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3박 4일간 황룡사에서 명상 수련을 했다.
원래 7박 8일의 일정이었는데,
명상 초행자인 나는 더운 날씨와 하루 종일 계속되는 좌선과 경행,불편한 잠자리와 샤워시설을 견뎌내지 못하고 중간에 나왔다.

3박 4일간 수련을 하면서
내게 언니처럼 다정하게 대해주고,
내가 지치고 힘들어할 때 도와주고,
자신의 명상 초행때의 경험을 얘기해주고,
나에게 끊임 없이 에너지를 불어 넣어 주었던 고마운 사람,
계향 언니를 어제 만났다.
황룡사에서 만난 이후 처음으로...

그동안 너무 정신없이 살았다.
내가 여름 휴가 때, 명상수련을 했었다는 것도 잊을 만큼.

어제 계향 언니는 내가 황룡사에 두고 왔던
책과 노트, 볼펜을 갖다 주었다.

헤네폴라 구나라타나 스님의 <가장 손쉬운 깨달음의 길:위빠사나명상>, 내가 구나라타나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필기했던 노트, 그리고 내 이름이 각인된 파카 볼펜.
그 더웠던 여름에 주인을 잃고 겨울까지 기다려온 물건들이 내게 돌아왔다.

노트에는 참 많은 글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했던 필기,
휴식 시간에 틈틈히 적었던 어설픈 감상과 감정의 찌꺼기들...
부끄러웠다.

그 때 적었던 글들을 보면서
지난 여름 황룡사의 기억과 재회했다.
읽으면서 어찌나 웃기던지....

그 중의 하나.

2004.8.3.09:45

정말 시간이 너무 안간다.
하루가 이렇게 긴지 처음 알았다.
달랑 법당 하나인 이 작은 절에 갇혀 있는 것 같다.
.... (중략)
이 절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원하면 나갈 수도 있다.
모범 택시를 불러도 될테고,
고삼 렌트카를 불러도 된다.
일요일 새벽 혼자 떠난 룸메이트처럼 한 30분 걸어서 가도 된다.
하지만, 모두 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서 탈출한다 해도
집에 가서 늘어지게 자는 것 밖에 대안이 없다.
그러면 내 성격에 두고두고 후회할꺼다.

여기엔 없는게 너무 많다.
그 흔한 커피 자판기도 없다.
우리 주변엔 너무도 먹을게 널려 있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볼 때 배도 안 고픈데 팝콘을 먹는 것 처럼...

여기를 탈출해서
시원한 호텔방에서 한 숨 자고,
맥주 마시고, 사우나 하고, 영화 보고,
늦게까지 놀면 얼마나 좋을까?
그건 항상 할 수 있는 일들이니까 일단 보류하기로 한다.

난 도대체 전생에 뭐였을까?
스님이 주어에 '나'를 쓰지 말라고 하셨는데...
여기 있으면 웃을 일도 없고,화낼 일도 없다.
말을 안하니 오해 살 일도 없다.

이렇게 하루에 몇시간씩 벽을 보고 앉아 있으면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걸까?
경행을 하는 사람들의 신중한 표정을 보면
가끔씩 웃음이 나온다.
도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일까?
왜 에어컨과 냉장고와 커피를 다 버리고 이 곳에 왔을까?


어제 이 글을 읽으면서 어찌나 웃었던지....
누가 가라고 등을 떠민것도 아니고,
스스로 명상을 한다며 여름휴가에 연차까지 하루 더 내고
감정의 찌꺼기들과 집착을 다 버리고 오겠다며 떠난 곳이었는데...

어제 오랜만에 계향 언니를 만나고,
황룡사에서 함께 수련을 했던 사람들을 몇명 더 만났다.

그 때, 사람들이 그렇게 말렸는데
처음에는 원래 다 힘들다고 하루만 더 있어보라고 다독거렸는데,
휴가가 끝나서 먼저 떠나는 분이 있어 그 차를 낼름 타고 나와 버렸다. 그 차가 출발하기 전에 따라가려고 서두르는 바람에 책이랑 노트까지 흘려 놓고...

그 분은 연차를 다 붙여서 17일 동안 수련을 했다고 했다.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면서,
지금이라도 다시 데려다 줄까 물어 보셨다.
나는 아니라고 했다.

