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착한 동생을 둔 덕에 백수인 나와 백수인 나의 아내, 백수인 나의 아들도 덩달아 괌 pic 여행을 가게 됐다. 동생 가족과 우리 가족, 아버지를 대동한 여행인지라 얼추 계산해보아도 대략 천 만원짜리 여행인 셈.
착한 동생은 SKY 회원이었기에 30분 만에 출국 수속을 마쳤고, (대한항공을 타고 싶진 않았으나 나에겐 결정권이 없었다) 곧바로 허브 라운지로 직행했다. 그동안 왜 라운지 이용을 안 했을까? 음식 가짓수는 많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맛있었고, 결정적으로 와인과 생맥주가 무료였다.
맥주 먹고 배가 불러오자 레드 와인으로 바꿨다. 그래도 배가 불러오자 보드카에 쥬스를 혼합해 들이켰다. 나는 어쩜 이리 똑똑한 것일까? 기지 작렬.
제수씨까지 꼬드겨 담배 세 보루를 샀다. 66달러. 이런 악마의 숫자가! (담배를 끊더라도 일단 삼십 갑 피고 생각해 보자!) 답답하다는 아버지를 대동하고 면세점 한쪽 끝까지 가서 야도하고 라운지로 돌아왔다. (음, 뭐 그닥 크지 않군)
라운지에서 무려 네 시간을 버티다 나왔다. 7시 비행기임에도 사람이 몰릴까 무서워 우리는 2시에 공항에 도착했기에. 우리 테이블을 보고 한숨짓던 여직원이 떠오른다. (미안해요. 다음엔 꾹 참고 안 올게요.)
수천 번 비행한 기장이나 스튜어디스도 사고로 죽는 일이 드문데 비행기 사고로 죽는 사람들은 얼마나 재수가 없는 걸까? 아직까지 살아있는 스튜어디스들이 운이 좋은 걸까?
스튜어디스에게 “땅콩 까서 주세요”하고 농담하려다 꾹 참았다.
( 땅콩으로 맞을 일 있나.)
버드를 세 캔 마시며 쿤데라의 <농담>을 읽었더니 어느새 괌이었다.
괌 입국 게이트에서 줄서다 3~4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며 제수씨는 내게 침투조를 제안했다. 즉, 비행기가 멈추자마자 뛰어야 한다는 것. 비행기의 도착을 알리는 ‘띵’소리가 나는 동시에 나는 우사인 볼트처럼 뛰었으나, 고작 5미터 갔으려나. 짐을 내리는 승객들로 인해 금세 가로막혔다.
중간에 공항을 가로지른 보람이 있었던지, PIC에 가장 먼저 도착.
PIC에 도착해보니, 우선 예상보다 더웠다. (새벽 2신데 이렇게 더울 줄이야! 아, 한동안 무더위에 지치다 겨우 좀 살만 해졌는데 나는 왜 또 다시 괌에 온 것일까?)
새벽 4시쯤 잠들었는데 8시쯤 일어났다. 동생과 나는 액티비티를 예약하기 위해 이곳 저곳을 돌아 다녔다. 양궁 코너에서 줄을 섰는데 다른 한국인들 몇몇이 이이서 줄을 섰다. (아니, 다들 왜 괌까지 와서 활을 쏘기 위해 아침 댓바람부터 줄을 서는 걸까? 한국인에겐 활을 쏘아야만 하는 어떤 유전자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32년 동안 한국 여자 양궁은 금메달을 내주지 않는 걸까?)
부라부랴 스타라이트 조식을 먹었다. 어느 책에서 읽었더라. 정확한 워딩이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이런 말이었는데......
‘먹기 위해 줄을 서는 만큼 비천한 짓은 없다’.
아, 줄을 서고 말다니. 게다가 먹을 것도 없고, 맛도 없고.
기껏 예약까지 했으나 아이들이 기절한 듯 깨어나질 않아 다시 양궁 예약을 취소하러 갔다. 예약한 게 아까워 가족대표로 나만 참여했다. (아, 또 다시 매몰비용의 오류)
의외로 어려웠다. 10발 쏘고 나서야 과녁에 겨우 1발 맞췄다.
(음.....괌까지 와서 나는 왜 활을 쏘고 있는 걸까? 이거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데?!)
나이 어린 클럽 메이트 카일은 해맑게 ‘피니쉬?’라고 물어본다. 14네발이 쐈는데 더 쏘라구? 손가락 아파 죽겄구만. ‘앱솔루트 피니쉬’다.
두 시간 정도 수영장에서 놀다 다시 중식. 이번엔 하나비. 스타라이트 조식보단 낫다.
회가 있으니. 맥주도 뷔페.
