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 4할은 현대야구에서 도저히 보기 힘든 꿈의 타율이다. 20세기 마지막 4할 타자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타자 테드 윌리엄스(1918~2002). 1941년에 23세의 테드 윌리엄스는 역사적인 4할 타율을 거뒀다. 당시 정규시즌 마지막 연속경기를 앞두고 타율이 정확히 0.400이었다. 감독은 윌리엄스의 타율 관리를 위해 출전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감독의 만류를 뿌리치고 타석에 들어섰다. 8타수 6안타. 한 경기 내에 6개의 안타를 몰아치는 것도 대단하지만, 이보다 더 대단한 기록이 있었다. 그는 타율을 0.406까지 끌어올렸다. 이후로 메이저리그엔 4할대 타율에 도달한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한국에선 프로야구 원년(1982)에 국내 투수들을 동네 야구하듯 두들긴 백인천(MBC청룡)이 유일하다. 그의 타율 기록은 0.412.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김현수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윌리엄스와 존 언더우드가 함께 쓴 타격의 과학(The Science of Hitting)이다. 이 책에서 윌리엄스는 자신의 타격기술을 소개했다. 그는 타석에 들어설 때 스트라이크존을 77개의 구간으로 나눈다고 한다. 그리고 투수가 던지는 볼이 자신이 좋아하는 구간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다. 마침 그 구간에 공이 오면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 결과 그는 동시대에 어떠한 타자들보다도 포볼(볼넷)로 진출한 횟수가 많은 타자가 되었다.

 

 

    

 

 

 

 

 

 

 

 

 

 

 

 

 

 

 

 

 

4할 타자들이 1941년 이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 타자들의 타격 수준이 나빠진 것일까?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 시스템의 진화적 안정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야구선수들 기량이 점점 평준화돼 평균 타율을 중심으로 타율이 지나치게 높은 선수도 지나치게 낮은 선수도 점점 사라지는 게 보편적인 현상이다. 현재 우리나라 야구(KBO)가 수년째 타고 투저 현상이 이어져 있다고 해도 타자들이 4할에 근접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부상이라는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야구선수들은 잔 부상을 참고 견디면서 그라운드를 뛰어다닌다. 아무리 타격 능력이 좋은 선수라도 잔 부상에 고전하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전담 미국 출신 기자의 눈에는 전설적인 야구 선수가 쓴 책을 좋아한다고 밝힌 한국 선수가 인상 깊게 보였을 것이다. 김현수는 두산 베어스 시절에도 틈틈이 타격의 과학을 읽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김현수 선수, 어떤 책 좋아하세요', 링크)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는 야구 선수가 라커룸에 책을 읽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독서를 좋아하는 야구 선수가 있다.

 

 

 

 

 

618일부터 20일까지 볼티모어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3연전을 펼쳤다. 김현수는 19일 날 라인업에 빠졌는데, 그 날 등판한 토론토의 선발투수는 너클볼러로버트 앨런 디키였다. 메이저리그에서 너클볼(knuckle ball)를 전문적으로 구사하는 투수가 많지 않다. 너클볼 같은 경우 공의 회전이 없는 변화구이기 때문에 투수 자신조차도 공이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너클볼을 상대하는 타자는 마치 나비가 너풀너풀 춤을 추듯 홈플레이트로 날아가는 공을 치지 못한다. 재미있는 건 포수도 너클볼을 잡지 못해 쩔쩔맨다. 공이 나가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디키라는 선수는 메이저리그에 오르기까지 우여곡절의 삶을 살아왔다. 그의 어머니는 알콜 중독자였고, 어린 시절에 성적 학대를 당한 불행한 일을 겪기도 했다. 대학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 디키는 메이저리그가 주목한 강속구 유망주로 인정받았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계약금을 제시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투구하는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선천적으로 없는 상태 속에 강속구를 뿌려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턱없이 낮은 계약금을 받고 텍사스 레인저스에 들어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깨 부상까지 당하는 바람에 예전의 강속구를 던질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장점을 잃어버린 디키는 메이저리그에 살아남기 위해 정통파 투수에서 전문 너클볼 투수로 변신했다. 이 과정에 디키에게 너클볼러가 될 것을 제안했던 구단 관계자 중 한 사람이 바로 현재 볼티모어를 이끄는 벅 쇼월터 감독이다.

