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보다 하나

 

 

 


 

                                                                                                      목숨과 숨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지만 곰곰 생각하고 꼼꼼 들춰보면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 목숨 > 은 " 목 " 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숨을 쉴 수 있는 힘에 방점이 찍힌 단어이고, < 숨 > 은 " 코 " 나 " 입 " 으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기운에 방점이 찍힌다. 전자는 목에 남아 있는 숨이고, 후자는 코나 입에서 최종적으로 뱉어낸 숨'이다

다시 말해서        :       목숨은 체내 공기의 양이 남아 있는 상태이고 숨은 들숨을 통해 얻은 체내 공기를 날숨으로 전소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  목숨보다는 숨이 더 간절할 뿐더러 절박하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목숨은 종종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 여럿이 거래를 도모  " 목숨을 도모하다 " 따위의 관용구   할 수 있지만,  숨은 이런 거래가 애초에 불가능하다. 또한 한탕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하는 사람 "    목숨을 걸다 "    은 있으나 한탕을 위해 자기 숨을 내놓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  " 숨을 걸다 " 는 관용구는 없다. 즉, 숨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목숨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여, 친구여 !  둘 중 뭣이 더 중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있게 < 숨 > 에 한 표를 던지겠다.  어떤 사안에 대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며 큰소리치는 사람은 많다. 박근혜와 김기춘은 아랫것들에게 좌파 척결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라고 지시를 내렸지만 정작 본인은 목숨은 고사하고 그 알량한 자리에서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꼴을 보면 이 새끼들이 내뱉는 목숨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내 해석에 대해 이현령비현령이라고 비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예부터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 대체 불가능성 " 에 대해서는 주로 한 글자 단어'가 차지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자어 조합이 아닌 순우리말 단어를 살펴보면)       눈, 코, 귀, 입, 손, 발'은 물론이요, 모, 벼, 쌀, 밥도 모두 한 글자 단어'가 아닌가 말이다. 금이야 음식이 넘쳐서 굶어죽는 사회를 상상할 수 없지만 백 년 전만 해도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굶어죽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 했던 사회가 아니었던가.  인간은 신을 두려워했지만 그보다 절박했던 것은 땅이었다. 하늘이 명분이라면 땅은 " 먹고사니즘 " 이니까.  그렇기에 하늘은 두 글자요, 땅은 한 글자가 아니었을까 ?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두 글자는 밥이라는 한 글자'보다 중헌 게 아니었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 사랑보다 밥이 중요한 시대 > 와 < 밥보다 사랑이 더 중요한 시대 > 中  어느 것이 더 나은 세상일까 ?  나는 차라리 사랑보다 밥을 중시하고 아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밥이 곧 숨이라는 인식.  그리하여 남의 밥그릇을 빼앗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숨을 빼앗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민하는 사회가 더 낭만적이지 않을까 싶다. 나라는 한 글자와 너라는 한 글자가 동일한 환대로 겹쳐지는 이유도 타자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동양철학의 인본주의에서 비롯된 인식일 것이다. 반면 알파벳은 너(you)보다는 나(i) 중심이다.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 덕목처럼 여겨지면서 남의 밥그릇을 우습게 여기는 사회가 되었다.

빼앗은 밥이 그 사람의 숨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쉽게 내릴 결정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에 사랑 타령은 넘치고, 넘치고, 넘친다. 모두 다 사랑 밖엔 난 몰라 _ 라고 말하지만 왠지 허투루 내뱉는 인삿말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진지하게, 졸라 촌스럽게 밥 타령을 하고 싶다. 남의 밥그릇 함부로 차지 말라고, 너는 누군가에게 따순 밥이었던 적이 있냐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7-02-04 1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밥그릇 지키려는 정치인들은 국민이 고생하면서까지 지킨 밥그릇을 뒤엎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2-07 10:33   좋아요 0 | URL
사이러스 님 아니었으면 무플이 될 뻔했네요...ㅎㅎ 감사합니다...ㅎㅎㅎㅎ
 

 

 

 

 

 

 

 



