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심리학 카페 - 흔들리는 삶의 중심을 되찾는 29가지 마음 수업
모드 르안 지음, 김미정 옮김 / 클랩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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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서 '정신병동에도 아침은 와요'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여느 병원 드라마의 주인공이 의사의 전문성이나 로맨스인데 비해, 이 드라마는 환자들의 심리 상태를 중심에 놓아 따스한 느낌을 주었다, 

환자들과 밀접하게 맞닿는 간호사들의 세계 역시 세밀하게 그리고 있다.


마음이 아픈 사람 참 많다.

그 종류도 다종다양하다.


이 책의 저자도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다. 그리고 삶은 엉망진창인 구렁텅이로 변한다.

그렇지만 어느 날, 심리학 카페를 열고,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1997년 그녀가 심리학 카페를 연 뒤 만난 첫 손님은 그녀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힘드셨죠?”한마디를 건넸을 뿐인데 손님은 이미 울고 있었따고 한다.(6)


인생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고 해서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속상해하지 마세요.우리가 고통 속에 있다고 해서 인생이 잘못 가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진정한 불행은 불행한 사건 그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안 좋은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있습니다. 불운한 일을 마주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불행에 머무르는 것은 우리의 선택일 뿐이니까요.(30)


아프냐? 나도 아프다. 이런 공감의 말 듣기 참 어렵다. 자신의 아픔은 자신이 잘 케어해야 한다. 자신을 미워하지 말고, 다독거리며 안아주는 일. 자신에게라도 솔직해 지는 일. 솔직해 지면 눈물이 난다. 스님처럼 초월한 태도는 삶에서 가까이 있지 않아도 좋다. 되는대로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일도 있는 게 삶이니까.

 

상처투성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상처를 이겨내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책임지지 않아도 될 부당한 모욕과 이유없는 차별,

끝없는 열등감에서 벗어나라.(베르벨 바르데츠키,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착한 딸이 아닌 좋은 어른이 돼라.

모든 관계는 상대적입니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상대도 노력해 줘야 균형이 잡히는 법입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도 마찬가지.(91)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 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앞으로는 비난을 받든, 칭찬을 듣든, 누가 뭐라 말하건 말건 나는 내 생각에 따르겠다.(라퐁텐, 우화)

인정 욕망이 무의식에 숨은 타자의 욕망을 나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무의식은 타자의 욕망(164)

 

진정한 칭찬은 고래를 편안한 동물원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넓고 푸른 바다에서 마음껏 헤엄치게 하는 것.(169)


세상은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을, 출근하는 것을 힘들어 한다. 나를 이용하려고만 하고 인정해주지는 않는 곳, 직장. 충분한 월급과 좋은 상사는 없는 곳. 그곳에서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언제나 불가능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직장을 내가 바꿀 수 없다는 것. 내 관점을 바꾸는 것만 가능하다면, 관점을 바꿔 보려고 노력해야겠다.


일에만 몰두할 때 생기는 일 번아웃 증후군, 일에대한 즐거움이 사라진다. 일 중독이 자식에게 이어질 수 있다.(225)

 

정신 분석은 당사자가 병리적인 반응을 하지 않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아를 자유롭게 해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준다.(238)

 

 현대인으로 사는 일은 어렵다. 우리에게 자유가 있다는 착각이 우리를 성공 신화 속으로 몰아넣는다. 끝없는 경쟁선상에 선 것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타자의 시선으로 자아를 졸아붙게 하고, 결국 번아웃이 올 때까지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는다. 결국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자기 자신이라는 원점으로 돌아오기 위해 심리학 카페에서 이야기들을 나눈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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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의 바다 -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로 떠나는 여행
이언 어비나 지음, 박희원 옮김 / 아고라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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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간 책을 읽지 못했다.

그저 읽었던 책은 조국이 낸 책 몇 권과 전공 관련 서적 몇 권 뿐.


