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만큼 인간과 함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 동반자도 그리 흔치 않다. 우리나라에서 달은 오랫동안 시상과 임을 향한 그리움을 샘솟게 하는 것이었고 특히 휘영청 밝은 보름달은 희망과 기원의 대상이었다. 고대인들은 달이 생명의 생멸에 영향을 준다고 믿었다. 달이 차고 이지러짐은 사람의 정신과 연결된다고 여겼다. 보름달이 뜰 무렵, 인체는 정신적 장애가 생긴다는 속설도 있다. 루나틱(lunatic)은 원래 달에 중독되어 머리가 이상해진 사람을 의미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로 알려진 《다케토리 모노가타리》의 주인공 가구야 히메는 달나라에서 지상으로 보내진 비운의 여인이다. 그녀는 8월 15일 달 밝은 밤에 승천했다. 승천하기 한 달 전부터 히메는 시름에 잠긴 채 달을 쳐다봤다. 주변 사람들은 달을 보면서 불길한 일이 생길 수 있다면서 히메의 달구경을 말렸다. 일본에서는 아주 밝은 달을 직접 바라보면 빨리 늙는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 고대 일본인들은 달을 감상하는 행위를 기피했다고 한다. 달은 그저 달이라도 보는 이의 느낌에 따라 달라지는 모양이다. 이태백에겐 달빛은 술맛 돌게 하는 낭만이지만, 일본인들은 마음 산란하게 하는 시름이었으니.

 

 

 

 

 

 

 

 

 

 

 

 

 

 

 

 

 

 

 

 

 

살로메는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에 등장하는 유명한 요부다. 구약성서에는 헤롯왕의 의붓딸로 등장하는 데 헤롯이 반해 그녀를 탐하자 그녀는 조건을 달았다. 평소 연정을 품고 있던 헤로디아가 세례요한(민음사 판본에는 요카난)의 목을 요구했다고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다. 와일드는 살로메를 첫눈에 요한을 사랑하는 관능적인 여인으로 그렸다. 살로메가 요한의 목을 손에 넣고 희열을 느끼는 장면이 이 작품의 클라이맥스다. 희곡의 후반부에 살로메와 헤롯왕을 중심으로 욕망과 감정의 충돌, 광기와 에로티시즘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래서 희곡이 시작되는 관능적인 첫 장면이 많이 거론되지 않는다. 와일드는 달빛의 아름다움을 달의 불길한 징조와 죽은 여자(헤롯왕의 명령으로 살해되는 살로메의 미래를 암시하는 표현)와 연관 지어서 묘사했다. 희곡의 삽화를 담당한 오브리 비어즐리도 하늘에 비친 달을 죽음이나 절망적인 상태로 몰아가는 불길한 대상으로 표현했다.

 

 

 

 

 

젊은 시리아인 : 오늘 밤에는 살로메 공주님이 유난히 아름다워!

 

헤로디아의 시동 : 달 좀 봐. 정말 이상해 보여! 꼭 무덤에서 일어나는 여자 같아. 죽은 여자 말이야. 꼭 죽은 것들을 찾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걸.

 

젊은 시리아인 : 과연 이상해 보이는군. 노란 베일로 얼굴을 가린 어린 공주 같아. 발이 은으로 빚어진 공주. 발이 아니라 자그마한 흰 비둘기가 달린 것 같아. 꼭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이 드는걸.

 

헤로디아의 시동 : 꼭 죽은 여자 같아. 아주 천천히 움직여.

 

(오스카 와일드 《살로메》147, 149쪽, 민음사)  

 

 

시리아인은 살로메를 보호하는 젊은 근위대장이다. 그러나 그는 이 작품에서 무기력한 존재다. 살로메의 관능미에 사로잡힌 포로다. 그는 살로메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녀 주변을 맴돌면서 아름다움을 가까이서 탐닉한다. 그러자 헤로디아의 시동은 살로메를 너무 많이 보면 시리아인에게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살로메가 우물 속에 갇힌 요한에게 관심을 보이게 되자 시리아인을 그녀를 막아선다. 요한을 데려오라는 살로메의 명령까지 거부해보지만, 불길한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 살로메가 요한의 입맞춤을 시도하자 시리아인은 그 자리에서 자살한다. 헤로디아의 시동이 예감했던 대로 무시무시한 일이 발생했다. 달, 즉 살로메의 첫 번째 희생자는 시리아인이었다. 근위대장은 살로메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살로메를 향한 그의 사랑은 진실하지 않고, 건강하지가 않다. 시라아인은 살로메의 관능미에 중독된 루나틱이다. 살로메의 치명적인 육체와 욕망을 마음껏 탐닉하기 위해 유령처럼 서성이고 있다.

 

달의 주기와 인간행동에 관한 연구는 이미 몇 차례 발표된 바 있다. 학자들은 보름달과 인간의 자살, 우울증 등이 의미 있는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보름달이 뜨면 조수간만의 차가 커지고 기온이 약간 올라가 대기압은 떨어지지만, 이 같은 현상이 인간행동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소설과 영화에서 만든 불길한 보름달의 거짓 효과가 계속 증폭된 것일 뿐이다. 터무니없는 속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오랫동안 자리 잡고 있으면 진실처럼 느껴져 깨기가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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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봄. 2016-07-11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름달이 뜰 때 같이 조작업하는 남녀는 CC가 된다는 속설을 깨주고 졸업했지요. --;;

cyrus 2016-07-11 20:01   좋아요 0 | URL
야심한 밤에 남녀가 같이... ㅎㅎㅎ 그런 속설도 있었군요. 그런데 저도 왜 슬퍼지는 걸까요? ㅠㅠ

yureka01 2016-07-11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태백의 달이 제일 맘에 듭니다..술잔에 달빛을 마시는 거 ^^..

cyrus 2016-07-12 16:33   좋아요 1 | URL
달이 환하게 뜬 열대야에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일이 현대의 풍류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