무제無題








1.                    좋은 소설이나 훌륭한 시나리오 속 캐릭터는 필연성과 당위성을 획득한다. 쉽게 말하자면, 그 캐릭터에 부여된 가정 환경과 생활 환경을 다른 조건으로 대체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반면에 형편없는 소설이나 나쁜 시나리오 속 캐릭터의 백그라운드'는 얼마든지 다른 환경 설정'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예를 들면 김애란의 << 두근두근 내 인생 >> 속 주인공인 아름이가 앓고 있는 조로증'은 필연성과 당위성이 떨어지다보니 작위적이다. 조로증을 백혈병(시한부 선고를 받은)으로 치환할 수도 있고, 단순히 지체장애를 가진 아이로 바꿔도 캐릭터 고유의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아름이를 신체 건강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죽는, 그런 어른스러운 아이로 설정해도 된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핵심은 " 아이 같은 부모와 철없는 부모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 " 라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장 나이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아들(조로증에 걸린)이라는 설정을 강조하기 위해 조로증을 호명하는 것은 억지스럽다. 바로 그 점이 이 소설이 졸라 후진 이유'이다. 좋은 캐릭터(소설이나 영화 속)는 " 살아온 날들에 대한 대체 불가능성 " 을 획득한다. 예를 들면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1954년에 연출한 영화 << 길 >> 에서 서커스 차력사를 연기한 안소니 퀸(극중 짐파노)의 " 빽그라운드 " 를 대체할 수 있는 설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력사 대신 약장수 ??!  혹은 공장 노동자 ???!  떠돌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채플린도 마찬가지'다.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운명적인 것'을 의미한다.





2.                     아이에게 아이답게 행동하라는 어른의 요구는 꼰대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어른에게 어른답게 행동하라는 소년의 요구 또한 중2병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라는 점에서 서로 대동소이'하다. 왜냐하면 아이는 어른인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어른스럽고, 어른은 아이인 당신에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스럽기 때문이다. 좋은 어른은 아이를 어른으로 인정하고, 좋은 아이는 어른이 때로는 작은 일에도 상처받기 쉽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싸울 때 " 너 몇 살이야 ? " 라고 호구 조사부터 하고 보는 어른은 반드시 어릴 때 " 나이도 어린 놈에게 욕 처먹으니 좋으냐 ? " 라고 말했던 놈이다. 둘 다 서로 대동소이한 놈이다. 너 몇 살이냐 _ 라고 호구 조사를 할 찰나에 먼저 " 선빵 " 을 날리는 놈이 나이 가지고 싸움의 우선권을 쥐려고 하는 놈보다 윤리적인 새끼'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3.                      무당의 굿이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는 데에는 굿이라는 행위가 현대의 " 심리 치료극 " 에 가깝기 때문이다. 굿을 하는 무당은 심리치료사'이다. 무당은 상담자의 죽은 부모나 친척에 빙의되어 죽은 자를 상담자 앞에 나타나지만, 사실은 죽은 자가 산 자(상담자)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상담자를 과거로 데려간다는 점에서 퇴행적이다. 현실 세계에서 고통받았던 어른은 이제 시간 여행을 통해 어린이가 되어 죽은 자와 대면한다. 과거 여행을 통해서 죽은 자와 산 자'는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서로 화해한다. 현대 드라마 심리 치료극'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불만은 모두 과거(트라우마)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심리치료사는 상담자를 과거 속으로 안내한다. " 이제부터 무대 위에 서 있는 저 사람은 당신이고 옆에 계신 분은 당신의 어머니이십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당신의 아픈 장면을 보도록 합시다. 레드 ~ 썬 ! "







4.                         이 글이 매조지하게 될 최종 결론은 다음과 같다     :     박근혜라는 캐릭터의 빽그라운드는 대체불가능하다. 박정희라는 유신 시대의 괴물이 낳은 딸'이라는 가정 환경 조사서를 다른 조건으로 대체할 수 있는 설정은 아무것도 없다. 쓰빽따끌하며 아쓰뜨랄한 박근혜'라는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이다. 우리는 지금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졸라 유치한 인간 박근혜를 보고 있는 것이다. 화장실 변기에 집착하는 박근혜를 보면서 나는 환갑이 지난 여자의, 후카시에 집착하는 항문기 고착 증후를 떠올리게 된다. 박근혜는 똥에 대한 집착이 돈으로 바뀐 경우이다(실제로 항문기 고착에 머문 캐릭터는 똥과 돈을 동일한 것으로 인식한다). 아따, 참말로 더러븐 은유법이다이잉~               << 드라마 박근혜 >> 에서 개인의 비극을 벗어나 외연을 확장해서 대한민국 전체의 비극에 대해 논해 보자. 우리는 왜 박근혜에게 열광했는가 ?    간단하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 자인 박근혜에게서 죽은 자인 박정희를 투영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박정희를 죽인 인물은 김재규가 아니라 박근혜일지도 모른다. 전자가 실재적 살해라면 후자는 상징적 살해'이다. 우리는 박근혜를 통해서 박정희(라는 유령)가 사실은 위대한 거상巨像'이 아니라 " nobody(좆만한 xx)" 이자 " nothing(좆도 아닌 xx) " 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승과 저승을 분리하지 못하고 경계가 애매모호할 때 공포는 발생한다. 그 사실은 스티븐 킹 소설이 증명한다. 기승전박이라고 욕하지 마시라. 오늘은 기승전킹'이니까. 하여튼, 킹이여...... 영원하라 ■

