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내가 신입사원 때 결혼한 절친한 친구 H는
모대학의 겸임교수이며, 어엿한 두 아이의 엄마이자 학부형이다.
큰 애가 벌써 초등학교 2학년이라니....시간 한번 정말 빠르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는, H와 함께 삼총사였던 친구 B는
세 아이의 엄마다.
쌍둥이 엄마가 되서 주위를 놀라게 한게 엊그제 같은데,
얼마 전 귀여운 쌍둥이들의 동생을 낳았다.

H와 B를 만나면 물론 반갑다.
중학교 때부터 같이 자란 소중한 친구들이다.

그런데....H와 B를 만나면 내 자신이 작아 보인다.
솔직히...불안함을 느낀다.

H와 B는 이미 오래 전에 한 일들이
내겐 숙제로 남아 있다.

결혼하기, 엄마 되기, 부자 되기 등등...

물론 내가 꼭 해야 할 숙제는 아니다. 선택하지 않는다면.
모두 다 똑 같은 길을 걸어야 되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언제까지 이렇게 혼자서
쿨한 척, 멋있는 척 하며 살기도 버거운 게 사실이다.

일이란 게, 물론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버겁고 힘들 때도 많다.
정말 확~ 때려 치고 싶을 때도 많다.
내가 무슨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주위에서는 출장 자주 다니고, 겉 보기 화려해 보이니까
"멋있어요!"
"피오리나 같은 CEO가 될꺼예요!"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의사,회계사,변리사 같은 든든한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특별한 기술이 있는 엔지니어나 연구원 같은 전문인력도 아니고,
자격증이라고는 운전면허 밖에 없는 평범한 회사원 입장에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친구들에겐 한 능력하면서 집도 부자인 남편이 있다.
친구들에겐 벌써 뛰어 다니는 애들이 있다.
친구들이 소유한 부동산은 고공행진을 하며 쉴새 없이 오르고 있다.

"비교"라는 게 마음의 평화에 가장 나쁘다는 걸 안다.
"비교"라는 게 얼마나 부질 없고, 파괴적인 건지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솔직히 불안하다.

친구들이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우뚝 서있는 저택이라면,
난 낯선 바다를 떠돌고 있는 유리로 만든 배 같다.

너무 self-esteem이 부족한걸까?

토요일에 친구들을 만나고 집에 와서 습관적으로 노트북을 켰다.
한시간, 아니면 두시간 후?
난 쌩뚱 맞은 site들에서 헤엄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난....몇몇 대학의 MBA 입학 과정을 보고 있었다.

주위에 퇴근하고 대학원 다니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여기에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느낀 불안감이 보태지면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증을 부채질 했나 보다.

내가 졸업한 학교를 비롯한 2~3 대학의 MBA 입학과정, 지원절차들을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 지금....뭘 하고 있는 거지?
왜 항상....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왜 항상....스스로를 좀 편하게 놔두지 못하는 거지?

자기계발은 좋지만 MBA는 뭔 MBA냐?
하고 싶은 공부가 얼마나 많은데...
읽고 싶은 책이 얼마나 많은데....
공부를 하려면 하고 싶은 공부를 해야지...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이 말은 진실이다.
쓸데 없이 불안에 떨지 말자.
불안 때문에, 쓸데 없는 일을 벌이지 말자.

수~금 상하이 출장이다.
월요일 아침부터 정신 못 차리지 말고, 출장 준비를 잘하자.
현재 주어진 일에 충실하자.
쓸데 없는 감상, 쓸데 없는 불안에 휩쓸리지 말자.

48시간 후면 상하이로 날아가는데,
감상에 빠져 있을 시간이 없다구.오키?

불안~ 꺼져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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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6-04-1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케. 불안~ 꺼져버려!!!

