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책읽는정오 > 언니, 도서정가제 마음에 안 들죠? 책 싸게 읽으세요!

북플 가입 처음으로 `공유`라는 걸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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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7-12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플 공유는 유용한 기능이에요. 서재 먼댓글과 비슷한 것이라 여겼는데 써보니 달라요. 아직 북플에서만 지원되는 것 같아요. 북플이 서재에 미치지 못함에도 이런 기능은 돋보이네요.

cyrus 2016-07-13 15:38   좋아요 1 | URL
‘복사하기+붙여넣기’ 기능으로 스크랩하는 것보다 공유 기능이 간편해서 좋습니다. 북플 공유 기능은 좋게 봅니다. 그런데 제가 공유한 내용이 비공개로 전환했네요. 당황스럽습니다. ^^;;


오거서 2016-07-13 15:4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 봅니다. 공유의 부작용이네요.

yureka01 2016-07-12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값도 그렇지만 현대인이 책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처지도 일간 이해 되더군요. 블로그에선 보이지 않았는데 북풀에 보이네요.

cyrus 2016-07-13 15:41   좋아요 0 | URL
공유한 출처의 글이 비공개로 전환되는 바람에 글 전체 내용을 다 못보고 말았습니다.
 
探書의 즐거움 - 오래되고 낡았으나 마음을 데우는 책 이야기
윤성근 지음 / 모요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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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회 세종도서 독서감상문 대회 출전작

 

 

정말 어렵다. 책을 가까이한 적 없는 사람에게 책의 장점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솔직히 나는 종이책의 앞날이 걱정된다. 그러나 아주 그런 것만도 아니다. 두툼한 부피감과 종이 냄새 없는 전자책이 과연 종이책만큼 매력적인 대상인지 살짝 의문이 든다. 종이책을 많이 접한 세대는 종이의 질과 결을 느껴가며 엄지와 검지를 써 책장을 넘길 때의 기쁨과 향기를 안다. 게으름을 맘껏 부리며 느릿느릿 읽어본 경험도 있다. 지금은 오히려 읽을 게 귀한 게 아니라 잘 안 읽어서 문제다.

 

새 책은 망각을 위해서, 헌책은 기억을 위해서 존재한다. 책들이 대형 서점에서 빠르게 사라질 즈음, 헌책방에서는 어둠 속에 쌓여서 특별한 만남을 기다린다. 헌책방은 유통기한이 끝난 책들의 공동무덤이 아니다. 헌책방은 책들을 숨 쉬게 한다. 헌책방에는 이런저런 사연들이 갈마들었다. 그 책 속에 담긴 오래된 사연들이 시간 속에서 증발하지 않도록 보호한다. 옛날에 좋아했지만 한동안 펼치지 않았고 앞으로도 펼치지 않을 책, 좋아하지만 잘 기억하고 있어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책, 괜찮은 책이지만 보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이 두루 손짓한다. 그런 책들이 돌고 돌면, 먼지에 파묻힌 책의 가치가 사람들의 손을 타며 두 배, 세 배가 된다.

 

《탐서의 즐거움》에는 책과 관련된 삶의 무늬가 시간의 축을 따라 새겨졌다. 추억 혹은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이야기가 넘쳐났다. 손바닥 크기의 문고판 책을 들고 다니며 읽거나, 먼지 쌓인 헌책방에서 원하는 책을 찾아 헤매던 경험은 이제 공유하기 쉽지 않은 추억이 됐다. 옛날 책에 녹아든 삶의 이야기를 살려내는 작업에 그런 시간의 결이 보인다. 《탐서의 즐거움》에 소개되는 책들은 사람으로 치면 연세가 높은 고령자다. 나이 든 노인의 옷에 홀아비 냄새가 풀풀 풍기듯이 오래된 책에 퀴퀴한 곰팡내가 난다. 닳고 찢어져도 책 속에 있는 이야기의 힘은 팔팔하다. 《탐서의 즐거움》의 저자이자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인 윤성근 씨는 헌책의 무한한 생명력을 감지했다. 표지를 조심스럽게 펼치면, 그 안에서 저자와 독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이야기꽃이 활짝 피게 된다.