압구정까지 같이 차를 타고 오면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아주 침착하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품격과 절제가 느껴지는 분이었다. 서초법원의 판사였다.
그 분을 보면서 다른 판검사들도 저렇게 스스로를 단련시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황룡사에서의 3박 4일은 지나갔고,
그 후 바쁜 일상 속에 허걱거리면서 잊고 있었다.
제대로 명상을 해본 적도 없었다.

어제 계향 언니의 평화롭고 밝은 표정을 보면서,
함께 수련을 했던 분들의 따뜻한 말투와 온화함을 느끼면서
많이 부끄러웠다.

정신 없이 지내온 날들....
사소한 일에 화내고 짜증내었던 많은 시간들....

지난 여름, 구나라타나 스님이 법문 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사람들은 평생 세 마디로 된 노래를 부른다.
I.I.I.I.I.I.I.I.I.I.I.I,I.I.I.I.I.I.I.I.I.I.I.I.....
me.me.me,me.me.me.me.me.....
mine,mine,mine,mine,mine,mine....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조금만 나를 버리면
화를 낼 일도,
짜증을 낼 일도,
분노할 일도,
누군가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낄 일도 별로 없을텐데...

어제 계향 언니를 만나 에너지를 듬뿍 충전했다.

황룡사에서의 기억과,
구나라나타 스님의 소중한 법문과,
삶을 향한 열정으로 가득찬 계향 언니와,
수련을 통해 자신을 단련시키는 수행자들께 감사드리며.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4-12-12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4-12-12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어컨과 냉장고와 커피를 다 버리고... 도대체 무엇하는 사람들일까?

저도 그 대목에서 빙긋 웃습니다.

사람들이 평생 부른다는 세 마디 노래, 가슴에 와닿네요.

잘 읽고 가요.^^

kleinsusun 2004-12-12 15: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때 아침은 6시, 점심은 11시에 먹고 정오 이후로는 아무 것도 안 먹었거든요.

배는 하나도 안 고픈데, 커피가 그렇게 마시고 싶더라구요. 커피만 아니었어도...ㅋㅋ

야클 2004-12-12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글 잘 읽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는 한시간 정도라도 차분히 명상해본 기억이 없네요. 항상 뭘하거나 보거나 듣거나했지. 좋은 경험하셨네요. 부럽습니다.
 

신입사원이었을 때,
나와 내 가장 친한 동기 J는 회사가 대학원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원은 비싼 등록금과 책값을 내고 다니지만
회사는 월급을 받고 다니니까,
공부를 하면서도 돈을 받는
대학원 보다 월등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솔직히 '생각했다'기 보다는 그렇게 믿으려고 노력했다.

회사가 대학원이라고 생각했기에,
월급을 덤처럼 생각했기에,
우리는 저축에 목숨 걸지 않고 실컷 술을 마셨다.

우리는 대학원을 다니는 것 보다
회사에서 훨씬 많은 것을 배운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는 실제로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역학과 대학원에서 하품하며 앉아서 강의 듣고,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서 시험 준비를 하는 대신에
처참하게 깨지면서 일을 배웠다.
우리는 힘들 때 마다,
우리는 자꾸만 더 강해지고 있다고 서로를 위로했다.

첫 출장을 갈 때 우리는 정말 기뻤다.
내 첫 출장지는 Sydney였다.
일요일 저녁 비행기였는데,
딸래미가 이제 다 커서 혼자서 출장을 가는게 신기했던지
아빠, 엄마가 공항까지 배웅을 나오셨다.
너무 들뜬 바람에 일주일 출장을 가면서 이민 가는 것처럼 두서 없이 짐을 많이도 들고 갔다.

회사가 대학원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으로 힘든 회사 생활을 버텼고,
첫 출장에 그토록 기뻐했던,
지금 생각하면 참 귀여웠던 J와 나.

회사가 정말 대학원이라면
우리는 이제 박사과정을 수료할 때가 되었다.

어제, 그러니까 12월 첫째주의 일요일,
텅 빈 사무실에서 일을 하면서
나랑 J가 신입사원이었던 때가 생각났다.

그 동안 많은 것이 변했다.

첫 출장에 그토록 기뻐하던 우리는
여권에 도장 찍을 자리가 부족할 만큼 출장을 다녔고
이제 웬만하면 출장을 피하며 몸을 사린다.

