 평소에 내 리뷰를 잘 읽어 주시는 분들이기도 했다.)
몇 년 전에, 한 달에 열 권 이상의 리뷰를 쓰면 얼만가를 적립해 준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내가 바빠서 도저히 한 달에 열 권을 읽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적립금을 바라고 리뷰를 쓸 수는 없었고, 요즘도 저런 수치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본이 위주인 사회에 꼭두각시가 된 기분이 들어 씁쓸한 것도 사실이다.
방학이 되면 좀 어려운 철학이나 고전들을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고,
평소에는 틈틈이 읽기 좋은 소설이나,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좋은 이야기 책(잭 캔필드 같은...)들에서 이야기를 뽑아 복사해 두곤 하는 편이다.
고전이나 역사서같은 책을 읽을 때는 메모를 해 가면서 공부하는 자세로 읽기도 하지만,
보통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서, 또는 침대에 콕 쳐박혀서 책을 읽으며,
학교에서는 독서대에 책을 끼워두고 넘겨가면서 읽는 재미가 남다르다.(남과 달랐는데, 나를 따라서 독서대를 갖다 두고 책 안 읽는 분들도 많아졌다. ㅋㅋ)
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란 명제나, 놀이의 동물 같은 이야기들은 인간과 다른 생물을 구분하는 특징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동물은 인간 외에도 많고, 기술이나 놀이를 아는 동물도 많지 않은가.
인간이 가진 가장 독특한 점은 바로 '책읽기'라고 생각한다.
책 읽는 동물은 없지 않은가. 인간 외에... 그리고 책 읽는 행동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은 얼마나 지대한가.
문자와 서적... 인간은 <책읽는 동물>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데, 주변에 책 안 읽는 인간 동물도 많다. ㅋㅋ
리뷰를 올리거나 아니거나, 책을 읽는 일은 이제 내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고 말았다.
간혹 알라딘 사이트가 버벅거릴 때면, 나는 내가 몇 년간 남겨온 글들이 하루 아침에 '찾을 수 없는 문서입니다.'하는 알람으로 화할 수 있음을 생각한다. 내가 남긴 기록들을 스스로 읽으면서 수업에 준비하는 경우도 많은데, 그게 날아간다면 좀 아쉬운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없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일 년에 400권 이상을 읽는 일이 가능한 것은 내가 만화를 읽고 한 권 한 권 리뷰를 쓴 것도 있고(도토리의 집), 1,2권을 나눠서 리뷰를 쓴 소설도 있고(남쪽으로 튀어), 한 권을 읽고 리뷰와 밑줄을 다 올리기도 했기(상뻬의 소설) 때문이겠지만, 여러 권을 읽고 리뷰 한 권만 남긴 적도 물론 많고, 검색되지 않아서 올리지 않은 책들도 간혹 있어서 몇 권이나 읽는지를 수치로 환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가르치는 사람이고, 특히 문학 수업에는 많은 인생사를 다루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읽고 또 읽는다. 조용한 집에 혼자 앉아 책 읽는 맛도 기가 막히지만, 도서관에 책 빌리러 가서(놀토마다 간다.) 서서 낡은 책갈피 내음새를 맡는 재미도 쏠쏠하고, 손가락이 벨 만큼 산뜻한 책들을 서점에서 쪼그리고 앉아 보는 것도 재미있다. 답답한 것은 내가 보고 싶은 어린이 책들의 경우 비닐로 포장을 해 둬서 <견본>을 봐야 하는데 그 견본을 몇 번을 가도 못 만나는 경우, 아이 책을 살 수도 없고 참 궁금하고 그렇다.
책 속에 진리가 들어 있다는 것도 진실이지만, 책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도 진실이다.
책 속에 길이 있기도 하지만, 책만 봐서는 결코 길을 찾을 수 없다.
돈오,의 순간을, 진리의 서늘한 손이 내 목덜미를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을 기다리기도 하지만,
점수의 재미도 그에 못지 않은 것이다. 漸修의 재미를 느끼게 해 주는 마이리뷰의 숫자는 바라보고 있노라면 뿌듯하기도 하지만, 읽은 책의 권수만큼 어리석음을 벗어나지 못한 나를 보면 웃기기도 하다.
나는 왜 읽고 쓰는지를 명백히 말할 수는 없다.
읽는 행위에서 재미, 쾌감, 몰입, 감동, 깨달음의 즐거움들을 느끼게 되기도 하고,
읽는 행간에서 분노, 직시, 정의, 불의, 비열, 좌절, 희망의 쌍곡선을 타고 울렁거리기도 하며,
쓰는 행위에서 커서따라 움직이며 마치 내 생각인 양 기록된 저 점들의 집합이, 결국은 내 생각은 아님을 바라보면 우울하지만, 내가 남긴 기록들을 반추하며 스스로 배울 점이 생기는 지점은 유익하기도 하다.
명백하진 않지만 이런 저런 이유들로 나는 읽고 쓴다.
알라딘에서는 내가 읽은 것들을 같이 읽은 벗들이 있어 교유할 길이 트여있어 좋으며,
간혹 내가 쓴 것들을 읽고 댓글을 남겨 주시는 고마운 벗들이 있어 책읽기의 재미가 배가되기도 한다.
아무튼, 나의 읽기에 알라딘이 '양적으로 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고, 나는 알라딘에 그 점을 매우 고맙게 생각한다. 알라딘 사이트와 알라딘에서 알게된 여러 지인들께 고마움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