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일어나보니 10시였다. 아구야, 스타라이트 조식과 하나비 조식이 날라갔구나. 좀 깨우지. 아버지 모시고 조식 11시까지 하는 <락앤롤>로 갔다. 삼부자 다 생선 셋트 시키다. 늦은 아침 먹고 다시 수영장. 점심 마감 시간인 두 시를 10분 앞두고 하나비로 몰려갔으나, 카운터 직원은 수건을 몸에 안 둘렀다며 수건 가져오란다. (, 밥을 먹지 말란 거지?) 착한 동생은 묻고 따지지도 않고 수건 가지러 가고, 그 사이에 착한 남자 직원이 오더니 들여 보내줬다. 곧 정리 할거니 음식을 미리 가져다 놓으라고 해서, 10분 동안 음식만 실어 나르고, 곧 문 닫는다고 빨리 먹으라고 해서 폭풍 흡입. , 언제쯤 인간답게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어쨌든 음식들을 목구멍에 꾸역꾸역 쳐 넣고, 또 다시 수영장에서 물놀이. 오늘은 동생이 아이들과 놀아주길래 나는 수영장 썬베드에 드러누워 괌 맥주를 마시며 마스모토 세이초의 <모래그릇>을 집어 들었다. 얼마 읽지도 못해 온 가족이 우루루 바다 쪽으로 나갔다. 가족 끼리 카누를 타고 난 이후 삼부자 끼리 카누를 타려 했다. 불과 노를 두 번 저었을까. 카누가 전복되고 말았다. 모래 사장 코 앞에서 삼부자 모두 바다에 빠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형은 밖에서 미는 게 어떨까?”

 

그래서 동생과 아버지만 카누를 타고

나는 카누를 밀었다.

 

이후 아들과 수영장에 설치된 네모 발판를 딛고 달리는 수중 달리기를 했다. 첫 날 세발 짝 가서 넘어졌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틀째니 좀 나아지겠지. 웬걸. 또 세발 짝 가서 물에 풍덩. 수십 번 했건만 최고 기록은 일곱 칸. 이게 뭐라고 잘하고 싶은데 왜 몸이 안 따라주는 걸까. 이틀 동안 관찰해봤지만 나보다 못하는 사람은 결국 단 한 사람도 발견하지 못했다. , 이 저주받은 몸뚱아리여!

 

오늘 저녁은 퍼시픽 판타지 디너 쇼. 입구를 못 찾아 로비까지 가서 다시 되돌아 나왔다. 조금 늦게 간 탓인지 식사가 놓여 있는 곳과 가장 먼 좌석으로 안내 받았다. 음식을 가지러 갔더니, 허걱. 아니 뭘 먹으라는 거지? 먹을 건 없고, 그나마 있는 음식도 맛은 없고, 캄캄해서 눈에 뵈는 건 없고, 무슨 음악을 틀어놨는지 정신 사나울 정도로 시끄럽고......드디어 공연 시작......여성 무희들의 허리 놀림이 감탄스럽긴 하였으나......음식은 아예 싹 다 치워버려 온 가족이 배를 쫄쫄 굶고, 아들 놈은 아예 식탁에 엎어져 자기까지.

 

아버지는 화가 나셨는지 그냥 가버리시고, 결국 동생에게 키를 받는 사이에 아버지를 잊어버려 사방으로 찾아 다니고......

 

늦게 일어난 탓에 잠이 안 올 듯 하여 등산복을 입고 워킹에 나섰다. 정말 캄캄하구나. 전 세계에서 한밤에도 가장 환한 나라는 한국이 아닐까? 밤에도 밝은 게 좋긴 하지만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그래도 되는 건지?

 

어두컴컴한 도로 옆 길을 걷다가 공원이 보여 들어갔다. 듬성듬성 주차된 차들이 보였다. 한 자동차 트렁크 쪽에 웬 현지인 남성 둘이 보인다. 둘 중 한 명이 손짓으로 나를 부르며 오라고 한다. 그제서야 이 공원이 어떤 공원인지 감을 잡았다.

 

, 게이들의 공원이구나

 

미국 소설이나 최근에 읽었던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온 더 무브>에서 읽었던.....

두말할 것도 없이 도망쳐 나왔다.

 

너희들에게 몸을 주기 위해 괌에 온 게 아니라구!’

 

 

주변에 걸을 만한 곳이 없어 pic를 두 바퀴 돌았더니 그제야 땀이 났다. 돌고 보니 정말 코딱지만 하다. 이렇게 코딱지만 하게 지워놓고 잘도 하루에 수십만 달러를 긁어 모으는구나!

 

샤워 후에도 잠이 안 와 로비로 나와 쿤데라의 <농담>을 읽었다. <농담>은 쿤데라의 데뷔작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면 쿤데라는 가벼움에서 무거움으로 넘어간 것일까. <농담>에서 쿤데라는 가벼운 농담조차 허용치 않는 사회주의의 진지함(무거움)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그런 그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선 가벼움보다는 차라리 무거움이 낫다고 말하는 것은 아닐는지.

 

루드빅의 농담을 포용하지 못하는 사회도 무겁고 루드빅이 사랑에 빠진 루치에는 얼마나 무거운가. 목숨을 걸고 탈영한 루드빅 앞에서 루치에는 끝까지 정조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쓰고 나서 <농담>을 완독했다. 나는 루치에를 오해했다.) 읽다보니 기시감을 느끼는 문장들을 만난다. 이 문장을 어디서 보았더라.

 

그렇다. 그토록 나를 매혹시켰던 것은 루치에의 그 특이한 느림때문이었다. 서둘러 돌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란 없다고, 무언가를 향해 초조하게 손을 내미는 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체념한 마음을 발산하는 그 느림 때문이었을 거다. 그랬다. 그 아가씨가 매표소로 가서 동전을 꺼내고 표를 사고 관람실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마당으로 나오는 동안 계속 나로 하여금 그녀로부터 눈을 떼지 못하게 했던 것은 아마도 정말로 그 우수에 가득 찬 느림 때문이었을 거다.


(중략) 첫눈에 반한다는 말들을 한다. 나는 사랑이 자기 자신의 전설을 만들어내거나 그 시작을 나중에 신비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지금 그것이 그렇게 돌연히 불붙은 사랑이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분명 어떤 예시 같은 것이 있었다. 루치에의 본질, 나는 그것을 한순간에 깨달았다고 느꼈고 보았던 것이다. 마치 누가 밝혀진 진리를 가져와 보여주듯이, 루치에가 가져와 드러내 보인 것은 바로 그녀 자신이었다. (P98)

 

정혜윤 PD<침대와 책>에서 발췌한 문장이었다. 책을 읽으며 나 역시 루드빅처럼 나의 운명을 다시금 움직이게 만들고 싶었다.

