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無題








1.                    좋은 소설이나 훌륭한 시나리오 속 캐릭터는 필연성과 당위성을 획득한다. 쉽게 말하자면, 그 캐릭터에 부여된 가정 환경과 생활 환경을 다른 조건으로 대체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반면에 형편없는 소설이나 나쁜 시나리오 속 캐릭터의 백그라운드'는 얼마든지 다른 환경 설정'으로 대체가 가능하다. 예를 들면 김애란의 << 두근두근 내 인생 >> 속 주인공인 아름이가 앓고 있는 조로증'은 필연성과 당위성이 떨어지다보니 작위적이다. 조로증을 백혈병(시한부 선고를 받은)으로 치환할 수도 있고, 단순히 지체장애를 가진 아이로 바꿔도 캐릭터 고유의 성격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심지어는 아름이를 신체 건강했지만 불의의 사고로 죽는, 그런 어른스러운 아이로 설정해도 된다. 이 소설이 가지고 있는 핵심은 " 아이 같은 부모와 철없는 부모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 " 라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장 나이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아들(조로증에 걸린)이라는 설정을 강조하기 위해 조로증을 호명하는 것은 억지스럽다. 바로 그 점이 이 소설이 졸라 후진 이유'이다. 좋은 캐릭터(소설이나 영화 속)는 " 살아온 날들에 대한 대체 불가능성 " 을 획득한다. 예를 들면 페데리코 펠리니 감독이 1954년에 연출한 영화 << 길 >> 에서 서커스 차력사를 연기한 안소니 퀸(극중 짐파노)의 " 빽그라운드 " 를 대체할 수 있는 설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력사 대신 약장수 ??!  혹은 공장 노동자 ???!  떠돌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채플린도 마찬가지'다.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은 곧 운명적인 것'을 의미한다.





2.                     아이에게 아이답게 행동하라는 어른의 요구는 꼰대가 가지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지만 어른에게 어른답게 행동하라는 소년의 요구 또한 중2병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라는 점에서 서로 대동소이'하다. 왜냐하면 아이는 어른인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어른스럽고, 어른은 아이인 당신에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스럽기 때문이다. 좋은 어른은 아이를 어른으로 인정하고, 좋은 아이는 어른이 때로는 작은 일에도 상처받기 쉽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싸울 때 " 너 몇 살이야 ? " 라고 호구 조사부터 하고 보는 어른은 반드시 어릴 때 " 나이도 어린 놈에게 욕 처먹으니 좋으냐 ? " 라고 말했던 놈이다. 둘 다 서로 대동소이한 놈이다. 너 몇 살이냐 _ 라고 호구 조사를 할 찰나에 먼저 " 선빵 " 을 날리는 놈이 나이 가지고 싸움의 우선권을 쥐려고 하는 놈보다 윤리적인 새끼'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3.                      무당의 굿이 치유 능력을 가지고 있는 데에는 굿이라는 행위가 현대의 " 심리 치료극 " 에 가깝기 때문이다. 굿을 하는 무당은 심리치료사'이다. 무당은 상담자의 죽은 부모나 친척에 빙의되어 죽은 자를 상담자 앞에 나타나지만, 사실은 죽은 자가 산 자(상담자)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상담자를 과거로 데려간다는 점에서 퇴행적이다. 현실 세계에서 고통받았던 어른은 이제 시간 여행을 통해 어린이가 되어 죽은 자와 대면한다. 과거 여행을 통해서 죽은 자와 산 자'는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고 서로 화해한다. 현대 드라마 심리 치료극'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불만은 모두 과거(트라우마)에서 비롯되는 것이기에 심리치료사는 상담자를 과거 속으로 안내한다. " 이제부터 무대 위에 서 있는 저 사람은 당신이고 옆에 계신 분은 당신의 어머니이십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당신의 아픈 장면을 보도록 합시다. 레드 ~ 썬 ! "







