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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아두니
아비 다레 지음, 박혜원 옮김 / 모비딕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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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득 아두니가 내게 왔다. 

작가 아비 다레 작가에게 그랬듯이.


이 소설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비극적인? 해학적인? 박진감 넘치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웃다가 울리고, 울리다가 웃기기 때문이다. 

그리고 점점 아두니의 엉뚱한 매력에 빠져들어간다. 

"얜 뭐지?" 이런 캐릭터가 어디 있었나? 생전 처음보는 캐릭터다. 

읽는 내내 예기치 못한 그녀의 인생 파노라마에 손에 진땀을 내며 응원하게 된다.


작가 아비 다레는 여덟 살 자신의 딸과 나이지리아 소녀 가정부 이야기를 하다가

이 소설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집안일 돕기 싫어하는 아이한테 ‘나이지리아에는 너만한 아이들이 

가정부 직업으로 하루 종일 노동을 한다’고 말하자 믿을 수 없어했다는 아이.

그날 밤 작가는 ‘주인이 끓는 물을 부어 심한 화상을 입은 소녀 가정부’ 뉴스를 접하고 그 아이에게 

꼭 목소리를 만들어주겠노라 다짐하고 3년 만에 소설을 완성했다고 한다.


소설을 쓰는 내내 아두니자 자신 앞에 앉아서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일러주는 것만 같았다고 하는데,

읽는 내내 아두니가 내 앞에 앉아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처럼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아두니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너무 생생하고, 그녀가 헤쳐간 경로가 너무나 믿을 수 없이 박진감 넘쳤다. 

분명 비극적인 스토리인데 시종일관 감도는 강한 생명력 같은 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서아프리카, 중동, 파키스탄은 어린 소녀들이 얼마 안되는 신붓값을 받고 물건처럼 팔리고 있다. 

이른바 조혼.

전 세계 여자아이들의 80%가 18세 이전에 결혼을 하고,

나이지리아 여자아이들의 17%가 15세 이전에 결혼을 한단다. 

결혼을 한 후 여자들은 가정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담장 안의 일이라고 해서 사회나 국가가 쉽게 개입하지 못한다.


지금도 뉴스를 볼 때마다 정인이, 제2의 정인이 같은 아동폭력 소식에 가슴이 무너지는데,

조혼과 아동 노동 착취,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일상을 겪고 있는 서아프리카 이야기가

이토록 뭔가 기운나게(?) 할 줄이야. 


맞다. 이 책은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며 다시금 희망의 힘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슬픔에 굴하지 않고, 폭력 따위에 무력해지지 않는 힘.

그래서 작게나마 손을 내밀어 누군가를 일으켜세우고, 

자신만의 삶을 위해 살았던 시간을 벗어나 국경 너머에 있는 누군가를 응원하게 만드는 책.


눈물 속에서 희망을,

절망 속에서 웃음을 기약하게 만드는 책.


오랜만에 참 뜨거운 소설을 읽었다. 

참고로 작가 아비 다레가 여덟 살 딸래미한테 들려주려고 쓴 소설이다.

진정으로 삶에서 가장 중요한 힘인 희망을 놓지 않는 게 어떤 건지 알려주고 싶은 엄마라면 

주저 없이 아이에게 읽어주어도 좋을 것 같다. 


소중한 사람들에게 한 권씩 선물하고 싶은 책.

돈만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고 싶은 책.


영원히 아두니를 응원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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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엠 아두니
아비 다레 지음, 박혜원 옮김 / 모비딕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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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아두니가 심장에 대고 계속 이야기하는 듯. 아두니와 함께 울고 웃느라 모처럼 뜨거웠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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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ectly Imperfect: The Art and Soul of Yoga Practice (Hardcover)
Baron Baptiste / Hay House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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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fectly imperfect” 이 아름다운 제목을 과연 어떻게 우리말로 옮겨야 할까. <나는 왜 요가를 하는가?>와 같은 선언문 같은 느낌은 아닌데 말이다. 왜 요가를 하냐고 물으면, 글쎄, 조금이라도 몸에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 정도로 답하고 말지, 거기에 뭔가 대단한 의미를 붙여서 요가의 장점을 늘어놓고 싶진 않다. 왠지 그러는 게 참다운 요기의 모습 같지 않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때문이랄까.