 

디키는 라커룸에서 책을 읽는 것을 유명한데, 만약 야구선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영문학과 교수가 되었을 거라고 직접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을 읽은 뒤 솟구친 감동을 느껴 일생의 목표를 정했다. 그것이 바로 지상에서 5600m 솟구친, 만년설로 뒤덮인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오르는 일이다. 야구 선수로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도 가슴 한쪽에서 피어오르는 등반 의지는 더욱 강렬해졌다. 소속팀 뉴욕 메츠의 만류를 뿌리치고 디키는 2012년에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디키는 자신의 킬리만자로 등정을 통해 인도 뭄바이지역의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자선기금까지 마련했다.

 

 

 

 

 

 

혹시 두산 베어즈 팬이라면 2012년에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던 스캇 프록터라는 선수를 기억하시는지. 비록 한 시즌동안 한국에서 뛰었지만, 35개의 세이브를 기록하여 시즌 중반 오승환(삼성 라이온즈, 37)과 세이브 대결을 펼친 마무리 투수였다. 참고로 2012 시즌 오승환의 피홈런 수는 단 한 개인 반면 프록터는 단 한 번도 피홈런을 맞지 않았다. 프톡터가 세이브 부문 1위를 달리던 시절에 기자들은 더그아웃에서도 책을 읽는 그의 모습을 눈여겨봤다. 프록터는 경기 전 책을 읽으면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어서 좋다고 밝혔다.

 

 

 

    

 

우중 독서에 몰입한 프록터의 모습을 보시라. 남자인 내가 봐도 멋져 보인다. 오늘 같이 비 오는 날에 파전으로 배를 채우고 난 뒤에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프록터는 마이너리그에서 야구 생활을 마무리한 뒤 현재 증권사 투자자문사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작년 말에 김현수가 메이저리그 진출 의사를 밝혔을 때, 프록터는 김현수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좋은 실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역시 야잘잘(야구는 잘했던 선수가 계속 잘하게 되어 있다)’끼리 만나면 서로 뭔가 통하는 게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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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6-06-24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야구 이야기 재미있네요. 책 읽는 야구선수는 정말 왠지 잘 상상이 안 가는데, 저 프록터 선수의 모습은 멋있다는 말로 설명이 안 될만큼 돋보이네요.

cyrus 2016-06-24 20:57   좋아요 0 | URL
사진 앵글도 좋게 나왔습니다. 프록터가 한국에 일년만 선수생활을 했는데 동료 선수들 간의 친화력이 좋았고, 성품이 착했다고 합니다.

yureka01 2016-06-2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 비내리는 상태에서 독서하는 저 사진 ........아주 아주 좋은 사진이네요....기막힙니다..ㅎㅎㅎㅎㅎ

cyrus 2016-06-24 20:57   좋아요 0 | URL
오늘 같은 날에 어울릴만한 사진입니다. 그런데 대구는 벌써 비가 그쳤네요... ^^;;

알레프 2016-06-24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야구책까지...

cyrus 2016-06-24 20:59   좋아요 0 | URL
테드 윌리엄스의 책은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제목만 들어봤습니다. ㅎㅎㅎ 어제 김현수 기사를 보다가 번역된 사실을 알았습니다.
 
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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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가 빠진 동그라미 같은 불구자다. 이가 빠진 동그라미는 자신의 반쪽을 찾아 끊임없이 벌판을 방황한다. 그 벌판은 근대자본주의로 인해 황폐해진 불모지다. 동그라미는 그런 삭막한 곳에서 자신의 반쪽인 타자를 찾아 온전한 존재가 되고자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반쪽을 찾지 못하는 한 동그라미는 영원한 불구자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 나서는 고독한 방랑자, 그 사람이 작가이다.

 

소설은 잃어버린 타자를 되찾고 타자와의 합일을 이뤄내고자 하지만, 당연히 그러한 지향은 실패한다. 그러나 실패할 줄 알면서도 그 세계를 강렬하게 지향한다. 그래서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이 얼마나 황폐한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것에 가치를 두어야 하고, 어떠한 삶을 영위해야 하는가를 뼈저리게 깨우쳐 주는 것, 그것이 소설의 장점이다.

