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격 4할은 현대야구에서 도저히 보기 힘든 꿈의 타율이다. 20세기 마지막 4할 타자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강타자 테드 윌리엄스(1918~2002). 1941년에 23세의 테드 윌리엄스는 역사적인 4할 타율을 거뒀다. 당시 정규시즌 마지막 연속경기를 앞두고 타율이 정확히 0.400이었다. 감독은 윌리엄스의 타율 관리를 위해 출전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윌리엄스는 감독의 만류를 뿌리치고 타석에 들어섰다. 8타수 6안타. 한 경기 내에 6개의 안타를 몰아치는 것도 대단하지만, 이보다 더 대단한 기록이 있었다. 그는 타율을 0.406까지 끌어올렸다. 이후로 메이저리그엔 4할대 타율에 도달한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다. 한국에선 프로야구 원년(1982)에 국내 투수들을 동네 야구하듯 두들긴 백인천(MBC청룡)이 유일하다. 그의 타율 기록은 0.412.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김현수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윌리엄스와 존 언더우드가 함께 쓴 타격의 과학(The Science of Hitting)이다. 이 책에서 윌리엄스는 자신의 타격기술을 소개했다. 그는 타석에 들어설 때 스트라이크존을 77개의 구간으로 나눈다고 한다. 그리고 투수가 던지는 볼이 자신이 좋아하는 구간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린다. 마침 그 구간에 공이 오면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 결과 그는 동시대에 어떠한 타자들보다도 포볼(볼넷)로 진출한 횟수가 많은 타자가 되었다.

 

 

    

 

 

 

 

 

 

 

 

 

 

 

 

 

 

 

 

 

4할 타자들이 1941년 이후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면, 타자들의 타격 수준이 나빠진 것일까?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4할 타자가 사라진 이유에 대해 시스템의 진화적 안정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야구선수들 기량이 점점 평준화돼 평균 타율을 중심으로 타율이 지나치게 높은 선수도 지나치게 낮은 선수도 점점 사라지는 게 보편적인 현상이다. 현재 우리나라 야구(KBO)가 수년째 타고 투저 현상이 이어져 있다고 해도 타자들이 4할에 근접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부상이라는 변수도 무시할 수 없다. 야구선수들은 잔 부상을 참고 견디면서 그라운드를 뛰어다닌다. 아무리 타격 능력이 좋은 선수라도 잔 부상에 고전하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볼티모어 오리올스 전담 미국 출신 기자의 눈에는 전설적인 야구 선수가 쓴 책을 좋아한다고 밝힌 한국 선수가 인상 깊게 보였을 것이다. 김현수는 두산 베어스 시절에도 틈틈이 타격의 과학을 읽었다고 한다. (관련기사: '김현수 선수, 어떤 책 좋아하세요', 링크)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는 야구 선수가 라커룸에 책을 읽는 모습이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독서를 좋아하는 야구 선수가 있다.

 

 

 

 

 

618일부터 20일까지 볼티모어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3연전을 펼쳤다. 김현수는 19일 날 라인업에 빠졌는데, 그 날 등판한 토론토의 선발투수는 너클볼러로버트 앨런 디키였다. 메이저리그에서 너클볼(knuckle ball)를 전문적으로 구사하는 투수가 많지 않다. 너클볼 같은 경우 공의 회전이 없는 변화구이기 때문에 투수 자신조차도 공이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너클볼을 상대하는 타자는 마치 나비가 너풀너풀 춤을 추듯 홈플레이트로 날아가는 공을 치지 못한다. 재미있는 건 포수도 너클볼을 잡지 못해 쩔쩔맨다. 공이 나가는 방향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디키라는 선수는 메이저리그에 오르기까지 우여곡절의 삶을 살아왔다. 그의 어머니는 알콜 중독자였고, 어린 시절에 성적 학대를 당한 불행한 일을 겪기도 했다. 대학 선수로 활약하던 시절 디키는 메이저리그가 주목한 강속구 유망주로 인정받았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계약금을 제시받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투구하는 오른쪽 팔꿈치 인대가 선천적으로 없는 상태 속에 강속구를 뿌려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턱없이 낮은 계약금을 받고 텍사스 레인저스에 들어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깨 부상까지 당하는 바람에 예전의 강속구를 던질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의 장점을 잃어버린 디키는 메이저리그에 살아남기 위해 정통파 투수에서 전문 너클볼 투수로 변신했다. 이 과정에 디키에게 너클볼러가 될 것을 제안했던 구단 관계자 중 한 사람이 바로 현재 볼티모어를 이끄는 벅 쇼월터 감독이다.