 

책을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서 절판된 고은 시인의 소설 《일식》 초판을 찾아다닌 딸의 사연은 뭉클하다. 수소문 끝에 절판본을 손에 넣는 장면은 애서가의 심장을 뜨겁게 한다. 특히 헌책방을 제집처럼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기쁨으로 벅찬 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아직도 그 옛날 사소한 향수를 잊지 못하고 헌책방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헌책방이 존재하는 이유다. 헌책방은 책과 사람을 연결하는 중요한 장소다. 책을 찾으려는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저마다의 추억은 발길을 헌책방으로 향하게 하는 끈끈한 강자성(强磁性)이다.

 

이 세상에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뻔했던 책의 사연도 있다. 이런 책들은 좋게 말하면 ‘희귀한 책’, 조금 과장하면 ‘전설의 책’이다. 반면 작가 본인에게는 들춰내고 싶지 않은 ‘망작’, ‘괴작’이다. 박완서 작가는 생전에 이 한 권의 작품만 소설전집 최종 결정판에 포함하지 않았다. 1979년에 나온 《욕망의 응달》이다. 《욕망의 응달》 줄거리가 지금으로 보면 정상적이지(?) 않다. 김영하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소재로 무협소설 비슷한 작품으로 소설가로 데뷔했다. 소설 제목은 《무협학생운동》. 작가 프로필에도 기재된 적이 없는 전설의 책이다. 작가 본인들은 불태워버리고 싶은 망작을 부끄럽기 짝이 없는 ‘흑역사’로 여기지만, 독자들은 헌책방 아니면 들을 수 없는 헌책 비사(祕史)를 좋아한다.

 

책이라는 것은 단지 지식을 알아가는 하나의 매개체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윤성근 씨는 책을 통해서 자신이 여태 모르고 살아온 삶의 진실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책은 인생을 알고, 그 인생에 필요한 것을 알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알 수 있는지 방법을 찾는 동반자다. 알고 싶은 것을 더 알 수 있는 곳이 헌책방이다. 이곳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 옛날 지식을 잔뜩 쌓아 모은 낡은 저장소가 아니다. 그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쩌면 지식이 아니라 종이책의 느긋함이 아닐까 싶다. 늘 새로운 정보에 목마르지만 그런 이미지를 장시간 들여다보고 있으면 멀미가 난다. 너덜너덜해진 책을 천천히 들춰보면서 그 속에 잊고 있던 정겨운 추억을 발견한다. 이러한 소소한 즐거움이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탐서의 즐거움》 158, 160, 161쪽에 ‘막장’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막장은 탄광의 맨 끝부분 또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탄광 막장에서 일하는 상황을 ‘막장 인생’이라고 한다. 이 뜻을 모르는 젊은 사람들은 막다른 궁지에 몰린 상황에 ‘막장’ 표현을 많이 쓴다. 나도 한때 ‘막장’ 표현을 자주 썼다. 본래 의미가 왜곡된 채 부정적인 표현이 된 막장을 쓰는 것은 가장 뜨거운 곳에서 탄광가루를 마시면서 일하는 분들에게는 실례다. 윤성근 씨가 《카메라, 편견을 부탁해》라는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막장 표현이 왜 잘못되었는지 저자 스스로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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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11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갓 출간된 새책의 잉크와 종이 내음.
그리고 오래 묵어서 쿰쿰한 종이의 곰삭은 내음...
종이 질감의 촉...
그리고 멋진 생각이 깃든 아름다운 문장이
날개짓하는 느낌....
그리고 빈 여백에 느낌을 연필로 쓰는 소리들...

읽고 난 후의 오래 오래 여운이 퍼지는 심금....

이런거요...ㅎㅎㅎㅎㅎ

cyrus 2016-07-12 16:30   좋아요 1 | URL
책을 읽는 행위를 시적으로 표현한 문장이 정말 좋습니다. ^^

북깨비 2016-07-12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정보 감사합니다. 아 진짜 재밌을꺼 같아요. 😍😆😁

엇, 이분 `책이 좀 많습니다`를 쓰신 분이군요. 그 책 진짜 재밌게 읽었는데. 그전에도 그후에도 꾸준히 책을 내오셨다는거 오늘 검색해보고 처음 알았어요.

cyrus 2016-07-12 16:32   좋아요 1 | URL
헌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윤성근 씨의 책은 필독해야 합니다. 재미있는 책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가끔 제가 헌책방에서 찾은 책을 소재로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데, 윤성근 씨의 글쓰기 방식을 많이 참고합니다. ^^
 

