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둘째 날. 어제, 오늘 세 꼭지를 더 써서 55% 달성. 아직 가야할 길이 멀지만 그래도 반 넘게 썼다. 원래 책을 쓸 때 다른 저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아마...꼭지 수를 채운 다음에 1st draft를 출판사에 넘기겠지?) 난 3꼭지, 6꼭지씩 쓰는 대로 출판사 담당자에게 계속 보냈다. 물론 오늘 쓴 3꼭지도! 친애하는 기획자 L은 찔끔찔끔 원고를 보내면 귀찮을 만도 한데 원고를 보낼 때 마다 커멘트도 해주고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최고의 필자"라고 부르며! Yes24 웹진 <채널예스>에 실린 김주하 아나운서 인터뷰를 보면 김주하는 뉴스데스크를 진행한지 1년쯤 됐을 때부터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아 왔다고 한다. 책의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잘 나가는 여자 김주하를 포장지로 할 수 있으면 어떤 책이든 괜찮다는 제안도 있었단다. 안 봐도 비디오다. 나도 메이저급 출판사들 몇 군데에서 제안을 받았는데 "여대생이 닮고 싶은 여성" 1위라는 뉴스데스크 진행자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러브콜을 받았을까? 나랑 계약을 한 출판사는 덩치 면에서 메이저급은 아니다. 하지만 정말 내가 찾던 기획자를 만났다. 내가 원했던, 내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기획자는 내 작업을 애정을 가지고 지켜봐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메이저급 출판사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헤드헌터를 만난 것 같은 기분, 또는 오디션에 통과하고 고마워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함께 작업하고 있는 출판사를 처음 만났을 때는 담당자 뿐 아니라 주간님까지 세 분이나 나오셔서 밤 늦게까지 왁자지껄 떠들며 술을 마셨다. 초등학교 반창회 같은 편안한 분위기였다. 그 때 술을 마시며 생각했다. 엮였구나! 그리고 얼마 후, 망설임 없이 계약했다. 책을 쓰면서 자기 검열을 많이 한다. 언젠가 우연히 알게 된 한 문학평론가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염결성의 윤리를 갖고 계시는군요." (그 때 "염결성"이란 말을 처음 들어봤다. 술 먹다가 "지식의 환원은 윤리" 라는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술자리의 윤리에는 약한 사람이었다.) 염결성의 윤리까지는 몰라도 어떤 강박 같은 건 갖고 있다. 최소한 펄프는 안 아까운 책을 쓰고 싶고, 돈 만 원이 안 아까운 책을 쓰고 싶고, 내 스스로에게 쩍 팔리지 않은 책을 쓰고 싶다. 그러다 보니 진도를 쫙쫙 뽑지 못하고 고민에 갇혀 있을 때가 많다. 2주 전에는 주말 내내 책상에 앉아서 한 줄은커녕 한 단어도 쓰지 못했다. 그럴 때 마다 L은 내게 용기를 북돋아 준다. 다른 저자들한테도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최고의 필자"라 부르며! 아까 바람도 쐴 겸 서점에 갔었다. 출간 소식을 못 들었었는데 <장정일의 독서일기 7>이 있기에 사 왔다. <공부 -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를 읽고 그렇게 실망을 했으면서도 또 다시 지갑을 여는 나는 장빠? 휴식 겸 잡문을 쓰며 기네스를 한 캔 마시고 있다. 캬~ 맛있다! 자 ~ 이제 다시 시작해 보자구! Go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