요즘 한달 한권 매일 읽기라는 독서 모임의 일원이 되어 매일 정해진 양을 읽는다. 


지난 두 달 동안 이 책을 읽었는데, 부피감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내용이 가득했다.


바다는 숨이 멎도록 아름답지만다른 한편으로는 암담한 비인도적 행위가 난무하는 디스토피아적 공간이기도 하다. (15)


제목이 내용을 담고 있는데,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읽으면서 참담했던 기억이 몇 자 끄적이게 한다.


디스토피아. 라는 명명으로는 다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이 벽돌책에는 가득하다.


홈퍼르츠 의료선은 오스트리아 국기를 걸고 임신중절 수술을 공해상에서 한다. 여성을 땅 너머로, 법 너머로, 허가 너머로 데려가기 위해 바다를 활용하는 것이다.(200)

 

애들레이드라 불리는 홈퍼르츠의 배에 탔던 당시, 멕시코 앞바다에는 육지의 불행을 피해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법의 바다에서 유족 어두운 구석에 박힌 선박 수십 척에 올라 1년 이상 보냈더니 감정이 넝마가 된 상태 애들레이드호를 보면 일부 법이 우스울 정도로 자의적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많은 이들의 삶에 무척이나 실질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201)

 

멕시코 여성의 사례, 스무 살의 나이로 유산한 여성에게 간호사가 태아를 들이밀며, 입을 맞추세요, 당신이 이 애를 죽였어요. 남자친구네 가족은 태아를 위한 장례식을 열었고 멘데스는 반드시 참석할 것을 요구받았다. (208)

 

우리는 법을 어기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거예요.법의 허점을 찾는 것도 기교라며 환자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동시에 대중적 논란을 촉발하는 것도 기교.(218)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홈퍼르츠 의료선의 이야기였다.


내가 무법의 바다에서 찾아낸 이야기 중에는 주인공이 무언가를 주장하고자 바다로 나간 이야기가 많았다. 천둥호는 부정한 방법으로 풍어를 노렸고, 애들레이드호의 여성들은 육지에서 누리기 어려운 권리를 찾아 바다로 갔고, 시랜드는 녹슨 영토를 챙겼고, 낚아채인 소피아호에는 약간의 재산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런 배에 오른 선원들은 단지 생계수단을 찾다가 큰손들 사이이 끼어버린 사람들이었다.(306)


선원 동료 여러분, 이 세상에서 돈 있는 악인은 통행증없이 자유롭게 여행하지만 가난한 선인은 모든 변경에서 가로막힙니다. - 모비 딕- (307)

 

송출업체를 통해 선원의 인신매매는 유별난 일이 아니라 예삿일에 가깝다는 사실을, 대개는 수상한 지하 범죄 세계의 수장이 아니라 기꺼이 한눈을 팔아주는 정부 기관 덕에 처벌받지 않고 운영되는 기업형 사업체가 조직한다는 사실.(322)


그리고 생계를 위해 배에 오른 수많은 동남아 노동자들. 그들에게 인권이라는 말은 애초에 해당되지 않았다.


언론이 죽은 나라에서, 이렇게 책으로나마 진정한 탐사 기자를 만나는 일은 행복했다.


소말리아를 이해하려면 이곳을 기능하는 국가로 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은 익히 들었는데, 이는 실제로 소말리아가 국가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574)

 

보도 활동에서 늘 사건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여행이었다. 때로는 사건이 우리를 선택한다.(585)


지구 표면이 2/3를 차지하는 바다. 그 곳은 국경선이 모호한 곳이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숱한 불법과 무법의 법망 밖의 일들에 대하여 부지런히 발로 뛴 탐사보도의 진수.

올 가을, 이 책을 만나서 행복했다. 

이런 책을 읽는 일은 나이 한 살 드는 것도 기쁘게 여길 수 있게 한다.