요가를 하면서 가장 울컥(?)했던 순간은, “마음을 따라가지 마세요. 호흡을 따라가세요. 마음을 먼저 보내지 마세요. 몸을 먼저 보내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다. 후굴을 할 때나 전굴을 할 때나 뭔가 몸과 대결하듯이,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면서 근육을 찢는 게 마치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참고 견뎌야 할 뭔가나 되는 듯이 굴다보면 요가가 정말 짜증스럽다. 가뜩이나 힘들고 지치는 데 몸마저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이중의 실패감. 도대체 나의 인내는 어디까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한없는 절망감.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조급하게 빨리 오르려고 하는 마음 탓이라는 건 조금만 상황을 빠져나와보면 알 수 있는 사실(The more we are in a hurry, the more our growth will be delayed). 매트 위에서 앞서가는 마음 대신 호흡을 따라가라고, 마음 대신 몸을 따라가라고 속삭여주는 순간 내 몸을 꽉 움켜쥐고 있던 족쇄 같은 게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 순간의 아하, 하는 느낌이 일상 속에서도 보이지 않는 힘을 발휘하는 걸 느끼는 건 또 역시 나만 아는 비밀 같은 거였다. 


요가가 참 좋은데,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가 없네, 하던 중에 요가 선생이 보다 덮어놓은 책을 훔쳐보고 찾아봤더니 좋은 영어 문장이 있어서 영어 원서로 읽기 시작했다. 아마 이걸 한글로 읽었으면 좀 오그라들었을 수도, 정확한 느낌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워낙 간결하게 문장을 표현해놓아서 그 경제적인 표현이나 (perfectly imperfect라니!) 정확한 문장 구조는 영어 공부하기에도 더없이 훌륭한 교재였다. 읽고 읽고 또 읽고 다시 음미해보아도 역시나 너무 좋은 문장들. 의욕 같아선 책 전체를 싹 외워버리고 싶은 욕망이 드는 책. 


저자는 다시 그 욕망을 아주 쉽게 지적한다.


Letting go and surrendering to flowing gives you access to powerful new possibilities for expansion and mastery.


Yoga practice is distinct from most other personal growth methods because it comes from the premise that what you seek is already within you and won’t be found by attaining some outer goal. 


Do it from where you are and not where you wish you were.


If we look deeper and stop expecting anything outside of ourselves to fulfill us, we experience a fundamental shift in our relationship to ourselves and our practice.



평생 바라는 나와 현실의 나가 주는 간극을 메우느라 허덕이며 살았다. 읽어도 읽어도 성에 차려면 멀었고, 해도 해도 나보다 앞선 사람이 너무 많았다. 바라는 게 적었다면 가랑이라도 무사했을 텐데, 하고 싶고 되고 싶은 것이 많아 몸이 고달팠다. 일 중독 소리를 들으며 운 좋게 승진을 해도, 뭔가 더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좀 쉬고 싶다는 몸의 아우성 사이에서 해소되지 않는 불안에 시달렸다. 어쩌면 그 당시의 내가 요가원을 등록한 건 그저 살고자 하는 본능적인 선택과도 같았다. 하지만 요가의 본질이 뭔지는 잘 몰라도, 이건 아닌데(그저 어떻게 하면 그 동작을 할 수 있는지에만 집중하는 피트니스에 온 것 같은 느낌), 하는 느낌이 드는 요가원들에서 실망한 나머지 그저 약간의 스트레칭 정도로 요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요즘 나는 매일 요가원에 간다.


뭐 대단히 훌륭한 요가원은 아니다. 다만 체인이 아니고, 그래도 경력이 좀 있는 원장이 운영하고, 다양한 강사들이 수업을 진행하고, 각 강사마다 스타일이 있어서 이래저래 보완되는 면이 있다는 게 장점. 요가 강사들이 많이 오는 학원이라 그런지 전반적인 수준이 꽤 높아서 까마귀 자세 못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게 장점인지 단점인지 헷갈리는 곳. 여전히 요가를 뭔가 수단으로 여기고 더 나은 자신을 뽐내기 위한 어떤 열기와 욕망이 함께 일렁이는 곳. 하지만 그런 외부적인 조건으로부터 내가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진 건 이 책의 도움이 크다.


