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의 독서일기 6 범우 한국 문예 신서 56
장정일 지음 / 범우사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장미의 이름 읽기>로 알려진 강유원 박사께서는
그의 전문적이고 예리한 지적 성찰로 가득한 서평집 <책>에서 <장정일의 독서일기 2>를 이렇게 평하셨다.

....놀라운 것은 장정일이 참으로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다.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그는 하루 종일 책만 읽어도 먹고살기에 별로 어려운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p58)

"...나름대로의 시각이나 이론적 줄거리 없이 촌평만 적어 놓은 것을 책으로 묶는다는 것은 별로 칭찬할 만한 건 못 된다.차라리 도서목록만 한 장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장정일은 많은 분량의 책을 읽지만 그것이 지식으로 축적되는 것 같지는 않다.다시 말해서 구슬은 많지만 그것을 꿰어서 이론적 줄거리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는 듯 하다."(p59)


"하루 종일 책만 읽어도 먹고살기에 별로 어려운 처지가 아닌 삶"

아니러니하게도....
이런 삶은 장정일의 어린시절 꿈이었다.

"어린시절의 내 꿈은 이런 것이었다.동사무소의 하급 공무원이나 하며서 아침 아홉시에 출근하고 오후 다섯시에 퇴근하여 집에 돌아와 발 씻고 침대에 드러누워 새벽 두시까지 책을 읽는 것.
누가 이것을 소박한 꿈이라고 조롱할 수 있으랴.결혼은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를 생각도 없이, 다만 딱딱한 침대 옆자리에 책을 쌓아놓고 원없이 읽는다는 건 원대한 꿈이다...."

- <장정일의 독서일기 1>(범우사/1994) 머리말 中에서

그러나....
달랑 중학교 졸업이 학력사항의 끝인 장정일은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변변한 졸업장도 없다.배운 기술이라곤 글쓰기 뿐.
그래서 소설을 쓰게 되었고,절필할 때 하지 못하고 글판에 어기적거리다가 감옥까지 가게 됐다."

<생각-장정일 단상>(행복한 책읽기/2005) page 15

서평이란 말 그대로 "text"를 평하는 글일텐데,
서평 "전문가"라는 사람이
저자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이해도 없이
그저 추정 또는 짐작으로
"그는 하루 종일 책만 읽어도 먹고살기에 별로 어려운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라고 말하는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

저자가 책만 읽어도 먹고살 수 있는지, 없는지 여부가
서평을 하는데 중요한 사항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구태여 저자의 "경제적 여유"를 따져야 한다면,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책세상문고 우리시대 037 )
이런 책까지 있는 대한민국에서,
중졸의 소설가 보다는
철학과에 입학해서 박사까지 마친 사람이
책만 읽고 살기에 더 널널하지 않을까?

<장정일의 독서일기 6>은 그의 예전 독서일기와 많은 차이가 있다.

소설이 대부분이었던 예전 독서일기들에 비해,
<독서일기 6>은 사회과학, 특히 역사서들이 많다.
그의 독서가 <삼국지>의 밑거름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장정일은 2002년 1월
아서라이트의 <중국사와 불교>(신서원,1994)
왕영관의 <혹형-피와 전율의 중국사>(마니아북스,1999)
김문학의 <반문화 지향의 중국인>(이채,1999)
미타무라 타이스케의 <환관>(나루,1992)
정인갑의 <중국문화.com>(다락원,2002)을
연달아 읽고 이런 감상을 피력했다.

"사족: 요 며칠 사이에 읽었던 책들은 <삼국지>를 쓰면서 중국에 대한 잡상식을 얻고 또 메마른 전문 서적과 자료를 읽는 사이에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읽었던 책들로, 재미는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아날학파적이라고 해야 할 이런 류의 역사서가 갖고 있는 '지식의 포켓북화'와 '지식의 시리즈화'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p 47)

블라디슬라브 스필판의 <피아니스트>(황금가지,2002) 는
<독서일기 6>에 있는 수많은 책들 중에서 내가 읽은 몇 안되는 책 중 하나.
똑 같은 책을 읽어도 이렇게 넓게 보고 또 깊게 생각할 수 있구나...역시 작가다....감탄하며 읽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6>을 읽으며 하나 아쉬웠던 점은,
남의 일기를 훔쳐 보는 것 같은 재미가 대폭 반감되었다는 점이다.

예전 일기들이 혼자 끄적거린 일기 같았던데 반해,
<독서일기 6>은 출판될 것을 의식하고 썼다는걸 군데군데 발견할 수 있다.
출판사에게 결례가 될 것이라고(판매에 영향을 준다고) 자세한 줄거리를 생략한다거나,"독서의 기술"을 얘기하는 등...

<장정일의 독서일기 7>은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하다.
<독서일기 6>이 03년 4월까지의 일기니까,
이제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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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g 2006-01-2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참 좋아하는 작가에요...
그의 치열한 글쓰기가 생각나면서
신작도 나올법 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드네요 ^^

바람돌이 2006-01-23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별로 제 취향은 아니어서 장정일은 잘 안 읽는데, 그래도 이 사람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은 해요. ^^

이리스 2006-01-2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1권부터 저에게 무척 중요한 책이 되었지요. ^^;
신작이 기다려집니다.
저도 한때 하급 공무원이 꿈이었다지요? ㅎㅎㅎㅎ

moonnight 2006-01-2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루종일 책만 읽고도 먹고 살기에 어려운 처지가 아닌 삶> 알라디너들의 로망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 알라딘에서 알게 된 필독서 중 하나가 장정일의 독서일기인데.. 흑. 아직도 못 읽었어요. ㅜㅜ 올해는 꼭. 불끈. ^^ ;;

코마개 2006-01-23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강유원씨가 대학교수로 알고 있는데, 교수도 '하루종일 책만 읽고도 먹고 살기 어려운 처지가 아닌 삶'에 관한한 만만치 않은것 같은데. 특히 인문계 교수...그것만 잘하면 업적평가도 잘 나오고...

2006-01-23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pper 2006-07-14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도권내의 사람의 눈에 장정일은 파열음을 동반하는 이단아 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님의 글을 보니 문득 장정일의 시 게릴라가 생각납니다.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며 음식과 옷 잠자리가 정해져 있는 정규군이

산악지대의 풀섶을 헤치며 투쟁과 삶이 한묶음이 될 수 밖에 없는 슬픔 자화상.....

게릴라

당신은 정규군
교육받고 훈련받은
정규군.
교양에 들러붙고
학문에 들러붙는
똥파리들!
그러나 고지점령은
내가한다!
나는 비정규군
적지에 던져진 병사
총탄을 맞고 울부짖는 게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