 

이제부터 내게 운명지어진 사랑의 지평이 어떤 것인지 그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주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자유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결정되었다는 사실, 나의 한계들, 내가 받은 선고를 나타내주는 것이었다. 그러자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이 처참한 미래의 모습, 이 운명이 두려웠다. 내 영혼이 두려움으로 웅크리며 뒷걸음질치는 것이 느껴졌고, 내 영혼이 사방으로 포위당한 채 어느 곳으로도 도망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공포에 떨었다. (94)

 

사랑 때문은 아니지만 이 문장을 읽으면서

나 또한..... 공포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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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6-09-21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저께 노려보았던 책이네요 ㅎㅎㅎ
저는 카누 탔었는데 ㅎㅎ
암튼 잼있게 지내다 오세요~

시이소오 2016-09-21 13:14   좋아요 0 | URL
저 지내다 왔어요 ㅋ ^^

초딩 2016-09-21 13:49   좋아요 0 | URL
아 아 아
환영합니다 귀국을 ㅎㅎㅎㅎㅎ

시이소오 2016-09-21 13:51   좋아요 0 | URL
귀국을 환영해 주시다뉘. 감사합니다 초딩님 ^^

다락방 2016-09-21 13: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농담]은 제가 정말 사랑하는 소설입니다. 특히나 결말은 압권이지요.

!!!!!!!!!!!!!!!!!!!!!!!!!!!!!!!

이렇게 만들잖아요... ㅠㅠ

시이소오 2016-09-21 13:41   좋아요 0 | URL
ㅋ ㅋ ㅋ ㅋ ㅋ ㅋ ㅋ
동감입니다. 이런 결말을 쿤데라는 보후밀 흐라발로부터 배웠다는데 손가락 하나 걸겠습니다.

(너무시끄러운 고독) 강추합니다^^

다락방 2016-09-21 13:47   좋아요 0 | URL
아니, 이 분이!!

저는 올해안에 더이상 책을 한 권도 사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버럭!!

시이소오 2016-09-21 13:49   좋아요 1 | URL
ㅋ ㅋ ㅋ ㅋ ㅋ ㅋ ㅋ
빌려 읽으시면 돼용 ㅋ

시이소오 2016-09-21 14:00   좋아요 0 | URL
저는 전완근 단련을
ㆍ ㆍ쿨럭

다락방 2016-09-21 14:0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Dora 2016-09-2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조식...

시이소오 2016-09-21 16:51   좋아요 0 | URL
조식 놓ㅊㅕ 억울하네요 ㅋ

cyrus 2016-09-21 17: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낯선 곳, 특히 어두컴컴할 때 혼자 있으면 무섭겠어요. ^^;;

시이소오 2016-09-21 17:49   좋아요 0 | URL
저는 뭐 가진게 없어서인지 무섭지 않은데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여성들이 밤에 맘껏 돌아다닐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네요 ^^^

2016-09-22 01: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물놀이장에서 마스모토 세이초라니. 괜히 저주받은 몸이 아닌 것이었다 이해하고 맙니다 하핫 근데.. 제 pic의 기억과는 너무 다른 일정에 시스템이어서 이젠 pic이 무서워졌어요 ㅋ

시이소오 2016-09-22 01:23   좋아요 0 | URL
저희는 너무 짜여진 일정없이 놀아서요. 무서워하실것 까지야
ㅎ ㅎ
 
논어 동양고전 슬기바다 1
공자 지음, 김형찬 옮김 / 홍익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슬기바다 논어는 기존 논어를 짜깁기한 책입니다.
저도 싼맛에 샀습니다만 싼게 비지떡이라고 부디 다른 분들은 사기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저는 이 출판사 책은 두번다시 안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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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16-09-20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속버스 휴게소에서 살까 고민했는데 안 사가를 잘 했네요!ㅎ

시이소오 2016-09-20 22:48   좋아요 0 | URL
아, 고속버스 휴게소에서도 파는 군요.

저 책, 한 때 50%세일 하는 통에 대량으로 풀렸나 봅니다.

<논어> 좋은 책 많은데 싼 맛에 홍익출판사 책을 많이들 사셨드라구요.

다른 번역본으로 다시 읽었어요. ㅋ ^^

초란공 2016-09-20 2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많아 보시는 시이소오님도 실수를 하실때가?^^; 최근에 맛집이라고 검색해서 가본 식당에 완전히 실망을 하고는 `절대 피해야할 식당` 블로그를 운영할까하는 생각까지 해봤습니다! 책도 그런 블로그가 필요할듯 하지요?

시이소오 2016-09-20 23:02   좋아요 1 | URL
오, 굿 아이디어입니다. 사악한 책들도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죠 ㅎㅎ

2016-09-20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표지는 그럴듯하고만요. 속기 쉽겠어요. 조심조심~~ ^^

시이소오 2016-09-20 23:40   좋아요 0 | URL
ㅋ ㅋ 힌님 조심조심~~^^

나이니 2016-09-21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익출판사 논어 저도 샀는뎅요, 이유는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 이지성씨가 홍익출판사 논어를 추천하고 있거든요,
동양고전에 대해 문외한인 저로서는 저자의 추천을 믿고 샀는데 좋은지 나쁜지 비교조차 못하겠네요ㅠ
암튼 덕분에 다른 출판사의 다양한 논어를 접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됐네요
고맙습니다.

시이소오 2016-09-22 01:20   좋아요 0 | URL
아. 이지성. 나이니님은 어떠실지 몰라도 저는 이지성을 대표적인 인문학 사기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지성이라면 출판사에서 돈을 받고 그렇게 썼을수도 있겄네요.

뽈쥐의 독서일기 2016-09-23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 이름에 너무나 걸맞지 않은 행태네요. 에잉~ 혹시라도 논어 읽을 일이 있으면 절대 안 사겠어요

시이소오 2016-09-23 18:06   좋아요 0 | URL
논어 좋은 번역본 많이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홍익이란 이름이 걸맞지 않는 출판사네요 ^^

samadhi(眞我) 2016-10-18 14: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거 세트로 장만했는데 ㅠㅠ 여태 안 읽었지만요.

