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뉴스와 헤어질 결심 - 민주시민을 위한 뉴스 리터러시 교양 참고서
김성재 지음 / 싱긋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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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으로 뉴스를 듣는다. 대중교통을 타고 어딘가 이동하거나 가족들과의 식탁에 올릴 음식을 만들 때 노동요처럼 뉴스를 듣는다. 그러다 보니 사건의 일부만 비틀거나 왜곡해서 전하는 뉴스가 정말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 뒤로는 어떤 채널의 뉴스를 들을지 더욱 신중하게 고르게 됐다.


 

파란색 표지에 나쁜 뉴스란 네 글자가 커다랗게 적힌 책 <나쁜 뉴스와 헤어질 결심>에 대해선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나쁜 뉴스와 헤어질 결심이란 작은 문구와 띠지에 적힌 추천인 명단에서 손석희란 이름만 보고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다. 읽어야겠다고. 그리고 읽는 내내 뜨끔했다.

 


미디어 리터러시를 다룬 책은 이전에도 몇 권 읽었다. 뉴스가 어떻게 제작되는지, 정보가 왜곡되는 방식, 유튜브와 SNS를 통한 알고리즘, 가짜뉴스를 판별하는 법, 팩트체크 사이트 활용법 같은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결이 다르다. 우리가 지금까지 얼마나 뉴스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는지 조목조목 짚는다. 나아가 나쁜 뉴스를 걸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나쁜 뉴스와 작별할 결심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면 뉴스는 곧 세상을 읽는 것이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언론이 생산하고 유통하는 뉴스는 종종 우리가 먹는 음식에 비유됩니다. 잘못 먹으면 배탈이 나고, 부실하게 먹으면 영양실조에 걸리고, 과식하거나 편식하면 건강의 균형을 잃게 됩니다. 나쁜 뉴스, 가짜뉴스는 우리의 건강을 해체는 불량식품, 심지어 독극물과 같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 19.


 

책은 모두 8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속에서 우리 언론의 현주소를 만날 수 있다.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권력에 아부하고 기능을 잃어가는 모습, 검찰이나 정치인의 발표를 받아쓰기하듯 그대로 보도하는 관행, 경제와 부동산 이슈를 왜곡해서 다루는 방식,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보도가 남긴 문제, 거기에 최근 극단적인 정치 국면을 다룬 보도까지. 시간 순서대로 쭉 읽어나가다 보면 그 모든 사건들이 아니라 하나의 구조적 문제로 이어져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 크게 논란이 됐던 보도들을 본문에 다루고 있어서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나름 뉴스를 제대로 접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도 뉴스를 어떻게 소비했는지를 되짚어보게 되었다.


 

사람이 죽었다. 잘못된 언론보도에 내몰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죽음 앞에 과연 기자들은 한 줄 반성문이라도 쓸 용의가, 용기가 없는 것일까? - 94~95


 

국민들은 정부에게도, 정치인에게도 효능감을 원한다. 국민을 위해 일 잘하는 정부와 정치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언론의 효능감은 무엇인가? 권력을 제대로 감사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상식적인 국민들이 기대하는 언론 본래의 책무이자 사명이다. - 113


 

저자는 나쁜 뉴스를 단순히 자극적이거나 허위 정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특정 프레임으로 사건을 편집하는 방식을 비판한다. 하지만 정작 뉴스 소비자인 우리가 그것들을 걸러내지 못하고 그대로 흡수해버리는 태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

 


알려졌다, 전해졌다식 보도는 한국 언론 최악의 고질병이다. 주로 검찰·경찰이 수사중인 범죄 혐의와 관련한 사실을, ‘익명의 취재원의 말을 받아쓰기하는 식으로 전달해 기사화하는 것이다. 이른바 알려졌다, 전해졌다 기사의 특징은 검찰 관계자’ ‘법조계 소식통처럼 출처를 알 수 없는 익명의 취재원으로부터 나오는,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을 진실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포장해 보도한다는 것이다. 검찰과 언론이 정치적 의도를 갖고 합작해 만들어낸 기사로, 언론의 신뢰를 깎아먹는 대표적인 비윤리적 저질 기사다. - 119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저자가 미디어 리터러시를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질문의 형태로 풀어냈다는 점이다. 이 기사는 누가, 왜 썼는가. 어떤 사실이 빠져 있는가. 제목과 본문이 실제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하나씩 던지다 보면, 뉴스는 보도되는 그대로 읽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당시 종부세를 내야 하는 90만 명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집 가진 사람 1,500만 명의 6%, 전 국민의 2%에 해당된다. 집 가진 사람 100명 중 가장 비싼 집을 가진 6, 전체 국민 100명 중 2명이라는 얘기다. 뒤집어 설명하면, 집 가진 사람 100명 중 94, 전체 국민 100명 중 98명은 종부세와는 상관이 없다. 종부세 납부 대상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그동안 언론이 종부세를 마치 중산층 세금심지어 서민 잡는 세금폭탄으로 호도해왔기 때문이다. 종부세를 서민 잡는 세금폭탄이라고 불러온 언론에 물어보자. 주택 보유자 100명 중 가장 비싼 집을 보유한 6명에게 내도록 한 세금, 전체 국민 100명 중 고작 2명에게 내도록 한 세금은 부유층 세금인가 서민 세금인가? 이런 질문 자체가 코미디일 뿐이다. - 226