 

 

 

 

 

 

 

 

 

 

 

 

 

 

 

 

 

 

달만큼 인간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 동반자도 그리 흔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달은 오랫동안 시상과 임을 향한 그리움을 샘솟게 하는 것이었고 특히 휘영청 밝은 보름달은 희망과 기원의 대상이었다. 고대인들은 달이 생명의 생멸에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달이 차고 이지러짐은 사람의 정신과 연결된다고 여겼다. 보름달이 뜰 무렵, 인체는 정신적 장애가 생긴다는 속설도 있다. 루나틱(lunatic)은 원래 달에 중독되어 머리가 이상해진 사람을 의미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로 알려진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의 주인공 가구야 히메는 달나라에서 지상으로 보내진 비운의 여인이다. 그녀는 8월 15일 달 밝은 밤에 승천했다. 승천하기 한 달 전부터 히메는 시름에 잠긴 채 달을 쳐다봤다. 주변 사람들은 달을 보면서 불길한 일이 생길 수 있다면서 히메의 달구경을 말렸다. 일본에서는 아주 밝은 달을 직접 바라보면 빨리 늙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고대 일본인들은 달을 감상하는 행위를 기피했다고 한다. 달은 그저 달이라도 보는 이의 느낌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이다. 이태백에겐 달빛은 술맛 돌게 하는 낭만이지만, 일본인들은 마음 산란하게 하는 시름이었으니.

 

 

 

 

 

 

 

 

 

 

 

 

 

 

 

 

 

 

 

 

 

살로메는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에 등장하는 유명한 요부다. 구약성서에는 헤롯왕의 의붓딸로 등장하는 데 헤롯이 반해 그녀를 탐하자 그녀는 조건을 달았다. 평소 연정을 품고 있던 헤로디아가 세례요한(민음사 판본에는 요카난)의 목을 요구했다고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다. 와일드는 살로메를 첫눈에 요한을 사랑하는 관능적인 여인으로 그렸다.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손에 넣고 희열을 느끼는 장면이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다. 희곡의 후반부에 살로메와 헤롯왕을 중심으로 욕망과 감정의 충돌, 광기와 에로티시즘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희곡이 시작되는 관능적인 첫 장면이 많이 거론되지 않는다. 와일드는 달빛의 아름다움을 달의 불길한 징조와 죽은 여자(헤롯왕의 명령으로 살해되는 살로메의 미래를 암시하는 표현)와 연관 지어서 묘사했다. 희곡의 삽화를 담당한 오브리 비어즐리도 하늘에 비친 달을 죽음이나 절망적인 상태로 몰아가는 불길한 대상으로 표현했다.

 

 

 

 

 

젊은 시리아인 : 오늘 밤에는 살로메 공주님이 유난히 아름다워!

 

헤로디아의 시동 : 달 좀 봐. 정말 이상해 보여! 꼭 무덤에서 일어나는 여자 같아. 죽은 여자 말이야. 꼭 죽은 것들을 찾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걸.

 

젊은 시리아인 : 과연 이상해 보이는군. 노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어린 공주 같아. 발이 은으로 빚어진 공주. 발이 아니라 자그마한 흰 비둘기가 달린 것 같아. 꼭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 드는걸.

 

헤로디아의 시동 : 꼭 죽은 여자 같아. 아주 천천히 움직여.

 

(오스카 와일드 《살로메》147, 149쪽, 민음사)  

 

 

시리아인은 살로메를 보호하는 젊은 근위대장이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에서 무기력한 존재다. 살로메의 관능미에 사로잡힌 포로다. 그는 살로메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녀 주변을 맴돌면서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탐닉한다. 그러자 헤로디아의 시동은 살로메를 너무 많이 보면 시리아인에게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살로메가 우물 속에 갇힌 요한에게 관심을 보이게 되자 시리아인을 그녀를 막아선다. 요한을 데려오라는 살로메의 명령까지 거부해보지만, 불길한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 살로메가 요한의 입맞춤을 시도하자 시리아인은 그 자리에서 자살한다. 헤로디아의 시동이 예감했던 대로 무시무시한 일이 발생했다. 달, 즉 살로메의 첫 번째 희생자는 시리아인이었다. 근위대장은 살로메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살로메를 향한 그의 사랑은 진실하지 않고, 건강하지가 않다. 시라아인은 살로메의 관능미에 중독된 루나틱이다. 살로메의 치명적인 육체와 욕망을 마음껏 탐닉하기 위해 유령처럼 서성이고 있다.