마늘빵 2006-04-17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을 읽으세요 (이런 쌩뚱맞은 멘트를 하다니! )

이리스 2006-04-17 1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백배 공감하고 갑니다! 추천 누르고 화이팅 외쳐드려요~

마태우스 2006-04-17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앞날에 대한 불안은 대부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제가 잘릴까봐 늘 불안해하구... 주위에선 니가 왜 잘리냐고 하지만, 저 스스로는 그렇거든요. 수선님도 주위에서는 피오리나처럼 될거라 하지만, 님 스스로 너무 자신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으신 듯... 그게 인간의 속성이겠지요. 자기가 응원하는 팀은 아무리 앞서 있어도 불안하고, 조금만 뒤지면 :"오늘 졌네" 이러잖아요.

비연 2006-04-17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하이, 잘 다녀오세요^^
비교한다는 건, 제 인생에서 남의 인생을 사는 참 소용없는 시간들입니당
출장지에서 더욱 님을 찾는 경험들 많이 하시길 바라며..^^
참고로 상하이, 재밌슴다~^^ 구경도 실컷 하세요~~

다락방 2006-04-17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같은 월요일은 수선님 앞에 앉아 소주잔을 부딪치고 싶네요. 맑은 소주가 마음을 달래주려나요..휴~

kleinsusun 2006-04-17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그래도 아침에 "꺼져버려!" 소리치고 났더니 슬슬 기분이 좋아졌어요.^^ 감사합니당.

아프락사스님, <불안> 사서 책장에 꽂아둔지가 벌써 작년이네요.
읽어볼께요. 근데....이 책이 불안을 잠식시키는데 도움이 되나요?

낡은구두, 아.... 낡은구두님도 이런 기분 느끼신 적이 있군요. 위안이 됩니당.
우리 빨리....곱창 먹으러 가요. 곱~창!

마태님, 잘리실까봐 걱정하시는거....정말이었어요? 전 농담 또는 겸손함인지 알았는데....
마태님 같은 슈퍼스타도 불안해 하신다니....위안이 되네요. 언제나 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연님, 맞아요. 비교 한다는거 참 부질 없고, 소용 없고,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일이예요.
알면서 못하니깐 문제지만....
제 자신에 좀더 다가가는 좋은 시간 보내고 올께요. 감사합니다, 비연님^^

다락방, 날씨가 참 꾸물꾸물하네요.
다락방님도 약간 우울모드? 아님 저를 위해 소주 한잔?
우와....다락방님, 감동이예요. 저 상하이 같다 와서 한잔 하자구요.
직장이 강남역 근처라 하셨죠? ^^

혜덕화 2006-04-17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욕심장이 수선님, 불안은 사라졌나요?
불안이 어디에 있었죠? 마음 속에? 아니면 마음 밖에?
마음 속에 있었다면 꺼내서 던져 버리면 되고, 마음 밖에 있는 거였다면, 마음 밖은 수선님이 아니니 상관없겠죠?
저는 그렇게 자기 일 잘하고 글 잘 쓰고 여행도 많이 다니는 수선님이 대단하게 보이는데요. 상하이 잘 다녀오세요._()_

mannerist 2006-04-17 2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물사다줘요. 씨익 앤드 화알짝 ^_^o-

(버르장머리 없는 매너놈 다녀와서 사정없이 두들겨 패셈... 불안 날아갈때까지. ㅎㅎ)

kleinsusun 2006-04-18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욕심장이"라고 부르시니 꼭 선생님 앞에서 떼쓰다 다독거려지는 어린이가 된 것 같아요.ㅎㅎㅎ 글쎄요...불안이 제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던 걸까요, 아님 마음 바깥을 떠돌던 불안이 제가 약해졌을 때 침투한 걸까요? 음....요걸 생각해 봐야 겠네요. 마음 속에 있는 불안이면 툭툭 먼지털 듯 털어내게요.^^
혜덕화님 댓글은 언제나 제게 힘이 된답니다. 잘 다녀올께요, 감사합니당.

매너야, 헉....정말 때려도 되는거얌? ㅎㅎㅎㅎㅎㅎㅎㅎ
내 어찌 연애하는 알흠다운 청년을 때릴 수 있겠어?^^

2006-04-18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4-22 17: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