 

민주주의는 결국 시민 각자가 얼마나 정확하게 세상을 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정치 시스템이 있어도 시민들이 왜곡된 정보 위에서 판단한다면 그것을 현명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정한 민주시민은 단순히 투표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매일 접하는 정보를 스스로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부터 시작되는구나 싶었다.


 

사실 <나쁜 뉴스와 헤어질 결심> 한 권으로 나쁜 뉴스를 완벽하게 가려내는 눈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지금 보고 있는 이 뉴스가 정확한지, 오류투성인지 의심해보게 되는 것 같다. 그 작은 습관이 쌓이면 언젠가는 좀 더 중요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시민이 되어 있지 않을까. 미디어 리터러시의 필요성을 막연하게만 느꼈다면 이 책에서 좀 더 구체적인 답을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언론의 수준만큼 발전한다는 말을 뒤집어보자. 언론이 이 모양이면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언제까지 언론자유를 이유로, ‘자율정화를 핑계로 이렇게 민주주의와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리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내팽개치는 위험한 주류언론들을 두고만 볼 것인가? 언론 스스로 먼저 답해야 한다. -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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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좋아하세요? - 어느 덕후와 교수의 고전 교환독서
하길(석민주).이준석 지음 / 창비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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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읽었던 일리아스. 또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니 읽는 색다른 재미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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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그림들 -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
이원율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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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자놀이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남자. 그를 한 노인이 끌어안고 있다. 쓰러진 남자에 비해 체격이 왜소해서 힘에 부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은 남자가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도록 한 손은 허리춤을 받치고 다른 손은 지혈이라도 하듯 남자의 관자놀이를 꼭 누르고 있다.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노인의 눈빛이었다. 극한의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인 채 두 눈을 크게 부릅뜨고 정면을 응시한 모습. 어쩐지 절박함에몸을 떨고 있을거란 느낌이 들었다. 여기에 또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데 피 흘리는 남자의 차림새와 바닥의 카펫. 평범하지 않은 수준을 벗어나 고급진 느낌. 어쩐지 예사롭지 않다. 남자와 노인, 이들은 누구일까.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위험한 그림들>은 표지가,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이란 부제가 호기심을 자극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순간으로 손꼽을 수 있는 장면은 무엇일까. 저자는 어떤 이유로 그것이 위험하다고 했을까.


 

저는 역사를 읽고 외우는방식 아닌 목격하고 체험하는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과거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오래 기억하게 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절감했습니다. -6


 