 

도무지 줄거리가 중요치 않은 소설이 있다. 현실과 환상의 이음매 따위도 중요치 않은 소설. 그저 선연한 문장만이 어느 삶의 자락을 묵묵히 응시하고 묘사해 이야기의 맥을 겨우 이어가는 소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막연한 이미지들은 오히려 선명한 인상으로 각인된다. 바로 한강의 소설이 그러하다. 한강은 새로운 상상력과 형식, 너무나 신선해 독자를 아연하게 만드는 독특한 언어를 펼쳤다. 문체가 곧 소설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몇 되지 않는 소설가 중에 그녀가 있다. 남성작가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또 하나의 세계로 독자들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또 하나 주목할 점. 한강은 늘 고통받는 인물을 다룬다. 《희랍어 시간》에 말을 잃어버린 여자와 빛을 잃은 남자가 있다. 여자는 열일곱 살에 원인도 없이 갑자기 말을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여자는 이혼한 남편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말’을 찾기 위해 희랍어를 배운다. 그녀에게 희랍어를 가르쳐주는 남자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유전병을 가졌다. 두 사람은 《검은 사슴》이나 《내 여자의 열매》, 《채식주의자》까지 기존에 발표했던 소설 속 주인공처럼 상처에 민감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다. 그로 인해 독자들을 매료시키는 서늘함은 사실 상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은밀한 트라우마를 작가는 뛰어난 상상력과 탁월한 묘사를 통해서 독자들 앞에 펼쳐 보인다. 그들은 분열될 수밖에 없는 자질을 지녔고 여러 운명적 불행과 고난을 만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굴하지 않는다.

 

한강은 ‘모험을 통한 타자 찾기’에 충실한 작가이다. 그녀의 모험은 현실사회 모순의 해부보다는 그 현실사회에서 불구자로 전락한 인간의 보편적인 존재 조건 탐색에 초점을 맞춘다.

 

 

수천 개의 바늘로 짠 옷처럼 그녀를 가두며 찌르던 언어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녀는 분명히 두 귀로 언어를 들었지만, 두텁고 빽빽한 공기층 같은 침묵이 달팽이관과 두뇌 사이의 어딘가를 틀어막아주었다. 발음을 위해 쓰였던 혀와 입술, 단단히 연필을 쥔 손의 기억 역시 그 먹먹한 침묵에 싸여 더 이상 만져지지 않았다. 더 이상 그녀는 언어로 생각하지 않았다. 언어 없이 움직였고 언어 없이 이해했다. (15쪽) 

 

 

내가, 눈이 완전히 먼다 해도 지혜를 얻지 못할 사람이라는 걸 너는 알지. 마음의 눈 따위가 결코 떠지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혼란스러운 수많은 기억들, 예민한 감정들 속에서 길을 잃고 말거라는 걸. 타고난 그 어리석음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무엇을 기다리는지 모르면서, 다만 끈질기게. 하지만 믿을 수 있겠니. 매일 밤 내가 절망하지 않은 채 불을 끈다는 걸. 동이 트기 전에 새로 눈을 떠야 하니까. (83쪽)

 

 

남자와 여자는 급작스러운 변화 속에서 아직 또렷한 표현 수단을 체화하지 못한 반쪽 사람들이다. 인물들은 감각과 표현수단을 잃어버림으로써, 타인과의 소통은 물론 자기 생각마저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이 고통에 몸부림치다 완전히 달라진 내면을 갖게 된다. 하지만 언어를 사용하고, 눈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행위조차도 깡그리 부정하고 난 뒤에서야 비로소 인간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힘겹게 터득해 나간다. 어느 벼랑이나 심연의 끝에서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남녀는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말을 할 수 없는 여자는 남자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잃어버린 언어를 적는다. 고독과 고통을 칭칭 몸에 휘감고 살아가는 여자는 남자의 살갗에서 세상을 만난다. 두 남녀가 마침내 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에 고요한 절정을 이룬다. 그들 마음속 빈자리에 ‘타자’를 향한 존재의 갈망이 채워진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정말이지 ‘아픔이 성숙으로 빛나는 것이란 저런 것이구나’라고 절감했다.

 

생명체는 자기표현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억압된 감정에 대한 자기표현의 욕망, 즉 말하기의 욕망을 분출하는 것이 문학의 출발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무엇인가 결핍된 욕망, 상처, 고통 등 말로 할 수 없는 걸 쓰는 것이다. 말이 침묵하는 곳에서 쓰기가 시작된다. 문학적 표현 방법이 곧 삶의 방식이고 사고의 방식이다. 문학은 상실과 절망을 언어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을 통해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다. 한강의 문학은 억지로 극적인 희망과 화해를 말하기보다는 그저 혼자 간절하게 빛과 회복을 더듬어본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미약하지만 분명하게 삶에 대한 의지가 스미는 순간을 포착한다.