 

디키는 라커룸에서 책을 읽는 것을 유명한데, 만약 야구선수가 되지 않았더라면 영문학과 교수가 되었을 거라고 직접 밝힌 적이 있다. 그는 어린 시절 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의 눈을 읽은 뒤 솟구친 감동을 느껴 일생의 목표를 정했다. 그것이 바로 지상에서 5600m 솟구친, 만년설로 뒤덮인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오르는 일이다. 야구 선수로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도 가슴 한쪽에서 피어오르는 등반 의지는 더욱 강렬해졌다. 소속팀 뉴욕 메츠의 만류를 뿌리치고 디키는 2012년에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디키는 자신의 킬리만자로 등정을 통해 인도 뭄바이지역의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자선기금까지 마련했다.

 

 

 

 

 

 

혹시 두산 베어즈 팬이라면 2012년에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던 스캇 프록터라는 선수를 기억하시는지. 비록 한 시즌동안 한국에서 뛰었지만, 35개의 세이브를 기록하여 시즌 중반 오승환(삼성 라이온즈, 37)과 세이브 대결을 펼친 마무리 투수였다. 참고로 2012 시즌 오승환의 피홈런 수는 단 한 개인 반면 프록터는 단 한 번도 피홈런을 맞지 않았다. 프톡터가 세이브 부문 1위를 달리던 시절에 기자들은 더그아웃에서도 책을 읽는 그의 모습을 눈여겨봤다. 프록터는 경기 전 책을 읽으면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어서 좋다고 밝혔다.

 

 

 

    

 

우중 독서에 몰입한 프록터의 모습을 보시라. 남자인 내가 봐도 멋져 보인다. 오늘 같이 비 오는 날에 파전으로 배를 채우고 난 뒤에 책을 읽으면 기분이 좋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프록터는 마이너리그에서 야구 생활을 마무리한 뒤 현재 증권사 투자자문사로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작년 말에 김현수가 메이저리그 진출 의사를 밝혔을 때, 프록터는 김현수가 메이저리그에서도 좋은 실력을 보여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역시 야잘잘(야구는 잘했던 선수가 계속 잘하게 되어 있다)’끼리 만나면 서로 뭔가 통하는 게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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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6-06-24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야구 이야기 재미있네요. 책 읽는 야구선수는 정말 왠지 잘 상상이 안 가는데, 저 프록터 선수의 모습은 멋있다는 말로 설명이 안 될만큼 돋보이네요.

cyrus 2016-06-24 20:57   좋아요 0 | URL
사진 앵글도 좋게 나왔습니다. 프록터가 한국에 일년만 선수생활을 했는데 동료 선수들 간의 친화력이 좋았고, 성품이 착했다고 합니다.

yureka01 2016-06-24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고.. 비내리는 상태에서 독서하는 저 사진 ........아주 아주 좋은 사진이네요....기막힙니다..ㅎㅎㅎㅎㅎ

cyrus 2016-06-24 20:57   좋아요 0 | URL
오늘 같은 날에 어울릴만한 사진입니다. 그런데 대구는 벌써 비가 그쳤네요... ^^;;

알레프 2016-06-24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는 야구책까지...

cyrus 2016-06-24 20:59   좋아요 0 | URL
테드 윌리엄스의 책은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제목만 들어봤습니다. ㅎㅎㅎ 어제 김현수 기사를 보다가 번역된 사실을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