When the head wants something, it will never go directly, it will zigzag, or spin in a whirlpool as it considers pros and cons, pathways and obstacles. But the whispers from the heart are always authentic and signualr in their focus. The heart knows what it wants.


When we think we’ve “arrived,” it is typically because we think we understand something. We know it and can handle it. But as Mr. Iyengar showed through his own practice, when you have mastered something, instead of you doing it, it does you.



늘 머리가 앞서는 삶을 살았다. 행동하기 전에 생각을 먼저 해야한다고 배웠고, 생각이 깊어지는 걸 성숙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감각하고 행동하기 전에 먼저 사고하고 머릿속의 지도가 그려져야 이해했다고 여기고, 이해해야 안다고 여겼던 것 같다. 그래서 아마 책을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책 속에서는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아귀가 맞아들었으므로. 논리적 비약이나 커다란 구멍도 텍스트 안에서 이래저래 깁거나 조물닥거리는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현실은 앞뒤가 맞지 않았고, 나쁜 사람이 벌 받지도 않았으며, 커다란 구멍은 아무리 메우려해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끊없는 허기와 불안은 어쩌면 인간의 숙명이라고 여기는 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맨발로 학교 운동장을 걷고, 두 팔을 벌리고 쏟아지는 장대비를 맞으며, 연초록 나뭇잎에 온몸이 떨리고, 담장 너머 늘어뜨린 장미꽃 봉우리에 감격하던 때가 그리운 건 여전히 내 안에서 그렇게 자연과 연결되고 싶은 본능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회색 건물에 갇혀 하루 종일 의자에 허리를 붙이고 앉아 모니터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정신이 흐려질 때마다 독한 커피로 일깨우고 다시 조용히 자판을 두드리는 건 인간의 생리에 몹시나 반하는 일이다. 더구나 내가 원하는 감금이 아닌 환금을 위한 대가라니. 오로지 팔 수 있는 건 자신의 노동력밖에 없을 때는 더욱더 서글퍼지는 일. 


If we are not connected to and in deep communication with our body, we are not in contact to the earth and the focus of nature that we are meant to be in tune with. Once you allow yourself to be where you are, you will get rooted in your body. From there, anything and everything becomes possible. 



요가는 그렇게 끊어진 내 몸과 대화를 복원하고, 놓치고 있는 자연과의 소통을 회복하는 일이다. 자연이 매순간 변화하듯 내 몸은 늘 한결같지 않다. 세심하게 나의 몸을 살피고 내 의지대로 강요하거나 밀어붙이지 않고 늘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 목표한 것을 위해 분투함으로써 애써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하는 우리들에게 작가들 들려주는 한 마디는 슬프도록 아름답다.


I am not sure where I am going exactly but I am doing my best.


If we can let go of the habit of running all the time, and take little pauses to relax and re-center ourselves, we’ll also have a lot more joy in living. 



목표란 것이 과연 어디서 왔는지, 머릿속에서 왕왕 울려대는 소리들이 과연 어디서 왔는지, 나는 나를 정말 제대로 보고 있는지, 나는 세계를 정말 왜곡없이 보고 있는지, 요가를 하다보면 그런 복잡한 형이상학적 문제들이 굉장히 단순한 어떤 실체로 만져지고 보여진다. 자세를 하고, 내 몸을 감각함으로써. 내 호흡을 듣고, 나를 가만히 내려놓으면서. 그리고 내가 설정한 어떤 단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어떤 흐름에 함께 동조되는 느낌이 드는데, 그게 아주 기분이 좋다. 


Just be straight with yourself here without judgement. When you really get to the idea that being exactly where you are is the key that’s when you step outside the box you’ve been in. 


Transformation didn’t happen out of doing more, or trying harder, but rather through a total surrender to the flow of life and energy that was already available to her. 