 

 

 

 

                           

덧대기      ㅣ       < 은교 > 와 < 롤리타 > 는 둘 다 남성이 어린 여성에게 성적 판타지를 갖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조를 갖췄지만 두 작품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 롤리타 >> 의 주인공 험버트에게 있어서 " 롤리타 " 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지만,  << 은교 >> 의 주인공 이적요'에게 있어서 " 한은교 " 는 대체 가능한 인물'이다.     험버트에게 있어서 롤리타가 대체 불가능한 이유는 운명적이라는 데 있다.   그렇기에 소설 << 롤리타 >> 는 남성 욕망을 다루지만 외설적이지 않고 뻔뻔하지도 않다.   반면에 소설 << 은교 >> 는 한은교라는 여성을 단순하게 소비하는 차원에서 다룬다.   이적요에게 은교는 운명적이라기보다는 젊고 예쁜 여자'에 불과하다. 소설 << 은교 >> 가 구질구질한 이유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립간 2017-02-01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호기심이라는 유아기의 어느 시점에 고착되어 있죠. 이 상황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2-01 10:45   좋아요 0 | URL
아이를 어른으로 대접하고, 어른도 실수를 할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봐도 마립간 님은 호기심 많은 아이 같습니다. 이거 아주 좋은 현상이죠..ㅎㅎ

cyrus 2017-02-01 1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치사극 ‘공화국’ 시리즈처럼 몇 십 년 후에 ‘박근혜’ 시절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나온다면 정말 볼만하겠어요. 아마도 제가 죽고 난 후에 나올 것 같고요, 그때까지도 숨은 박근혜 세력이 남아 있다면, 그들의 압력 때문에 재미난 사건들이 드라마에 언급되지 못할 수도 있겠어요. 후손들에게 부끄러웠던 시절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면 게이트에 연루된 사람들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2-01 11:11   좋아요 2 | URL
아마 공화국을 다룬 현대사 드라마 중 가장 재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장록수 > 나 < 연산군 > 처럼 단골 메뉴가 되어서 영화도 무진장 쏟아낼 것같습니다. 아마 한국의 감독이라면 모두 다 탐날 어마어마한 서사‘죠. 이보다 막장 드라마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ㅎㅎ

stella.K 2017-02-01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린 왜 이리도 박정희의 그늘을 못 벗어나는 걸까요?
그 와중에 그네 누님 어떻게든 탄핵을 모면하려고
하는 게 보이니까 더 혐오스럽더군요. 우린 이런 식으로
박정희의 그늘을 벗어나는 걸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ㅠ
박정희의 그늘을 못 벗어나는 걸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유아기란 생각도 들구요.

은교 저는 정말 잘 봤는데 곰발님의 해석을 거치면
별개 아닌게 되버리니 거 참...
롤라타를 읽어봐야겠군요.

아, 근데 킹 소설이라 하시면...?

곰곰생각하는발 2017-02-01 15:17   좋아요 1 | URL
우상이 된 거죠. 세뇌의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박정희라는 신화의 대표적 사례가 오직 나라 사랑만 했지 재산 증식에는 관심이 없었던
이미지인데. 사실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인간이 박정희 아닙니까. 그 신화를 딸이 부셨죠..

+

박범신 인터뷰 보면 은교와 롤리타가 비슷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기분 나쁘다고 한 적 있는데
전 속으로 웃었습니다. 이야, 기분 나빠해야 될 사람은 나보코보지... ㅎㅎ 이렇게 말입니다..

2017-02-01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2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할머니의 티타임


 



 

                                                                                                       고열을 동반한 감기에 걸린 적이 있다.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나흘을 앓았다. 혼자 끙끙 앓다가 독거사로 죽는, 그런 사회면 기사가 떠올라 서글펐으나 두렵지는 않았다.