 

《희랍어 시간》은 궁극적으로 인간 존재에게 결여된 빈 공간이자 잃어버린 타자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소설 속 남녀처럼 우리도 잃어버린 타자를 찾기 위해 모험하는 중이다. 고통스러워하는 인물들이 서로의 고통을 마주 보기. 그다음, 상처를 보듬어주는 소통의 접촉. 비록 허황한 몸짓이 될지라도 버거운 삶을 버텨내기 위한 시도는 더욱 값진 의미가 있다. 천형처럼 고통의 운명을 짊어지고 소통을 시도하려는 인간이 더욱 고귀해 보이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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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ra 2016-06-23 2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선 희랍어를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cyrus 2016-06-24 17:00   좋아요 0 | URL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를 읽고, 그리스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루쉰P 2016-06-24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은 문학평론가 하셔도 되겠어요. 아 읽으면서 이해가 쏙쏙되네요 ㅎ 요전에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사서 읽었어요. 뒤에 해설이 나오는 데 제 개인적인 이해력의 한계이지만 뭔 소리인지 전혀 이해를 못 했어요 @.@

게다가 소설은 너무나 무겁고 으시시시해서 다 읽기는 했지만 어떤 감상을 쓰지를 못 하겠더군요. 근데 시루스님의 말처럼 강렬하다는 것, 선명하게 남는 다는 것 그건 있어요. 한강의 문장들이 장면으로 연상되어서 강한 불쾌감을 주더군요. 새를 물어뜯고 반나체로 있던 여인의 모습이나, 꽃그림을 그리고 붕가붕가 하던 그 커플이나, 앰블러스에서 너 미친거지라고 외치던 그 장면이나...글을 정말 잘 쓰는 것 같아요.

취향이겠죠? 저에게는 정말 안 맞는 작가구나란 생각을 했어요. 그러고 보면 뉴스 사회면을 보면 소설보다 더 기가 막힌 일들이 나오고, 그런 것을 경악하면서 보는데 왜 소설은 그걸 제가 인정치 않은 것일까요? 그런 의문이 들더군요...

뭐이리 주저리 ㅋㅋㅋ 썼지.

정말 글 좋습니다. ㅎ 감탄하고 가요 ㅎ

cyrus 2016-06-24 17:05   좋아요 0 | URL
이번에 나온 한강의 <흰>을 읽었는데, 처음에 작가가 뭘 말하고 싶은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번 더 읽으니까 이 책에서 말하는 ‘흰 것’의 의미가 뭔지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채식주의자>는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로테스크한 장면을 좋아해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개인의 취향을 존중합니다. ㅎㅎㅎ

alummii 2016-06-2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읽고싶네요!ㅎㅎ

cyrus 2016-06-25 16:01   좋아요 0 | URL
줄거리가 쪼금 난해할 수도 있습니다. ^^;;
 
여자라는 생물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나이, 셀룰라이트, 주름살. 점점 늘어가는 것들이다. , 검은 머리카락, 수명. 차차 줄어드는 것들이다. 인간의 몸은 늘이거나 줄일 수 없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 불가능한 일을 실현했다. 그는 나그네를 유인해 자신의 침대보다 길면 잘라서, 짧으면 늘여서 죽였다. 그 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은 폭력적인 규준을 의미하게 된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오랫동안 눕혀진 사람들이 많다. 바로 여성들이다. 똑똑한 여성은 피곤해서 싫고, 얌전한 여성은 답답해서 싫단다. 여성은 남성 중심적 잣대가 요구하는 신축성을 가져야 한다.

 

 

 

 

 

특히 아줌마는 외롭다. 가는 곳마다 움츠러들고 마음이 편치가 않다. 세상의 모든 주책없음이 아줌마들의 것인 양 매도한다. 나이 든 여자는 무조건 아줌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따지고 보면 나이 든 여자를 적당히 호칭할만한 말조차도 없는 세상이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공포는 여성들에게 더 심하게 나타난다. 여성에게 있어서 나이가 드는 것은 추하거나, ‘미모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어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게 뭔가 새롭게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이젠 나이 들었으니까하고 체념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들은 친구가 주는 작은 선물에도 즐거워하는 소녀.

 

마스다 미리의 여자라는 생물은 내적 갈등에 휘말린 소녀들의 고민을 솔직하게 밝힌 책이다. 소녀는 여자라는 어른이 되면서 고독한 싸움을 한다. ‘소녀로서의 자아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받기 위해서 꾸며야 할 여자가 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기적이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돌볼 수 있을까. 결혼도 안 했는데 곧 다가올 폐경기의 삶이 불안해진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평범한 일상의 순간은 이들을 하루하루 압박하기에 충분하다.