 

달의 주기와 인간행동에 관한 연구는 이미 몇 차례 발표된 바 있다. 학자들은 보름달과 인간의 자살, 우울증 등이 의미 있는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보름달이 뜨면 조수간만의 차가 커지고 기온이 약간 올라가 대기압은 떨어지지만, 이 같은 현상이 인간행동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소설과 영화에서 만든 불길한 보름달의 거짓 효과가 계속 증폭된 것일 뿐이다. 터무니없는 속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으면 진실처럼 느껴져 깨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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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봄. 2016-07-11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름달이 뜰 때 같이 조작업하는 남녀는 CC가 된다는 속설을 깨주고 졸업했지요. --;;

cyrus 2016-07-11 20:01   좋아요 0 | URL
야심한 밤에 남녀가 같이... ㅎㅎㅎ 그런 속설도 있었군요. 그런데 저도 왜 슬퍼지는 걸까요? ㅠㅠ

yureka01 2016-07-11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태백의 달이 제일 맘에 듭니다..술잔에 달빛을 마시는 거 ^^..

cyrus 2016-07-12 16:33   좋아요 1 | URL
달이 환하게 뜬 열대야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일이 현대의 풍류입니다. ㅎㅎㅎ
 
본성이 답이다 - 진화 심리학자의 한국 사회 보고서
전중환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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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흘려듣는 남자, 지도를 읽지 못하는 여자. 이런 남녀 차이가 왜, 어떻게 생기는지는 오랫동안 흥미로운 연구대상이 돼왔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수백만 년 오랜 진화의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아이를 낳는 여자는 집안일을, 남자는 사냥을 하는 분업이 원시공동체의 생존전략으로 자리 잡으면서, 이런 오랜 기간의 환경 조건이 서로 다른 뇌의 발달에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런 학설을 따르면, 사냥에 나서던 남자는 길 찾기 등에 알맞은 뇌를 지니게 됐고, 마을에서 집을 지키던 여자는 언어 능력과 사소한 기억에 능한 뇌 구조를 갖추게 됐다.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마음도 몸처럼 진화의 산물이라고 간주한다. 이를테면 마음은 인류의 조상이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시절부터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자연 선택된 기능들이 모여서 형성되었다고 본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언어에서 짝짓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행동과 사고를 진화론으로 풀이한다. 전중환 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진화심리학자다. 그는 2010년에 펴낸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오랫동안 진화해온 결과임을 보여줬다. 최근에 나온 《본성이 답이다》는 경제 불평등, 학교 폭력, 갑질 논란, 여성 혐오 범죄 등 우리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각종 현상과 문제 아래에 숨겨진 본성의 실체를 밝혀낸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는 왜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지를 진화심리학의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제까지 사람들의 정치성향은 보통 부모, 교육, 민족, 문화, 성별, 작업, 소득과 같은 사회요인이 결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리고 이 같은 판단은 사회학자의 전통적인 영역으로 이해되었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 둘 다 인간 본성의 핵심적 측면이다. 뇌과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보수주의자의 뇌는 편도체와 관련되어 있다. 편도체는 공포를 일으키는 위협이나 자극에 대해 감정적으로 반응할 때 핵심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가 혐오와 분노를 느낄 때 편도체 영역이 더욱 활성화된다. 그 결과 혐오스러운 물질에 대한 반응이 강할수록 정치적으로 보수적일 가능성이 높다. 보수주의자일수록 혐오스러운 대상을 도덕적으로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와 진보는 항상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장점만 취한다면, 둘 다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는 이전에 경험해본 적이 없을 만큼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으로 편을 가르고, 같은 편끼리 뭉치려 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에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심리적 위로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념 대립을 정당화하는 변명이 될 수 없다. 서로 싸우느라 여념 없는 보수와 진보 세력이 뇌 구조의 차이로 인해 변화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서로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그 자체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삶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생존과 번식이다. 온갖 경쟁과 위험을 이겨내고 살아남아 자신의 자손을 많이 남긴다. 인간은 자연히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방향으로 적응해 왔다. 살인을 전문적으로 연구한 진화 심리학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은 인간의 살인 행동이 생존이나 번식 같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부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 사회문화적 환경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인류학자들의 반박도 만만치 않다. 인간이 동물의 본능적 공격성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 행동을 일으키는 심리를 이해하려면 사회 환경적인 요인을 함께 보아야 한다. 진화심리학적 해석은 종종 성차별과 인종차별과 관련된 편견을 불러일으키는 생물학적 결정론으로 비판받곤 한다.

