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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 - 세상을 충전하는 젊은 에너지, 딴따라 박진영의 맨처음 고백
박진영 지음 / 김영사 / 1999년 12월
평점 :
절판
<미안해>(박진영 지음/김영사/1판 2쇄 1999.12.25)를 읽다.
난 박진영을 좋아한다.
특히 박진영의 노래 <너의 뒤에서>를 참 좋아한다.
99년에 이 책이 나왔을 때, 읽어보려 했는데 잊고 지나갔다.
두달 전,
박진영이 미국 음반 시장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 시장 진출하려고 1년에 300개가 넘는 음반회사를 찾아가서 퇴짜를 맞고 때론 그냥 쫓겨나기도 했다는 기사를 읽고,
지나쳤던 박진영의 에세이집이 다시 생각났다.
인터넷 서점에서 사려했더니 "절판".
아쉬웠다.
집요한 수선, 헌책방에서 <미안해>를 샀다.
이 책을 강화도 여행가는 길에 읽었으니까,
벌써 한달 전이다.
책을 읽으면서 박진영의 솔직함과 페미니스트에 상당히 근접한 태도에 호감을 느꼈다.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이 책을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신학을 공부하는 친구와 얘기하면서 박진영의 에세이 한 꼭지가 생각났다.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건, 박진영이 자신의 종교관을 피력한 "진영교"라는 제목의 짧은 글이다.
박진영의 고백을 직접 옮겨 보자.
"나는 원래는 기독교인이었다(지금도 아버지는 장로님이시고,어머니는 권사님이시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찾았던 교회에서 나는 열심히 기도했고,찬송했으며,성경공부도 빠지지 않았다.어렸던 나에게 성경은 당연히 신화가 아니라 역사였고,하나님은 신이 아니라 실존인물이었다.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안타까워 보였다.그만큼 기독교는 나의 몸 속에 깊숙이 배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TV에서 본 장면 하나가 나를 이단아로 만들었다.
큰 불상 앞에서 한 부부와 어린 자녀들이 너무나 진지하게 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그 순간 나는 '내가 저 집에서 태어났다면'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랬다면 나는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었을 것이 아닌가?하지만 그렇지 않고 우리 집에서 태어났기에 나는 기독교 신자가 된 것이다.인생의 가장 중심부에 자리잡는 종교 문제가 우연에 의해 결정되다니."(p127)
그 때 부터 찾아온 회의와 고민 끝에,
박진영은 어렸을 때 부터 믿어온 기독교를 버렸다.
<미안해>를 읽을 땐,
사실 종교를 버리게 된 박진영의 고민 보다,
박진영의 이런 대담하기까지한 솔직함에 놀랐다.
이런 얘기를 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자칫하면 평생 배 고프지 않게 욕먹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난 이런 박진영의 말에 공감을 느낀다.
나는 할머니가 향을 피우고 염주를 돌리며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으며,
"부처님 오신 날"에는 항상 부모님 손에 이끌려 절에 갔다.
일요일 마다 충실하게 주일성경학교에 가는 친구들 처럼
종교에서 많은 영향을 받지는 않았지만,
내 정서의 기반에는 향냄새가, 목탁 소리가, 온화한 관세음보살의 미소가 흐르고 있다.
얼마 전,
친구 하나가 종교 문제로 결혼을 무기한 연기했다.
남자친구의 부모님께서 개종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에게는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결혼을 할 것인가, 종교를 버릴 것인가....
그 얘기를 듣고 있자니,
참 뭐라고 해 줄 말도 없고 안타깝기만 했다.
이 친구 말고도,
종교 문제로 결혼이 깨지는 커플들을 수도 없이 봤다.
결혼을 하고서도 갈등을 겪는 부부들도 봤다.
정말 안타깝다.
양쪽 집안의 대립, 종교 문제, 정치적인 이유 등
원하지 않으면서도 헤어지는 사랑하는 사람들....
며칠 전 함께 술을 마신 신학을 공부하는 친구.
그 맑은 눈,
주위 사람을 배려하는 세심함과 따뜻함,
세상을 바라보는 유연한 태도,
깨어있는 영성.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친구다.
그런데....
그 친구를 만나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다.
성경도 한번 제대로 안 읽어본 내가,
신학을 공부하는 그 친구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술을 마시면서 나는 가벼운 농담처럼 툭하고 질문을 던졌다.
" 만약 니가 우리집에서 태어났더라도 넌 신학을 공부했을까?"
그 친구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솔직하다.
우주를 향해 열려 있는 맑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를 존중하는 겸손함이 있다면,
어떤 종교를 가졌건
두 사람의 영혼의 교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 않을까?
종교 때문에 헤어지는 커플들이 많지 않았으면 좋겠다.
종교, 출신 지역, 직업에 대한 배타적인 선입견을 갖고
사람을 미리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얘기를
솔직하게 쓴 박진영의 용기에 감사하며.
수선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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