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무를 보다 - 전 국립수목원장 신준환이 우리 시대에 던지는 화두
신준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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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이사를 했다.

새 아파트여서 새집증후군 우려를 하여 제법 큰 나무를 몇 개 사들였다.

떡갈 고무나무랑, 벵갈 고무나무 같은 것들과,

자잘한 작은 화분들, 스투키와 소품같이 놓을 풀들도 샀다.

 

화분마다 2주에 1번, 월 3회 이렇게 표식을 적어 주었는데,

그걸 지키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수목원에서 나무를 옮겨 심으면 나무도 몸살을 한단다.

하긴, 사람도 이사가면 낯선데, 뿌리가 살을 부비던 흙이 바뀌면 당연히 스트레스다.

그래서 수시로 돌보고 물을 분무해 주라는 블로그 글들을 찾아 읽으면서,

집에서 나무의 도움을 받겠다는 건

나무를 돌보겠다는 것과 같은 말이라는 걸 배웠다.

 

2주에 한 번 물주면 되는 나무란 없다.

돌보다가 어느 정도 정착이 돼야 그런 원칙이 통하고,

너무 자주 물을 주지 말라는 경고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너무 크다.

아마도, 많은 경험과 이야기들을 퇴임 후에 집필하노라니

들려줄 이야기가 많아 두서없이 들릴 수 있으리라.

나도 평소에 잔소리깨나 하는 선생이란 직업을 가졌지만,

졸업식에 전해주는 통지문에는 두서없이 말만 많아지던 경험과 겹친다.

 

멸종은 어떤 생물에게는 재앙이지만

어떤 생물에게는 축복이다.

재앙과 축복의 사슬, 이것이 생명과정이다.(37)

 

수목원장을 역임한 이의 이야기이자 과학도의 이야기지만,

인간의 사소한 욕심에 시원한 생명수가 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아무래도 사소한 인간인지라,

김훈의 '내 젊은 날의 숲' 같은 나무와 인생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광합성은 엽록소 안에서

차분하게 바닥상태에 있던 전자가

햇빛 알갱이에 맞아 들뜬 상태가 되면서 일어나는 과정.

이보다 더 적절한 디오니소스적 전희가 있을까?(101)

 

과학자의 말은 이렇다.

전자가 들뜬 상태라니...

 

생명은 모순을 논리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로 도약해버린다는 생각이 든다.(106)

 

어쩌면 이런 것이 지식이 아니라 지혜인지 모른다.

생명에 이유는 없다.

나만 귀하고, 무시당해 좋은 천한 생명은 없다.

생명은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나무를 보고 싶은 내겐 너무 큰 이야기였다.

심심해졌다.

 

사회 생활도 복잡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복잡함 속에 단순한 구조를 보지 못해서 머리아픈 것이다.(195)

 

철학을 하고 책을 읽는 이유가 이것이다.

복잡한 현상들 속에서 단순한 구조를 보려는 것.

그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적어도 설명하려는 노력은 된다는 것.

 

나무나 풀꽃 이름을 막 대는 사람은

자연을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아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

우리는 너무 이름에 얽매인다.

생물다양성은 종들의 잔치가 아니라 온 집안 잔치다.(234)

 

나도 자랑하고 싶었던 사람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원했나보다.

그런데, 집안 잔치에 오니, 아는 사람이 없어 멍하니 앉았다.

그런 기분이다. 좀 쓸쓸하고, 좀 심심하다.

 

나무는 커갈수록 점점 더 혼자가 되어간다.

나중에 엄청난 크기로 자라면

엄청난 적막을 이겨내야 한다.

이런 적막은 묘한 울림을 자아내어

바람을 조금도 느끼지 못해도

가지 끝은 우주의 율동을 감지한다.

 

마음을 울리는 대목도 많다.

그렇지만 메를로퐁티와 들뢰즈와 하이데거가지 뻗치면,

혼자선 나무같다.

 

너무 큰 나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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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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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몇달만에 서재 사진을 바꿨다.

권력자가 구속되어야 민주주의가 온다는 말도 바꿨다.

구속되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촛불에 어떤 평화상보다도 명예스러운 역사가 남을 것이다.

 

책의 일본어 제목은 いなかの パンヤが みつけた <くさる けいざい>이다.

시골의 빵집이 발견한 <썩는 경제>

 

이 책에서 '부패'는 아주 긍정적 의미로 쓰였다.

인간의 얄팍한 기준으로 부패와 발효를 나누지만, 사실 똑같은 현상이다.

 

한국 경제가 부패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화하고자 했던 것일 뿐이다.

부패는 고착시키지 않는다.

새로 계속 변화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GMO로 개발한 것들은

얼마나 멀리 보낼 수 있는가,

얼마나 오래 보존할 수 있는가를 따진다.

썩지 않아야 돈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더 자유롭게 부패하고 발효해야 한다.

가진자들만의 공고한 '앙시앵 레짐'을 더 말랑말랑하게 분해해야 한다.

 

비참한 사회 사회 상황을 향한 분노와 슬픔이 자본론을 쓴 동기(43)

 

이렇게 마르크스를 읽으면서 빵집을 연다.

한국 사회야말로 자본론을 읽어야 할 땅이다.

 

기술 혁신은 겨ㄹ코 노동자를 풍족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자본이 노동자를 지배하고

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65)

 

맞다. 이노베이션은 언제나 자본가의 편이다.

우리는 휴대폰을 통해서 1가구 1인터넷에서

1인 1인터넷의 비용을 자본가에게 바치고 있다.

 

제가 아는 제빵사는 대부분 코가 안 좋거나

피부가 상하더라고요.

잔류 농약 때문 아니겠어요?(78)

 

일터에서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은 모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사흘은 가게를 닫고

일 년에 한 달은 장기 휴가를 간다.(111)

 

좋은 가게다.