 

진화심리학을 부정적으로 보는 독자는 책 제목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제목처럼 본성이 무조건 답은 아닐 것이다. 인간에게 일정한 행동 유형이 반복된다고 해서 그것을 섣불리 타고난 본성으로 파악하는 데는 신중히 해야 한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의 한계를 이유로 인종 차별, 성차별, 전쟁, 살인 등을 용인하는 위험한 학문으로만 거칠게 몰아세우는 비판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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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10 1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에 지배 받고 ..다시 환경을 바꾸고..

하기야, 원시시대가 몇만년이었으니 심리 또한 서서히 바뀌겠죠. 일간 설득력 있는 이론이네요.

cyrus 2016-07-11 14:59   좋아요 1 | URL
우리나라는 ‘진화’가 들어간 학문이 크게 환영을 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

초딩 2016-07-10 1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류의 보존
많은 현일들이 어쩔 수 없이 도달한 그 것을 부인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인간이 바뀌기엔 몇 천년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몇 만년의 시간에 비해

cyrus 2016-07-11 15:00   좋아요 0 | URL
천 년, 정말 어마어마한 시간이에요. ^^;;

qualia 2016-07-10 2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화심리학이 사후 짜맞추기 학문이라는 생각은 안 드셨나요? 진화심리학을 뒷받침하는 뇌과학/신경과학/인지과학적 증거가 너무나 많이 나오기 때문에 반론하기 어렵다는 생각은 듭니다만.... 하지만 진화심리학적 설명을 들을 때마다 사후에 짜맞춘 설명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죠. 어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닭/달걀 문제는 과학적으로 풀렸다는 얘기도 있었던 것 같죠?

cyrus 2016-07-11 15:0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처음에 진화심리학을 접할 때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중환 씨의 <오래된 연장통> 이후로 진화심리학 책을 안 봤습니다.

닭/달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소식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다케토리 이야기
민병훈 옮김 / 어문학사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1001-2] 다케토리 이야기

(※ 피터 박스올의 책 국내 번역본에는 '타케토리 이야기'로 되어있음)

 

 

 

 

옛날 일본에 사누키노 미야쓰코(讃岐)라는 이름의 노인이 대나무 대롱 속에 있는 작고 귀여운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이 여자아이의 키는 고작 세 치 정도에 불과했다. 노인은 이 아이를 집으로 데려가 길렀다. 대나무에서 자란 작은 아이의 이름은 가구야 히메(かぐや)’.

 

 

 

 

 

 

노인의 정성 어린 보살핌으로 히메는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했다. 히메가 미인이라는 소문이 남자들의 귀에 들어갔다. 하지만 히메는 구애를 펼치는 남자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다섯 명의 귀공자는 히메를 아내로 맞아들이기 위해 직접 히메의 집으로 찾아가 간청했다. 노인은 결혼하지 않으려는 딸이 걱정되었다. 히메는 아무리 미모가 훌륭하고, 재산이 많다고 해도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상대와는 절대로 결혼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 대신 자신이 원하는 물건(혼수품)을 가져오면 청혼을 받아들인다고 약속했다.

 

