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탁구공 같아. "
멀리 아프리카에 있는 사랑하는 친구 지혜가 내게 한 말.

요즘 내 일상은....정말 "탁구공" 같다.
스피드와 민첩성은 있으나 전략은 없는 선수의 손목에
핑퐁 핑퐁 정신 없이 날아 다니는 탁구공.

그러다 보니 실속 없이 바쁘기만 하다.

난 참...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관리하는데 젬병이다.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일을 한다.

내 앞에 앉은 J과장은 아침마다 계획을 세운다.
두꺼운 "프랭클린 플래너"에 아침 일찍 해야할 일을 빼곡히 쓴다.
"소중한 일을 먼저하라!"는 프랭클린의 충고대로
해야할 일을 A+에서 C-인지 D-까지 질서정연하게 분류한다.

그뿐이랴?
가정경제에도 "중장기 계획"을 도입했다고 한다.
회사에서 중장기 계획을 세우면서
가정경제에도 중장기 비전과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단다.

한달에 한번인가 두번인가 부인과 함께
자산현황과 계획 대비 실적을 확인하고 개선방향을 의논한다고 한다.

중장기 계획 달성을 위해 J과장의 부인은 남편의 헌신적 외조 속에
공인중개사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그들 부부는 지금 한참 공사중인 재건축 아파트에 입주할 날을 행복하게 기다리고 있다.

그에 비해 나는 당일 저녁의 계획도 수시로 바꾼다.
엿장수처럼 기분에 따라,
공사장 아저씨들처럼 날씨에 따라,
인터뷰를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톱스타들처럼 컨디션에 따라.

계획을 세우는데는 젬병이면서,
그 때 그 때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밀어붙히는 실천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무식하고도 용감하게 일을 벌린다.

일주일 전,
난 새로운 세계에 머리를 들이 밀었다.

언제나처럼 무식하고 용감하게 시작했는데,
오랜만에 하루 푹 쉬다 보니 겁이 난다.
잘할 수 있을까?
무모하게 시작했다가 또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건 아닐까?

꼭 연애를 시작하는 기분이다.
이 벅찬 감정과 두려움.

회사생활을 하면서
남들처럼 골프를 배우고 중국어를 배우는 대신,
마케팅 서적을 읽고 저녁에 경영대학원을 다니는 대신,
이리 저리 지치지도 않고 기웃거리며(그것도 돈 안되는 일만 골라서!)
수도 없이 삽질을 했다.(다행히... 체력 하나는 좋다.)

이번은...
제발 이번은....
삽질이 아니기를....
그렇게 쉬지 않고 찾아 헤매던 그 길이 맞기를....

오랜 시간 날 옆에서 지켜봐 준 국민학교 동창 재범이의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려 한다.

" 넌 삽질을 한게 아니야.
방향성이 없으면 삽질이지.
넌 한 방향으로 가고 있어. 네게 필요한 자양분을 쌓으면서."

기왕 시작한거 물러서지 말자.
겁내지 말자. Go Go!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플로라 2006-07-17 2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 안녕하세요~ 첨으로 인사드려요...^^ 저도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튀어다니느라 정신없는 나날들입니다. 공감할 수 있는 좋은 말들 덕분에 힘이 되는데요.그리고 동창분 말씀처럼 수선님께 필요한 자양분이 되었을 거예요.^^

kleinsusun 2006-07-17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플로라님, 안녕하세요!
플로라님도 정신 없이 튀어다니시는군요.^^
플로라님도, 저도...지금의 이 정신 없는 순간들이 가야할 길을 가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길 바래요. 우리 홧팅해요!^^

마늘빵 2006-07-17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계획성있는 생활보다 맘대로 가는 생활이 더 좋아요. 물론 경제적 측면에서 한참 뒤지겠지만요. 치밀한 계획 아래 이것저것 다 재다보면 삶이 재미 없을거 같아요. "내(뽀인뜨) 멋대로 살아라" 이게 좋아요.

kleinsusun 2006-07-17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오랜만^^
저도 물론...맘대로 가는 생활이 좋죠. 하지만....같은 자리를 빙빙 돌고 있는건 아닐까...걱정스럽고 두렵기도 해요. 방학은 잘 보내고 있어요?^^

2006-07-17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6-07-17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쁘신 줄 알았어요.
그 J 과장님네 얘기 들으니, 저의 무질서하고 일단 저질러보자, 하다 안되면 쉬고~하는 식의 생활이 무척 문제있어 보이기도 하네요. ㅎㅎ

hnine 2006-07-17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기 보다는, 그때 그때 '필'이 꽂히는 대로 최선을 다하자는 주의의 사람이 있답니다. 제 남편이 딱 그 타입이더군요. 성격이고 개성이라고 봐요.
기왕 시작한거 물러서지 마세요.
겁낼게 뭐가 있겠어요 ^ ^

kleinsusun 2006-07-17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이신님, 살짝꿍 알려드리죠.^^

BRINY님, 님도 저와 같은 부류군요.ㅎㅎㅎ

hnine님, 용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왕 시작한거.... 아자!

마태우스 2006-07-18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나중에 살짜쿵 알려주세요. "난...삽질을 했다"는 대목에서 강력히 반발하게 되네요. 골프나 재건축아파트보다도 님은 훨씬 더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생각해요. 홈피 가꾸는 것만 해도 그들보다 훨씬 나은데요 뭐.

kleinsusun 2006-07-18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네...님도 X촌에서 만나면 살짝꿍 알려드릴께요.^^
저...삽질한거 아니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당.꾸~벅 ㅋㅋ

잉크냄새 2006-07-18 1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삶의 방향성!!! 이 있으면 삽질이 아니라는 친구분의 말씀에 공감해요.
탁구공도 드라이브 제대로 걸리면 일정한 방향과 엄청난 속도를 가진다는 것 아시죠? ㅎㅎ

kleinsusun 2006-07-18 14: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님, 저는 탁구를 잘 못쳐서 제가 치는 탁구공이 일정한 방향으로 나간 적은 없지만, 탁구 경기를 보면 정말 일정한 방향과 엄청난 속도로 나가더라구요.
네...제가 쏟은 그 모든 에너지가 결국 다 모여서 엄청난 힘을 낼꺼라 믿어요.^^

moonnight 2006-07-19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기를 내셔요. 전 수선님의 탁구공같은 다이내믹함이 무척 부러워요. 전 늘 소극적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무지하게 큰 편이라. ㅜㅜ 분명 잘 되리라 저도 믿어요. ^^

kleinsusun 2006-07-19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달밤님, 안 그래도 오늘 달밤님 생각했었는데....^^
네...잘 될꺼예요. 노래도 있쟎아요. 잘 될꺼야~ 하며 춤추는....ㅎㅎㅎ 홧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