내가 뭔가 잘못을 할 때마다, 실수를 할 때마다, 머릿속에서 꾸짖는 소리는 여전히 왕왕 댄다. 하지만 예전보다 훨씬 소리가 줄었다. 영어로 말하다 시제나 단복수 같은 기본적인 걸 실수하면 그렇게 내가 싫었다. 시험문제에 나오면 거뜬히 알아맞히는 문제를 왜 제대로 말하지 못하니? 하면서. 영어선생이 정색을 하며 지적을 할 때는 얼굴이 빨개지도록 부끄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 애송이 영어선생이 완전 틀렸고, 언어는 그렇게 틀리면서 배우는 거라고. 우리는 시험문제 정답 맞추는 거에 익숙했지 영어를 일상어처럼 쓰는 훈련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제라도 아이처럼 영어를 배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으니 충분히 즐기면서 많이 실수하다보면 지금보다 아주 나아질 수 있을거라고. 그렇게 나를 인정하고 두둔하고 껴안아주면 다시 방긋 웃고 뭔가 새롭게 할 힘을 얻는다. 머리서기 자세하다 미끄러진 다음 다시 자세를 잡을 때처럼. 


Savasana isn’t the end of my practice, it’s actually a new beginning.


Ultimately, it’s a journey to the core of your own being. In the work of yoga, the outer point of the body is the doorway to access that which you are seeking within you. The work is to keep peeling away the layers of the onion to get to the heart of you. The work to be done is to remove the layers that cover it.


So forget being a “real yogi”, and just be the yogi you are. Be simple, open, and straightforward about what matters to you and what you are working on. The true reward of yoga practice comes when we are courageous enough to step out from behind that mask and expose our brilliant, flawed, utterly human selves.


Hiding behind a mask costs us so much and leaves us with so little.


멋진 사람이 되고 싶고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 멋있게 보이려고 SNS에 몇 번이나 각도를 틀어 다시 찍은 사진을 올리고, 쿨한 척 하려고 하이쿠처럼 짧게 글을 다듬는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아니어서 그런 것에 익숙하지도 않지만 그런 나를 보는 것도, 그런 사람들을 보는 것도 몹시 불편하다. 필요에 의해 뭔가 팔아야 하고, 알려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굳이 거짓 퍼르소나를 만들고 날라야하는지 거대한 트랩에 갇힌 먹잇감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누군가 좋아요를 누르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는 능력. 누가 좋아요를 누르고, 누가 코멘트를 달았는지 조바심나게 뒤져보지 않을 수 있는 능력. 우리는 그 거대한 트랩에 갇혀 그런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날마다 세수하고 샤워하고 달리기하고 밥 먹듯이 읽고 쓰는 것. 그리고 그것 자체에 갇히지 않는 것. 온전히 감각하고, 진심으로 소통하고, 귀 기울여 듣는 것. 어쩌면 그게 요가의 본질이 아닐까 제멋대로 정의해본다. 


It is determined by what we tell ourselves.


We create our reality through what we say both aloud and to ourselves.


We are always constructing results out of what we 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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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
나오미 클라인 지음, 김소희 옮김 / 모비딕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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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읽고 든 생각, 

"이 책을 중고등학교 때 읽었더라면?"


아마도 우리가 인간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매우 달라졌으리라. 마치 학창시절 배운 한국 근현대사가 대학교 때 맞닥뜨린 진짜 근현대사로 뒤집어지는 듯한 경험이었다. 이후 난 <사피엔스>가 교과서 교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녔다. 특히나, '농업혁명이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는 대목에서는 슬픔마저 느껴졌는데, 현대사회에 지칠 줄 모르고 자신을 갈아넣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 보이는 듯해서였다. 인간의 역사는 약탈의 역사이고, 누가 어떻게 약탈하고, 누가 어떻게 분배하느냐의 문제는 테크노크라트가 가공할 힘을 더해가는 지금 더욱 절실한 문제가 되고 있다. 더구나 팬데믹이 지구를 뒤덮고, 우리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현실을 통과하는 지금은 더욱더.


재난이 우리를 뒤덮을 때 과연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

재난은 어떻게 작동하고 재난의 동력은 과연 무엇일까.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팬데믹이라는 현실을 통과하며 머릿속을 채웠던 질문이다. 이 때 만난 두 책. 나오미 클라인의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와 레베카 솔닛의 <이 폐허를 응시하라>. 둘 다 발행된 지 꽤 된 책들이다. 다행히 레베카 솔닛 것은 절판이 되지 않았고,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은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로 다시 태어났다.


인간은 미친 듯이 이기적이고, 자기 먹을 것을 위해서라면 제 자식의 살점도 뜯어먹을 수 있는 존재라고 배웠다. 하지만 레베카 솔닛의 책을 통해 진짜 현실에서 목도하는 인간성은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자발적으로 서로를 돌보고, 자기 것을 내어주고, 연대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간의 특질이 그렇게 나쁘지 만은 않다는 걸 탐사 취재로 밝혔다.