그렇지만 그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물좋은 공간으로 이동한다.

인간이 더 겸손해져야 한다.

 

이 나라도 빵처럼

좀더 향기롭게 발효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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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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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거칠고 멀다. 의미망은 서걱거리고 단절적이다. 그리고 문체는 건조하고 의미없는 반복으로 가득하다. 사는일이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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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다 잡초야 - 야생초 편지 두 번째 이야기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글.그림 / 도솔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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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치유되고 나서

새롭게 성장하는 게 아니라

상처를 안은 채

성장하는 것.(232)

 

트라우마라는 말이 있다.

광주의 공수부대를 떠올리면 트라우마가 떠오르고,

세월호 갈앉던 그날을 떠올리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황대권이 1975년부터 감옥생활을 했던 날들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트라우마 그 자체일 것.

 

야생초 편지가 감옥 안에서

그야말로 절제된 - 아니 통제의 극단에서 발생한 예술이었다면,

이 책은 그 후,

그가 생각한 것들을 쓴 글이다.

 

그의 생각은 하나도 어렵지 않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참 어렵다.

얼마 전 돌아가신 물대포로 인한 '병사' 백남기 농민과 같다.

 

사람들로부터 칭찬받는 한,

언제나 네가 아직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게 아니라

타인의 길을 가고 있다고 믿어야 한다.(니체, 280)

 

빈집에서 만난 글귀라 한다.

 

그이의 삶을 생각하면 참 애잔한데,

신영복과 함께 감옥의 문학을 펼친 이들인데,

이제 '잡초'같은 자신의 삶 조차도 고맙다고 여길 수 있는 그의 글들은 참 짠하다.

 

백남기 농민이 자식들 이름을 도라지, 민주화, 백두산으로 지은 그 마음을 읽을 수 있을 듯도 했다.

세상은 참 더러운데,

하늘 참 파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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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예찬 - 넘쳐야 흐른다
최재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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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란 한 종으로만 이뤄진 집단을 일컫는다.

사회의 성원들은 일단 각자에게 득이 되기 때문에 모여들지만

함께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온갖 이해관계에 휘말리게 된다.

사회 생물학은 바로 이런 관계의 역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다.(89)

 

최재천의 '넘쳐야 흐른다'는 마음을 담은 책.

자연을 관찰하면서 인간사와 유사한 면을 유추하여 쓴 간단한 이야기들이다.

 

성공하려면 이기적이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다.

최고 수준에 오르면 그때부터는 이타적으로 행동하라.

교류하고 고립되지 마라.(마이클 조던, 186)

 

삶은 경쟁이고 투쟁이고 승리를 바라는 과정이다.

그렇지만, 모든 면이 그런 것은 아니다.

구애를 위해 선물을 하기도 하고,

이익을 위해 뇌물을 주기도 한다.

유전자를 남겨주기 위해

이기적으로 자기 자식에게 모든 것을 베푼다.

 

유엔에서 '밀레니엄 생태계 평가'를 하는데,

웰빙과 일빙 ill-being 의 비교가 있다.

일빙이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고 느끼는 무기력함, 빈약한 사회관계망, 물질적 빈곤,

허약한 건강상태, 사회 불안의 다섯 요소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상태이다.

이 반대가 웰빙을 담보할텐데,

특히 건강과 사회 안전은 자연생태계의 건강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154)

 

아픈 사회에 살고 있는 일빙의 일원으로서...

기억나지 않습니다...로 일관하는 재벌 총수들을 바라보는 무기력함,

독거노인으로 대표되는 사회관계망,

빈부의 격차 심화로 인한 빈곤의 고도화,

건강에 대한 관심 역시 격차가 큰데 의료보험 역시 일반보험의 비중이 커질 것이고,

사회 불은은 불문가지...

 

위대한 예술은 정원의 화초가 아니라

자기 모순을 딛고 피어나는 잡초.(175)

 

촛불들은 화초가 모인 것이 아니다.

잡초들의 의견은 제각각이고 다 다르지만,

그 모순 속에서 작지만 일관성을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예술로 승화되는 사회상과 비견되는 것도 멋지다.

 

리더는 reader이자 thinker이자, trailblazer(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휘자는 청중에게 등을 돌려야 하지만

국가의 지휘자는 국민의 눈을 들여다보며 희망을 이야기해야 한다.

미래가 이 암울한 현재보다 밝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263)

 

이런 대목을 읽노라면 좀 서글퍼진다.

약물중독자가 책을 읽을 리도 없고, 생각이 있을 수도 없으며, 길은 알 수도 없을 것이므로...

국민에게 등을 돌린 지휘자 같은 그의 탄핵을 앞둔 날들은

독한 것들의 암중모색과

약한 것들의 처절한 저항이 충돌하는 나날들이다.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탄핵을 시켜도 절반도 이긴 것이 아니다.

잡초들을 짓밟던 자들의 군화 밑창을 뚫고

고개 꼿꼿이 들고 저항하는 날들이 더 지속되어야 승리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도올의 일갈이 명쾌했다.

지금 '개헌'을 이야기하는 것들은 다 가짜라고.

원래 가짜는 어렵고 복잡하다고...

 

거품으로 가득했던 이명박근혜의 시대가 퇴조하고 있다.

거품으로 가득했던 새누리당의 거품이 가라앉고 있다.

 

촛불의 거품으로 세상은 더 부글거려야 한다.

양이 질로 전환되기까지는 끝없는 열기가 축적되어야 하고,

이전 상태를 부정하고 새로운 상태를 지양하는 존재는

계속 부글거리면서 거품을 뿜어내야 한다.

 

자기도 모르는 한 순간,

거품은 사라지고 상태가 고양되기도 하는...

그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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