 

 

 

 

 

여자는 온전한 자아를 지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얼마나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는지 평가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로부터 사랑받는 여자의 기준은 혹독해지고 있다.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에 소녀들은 위축되거나 우울해 한다. 소녀들은 스스로가 되고자 하는 모습이 아닌 관중들 앞에서 여성역할에 자신을 맞춰가는 배우가 되면서 늙어간다. 남자 친구가 생기는 여자가 되려면 빵을 조금씩 먹어야 하고, 엄마는 딸에게 바나나를 덥석 베어 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소녀는 그 이유를 모른 채 바나나 껍질을 조금 벗겨 숟가락으로 우아하게 떠먹는다.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 옷차림, 관심사 등에 맞추면서 살아간다.

 

 

 

 

 

몇 살이 되어도 여자가 되고 싶다.” 마스다는 이 유행어를 비웃는다. 여자는 나이 먹을수록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진화 생물이 아니다. 전통적 여성성을 수행해주기 바라는 남성 중심적 편견들이 여성의 삶을 나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마스다의 만화나 글이 항상 그렇듯이 여성들은 자신의 고민들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냥 쿨하게 문제를 받아들일 뿐이다. 마스다는 이 책에서 몇 살이 되어도 우리는 이런 여자가 되어야 한다보다는 몇 살이 되던 우리는 소녀다를 보여준다. 뽀송뽀송한 피부를 가진 아이돌 그룹 I.O.I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이라고 노래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여자는 꿈을 꾸는 소녀들이다. 그녀들도 자신만의 꿈이 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이제는 여자를 무시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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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6-20 2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들이 편안하게 사회활동하는 나라들 대부분이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이죠...

그러고보면 여기는 멀어도 한참 멀었어요.

여자들이 편한 나라.....어쩌면 이게 행복한 사회의 첫걸음 아닐까 싶어요.

cyrus 2016-06-21 19:31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에 여자를 배려하기 위한 정책을 도입하게 되면 특혜라고 비난하는 의견이 많습니다.

alummii 2016-06-20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소녀같은 할머니로 늙고싶어요 지금 이 나이에 사과머리하고 힙합 배우러 다닌답니다 ㅋㅋㅋ 남들이 욕지기 난데도 신경안씀 ㅋㅋ

cyrus 2016-06-21 19:33   좋아요 0 | URL
정말 바람직한 삶의 자세입니다. Show `mii` the money!!! ^^

stella.K 2016-06-21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그렇긴 해. 난 더도 말고 30대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든.
나이 먹는 게 왤케 부담스러운 건지.
그래도 그건 그냥 부담스러운 거지 첫번째 바람은 아냐.
나이 먹을수록 바람은 건강해서 같이 사는 사람 걱정 안 끼치고
행복하고 즐겁게 사는 거뿐인 것 같아.

글구 남자도 몇 살을 먹든 애라잖냐. 똑 같은 거지 뭐.
여자는 남자더러 애를 안 낳아봤으니까 그렇다고 그러고,
남자는 여자더러 군대를 안 갔다와서 그런다고 그러고.
사람 사는 거 다 똑 같은 것 같아.ㅋ

cyrus 2016-06-21 19:34   좋아요 0 | URL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남자들도 나이듦에 불안함을 느껴요. 아재 소리 들으면... 아흑... ㅠㅠ

감은빛 2016-06-22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보는 순간 강은교 선생님이 떠올랐어요.
그 분의 시를 그리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국문학을 복수전공으로 선택하면서 강은교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는데,
정말 그 나이에도 천상 소녀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cyrus 2016-06-24 20:55   좋아요 0 | URL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하셨군요. 저는 직접 뵙지 못했지만, 장영희 교수님이 천상 소녀 같은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뭔가 돼 있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머무르고 있다고 느끼고, 다양한 갈림길 앞에서 망설인다. 책임은 늘고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 상황에서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며 고민하는 시기가 바로 서른이다. 모두 출발은 비슷하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예전에 내 뒤에 있던 사람이 더 앞서 있기도 하고, 자신만만하게 내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못 들어선 것 같은 의심이 든다. 어떤 이들은 성장하지만 어떤 이들은 빨리 멈추고 지금 수준에 만족하고 만다. 무미건조하게 웃음을 잃어버린 채, 이것저것 할 일은 많은지 매우 바쁜 척하면서 삶의 소소한 재미를 놓치고 살아간다.

 

참고 견디는 게 아니라 기꺼이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유쾌함의 본질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하루를 기꺼이 즐겁고 재밌게 살아볼 생각은 늘 있다. 그럴 때면 마스다 미리의 만화를 읽어야 한다. ‘나,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물음으로 시작된 만화는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즐겁다’로 끝난다. 그사이에는 진짜 행복이 뭔지 고민하는 수짱과 마이코가 있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는 우리가 항상 고민하는 ‘행복이 뭘까?’라는 탐색의 과정을 만화 주인공과 함께 공감할 수 있게 전개하고 있어 흥미를 느끼게 한다.

