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나무 왼쪽 길로 - 전5권
박흥용 지음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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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음 속 호두나무,

그 왼쪽 길엔 뭔가 알지 못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가득 담겼다.

 

경희누나가 내준 숙제는

딸기를 찾는 일.

 

그 과정은 이 좁은 강토를 오토바이로 순례하는 길로 엮인다.

답사기로 읽기에도 손색이 없지만,

마지막 권에서 만난 딸기의 정체는

한국 현대사의 모골이 송연한 원류를 쓰다듬고 있다.

 

내 마음 속 호두나무 왼쪽 길에는...

1987의 대학 시절이 담겼고,

남대문 시장에서의 최루탄 가스와 두려웠던 그 시절...

가장 꽃다운 나이가 그렇게도 짐스러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시절이 지나고 나면,

그 호두나무는 불타고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 왼쪽길의 추억과 함께...

 

지금도 걷고 있는 나의 '길'은

훗날 역시 그 왼쪽길의 한 부분이 될 것이다.

 

조금은 더 뜨겁게 살 일이다.

나이를 생각해 가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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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라 돼지 문학과지성 시인선 480
김혜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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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살처분하던 두렵던 시절...

그 돼지들의 분노를

누구 하나라도 말로 해줘야 하지 않나 싶었는데,

김혜순의 납작납작한 시어들이 증언을 남긴다.

 

앨리스의 돌이켜도 같은 단어가 되는 was it a cat I saw...같이,

말이란 것이 얼마나 가볍고 장난에 불과할 수 있는지도 생각한다.

 

수사학이 헌법인 나라에 살아본 적이 있습니까?

 

은유 경찰이 그림자 수갑을 철컥 채우는 나라

 

한밤중에 운전대를 잡게 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상상력입니다

 

당신은 무엇무엇의 의인화입니까?

...........

나무가 하늘로 뻗어가는 자세와 천사가 땅으로 내려오는 자세

 

Y(Y, 부분)    

 

  김사인이 계면에서 인간을 그리듯,

김혜순의 인간 역시 무엇무엇의 의인화이며,

수사학의 제한 속에 산다.

 

'금'이 제일 좋았다. 

 

  그 여자는 머리칼을 그리는 화가다. 바람에 흩날

리는 머리칼, 얼굴을 덮는 머리칼, 머리칼이 지붕

에서 내려와 창문을 덮는다. 머리칼이 앞길을 막는

. 머리칼이 왼발을 묶어놓는다. 너는 정처가 없어

서 뿌리를 머리에 이고 다니는 사람. 그 뿌리가 모

두 신경인 사람. 네 신경을 누가 흐느끼듯 켠다.

줄이 터진 듯 아득하면 너는 돌아앉아 검은 실로 목

을 칭칭 감아본다. 젖은 머리칼로 마루에 글씨를 써

본다. 이 고통은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가,

리칼이 바람을 울린다. 네 속을 도는 금들엔 매듭이

없다. 시작도 끝도 없다. 그렇지만 너를 바닥에서 일

으켜 세우는 머리카락으로 짠 그물이여. 무덤 속에

서 썩어가는 제 몸을 내려다보는 가슴 아픈 머리칼

이여. 심장에서부터 뻗어 나와 바람에 맞서는 갈가

리 마음이여. 깊은 숲으로 들어가면 달에서 온 환

그물이 숲 전체를 들어 올린다. 그림 속에서 여자의

얼굴을 타고 숲이 내려온다.(금,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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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좋아하는 창비시선 262
김사인 지음 / 창비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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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만가만한 것을 좋아한다.

가만한 당신이 좋고,

가만히 있는 돌이 좋다.

 

이 길, 천지에 기댈 곳 없는 사람 하나 작은 보따리로 울고간 길

그리하여 슬퍼진 길

상수리와 생각나무 찔레와 할미꽃과 어린 풀들의

이제는 빈, 종일 짐승 하나 지나지 않는

환한 캄캄한 길

 

열일곱에 떠난 그 사람

흘러와 조치원 시장통 신기료 영감으로 주저앉았나

깁고 닦는 느린 손길

골목 끝 남매집에서 저녁마다 혼자 국밥을 먹는,

돋보기 너머로 한번씩 먼 데릴 보는

그의 얼굴

고요하고 캄캄한 길(풍경의 깊이 2, 전문)

 

해설에서 <생과 죽음 사이의 섬세하고 민감한 계면>을 쓰는 시인이라 했다.

그렇다.

우연히 돌연히 삶이 시작되었으나,

겸손하지 못한 또는 어리석은 인간은

그것을 엄청난 것처럼 착각한다.

 

<행방불명>으로 자주 번역되는 '카미카쿠시'란 일본말이 있다.

