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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의 바다 - 보이지 않는 디스토피아로 떠나는 여행
이언 어비나 지음, 박희원 옮김 / 아고라 / 2023년 9월
평점 :
수년간 책을 읽지 못했다.
그저 읽었던 책은 조국이 낸 책 몇 권과 전공 관련 서적 몇 권 뿐.
요즘 한달 한권 매일 읽기라는 독서 모임의 일원이 되어 매일 정해진 양을 읽는다.
지난 두 달 동안 이 책을 읽었는데, 부피감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내용이 가득했다.
바다는 숨이 멎도록 아름답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암담한 비인도적 행위가 난무하는 디스토피아적 공간이기도 하다. (15)
제목이 내용을 담고 있는데,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을 읽으면서 참담했던 기억이 몇 자 끄적이게 한다.
디스토피아. 라는 명명으로는 다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이 벽돌책에는 가득하다.
홈퍼르츠 의료선은 오스트리아 국기를 걸고 임신중절 수술을 공해상에서 한다. 여성을 땅 너머로, 법 너머로, 허가 너머로 데려가기 위해 바다를 활용하는 것이다.(200)
애들레이드라 불리는 홈퍼르츠의 배에 탔던 당시, 멕시코 앞바다에는 육지의 불행을 피해 바다로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법의 바다에서 유족 어두운 구석에 박힌 선박 수십 척에 올라 1년 이상 보냈더니 감정이 넝마가 된 상태 애들레이드호를 보면 일부 법이 우스울 정도로 자의적이라는 것을, 그런데도 많은 이들의 삶에 무척이나 실질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201)
멕시코 여성의 사례, 스무 살의 나이로 유산한 여성에게 간호사가 태아를 들이밀며, 입을 맞추세요, 당신이 이 애를 죽였어요. 남자친구네 가족은 태아를 위한 장례식을 열었고 멘데스는 반드시 참석할 것을 요구받았다. (208)
우리는 법을 어기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거예요.법의 허점을 찾는 것도 기교라며 환자의 사생활을 보호하는 동시에 대중적 논란을 촉발하는 것도 기교.(218)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홈퍼르츠 의료선의 이야기였다.
내가 무법의 바다에서 찾아낸 이야기 중에는 주인공이 무언가를 주장하고자 바다로 나간 이야기가 많았다. 천둥호는 부정한 방법으로 풍어를 노렸고, 애들레이드호의 여성들은 육지에서 누리기 어려운 권리를 찾아 바다로 갔고, 시랜드는 녹슨 영토를 챙겼고, 낚아채인 소피아호에는 약간의 재산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런 배에 오른 선원들은 단지 생계수단을 찾다가 큰손들 사이이 끼어버린 사람들이었다.(306)
선원 동료 여러분, 이 세상에서 돈 있는 악인은 통행증없이 자유롭게 여행하지만 가난한 선인은 모든 변경에서 가로막힙니다. - 모비 딕- (307)
송출업체를 통해 선원의 인신매매는 유별난 일이 아니라 예삿일에 가깝다는 사실을, 대개는 수상한 지하 범죄 세계의 수장이 아니라 기꺼이 한눈을 팔아주는 정부 기관 덕에 처벌받지 않고 운영되는 기업형 사업체가 조직한다는 사실.(322)
그리고 생계를 위해 배에 오른 수많은 동남아 노동자들. 그들에게 인권이라는 말은 애초에 해당되지 않았다.
언론이 죽은 나라에서, 이렇게 책으로나마 진정한 탐사 기자를 만나는 일은 행복했다.
소말리아를 이해하려면 이곳을 기능하는 국가로 보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말은 익히 들었는데, 이는 실제로 소말리아가 국가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이다.(574)
보도 활동에서 늘 사건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님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여행이었다. 때로는 사건이 우리를 선택한다.(585)
지구 표면이 2/3를 차지하는 바다. 그 곳은 국경선이 모호한 곳이다.
그곳에서 일어나는 숱한 불법과 무법의 법망 밖의 일들에 대하여 부지런히 발로 뛴 탐사보도의 진수.
올 가을, 이 책을 만나서 행복했다.
이런 책을 읽는 일은 나이 한 살 드는 것도 기쁘게 여길 수 있게 한다.
배에서 내려오는 오랜 격언 중에는 남위 40도 밑으로는 법이 없고, 50도 밑으로는 신이 없다는 말이 있다.(54)
이런 책들의 도움으로 더 법망이 미치는 곳이 많아 지길 기도한다.
하루는 이런 단상을 기록해 두었다.
바다에 핵발전소 오염수가 방출된 얼마 뒤였을 게다.
바다를 통해 날마다 배운다.
우주의 인드라 망은 삼라만상에 걸쳐 있다.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어 다 내 탓이고,
나의 생활을 돌아보게 만든다.
샥스핀이라는 음식의 식감을 기억하는 혀는 괜스레 죄스러워진다.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 인간의 욕망이라는 전차는 갈수록 지구를 황폐하게 만든다.
여름 기온이 50도를 넘어가고 태풍이 빈발하며 수재로 사람과 재산을 잃고, 산불이 계속 일어나고,
겨울이면 폭설과 한파가 몰아친다.
결국은 인재인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스템을 돌봐서 사고가 나기 전에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각자 도생의 무정부 국가에 사는 지금, 살아가는 일 자체가 두렵다.
바다에 뿌려진 핵오염수는 먹는 것조차 재앙으로 만들 거라는 무서운 상상은 맛있는 회를 대하기도 어렵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