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예찬 프런티어21 14
알랭 바디우 지음, 조재룡 옮김 / 길(도서출판)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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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매설리의 <인생의 모든 의미>를 읽으며, 20세기 100여명의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삶의 의미에 대해 숙고해보았다. 숱한 사상가들 중 전혀 예상치 못하게 테리 이글턴, 샤르댕, 윌 듀란트의 대답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세 사상가의 공통점은 한 마디로 사랑이다. 허걱, 이토록 식상할 수가. 수 백명의 대답 중 난 어쩌다 사랑에 꽂힌 것일까.

 

삶의 의미를 논할 때 가장 먼저 따라오는 문구는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삶의 의미의 최소한의 조건이다. ( 따라서, 타인에게 폐만 끼치는 정치가들은 애초에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들의 삶은 버러지보다 더 가치가 없다.)

 

그런데 사랑이란 단어를 쓰면 굳이 저런 문구가 필요가 없다. 그동안 읽었던 한병철의 <에로스의 종말>, 플라톤의 <국가>를 비롯한 플라톤에 관한 책들, 이서희의 <유혹의 학교>등도 결국 사랑에 수렴한다. ‘그래, 사랑 박사가 되야겠다!’하고 작정하고 읽은 책이 알랭 바디우의 <사랑 예찬>이다.

 

바디우 역시 랭보의 <지옥에서 한철>을 이 책의 제사로 삼았다. 사랑의 재발명을 언급한다. 왜 한병철 바디우는 사랑의 재발명을 말하는가?

 

사랑에 빠지지 않고서도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

 

프랑스 인터넷 만남 사이트 미틱의 광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랑이 위협받고 있다. 언제부턴가 썸 탄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다. ‘썸 탄다는 건, 간만 보는 거다. ? 사랑에 빠지면 아프니까. 다치니까. 상대방보다 내가 더 소중하다. 현대의 사랑은 애초에 나르시시즘에 불과할 뿐이다. 타인의 몸뚱아리는 단지 매개체일뿐 현대의 사랑은 결국 자기 사랑에 그친다.

 

루소는 자기애를 아무르 프로프르amour propre’아무르 드 수아amour de soi’로 구분했다. ‘아무르 드 수아가 자연스럽고도 유용한 자애심인 반면 아무르 프로프르는 기본적으로 타자를 종속시키는 시선이다. 그것은 지위에 대한 욕구이며 문명사회의 모든 악의 근원이다. 현대의 사랑은 아무르 프로프르. 라캉은 말했다. “성관계는 없다. 오로지 자기 사랑만 있는데 어떻게 성관계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바디우는 낭만적인 사랑을 회복하자는 걸까? 바디우에게 사랑은 언제나 둘이 등장하는 무대. 그런데 낭만적인 사랑은 결국 하나로 소모되고 소진된다. 거기선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종교적인 사랑은? 종교는 초월성이라는 십자가에 사랑을 못 박는다. 결국 종교가 말하는 사랑 역시 사랑이 아니다.

 

나 역시 낭만적인 사랑이나 종교적인 사랑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일찍이 플라톤 소크라테스가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으로 시작되지 않은 것은 결코 철학에 이르지 못 할 것이라고.

 

페소아는 말했다. “사랑은 하나의 사유라고.

바디우에게도 사랑은 진리의 구축이다. 어떤 진리? 두 사람의 차이의 진리.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신비로운 공명에 이를 수 있다.

 

바디우는 정치와 사랑의 직접적 결합을 부정하지만, 정치적 이념의 기치 아래 실천과 참여로 점철된 삶과 사랑 특유의 강렬함 사이에는 신비로운 공명같은 것이 있다고 본다. 이들은 마치 그 소리와 힘에서는 완전히 상이한 두 악기가 위대한 음악가에 의해 하나의 곡 속에 합쳐져서 신비로운 어울림을 만들어내는 것같다. 다른 삶의 형식, 다른 세계, 더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공동의 욕망에서 나오는 정치적 행위는 어떤 심층적 차원에서 에로스와 상관관계를 이룬다. 에로스는 정치적 저항의 에너지원이다. ”

 

-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중에서

 

사랑을 시작으로 우리는 더 정의로운 세계에 대한 공동의 욕망까지 뻗어갈 수 있지 않을까. 이글턴, 샤르댕, 듀란트, 바디우가 말하는 사랑의 공통점이다. 그런 세상은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다. 칸트에겐 영구평화론이요, 샤르댕에겐 오메가 포인트’, 그리고 가라타니 고진이 나 지그문트 바우만이 주장하는 세계공화국이다.

 

차이 속에서 하나 된 세계.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종착점이다.

그러므로,

 

사랑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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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9-14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명절 연휴도 쉬지 않으시는 시이소오님!
좋은 명절 보내세요~^^

시이소오 2016-09-14 11:03   좋아요 1 | URL
저도 이 글을 마지막으로 연휴 들어갑니다. syo 님도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

물고기자리 2016-09-14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가 되는 것도, 초월적인 것도 아닌 사랑의 재발명.

`차이에도 불구한 신비로운 공명`

마치 시이소오 님과,
다른 길을 통해 같은 정상에서 만난 것 같은 기쁨이 있는 글이었습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ㅎ

시이소오 2016-09-14 13:29   좋아요 0 | URL
물고기자리님, 정상에서 만나죠. ^^

커다란 달덩이만큼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