본문에서 저자는 스무 개의 장면을 소개해놓았다. 시작으로 고대, 중세, 근대이행기, 근대, 현대에 이르는 인류의 역사에서 '세계사를 바꾼 결정적 순간'으로 꼽히는 스무 개의 그림. 그 중에는 이미 알고 있는 그림도 있지만 처음 접한 그림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개된 그림을 어디선가 보았다는 의미이지 전후상황까지 안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를테면 가장 먼저 소개된 [알타미라의 동굴 벽화]는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알게 됐지만 대부분의 그림이 눈에는 익었으나 어린 아이의 매서운 눈썰미의 활약에 대해선 <위험한 그림들>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그런가하면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예전에 독서모임을 통해 소크라테스 대화편을 읽으면서 접했던 내용이었지만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은 그림부터 첫만남이었다. 책을 좋아하던 소녀가 욕심 많은 부모의 욕망 때문에 왕위에 올랐지만 메리 1세에게 왕위를 넘겨주며 ‘9일의 여왕에 그치고 말았다는 것. 비정한 정치의 희생양이 되버린 제인을 메리는 죽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개종하면 살려주겠다는 제안하지만 제인은 변절자가 될 수 없다며 거부하고 처형대로 향했다고 전한다. 프랑스 대혁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국경을 넘어 국외로 도주하려다 붙잡힌 왕실가족의 사연이 담긴 [루이16세와 국왕 가족의 체포]도 인상적이었다. 어린시절 만화를 통해 만났던 루이16세나 마리 앙투아네트, 그들이 결국 단두대에서 최후를 맞는 장면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체제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최고 권력을 누리다가 하루 아침에 단두대에 오르는 처지가 된 이들의 절망적인 감정, 그 처절함을 캔버스에 담아낸 화가. 나도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림을 이야기하는 책, 그림의 당시 배경이나 역사. 화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은 지금까지 여러 권 읽었다. 하지만 <위험한 그림들>은 이전의 독서와 다르다. 독자가 그림을 감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림을 읽을 수 있도록 세밀하게 안내한다. 단 하나의 장면에 숨겨진 이야기. 더 나아가 역사에 관심있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표지그림에 담긴 이야기도 충격적이었다. 어떤 이야기인지 알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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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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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보배믿보작’. 영화나 드라마를 고를 때 우선 스토리를 보고 출연진을 살펴본다. 자연스러운 감정연기로 믿고 보는 배우가 있는 것처럼 책을 고를 때도 믿보작’, 믿고 보는 작가가 있다. 매력적인 주인공과 탄탄한 스토리,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 그리고 진한 감동과 여운. 이 모든 걸 갖춘 작품을 쓴 작가는 0순위에 올려두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내게 그런 작가다. 그의 작품은 언제나 상상 그 이상의 세계였다. 누구도 쉽게 범접할 수조차 없는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과 세계를 이야기했다. 때론 개미의 시선으로 인간을 이야기했고 육체와 분리된 영혼을 통해 사후세계를, 첨단 과학의 상상력으로 미래 세계를 다루기도 했다. 물론 그의 모든 작품에서 100%만족과 감동을 받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최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에세이가 출간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더구나 제목이 <나는 그대의 책이다>. 어떤 내용일지 상상조차 안되지만 그를 애정하는 독자로서 그냥 넘길 수 없는 일 아닌가.

 


저를 소개합니다. 저는 한 권의 책이며 그것도 살아 있는 책입니다. -9

 


책이 자신을 소개한다? 거기다 책으로 향하는 나의 여행길에 자기가 안내를 하겠다고? 독특하다. 이런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지? 독서는 저자와 독자의 보이지 않는 대화라고 생각했다. 저자가 펼쳐놓은 이야기를 따라가며 순간순간 일렁이는 감정과 의문, 정답이 없는 고민을 되씹곤 했는데 이 책은 달랐다. 책이 자꾸 내게 말을 건넨다. 가파른 산길을 오를 때 숨은 가쁘고 다리가 묵직해서 조금씩 뒤처지고 있으면 앞서서 가는 이가 어때. 괜찮아? 계속 갈 수 있겠어?”하는 것처럼.


 

나를 그대라 부르는 책이 이끄는 대로 공기의 세계’ ‘흙의 세계’ ‘불의 세계’ ‘물의 세계를 여행했다. ‘공기의 세계에서는 정신의 힘으로나마새가 된 것처럼 날개를 활짝 펼치고 바람결과 공기를 느끼며 날 수 있었고 흙의 세계에서는 내가 진정한 자신을 찾고 안식을 얻을 수 있는 집으로 향해 나의 일상과 내면을 돌아볼 수 있었다. 대지에서 다시 날아올라 불의 세계에 접어드니 세상은 온통 붉은 핏빛. 기원전 트로이 전쟁을 비롯해 인류가 벌인 수많은 전쟁을 훑는데 포탄이 비 오듯 퍼붓는 아비규환 속에서 책은 힘주어 말한다. ‘그대 안의 온갖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 ‘자기 자신과 싸우라. 혼돈의 불꽃을 지나 만난 고요한 물의 세계’. 여기서 숫자의 의미를 되새기게 될줄이야! 흥분으로 심장이 펄떡일 때 하나두울세엣...’ 하며 길게 호흡을 내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맞게 되는 탄생의 순간..

.

 

공기와 흙과 불과 물의 세계를 여행한 내게 책은 말한다. ‘그대의 책에 그대만을 위해 쓰여진 문장을 기억하라. ‘경이로운 것은 이 여행을 수행한 그대 자신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지구와 인류와 인간의 역사를 둘러보았다. 이런 식의 전개는 베르나르이기에 가능했으리라.

