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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원의 노래 <영어선생님>에서 영어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상큼하고 맑은 목소리로. "너희에게 소중한 건 사랑과 작은 평화와 진실이라고."
고등학교 2학년 땐가 3학년 때 영어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치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적성? 그런 건 천재나 예술가들한테 있는 거지. 일반인들은 다 비슷하다구. 그러니까 과 따지지 말고 좋은 대학을 가!"
S국립대 농대를 나온 (신입사원 때) 입사동기 K가 딱 이런 경우다.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그 과가 S국립대의 "커트라인"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단다. K는 "썩어도 준치"라는 속담의 신봉자이므로.
"남성적 매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남자를 노력하면 좋아할 수 있을까?" 나의 "우매한" 질문에 결혼한 친구들은 간만에 폭소를 터뜨렸다. 한 친구는 너무 웃은 나머지 눈물을 글썽거리기까지 했다.
"야...니가 지금 20살이냐? 내가 못 살아. 음하하하. 결혼하면 말이야... 남성적 매력? 그런 거 6개월이면 다 없어져. 싹~ 그냥...착하고 능력있는 남자가 최고야. 정신 차려라~"
친구들의 충고를 듣고 있으니 고등학교 때 영어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다.
"적성? 그런 건 천재나 예술가들한테 있는 거지." "남성적 매력? 그런 거 6개월이면 다 없어져. 싹~"
결혼한 친구들, 선배들은 이렇게 말한다. 결혼하고 얼마 안있어 남편은 남자에서 가족으로 변한다고. 남녀간의 격렬한 화학반응은 곧 사라지고 마는 부질없는 거라고. 그러니 착하고 능력 있는 남자를 선택하면 된다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내가 좋아하는 남자가 아니라 나를 좋아하는 남자를 선택해야 된다고!
그래서... 노력해 본 적이 있다. 주위에서 너무도 괜찮다며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남자와 잘해 보려고, 그 남자를 좋아해 보려고.
착하고, 성실하고, 합리적이고, 검소하고, 정직하고.... 수많은 덕목을 갖춘 남자였다.
그뿐이랴? 전문직이고, 억대연봉자이며, 상당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그야말로 두루두루 조건을 갖춘 남자였다.
문제는....그 남자를 만나면 너.무.도 지루하다는 것, 자꾸 하품이 난다는 것,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가끔 말을 하다 답답해서 사이다라도 한잔 마시고 싶다는 것.
내가 힘들어 하자 주위에서는 더 맹렬하게 응원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좋아질지도 몰라!"
하지만....노력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남자가 하는 말보다 옆 테이블에서 들리는 얘기가 귀에 쏙쏙 들어올 때, 너무 할말이 없어서 아침에 읽은 신문기사 얘기를 할 때, 자꾸 주위가 산만해지며 카페의 인테리어까지 찬찬히 뜯어보게 될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음.
확실히 "아니다"라는 생각이 든 사건이 있었다. 그 남자랑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TV에서 일일 연속극을 하고 있었다. 난 그 드라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슬쩍 슬쩍 TV를 곁눈질하며 밥을 먹었다. 재미도 없었는데 이상하게 자꾸 눈이 갔다. 나중에는 아예 고개를 돌려서 TV를 봤다.
그러다...생각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어떻게 나 같은 수다장이가 고개를 돌려 TV를 보며 밥을 먹고 있는 거지?
나의 취미는 농담 따먹기, 나의 특기는 술 마시며 장시간 떠들기. 처음 만난 사람들과도 유쾌하게 잘 떠드는 내가 택시 기사 아저씨, 비행기 옆에 앉은 사람과도 잘 얘기하는 내가 아직도 가끔 "개그"를 해 보라는 권유를 받는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아닌 건 아닌 거다. 주위에서 다 맞다고 해도 내가 아니면 아닌 거다.
그 남자에게 미안하다. 또 그런 어리석은 노력을 했던 내가 어처구니 없이 느껴진다.
적성이란 것도 있고, 느낌이란 것도 있다.
기왕 늦은 거.....끝까지 소신 지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