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 L이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난 너무도 기쁜 마음에 물었다.
"정말? 야....잘됐다. 어떤 사람인데?"

L은 말했다.
"니가 보면 실망할지도 몰라.
정말 착한 것만 빼면 아무 것도 없어.
그 사람 살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아."

난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의 사랑에 들떠서 말했다.
" 착한게 젤로 중요하지.잘 사겨봐!
뭐가 문제야? 남자 하나쯤 먹여 살릴 수도 있쟎아."

난 호기롭게 말했다.
너무도 오랜만에 마음을 열려는 친구가
시작도 하기 전에 그 사랑을 포기하지 않도록...

그런데...
그런데...

물론 "남자 하나쯤 먹여 살릴 수도 있쟎아."란 말은
"착한게 젤로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다.

그런데...

만약....내가 마음 하나만은 천사표인 빈털털이 남자랑 사랑에 빠진다면,
극단적인 예를 들어, 20살 짜리 어린 남자애랑 사랑에 빠진다면(황당한 상상인가?ㅎㅎ),
난 "남자 하나쯤 먹여 살릴 수도 있쟎아. No problem!"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사랑하니까 결혼한다고?>(원제 : Heiraten ist unmoralisch) 의 저자
에스터 빌라 언니는 말했다.

"소신 있는 여성은...... 서른이 되기 전에는 결혼하지 않는다.
아울러, 남성은 수명도 짧고 또 성적인 능력도 일찍 노쇠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최소한 몇년은 연하의 남자를 선택한다.
그리고 혹시 재정상의 문제에 부딪힐 경우 당연히 그 남자를 '부양할 용의'가 있다."

에스터 빌라 언니의 정의에 따를 때,
난...."소신 있는 여성"이라고 말할 수 있나?
그러니까....난 남자 하나쯤 먹여살릴,"부양할 용의"가 있는가?

솔직히....자신이 없다.
더 솔직히....그러고 싶지도 않다.

신데렐라가 되고 싶지도 않고,
키다리 아저씨가 어디서 뿅 나타나는 상상을 하지도 않지만,
누군가를 부양하기는 싫다. 그럴 자신도 없고...

남자들은 대개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생각한다.
(물론.... "부모의" 경제적 능력을 생각하는 남자들도 많다,)

잘났건 못났건,
억대 연봉이건 시간당 아르바이트건,
자신이 가장이 되어 한 여자와 앞으로 태어날 아기를 부양할 수 있는지(부모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생각한다.

여자들은 대개 결혼을 앞두고 자신의 경제적 능력을 생각하는 대신,
남자의 경제적 능력을 따지거나 평가한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라면,
자기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남자 하나쯤 "부양할 용의"가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유감스럽게도....
난 그렇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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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1-12 0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남자거나, 여자거나, 안 부양하고 싶은데;; 음;; 내가 부양할 수 있는건 우리 레오 정도. 요. 하지만, 외모가 출중하고, 몸도 좋고, 데불고 다니기 뽀대나고, 뭐, 그렇다면 "부양할 용의 " 있습니다. ( 농담입니다. 농담일까요? 에헤라 디야~)

인간아 2006-01-12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허공으로 '부양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러나 되지 않는군요.

kleinsusun 2006-01-12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이드님, 농담 아닌 것 같은데...ㅎㅎ
레오는 강아지예요? 고양이? 하이드님의 이미지는 왠지 고양이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

인간아님, 닉이랑 이미지랑 댓글의 삼박자 조화가 정말 절묘하네요.^^ 이미지는 어디서 가져 오신거예요? 참...늦었지만 Happy New Year!

조선인 2006-01-12 1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표현대로라면 전 '부양'하고 있는 사람이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벗하고 사는데 누가 누구를 일방으로 부양하는 것이 있을까요? 하물며 부모도 자식을 부양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는 걸요. 닥치면 하게 된다가 아니라, 의지가지하다보면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더라구요. *^^*

로드무비 2006-01-12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능력에 꽤 점수를 주고 결혼했는데 그의 상황이 달라지면요?
'부부 누구든 형편에 따라 생활비를 벌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필히
가지는 게 편하실걸요?
페미니즘이 어쩌고도 필요없이.^^

마늘빵 2006-01-12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둘이 합쳐 같이 부양하면 되는데. 그게 젤 좋은듯.