회사를 대학원이라 생각하며
하루하루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 설레임을 느끼던 우리는
이제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반복되는 일상에 짜증을 내기도 한다.
그렇게 긴장하던 해외 거래선과의 미팅 자리에서
이젠 농담 따먹기를 한다.
우리는..... 늙었다.

그 동안 인천 공항이 생겼고,
KTX가 생겨 대전까지 50분이 걸리고,
핸드백에 깜찍하게 들어 있던 삐삐는 추억의 물건으로 사라졌고,
띠리띠리 울리던 핸드폰 소리는 64화음 오케스트라가 되어 울러 퍼진다.

이소라의 노래 <처음 느낌 그대로>.
아직도 회사를 대학원이라 생각하는 初心을 간직한다면,
매일 매일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사실에 설레여 한다면,
서로 '우리는 매일 매일 더 강해지고 있어' 라고 격려해 준다면,
보다 회사생활이 즐겁지 않을까?

初心을 잃지 않기는 어렵다.
사랑하는 감정도 그렇고,
소중한 것을 대하는 마음도 그렇고,
기다려 왔던 꿈이 이루어 졌을 때도 그렇다.

처음 느낌 그대로 뭔가를 대할 수 있다면,
작은 일에도 설레여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일상이 훨씬 반짝거리겠지.
작을 일에도 행복해 하면서....

회사를 대학원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04년을 25일 남겨 두고
우리의 일상이 조금 더 반짝거리기를 기대하며.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레져 2004-12-0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지난 몇 년간이 듬뿍 담겨 있군요.

회사를 대학원이라고 생각했던 초심이 희망차 보여요.

점점 그 의미가 다른 것으로 변질되거나 변하는 모습은

조금 쓸쓸하구요... 일상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인생의 틈이네요...

로드무비 2004-12-06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가 대학원이 아니듯 아무리 오래 살아도 인생에서 박사 학위를 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이 아줌마는 해외출장을 미루는 수선님이 조금 부럽네요.^^;;;

야클 2004-12-06 2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에도 느꼈지만 우리가(아니 나만?) 그냥 스쳐보내는 일상을 이런 글로 표현해 내시는 재주가 참 놀랍고 부럽습니다. 처음 느낌 그대로라....별 생각 없던 이소라의 노래제목도 새삼 새롭게 느껴지고.

그런데 참 우습네요. 전 대학원을 회사처럼 생각하고 다닌 적이 있는데. *^^*

kleinsusun 2004-12-06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절판된 앨범을 애써 구해다 주는 남편이 있고, 조기축구 사건으로 깜짝 해프닝을 벌이면서 꼬마만두국을 만드는, 사랑이 듬뿍 배어나는 글을 쓰는 로드무비님이 부러운걸요. 건강은 다 회복되신거예요?

kleinsusun 2004-12-06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회사를 대학원이라 생각하고 다니고,야클님은 대학원을 회사라 생각하고 다니고.... 우하하하..... 교수들이 팀장 보다 더 심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정말 그런가요?

릴케 현상 2004-12-0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저는 대학원이라고까지는 생각 안하고 그냥 타대에 학사편입 한 정도로...
 

양애경 시집 <바닥이 나를 받아주네>에서
"바로 이거야!"하는 시를 발견했다.
<계백의 아내>라는 짧지 않은 시.

"가족 동반 자살"
이런 제목의 기사를 사회면에서 자주 본다.
그런데....
사실 기사를 읽어보면 "동반 자살"이 아니다.
부모가 어린 아이들을 죽이고 자살을 한 경우다.
이 험한 세상에서, 부모가 없으면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갈까?
그것도 부모가 남겨 놓은 빚더미 속에서....
오죽 걱정이 되었으면 그런 생각을 했을까...극한 상황에 처한 부모의 심정이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생명 존속을 부모가 판단할 수 있을까?
그것도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아이들은 그래도 살고 싶어하지 않을까?
아무리 힘든 삶이라도 행복한 순간이 아예 없는 인생은 없을텐데...

이런 생각을 했었는데,
양애경의 <계백의 아내>라는 시를 읽고,
'바로 이거다!' 생각했다.
이에 <계백의 아내> 전문을 소개합니다.

