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처럼 인생을 살아라 세계철학전집 6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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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처럼 인생을 살아라> 제목이 충격적이다. ‘개처럼개 같다는 말과 의미가 닿아있는데 그걸 책 제목으로 쓰다니. 너무 도발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부제처럼 적힌 세계철학전집 디오게네스편이란 문구를 보고 수긍이 됐다. 디오게네스라면 그런 말을 하고도 남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디오게네스가 어떤 인물인가. 부와 권력,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고대 그리스에서 물욕이라곤 아예 없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평생을 거의 벌거벗은 차림으로 항아리 속에서 살았다고 전해진다. 하루는 괴짜, 기인으로 널리 알려진 그를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에게 물었다. “자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그러자 그가 내뱉은 말이 지금도 알려져있다. “(다 필요 없고) 당신이 지금 내 햇볕을 가리고 있으니 비켜주게


 

얼마전 출간된 <개처럼 인생을 살아라>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디오게네스의 철학을 풀어놓은 책이다. 10개의 챕터로 나누어 디오게네스의 행복론, 실천론, 통찰론, 가치론, 성장론, 본질론, 진실론, 인간관계론, 신과 자립론, 죽음에 대해 짧은 글을 수록해놓았는데 각 에피소드마다 디오게네스의 일화를 곁들여 쉽게 읽을 수 있다. 이를테면 <개처럼 인생을 살아라>라는 제목과 관련해서 개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앞에 나타나면 헬리콥터처럼 꼬리를 흔들고, 큰 잘못을 하고 혼이 나도 내일의 두려움 같은 건 생각하지 않고 잠에 든다(27)’, ‘(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거나 꾸미지 않는다. 위선도, 가식도 없다. 그저 본능에 충실하게, 정직하게 반응할 뿐이다(73)’면서 우리 인간은 그렇지 않다고 일갈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밤새 괴로워하고 진심과 겉이 다르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며 꼬집는다. 다른 어떤 것보다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삼을 것이며 타인의 시선보다 자신의 진실에 충실한 삶을 강조했다. 디오게네스가 항아리에서 생활한 것 역시 자신의 철학을 삶에 실천한 것이었다.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은 아무리 채워도 결코 가득 차지 않는데 이건 소유한 물건의 양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가 문제라고 강조한다.


 

그러고보면 우리 인간은 얼마나 많은 물건 속에서 살아가는가. 물건을 체면이나 욕망이 아닌 일상의 필요때문에 소유하는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될까. 디오게네스의 고대와 21세기, 물리적인 시간으로는 엄청난 간극이 존재하지만 그의 삶과 철학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여전히 큰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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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양자역학 -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알아야 할
프랑크 베르스트라테.셀린 브뢰카에르트 지음, 최진영 옮김 / 동아엠앤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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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쯤 됐을까? 연말 극장가에 영화 [인터스텔라]의 돌풍이 일었다. 재미로 보고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정교한 과학적 장치와 설명을 기반으로 한 SF영화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특히 청소년 자녀를 동반한 학부모의 관람이 많아 눈길을 끌었다. 주인공이 블랙홀로 들어가면서 일어나는 일들, 책꽂이 뒤 표지판이 깨어진 듯 보이는 물리법칙과는 어긋난 것 같은 공간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한 정보를 얻는 장면이 있었는데 보면서도 이해될듯 하다가도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스텔라]를 보지 않으면 어쩐지 뒤처질 것 같은 묘한 위기감이 감돌았다고 해야 할까? 여러 겹의 층으로 된 꿈으로 들어가 사건을 해결하는 [인셉션]도 복잡한 양자역학을 흥미롭고 비교적 쉽게 표현했다. 그뿐인가.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수많은 차원, 다중우주의 세계를 오가는 주인공이 손바닥을 돌리며 도르마무 거래를 하러왔다고 외치던 장면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패러디 되기도 했다.


 

이런 영화들을 보고 나면 자연히 떠오르는 궁금증. 이게 어떤 과학적 법칙을 다루고 있는걸까. 이런 SF영화를 통해 양자역학을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까? 양자역학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만큼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는데 이런 내게 딱 적합한 책을 발견했다. 바로 <최소한의 양자역학>이다.