이리스 2006-01-12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누군가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관계는 그다지 건강한 관계가 아닌듯 해요. 뭐 한쪽으로 많이 기울어 7:3이 된다고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나누는게.. -_-;;
저도 남자 먹여 살려가면서 살 생각은 없네욤.

moonnight 2006-01-12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우에 따라서는 뭐, 먹여살려도 될 거 같은데요. ^^;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상대의 능력에 기대어 살겠다는 생각 가진 사람이라면 여자든 남자든 곤란할 거 같아요. 로드무비님 말씀처럼, 평생 함께 하겠단 맘으로 결혼하는 거라면 서로를 먹여살리겠다는 생각을 가지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요. 일방적이 되는 건 무엇이든 자연스럽지 않아보여요.

2006-01-12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6-01-12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오늘 조선인님에게 많이 배우네요.
"부모도 자식을 부양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는 조선인님의 말씀에 전 아직 한참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선인님은 참 좋은 엄마인 것 같아요.^^

kleinsusun 2006-01-12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넵!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부부 누구든 형편에 따라 생활비를 벌 수도 있다고....

글이 솔솔 안 써지고 쓰다가 졸리기도 하고 좀 꼬이기도 했는데,
제가 제 자신에게 물었던건요... 왜 남자는 여자를 부양할 결심을 하는데, 왜 여자는 그런 결심을 하지 못하는가? 요거였거든요.
아...전 넘 생각만 많은거 같아요. 로드무비님처럼 체험이 따뜻하게 녹아 내리는 글을 쓸 수 있도록, 실전에 들어가야 겠어요.ㅎㅎ

kleinsusun 2006-01-12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네...그게 정답이죠. 서로 도우며 사는거...^^

낡은구두님, 맞아요. 여자건 남자건 일방적으로 상대방에게 의지하는건 좋지 않아요. 사랑이라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너무 많은걸 바라는건....서로 힘들어질 것 같아요.

moonnight님, 우리....너무 이론만 파는거 같아요.음하하.
실전에 언제쯤 들어갈깝쇼? 헤헤.

BRINY 2006-01-12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누가 누구를 일방적으로 '부양'한다고 생각하면 결국 '내가 누구 먹여 살리려고 이렇게 밤낮으로 참고 고생하는데'류의 넋두리가 나올 거 같아서 싫네요. 어릴 때 부모님한테서 그런 말 듣는 것도 정말로 싫었거든요. 단, 서포트할 가치가 있는 사람 or 일이라면 서포트할 용의는 있지만요. 그래서 계속 일을 하는 거기도 하구요.

kleinsusun 2006-01-12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 맞아요. 내 자신이 누구한테 짐이 될 수도 있다는거... "내가 누구 땜에 이렇게 고생하는데..." 이런 얘기 듣는거...정말 싫쟎아요. 그래서...자기 밥벌이는 자기가 해야 되요.^^

클리오 2006-01-12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더욱 큰 문제는 그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서 나와의 학력차나 경제능력 차이에서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집안일에도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맡아야 되는데... 우리나라 사회가 남자들을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게 놔두질 않고 결국 그러한 '차이' 때문에 삐걱거리는 경우도 종종 봐서요. 서로 진정으로 동등하게 생각하게 시작하는 것이 그 어떠한 조건의 맞춤보다 더 중요한 것 같아요.

kleinsusun 2006-01-12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오랜만에 오셨군요. 반가워요.^^
네...."진정으로" 동등하게 생각하기....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어떤 조건 보다...

LAYLA 2006-01-13 0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전 클리오님이랑 완전 동감이에요 ^^
전 ..제가 정말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면. 하지만 나머지 부분은 모두 저에게 잘 맞는다면. 그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서라도 더 열심히 일할거 같아요...^^

kleinsusun 2006-01-13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님, LAYLA님의 생각은 항상 신선하고 또...귀여워요.^^
방학은 즐겁게 보내고 있나요? 회사원들에게도 방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ㅎㅎ

릴케 현상 2006-01-21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째 내 얘기 같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