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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 익스포저 (포토에세이) ㅣ 듄 시리즈
그레이그 프레이저.조쉬 브롤린 지음, 채효정 옮김 / 아르누보 / 2025년 5월
평점 :
‘익스포저(exposure), 특정 기업 또는 국가와 연관된 금액이 어느 정도인가를 나타내는 말’. <듄: 익스포저>란 제목 앞에서 고개를 갸웃했다. [듄]과 ‘익스포저’란 경제용어를 합친 건 어떤 의미일까. [듄]과 [듄: 파트2]의 ‘촬영장 뒷이야기를 담은 포토에세이’란 소개글 이상의 의미가 내포해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죽일 수 없다.
몇 년에 걸쳐 오랫동안 함께 작업했던 이들에겐 일명 동지 의식이라고 불리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싹트기 마련이다. 첫 대면의 어색함은 만남을 거듭하면서 어느새 사라지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서로의 눈빛과 사소한 동작만으로도 미묘한 차이를 감지하는 경지에 이르게 되지 않을까.
촬영장은 전쟁터 같다. 도착하기 전부터 최선과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훈련을 했지만, 그 모든 건 오로지 머릿속에서만, 상상을 맡은 시냅스 안에서만 펼쳐졌다. 촬영장에 도착하면 현실의 전기가 흐른다.
<듄: 익스포저>에는 [듄] 촬영 현장과 영화에 담기지 않은 비하인드 장면을 촬영 감독 그레이그 프레이저의 사진과 거니 역을 맡은 배우 조시 브롤린의 글이 어우러져 있다. 그레이그와 조시,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예술가로 통하는 이들이지만 감독의 사인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 공통의 숙명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어쩌면 운명 같은 건 아니었을까 싶다.
감독이 고함을 치고 있지 않지만 목소리에 엄격함이 깃들어 있고 배우는 그걸 근육으로 느낀다. 배우는 어린아이로 돌아간 듯하지만 그렇게 해서 돌아간 내면의 아이는 자신이 예술의 이름으로 여기 있기로 선택했음을 안다.
배우에게 카메라는 공기 같은 것일까. 언제 어느 때든 자신의 곁을 맴돌면서 촬영하는 카메라를 그들은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다는 거’란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말을 삶의 지침처럼 여긴 그레이그에게 배우들은 배역에 완전히 몰입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장면과 장면 사이, 익살스런 표정을 짓기도 한다. 바로 그런 장면에 조시는 털어놓는다. 티모시를 향해 ‘너의 얼굴엔 사춘기가 아로새겨져 있다’고 하고 스틸가 역의 하비에르에게 ‘내 소중한 친구 하비에르는 (...) 13년 전 스페인 검투사 모습 그대로인 내 소중한 친구’라고.
사진작가의 일이란 순간 포착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순간을 자신의 관점과 자신이 선택한 구성 요소 그리고 결국 그 찰나에 존재하는 빛의 세상을 자신의 취향으로 채우는 것이다. (...) 최고의 사진작가들은 다 안다. 다른 모든 요소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눈을 깨우고, 대화의 포문을 열어야 최종결과물인 이미지가 죽은 채로 목소리도 없이 나오지 않게 하는 열쇠임을.
두 개 이상의 파동이 한 곳에서 만날 때 진폭이 상쇄되기도 하지만 둘의 파동이 합해져 더욱 커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늘 희망한다. 나의 파동을 더욱 크게 키워줄 누군가, 혹은 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일, 순간을 만나기를. 책 후반부에 그레이그와 조시가 서로에 대해 털어놓은 대목을 보니 그들의 만남은 후자였던 것 같다. 그들의 위대한 작업이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조시와 나(그레이그 프레이저)는 <듄>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우리는 점차 글과 사진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글과 사진을 한데 모으니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 듯 보였다. (...) 사진과 글이 결합하면 각각의 부분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위대해질 수 있다는 걸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