계백의 아내

서기 660년,백제의 장수 계백은 황산벌 전투를 앞두고 "한 나라의 인력으로 唐,羅의 대병을 당하니, 나라의 존망을 알 수 없다.
내 처자가 잡혀 노비가 될지도 모르니,살아서 욕을 보는 것 보다 죽는게 낫다."하고 처자를 다 죽이고 황산들에 나와 세 곳에 진병을 베풀었다.네 차례의 격전 끝에 힘이 다하여 죽었다.
- 김부식의 <삼국사기>에서

당신과
당신의 아내인 저와
당신의 아이들
우리들이 얼굴을 마주보는 것도 오늘뿐
내일이란 없겠지요
적군이란 피의 값으로
여자와 살육과 재물을
원하는 것이라죠 그래서 당신은
당신 숨 끊기시고 난 이후의
우리의 운명을 걱정하신 건가요?
제 옷깃 안에
오도도 떨고 있는 아이들을 보세요
어쩌다 사람 손아귀에 든 작은 새처럼 쿵쿵 울리는
그 아이들의 심장 뛰는 소리를 느끼시지요

당신은 검을 빼어 드시는군요
목이 떨어진 후 얼마까지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눈이 금방 흐려질까요?
여보 아이들의 눈을 가려주세요
아니면 제 치마끈을 떼어 드릴테니
그것으로 목을 얽으시면 어떻겠어요?
칼날에 동강 나는 것은 너무나 무서워요
패장의 가솔은 노비가 된다지만
노비로라도 살아가다보면
자식,자식,그 자식의 자식 때라도
다시 사람답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여보 죽는 게 꼭 용기 있는 걸까요?
나라 위해 죽는다지만
그 나랏님은 나라를 위해 무엇을 했나요
당신이 병사들과 진흙 속에서 피 흘리고 있을 적에
아첨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쾌락에 빠져 있지 않았나요
당신을 핍박하시지 않았나요
여보 그러니 여보

우리 죽지 말고 살도록 해요
그게 안된다면 여보
저와 아이들이라도 살려주세요 여보 살려주세
.........!

잘려나간 제 목에 붙은 눈이
잘려나간 아이들의 목에 붙은 눈과
마주쳐요 아이들의 눈은 휘둥그레졌어요 믿어지지 않
......아......

1950년대의 서울, 식솔 벌어먹이기가 벅찼던 가장이 방에서 목을 맸다.아이들 엄마는 그 비겁한 가장의 시체를 두들겨팼다.1990년대의 서울,가출한 아내에 대해 분노한 가장은 아이를 데리고 다리에 나가 강물에 떼밀었다.다리에 대롱대롱 매달려 죽지 않겠다고 빌던 아이는,경찰이 아버지를 끌고 가자, 아버지가 빨리 집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얼마 전, <신 천하무적 홍대리>를 읽고 삶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홍대리는 더 좋은 만화를 그리기 위해,
회사를 접고 프랑스로 갔다.
그 곳에서 만화를 배우고 그린다.

그러니까 홍대리는 이제 없다.
그 대신 프랑스에는 만화가 홍윤표가 존재한다.

더 좋은 만화를 그리기 위해,
자유롭게 창작에만 전념하기 위해,
회사를 접고 저 멀리 프랑스까지 갔는데....

독자들은 <신 천하장사 홍대리>가 예전의 1편, 2편보다
현장감도 없어지고, 재미가 없다고 말한다.
뭐.... 그림은 예전보다 좋아졌단다.

홍대리가 회사 생활이라는 스트레스 속에서 만화를 그렸을 때는
재미가 있었다.
홍대리가 회사를 떠나 만화가가 되자, 만화의 재미가 반감되었다.

왜?
만화가 홍윤표는 더 이상 홍대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 생활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간다.
기업들은 직급을 파괴하고,
호칭을 없애고(과장, 부장 이런 호칭 없이 OOO님이라고 부르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다),
모든 결재는 전자결재로 하고,
사직서 조차 인사시스템에 입력하고, 전자결재를 받아야 한다.
옛날처럼 양복 주머니에 사표를 넣어서 다니다가,
더러운 일이 있으면 확 던져버리는 그런 낭만(?) 은 없다.

그러니 만화가 홍윤표가 어떻게 홍대리의 생생한 스트레스를 전달할 수 있겠는가?
옛날 기억을 되살려서?
No. 옛날 기억은 왜곡된다. 미화되기도 하고, 감상에 젖기도 하고....