감기 따위로 죽지 않을 자신감과 감기 따위로 죽어도 아깝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는 자괴감이 동시에 밀려왔으니까. 그냥......  끙끙 앓았다. 무료했던, 어느 삼경 즈음. 라디오에서 심야 방송 디제이가 시청자가 보낸 사연을 소개했는데 이민자의 악전고투를 담은 내용이었다. 그녀도 나처럼 머나먼 타관(라디오 속 사연의 주인공은 아르헨티나에 거주하고 있었다)살이에 지쳐 있었다고. 결혼은 실패하고 사업도 망했으니 부모 볼 면목이 없던 그녀. 빈 방에서 심한 감기로 누워 있었는데...... 죽기로 결심했던 터라 병원에 갈 생각은 없었고 그저 우주보다 캄캄한 방에서 온갖 상념에 사로잡혔다고.

그때였다고 한다, 캄캄한 천장이 스크린이 되어 한국에서 즐겨 먹던 순댓국이 북위 37도 전갈자리 전방 19도에 위치한 sk인공위성 불빛처럼 선연하게 떠올랐던 순간.  죽기로 결심했던 여자는 눅눅한 비린내에 말캉거리는 비계를 떠올리니 침이 고이는 소리가 들렸다고.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고 하지 않았던가. 다음날, 그녀는 아픈 몸을 추스리고 통장에 남아 있는 잔고를 금성 탈수기처럼 탈탈 털어서 택시를 타고 한인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향했다고. 그리고 따순 국밥 위에 씨뻘건 김치를 얹어 입에 넣는 순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녀에게 인생 음식은 순댓국이었던 것이다. 그때 나는 그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몸을 추스리면 순댓국을 먹어야 겠다고 생각했다1). 오소리감투 듬뿍 넣어 달라고 해야지.

그리고 며칠 뒤, 나는 그녀처럼 누에고치처럼 둘둘 말던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나 순댓국을 먹었다. 감기따위로 죽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때 비로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것은 허기'가 아니라 차갑고 텅빈 마음을 따스하게 녹일, 단순한 온기'였다는 사실을. 그날 이후로 그녀처럼 나 또한 몸이 아프면 순댓국 생각이 난다. 시베리아 허허벌판 같은 내 마음에는 연탄처럼 훈훈한 네가 필요하구나. 아..... 마디꾸나.  눈물이, 앞... 을 가린다.                             이번 설연휴도 마찬가지였다. 으슬으슬 춥다 했는데 덜컹 독감에 걸린 것이다. 명절이라 온갖 기름진 음식이 널렸으나 막상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은 따순 순댓국이 전부였다.

히말라야 정상에서도 얼어죽지 않을 만큼의 옷을 껴입고 단골 순댓국 가게를 찾았다. 모 신문 기자가 최고의 순대국 식당'으로 선정했을 만큼 유명한 곳이라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이런 곳에서는 혼자 가게 되면 눈치를 보기 때문에 합석은 당연한 것. 결국 양해를 구하고 합석을 했다. 내 앞에 앉은 사람은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였다. 팔순 노인처럼 보였다. 젓가락을 집는 손이 서툰 것을 보면 말이다. 내가 합석을 했을 때에, 이미 할머니는 순댓국을 3/4정도 비운 상태였다. 멀뚱멀뚱 앉아 있기 뭐해서 할머니의 빈 반찬 그릇에 깍두기도 담아 드리고 김치도 담아서 잘라드렸다. 고맙습니다.                   할머니가 내게 말을 건냈다. 의외였다. 할머니의 말투가 무척 공손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말 없는 목례로 대신했다.

때마침 주문한 순댓국이 나와서 나는 땀을 흘리며 따순 국밥을 먹었다. 진로 소주와 함께 말이다. 따순 국밥 때문이었으리라. 밖을 나오니 춥지가 않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걷다가 얼음처럼 멈춰다.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당황스러웠다. 뭐지 ? 나는 내가 왜 울어야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해 잠시 걸음을 멈춘 채 원인을 찾아야 했다. 아, 할머니 !                                                         나는 맛집을 선호하지 않는다. 후딱 먹고 후딱 일어아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맛집'에서는 음식의 맛을 음미한다는 게 사치처럼 느껴지고는 했으니까. 더군다나 혼자 밥을 먹어야 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 강박 때문일까 ?