시이소오 2016-10-18 15:24   좋아요 0 | URL
저도 셋트로 샀어요ㅠㅠ

samadhi(眞我) 2016-10-18 15:26   좋아요 0 | URL
게다가 만원 더 싸게 살 수 있었던 걸 잠시 정신을 놓는 바람에(?) 비싸게 주고 샀어요. 이보다 원통한 일이...

시이소오 2016-10-18 15:28   좋아요 0 | URL
저는 저 셋트 산거 자체가 억울해요^^;

samadhi(眞我) 2016-10-18 15:30   좋아요 0 | URL
저도요 ㅠㅠㅠㅠ 제가 가진 세트는 태백산맥이랑 아리랑이랑 객주였는데 그래 고전 한번 공부하지뭐 하고서 큰 맘 먹은게 중대 실수네요. 차라리 셜록홈즈 시리즈를 살 것을...

시이소오 2016-10-18 15:46   좋아요 0 | URL
저는 이사오면서 말씀하신 셋트를 비롯, 대하 소설들 다 팔고 왔어욤
흑 ^^;

samadhi(眞我) 2016-10-18 15:48   좋아요 0 | URL
저는 요 세트는 팔더라도(팔수나 있다면 ㅜㅜ) 나머지는 못 팔아요. 요놈의 책욕심.

시이소오 2016-10-18 15:49   좋아요 0 | URL
저도 나중에 재구매 ㅎㅏ고 시포요 ^^

samadhi(眞我) 2016-10-18 15:50   좋아요 0 | URL
눈물나서 어쩐대요. 아까운 거.

시이소오 2016-10-18 19:12   좋아요 0 | URL
책보다는 쌀을 사야해서 ㅋ

samadhi(眞我) 2016-10-18 19:14   좋아요 0 | URL
살 때와 달라 팔아봐야 쌀 값도 안 나오는 거 아닌가요?

시이소오 2016-10-18 19:17   좋아요 0 | URL
억울해서 눈물 찔끔 나죠 ㅎㅎ
 

추석 연휴, 착한 동생을 둔 덕에 백수인 나와 백수인 나의 아내, 백수인 나의 아들도 덩달아 괌 pic 여행을 가게 됐다. 동생 가족과 우리 가족, 아버지를 대동한 여행인지라 얼추 계산해보아도 대략 천 만원짜리 여행인 셈.

 

착한 동생은 SKY 회원이었기에 30분 만에 출국 수속을 마쳤고, (대한항공을 타고 싶진 않았으나 나에겐 결정권이 없었다) 곧바로 허브 라운지로 직행했다. 그동안 왜 라운지 이용을 안 했을까? 음식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맛있었고, 결정적으로 와인과 생맥주가 무료였다.

 

맥주 먹고 배가 불러오자 레드 와인으로 바꿨다. 그래도 배가 불러오자 보드카에 쥬스를 혼합해 들이켰다. 나는 어쩜 이리 똑똑한 것일까? 기지 작렬.

 

제수씨까지 꼬드겨 담배 세 보루를 샀다. 66달러. 이런 악마의 숫자가! (담배를 끊더라도 일단 삼십 갑 피고 생각해 보자!) 답답하다는 아버지를 대동하고 면세점 한쪽 끝까지 가서 야도하고 라운지로 돌아왔다. (, 뭐 그닥 크지 않군)

 

라운지에서 무려 네 시간을 버티다 나왔다. 7시 비행기임에도 사람이 몰릴까 무서워 우리는 2시에 공항에 도착했기에. 우리 테이블을 보고 한숨짓던 여직원이 떠오른다. (미안해요. 다음엔 꾹 참고 안 올게요.)

 

수천 번 비행한 기장이나 스튜어디스도 사고로 죽는 일이 드문데 비행기 사고로 죽는 사람들은 얼마나 재수가 없는 걸까? 아직까지 살아있는 스튜어디스들이 운이 좋은 걸까?

 

스튜어디스에게 땅콩 까서 주세요하고 농담하려다 꾹 참았다.

( 땅콩으로 맞을 일 있나.)

 

버드를 세 캔 마시며 쿤데라의 <농담>을 읽었더니 어느새 괌이었다.



 

괌 입국 게이트에서 줄서다 3~4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며 제수씨는 내게 침투조를 제안했다. , 비행기가 멈추자마자 뛰어야 한다는 것. 비행기의 도착을 알리는 소리가 나는 동시에 나는 우사인 볼트처럼 뛰었으나, 고작 5미터 갔으려나. 짐을 내리는 승객들로 인해 금세 가로막혔다.

 

중간에 공항을 가로지른 보람이 있었던지, PIC에 가장 먼저 도착.

PIC에 도착해보니, 우선 예상보다 더웠다. (새벽 2신데 이렇게 더울 줄이야! , 한동안 무더위에 지치다 겨우 좀 살만 해졌는데 나는 왜 또 다시 괌에 온 것일까?)

 

새벽 4시쯤 잠들었는데 8시쯤 일어났다. 동생과 나는 액티비티를 예약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돌아 다녔다. 양궁 코너에서 줄을 섰는데 다른 한국인들 몇몇이 이이서 줄을 섰다. (아니, 다들 왜 괌까지 와서 활을 쏘기 위해 아침 댓바람부터 줄을 서는 걸까? 한국인에겐 활을 쏘아야만 하는 어떤 유전자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32년 동안 한국 여자 양궁은 금메달을 내주지 않는 걸까?)

 

부라부랴 스타라이트 조식을 먹었다. 어느 책에서 읽었더라.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는데......

 

먹기 위해 줄을 서는 만큼 비천한 짓은 없다’.

 

, 줄을 서고 말다니. 게다가 먹을 것도 없고, 맛도 없고.

 

기껏 예약까지 했으나 아이들이 기절한 듯 깨어나질 않아 다시 양궁 예약을 취소하러 갔다. 예약한 게 아까워 가족대표로 나만 참여했다. (, 또 다시 매몰비용의 오류)

의외로 어려웠다. 10발 쏘고 나서야 과녁에 겨우 1발 맞췄다.

(.....괌까지 와서 나는 왜 활을 쏘고 있는 걸까? 이거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데?!)

 

나이 어린 클럽 메이트 카일은 해맑게 피니쉬?’라고 물어본다. 14네발이 쐈는데 더 쏘라구? 손가락 아파 죽겄구만. ‘앱솔루트 피니쉬.

 

두 시간 정도 수영장에서 놀다 다시 중식. 이번엔 하나비. 스타라이트 조식보단 낫다.