 

수짱은 상상연애 중이다. 연애는 시간과 공을 아주 집중적으로 들여야 하는 삶의 형식 중의 하나다. 그러나 수짱에게 연애란 가장 호사스런 사치에 불과하다. 그녀가 좋아했던 남자 직원이 동료 여직원과 비밀 연애를 한다는 소식에 좌절한다. 수짱은 열등감과 자괴감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어머니에게 내뱉기도 한다. 열등감은 그 이상이 현실과 너무 다를 때 생긴다. 자기가 그 이상을 도저히 이룰 수 없다는 좌절감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원한다. 그러나 이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열등감이다. 열등감을 이겨내려면 무엇보다 남과 나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해야 한다. 우리가 느끼는 열등감의 90%는 남과 나를 비교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타인을 비교의 대상으로 삼아선 열등감을 극복할 수 없다.

 

누구나 서른다섯이 된다. 마침내 10대 시절 세상에 내가 누구인지를 알리는 문제에 얽매였던 것처럼, 세상에 대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그래서 우리의 마이코는 오늘도 열심히 일하면서도 만만치 않은 회사 분위기에 힘겨워한다. 수짱과 만나 수다를 떨면서도 좋은 남자를 만나기를 원한다. 서른다섯, 위기의 시기. 그러나 아직은 기회의 시기다. 진정 삶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깨닫고 훌쩍 이전의 삶을 내던지고 새로운 모험을 감행하기도 한다. 서른다섯의 결정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삶은 전쟁이고 살아남기도 힘든 세상이므로, 하루하루를 돈벌이에 쏟기도 바쁘다. 삶은 그만큼 무겁고, 세상은 그렇게 순진하지도 않다. 어릴 적 꿈은 기억 저편에만 남아 있을 뿐이고, 잘 나가고 싶은 욕심이 우리 눈을 가리게 하였는지도 모른다. ‘다른 누군가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나라서 기분 좋다’ 수짱의 대사는 수짱의 인생관인 동시에 마스다 미리가 독자에게 주는 메시지다. 행복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다. 꿈을 잃지 않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조금씩 나를 놔주는 삶의 모습은 아름답다. 물론 그렇다고 다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유약한 ‘나’를 용서하는 순간을 뜻한다. 그러면 세상이 한결 편해진다. 부족한 걸음이라도 그렇게 ‘나를 위해’ 멈추지 않고 산다면 이대로 참 괜찮은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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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6-06-19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게 읽었던 책입니다. 마스다 미리 작가의 책을 세 권 읽었는데 다 좋았어요.
제가 페이퍼로 올리기도 했지요.
가벼운 만화 같으면서도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글이 많이 담겨 있죠.
사색적인, 에세이 같은 만화라고나 할까요?
읽다 보면 작가가 좋아지더라고요.

cyrus 2016-06-20 00:06   좋아요 0 | URL
독자들이 마스다 미리의 만화와 글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았어요. 페크님 말씀처럼 마스다 미리는 진부적인 해답을 넌지시 주기 보다는 독자가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해줍니다. ^^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위화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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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와 히틀러는 이념적으로는 상극이지만 선전과 선동의 달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일찍부터 말로 하는 전쟁의 중요성을 알았다. 이들이 즐겨 쓰는 선전술로 상대방에 대한 낙인찍기가 있다. 특히 과거 공산주의자들은 우파들을 제국주의자’ ‘파시스트’  등으로 규정하면서 민심을 유혹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동안 진보좌파 세력이 득세하면서 보수우파 세력에 대한 낙인찍기가 유행했다. 군사정권 시절에 나왔던 빨갱이란 단어가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빨갱이는 국어사전에 공산주의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망둑엇과의 바닷물고기란 두 가지 의미로 나와 있다. ‘빨갱이란 단어를 쉽게 내뱉는 사람들이 바닷물고기를 비유해서 하는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단 한국의 현실에서 진보좌파 세력은 배제되어야 할 대상, ‘빨갱이와 동의어로 통용됐다. 기득권이 친일과 친독재라는 자신들의 추한 얼굴을 가리기 위해 애국 보수를 자처하며 활용해온 낙인이다. 이렇다 보니 빨갱이뿐만 아니라 인민’, ‘동무도 우리 사회에서 극히 민감하게 취급되는 단어가 되었다

 

인민은 우리말 국어사전에도 있다. 인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자연인을 의미한다. 1863년 링컨 대통령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라는 구절을 게티즈버그 공원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귀에 박았다. 본디 인민이라는 용어는 민주주의의 주체를 나타내는 용어였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인민을 쓴 기록이 남아있다. 여기서 인민은 백성을 뜻한다. 북한은 언어를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이 아닌 공산주의 이념을 전파 주입하는 무기로 삼고 있다. 이로 인해 남한에 인민이 설 자리가 없다. ‘인민공산주의자와 같은 맥락의 단어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작년에 조선일보는 전교조 위원장이 인민이 들어간 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의 사상을 의심하는 내용의 사설을 실은 적이 있다.