나오미 클라인은 한 발 더 나갔다. 그녀는 ‘재난의 세계사’를 통해 재난의 동학을 치밀하게 밝혀냈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얼마나 잘못된 역사인지 촘촘히 드러냈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는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세계 경제사를 신자유주의의 약탈경제로 갈무리한 탐사보고의 역작이다.


존 버거가 “모두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했을 때, 

재론의 여지 없이 엄지 척하며,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이유.


1998년 IMF와 2008년 금융위기를 모두 겪은 사람으로서, 신자유주의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전세계적으로 답 없는 자본주의의가 역사의 종말을 고했다는 걸 체념하듯 받아들였다. 각자도생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는 코로나 시대, 끊임없는 불안으로 기약없는 미래를 두려워하며 살고 있다.


그런데 또 팬데믹이라니!


코로나로 인해 자산이 있던 사람들은 벼락부자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벼락거지가 되었다고들 한다. 현실경제와 달리 주식과 부동산은 고공행진을 하고, 재산을 불리기 위해(혹은 낙오하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처럼 불안해 한다. 왜? 우리는 한 번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의 순간에 까닥 잘못하면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진다는 것, 그리고 조금만 똘똘하게 돈을 굴리면 누군가에겐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예전에도 그랬지만) 주식과 부동산 관련 콘텐츠들이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과연 그런 책이나 유튜브를 열심히 탐독하면 좋은 수익률을 낼 수 있을까? 도대체 세계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무엇일까. 모두가 자기 재산을 불리기 위해서만 골몰하고 있을 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과연 무엇일까.


과거의 나를 알아야 미래의 나를 기약할 수 있듯이, 과거 인간의 역사를 알아야 우리의 미래를,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유발 하라리가 인류의 길고 긴 역사를 단 한 권의 책으로 요약했다면, 나오미 클라인은 지난 50년 동안 일어난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단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역사가 주류가 만들어낸, 혹은 주류가 세뇌시키고 싶어하는 역사인 걸 알아채는 순간이 중요하듯, 우리가 알고 있던 것이 틀렸다는 걸 알아채는 순간이 바로 변혁의 중요한 순간이 아니겠는가.


부끄럽게도 나는 천안문 사태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지식인들과 그들을 탄압하고자 하는 중국 정부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 알고 있었다. 서구 언론들이 줄기차게 보도한 것들을 여과없이 수용한 탓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와 달랐다. 민주화 시위자들은 중국 정부가 국영농장과 공영농장을 보호하지 않고 규제없는 자본주의로 가려는 것에 반대한 것이었다. 등소평은 자신의 연설에서 ‘공산주의가 아닌 자본주의를 보호하고자 진압에 나섰다’고 밝혔다. 그 결과 중국은 국제적인 노동착취 공장이 되었고, 중국 억만장자들의 90퍼센트는 공산당원의 자녀들이 되었다.


만델라가 석방되고 아프리카 인종문제가 해결된 듯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백인 경제관리들이 만들어 놓은 촘촘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발목이 잡혔고, 결국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폴란드 자유노조 바웬사의 승리가 물거품이 된 것도 마찬가지. 우리가 알고 있는 ‘칠레의 기적’은 기실 폭압적인 살인정치를 바탕으로 국영기업과 민주주의를 말살해 얻은 결과일 뿐이다.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미얀마 사태가 80년 광주를 떠올리게 하듯 폭압적 살인정치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만 응시해서는 알 수 없는 세계사의 흐름을 간과하면 안 되는 이유.