나는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마자 서둘러 뜨거운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반면, 할머니는 노년으로 인해 소화 능력이 떨어지다 보니 식사 속도는 무척 느렸다. 내가 합석을 했을 때 이미 그릇을 거의 다 비운 상태였는데도 할머니는 여전히 분주히 움직이셨다. 병약함에서 오는 느림이 아니라 건강함에서 오는 느림이라 그 여유가 좋아보였다. 내가 반주와 함께 국밥을 먹는지라 속도를 늦추자(1/3정도 먹었을 때) 할머니는 비로소 순댓국을 깨끗이 비우셨다. 할머니는 그릇을 비우자마자 서둘러 일어나셨다. 할머니마저 서두르게 만드는 힘. 그게 바로 맛집의 위엄이었다. 그런데 할머니는 다시 자리에 앉으셨다. 손에는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가 들려있었다. 아, 할머니는 티타임을 즐기기 위해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고 오신 것이다. 할머니의 위엄이라고나 할까 ?

밖에는 손님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할머니는 식당 안에서 식사를 끝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그들을 구경하고 있는 것이다. 속으로 웃었다. 할머니의 티타임으로 인해 나와 할머니는 동시에 식당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할머니의 티타임이 사실은 나를 위한 배려였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식당에서 함께 동석한 사람을 두고 먼저 일어날 수는 없다는, 사람에 대한 예의. 그것이 바로 할머니의 티타임이었던 것이다.  




 

 

 

1)                   이 이야기에 대한 사연은 언젠가 글로 쓴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연말만 되면 아팠는데 사실은 감기가 아니라 죄다 술병이 난 거였다. 술병을 비우면 술병을 얻는다. 이토록 간결하고 선명한 교환 방식'이라니 !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꼬마요정 2017-01-31 0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술병을 비우면 술병을 얻는다. 명문장입니다. ㅎㅎㅎ 할머니 멋지십니다. 이 밤에 저도 순대국밥..ㅠㅠ 먹고 싶군요.

명절 즐겁게 보내셨는지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1-31 01:34   좋아요 0 | URL
오한과 함께 설사병이 찾아와서... 죽다 살았습니다.. ㅎㅎ하루종일 잤더니.. 이거 잠이 안 오네요. 클났네..

새아의서재 2017-01-31 0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서 코끝이 살짝 찡~~

곰곰생각하는발 2017-01-31 01:36   좋아요 0 | URL
고맙더군요. 할머니 일어나셨으면 그거 치운다고 그릇 치우고.. 또 사람 받는다면서 이리저리하다 보면... 왜 부산스러워서 오롯이 먹기가 그런데.. 할머니 때문에 잘 먹었습니다. 뒤돌아생각하니 어쩌면 할머니의 티타임이 나를 위한 배려였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호호 불어가며 커피 드시는데 어찌나 좋아보이던지..

새아의서재 2017-01-31 0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늘 어른은 어른이구나 할때가 있어요. 아.. 저도 덩달아 따뜻한 배려를 받은듯한 그런 기분이 듭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1-31 02:17   좋아요 0 | URL
제가 그릇에 깍두기와 김치를 담아드렸더니 고맙습니다, 하시면서 인사를 하시더라고요. 팔순 노인이라면 ˝ 아이구, 고맙수.. ˝ 뭐 이 정도일텐데.. 괭장히 예의가 바르셔서 깜놀했습니다.

수다맨 2017-01-3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설 지나고 나니까 다시금 한파인데, 강추위를 잠시나마 잊게 할 만한 따순 글입니다. 설은 잘 쇠셨는지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2-01 06:54   좋아요 0 | URL
조금 지났나요. 하튼... 해피 설‘입니다. 저에게 설은 아무 의미도 없지만... 그래도 설에 눈이 오니 좋긴 하더군요..

시이소오 2017-01-31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ㅋ ㅋ ㅋ ㅋ ㅋ ㅋ 술병을 비우면 술병을 얻는다. 역쉬 기지 작렬.
아프시고 따슨 글인데 속도없이 웃다갑니다. 부디 쾌차하소서.