배에서 내려오는 오랜 격언 중에는 남위 40도 밑으로는 법이 없고, 50도 밑으로는 신이 없다는 말이 있다.(54)


이런 책들의 도움으로 더 법망이 미치는 곳이 많아 지길 기도한다.


하루는 이런 단상을 기록해 두었다. 

바다에 핵발전소 오염수가 방출된 얼마 뒤였을 게다.


바다를 통해 날마다 배운다

우주의 인드라 망은 삼라만상에 걸쳐 있다.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어 다 내 탓이고

나의 생활을 돌아보게 만든다

샥스핀이라는 음식의 식감을 기억하는 혀는 괜스레 죄스러워진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인간의 욕망이라는 전차는 갈수록 지구를 황폐하게 만든다.

여름 기온이 50도를 넘어가고 태풍이 빈발하며 수재로 사람과 재산을 잃고, 산불이 계속 일어나고

겨울이면 폭설과 한파가 몰아친다

결국은 인재인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스템을 돌봐서 사고가 나기 전에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각자 도생의 무정부 국가에 사는 지금, 살아가는 일 자체가 두렵다

바다에 뿌려진 핵오염수는 먹는 것조차 재앙으로 만들 거라는 무서운 상상은 맛있는 회를 대하기도 어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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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의 엽서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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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道는 藝道의 長葉을 뻗는 深根인 것을...

藝道는 人道의 大河로 향하는 시내인 것을

최고의 예술작품은 결국 '훌륭한 인간', '훌륭한 역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합니다.(76.7.5)

 

신영복 선생의 교도소내 편지들을 영인본으로 읽는다.

이 묵직한 책을 끌어안듯 부여안아 읽으면서

그이의 이십 년을 상상한다.

아, 어찌 살아왔을까.

 

무기징역이라는 길고도 어두운 좌절 속에는

괭잇날을 기다리는 무진장한 사색의 鑛床이 원시로 묻혀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우선 제 사고의 서랍을 엎어 전부 쏟아내었습니다.

그리고 버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아까울 정도로 과감히 버리기로 하였습니다.

지독한 지식의 사유욕에

설픈 관념의 야적에 놀랐습니다.

그것은 늦게 깨달은 저의 치부였습니다.

사물이나 인식을 더 복잡하게 하는 지식, 실천의 지침도,

실천과 더불어 발전하지도 않는 이론은 분명

질곡이었습니다.

이 모든 질곡을 버려야 했습니다.

簦(섭교담등 - 짚신을 신고 우산을 멤, 먼 길 떠날 채비 함)

언제 어디로든 가뜬히 떠날 수 있는 최소한의 소지품만 남기기로 하였습니다.(1977. 6. 8)

 

징역살이 속에서

특히 계수님께 쓴 엽서들은

그의 감성이 두드러진다.

 

이 아픈 현대사를

엽서로 읽는 일은,

고통스러운 쾌락을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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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역사 - History of Writing History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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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반복된다.

2009.5.23일과 2018.7.23일... 두 '노'의 죽음은 오래 나를 힘들게 한다.

두 사람이 모두 조직을 지키기 위해 결행한 죽음이 아닌가 싶어 더 마음 아프다.

유시민은 두 죽음 앞에서

무참한 마음으로 조문을 했다.

마치 상주였다.

 

유시민이 이런 책을 쓴 이유는 복잡하고 단순하다.

그의 청년 시절과, 그의 정치가 시절, 그리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지식 소매상이자 유작가의 시절.

그렇지만 세상은 자꾸 그를 상주의 자리로 불러 낸다.

슬프다.

 

헤로도토스에게 역사 서술은 돈이 되는 사업이었고,

사마천에게는 실존적 인간의 존재 증명이었으며,

할둔에게는 학문 연구였다.

마르크스에게는 혁명의 무기를 제작하는 활동이었고,

박은식과 신채호에겐 민족 광복을 위한 투쟁이었다.

사피엔스의 뇌는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이지만

뇌에 자리집는 철학적 자아는 사회적 환경을 반영한다.