神隱し라 쓰는데, 신의 세계로 숨어버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곧 시간과 육신의 유무 자체가 어떤 면을 경계로

있다가 풀어져 버리는 것을 가리키기에 좋은 단어일 듯 싶다.

그 경계를 노래하면 '계면조'가 되겠다.

 

모진 비비람에

마침내 꽃이 누웠다

 

밤내 신열에 떠 있다가

나도 푸석한 얼굴로 일어나

들창을 미노니

 

살아야지

 

일어나거라, 꽃아

새끼들 밥 해멕여

학교 보내야지(꽃, 전문)

 

역시 시점이 넘나든다.

해설자는 '박수'라 명명했지만,

그 계면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은 가만하지만 깊다.

 

시쓰기는 생을 연금하는

영혼을 단련하는 오래고 유력한 형식이라고 믿고 있다.

시 뒤편 어둑한 골방으로 서둘러 돌아갈 일.(시인의 말)

 

시는 언어로 절을 짓는 행위라 했다.

인간의 영혼은 온 곳을 모르고

갈 길을 몰라 늘 허청거린다.

어둑한 골방에 눕히는 시의 언어는

그래서 서늘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인생사를 묽게 풀어낸다.

 

논어에 지자 불혹, 인자 불우, 용자 불구...라 했다.

미혹되지 않고,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한다.

그의 언어를 읽을 만한 이유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그 처자

발그라니 언 손에 얹혀

나 인생 탕진해버리고 말겠네

오갈 데 없는 그 처자

혼자 잉잉 울 뿐 도망도 못 가지...

마침내 나 먼저 숨을 놓으면

그 여자 이제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리

나 피우던 쓴 담배 따라 피우며

못 마시던 술도 배우리 욕도 배우리...(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부분)

 

김명인의 시를 모방한 그의 언어들에서,

가치라는 것이 무어냐고,

인간들의 무리지은 생각인 '윤리'가 도대체 뭐냐고,

술취한 노인의 맥빠진 질문이 들린다.

 

길이 있다면, 어디 두천쯤에나 가서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의

버려진 너와집이나 얻어 들겠네, 거기서

한 마장 다시 화전에 그슬린 말재를 넘어

눈 아래 골짜기에 들었다가 길을 잃겠네

저 비탈바다 온통 단풍 불 붙을 때

너와집 썩은 나무껍질에도 배어든 연기가 매워서

집이 없는 사람 거기서도 눈물 짓겠네

 

쪽문을 열면 더욱 쓸쓸해진 개옻 그늘과

문득 죽음과, 들풀처럼 버팅길 남은 가을과

길이 있다면, 시간 비껴

길 찾아가는 사람들 아무도 기억 못하는 두천

그런 산길에 접어들어

함께 불 붙는 몸으로 저 골짜기 가득

구름 연기 첩첩 채워놓고서

 

사무친 세간의 슬픔, 저버리지 못한

세월마저 허물어버린 뒤

주저앉을 듯 겨우겨우 서 있는 저기 너와집,

토방 밖에는 황토흙빛 강아지 한 마리 키우겠네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 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

아주 잊었던 연모 머리 위의 별처럼 띄워놓고

 

그 물색으로 마음은 비포장도로처럼 덜컹거리겠네

강원남도 울진군 북면

매봉산 넘어 원당 지나서 두천

따라오는 등뒤의 오솔길도 아주 지우겠네

마침내 돌아서지 않겠네.

                               ― 김명인의 「너와집 한 채」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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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귀 모:든시 시인선 1
정진규 지음 / 세상의모든시집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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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교과서에도 실려있는 그의 시다.

지금 대낮인 사람들은 어둡다...는 말이 울림이 크다.

 

작년 9월에 돌아가셨다.

 

시는 番外의 꽃입니다.

서로의 속 상처를 꽃으로,

꽃의 향기로 어루만져야 합니다.(시인의 말 중)

 

번외라는 말은 '계획에 들어있지 않은 예외적 사례'라는 의미인데,

인간 존재 자체가 번외의 그것이고 보면,

무엇 하나 번외 아닌 것이 없다.

그렇지만, 시에는 '번외의 꽃'이라는 수식을 했다.

화엄이다.

 

심검당이여

가지와 허공의 향방을 애초대로 짚고 지나갔다

바람불고 지나간 자리마저 다듬었다.

웃자란 자리만 잘라내었다

분별이여.

그대 아득히 떠나간 자리,

심검당이여(그릇과 가지치기, 부분)

 

아내가 그릇을 싹 바꾸듯,

나무의 가지를 쳐내듯,

'분별'을 잘라내는 일이,

필요하다.

날카롭게 벼린 칼로, 싹둑.

심검당이여...