곰곰생각하는발 2017-02-01 06:54   좋아요 0 | URL
아, 시이소오 님. 올해는 무탈하시고 본업으로 돌아가셔서 걸작 하나 만드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뭐, 명절에 술병 나도 괜찮죠.. ㅎㅎ

나비종 2017-01-3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 번째 손님>이 생각나는 따뜻한 글입니다.^^
‘술병을~‘ . 이 한 문장 앞에서 많은 생각을 하다 갑니다. ‘마음을 비우면 마음을 얻는다.‘ 처럼 일반화시켜도 적용될 수 있겠다는. 뭐든 비워야 새롭게 얻을 수 있으니, 어쩌면 삶의 이치를 관통하는 문장일 수도 있겠다는.

곰곰생각하는발 2017-02-01 06:56   좋아요 0 | URL
그럼요. 비워야 채울 수 있는 것이니, 비우지도 않고 채우려다 터지는 경우가 있죠.
나비종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표맥(漂麥) 2017-01-31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몸살감기... 홀로의 시간... 순대국밥... 이 데쟈뷰는 뭐지? 이런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올해는 정말 건강하시길...^^

곰곰생각하는발 2017-02-01 06:56   좋아요 1 | URL
표맥 님도 슬픈 시절이 있으셨군요. 감기, 독거, 순댓국.... 이거 뻔합니다..

2017-01-31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1 0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01-31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때론 지친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위대하고 엄청난 힘이 아니고, 뜨거운 국밥 한그릇 일수도, 차마 일어서지 못하는 그 순한 마음일 수도..

곰곰생각하는발 2017-02-01 06:59   좋아요 0 | URL
하... 이제 곧 입춘이네요.. 절기 볼 때마다 정말 조상의 지혜에 감탄하고는 합니다. 입춘 되면 확실히 날이 따스해지겠죠 ?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다시 그렸다.

 


댓글(27)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7-01-25 1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낙서가 어디 있어요? 제 눈엔 왜 멋진 그림이 보이죠? ^^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5 11:40   좋아요 0 | URL
그림이라니요. 낙서입니다... 낙서..

시이소오 2017-01-25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철나무꾼님, 아갈마님 뿐 아니라 곰발님도 그림 솜씨가 탁월하시군요. 부럽습니다 ^^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5 12:48   좋아요 0 | URL
제 그림은 그냥 베껴쓰기 수준이어서 그림도 아닙니다.. ㅎㅎ

새아의서재 2017-01-25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곰곰발님.....겸손요! ㅋㅋㅋㅋ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5 14:40   좋아요 0 | URL
ㅎㅎ 겸손은요.. 어릴 때 정말 교과서에다가 무진장 낙서 했죠..ㅎㅎㅎ

2017-01-25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5 1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5 15: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5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5 21: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yureka01 2017-01-25 14: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낙서가 아니었네요..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5 14:39   좋아요 0 | URL
낙지입니디ㅏ...ㅎㅎㅎ

카스테라 2017-01-25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잘그리셨당. ^^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5 16:37   좋아요 1 | URL
오, 반응 좋은데요. 종종 낙서 종종 올리겠습니다..

나와같다면 2017-01-25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곰곰생각하는발님은 예술적 감수성이 예민하신것 같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5 16:36   좋아요 0 | URL
감수성만 예민한다는 게 단점입니다... ㅎㅎ

다크아이즈 2017-01-25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곰발님~~~~ 어쩌자고 그림까지!

이곳만의 품격과 아우라가 느껴지는 공간을 창조 ㅡ 이 말은 안 쓰고 싶습니다만 ㅠ ㅡ 하시는 알라디너님들~~~~ 그저 존경과 감탄만이 감상하는 이의 몫입니다^^

2017-01-25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5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1-26 1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한엄마 2017-01-25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실력이 엄청나십니다.
항상 사람 그리려면 동그라미에 세모만 그리는 제가 창피하네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6 13:57   좋아요 0 | URL
그림은 말 그대로 학습의 결과입니다.
조금만 다 배우면 쉽게 그리는 것인데.... 전 솔직히 재능은 없어요. 베껴쓰기는 그럭저럭..