회가 있으니. 맥주도 뷔페.

 

동생은 아버지 인슐린을 사기 위해 병원에 가고 (그래서 역시나 예약한 스노클링을 취소했다.) 나는 조카랑 주로 놀았다. 조카는 꽃게 모양의 튜브를 어깨에 걸치고 양손을 집게 마냥 오므렸다 펼치며 나를 쫓았다. 30분 정도 도망다녔을까. 조카는 양손을 집게 모양으로 펼치며 왕 꽃게로 업그레이 하더니 필사적으로 나를 쫓았다. 두 시간 동안이나. 5세 아이들은 지치지 않는 걸까? 그렇게 왕 꽂게에게 쫓기다 다시 석식.

선셋 바비큐.

 

밀러 맥주 한 병에 10달러. (VAT 별도) 세 병 마셨다. 뭔가 좀 바가지 씌우는 거 같아 영 기분이 불편하다. 골드 카드 비용 골드 카드대로 내고 여기서 또 150불을 지불해야 하다니.

그나마 가장 맛있던 건 닭도 아니요 돼지도 아니요 소도 아니요 새우도 아니요

파인애플이었거늘.

 

성질나 새우를 있는 데로 가져와 다 구웠다.

(까서 가져갔다. 나중에 보니 벌레가 나왔다고?)

 

렌트한 차(마쯔다)를 타고, 괌 시내에 가서 제수씨가 좋아라한다는 벨기에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에서 파는 초콜릿 음료를 마셨다. , 달달하구나.

 

이후 K마트 가서 그토록 맛있다는바나나과자를 10여 개 사왔다.

 

숙소로 돌아와 동생과 (GUAM)괌 맥주를 마시고 잠 들었다.

 

오늘은 괌 PIC 골드 카드에 대해 따져보자. 룸 두 개에 골드 카드 포함 총 백 만원. 3박 동안 룸 하나는 4박으로 이용했기에 숙박비로만 350만원을 썼다. (성인 5, 소아 2) (물론 나는 계산만 한 거다. 결제는 동생이 했다.)

 

남자들은 총 8, 여자와 아이들은 총 9. 24+36 총 예순 번의 식사라. 이 중에 서른 번은 먹었을라나. 늦게 가는 바람에, 혹은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추느라, 혹은 퍼시픽 판타지 디너쇼 같은 경우 아예 음식도 없고 보이지도 않아,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흡사 짐승처럼 먹었다. 레스토랑이 제시한 시간에 맞춰 밥을 먹는다는 게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겐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아침 먹고 돈 아까워 겨우 두 시간 지났는데 점심 먹고, 점심 먹고 돈 아까워 겨우 세 시간 지나 저녁 먹고....... 이게 짐승이지 인간인가? 늦게 가는 바람에 20분 만에 먹어야 한다고 해서 허겁지겁 꾸역꾸역 음식을 입으로 쳐 넣고.....이게 짐승이지 인간인가?

 

퍼시픽 판타지 디너쇼에 갔더니 뷔페라더만 음식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만 있고, 가져와 먹으려했더니 온통 깜깜해 내가 먹는 게 닭인지, 돼지인지, 소인지도 모른 채 꾸역꾸역 처먹었으니 (입안에 쑤셔 넣고 나서야 어라 닭이네’, ‘어라 소네’ ‘어라, 닭과 돼지를 같이 처먹고 있네’) ......이게 짐승이지 인간이냐고?!

 

괌에서 먹은 식사 중 가장 인간답게 먹은 건 사돈어른이 추천한 철판 요리집 조이너스였다.

PIC에서 차타고 5분 정도 걸린다. 7, 140달러 정도 나왔다. 골드카드 신청 안 하고 외부에서 식사를 한다면 아마도 골드 카드를 사용했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금액이거나 덜 들지 않을까. 참고로 PIC에서 신호등만 건너면 식당들이 꽤 있다. (토니 로마스, 쇼군, 정체불명의 치킨집 등)





 

PIC 골드 카드의 장점이라면 물놀이 도중에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건데, 단지 그 이유 때문에 1박당 50만원, 2개에 100만원을 지불해야 하다니, 왠지 사기 당한 느낌이 든다. 나는 앞으로 두 번 다시 괌에 가진 않을테다. (자세한 이유는 다음 글에 밝히겠지만, 한국인은 호구다) 만일 정신 줄을 놓는 바람에 가게 되더라도 이건희 같은 갑부가 되지 않는 이상 두 번 다시 골드카드를 이용하진 않겠다. 하긴 이건희 같은 갑부가 된다면 괌 PIC에 갈 일이 있을까. 하여 갑부가 되건 거지가 되건 괌에 두 번 다시 갈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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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20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0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0 15: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9-20 16: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이니 2016-09-20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괌에 못 가 본 1인으로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참고할게요~

시이소오 2016-09-20 15:24   좋아요 0 | URL
괌 말고 다른 곳에 가시는게 ㅋ .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이네요 ^^

깊이에의강요 2016-09-20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의 관광기(ㅋ)
여행기(?) 는
뭔가 빌 브라이슨 스러운데요ㅋㅋ
투덜거리는게 귀여우세요^^
읽는 동안 몇번을 웃었어요ㅎ

시이소오 2016-09-20 15:25   좋아요 0 | URL
아재의 불평불만을 귀엽게 봐주시다뉘

관대하신 강요님. ㅎㅎ

이 기회에 빌 브라이슨 여행기를 좀 읽어봐야 겠네요. ^^


깊이에의강요 2016-09-20 15: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예의가 없었네요 ㅋ
웃다보니 귀엽다는 말이 튀어 나와서 그만...
귀여우세요로 수정했습니다ㅋㅋ

시이소오 2016-09-20 15:3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는걸요.

관대하실 뿐 아니라 섬세한 강요님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9-20 1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시이소오 님은 기지남이시십니다... 독한 술을 쥬스에 타서 마시는 센스...
저도 먹기 위해서 줄서는 짓은 못하겠더군요.

그러다 보니 만날 맛없는 식당에 가게 되는데... 다행히도 저의 혀는 맛을 잘 못 느끼는 체질이라...그냥 그려려니 합니다..

시이소오 2016-09-20 16:16   좋아요 0 | URL
보드카 오렌지주스랑 토닉이랑 혼합해 마시면 맛있어요.

