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게서 온 편지 - 제22회 전태일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작
하명희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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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자신에게 덤비는 것들에게 던져버리려고 넣어두었던 돌멩이가 손에 잡혔다.

하도 만져서 모난 곳 없기 반질거렸고 따뜻했다.

돌멩이는 만지면 만질수록 따뜻해져서 나중에는 던지고 싶은 마음을 녹이는 힘이 있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벽에 냅다 던져버리라는 아저씨의 목소리는 말랑말랑한 찰흙 같았다.

못난 사람은 못난대로 살고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산다.(24)

 

그런 시대였다.

분노와 울분으로 돌멩이를 어디엔가 던지고 싶어 가슴 속 한가득 품고 살던 시대.

그런 시대에 난 대학생이었고, 바로 교사가 되었다.

인구가 늘던 시절이어서 임용고사는 없었지만, 월급은 과외 2개하던 때보다 적었다.

대학생 때는 고등학생 캠프에도 참여해 보았고, 발령받던 해 바로 전교조가 생겼다.

군대를 마치고 복직했을 때, 날마다 사람들이 맞아죽고 분신했고... 그랬다.

그 시절 이야기여서,

너무도 생생하게 명동 거리가,

포장마차를 철거한다고 저항하며 죽어간 이야기를 읽은 시간들이, 고스란히 되살아 났다.

그 와중에 다시 탄핵이 되고, 마지막 촛불집회까지 열렸다.

 

바위가 사라졌을 뿐인데,

바위는 바위 아닌 것들을 모두 바꾸어 놓았다.(8)

 

웅덩이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다.

서서히 조용히 참고 참으며,

스스로를 파먹으며, 빈 우물을 만들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

그 속을 보여준 것이다.(159)

 

세상은 한 순간에 바뀌는 것처럼 보이지만,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바탕에서 조용히 흔드는 울음들이 있게 마련이다.

참 서정적인 부분도 드러나고,

여고생의 시점으로 그리는 세상 이야기도 가슴이 조마조마하게 이어진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비상식이 상식으로 통하는 것 같아요.

저 무덤들을 볼 때마다 최소한의 상식이 통하는 시대가 이렇게 어려운건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193)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났건만, 아직 세상은 그대로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제 바위를 움직이게 할 힘이 조금 생긴 것처럼 보인다.

나무에게는 보이는 것 만큼의 뿌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도 있는 법이니.

이제 <비정상의 정상화>, <혼이 비정상> 같은 시대는 조금 흘려 보내야 하리라.

 

사랑을 종류별로 묶고 일반화하면 싸구려 도식이 되어버리듯

두려움 또한 개별적인 것 같았다.

다들 각자 책임져야 할 두려움의 질은 다 다를 수밖에 없다.(205)

 

이 글의 작가도 지난 겨울, 열심히 광장으로 나갔으리라.

그러면서, 고등학생의 두려움보다는 훨씬 적은 두려움을 안고 나섰으리라.

그만큼 세상이 진보되었다고 믿었으리라.

 

그 시절은 두려운 시절이었다.

김기춘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시절. 분신 정국에 유서 대필 사건을 날조한 짐승은 이제 수인이 되었다.

이제 검버섯 핀 노인네의 일생은 참 공포정치의 그늘에서 자라난 화려한 버섯같은 것이었다.

 

도은에게 두려운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데도 누군가 따라오고 있었고,

누군가 자신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것은 실체가 보이지 않는 자기 검열이었다.

무엇을 하든 주변을 의식해야만 했던 일상의 병, 가난한 병.(207)

 

그런 시대를 살았다.

가난해서 두려웠고, 싸우다 죽거나 감옥에 갈까 두려웠고,

경찰서에 가서 맞는 날이면 구속될까 두려웠다.

군대도 두려웠고, 빨간 줄도 두려웠다.

 

강경대가 백골단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었을 때,

박승희가 분신했을 때,

김영균과 첸세용이, 김기설이, 김철수가 분신하기 전에,

김귀정이 차가운 땅에 숨을 박기 전에

딱 정원식만큼만 언론이 보도를 해주었다면,

김지하가 생명선언을 하기 전에,

그 안타까운 죽음들에 돌을 던지기 전에,

한 번만 더 아파하고 그들의 생명을 존중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268)

 

한 사람 한 사람을 호명하며, 아프게 썼을 그 91년의 봄...

김영삼이 비굴하게 민자당을 만들며 권력의 개가 되던 봄이 생각나며 마음이 아려왔다.

 

패륜아란 단어를 너무 많이 듣다 보니

패륜아는  방랑자처럼 고독하고 자유로운 떠돌이로 느껴지기도 했다.(276)

 

슬픈 물고기와 나무,

그리고 '안녕?'

 

반가운 만남의 인사이기도 하고,

영원한 헤어짐의 인사이기도 한, 안녕,은

그 처절했던 불행의 시간들과의 작별과,

환한 세상을 기대하는 기대를 모두 담고 있었다.

 

그 시절에 퇴학을 당하고, 자퇴를 해서 검정고시를 보고 노동현장으로 들어가고 햇던 청춘들이

이제 탄핵의 앞마당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 가기를...

그 시절에 해직 교사들이 떡볶이 가게를 하고, 사진관을 열고, 과외 수업을 하면서 밥벌이를 하던

불행하던 시절이 이제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기를...

 

어두운 날들이여,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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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18-08-12 0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글샘님!

글에 쓰신 것처럼 박근혜 탄핵 인용이 있던 날
헌재 앞에서 모르는 사람과 부등켜 안고 울었던 것이 1년 전이네요.
소설을 쓴 사람, 그날 그곳에 있었다고 말씀 드리고 싶은 리뷰여서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저는 예전에 서재에서 간간 소식 올렸던 돌바람이랍니다.
이 책의 리뷰를 보고 따라 들어와 소식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