 

서글펐다

- 환멸의 습지에서 가끔 헤어나게 되면은 남다른 햇볕과 푸름이

자라나고 있으므로 서글펐다(김종삼, 평범한 이야기)

 

  이렇게 기인 머리 인용문을 달고 있는 것을 내 시에서

본 적이 있는가 <서글펐다>가 사무치게 좋았기 때문이

다 환멸의 습지가 내 시의 자양으로 늘 거기 있었으므로

그걸 헤어나는 게 내 시였으므로 사랑을 해도 늘 그와

같았으므로 그게 늘 햇볕 공터와의 만남이었으르모 왈

칵 쏟아지는 눈물이었으므로 번외 番外로 오는 남다른 것

이었으므로 푸르다기보다는 늘 초록으로 거기 깔려 있

던 것이었으므로 그날 이후 꾸역꾸역 몰려오는 충만이

었으므로 <서글펐다>가 사무치게 차올랐기 때문이다 황

홀과 서글픔은 한몸이다 눈물이 났다 너와 나만의 보석

이었다 <가시내야 가시내야 무슨 슬픈 일 좀, 일 좀 있어

야겠다> 미당은 그걸 벌써 아득히 매만지고 있었다 겨

우 더듬거려 말하고 아련히 떠나는 그의 뒷등에 부는 가

을바람이었다 아득한 배고픔이 나를 먹여 살렸다

 

그의 시는 시와 산문을 넘나든다.

김종삼과 고은의 번외편이다.

읽는 이가 감동의 물결을 함께 번질 수 있다면 시고,

아니면 산문이다.

 

연꽃의 상처는 순번이 다르다

그래서 번외다

속상처가 가장자리에서 시작된다(연꽃, 부분)

 

범종에 유곽이란 부분이 있다.

번외의 자리다.

아, 삶의 번외성을 바라본 그의 나이든 날들은 어떠했을라나...

 

비가

 

헤밍웨이가 쓴 가장 짧은 소설 ;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팝니다, 아기 신발, 한 번도 신겨 보지 못한

정진규가 쓴 가장 짧은 시 ;

팝니다, 아기 배냇저고리, 한 번도 입혀 보지 못한

 

제목 그대로 비가다.

김종삼의 '민간인'이 주는 아픔이 저릿흐다.

 

번외의 맛

그게 과자의 맛이야

율려 과자야

우유 맛이야

드디어 번외까지 내달았군

그러고 보니 화엄까지 넘보았군

한바탕 잘 놀았어

그만하지(과자 만들기, 부분)

 

한바탕 잘 놀았으니, 그만하지...

어둠에 별의 존재를 그려준 시인의 이야기는

투박하지만, 직지 直指한다.

인생, 번외의 꽃이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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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황현산 지음 / 난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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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선생이 별세하셨다.

이 책을 오래 붙들고 읽고 있다가, 마침내 책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포스트잇을 덕지덕지 붙여둔 책을 어제서야 여행가방 귀퉁이에서 찾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같은 불문과 출신인 김현 선생 생각이 많이 났더랬다.

 

김현 선생의 기록들에는, 싸움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는

그렇지만 현실의 비명에서 결코 고개돌릴 수 없는 지식인의 고뇌가 그대로 드러난다.

난 글쟁이들의 글에서,

용산의 비명과 쌍차의 비극,

묻혀간 소, 돼지, 닭들의 울음과

세월호의 눈물이 없는 글에는 침을 뱉는다.

내가 리뷰를 쓰지 못하고, 책도 잃어버린 그 동안에 고인이 되어버리셨다.

명복이란, 저세상에서의 복을 빈다는 뜻이련만, 그이들은 복을 바라지 않으실지도 모르겠다.

 

악독한 강철이 지나간 자리는 봄도 겨울이라는데

이 얼어붙은 여름을 보자고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민주화를 염원해온 것은 아닐 터.(31)

 

이 시평은 세월호 이전의 것이다.

육사는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고 했던가...

 

우리의 근대문학이 그렇듯이

미당은 안타깝게도 흠집많고 일그러진 진주지만

안타깝게 여전히 빛나는 진주.(330)

 

평론가로서 솔직한 평이다.

그 흠집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

신경숙이 되고 고은이 된다.

 

아침마다 연꽃 장엄보러 몸 열고 나가는 나의 봉행이 또한 꽃장엄이다.

이 외로움 일행으로 꽃장엄하며 여기까지 왔다.

상처로 꽃 터뜨려 여기까지 왔다.(정진규 시인의 부고를 듣고..., 338)

 

삶은 화엄의 세계를 만나는 일이라 일컬은 시를 만나며

상처를 되새긴다. 삶에 상처가 없이 어찌 삶이랴...

화엄이라는 말은 삶을 무겁게 반영한다.

꽃처럼 화사하다고만 표현한 '화양연화'에 '장엄할 엄'을 덧붙였다.

코메디와 트래저디의 결합인 셈이다.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과 도구가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한글날의 위세를 업고 이 사소한 부탁을 한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97)

 

사소한 부탁이 책의 제목이 되었다.

