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79년생인지, 79학번인지 헛갈리는 남자 후배 C가 있다.정말 79년생 맞나 궁금해서 민증까지 봤다. 확실하다. 79년생 98학번. 그런데 C의 사고방식은 79학번 남자에 더 가깝다.남자로 태어난 게 무슨 벼슬인지 안다.

한 번은 C가 꿈꾸는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 얘기를 듣다가 한대 칠뻔 했다. 차 한대에 다섯 명이 타고 고속도로를 달릴 때라 내릴 수도 없고, 귀를 막을 수도 없었다. C의 입을 막아 버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심호흡을 하며 성질을 죽였다. C의 확신에 찬 표정으로 봐서 C는 자기가 얼마나 지독한 '모순'에 빠져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심호흡까지 하며 힘들게 들은 C의 이상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매일 아침 미니스커트를 입고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끓이며 남편의 아침을 준비하는
여자.
- 생활력 있고, 너무 곱게 자라지 않은 여자.
- 자기 부모님을 모실 여자(부모님하고 같이 사는 게 결혼 제 1조건이다.)
- 결혼하면 전업주부 할 여자(바쁜 여자 싫단다.)
- 애교있고 섹시한 여자
이런 여자가 세상에 있긴 있는지 모르겠다.만약 있다면 '다중인격 장애'를 앓고 있지 않을까?

C는 말한다. 여자가 시부모를 모시는 건 당연한 거라고.시부모를 모시지 않겠다는 여자는 가정교육을 잘못 받은 거라고. 오빠나 남동생은 자기 부모를 모시기 바라면서, 자기는 시부모를 모시지 않겠다는 태도는 이기적인 거라고.

C의 얘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79년생 C의 몸에는 조선시대에 장가 한 번 못 가보고 죽은 몰락한 양반의 혼이 들어 있는 게 아닐까? 영화처럼.

C는 입사한지 몇 달도 안돼 회사를 옮겼다.돈 많이 주고 편한 데로 간다기에 축하해 줬다. 오늘 이상하게 C생각이 났다. C가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선배님 같이 바쁜 여자랑 결혼하면 밥이나 얻어 묵겠습니까?"

그래.많은 사람들의 눈에 나는 그렇게 보일 꺼다. 바쁜 여자. 서른 훌쩍 넘었는데 결혼도 안한 여자.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여자.남자 보다 자기 일에 욕심이 많은 여자.

어제 처음 만난 회사선배의 친구와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나를 처음 본 그 남자의 눈에 나는 "쿨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인생을 즐기고, 대범하고,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말 그대로 "쿨한" 여자.

남들한테 "쿨하다"는 얘기를 들을 때, 솔직히 당황스럽다. 난 쿨하기는커녕 내 정서는 차라리 신파에 가깝다. 울고,짜고,미련 많고,약지 못하고,여려 터진 신파.

"쿨하다"는 오해(?)를 받으면 쿨한 척 해야 할까?
아니면 "전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상처를 잘 받는답니다." 하고 커밍 아웃을 해야 할까?

오늘 나는....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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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19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라면 C앞에서 막 웃었을 것 같아요.
계속...말 할.때.마.다.

비로그인 2006-05-19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밥 쳐먹으려고 결혼하나?
결혼하는게 아니라 식모를 하나 구하려고 하나봐요.

이리스 2006-05-19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마 다른건 생각이 구닥다리인가보다 하겠는데 대체 미니 스커트에 된장 찌개는 뭐에요? 변태인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일본 포르노를 너무 본건가 싶기도. ㅎㅎ 아예 올 누드에 앞치마 하나만 두르고 하라고 하지 왜?

비로그인 2006-05-19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낡은구두님 푸후후 저도 거기서 굉장히 변태스러운 느낌을 받았는데 제대로 표현해주셨어요... 올 누드에 앞치마 ㅎㅎㅎ

mannerist 2006-05-19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머슴살이의 쾌락을 세계만방에 전파해야겠어요. =)

2006-05-19 0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Koni 2006-05-19 0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상은 자유고 구닥다리 사고를 갖고 있는 것도 자기 인생 망치는 거라고 생각하니 맘대로 하라고 해도, 그 후배는 때와 장소를 못 가리는 무례함만큼은 고쳐야 사회생활이 편할 텐데요. 그런 헛소리를 떠들면서 상대방이 불쾌할 거란 생각도 못하는 건지... 쯧쯧.

플레져 2006-05-19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타깝네요. 그런 여자 만나기 힘들텐데... 모든 조건과 생각이 준비된 남자일수록 사랑에 빠질 확률은 낮고... -.-
커밍 아웃하지 마세요, 쿨함과 온화함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는 거 다 보여요 ^^

마늘빵 2006-05-19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79인 저는 다른데. -_-;;;

프레이야 2006-05-19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커밍아웃해야하려나... 보이는 것과 실제에는 차이가 있죠. 오늘아침 비가 내리고 있어요^^

클리오 2006-05-19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똑같은 말씀 드리지만, 그런 놈이랑은 말섞지 마세요.. 스트레스 받아요. 세상에 괜찮은 사람도 많은데, 그런 놈만 보면 삶이 우울해지니까요.^^

BRINY 2006-05-19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 거 보면 제 남동생과 사촌동생들은 참 건전하게 잘 자란 편입니다. 다행.

nada 2006-05-19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댓글들 보고 웃고 갑니다~~ 정말 만정 떨어지는 x네요.

2006-05-19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6-05-1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를 찾아서님, 걔 말할 때 넘 짜증나서 웃음이 안 나왔어요. 비웃음조차....ㅠㅠ

낡은 구두님, 아침 7시 30분에 님의 댓글을 보고 넘 웃겨서 뒤집어지게 웃었어요.올누드에 앞치마!!! 아.....정말 압권이야.ㅎㅎㅎ 걔는 올누드에 앞치마를 상상하고 말로는 미니스커트 얘기를 했는지도 몰라요.ㅋㅋ

나를 찾아서님, 그죠? 변태 같어...아침 일찍 립스틱을 바르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밥을 하는 여자라니...

매너야, 그래 아무래도 니가 선봉에 나서야 겠다.ㅎㅎㅎ

kleinsusun 2006-05-19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숨어계신님, 그죠? 시부모님 앞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된장찌개를 보글보글...ㅠㅠ
그 후배는 1년도 안되서 회사를 2번이나 옮겼어요.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를 직장에서도 느끼는 것 같아요.

냐오님, 걔는 다른 사람이 불쾌한지 몰라요. 왜냐면....자기 생각이 "상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ㅎㅎㅎ

플레져님, 아....감사합니다. 어제는 좀 우울했었거든요. 커밍 아웃이라도 할까?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언제나 힘이 되는 님! Thanks!^^

아프락사스님,.......님이랑 동갑이라는게 믿어지지 않아요.ㅎㅎ

혜경님, 곧 비가 올 것 같은데 여긴 아직 비가 안 오네요. 날씨가 꾸물꾸물...좋은 주말 보내세요!^^

kleinsusun 2006-05-19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걔 회사 그만둘 때 은근.....기뻤어요. ㅎㅎㅎ 맞아요, 세상에 좋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BRINY님, 아...남자 동생이 있으시군요. 전 여자 동생만 2명이예요.
79년생이 그런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다는게 진정....신기해요.

꽃양배추님, 걔가 어떤 여자랑 결혼할지 궁금하다는....ㅎㅎㅎ

숨어계신님, 감사합니다. 점선으로 된 책을 사야 겠군요. 이쁜 글씨를 쓰고 시퍼요!^^

2006-05-20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