 

아무도 모르지만 누구나 알아야 할이라는 부제의 <최소한의 양자역학>은 양자물리학자인 남편과 언어학자이자 극작가인 아내가 함께 펴낸 책이다. 1925년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을 통해 탄생한 양자역학이 2025년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로 유엔에서는 세계 양자과학기술의 해로 지정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만난 <최소한의 양자역학>,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 법칙은 우리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이게 바로 핵심이다. 인간이 자연을 설명하기 위해 수학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수학이 바로 자연의 언어다. - 25


 

책은 1수학’, 2양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론이자 주제인 양자역학을 거론하기 전에 양자역학의 기원을 이야기한다. 가장 먼저 언급된 인물이 시몬 스테빈. 탑 꼭대기에서의 낙하실험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틀렸음을 입증한 인물이다. 이후로 갈릴레오 갈릴레이, 아이작 뉴턴, 양자역학의 수학적 계산의 기초를 마련한 윌리엄 해밀턴, 대칭의 질서를 발견한 에미 뇌터 등 양자역학이 탄생하기까지의 역사를 풀어낸다.


 

스테빈의 쿵 소리 이후, 수학을 위한 문법 규칙이 하나씩 발견되었다. 수학은 그 규칙을 얻었고, 물리학은 수학을 얻었으며, 인류는 물리학을 얻게 되었다. - 67

 


2부는 빛이 입자인지 파동인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출발한다.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플랑크, 닐스 보어, 입자의 파장을 구하는 공식을 만든 드 브로이, 그 뒤를 이은 슈뢰딩거의 파동, 그리고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까지... 본격적인 양자역학을 다루고 있다. 보기만 해도 아찔해서 외계의 암호를 의심케하는 수학공식 없이 그림으로 양자역학을 이야기하는 <최소한의 양자역학>. 복잡하고 난해한 과학을 쉬운 언어로 풀어서 설명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양자역학은 쉽지 않았다. 양자역학 500년의 역사를 한 권의 책으로 이해하려고 한 것부터 욕심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뒤적여볼 것을 권한다.

 


물리학은 역사적 탐구만큼이나 인간 중심적인 연구로,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루는 학문이다. 이 통찰은 과학적 탐구가 인간의 질문과 관점에 깊이 얽혀 있으며, 관찰자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진실이라는 개념을 재고해야 함을 일깨운다. -184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은, 우리는 단순히 탄소가 아니라 그 이상이며, 모두 별의 먼지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다. 우리 몸의 각 원자는 한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먼 우주의 별에서, 또는 거대한 초신성에서, 또는 충돌하는 충성자별에서 100억 분의 일의 확률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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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 열다
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헬스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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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달 동료의 차에 동승하여 출근했다. 습관처럼 약속 장소에 일찍 도착한 날이었다. 10여 분이 넘게 남은 시간. 책을 뒤적이거나 휴대폰으로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때론 주변을 둘러보다가 담벼락에 조금씩 올라가는 담쟁이를 보고 사진찍기도 했다. 그러다가 무심히 올려다본 하늘에 눈에 띄는 구름이 있었다. 풍성한 구름 위에 인간처럼 보이는 누군가 딛고 서 있는 모습. 얼른 사진을 찍어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전송했다. 난데없는 구름 사진에 ’?‘ 고개를 갸웃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단박에 이름이 생각나지 않지만 그리스의 어떤 신 같다는 이도 있었다. “제우스 같지 않아?” 하니 그제야 맞다, 그 신!!”하며 반응해주는 이들. 서로 다른 공간에 있으면서도 사진 하나를 보고 같은 느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특별하게 와닿았다.


 

<구름은 하늘 위에 있어> 책제목부터 가슴을 울렸다. 저자가 궁금했다. ‘헤르만 헤세라는 이름을 보곤 읽지 않을 수 없었다. 헤세에게 구름은 어땠을까. 우리의 머리 위, 높디 높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우리가 애써 눈여겨보지 않는 구름. 대문호 헤세는 구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시시각각 색과 모양을 바꾸는 구름이 그에게는 어떻게 느껴졌을까. 궁금했다.



구름을 아름답고 의미 있게 만드는 건 바로 그 움직임이다우리 눈에 죽은 공간으로 비치는 하늘에서 거리감과 크기공간감을 만들어 내는 것은 구름이다. -9

 

한 손에 들어오는 작은 크기의 책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 그 흔한 목차도 없다. 어쩌면 목차가 필요없는지도 모르겠다. 짤막한 글과 시가 섞여 있고 하나의 글마다 연도가 표시되어 있는데 그 모든 글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구름이다.