동생은 아버지 인슐린을 사기 위해 병원에 가고 (그래서 역시나 예약한 스노클링을 취소했다.) 나는 조카랑 주로 놀았다. 조카는 꽃게 모양의 튜브를 어깨에 걸치고 양손을 집게 마냥 오므렸다 펼치며 나를 쫓았다. 30분 정도 도망다녔을까. 조카는 양손을 집게 모양으로 펼치며 “왕 꽃게”로 업그레이 하더니 필사적으로 나를 쫓았다. 두 시간 동안이나. 왜 5세 아이들은 지치지 않는 걸까? 그렇게 왕 꽂게에게 쫓기다 다시 석식.
선셋 바비큐.
밀러 맥주 한 병에 10달러. (VAT 별도) 세 병 마셨다. 뭔가 좀 바가지 씌우는 거 같아 영 기분이 불편하다. 골드 카드 비용 골드 카드대로 내고 여기서 또 150불을 지불해야 하다니.
그나마 가장 맛있던 건 닭도 아니요 돼지도 아니요 소도 아니요 새우도 아니요
파인애플이었거늘.
성질나 새우를 있는 데로 가져와 다 구웠다.
(까서 가져갔다. 나중에 보니 벌레가 나왔다고?)
렌트한 차(마쯔다)를 타고, 괌 시내에 가서 제수씨가 좋아라한다는 벨기에 초콜릿 브랜드 고디바에서 파는 초콜릿 음료를 마셨다. 음, 달달하구나.
이후 K마트 가서 ‘그토록 맛있다는’ 바나나과자를 10여 개 사왔다.
숙소로 돌아와 동생과 (GUAM)괌 맥주를 마시고 잠 들었다.
오늘은 괌 PIC 골드 카드에 대해 따져보자. 룸 두 개에 골드 카드 포함 총 백 만원. 3박 동안 룸 하나는 4박으로 이용했기에 숙박비로만 350만원을 썼다. (성인 5, 소아 2) (물론 나는 계산만 한 거다. 결제는 동생이 했다.)
남자들은 총 8끼, 여자와 아이들은 총 9끼. 24+36 총 예순 번의 식사라. 이 중에 서른 번은 먹었을라나. 늦게 가는 바람에, 혹은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추느라, 혹은 퍼시픽 판타지 디너쇼 같은 경우 아예 음식도 없고 보이지도 않아,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흡사 짐승처럼 먹었다. 레스토랑이 제시한 시간에 맞춰 밥을 먹는다는 게 나처럼 게으른 사람에겐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아침 먹고 돈 아까워 겨우 두 시간 지났는데 점심 먹고, 점심 먹고 돈 아까워 겨우 세 시간 지나 저녁 먹고....... 이게 짐승이지 인간인가? 늦게 가는 바람에 20분 만에 먹어야 한다고 해서 허겁지겁 꾸역꾸역 음식을 입으로 쳐 넣고.....이게 짐승이지 인간인가?
퍼시픽 판타지 디너쇼에 갔더니 뷔페라더만 음식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만 있고, 가져와 먹으려했더니 온통 깜깜해 내가 먹는 게 닭인지, 돼지인지, 소인지도 모른 채 꾸역꾸역 처먹었으니 (입안에 쑤셔 넣고 나서야 ‘어라 닭이네’, ‘어라 소네’ ‘어라, 닭과 돼지를 같이 처먹고 있네’) ......이게 짐승이지 인간이냐고?!
괌에서 먹은 식사 중 가장 인간답게 먹은 건 사돈어른이 추천한 철판 요리집 ‘조이너스’였다.
PIC에서 차타고 5분 정도 걸린다. 총 7명, 140달러 정도 나왔다. 골드카드 신청 안 하고 외부에서 식사를 한다면 아마도 골드 카드를 사용했을 때와 비슷한 정도의 금액이거나 덜 들지 않을까. 참고로 PIC에서 신호등만 건너면 식당들이 꽤 있다. (토니 로마스, 쇼군, 정체불명의 치킨집 등)
PIC 골드 카드의 장점이라면 물놀이 도중에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건데, 단지 그 이유 때문에 1박당 50만원, 룸 2개에 100만원을 지불해야 하다니, 왠지 사기 당한 느낌이 든다. 나는 앞으로 두 번 다시 괌에 가진 않을테다. (자세한 이유는 다음 글에 밝히겠지만, 한국인은 호구다) 만일 정신 줄을 놓는 바람에 가게 되더라도 이건희 같은 갑부가 되지 않는 이상 두 번 다시 골드카드를 이용하진 않겠다. 하긴 이건희 같은 갑부가 된다면 괌 PIC에 갈 일이 있을까. 하여 갑부가 되건 거지가 되건 괌에 두 번 다시 갈일은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