보슬비 2017-01-25 2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말 정말 하기 싫지만.
재수없어요~~~ 곰발님~~~ 진짜!!!!!
못하는게 뭡니까?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6 13:58   좋아요 1 | URL
아이고. 왜 그러십니까... 새해 덕담으로 이해하겠습니다... ㅎㅎ

sslmo 2017-01-25 23: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보슬비님 말씀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이렇게 멋지게 그리시면 어쩌란 말입니까? 췟~(,.)
전 개점 휴업이었는데 폐업하게 생겼습니다.
갠적으루 눈밑의 미인점이 젤 눈에 띱니다. 인기를 먹고 살아야 하시겠습니다, 속닥~‘‘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6 13:59   좋아요 0 | URL
인기로 먹고 사는 운이었다면 지금 같은 신세는 아닐 것입니다..ㅎㅎ
새해 덕담으로 알겠습니다. 양철나무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공감이 문화의 뼈라면 저항은 문학의 뼈 :


 

 

 

 

 

 

 

눈물은 내려가고

             밥술은 올라가지 않앰시냐

 


 
 


' 난 그런 밥 안 먹어! 그게 무슨 밥이라? 감저(고구마) 꽁댕이지. 맨날 그런 것만 맥이구…….' 내 말에 나 스스로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는데, 아닌게아니라 그 말이 어머니의 아픈 데를 정통으로 찌른 모양이었다. 보통 성난 것이 아니어서 눈에 불이 철철 넘치는 듯했다. '요새끼, 말하는 것 좀 보라! 그게 무슨 밥이라? 아이고 요것이 먹는 음식을 나무래는구나. 고생허는 에미 불쌍토 안해서 날 나무래여?'그렇게 해서, 나는 기둥을 꽉 껴안은 채 징징 울면서 네댓 대 매를 견뎌낸 다음, 밥상머리로 끌려갔는데, 한판 난리굿을 피운 뒤라 밥맛이 각별히 좋았다. 물론 밥이 아니라, 고구마 세 자루에 김치 세 가닥이었지만, 역시 목구멍은 포도청이었나 보다. 아직도 울음이 남아 연방 쿨쩍거리면서 고구마를 씹는 나를 넌지시 바라보던 어머니는, 숟갈이 필요없는 식사인데도 자못 엄숙하게 예의 숟갈론을 들먹였다.'그것 보라. 눈물은 내려가고 숟가락은 올라가지 않앰시냐. 그러니까 먹는 것이 제일로 중한 거다.'

 

- p.80-81, 지상에 숟가락 하나



 

 

                                                                                                        순문학이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문학의 종착역은 여의도인데 읽어도, 읽어도, 읽어도 오이도라. 여기는 어디메뇨 ?                              이처럼 삼천포에서 헤매다 보면 이럴려고 내가 밤 새워 제임스 조이스의 << 율리시스 >> 를 읽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곤 한다.

음식으로 치면 순두부 같다고나 할까 ? 보다 선명하고 명징하며 자극적인 맛을 찾다 보니 범죄소설에 빠지기 시작했다. 형이상학의 세계에서 주눅 들다 형이하학의 세상을 경험하다 보니 새누리'라. 하지만 문학이 자폐성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 비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문학의 본질은 쉬운 말이 아니라 어려운 말이다. 세 살부터 여든 살까지, 시시한 사람부터 도도한 사람까지, 남녀노소 불문하고 소노녀남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문학이라면 그것은 문학이 아니라 전자제품사용설명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문학보다는 차라리 자폐에 빠진 난해한 소설이 낫다. 가라타니 고진이 문학의 종말,

보다 정확하게 기술하자면 순문학의 죽음을 선언한 데에는 순문학으로는 밥 벌어먹기는커녕 밥 빌어먹을 것이라는 진단 때문이다. 한국만 순문학이 안 팔리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도 순문학은 팔리지 않는 책이다. 피장파장인 셈. 하지만 문화 예술 선진국들은 이들이 빌어먹지 않도록 국가에서 각종 지원책을 내놓아 그들을 돕는다. 박근혜 씨가 총제작하고 김기춘-조윤선이 연출한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말을 듣지 않는 문화 예술인이 벌어먹지 못하고 빌어먹도록 만들려는 프로젝트'였다. 에미나이, 눈물 뚝 그치라우. 이씹일쎄기 초자본주의 남조선 사회에서 눈물은 사치 아니갓어 ?  밥이 중하간, 아님 싸구려 감성이 중허간 ?                      

하지만 윤선이와 기춘 씨가 놓친 것이 있다. 공감이 문화의 뼈라면 저항은 문학의 뼈라는 점이다. 공감이 없는 문화는 문화가 아니다. 공감은 반드시 我와 他를 겹쳐놓을 때 발생하게 되는 감정적 소모'다. 그 감정적 소모에서 희노애락이 생기니, 조용필이 그토록 강조한,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북한 속담에 눈물은 내려가고 밥술(숟가락)은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문학적으로도 손색이 없고 철학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속담이다. 눈물(감성)보다는 밥(이성 혹은 잇속)이 우선이라는 말처럼 들리지만 본질은 밥술이 올라가는 행위를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데에는 눈물의 하강이 있다는 점이다. 