그들은 각자 다른 시대에 살면서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즐거움과 깨달음을 얻는 이유는,

그들의 철학적 자아와 공명하기 때문이다.(213)

 

사람들이 유작가에 공명하는 이유도 같다.

그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동조하든 비판하든, 공명할 수 있으므로 그는 가치 있는 지식인이다.

 

역사가 쓰는 사람의 철학과 연구 방법에 따라 얼마나 크게 달라질 수 있는지 절감하고,

절대적으로 옳은 역사, 과거를 있었던 그대로 보여주는 역사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도 확인.(202)

 

역사는 '사관'에 따라 달리 쓰인다.

객관주의를 표방하는 랑케 역시 시대의 산물이다.

 

19세기 중반, 유럽의 군주제는 바람앞의 등불.

공화제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과

계급혁명의 기치를 든 사회주의자들 앞에서

군주제를 옹호하는 저명 역사학자 랑케를 반기지 않을 권력자가 있겠는가.(129)

 

 Wie es eigentlich gewesen.

그것은 원래 어떠했는가를 밝힐 수 있다는 듯 패기 충만하던 그의 목소리는 매력적이다.

 

카의 말을 빌려 그는 할둔을 변명하지만,

모든 역사가의 처지에도 같이 적용된다.

 

"역사책을 집어들 때 책 표지에 있는 저자의 이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출간 일자나 집필 일자가 때로는 훨씬 많은 것을 누설한다."

저자가 어떤 정치적 사회적 환경에서 살았는지 점검해 보라는 카의 말.(97)

 

다이아몬드의 총,균,쇠는 유명하다.

그렇지만 유시민이 썰을 풀어주니 다이아몬드가 존경스러워진다.

 

"이 네 가지 환경 차이는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으며 논쟁의 여지가 없다."

다이아몬드는 15세기 이후 세계를 정복한 유럽인들이

끈질기게 붙들고 있었던 인종적 우월감과

문화적 자아도취에 얼음물을 끼얹었다.

그는 도덕적 훈계나 연민의 감정 호소 대신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있고, 논쟁의 여지가 없는,

환경의 차이를 근거삼아 논증했다.(296)

 

이 책에 등장한 소재들은 역사서가 주가 되지만,

넓게 보면 인류사나 민족사 등 다양한 기록을 섭렵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을 통해서 유시민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생각이 있다면,

생각은 차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것,

그리고 환경에 따라 생각은 달라진다는 것.

고정 관념을 버리고, 유연한 사고를 가지지는 것,

이런 저런 것들이 그를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사건 요약 작가에서

다양한 역사적 관점의 차이를 기록하는 작가로 변하게 한 것이다.

 

그것은 70~80년대의 짱돌과 화염병 투쟁에서,

2016년 촛불과 2018년 선거의 투쟁으로 이어지는 다종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

당연히 다종다양할 수밖에 없는 국가적 현실앞에서

지식을 소매점 형식으로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의 최대한의 노력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 생각이 여러 번 났고,

그 와중에 고 노회찬 의원의 부고를 들었다.

 

슬픈 역사를 껴안고 가는 민중의 눈물이

언젠가 작은 역사로 남으리라.

 

작은 아픔까지도

모두 기록되어야 할 것이 미래의 사관일 것이므로...

 

 

고칠 곳 몇 군데...

122쪽 본문의 독일어 표기에 und를 and로 썼다. 오타다. 같은 책의 323쪽 참고문헌에서는 und로 옳게 썼다.

136쪽의 각주에 오타가 보인다. 독일어 인간은 Mann이다.

289쪽. 내가 알기로 과학 잡지의 이름은 <디스커버>가 아니라 <Discovery>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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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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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체로 알고 있던 완당 김정희의 일대기이자,

그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십여 년 전에 완당 평전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지만,

청나라 학자들과의 교류가 기억에 남는다.