 


이 세상에서 나보다 구름을 잘 알고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혹은 이 세상에 구름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말해 보라! - 19


실제로 구름은 노래하고 있었다노래하면서 날아갔고가수인 동시에 노래 그 자체였다. - 50


 

새털처럼 가벼우면서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구름을 노래한 헤세. 그를 의 시와 편지, 소설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의 일부를 발췌해 놓았는데 반가우면서도 이런 대목이 있었나싶어 당혹스러웠다. 분명 읽었던 대목인데 이렇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줄이야. 하지만 무엇보다 놀랍고 의외였던 건 <페터 카멘친트>라는 작품이었다. 헤세의 첫 장편소설이라고 하는데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됐다. 소년 페터 카멘친트가 성인으로 성장하는 동안 겪는 우정, 사랑, 방황, 죽음 등을 다룬 소설인데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싯타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가 바로 이 작품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 위에 있는 구름을 따라 <페터 카멘친트>에 닿아야겠다.

 


나는 어렴풋이 깨달았다이제껏 내가 본 세상은 그저 좁은 틈새로 흘낏 들여다본 한없이 작은 세상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음을. (...) 이제야 나는 구름의 아름다움과 서글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구름은 한없이 머나먼 곳으로 정처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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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읽는 세계사 - 역사를 뒤흔든 25가지 경제사건들
강영운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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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어렵다. 각종 용어에서부터 제도, 수치, 그래프 등 난해한 것들을 모두 모아놓은 분야가 경제인 것 같다. 가끔 무지를 벗어나려는 의도로 경제분야 책을 읽기도 하지만 그 효과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이쯤되면 아예 포기해버릴까 싶다가도 어쩐지 오기가 생겼다. 설마 죽을 때까지 이러겠냐는 심정으로 또다시 기웃거리곤 한다.

 


얼마전 출간된 <돈으로 읽는 경제사>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인간의 욕망과 돈으로 세계사를 풀어냈다는 소개글에 호기심이 생겼다. 경제라는 말만 들어도 머리가 복잡해지고 어지럼증을 느끼는 이 증상이 이번에야말로 개선될 수 있을거란 묘한 기대감....


 

책은 생존, 역설, 거물, 거품, 음식다섯 개의 키워드를 통해 경제사를 이야기한다. 각 챕터마다 역사의 특정 사건이나 인물, 당시 제도를 소개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많았다. 하느님의 도시 예루살렘을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순례를 떠난 기사단에 의해 최초의 입출금 시스템이 시작됐다는 것, 동로마가 약해지자 유럽의 베네치아가 무역도시로 부각되었고 최초로 공체를 발행하기도 했으며 [오늘날 은행을 뜻하는 영어 뱅크bank’는 고대 이탈리아어에서 나무 탁자를 뜻하는 방코banco’에서 (26)] 비롯되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15세기 스페인은 세계 최대 규모의 은 광산을 발견하면서 금은보화가 넘쳐났다. 은화가 폭포수처럼 들어왔지만 시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지 않았다. 끊임없는 전쟁 준비와 과시용 소비로 피폐해지고만다. 스페인에게 은화는 행운이자 불행의 시작인 셈이었다. [3. 거물의 경제사]에서는 경제학에 거물로 통하는 인물들에 대해 소개하는데 21세기 세계 경제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인물, ‘거시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케인즈자유시장의 중요성을 외친 하이에크를 다룬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어렵고 난해하게 여겨지는 경제 개념과 역사적 사건과 연결해서 쉬운 문장으로 설명해놓은 점, 각각의 주제마다 뒷부분에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네줄요약으로 정리해놓은 점이 돋보였다. 다만 25개의 주제를 300여쪽의 분량에 풀어내다 보니 개념 설명이 충분하지 않거나 배경설명이 다소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마중물 삼아 좀더 알고 싶은 부분은 저자가 소개해놓은 책을 참고로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경제란 무엇일까? 국부는 어떻게 채워질까? 자식에게 밥을 먹이겠다는 가난한 부모의 숭고함. 결혼해서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겠다는 인생의 포부. 나라에 기대지 않고 살겠다는 시민의 자존감. 이 모든 것이 경제 혁신의 밀알이 되어 국부를 이룬다. - 121.