박근혜와 그 무리는 단 한번도 눈물을 흘리면서 밥을 먹은 적이 없는 인간이다.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은 경제 영역'에 속하지만 꼴등도 기억하는 세상은 문화 영역'에 속한다. 일등보다는 꼴등을 기억하는 세상일수록 살기 좋은 사회'이다.



 



http://blog.naver.com/unheimlich1/220839301615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amadhi(眞我) 2017-01-22 1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그 노래가 조용필 노래였군요. 나이 들어 그 노랫말이 팍팍 와닿더라구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2 13:37   좋아요 0 | URL
나이 들면 묘하게 조용필 노래 가사가 마음에 와닿습니다..

yureka01 2017-01-22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명언이네요..눈물을 내려 밥술을 올린다.....김기추니나 윤서니나 몰랐던게 하나 있죠. 문학에서 권력에 동조하지 않고 저항이 곧 문학의 뼈를 이룬다는 사실을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2 13:37   좋아요 1 | URL
공감이 문화의 뼈라면 저항은 문학의 뼈죠....

stella.K 2017-01-22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본을 쓰다보면(이젠 언제 썼는지 기억도 안 났니다만) 표준어가
밋밋하다고 느낄 때가 많죠. 그러면 꼭 사투리가 쓰고 싶어지더라구요.
쓰다보면 묘한 카타르시스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죠.

눈물은 내려가고 밥술(숟가락)은 올라간다. 북한 속담에 그런 속담이 있었군요.
기억해 두면 좋겠어요. 영화 <동주>에선 술가락이라고도 하던데. ㅋ
요즘도 주말이면 광화문 나가시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2 13:36   좋아요 1 | URL
네에. 주말이면 나갑니다. 별 약속 없으면 말이죠. 어제는 의외로 사람들이 많더군요. 전 아예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많이 오셨습니다.


전 누누이 말하지만 표준어가 질색입니까. 사투리가 3D 같다면 표준어는 2D 같다고나 할까요. 입체감이없습니다. 입체감이....

cyrus 2017-01-22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은 모든 사람이 희노애락의 감정을 똑같이 느끼는 건데, 우리 사회는 ‘(기쁠)희’와 ‘(즐거울)락’에 공감을 느끼려고 합니다. 나나 상대방 모두 즐거우면 좋다고 생각하는 거죠. 반면에 ‘(성낼)노’와 ‘(슬플)애’의 공감을 못하니까 자꾸 피하려고 합니다. 슬프고, 분노할 일을 계속 생각하면 사는 게 기분 좋을 리가 없으니까요. 그래도 후자의 감정에 공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눈물만 메마르는 게 아니라 감정도 마릅니다. 타인의 고통을 그저 남의 일로 생각합니다. 언젠가 자신도 그런 상황을 겪게 될 일을 생각하지 못하면서 살아갑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2 14:26   좋아요 1 | URL
희락‘보다는 노애‘가 높은 가치이죠. 노애는 결국 공동체의식과 윤리성의 문제이지만 희락은 단순하게 반응하는 속도에 지나지 않으니까 말이죠... 기쁨을 공유하는 것보다 슬픔을 공유하는 정신이 더 뛰어난 공감 능력이고, 증오보다는 정당한 분노가 더 뛰어납니다..

나와같다면 2017-01-22 1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리 슬픈일이 있더라도 굶어 죽을 수는 없어서 숟가락을 든다는 해석보다는, 밥술이 올라가는 행위를 부끄럽지 않게 만드는 데에는 눈물의 하강에 있다는 말이.. 마음을 칩니다

어제 광화문 엔젤리너스 2층에서 괜히 두리번 거리게 되더라구요^^
뵙게 되면 따뜻한 커피 한잔 드릴께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2 16:03   좋아요 1 | URL
이 속담이 밥벌이의 누추함을 지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좋게 좋게 생각하려 합니다...

나와같다면 님, 어제도 가셨군요 ? 어젠 의뢰로 볼 것이 많더군요..

2017-01-24 1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1-25 11:41   좋아요 0 | URL
이 가사를 아마 양인자 작사가가 썼죠 ? 옛날 노래 보면.. 가사가 정말 시 같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