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소본능 - 환경부 2018 우수과학도서 선정, 국립중앙도서관 2018년 휴가철에 읽기 좋은 도서 선정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이경아 옮김 / 더숲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비둘기는 귀소본능과 방향감각이 뛰어나다. 비둘기의 귀소본능은 특별해 옛날부터 군에서 전령으로 활용하였다. 연어는 민물 하천에서 알을 까고 태어나 하류로 여정을 떠나 바다로 향한다. 바다에서 성장한 연어는 산란 시기가 되면 자신이 태어났던 상류로 거슬러 오른다. 연어는 태어난 곳으로 가기 위해 거센 역류를 헤쳐 나가야 하고, 때로는 폭포를 뛰어오르기도 한다. 민물에 도착한 연어는 알을 낳는다. 알을 낳은 연어는 일주일 이내에 죽는다. 동물들의 귀소 본능은 어떻게 발달하였을까. 수백에서 수천 킬로미터까지 물속을 헤엄치거나 하늘을 날아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회귀능력이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지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 태양의 각도나 별의 위치 · 지형지물 등을 이용한다거나, 지구에 흐르는 자기장을 활용한다는 등 다양한 연구결과들만 나오고 있다.

 

정지용 시인은 꿈에도 잊지 못할 곳이라고 고향을 표현했다. 누가 고향을 어머니 품과 같다고 했던가.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벅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일상에 지친 그들이 영혼의 안식처로 찾아가는 곳이 바로 고향이다. 인간도 귀소 본능이 있는 동물이라 나이가 들수록 고향을 잊지 못한다. 미국의 동물학자 베른트 하인리히(Bernd Heinrich)는 동물과 인간의 귀소본능을 같은 의미로 봤다. 그의 말에 따르면 동물의 보금자리는 (home)’이다. 동물은 서식 환경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 번식을 할 수 있다. 그들은 생존과 번식에 적합한 집을 찾아 나서기 위해 이동한다.

 

 

 

 

 

큰뒷부리도요라는 새는 알래스카에서 호주까지 고된 날갯짓을 한다. 이 새가 한 번 쉬지 않고 이동한다면 하루 평균 최대 1,500km까지 비행하는 셈이다. 작은 날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큰뒷부리도요는 자신의 체중을 불린다. 살집에 비축된 체지방은 장거리 이동을 가능하게 만드는 주요 에너지다. 그들이 계속 날갯짓을 할 때마다 체지방뿐만 아니라 몸속에 있는 단백질까지 소진된다.

 

오감 중에서 가장 우수하고 가장 본능적인 감각이 후각이다. 귀소 본능에 충실한 동물들은 후각을 동원하여 고향으로 이동한다. 산 너머 꿀을 따러 날아간 은 정확히 집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집에서 꿀이 있는 곳까지의 비행경로를 스스로 찾아내거나 동료로부터 전달받은 비행경로를 습득한다. 일벌들은 자신의 몸에서 생성되는 밀랍으로 벌집을 만든다. 비버는 강 속에 둥지를 만들어 그 주위에 나무를 잘라 댐을 쌓는다. 이렇게 하면 이동이 쉽고 천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자신에게 꼭 맞는 집을 지음으로써 위험을 피하고 번식의 기회를 늘린다.

 