친구가 바에가면 조제 잘 하는데 저는 대충 마십니다. ㅋ

곰발님
혀가 저랑 비슷 하신듯 ㅋㅋ

cyrus 2016-09-20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좋은 곳에 갔다 오셨군요. 스튜어디스나 비행기 항공사들은 우리보다 튼튼한 강심장인 것 같아요. 비행기 사고가 언제 일어날지 모를 일이잖아요. 나 같은 사람은 불안해서 비행기 못 타는데.. ㅋㅋㅋㅋ 일 그만둘 때까지 단 한 번도 사소한 사고를 겪어보지 않은 스튜어디스, 항공사가 몇 명 있을지 궁금해요.

시이소오 2016-09-20 17:41   좋아요 0 | URL
통계를 따져보면 자동차 보다는 안전하다고 하네요. 비행기 사고보다 잦은 방사선 노출이 더 문제라네요.

대한항공 직원들은 갑질하는 손님들 뿐 아니라 갑질하는 한진 오너들 때문에 이중의 고통을 당하는게 더 문제겠죠~~

비연 2016-09-20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괌 안 가봤는데 시이소오님 글 보니 다녀온 기분 들어 안가도 될듯요 ㅎㅎㅎ

시이소오 2016-09-20 18:53   좋아요 0 | URL
비연님은 유럽으로 가시죠 ^^

나뭇잎처럼 2016-09-20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 브라이슨에 추가 한 표요! ㅎㅎ 근데 짐승 비유는 좀 심하셨어요. 짐승은 배부르면 안 먹거든요. 배불러도 먹는 인간을 짐승에 비유하시다니. 듣는 짐승 자존심 상하게... ㅋㅋ

시이소오 2016-09-20 21:01   좋아요 0 | URL
ㅋ 그러네요. 짐승에 대한 모욕이네요. 잡식동물로 정정해야겠습니다 ㅋ^^

2016-09-20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pic이 아직 성업 중이군요. 싸이판에 가봤는데 저 역시 양궁도 하는 짐승으로 살았지만(ㅋㅋ) 남은 기억은 아우 좋아~~에요. 다시 가고 싶을 정도인데 헤헤

시이소오 2016-09-20 23:47   좋아요 0 | URL
그러시군요. 부지런한분은 pic가 맞을듯 합니다. 저처럼 게으른 족속은 일본 료칸이 딱이죠 ㅋ
 


 

16.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 미틱(프랑스 인터넷 만남 사이트) 의 광고

 

24. 극단성을 드러내는 또 다른 관점은 사랑에서 주관적 경험의 최상의 단계들 가운데 하나를 고안해내는 철학자들인데, 아마 선생님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에를 들어 쇠렌 키르케고르 같은 철학자를 꼽르 수 있겠지요.

 

심미적 단계 사랑의 경험은 헛된 유혹과 반복을 경험하는 것, 모차르트의 동 쥐앙.

윤리적 단계 불변을 향하는 영원한 맹세.

종교적 단계 -

 

자아가 사랑 고유의 투명성을 거쳐서 자아를 상정한 그 힘 안으로 빠져들게 될 때”, 사랑의 궁극적인 변모 가능성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경험 덕분에 자아가 제 신성한 기원에 뿌리내리게 될 때라고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사랑은, 유혹을 초월하여 그리고 결혼이라는 신실한 매개를 통하여, 인류의 이상에까지 다다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 것입니다.

 

27. 사랑은 차이에 대한 근본적인 경험을 만들어내는 지점들, 예컨대 차이의 관점을 시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유 안으로 우리를 데려갑니다. 플라톤은 이와 관련하여 최초의 직관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이 보편적인 영향력을 지니며, 실현 가능한 보편성의 개인적 경험이자 철학적으로 매우 근본적이라고 말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28. 물론 타자의 몸이라는 매개가 존재하지만, 결국 쾌락이란 언제나 제 자신의 쾌락일 것입니다. 성적인 것은 결합하지 않으며, 분리할 따름입니다. 홀딱 벗었건 타인과 한 몸으로 들러붙어 있건 간에 그것은 하나의 이미지, 즉 상상적 표상에 불과합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쾌락이 당신을 타자에게서 멀리, 아주 멀리 떠에놓는다는 겁니다.

 

실재는 나르키소스적이며, 관계는 상상적입니다. 따라서 성관계는 없다, 라캉은 이렇게 결론짓습니다.....만약 섹슈얼리티에서 성관계가 없다고 한다면, 사랑은 성관계의 결핍을 보충하러 도래하는 무엇이됩니다.

 

이러한 사유는 라캉으로 하여금 사랑에서 주체가 타자의 존재에 접근하려 시도한다고 말하게 해 줍니다. 결국 주체가 제 자신을 넘어서게 되는 것, 나르시시즘을 넘어 서게 되는 게 바로 사랑 안에서라는 것이지요. 섹스에서 당신은 타자라는 매개를 통해 결과적으로 당신 자신과 관계를 맺게 될 뿐입니다. 타자는 당신이 쾌락의 실재를 발견하는 데 이용될 뿐이라는 것이지요. 반대로 사랑 속의 타자라는 매개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랑의 만남입니다.

 

32. 그리고 사랑은, 예컨대 진리의 구축이라는 것입니다. ....좀 더 솔직히 말해 차이의 관점에서 시련을 영위하는 것에 관여하게 되는 바로 그 순간에 시작된 것이라면, 무엇이든 포함시키는 그런 계획입니다.

 

33. 레비나스의 관점은 타인의 얼굴과 결부된 환원 불가능한 경험, 이를테면 그 매개가 결국에는 전체 타자로서의 신이 되는 그런 출현에서 출발합니다. 이타성의 경험은 핵심인데,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윤리의 근저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레비나스는 따라서 사랑이 가장 전형적인 윤리적 감정이라는 결론을 위대한 종교적 전통 속에서 빚어내게 됩니다.

 

41. 사랑은 개인인 두 사람의 단순한 만남이나 패쇄된 관계가 아니라 무언가를 구축해내는 것이고, 더 이상 하나의 관점이 아닌 둘의 관점에서 형성되는 하나의 삶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제가 둘이 등장하는 무대라고 일컫는 것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그저 단순하게 사랑의 시작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사랑의 지속성과 그 과정에 대한 물음들에 늘 관심을 기울여왔습니다.