다섯 명의 귀공자는 히메가 말한 대로 세상에 구하기 어려운 희귀한 혼수품을 장만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히메가 원하는 다섯 개의 물건들은 정말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다. 돌로 된 부처의 바리때, 전설의 산에 자라는 성스러운 백옥(白玉) 나무의 가지, 절대로 불에 타지 않는다는 전설의 동물 불쥐의 가죽옷, 용의 목에 있는 오색 구슬, 제비 둥지에 있는 환상의 조개다. 당연히 다섯 남자 모두 히메의 미션에 실패했다. 이제는 임금님(천황)까지 히메에게 청혼했다. 하지만 임금님마저 히메에게 퇴짜 맞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히메가 사랑을 잘 모르는 차가운 마음의 여자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히메가 남자들의 구혼을 받아들이지 않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히메는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원래 달나라 사람이었다. 천상에서 죄를 지은 바람에 잠시 인간 세상에 머물게 되었다. (히메는 천상에서 무슨 죄를 지었는지 노인에게 단 한 마디도 밝히지 않았다. 그녀는 자세한 진실을 알리지 않은 채 달나라로 올라갔다) 인간 세상을 떠나야 하는 날이 점점 다가올수록 히메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달이 뜬 밤이 되면 그녀는 시름에 잠겨 눈물을 흘렸다. 음력 815일에 보름달이 뜨면 히메는 달나라로 돌아가야 했다. 보름달이 뜬 날에 임금님은 병사들을 동원해 히메의 승천을 막아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히메는 하늘로 돌아가기 직전에 임금님에게 애절한 내용의 와카(和歌, 일본의 전통 시)를 담은 편지와 불사약을 남겼다.

 

 

끝이라 하여 하늘의 날개옷을 입으려 하니

당신과의 추억이 무척 그립습니다.

 

はとて 羽衣 きるをりぞ

をあはれと ひいでける

 

 

다케토리란 일본어로 대나무로 물건을 만드는 장인이라는 뜻이다. 다케토리 모노가타리(竹取物語)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보다 앞서 나온 가장 오래된 이야기다.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의 간략한 줄거리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야기의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암울하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 각자의 결말이 슬프다. 가구야 히메는 인간 세상에서 사랑 한 번 경험하지 못하고, 달나라로 돌아갔다. 하늘의 날개옷을 입으면 인간 세상에 대한 모든 기억이 사라져버린다. 히메의 승천은 죽음또는 유한한 삶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죽은 망령이 저승의 5개 강 중 하나인 레테의 강에 흐르는 물을 마시면 지상의 모든 기억이 지워진다고 믿었다. 망각은 곧 죽음의 이미지다. 그녀를 애지중지 키운 노인은 히메가 없는 인생에 무상함을 느낀다. 그는 불사약을 거부하면서까지 병상에 누워 지냈다. 다섯 명의 귀공자, 임금은 히메를 자신의 아내로 만들지 못한 실패한 남자들이다. 이 중에 가장 불쌍한 남자는 제비 둥지 속에 있는 환상의 조개를 찾으려고 했던 이소노가미노 마로타리(中納言石上のまろたり). 그는 가신들의 도움을 받아 바구니를 타고 제비 둥지 안을 살펴보다가 그만 부뚜막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소노가미는 조개를 구하지 못했고, 허리를 심하게 다쳤다. (남자의 생명은 허리인데...) 자신이 평생 놀림거리가 될 거라는 생각에 이소노가미는 부끄러워했다. 그가 병상에 누워 있다는 소식을 접한 히메는 그에게 위문의 편지를 보냈고, 이소노가미는 히메에게 보내는 답가를 쓰자마자 세상을 떠났다. 임금도 히메의 부재에 상심에 빠진다. 그는 자신의 심정을 와카로 표현했는데, 그 속에 인생의 허무함이 짙게 배어있다. 이 문장이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의 비극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만날 수 없어 눈물로 지새우는 이내 처지에

불사약 있다 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ふことも なみだにかぶ には

なぬかはせむ

 

 

다케토리 모노가타리는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운명과 삶의 허무함을 강조하는 한 편의 우화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슬픈 줄거리와 결말은 단지 삶의 허무함과 인간 생명의 제한성을 표현하기 보다는 삶의 본질과 사람의 본질에 대한 물음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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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7-08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왔으면 언젠가 가야하는 순리..이게 생의 허무...불변의 진리이겠죠. 하늘에서 어댓길래 왔을까요..

cyrus 2016-07-09 08:05   좋아요 0 | URL
히메의 진짜 정체가 궁금했었는데,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아서 실망했습니다. ^^;;

단발머리 2016-07-09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정말 재미있네요.
달나라 공주님 이야기요~~^^
하늘 날개옷을 입으면 인간 세상 기억을 잊어버린다는 것도... 뭔가 쓸쓸하면서도 근사해요~~

cyrus 2016-07-09 08:07   좋아요 0 | URL
지브리 스튜디오가 이 원작을 삼은 애니메이션을 만든 적 있습니다. 2014년에 ‘가구야 공주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개봉되었습니다. 만화를 보셔도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