귀소 본능은 먹이를 찾고, 번식하고, 자신과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생활방식이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동물의 귀소 본능 속에 집에 대한 그들의 애착을 확인한다. 단순해 보이는 동물의 보금자리에도 복잡한 원리가 숨어 있다. 동물들은 짝짓기와 새끼 기르기에 들어갈 노력을 고려하면서 최적의 보금자리를 찾아다닌다. 따라서 동물의 귀소 본능과 집짓기는 생존을 위한 전략이다. 알고 보면 동물들도 우리처럼 생존 욕구가 강하다. 고향을 찾아 먼 길을 이동하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은 생존에는 필수적인 욕구이며 중요한 기술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역시 집에 있을 때 몸과 마음이 편하다. 평생 한집에서 계속 쭉 살면 좋겠지만,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기존에 살던 집을 떠나 새집을 마련해야 한다. 동물들은 감각적 지식을 통하여 자기 종족들이 무엇을 먹어야 하는 가를 정확히 알고 그것만을 먹고 살아간다. 반면 인간은 태어날 때 감각적 지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서 그의 이해를 통해서 지식을 쌓아야 한다. 즉 지식은 피와 살이 되는 생존 전략이 된다. 과연 인간과 동물의 삶 중 누가 제일 힘들어 보이는가? 한 가지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디로? 내 생각엔 둘 다 탄탄대로의 삶이라 볼 수 없다. 어차피 동물이나 인간이나 똑같다. 집 나가면 고생한다. 동물 주변에는 생존 욕구에 강한 천적들이 도사린다. 게다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할수록 고향으로 가는 여정이 점점 험난해진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동물과 인간은 옛집을 떠나 새집을 찾는 동안 고생한다.

 

    

 

 

Trivia

 

* 108쪽 본문 맨 밑에 스콕홀름이라는 괴랄한 단어가 박혀 있다.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의 오식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2-06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7 09:53   좋아요 0 | URL
세계의 불가사의 중 하나가 ‘애인’이라면, 세계 불가사의한 장소는 ‘내 집’입니다. 도대체 애인과 내 집은 어디에 있을까요? ^^;;
 

 

 

위대한 스승은 제자가 스스로 지혜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방향만 알려준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지식을 먼저 닦고 거친 스승의 식견은 그 자체로 제자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스승을 뛰어넘는 제자가 드물지 않다. 청출어람(靑出於藍). 비록 제자일지라도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스승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공자는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알았던 제자 안회(顔回)를 총애하였다. 예술에서도 청출어람의 예를 볼 수 있다. 어린 시절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화가 겸 조각가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의 공방에서 미술 수련을 받았다. 도제 생활 6년 이상을 한 제자는 스승의 그림 작업에 보조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베로키오는 도제 생활 6년도 채 안 된 다빈치에게 자신의 그림 그리스도의 세례를 그리는 일을 맡겼다. 다빈치는 그림 왼쪽에 있는 천사를 그렸다. 어린 제자의 훌륭한 그림 솜씨에 감탄한[1] 베로키오는 천부적인 재능 앞에 좌절했고, 그 이후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고 한다.

 

 

 

 

 

 

 

 

 

 

 

 

 

 

 

 

 

 

 

* 오광수, 박서보 감수 모로(재원, 2004)

* 발터 니그 조르주 루오(분도출판사, 2013)

* 임식순 루오(서문당, 1992)

 

 

 

 

귀스타브 모로(Gustave Moreau)조르주 루오(Georges Rouault)의 관계는 보는 이에겐 애틋하다. 모로는 제자들의 재능과 개성을 존중하는 스승이었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제자들의 실력을 파악했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그림을 그리는 것이 매우 즐겁다.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은 아무것도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나는 여러분이 밟고 지나가는 다리다.”  [2]

 

 

모로는 매주 일요일에 제자들을 만나 예술에 관한 토론을 했다. 토론 모임에 참석한 제자들 중 한 명이 조르주 루오였다. 그는 그 당시 스승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스승의 인품에 감탄했다.

 

 

나는 아직도 그가 가르치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 그는 인정이 많았으며, 그가 갖고 있던 생명과 뉘앙스에 대한 섬세한 경의는 우리를 얼마나 감동시켰던가.”  [3]

 

 

젊은 루오는 뛰어난 화가로 인정받아 성공하고 싶은 욕망을 가졌다. 모로는 제자의 심정을 이해했으며 루오에게 그림을 급하게 그리지 말라고 충고했다. 모로는 루오가 추구하게 될 예술적 성향을 간파했다. 그는 루오가 우울하면서 검소한 분위기가 감도는 종교적 예술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루오는 종교적 심성을 담은 그림을 남겼다. 모로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작업실은 귀스타브 모로 미술관으로 개조되었다. 모로 미술관의 초대 관장으로 루오가 임명되었다. 미술관 관장으로 활동하면서 받는 월급이 적었지만, 루오는 금전적 혜택을 바라지 않았다. 그는 스승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미술관을 관리하는 데 힘썼다. 루오에게 모로는 스승 이상의 존재였다. 루오는 모로를 좋은 아버지라고 표현할 정도로 각별하게 대했다. 모로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위대한 화가가 되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 알베르 마르케(Albert Marquet)는 강렬한 색채의 대비와 대담한 묘사를 선보여 야수주의(Fauvisme)를 탄생시켰다.