 

사랑의 낭만적인 개념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며, 다소간 이 개념은 만남에다 사랑을 소진시켜버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은 만남에서, 즉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마술적인 외재성의 한순간을 맞이하여 불타버리고, 소진되며, 동시에 소비된다는 말입니다. 또한 바로 여기에서 바로 기적의 범주에 속하는 어떤 것, 즉 존재의 강렬함, 완전히 녹아버린 하나의 만남이 도래합니다. 그렇지만 전반적으로 사랑이 이렇게 전개될 때 우리는 둘이 등장하는 무대가 아니라 하나가 등장하는 무대와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서로를 통합해버리는 사랑 개념입니다. 다시 말해서 두 사람의 연인이 만났고, 한 사람의 영웅적 행위와 같은 무언가가 세계에 맞서 생겨납니다.

 

....이 개념에는 놀라운 예술적 매력이 존재하지만, 제 생각에 이 개념은 심각한 실존적 위험을 또한 내포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개념을 사랑에 대한 진정한 하나의 철학으로 서가 아니라, 오히려 강력한 예술적 신화로 받아들여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초의 장애물, 최초의 심각한 대립, 최초의 권태와 마주하여 사랑을 포기해버리는 것은 사랑에 대한 커다란 왜곡일 뿐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사랑에 부과하는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간혹은 매몰차게 극복해나가는 그런 사랑일 것입니다.

 

44. 지속성이라는 표현에서, 사랑이 지속되고 서로가 항상 사랑하며 또는 영원히 사랑한다는 의미만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삶에서 지속되고 있는 여러 가지 다른 방식을 사랑이 창출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지요. 각자라는 존재는 사랑의 시련 속에서 새로운 시간성과 직면하게 됩니다. 물론, 시인의 어투로 말하자면 사랑은 지속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서, 사랑은 미지의 무엇을 지속시키려는 욕망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사랑은 삶의 재발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재발명하는 것, 그것은 바로 이러한 재발명을 재발명하는 것입니다.

 

51. 저는 사랑이, 예컨대 저의 고유한 철학적 용어로 제가 진리의 절차라고 일컫는 무엇, 다시 말해서 어떤 형태의 진리가 구축되는 하나의 경험이라고 주장합니다. 아주 단순히 말해서 이 진리는 둘에 관한 진리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차이의 진리라는 것이지요. 또한 사랑은 바로 이것에 대한 경험입니다.

 

52. 이 사랑 이야기들이 대중의 엄청난 관심을 끌게 되는 이유는 사랑에 보편적인 무엇이 있기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보편적인 것이 거기에 있다는 것, 그것은 모든 사랑이 하나가 아닌 둘이 되는 것과 연관된 진리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시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고독한 의식에 의한 것과는 상이하게, 사람들은 서로 대면하고 서로가 서로를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랑이라 해도 새로운 증거를 우리에게 부여해 주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성 아우수스티누스가 말했듯이,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사랑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런 한편, 다른 사람들이 사랑하는 무언가를 우리 역시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말해서, 그 이유는 우리가 진리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제 모든 의미를 철학에 부여하게 되는 것은 바로 여기입니다.

 

55. 사랑을 선언하는 것은 만남-사건에서 진리 구축의 시작 단계로 이행하는 것이며, 만남의 우연을 시작이라는 형식 안에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되고, 더 이상 처음 시작되던 때처럼 우연적이고 우발적인 것이 아닌, 실제로 하나의 필연처럼 등장하는 세계의 경험과 새로움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바로 이렇게 해서 우연이 고정되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내가 알지 못했던 누군가와의 만남이라는 완벽한 우연이 결국 하나의 운명이라는 외양을 띠게 되는 것이지요. 사랑의 선언은 우연에서 운명으로 이르는 이행의 과정이고, 바로 이런 이유로 사랑의 선언은 그토록 위태로운 것이며, 일종의 어마어마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57. 말라르메는 시를 낱말에 의한 낱말로 극복된 우연이라고 보았습니다. 사랑에서 충실성은 이러한 끈질긴 승리를 지칭합니다.

 

58. 우연의 고정, 그것은 바로 영원의 통고입니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보면 모든 사랑이 영원을 선언합니다.

 

59. 사랑은 주관적인 어떤 힘입니다 사랑은 순간에 일어난 우연에서 시작되어, 당신이 영원을 제안하게끔 만드는 보기 드문 경험 가운데 하나인 것입니다.

 

60. “사랑이라? 그래, 그것은 둘의 시련이지. 사랑은 둘의 선언이고, 영원이야. 하지만 하나라는 질서 속에서 그 증거를 만들어내야만 하는 어떤 순간이 있게 마련이지.”라고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문제로 되돌아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의 상징적인 동시에 실질적인 모습이 바로 아이입니다.

 

67. 정치의 목표는 공동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파악하는 것이지, 권력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에서도 그 목표는 차이의 지점인 세계를 그야말로 하나하나 빠짐없이 경험해나가는 것이지, 종의 재생산을 확보하는데 놓여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71. 사랑의 적은 경쟁자가 아니라 바로 이기주의입니다. .....내 사랑의 주된 적, 내가 쓰러뜨려야 하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바로 나, 차이에 반대되는 동일성을 원하는 차이의 프리즘 속에서 걸러지고 구축된 세계에 반대하여 자신의 세계를 강요하려 하는 자아입니다.

 

72. 순전히 형식적인 방법으로 사랑에서 드러나는 변증법에 우리가 다가갈 수 있는 두 가지 정치적 또는 철학적 정치적 개념이 있습니다. 먼저 코뮤니즘이라는 낱말 속에는, 공동체가 극단적인 모든 차이를 통합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그런 사유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박애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용어는 분명 차이들에 관한 물음, 즉 적과 근본적인 경계를 긋는 그런 대면을 동반하는, 정치적 과정에서 벌어지는 차이의 우호적인 공존에 관한 물음에 관여할 것입니다.

 

74. 기독교는 사랑을 초월성에다 곧바로 투사해버린 것입니다. ....타자는 분명 존재합니다만, “전체 타자나 초월성의 대타자없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종교가 말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77. 예컨대 멀리 떨어져서, 그러나 여전히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면서...”와 같은 표현에서 잘 드러나지요. 말하자면 사랑은 가능성은 아닌 것이며, 오히려 불가능한 무엇처럼 나타나게 만드는 무언가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78 사랑을 지상에 도래하게 하는, 초월성에서 내재성으로 이행하게 하려는 이 의지는 바로 역사 속에 존재해왔던 코뮤니즘의 의지이기도 하였습니다.