“시카고학파 경제학이 보기에 국가는 식민지적 개척지이다. 쇼크요법의 핵심은 거대한 이윤이 신속하게 창출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는 것이다. 밀턴 프리드먼이 1950년대에 개시한 운동은 고수익이 생기는 무법의 개척지를 포획하려는 다국적 자본의 시도라고 보면 가장 좋을 것이다.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은 공공부문에서 수익성 좋은 새로운 개척지를 무자비하게 찾아낸다. 마치 아마존을 통과하는 새로운 수로를 확인하고 잉카 사원 내부에 숨겨진 금의 위치를 표시하는 식민지 시대의 지도 제작자를 보는 듯하다. 식민지 시대의 골드러시 때 그랬듯 개척지에서 부정부패는 늘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가 지난 30년 동안 살아온 세월은 바로 개척지 자본주의 시대였다. 개척지가 위치한 장소는 위기에서 위기로 계속해서 바뀐다. 그리고 법이 자리를 잡자마자 즉각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팬데믹을 맞아 거대 테크기업들은 물 만난 고기 같다. 마치 9/11 이후 국가 부문의 대부분을 민영화한 미국 정부를 다시 보는 느낌이다. 이 거대한 약탈의 시대, 그들은 새로운 식민지 개척지를 만난 것처럼 투지가 넘친다. 그들은 팬데믹을 우리의 모든 행동과 생각을 관찰하고, 교육과 의료를 원격화하고, 삶의 대부분을 디지털화하는 명분을 주는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나오미 클라인은 그런 테크기업들의 의도를 하나하나 깨부수며 외롭게 싸우고 있는 투사다. 그레타 툰베리가 가장 존경하고, <뉴요커>가 ‘미국 좌파 중에서 가장 뚜렷한 인물’이라고 추켜세워도. 전세계 지성들이 그녀의 업적과 활동에 감사하고 정력적인 활동에 박수를 보내도. 이상하리만치 우리나라에서 그녀의 책이 신통치 않게 팔리는 걸 보면 의아하다. 다만 예전 <쇼크 독트린>이 중고 시장에서 정가보다 훌쩍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되는 걸 보면 알아보는 사람들은 알아본다는 건지.


얼마 전 쇼샤나 주보프의 <감시 자본주의>가 출간되었다. 나오미 클라인이 이야기하는 ‘팬데믹 쇼크 독트린’을 깊이 파기에 더 없이 좋은 책이라 여기지만 워낙 장황하게 설명하기 좋아하는 저자라 엄두를 못내고 있다. 반면 나오미 클라인은 어려운 내용도 쉽게 쓰는 재주를 갖고 있다. 벽돌책을 단숨에 읽어내리게 하는 재주. 분명 정치경제 관련 도서인데 소설책처럼 심장을 떨리게 하는 재주. 남다른 글쓰기 능력이 어려운 주제를 대중과 쉽게 만나게 하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문제는 과학이 아니다. 자본주의다.’라고 기후문제의 본질을 외친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는 <자본주의는 어떻게 재난을 먹고 괴물이 되는가>와 함께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부디, 이 여인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아서 계속 계속 책을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는 것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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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6-01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나뭇잎처럼 2021-06-01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감사하지요. 나오미 클라인은 책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행동이 세상을 바꾼다고 하던데, 나오미의 열정과 담력 그리고 용기와 실천을 전달할 방법이 미약하네요. 지금 꼭 필요한 책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 아수라장에서 앞뒤를 분간하려면 말이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림의 역사
데이비드 호크니.마틴 게이퍼드 지음, 민윤정 옮김 / 미진사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피카소가 “I draw what I think, not what I see”라고 말했을 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가장 명확하게 이야기할 줄 아는 작가 중 하나가 바로 호크니 아닌가 싶다.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 그렇게 명료하게 밝힐 줄 아는 작가도 참 흔치 않다. 더구나 현대미술을 하는 사람 중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 외에는 책을 보는 게 일이라는 작가의 삶이 그의 생각과 깊이를 표현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추측해본다. 예술사를 다룬 책 중에 단연 으뜸을 꼽으라면 곰브리치도 아니고 하우저도 아닌 조중걸의 <서양예술사>. 고대, 중세, 근대, 현대미술까지 예술사를 형이상학적 관점, 즉 세계관의 변화로 그려낸 그의 역작은 세계 어느 미술사학자도 시도하지 못한 성취다. 그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철학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재미지게 읽을 수 있는 책. 그 책이 재미진 이유는 하나, 예술을 파편적 분석이 아닌 인간이 사유하고 인식하는 방식으로 바라보고 작품 속에 드러난 세계관을 적확하게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그림의 역사>가 재미진 이유도 마찬가지. 우리가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보는가. 그 속에서 무엇을 보는가에 대한 정확한 문제인식과 그것을 풀어나가고자 하는 일관된 방향이 있다. 그는 ‘픽처’를 지식인 동시에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정의하고, 지속적으로 ‘사진’가 비교하면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현실과 진실 사이에서 무엇에 가까운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세계를 바라본다. 같은 사람을 보더라도, 만약 내가 그를 잘 알고 있다면,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를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 기억은 당신의 기억과 다르다. 우리가 같은 시간, 같은 곳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동일한 것을 동일하게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여러 요소들이 거기에 영향을 끼친다. 당신이 전에 그 장소에 가 봤다거나, 그 장소를 잘 알고 있다면, 당신은 그 장소를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된다.” (P 78)