 

기득권으로 눌러앉은 보수우파는 전체적인 맥락보다 단어에 집착하거나, 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뜬금없는 이유를 들면서 사상을 검증하려고 달려든다. 그들의 머릿속에 기준이 불명확한 검열이라는 그림자를 달고 다닌다. 그들이 지나갈 때마다 생기는 크고 어두운 그림자 때문에 노동자니, 민중이니, 혁명이니 하는 단어들은 어디에 숨어 있는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엄청 많은 수의 인구가 사는 중국의 사정도 피차일반이다. 중국 공안당국은 네티즌이 올린 민감한 어휘나 단어들을 죄다 걸러낸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보다 노골적으로 검열에 들어간다. 그곳에 혁명이란 단어도 쓸 수가 없다. ‘64이라는 날짜가 인터넷에 등장하면 공안당국 검열관이 출동한다. 64일은 톈안먼 사건이 발생한 날이다. 중국 네티즌들은 공안당국의 검열을 피하려고 ‘64‘535로 바꿔놓았다.

 

위화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는 작가다. 그는 어두컴컴한 공안당국의 검열 그림자에 가려진 단어들을 찾아냈다. 그가 제일 먼저 찾은 단어가 바로 인민이다. 산문집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첫 번째 주제가 인민이다. 톈안먼 사건은 중국 인민의 정치적 열정이 크게 집중되었던 중요한 날이었다. 거대한 탱크 앞에서 중국인들이 인민이라는 이름으로 단합하여 맞서면 빛보다 더 멀리, 그리고 빠르게 전달되는 뜨거운 열정을 보여줬다. 하지만 톈안먼 사건이 일어난 후 수십 년이 지나면서 그토록 뜨거웠던 민주화에 대한 인민의 열기는 허무하게 식어버렸다.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인민에서 국민이 되었다. 혁명이 지나간 뒤에 국민이 된 중국인들은 정치적 열정 대신에 부에 대한 열정을 발산하기 시작했다. 위화는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정치적 열정을 상징했던 인민이 점점 잊히는 세태를 아쉬워한다.

 

 

 

 

인민을 그리워하는 위화의 심정이 이해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여러 차례 정치적 열정을 크게 발산했던 시기가 많았다. 민주화의 꿈이 군부정권에 의해 처참히 무너진 가운데 나라 전체가 정신적 공황기를 맞은 불안정한 시절도 있었다. 그럼에도 민주화의 소중한 불씨를 지켜나간다는 일념에서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이름은 민중이었다. 518일 광주민중항쟁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시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민중항쟁이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민중은 이제 먹고살기에 바쁜 국민이 되었다. 국민은 순종적인 성품과 안정적인 생활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리고 민중뿐만 아니라 민주화라는 단어를 진보좌파, 운동권 세력들이 즐겨 쓰는 민감 어휘라고 생각한다. 518일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는 폭동으로 비하한다. 우리나라는 검열 기관이 없는데도 자기들이 똑똑한 검열관인 것처럼 행세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보수우파 쪽 국회 어르신이나 지식인들은 비상식적인 편견을 동원해서 종북주의자 색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의 선동에 동화된 사람들도 인터넷에서 서식하면서 자칭 검열관 행세를 한다. 알고 보면 우리나라는 자신이 검열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나라다.

 

 

중국과 우리나라, 이 두 개의 국가는 지금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빛에 둘러싸여 있다. 자본주의 세계의 국민은 이 빛을 받으면서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 너무나도 따뜻한 자본주의의 빛은 국민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빛을 영양분 삼아 경제가 무럭무럭 성장했다. 그렇지만 자본주의의 빛에 오래 적응한 국민은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된다. 과거 민중또는 인민시절처럼 부당한 사회제도를 거부하려는 횃불 같은 열기를 발산하지 못한다. 국민은 인간다운 삶을 위한 노력보다는 일상에서 수동적인 회피로 일관한다. 심지어 삶의 편의성을 누리기 위해 상대방을 속이기도 한다. 이미 중국에서는 홀유(忽悠)’라는 말이 유행했다. 홀유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남을 속이는 행위다. 그런데 중국인들은 경쟁 사회에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처세술로 이해한다. 이렇다 보니 법에 위반된 행위를 저질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버젓이 위반 행위를 저지른 자들은 그냥 뻔뻔하게 변명을 한다. “이런 게 바로 민중의 지혜이지요.” 그것도 민중의 의미를 왜곡까지 하면서 말이다.