 

 

 

 

 

 

 

 

 

 

 

 

 

 

 

 

 

 

 

 

 

 

 

 

 

 

 

 

 

 

 

 

* 알렉상드르 라피에르 불멸의 화가 아르테미시아(민음사, 2001)

*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 이라 디아나 마초니 여성예술가(해냄, 2003)

* 주디 시카고,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여성과 미술(아트북스, 2006)

* 이명옥 센세이션-세상을 뒤흔든 천재들(웅진지식하우스, 2007)

 

 

 

 

제자의 앞길을 가로 막은 나쁜 스승이 있다. 아고스티노 타시(Agostino Tassi)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화가의 친딸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가르쳤다. 화가의 딸은 열일곱 살의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그녀는 벌써부터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촉망받던 인재였다. 그런데 타시는 아르테미시아를 강간했다. 그는 그녀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겠다는 조건을 내세워 그녀와의 결혼을 원했다. 하지만 타시의 제안은 자신의 강간죄를 덮기 위한 비열한 꼼수였다. 타시는 자신이 내건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아르테미시아의 아버지는 타시를 고발했다. 딸의 순결은 가문의 명예와 직결된 문제였다. 아버지는 타시를 강간죄가 아닌 명예훼손죄로 고발했다. 세상은 아르테미시아의 고통을 외면했다. 오히려 사람들은 그녀를 정숙하지 못한 여자라고 수군거렸다. 심지어 타시는 그녀가 먼저 자신을 유혹했다고 거짓 주장을 했다. 7개월 동안 진행된 소송 끝에 강간죄가 입증돼 타시는 처벌을 받았다. 그런데 타시가 받은 죗값은 고작 1년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재판 결과가 나온 이후 타시에게 그림을 주문한 고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재판을 승리로 이끈 아르테미시아였지만, 남은 건 상처였다. 모진 고문과 수모는 그녀가 가진 재능의 날개를 꺾이게 만들었다. 아르테미시아는 불행을 딛고, 붓을 다시 쥐었다.

 

 

 

 

 

 

그녀의 대표작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는 화가의 개성이 충만한 걸작이다. 아르테미시아의 유디트(Judith)는 적장의 머리채를 단단히 움켜쥔 채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남성 화가들이 그린 유디트는 팜 파탈(femme fatale)’에 가까웠으며 치명적 매력으로 적장을 유혹해 그를 죽음으로 치닫게 만드는 존재였다. 아르테미시아는 남성적 범주에 속한 유디트를 그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자의식을 담은 아르테미시아를 그렸고, 유디트를 통해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저항 의식을 표현했다.

 

 

 

 

 

 

 

 

 

 

 

 

 

 

 

 

 

 

 

 

* 미셸 푸코 담론과 진실(동녘, 2017)

 

 

 

스승은 제자들 중 한 두 사람을 선택해 총애했다. 자신의 지식이 왜곡되지 않고 순수하게 애제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식을 전달하는 일에 집착한 스승은 권위적이고 고압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최악의 스승은 제자의 재능을 죽일 뿐만 아니라 제자의 인생마저 망가뜨린다. 중국 명나라 말기 사상가 이탁오(李卓吾)진정한 스승이 되려면 친구가 될 수 있어야 하고 진정한 친구가 되려면 스승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진정한 스승은 가르치는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제자와 함께 공부한다.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려면 스승은 새로운 것을 배울 줄 알아야 하며 제자의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 또 스승은 제자의 비판을 경청해야 한다. 그러면 제자는 스승의 인도(引導)를 믿고 자신의 개성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다. 제자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스승. 그 모습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가 언급한 스승의 파레시아(Parrhesia)’[4]라고 할 수 있겠다.