 

경제사는 우리에게 한가지 해답을 보여준다. 발명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시장화라는 진실을. (중략)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더 큰 시장에 닿지 못해서였다. 더 많은 소비자의 마음을 훔치지 못해서였다. - 142

 


오늘날에도 소득세는 국가를 움직이는 거대한 엔진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소득세가 총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0퍼센트에 달한다. 윌리엄 피트의 유산이 결코 영국만의 것은 아니었던 셈이다. - 192

 


오늘날 세계 금융시장에서 중요 개념으로 통하는 옵션이 이처럼 튤립에서 탄생했다. 2000년 닷컴 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세상 모든 경제 위기마다 400년 전의 튤립 파동이 다시 소환된다. - 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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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 1
R. F. 쿠앙 지음, 이재경 옮김 / 문학사상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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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오만함이 극한으로 치달아 급기야 그들의 시선이 하늘에 이르렀다. 높고 거대한 탑을 쌓아 하늘에 닿으려했다. 이에 분노한 신이 저주를 내렸다. 하나였던 인간들의 언어가 여러 개로 나누어졌고 탑을 건설하던 인간들은 혼돈에 빠졌다. 인간들은 불신과 오해 속에 서로 다른 언어들과 함께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실려있는 바벨탑에 관한 극적인 일화다.

 

세계 3SF 문학상 중 네뷸러상, 로커스상을 수상한 R. F. 쿠앙의 대표작 <바벨>을 일간지 신간코너에서 알게 됐다. 19세기 은산업혁명으로 인해 세계 최강국이 된 영국이 세계 각지로 식민지 사업을 벌이는데 이걸 식민지 출신의 학생들이 모여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을 벌인다는 거였다. 역사와 판타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책. 호기심이 일었다.

 

리처드 러벌 교수가 광둥의 좁은 골목길을 지나 수첩에 적어둔 빛바랜 주소지에 도착했을 때, 그 집에 살아 있는 사람은 그 소년이 유일했다. -17.

 

19세기 초 중국의 광둥. 전염병으로 어머니를 잃고 죽어가던 소년 앞에 러벌 교수가 나타난다. 그는 얇은 은막대를 소년의 가슴에 올려놓고 낮게 읊조린다. “트리아클” “트리클미묘하게 다른 두 언어로 은막대는 빛을 발하고 소년은 죽음의 문턱에서 벗어나게 된다. 소년의 호흡이 안정되자 교수는 소년을 데리고 나온다. 이미 마을 전체가 전염병으로 무덤이 되다시피한 상태였다.

 

교수는 소년을 영국 런던으로 데려와 로빈 스위프트란 이름을 지어준다. 그리고 영어를 비롯한 라틴어, 그리스어, 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를 혹독하게 교육시킨다. 소년을 옥스퍼드 대학에 진학시키기 위해서. 결국 로빈은 옥스퍼드의 왕립번역원 바벨의 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그곳에서 로빈은 인도 켈커타 출신의 라미를 만나 우정을 쌓는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순탄치 않았다. 거리를 가다 마주친 이들에게서 인종차별과 배척을 당하고 그 와중에 로빈은 정체불명의 낯선 인물을 만나 신비한 일을 겪게 되는데...

 

너도 런던이 팽창을 멈출 생각이 없는 거대 제국의 심장이라는 걸 알았을 거야. 이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바벨이야. 바벨은 은을 비축하는 것처럼 외국어와 외국 인재도 수집해서 이를 이용해 오직 영국에만 이익이 되는 번역 마법을 만들어내. (...) 그건 잘못이야. 그건 약탈이고, 근본적으로 부당한 일이야. - 170

 

서로 다른 언어의 차이를 이용해 마법을 일으키고 그렇게 만들어진 은막대로 영국이 제국주의적 만행을 일삼고 식민지를 통제한다는 발상이 신선했다. ‘Babel’의 사전적 의미에는 '떠들썩한 말소리(장소, 광경), ()의 혼란, 실행 불가능한(공상적인) 계획'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고 한다. 그런 것처럼 왕립번역원 바벨에서 로빈은 혼란스런 갈림길에 서게 된다. 영국인도 중국인도 아닌 경계인’. 로빈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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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08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2권 리뷰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 책 일을까말까 고민중이거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