 

 

 

    

햇빛이나 인공조명을 너무 오래 쬐면 몸에 악영향을 끼친다. 자외선이 강한 햇빛은 피부를 상하게 하고, 인공조명의 과도한 빛은 불면증을 일으킨다. 강렬한 자본주의의 빛은 사회의 건강을 악화시킨다. 날이 갈수록 올라가는 부패지수에 기업인과 정치인들의 몸은 비대해졌다. 국민 혈압 오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거짓말 일삼는 국민의 도덕심은 시커멓게 변하면서 상하고 있다. 위화는 홀유의 세계속에 사는 심정을 부조리 소설을 읽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나름대로 점잖은 표현을 써가면서 중국 사회를 비판했다. 혹시 위화가 헬조선이라는 말을 들어봤는지 궁금하다. 남한 사정도 중국만큼이나 숨 막힐 지경이다. 불과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에 비하면 자유는 넘친다. 그러나 삐딱한 시선이 넘친다. 곳곳에 상대방을 조롱하는 혐오 발언이 난무하고, 거짓과 위선이 처세술로 변질하였다. 왜곡, 편견의 영향력이 높아지다 보니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도 많지 않다. 사회에 대한 불신과 무력감에 휩싸이면 심리적 탈진상태에 빠져 버린다. 그러면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의 목소리에 힘이 느껴지지 않는다. 건강한 민중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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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6-16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든 프로파간다가 강할수록 변질되는 현상...다 그렇더라구요. 오늘도 역시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6-06-17 11:29   좋아요 1 | URL
긴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루쉰P 2016-06-18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준만 교수님이 말한 `증오산업주의`가 생각이 나요. 철저하게 적을 가르지 않으면 정치하는 사람들..음 그러니까 권력자들 혹은 출세주의자들이라고 할까요? 권력자들은 적을 만들고 그들을 공격하는 언어를 만들고 그래야지 만이 `인민`들이 자신들을 공격하지 않고 자신의 기름진 배를 배불리 찌울 수 있으니까요.

전 아직 `위하`를 읽어 보지는 못 했어요. 시루스님께서 중국의 현실이나, 지금 우리의 현실이나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을 얘기해 주셨듯이 전 체제가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어느 정도 민주주의적(?)체제는 필요하다고 보기는 해요.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체제안의 사람들 문제라고 생각이 들어요.

위하는 중국의 체제가 검열도 심하고 민주주주의 국가와 중국을 비교해서 비판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를 보면 그리고 미국도 보면 과연 민주주의라는 국가가 중국의 체제와 달리 뭔가 더 나은 점이 있을까란 생각이 들거든요. 부정은 더 어둠으로 숨고, 인민을 속이는 솜씨는 더 교묘해 졌죠.

그렇다고 중국의 체제가 낫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의 체제 역시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보거든요. 어떤 체제든 그 안의 인간들의 사상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리고 그 사상을 어떻게 좋은 방향으로 체제를 인간을 위해 움직일 수 있게끔 힘 써야 할까? 그런 것이 각각 현실의 지식인들에게 필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체제가 낫고, 그 체제가 아니니까 우리는 문제가 많다 그런 것은 좀...받아 들이기 어렵다고 할까요? 전 그런 생각이에요. ㅎ

시루스님의 좋은 글을 읽으니 여러모로 긴 댓글을 썼네요 ㅋ

cyrus 2016-06-20 00:10   좋아요 0 | URL
진지한 생각이 담겨 있는 이런 댓글, 환영합니다. ^^

좋은 말씀 하셨습니다. 중국뿐만 아니라 지금 전 세계에서 내부의 혼란이 점차 증가하고 있어요. 미국도 예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래드 다이아몬드가 이번에 나온 신작에서 미국의 문제점을 짚었습니다. 미국에 트럼프가 대선 후보가 되는 상황을 생각하면, 민주주의의 모범국가로 알려지던 미국도 예전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어요. 인간이 만든 ‘~주의’는 절대로 완벽하지 않습니다. 장점이 많이 알려져서 그렇지 단점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