상식적으로 아무 것도 안하고 만화만 배우고 그리면
훨씬 많이 그리고 훨씬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홍대리 얘기가 아닌 프랑스 견문록 이런걸 그리면 모르겠지만,
홍대리 얘기를 계속 그리기에는 소재의 빈곤에 시달린다.
그러면 홍윤표는 홍대리를 그리기 위해서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나?
아이러니다.아이러니.

가끔 이런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입사를 하는 대신 대학원을 선택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어떨까?

영화 Sliding Doors 처럼 말이다.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공부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 스트레스를 받겠지.
박사과정 하는 친구들 보니까,
교수들의 만행이 팀장들의 만행 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더만...

만약 내가 지금도 공부를 하고 있다면,
번듯한 명함 있고, 월급 꼬박꼬박 받는 나 같은 애를 부러워 할지도 모르겠다.

아멜리 노통의 <두려움과 떨림>을 읽고, 커다란 위안을 받았다.
일본 회사에서의 그 피 말리는 경험이 없었다면,
<두려움과 떨림> 같은 역작은 결코 쓸 수 없었을 테니까....

스트레스도 힘이 된다.
좀 부풀려서 말하면 스트레스가 창작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무엇인가를 풀어 내고 싶으므로....
계속 담아 두었다가는 터져 버리니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 나는 조직생활에 적합한 인간이 못돼."
난 이 말을 하는 사람들이 사치스럽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조직생활에 적합한 인간이 어디에 있을까?
모두 편하고 싶어한다.
모두 자신의 개성을 존중 받고, 자신의 취향에 맞게 삶을 꾸려가고 싶어한다.
조직 생활에 적합한 인간이 따로 있을까?
그런 유형의 인간들은 태어날 때부터 아부도 잘하고,
싫은 소리와 각종 통제를 참아내는 피학적 취향을 갖고 태어 났을까?

스트레스도 힘이 된다.
내가 소설이나 드라마를 쓴다면,
3각 관계, 4각 관계로 허구한 날 꼬이고 꼬이는 연애만 하다가
갑자기 여자 주인공이 인도나 아프리카로 떠나 버리거나,
갑자기 결핵에 걸려 죽어 버리는 그런 현실에서 유리된 인물은 등장하지 않을 꺼다.
소설의 여자 주인공이 항상 출판사 직원이거나 방송 작가, 잡지사 기자로 제한되지도 않을 꺼다.
최소한 내가 회사생활을 묘사하면,
끔찍할 정도로 "리얼" 할 꺼다.

스트레스도 힘이 된다.
스트레스 속에서 황량한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끊임 없이 외부적인 자극을 찾는다.
굶은 듯이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미술관에 가고....
아침 마다 종합비타민을 한 알 씩 먹듯이,
메마른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
감성적인 것들을 본드 마시듯이 코를 킁킁거리며 들이 킨다.

스트레스는 나의 힘!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레져 2004-11-27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트레스가 나의 힘이라고 외치기까지 그 전에 겪었을 고통을 반추하렵니다... 수고많으십니다, 수선님!!!

kleinsusun 2004-11-2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스트레스를 에너지로! 아자!

로드무비 2004-11-27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끔찍하게 리얼한 글 써서 보여주세요.

저 그거 아주 좋아하거든요.^^

mannerist 2004-11-28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학교 때 황제의 꿈을 비롯해서 '어둠의 세계의 이문열'이라 불리우던 이원호씨 소설을 친구들과 함께 돌려 있었답니다. 뭐 색기발랄한 청소년들의 므흣-_-한 표현에 대한 관심도 컸지만, 그 살벌한 회사 생활과 암투 이야기에 간혹 소름이 끼쳤더랬죠. 무역회사 생활을 오래 하던 양반이라 그런 글이 나왔겠죠. 좋은 소설. 이라곤 할 수 없지만 '리얼하게 느껴'지고 '재미'는 있는 책. 언젠가 나오겠죠? S대리님 눈으로 본 이 살벌한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지금 군데군데 덧정 뚝뚝 묻어나오는 문체보다는, 훨씬 하드보일드할 것 같지만요. 여하튼, 화이팅입니다~! ^_^o-

kleinsusun 2004-11-2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드보일드.... ㅋㅋ

응원해 줘서 고마워요. 홧팅!

