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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생물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나이, 셀룰라이트, 주름살. 점점 늘어가는 것들이다. 돈, 검은 머리카락, 수명. 차차 줄어드는 것들이다. 인간의 몸은 늘이거나 줄일 수 없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 불가능한 일을 실현했다. 그는 나그네를 유인해 자신의 침대보다 길면 잘라서, 짧으면 늘여서 죽였다. 그 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은 폭력적인 규준을 의미하게 된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오랫동안 눕혀진 사람들이 많다. 바로 여성들이다. 똑똑한 여성은 피곤해서 싫고, 얌전한 여성은 답답해서 싫단다. 여성은 남성 중심적 잣대가 요구하는 신축성을 가져야 한다.
특히 아줌마는 외롭다. 가는 곳마다 움츠러들고 마음이 편치가 않다. 세상의 모든 주책없음이 아줌마들의 것인 양 매도한다. 나이 든 여자는 무조건 아줌마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따지고 보면 나이 든 여자를 적당히 호칭할만한 말조차도 없는 세상이다.
나이 드는 것에 대한 공포는 여성들에게 더 심하게 나타난다. 여성에게 있어서 나이가 드는 것은 추하거나, ‘미모를 잃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어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게 뭔가 새롭게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이젠 나이 들었으니까’ 하고 체념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들은 친구가 주는 작은 선물에도 즐거워하는 ‘소녀’다.
마스다 미리의 《여자라는 생물》은 내적 갈등에 휘말린 ‘소녀’들의 고민을 솔직하게 밝힌 책이다. 소녀는 ‘여자’라는 어른이 되면서 고독한 싸움을 한다. ‘소녀’로서의 자아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사랑받기 위해서 꾸며야 할 ‘여자’가 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이기적이지 않으면서 나 자신을 돌볼 수 있을까. 결혼도 안 했는데 곧 다가올 폐경기의 삶이 불안해진다. 자연스러우면서도 평범한 일상의 순간은 이들을 하루하루 압박하기에 충분하다.
여자는 온전한 자아를 지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얼마나 매력적인 외모를 가졌는지 평가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남자로부터 사랑받는 여자의 기준은 혹독해지고 있다. 강요하는 사회적 압력에 소녀들은 위축되거나 우울해 한다. 소녀들은 스스로가 되고자 하는 모습이 아닌 관중들 앞에서 여성역할에 자신을 맞춰가는 배우가 되면서 늙어간다. 남자 친구가 생기는 여자가 되려면 빵을 조금씩 먹어야 하고, 엄마는 딸에게 바나나를 덥석 베어 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친다. 소녀는 그 이유를 모른 채 바나나 껍질을 조금 벗겨 숟가락으로 우아하게 떠먹는다. 나이에 어울리는 행동, 옷차림, 관심사 등에 맞추면서 살아간다.
“몇 살이 되어도 여자가 되고 싶다.” 마스다는 이 유행어를 비웃는다. 여자는 나이 먹을수록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진화 생물이 아니다. 전통적 여성성을 수행해주기 바라는 남성 중심적 편견들이 여성의 삶을 나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마스다의 만화나 글이 항상 그렇듯이 여성들은 자신의 고민들을 해결하지 못한다. 그냥 쿨하게 문제를 받아들일 뿐이다. 마스다는 이 책에서 ‘몇 살이 되어도 우리는 이런 여자가 되어야 한다’보다는 ‘몇 살이 되던 우리는 소녀다’를 보여준다. 뽀송뽀송한 피부를 가진 아이돌 그룹 I.O.I는 ‘우리는 꿈을 꾸는 소녀들’이라고 노래한다.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여자는 ‘꿈을 꾸는 소녀들’이다. 그녀들도 자신만의 꿈이 있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날 수 있다. 이제는 여자를 무시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