 


하지만 찬사는 여기까지. 아쉬움은 몇 배 더 크다. 책 편집을 왜 이렇게 했을까. 책 읽는 내내 의문이 들었다. 표지는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본문은 왜? 공기, , , 물의 세계에 따라 종이 컬러와 서체를 각각 다르게 했다. 하지만 왜 그랬을까? 그것 때문에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건 예상하지 못했을까? 특히 공기와 불의 서체는 완전 최악. 도무지 내용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고전은 책의 장정이, 편집이 화려하거나 독특해서가 아니다. 저자가 전하는 이야기와 세계가 시간을 뛰어넘어서까지 가치를 발하기 때문이 아닐까. 개정판이 출간된다면 이 부분은 재고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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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의 메뉴판 - 한 장의 메뉴에 담긴 시대의 취향, 계층, 문화 이야기
나탈리 쿡 지음, 정영은 옮김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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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수 있는 어린 시절부터 채식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비건이었다가 중년 이후부터 허용범위가 제법 넓어졌어요. 유제품은 체질적으로 먹지 못하고 소량이지만 익힌 흰살생선이나 계란, 익힌 해물은 섭취하고 있는데요. 베지테리언 중에서 페스코 베지테리언에 가깝다고 할까요. 이런 식성 때문에 외식이나 모임이 있을 때면 은근 신경이 쓰이곤 합니다. 나와 일행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메뉴를 찾아야 하니까 어딜 가더라도 그곳의 음식점 몇 군데를 골라 미리 메뉴 공부를 하는데요. 완성된 요리 사진이나 사용되는 식재료가 표기된 메뉴판은 한마디로 최고의 도구란 생각이 듭니다. 삼계탕이나 갈비탕, 국밥 같은 단일메뉴로 된 곳을 제외하면 말이죠.


 

<미식가의 메뉴판>은 메뉴가 단순한 음식 목록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한 장의 메뉴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을 통해 당시의 사회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읽을 수 있다고 하는데요. 음식과 문학, 식문화를 다양한 사료를 통해 연구한 저자 나탈리 쿡. 메뉴에 대한 저자의 새로운 시선과 접근,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우리는 메뉴판 속에 깃든 한 끼 식사의 의미, 특정한 장소의 분위기, 특별한 손님의 참여, 메뉴의 삽화를 그린 예술가의 상징적 세계까지 읽어낼 수 있다. (...) 식사 전통에는 우리가 식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식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어느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모여 배고픔과 공동체적 욕구를 채웠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메뉴판은 어떤 음식을 선택해 왔는지를 통해 우리가 누구였는지, 또 어떤 존재가 되고자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증언한다. -30


 

저자는 음식 너머에 담긴 사회와 문화의 역사를 여섯 개의 챕터로 나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눈이 즐거운 만찬]은 메뉴판이라기보다 미적으로 아름다운 작품 같은 메뉴판을 만날 수 있어요. 인상주의 화가이자 현대 그래픽 아트의 선구자로 통하는 툴루즈 로트렉이 메뉴판의 삽화를 그렸다는 사실, <미식가의 메뉴판>을 통해 처음 알게 됐습니다. 찰스 디킨스의 <올리버 트위스트> 삽화로 유명한 화가이자 만화가 윌 오언의 메뉴판은 실로 매혹적이었구요. 프랑스 화가 알베르 로비다는 미래공상과학소설처럼 하늘 높은 곳에 있는 레스토랑의 모습을 메뉴판에 담았더군요. 놀랍죠?

 


4[우리 안의 어린시절을 위한 메뉴]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메뉴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19세기 철도나 선박을 통한 여행이 활발해지면서 아이들의 입맛을 맞추는 것만큼 식사하는 동안 아이들이 흥미를 잃지 않을 수 있도록 다양하게 메뉴판을 제작했는데요. 동화에 등장하는 토끼나 코끼리 모양의 메뉴판에 색깔이 화려한 삽화를 곁들여 아이들이 선택하기 쉽게 했구요. 메뉴판에 점 잇기 놀이 장치를 해놓은 것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건강한 음식의 기준과 사람들의 취향이 어떻게 달라졌고 그에 따라 식당들은 어떤 마케팅으로 대응했는지 전하는데요. 본문 곳곳에 수록된 화려한 메뉴판 덕분에 책 읽는 내내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었답니다.

 


메뉴판은 식사가 실제로 이루어지던 순간과는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이들에게, 그동안 축적된 지식을 바탕으로 내용을 읽고 있는 이들에게 말을 건넨다. -280~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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