그 사소한 부탁은 한글 프로그램에서 맞춤법에 어긋나는 붉은 줄에 대한 것이다.

참 사소하나, 언어는 삶을 반영해야 하므로,

틀린 것에 주의해야 한다.

붉은 줄이 가서 틀린 것이 되어버린 우리말에 대한 사소한 애정이 느껴진다.

 

문단에서 신경숙에 입다물고 있을 때, 선생은 이렇게 적었다.

 

잘팔리는 작가에서 훌륭한 작가가 되는 이 과정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가의식을 확고하게 다질 수 있는 기회를 붙잡아내지 못했다.

이 정황은 신경숙씨 개인의 불행을 넘어서

문단의 불행이 되었다.(132)

 

결국 고은의 사태까지 번지고 문단이 문학을 망쳐먹은 꼴이 되었다.

그 민주화의 앞자리에 섰다던 자들이 사실은 고루한 권력의 흉내를 냈던 셈이다.

 

지옥은 진정한 토론이 없기에 희망을 품을 수 없는 곳이다.

지옥에 대한 자각만이 그 지옥에서 벗어나게 한다.

헬조선은 적어도 이 지옥이 자각된 것이다.(156)

 

2015년의 글이다. 예술인에 대한 검열을

스탕달의 '적과흑'에 나오는 토론 없음에 빗댄다.

아, 큰 스승을 잃어버렸구나...

 

구의역의 젊은 수리공을 제 자식처럼 여기거나 여기려한 사람들과

나향욱들의 차이는 위선자와 정직한 자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어떤 종류의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과 갖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이며,

슬퍼할 줄도 기뻐할 줄도 아는 사람들과

가장 작은 감정까지 간접화된 사람들의 차이다.

사이코패스를 다른 말로 정의할 수 있을까?(179)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드루킹 특검에 단식까지 했던 개새끼들...

결국 부끄러움을 아는 노회찬이라는 아까운 정치인만 잃고 말았다.

사이코패스는 정의될 수 없다. 그냥, 개새끼다.

정의내릴 때는 '유사한 것들과의 차이'를 앞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미소지니(미조지니)의 번역 '여성 혐오'에 대한 심사숙고도 의미있다.

 

스탕달은 '여자다워야 한다는 모든 사회적 요청에 덜 노출될 때,

여자는 모든 편견과 부르주아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워진다.'고 했다.

우리가 만나고 기대하는 '여자다움'이 사실상 모두 '여성혐오'(185)

 

번역어에 대한 고찰에서, 문맥의 단절과 가치를 부정하려는 의도를 드러낸다.

지식인만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다.

이런 큰 지식인을 잃은 사회는 더 어두워질 것이다.

 

남자의 서사는

못난 살인자의 서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영웅의 서사다.

먼저 들어야 할 것은 희생자의 서사다.

역사의 발전은 늘 희생자의 서사로부터 시작한다.(219)

 

여성 문제에 대하여 발언하지 않는 지식인이 대부분이다.

뭐라고 한 마디 하기만 하면, 페미니스트니 동성애 찬성론자니 하며 교회쟁이들이 난리를 친다. 우습지만 비극이다.

 

한국의 특이한 '등단' 제도에 대한 비평.

 

등단, 비등단을 칼같이 가르는 당단 제도도

모두 남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는 열등감 문화의 소산(191)

 

아마 이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김동리 류의 반공주의자들이 자기들의 권력으로 문단을 평가하려했던 경험이 뒷받침 되었으리라.

 

진보주의를 삶의 방식으로만 말한다면

불행한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기다.

한 사람의 진보주의자가

미래의 삶을 선취하여 이 세상에서 벌써 행복하게 살지 않는다면

그는 그 미래의 삶에 대한 확신과 미래 세계의 건설 동력을 어디서 얻을 것인가.

그의 존재는 이 불행한 세계에 점처럼 찍혀 있는 행복의 해방구와 같다.(257)

 

폴 발레리를 빌자면 이렇다.

 

서둘지 마시라 그 사랑의 행위를

있음과 있지 않음의 기쁨을,

나는 그대를 기다리며 살아왔고

내 심장은 그대의 발걸음일 뿐이기에.(259)

 

늘 유쾌하게 세상을 향해 진보주의의 방식을 선보이던

노회찬은 그러나 갔다.

황지우가 간절히 노래했던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늘 분노하면서도 웃음을 선사하던 그를 잃고, 며칠만에 선생도 세상을 뜬다.

 

이 책을 유언으로 삼는다면...

선생은 남은 우리에게 사소한 부탁을 남기신 셈이다.

 

문학 안에는

우리와 같은 고민을 했던 인간들의 모습이 가득하다.

그것으로 이 어두운 세상에서 위안을 얻으며

꿈꾸며 살아가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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