마냐 2004-11-30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만만치않은 스트레스를 쓰레기 취급하고 있던 저로서는 한 방 먹었슴다. ㅋㅋ

kleinsusun 2004-11-30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스로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한 말이죠.ㅋㅋ

근데 아멜리 노통의 <두려움과 떨림>을 보고는, 정말 큰 위안을 받았어요.

언젠가 그런 글을 쓸 수 있길 바라면서.....
 



< 사진 필라델피아의 홈리스- 톰 글랠리쉬 作 >


오늘 아침,
너무도 우.울.했.다.

이 지랄 같은 우울함은 도대체 언제 끝나는걸까?
점심시간에 사무실을 탈출했다. 답답해서...
고작 내가 찾은 탈출의 공간은 pc방.

여의도에서 근무할 때는,
힘들 때면 가끔 점심시간에 차를 몰고 한강고수부지에 갔었다.
처음 한강고수부지에 갔을 때,
난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주차장의 그 많은 차들에는,
대부분 운전석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의자를 뒤로 젖히고 자고 있는 사람도 있고,
한강을 멍하니 바라보며 담배를 피는 사람도 있고,
차에 기대어 서서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사람도 있었다.

주차장에 빈차 보다
멍하니 앉아 있는 사람이 많다니....

힘든건 나만이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그 많은 사람들을 한강고수부지로 내보낸 가공할 스트레스.
그 사람들의 가족들은, 친구들은, 회사 동료들은
그 사람이 그런 텅빈 시간을 보내고
사무실로 돌아왔다는 걸 알까?

언젠가 내 홈피 방명록에
"동명인" 이라는 아이디로
"수선"이라는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분이 글을 남겼었다.
자신의 cy 미니홈피 주소도 알려 주었는데,
그동안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사무실을 탈출한 점심시간의 pc방에서,
우연히 동면인의 홈피에 들렀다.
( 일부러 찾아 들어간게 아니라,
cy 클럽 함께살기에 서수선님의 글이 있었다.
난 그 이름을 보는 순간,
약간의 떨림을 느끼며 수선님의 이름을 클릭,
미끄러지듯 그 홈피로 이끌려 들어갔다.)

수선님의 미니홈피에서
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 공간은
친구들 사진과 잘 나온 자기 사진, cy를 떠도는 웃기는 사진 스크랩으로 가득찬 신변잡기의 공간이 아니라,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외침"이 가득한 범상치 않은 공간이었다.

그 공간에는
" 죽음에 관해 묵상하라 "
" 현실에 대해 분노하라 "
등의 가볍지 않은 제목의 폴더들로 나누어진
보는 이의 마음을 후벼 파는 수많은 사진들이 있었다.

할례를 받는 여자들의 모습,
그 여자들이 흘린 피,
보스니아 내전 사진,
여기 내가 퍼온 홈리스의 사진 등
이 세상의 폭력과 고통,
고개를 돌려 버리고 싶은 수많은 사진들이 있었다.

이 홈피를 내가 이 시간에 들리게 된게 다만 우연일까?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세상이 이 모양인데,
넌 니 자신의 감정에 끌려 징징거리고 있구나.

사치스럽다.
부끄럽다.
내 감정의 사치.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라." 는 메시지를 듣기 위해,
내가 오늘 사무실을 탈출한 걸까?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다고...

나는 많은 글들을 읽으며
위안과 구원, 에너지를 받아왔다.

그래서....
그들이 내게 나누어준 에너지에 항상 감사한다.

나도 조금이나마 누군가에게 "위안"을 주고 싶다.
그런 글을 쓰고 싶고,
그렇게 살고 싶고,
세상의 고통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아프더라도, 많이 아프더라도
정면으로 바라보고 싶다.

더 이상 나의 사치스런 감정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
나만 보이는 거울을 가지고 다니며,
혼자서 힘들다고 투정부리지 않겠다.

작가는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행복이라는 바이러스를 전파시킬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난 꼭 행복하겠다.
더 이상 징징거리지 않겠다.
더 이상 내 감정의 장난질에 질질 끌려다니지 않겠다.

자...그럼
씩씩하게 사무실로 Back!!!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더마릴라 2004-11-12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핫.

안녕하세요 수선님.

수선님의 글을 읽고 왠지 저도 부끄러워지던걸요^^;

요즘 사무실 일 등등에 우울해하고 있었거든요.

'작가는 행복해야한다'라는 말, 정말 맞지 싶어요.

후훗~기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