회화사 사진이나 다른 어떤 장르보다 힘을 갖는 건 그 한 장의 이미지에 겹겹이 축적된 시간 때문이다. 그는 루시안 프로이트가 그린 자신의 초상화를 가리키며 그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124시간을 앉아 있어야 했다고 토로한다. 그래서 찰나를 포착한 사진과 달리 그 그림에서 우리는 축적된 시간과 작가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존 버거가 <The way of seeing>이나 <A way of seeing> 아니라 <Ways of seeing>을 썼을 때, 나는 그의 입장을 지지했다. 우리가 봐야 하는 단 하나의 시선은 없다. 하지만 원근법은 그 단 하나의 입장이 절대적이라고 말한다. 호크니는 반대한다. 


“19세기 중반의 아카데미 회화들은 원근법을 너무 엄격하게 적용한 나머지 재미없는 그림이 되고 말았다. 그 회화들은 깊은 공간을 담고 있지만, 그 공간이 그림의 안쪽으로만 파고들 뿐 그림 전체를 지배하지 못했다. 그렇게 깊이만 갖고 이야기를 전달할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그런 픽처에서는 모든 사건이 단 한 순간에 벌어진다. 그런 픽처에는 시간이 담기지 않는다.” (P 273)


원근법은 하나의 시점으로 중심과 주변을 구분하고, 주변부를 소외시킨다. 원근법은 하나의 고정된 시점을 전제로 하는 관점을 선택한 것이다. 우리 자신을 그 일부로 넣지 않고 관객으로 분리시키는 행위. 나는 그것이 서구의 지성사나 경제사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중국인들이, 인디언들이 세계를 인식하고 바라보는 방식은 그와 무척 달랐다.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다르게 전개된다. 미술이 재현에 그치지 않고 인간정신을 표현하고 인격을 수양하는 차원이 되는 지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은 얼마나 진실에 가까울까? 우리는 진실에 다가서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장 시메옹 샤르댕은 “죽은 토끼를 재현하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린 토끼 그림을 포함해서, 내가 여태까지 봤던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 말처럼 격하게 공감하고 싶은 말도 없다.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선 이미 배운 것들을 “Unlearn” 해야 한다. 내가 배운 것들이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으면 새로 배우는 것들이 그것을 강화하는 데 쓰이기 마련이다. 내가 지지하고 있는 반석을 끊임없이 부수고, 의심하고, 회의해야 한다. 들라쿠르아는 사진에 대해 ‘너무 정확해서 오히려 오류가 생기는 복제 장치’라고 했다. 호크니는 렌즈의 이미지가 관찰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적 측정의 결과이며, 우리는 세계를 그런 방식으로 보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입체파는 500년 넘게 사용된 원근법을 향한 일격. 우리가 공간 속에 있고, 그걸 만지고 이동시킨다는 것을 인지한 사람들이다.  


사물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지는 생생한 광경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피카소는 우리가 확신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네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진실인지 끊임없이 되묻게 하는 것이다. 


What is a sculpture? What is a painting? We are stuck in a cliché and definition that is no longer valid, forgetting the fact that role of an artist is to think and redefine differently.” — Pablo Picasso


흥미로운 건 피카소는 무엇이 예술인지 같은 지적 탐구보다 재료를 만지는 기쁨에 천착했다는 것인데, 그게 바로 그게 바로 우리가 무언가를 배우면서 가장 놓치기 쉬운 대목. 즉 책으로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태도, 인간을 사유하는 존재로만 바라보는 태도에 대한 일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에 힘껏 몸을 밀어붙여서 감각하는 태도. 자꾸만 학교에서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그것. 미술은 내 몸을 밀어붙이게 할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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