 

82. 사랑과 혁명적 참여 사이의 유사성이 아니라 사유의 영향을 받아 차츰 참여로 변해가는 삶이 획득하게 될 강렬함 그리고 사랑에서 차이의 작업을 삶에 부여하는 질적으로 상이한 강렬함, 이 둘 사이에, 주체들의 가장 은밀한 수준에서 형성되는 일종의 은밀한 반향을 명확하게 보여주자는 것이 바로 이 소설에서 제가 역점을 둔 것이었습니다.

 

89. 초현실주의는 법을 벗어난 사건적인 힘으로서의 이 미친 사랑에 열광하였습니다. 사랑에 관한 사유, 그것은 모든 질서에, 법질서의 힘에 대항하여 만들어지는 사유에 다름 아닙니다. 초현실주의자들은 바로 여기서 언어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존재 속에서 하나의 시적 혁명을 전개하고 자신들의 의지를 살찌워나갈 무언가를 발견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거리 모퉁이에 있는 미친 사랑이 될 <나자>는 우리에게 불확실하고 신비로운 만남의 시학을 눈이 부시도록 빼어난 방식으로 보여줍니다.

 

92. ‘이제 그만 Assez’이라는 제목의, 매우 찬란한 짤막한 텍스트에서 베케트는 산과 사막이 조금씩 뒤섞인 풍경을 배경 삼아 아주 늙은 커플의 방황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이야기는 사랑과 이 늙은 커플의 지속성에 대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는데, 그러나 한편으로 이 작품은 육체의 참담함, 존재의 단조로움, 나날이 증가하는 섹스의 어려움 따위를 조금도 감추지 않습니다. 텍스트는 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한편, 결국에는 빛을 발하는 사랑의 힘과 사랑을 구축하도록 지속시키는 끈질김의 체제 아래에 이야기를 위치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95. 포르투칼 시인 페소아는 사랑은 하나의 사유다라고 말합니다. ....저는 이 말이 옳다고 믿습니다. 저는 사랑은 하나의 사유이며, 앙투안 비테즈가 말한 것처럼 이러한 사유와 몸 사이의 관계는 아주 특이하며, 필연적인 어떤 폭력으로 늘 각인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100. 이런 사랑에 넋 나간 젊은 녀석들하고는! 너희들은 포르투칼의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가 말한 사랑이 하나의 사유라는 걸 알아차릴 능력이 없는 놈들이로구나 내 이 페르난도 페소아의 말을 젊은 너희들에게 직접 이르노니, 그것은 바로 사랑으로 시작되지 않은 것은 결코 철학에 이르지 못 할 것이라는 뜻이노라.

 

108. 차이를 만들어내고, 고유하며, 반복을 전혀 동반하지 않고서, 고정되지 않고 낯선 무언가에 대한 사랑을 반복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숭배와 대립시켜야만 합니다. 저는 1982<주체이론>에서 당신이 결코 두 번 보게 되지는 않을 것을 사랑하시오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109. 고다르에게는 사랑이 거의 모든 문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습니다. 그러나 제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사랑과 저항 사이의 접속에서 고다르와 저의 차이는 바로 멜랑콜리인데, 이것은 고다르에게 모든 것의 색깔을 의미하는 핵심이기도 합니다. 반면, 저는 사랑과 관련된 것을 포함하여 이 주관적인 채색에서 치유할 수 없을 만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113.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온갖 고독을 넘어서 세계로부터 존재에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모든 것과 더불어 포획되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서 저는 타자와 함께하는 행복의 원천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을 직접 봅니다. “나는 너를 사랑해는 내 존재를 위해 네가 있는 그 원천이 이 세계에 있다는 것이 됩니다. 이러한 원천에 담겨 있는 물속에서 저는 우리의 기쁨을, 그러나 무엇보다도 너의 기쁨을 봅니다. 말라르메의 시에서처럼

 

물결 속에서 발가벗은

네 기쁨에 이른 너를

 

저는 봅니다.

 

121.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이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황지우, <너를 기다리는 동안>

 

163. 그래서 바디우는 사랑의 과정을 다리 절기 (boiterie)라고 부른다. 다리 절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불가능한 걷기이다. 다시 말해 다리 절기란 그 자체로 걸음인 동시에 걷기를 금지하는 것이다.” 완전한 걷기라는 것은 사랑에서 가능하지 않다. 수렴/발산의 조화는 사랑에서 가능하지 않다. 사랑은 그 두 가지 사이에서 항상 절뚝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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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9-14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바디우가 황지우를 인용했나 했습니다.

바디우 황지우 라임 쩌네요.....

시이소오 2016-09-14 11:02   좋아요 0 | URL
ㅋ ㅋ 그러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14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 추석 명절에 사랑의 담론이라... 뭔가 언발란스하기는 하지만.. 좋습니다.
명절 무탈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시이소오 2016-09-14 12:48   좋아요 0 | URL
명절에 사랑이 발란스한 그날이 오기를 고대해봅니다. 저야말로 곰발님글을 매번 열독하는 일인입니다 ^^

컨디션 2016-09-14 1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알랭 바디우 이 사람. 프랑스 철학자인가요? 아니 당연히 그렇겠죠.^^ 근데, 근데요.. 라캉이니 데리다니 하는 프랑스 철학자들은 왜 이렇게 어렵게 말하는 걸까요. 읽다보면 정말 돌아버릴거 같아요.ㅠㅠ(시이소오님 글이 그렇다는 게 아니구요^^)

참, 그리고 저도 궁금했는데, 위에 syo님 댓글이요.. 이 책 인용하시면서 번호 매기신 게 페이지인가 뭔가 하다가, 아 페이지 겠구나 했는데 황지우 시 인용하시면서 121이라고 되어있어서, 어 뭐지? 알랭바디우가 황지우의 시를 자기 책에서 다뤘단 말인가? 암튼 너무 궁금하네요.ㅎㅎ

추석을 코앞에 두고, 음식 하다 말고 갑자기 북플 들어와설라무네 너무 길게 주절거렸네요ㅎ

시이소오님, 추석 잘 보내시구요~^^

시이소오 2016-09-14 12:52   좋아요 1 | URL
아, 페이지 수 맞구요 옮긴이글을 옮기다보니 바디우 책에 황지우가 등장하게 됐네요.

컨디션님도 컨디션 조절하시면서 편안한 추석 보내세요 ^^

나뭇잎처럼 2016-09-14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의 재발명. 바디우가 본 사랑이 뭘까, 궁금해서 잠이 안 올거 같아요. 서재질 이제 막 시작했는데, 서재의 단점을 알아챘어요. 쌓인 책 위에 나날이 무게를 더해 쌓이는 책! 연휴고.. 택배는 멈췄고.. 도서관도 쉬고.. 어쩔..

