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보다 하나

목숨과 숨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지만 곰곰 생각하고 꼼꼼 들춰보면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 < 목숨 > 은 " 목 " 이라는 기관을 통해서 숨을 쉴 수 있는 힘에 방점이 찍힌 단어이고, < 숨 > 은 " 코 " 나 " 입 " 으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기운에 방점이 찍힌다. 전자는 목에 남아 있는 숨이고, 후자는 코나 입에서 최종적으로 뱉어낸 숨'이다.
다시 말해서 : 목숨은 체내 공기의 양이 남아 있는 상태이고 숨은 들숨을 통해 얻은 체내 공기를 날숨으로 전소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 목숨보다는 숨이 더 간절할 뿐더러 절박하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목숨은 종종 살길을 모색하기 위해 여럿이 거래를 도모 " 목숨을 도모하다 " 따위의 관용구 할 수 있지만, 숨은 이런 거래가 애초에 불가능하다. 또한 한탕을 위해 목숨을 담보로 도박을 하는 사람 " 목숨을 걸다 " 은 있으나 한탕을 위해 자기 숨을 내놓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 " 숨을 걸다 " 는 관용구는 없다. 즉, 숨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목숨은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여, 친구여 ! 둘 중 뭣이 더 중허냐고 묻는다면 나는 자신있게 < 숨 > 에 한 표를 던지겠다. 어떤 사안에 대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며 큰소리치는 사람은 많다. 박근혜와 김기춘은 아랫것들에게 좌파 척결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라고 지시를 내렸지만 정작 본인은 목숨은 고사하고 그 알량한 자리에서 쫓겨날까 봐 전전긍긍하는 꼴을 보면 이 새끼들이 내뱉는 목숨이라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내 해석에 대해 이현령비현령이라고 비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예부터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 대체 불가능성 " 에 대해서는 주로 한 글자 단어'가 차지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자어 조합이 아닌 순우리말 단어를 살펴보면) 눈, 코, 귀, 입, 손, 발'은 물론이요, 모, 벼, 쌀, 밥도 모두 한 글자 단어'가 아닌가 말이다. 지금이야 음식이 넘쳐서 굶어죽는 사회를 상상할 수 없지만 백 년 전만 해도 하루 끼니를 걱정하며 굶어죽는 것에 대한 고민을 해야 했던 사회가 아니었던가. 인간은 신을 두려워했지만 그보다 절박했던 것은 땅이었다. 하늘이 명분이라면 땅은 " 먹고사니즘 " 이니까. 그렇기에 하늘은 두 글자요, 땅은 한 글자가 아니었을까 ? 마찬가지로 사랑이라는 두 글자는 밥이라는 한 글자'보다 중헌 게 아니었을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 사랑보다 밥이 중요한 시대 > 와 < 밥보다 사랑이 더 중요한 시대 > 中 어느 것이 더 나은 세상일까 ? 나는 차라리 사랑보다 밥을 중시하고 아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밥이 곧 숨이라는 인식. 그리하여 남의 밥그릇을 빼앗는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람의 숨을 빼앗는 것과 같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민하는 사회가 더 낭만적이지 않을까 싶다. 나라는 한 글자와 너라는 한 글자가 동일한 환대로 겹쳐지는 이유도 타자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동양철학의 인본주의에서 비롯된 인식일 것이다. 반면 알파벳은 너(you)보다는 나(i) 중심이다.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 덕목처럼 여겨지면서 남의 밥그릇을 우습게 여기는 사회가 되었다.
빼앗은 밥이 그 사람의 숨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쉽게 내릴 결정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에 사랑 타령은 넘치고, 넘치고, 넘친다. 모두 다 사랑 밖엔 난 몰라 _ 라고 말하지만 왠지 허투루 내뱉는 인삿말 같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진지하게, 졸라 촌스럽게 밥 타령을 하고 싶다. 남의 밥그릇 함부로 차지 말라고, 너는 누군가에게 따순 밥이었던 적이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