이제 새로 펴낸 추사 김정희를 읽자니,

그 시대를 다시 돌아보게 되고,

북학(맹자에 나오는 표현으로 이상보다는 현실, 관념보다 사실을 중시하는 일)의 시대,

공맹이 한물 간 시대의 지식인 노마드로서의 김정희를 만나게 된다.

 

정조 사후의 순조, 헌종 시절을 거치면서 제주도에 위리안치되었다 용산(강상)으로 겨우 돌아오고,

노년에는 다시 함경도로 귀양을 갔더라는 사실은 시절의 혹독함을 느끼게 한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씨는 '유재'의 두 글자다.

 

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로움으로 돌아가게 하고,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하라.(340)

 

뭔가 예술과 삶이 하나의 도의 경지를 품은 인격을 느끼게 된다.

 

추사의 재능은 감상이 가장 뛰어났고,

글시가 그 다음이며, 시문이 또 그 다음.(495)

 

감상은 미술품 감식,

금강안 혹리수.

서화 감상하는 데는 금강역사 같은 눈과

혹독한 세리 같은 손끝이 있어야 그 진가를 다 가려낼 수...(496)

 

금강안 혹리수... 멋지고 날카로운 말이다.

 

즐거운 독서를 하면서, 못내 눈에 밟히는 해석이 몇 군데 있었는데,

소소한 작품이야 내가 다 번역할 능력이 안 되지만,

유명하고 굵직한 작품들이라 부족한 점이 눈에 띈다.

 

한시 번역은 전적으로 정민 교수의 도움으로...(580)

 

보통 부족한 점은 자기의 소치로 여기던데, 틀리거나 어색한 부분은 전적으로 정민 교수 탓인 걸까?

 

호고연경으로 불리는 아주 유명한 작품이다.

 

옛것 좋아 때때로 깨진 빗돌 찾았고,

경전 연구 여러 날에 쉴 때는 시 읊었지(199)

 

이렇게 번역되어 있는데, 전혀 대구에 어울리지 않는다.

두번째 구절은 <경전 연구 여러 날에 시도 읊지 못하네>가 어울린다.

쉴 때 시를 읊는 것과 비석을 찾는 것은 대구가 되지 않는다.

비석 찾고 경전연구 한다고 시도 못 읊는다는 즐거운 비명인 셈이다.

 

이런 어색한 구절은 유명한 '다반향초'에서도 등장한다.

 

 

고요히 앉은 곳, 차를 마시다가 향을 처음 사르고

오묘한 작용 일 때, 물 흐르고 꽃이 핀다.(394)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마음에 떠오르지 않는다.

부족한 해석을 넘어 틀린 풀이다.

 

다반향초는... 차를 절반 마셔도 향은 처음처럼 남는단 의미다.

술이름 <처음처럼>의 원조라 할 만하다.

 

고요히 앉은 곳, 차 반잔을 마셔도 향기는 그대로이고,

묘하게 음미하면, 입안에 물 흐르고 꽃이 피네...

 

이런 해석이 더 가깝겠다.

차를 마시는 일의 향기로움을 입 안에 꽃이 피는 것에 비유한 셈이다.

다반향초는 '오랫동안 변치 않음'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께 다반향초 하소서... 하는 덕담도 많았다.

 

 이 작품의 제목을 <장강 서세>라고 적었다.(520)

 

장강 일만 리가 화법 속에 다 들었고

글씨 기세 외론 솔의 한 가지와 꼭 같구나.

 

정민 선생의 번역 이야기에 글에 충실하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화법은 장강만리가 있고

서세는 외론 솔한가지 같다... 순서를 바꾸는 일도 읽기에 불편하다.

 

 

맞춤법 고칠 곳... 513쪽.

 

논어에서 사야는 올곧은 군자의 모습을 일컬은 표현으로,

'세련됨과 거침'이라는 뜻이다.... '거칠다'의 명사형은 '거칢'으로 써야 옳다.

'거침'은 중간에 어디를 거쳐서 온다고 할 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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