시이소오 2016-09-14 13:10   좋아요 0 | URL
연휴엔 서점을 습격해 보심은 어떨지요.

나뭇잎처럼님도 즐거운 추석보내세요 ^^

2016-09-14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9-20 15:58   좋아요 1 | URL
어머나 답글이 날아갔네요. 지송^^; 명절 잘 보내셨는지요? 저 역시 사회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포착하시는 영성님 글을 읽을때마다 기쁨을 느낍니다.

희망을 보았다고 할까요?

좋은글 계속 변함없이 써주세요.

감사드립니다^^

커피소년 2016-09-20 15:06   좋아요 0 | URL
명절 즐겁게 보내셨는지요.



시이소오님께서 제 글을 읽고 기쁨을 느끼신다니 저야말로 기쁩니다.



절망의 나라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긴 절망을 느끼고 있었는데

시이소오님의 댓글을 읽고 작은 희망을 느끼네요.ㅎㅎ



시이소오님도 계속 변함없이 글을 써주셨으면 좋겠지만

일 시작하시면 바쁘셔서 글을 못 쓰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은 글을 지속적으로 써주시는 분들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만큼 당황스럽고 아쉬운 일이 없으니까요. ㅎㅎ


감사합니다.ㅎㅎ

시이소오 2016-09-20 16:00   좋아요 1 | URL
작은 희망을 느끼시다니 저의 희망이 헛되지 않은거죠? ㅎ ㅎ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
 
사랑 예찬 프런티어21 14
알랭 바디우 지음, 조재룡 옮김 / 길(도서출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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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매설리의 <인생의 모든 의미>를 읽으며, 20세기 100여명의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삶의 의미에 대해 숙고해보았다. 숱한 사상가들 중 전혀 예상치 못하게 테리 이글턴, 샤르댕, 윌 듀란트의 대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세 사상가의 공통점은 한 마디로 사랑이다. 허걱, 이토록 식상할 수가. 수 백명의 대답 중 난 어쩌다 사랑에 꽂힌 것일까.

 

삶의 의미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따라오는 문구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삶의 의미의 최소한의 조건이다. ( 따라서, 타인에게 폐만 끼치는 정치가들은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들의 삶은 버러지보다 더 가치가 없다.)

 

그런데 사랑이란 단어를 쓰면 굳이 저런 문구가 필요가 없다. 그동안 읽었던 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 플라톤의 <국가>를 비롯한 플라톤에 관한 책들, 이서희의 <유혹의 학교>등도 결국 사랑에 수렴한다. ‘그래, 사랑 박사가 되야겠다!’하고 작정하고 읽은 책이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이다.

 

바디우 역시 랭보의 <지옥에서 한철>을 이 책의 제사로 삼았다. 사랑의 재발명을 언급한다. 왜 한병철 바디우는 사랑의 재발명을 말하는가?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프랑스 인터넷 만남 사이트 미틱의 광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 위협받고 있다. 언제부턴가 썸 탄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썸 탄다는 건, 간만 보는 거다. ? 사랑에 빠지면 아프니까. 다치니까. 상대방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 현대의 사랑은 애초에 나르시시즘에 불과할 뿐이다. 타인의 몸뚱아리는 단지 매개체일뿐 현대의 사랑은 결국 자기 사랑에 그친다.

 

루소는 자기애를 아무르 프로프르amour propre’아무르 드 수아amour de soi’로 구분했다. ‘아무르 드 수아가 자연스럽고도 유용한 자애심인 반면 아무르 프로프르는 기본적으로 타자를 종속시키는 시선이다. 그것은 지위에 대한 욕구이며 문명사회의 모든 악의 근원이다. 현대의 사랑은 아무르 프로프르. 라캉은 말했다. “성관계는 없다. 오로지 자기 사랑만 있는데 어떻게 성관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바디우는 낭만적인 사랑을 회복하자는 걸까? 바디우에게 사랑은 언제나 둘이 등장하는 무대. 그런데 낭만적인 사랑은 결국 하나로 소모되고 소진된다. 거기선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종교적인 사랑은? 종교는 초월성이라는 십자가에 사랑을 못 박는다. 결국 종교가 말하는 사랑 역시 사랑이 아니다.

 

나 역시 낭만적인 사랑이나 종교적인 사랑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일찍이 플라톤 소크라테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으로 시작되지 않은 것은 결코 철학에 이르지 못 할 것이라고.

 

페소아는 말했다. “사랑은 하나의 사유라고.

바디우에게도 사랑은 진리의 구축이다. 어떤 진리? 두 사람의 차이의 진리.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신비로운 공명에 이를 수 있다.

 

바디우는 정치와 사랑의 직접적 결합을 부정하지만, 정치적 이념의 기치 아래 실천과 참여로 점철된 삶과 사랑 특유의 강렬함 사이에는 신비로운 공명같은 것이 있다고 본다. 이들은 마치 그 소리와 힘에서는 완전히 상이한 두 악기가 위대한 음악가에 의해 하나의 곡 속에 합쳐져서 신비로운 어울림을 만들어내는 것같다.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세계, 더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공동의 욕망에서 나오는 정치적 행위는 어떤 심층적 차원에서 에로스와 상관관계를 이룬다. 에로스는 정치적 저항의 에너지원이다. ”

 

-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중에서

 

사랑을 시작으로 우리는 더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공동의 욕망까지 뻗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글턴, 샤르댕, 듀란트, 바디우가 말하는 사랑의 공통점이다. 그런 세상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 칸트에겐 영구평화론이요, 샤르댕에겐 오메가 포인트’,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이 나 지그문트 바우만이 주장하는 세계공화국이다.

 

차이 속에서 하나 된 세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종착점이다.

그러므로,

 

사랑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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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9-14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명절 연휴도 쉬지 않으시는 시이소오님!
좋은 명절 보내세요~^^

시이소오 2016-09-14 11:03   좋아요 1 | URL
저도 이 글을 마지막으로 연휴 들어갑니다. syo 님도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

물고기자리 2016-09-14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가 되는 것도, 초월적인 것도 아닌 사랑의 재발명.

`차이에도 불구한 신비로운 공명`

마치 시이소오 님과,
다른 길을 통해 같은 정상에서 만난 것 같은 기쁨이 있는 글이었습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ㅎ

시이소오 2016-09-14 13:29   좋아요 0 | URL
물고기자리님, 정상에서 만나죠. ^^

커다란 달덩이만큼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