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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코쿠를 걷다 - 시간도 쉬어 가는 길
최성현 지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의 저자로, 또 '여기에 사는 즐거움'의 야마오 산세이를 번역한 이로서 알게 되었던 최성현.
그가 이번엔 시코쿠의 순례길로 나를 끌었다.
일본에서 본섬(혼슈)이야 도쿄, 나고야, 오사카, 고베 등 유명한 곳이 많고, 홋카이도의 눈축제나 큐슈의 온천 여행도 유명하고 관광상품도 많다. 하우스 텐보스 같은 곳이야 워낙 부산서도 가까워 주말 여행도 가능할 정도이다. 그런데, 시코쿠에 대해서는 듣도보도 못한 길이었는데 이번에 새로 눈을 틔워준 책이 이 책이다.
머나먼 길 산티아고 가는 길을 늘 마음 속에나 품고 살지 실제로는 가까운 산길조차 선뜻 나서게 되지 않는 게으름뱅이에게,
이런 책은 언감생심, 화중지병이기 쉽지만, 지치고 퍼진 마음에 이런 책을 만나는 일은, 작은 계획을 하나 세우게 하는 일이 되어 활력을 준다.
사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간단하게 돈 3백에 보름 정도 투자하면 걷고 올 수 있다. 그 순례길을 다 갈 수는 없는 것이니 만큼 용기를 내면 된다. 그러나... 스페인처럼 날아가는 데 하루를 투자해야 하는 일은, 인문계 고교에서 맨날 보충에 매달리는 존재에겐 그림의 떡이다.
마음을 내면 시간이야 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잘 짜여진 기계같은 설계도 속의 톱니바퀴 하나로 굴러가는 내 생활을 빼내는 일은 쉽지 않다. 내 나이가 그걸 쉽지 않다고 생각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고...
시코쿠를 걷는 최성현의 마음을 따라 읽으면서 마음을 비우기도 하고, 바람에 마음을 내어 말리기도 했다.
내게는 햇살이
비치지 않는다.
나는 삼나무나
소나무처럼
키가 크고 멋있는
몸을 가질 수 없다.
그 대신
어떤 바람이 불어도
넘어지는 일이 없다.
나는 처음부터
넘어질 높이를
갖고 있지 않으니. (아이다 미츠오, 이끼)
자연을 눈으로 담고 다니기만 하는 순례길보다는 이런 시를 만나는 길이야 말로 얼마나 풍부한가.
후쿠오카 마사노부의 집을 방문한 이야기는 더욱 마음을 울린다.
야채와 곡식과 풀의 공생
옷 한 벌에 그릇 한 벌의 무위자연의 삶
그 뒤는 먹고 자고 먹고 자며
아이 만들고. (신과 자연과 인간 중)
고인의 낡은 오두막을 기념관으로 만들려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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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그냥 무너져가게 둬라. 그것이 가장 좋다. 오두막이 세 채나 있지만 모두 흙과 나무로만 지은 것이라서 곧 땅으로 돌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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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말했다는 후쿠오카.
작가를 따라 걷고 자연을 만끽하며
시간이 나는대로 하이쿠 한 소절 읽고, 낮잠을 자고... 그런 일요일 하루가 행복했다.
힘든 순례길에 땀을 흘릴 때,
지금은 이 길밖에 없다. 뚫고 나가는 수밖에.
힘내세요 .한 발 한 발이 중요.
서두르지 마세요. 나는 나에 맞는 속도로.
이런 한 구절의 표찰을 만날 수 있는 길. 가고 싶을 수밖에...
무재 칠시란 말이 있다.
가진 것 없어도, 맨몸으로도 남에게 줄 수 있는 일곱 가지 보물.
방, 자리, 얼굴, 입, 몸, 귀, 마음... 작가는 '눈'인데 '귀'로 착각했단다.
그러면 어떠랴. 무재 팔시를 얻는 순간이다.
방을 내어주고, 자리를 주고, 얼굴을 좋게 주고, 좋은 말을 주고, 몸을 빌려 주고, 귀로 들어 주고, 마음을 주고, 눈으로 웃어주는... 무재 팔시.
기무라라는 여성의 밴조에 얽힌 이야기를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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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이여 높이 오르려 하지 말라. 아무리 높은 집을 지어도 하늘에서 보면 늘어난 것은 하나도 없다. 단 1그램도.
그대가 높은 집을 지을 때 그만큼 어딘가는 낮아지고 누군가는 헐벗는다.
그러므로 그대들이여 노래하고 춤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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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이 등장한다. 기무라를 미치게 만든 한 마디.
조르바가 이 뒤에 등장한 것은 당연지사다.
씨앗은 모든 식물의 씨앗은 합장을 하고 세상에 나옵니다.
이런 스님의 말이 가슴을 떠나지 않던 여행길...
마음 한 켠에 초록빛 그늘 가득한 갈 길을 하나 더 만들었다.
----------- 오타 한 칸
31쪽. 평형에서 금메달을... '평영'이 맞다. 개구리 헤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