4.                         이 글이 매조지하게 될 최종 결론은 다음과 같다     :     박근혜라는 캐릭터의 빽그라운드는 대체불가능하다. 박정희라는 유신 시대의 괴물이 낳은 딸'이라는 가정 환경 조사서를 다른 조건으로 대체할 수 있는 설정은 아무것도 없다. 쓰빽따끌하며 아쓰뜨랄한 박근혜'라는 드라마가 재미있는 이유이다. 우리는 지금 어른스럽게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졸라 유치한 인간 박근혜를 보고 있는 것이다. 화장실 변기에 집착하는 박근혜를 보면서 나는 환갑이 지난 여자의, 후카시에 집착하는 항문기 고착 증후를 떠올리게 된다. 박근혜는 똥에 대한 집착이 돈으로 바뀐 경우이다(실제로 항문기 고착에 머문 캐릭터는 똥과 돈을 동일한 것으로 인식한다). 아따, 참말로 더러븐 은유법이다이잉~               << 드라마 박근혜 >> 에서 개인의 비극을 벗어나 외연을 확장해서 대한민국 전체의 비극에 대해 논해 보자. 우리는 왜 박근혜에게 열광했는가 ?    간단하다.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산 자인 박근혜에게서 죽은 자인 박정희를 투영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박정희를 죽인 인물은 김재규가 아니라 박근혜일지도 모른다. 전자가 실재적 살해라면 후자는 상징적 살해'이다. 우리는 박근혜를 통해서 박정희(라는 유령)가 사실은 위대한 거상巨像'이 아니라 " nobody(좆만한 xx)" 이자 " nothing(좆도 아닌 xx) " 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승과 저승을 분리하지 못하고 경계가 애매모호할 때 공포는 발생한다. 그 사실은 스티븐 킹 소설이 증명한다. 기승전박이라고 욕하지 마시라. 오늘은 기승전킹'이니까. 하여튼, 킹이여...... 영원하라 ■

 

 

 

 

                           

덧대기      ㅣ       < 은교 > 와 < 롤리타 > 는 둘 다 남성이 어린 여성에게 성적 판타지를 갖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조를 갖췄지만 두 작품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 롤리타 >> 의 주인공 험버트에게 있어서 " 롤리타 " 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이지만,  << 은교 >> 의 주인공 이적요'에게 있어서 " 한은교 " 는 대체 가능한 인물'이다.     험버트에게 있어서 롤리타가 대체 불가능한 이유는 운명적이라는 데 있다.   그렇기에 소설 << 롤리타 >> 는 남성 욕망을 다루지만 외설적이지 않고 뻔뻔하지도 않다.   반면에 소설 << 은교 >> 는 한은교라는 여성을 단순하게 소비하는 차원에서 다룬다.   이적요에게 은교는 운명적이라기보다는 젊고 예쁜 여자'에 불과하다. 소설 << 은교 >> 가 구질구질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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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7-02-01 1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호기심이라는 유아기의 어느 시점에 고착되어 있죠. 이 상황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2-01 10:45   좋아요 0 | URL
아이를 어른으로 대접하고, 어른도 실수를 할 수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봐도 마립간 님은 호기심 많은 아이 같습니다. 이거 아주 좋은 현상이죠..ㅎㅎ

cyrus 2017-02-01 1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치사극 ‘공화국’ 시리즈처럼 몇 십 년 후에 ‘박근혜’ 시절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나온다면 정말 볼만하겠어요. 아마도 제가 죽고 난 후에 나올 것 같고요, 그때까지도 숨은 박근혜 세력이 남아 있다면, 그들의 압력 때문에 재미난 사건들이 드라마에 언급되지 못할 수도 있겠어요. 후손들에게 부끄러웠던 시절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면 게이트에 연루된 사람들이 법적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2-01 11:11   좋아요 2 | URL
아마 공화국을 다룬 현대사 드라마 중 가장 재미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장록수 > 나 < 연산군 > 처럼 단골 메뉴가 되어서 영화도 무진장 쏟아낼 것같습니다. 아마 한국의 감독이라면 모두 다 탐날 어마어마한 서사‘죠. 이보다 막장 드라마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ㅎㅎ

stella.K 2017-02-01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린 왜 이리도 박정희의 그늘을 못 벗어나는 걸까요?
그 와중에 그네 누님 어떻게든 탄핵을 모면하려고
하는 게 보이니까 더 혐오스럽더군요. 우린 이런 식으로
박정희의 그늘을 벗어나는 걸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ㅠ
박정희의 그늘을 못 벗어나는 걸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유아기란 생각도 들구요.

은교 저는 정말 잘 봤는데 곰발님의 해석을 거치면
별개 아닌게 되버리니 거 참...
롤라타를 읽어봐야겠군요.

아, 근데 킹 소설이라 하시면...?

곰곰생각하는발 2017-02-01 15:17   좋아요 1 | URL
우상이 된 거죠. 세뇌의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박정희라는 신화의 대표적 사례가 오직 나라 사랑만 했지 재산 증식에는 관심이 없었던
이미지인데. 사실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한 인간이 박정희 아닙니까. 그 신화를 딸이 부셨죠..

+

박범신 인터뷰 보면 은교와 롤리타가 비슷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기분 나쁘다고 한 적 있는데
전 속으로 웃었습니다. 이야, 기분 나빠해야 될 사람은 나보코보지... ㅎㅎ 이렇게 말입니다..

2017-02-01 17: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02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