 

 

 

 

 

 

[1]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사가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베로키오가 소년 다 빈치의 능력이 자신보다 뛰어난 것에 화가 났다고 썼다.

 

[2] 오광수, 박서보 감수 모로(재원, 2004) 10~11

    

[3] 같은 책, 10~11

 

[4] 미셸 푸코 진실과 담론(동녘, 2017) 75

 

 

 


댓글(13)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2-06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6 17:13   좋아요 0 | URL
미술사에 ‘나쁜 스승-좋은 제자’ 조합이 많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쁜 스승’은 제자의 개성을 존중하지 않고, 제자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보수적인 스승입니다.

sprenown 2017-12-06 15: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담스러워 하시니 더이상 칭찬과 감탄의 댓글은 달지 않을 게요.^^. ㅎ. 안목과 식견이 있으신 분들의 비판적 댓글을 기대합니다.^^..

cyrus 2017-12-06 17:16   좋아요 0 | URL
제가 매일 글을 자주 올리는 편이라서 부담스러우면 ‘좋아요’ 안 눌러고 되고, 댓글 달지 않아도 됩니다. 평소에 관심 가질 만한 주제의 글이 아니라면 ‘패싱’해도 됩니다. ‘코리아 패싱’은 있어선 안 되지만, ‘사이러스 패싱’은 괜찮습니다. ^^

sslmo 2017-12-06 17:34   좋아요 1 | URL
‘사이러스 패싱‘ 완전 우껴요.
사실 저도 ‘좋아요‘를 좀 남발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좋다는 의미라기 보다는 잘 읽었다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요번 ‘비회원 좋아요‘ 사건으로 느끼는 바가 컸습니다.
.
.
.
애니웨이,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전 ‘좋아요‘에 인색하진 않을렵니다~ㅅ!

cyrus 2017-12-07 10:01   좋아요 0 | URL
To. 양철나무꾼님 / 저도 ‘글 잘 읽었습니다.’, ‘글 한 편 쓰느라 고생했어요.’, 이런 의미로 ‘좋아요’를 눌러요. 제 글에 ‘좋아요’를 누르는 분의 글에는 무조건 ‘좋아요’를 눌러요. ‘좋아요’를 받은 만큼 ‘좋아요’로 돌려주는 식이죠. ^^

sprenown 2017-12-06 17: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왜이러세요...댓글은 달지 않더라도(못하더라도), 시간이 허락하는 한 꼼꼼히 끝까지 읽고, ‘좋아요‘는 누를 거예요.ㅎㅎ

cyrus 2017-12-06 17:25   좋아요 1 | URL
sprenown님 편한 대로 하세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7-12-06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 항상 느끼지만 꼼꼼한 자료와 종합해서 내놓는 글은 참 좋군요. 아르테미시아 사연을 듣고 그림을 다시 보니 확실히 달라보이네요. 유디트를 그린 다른 남성 작가들과의 차별성이 느껴집니다..

cyrus 2017-12-07 09:55   좋아요 0 | URL
원래 카라바조의 그림과 비교해서 올리려고 했는데, 귀찮아서 안 했습니다. 사실 검색 하면 금방 찾을 수 있는 그림입니다. ^^

psyche 2017-12-07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역시 아르테미시아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림이 달라보여요.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건가봐요.

cyrus 2017-12-07 09:57   좋아요 0 | URL
화가의 자의식이 반영된 그림이 좋아요. 화가의 삶만 안다면 그림을 이해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그림은 어렵지 않고, 공감하기 쉬워요. ^^

yamoo 2017-12-07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디트에 관한 그림이 좀 있는 걸로 압니다. 그중에서 젠틸레스키가 그린 유디트가 가장 유명하죠. 저도 미술사 관계된 책에서 아르테미시아 이야기는 읽었습니다. 명화는 그에 얽힌 신화나 이면의 이야기를 읽고 보는 게 그림 이해에 절대적인 도움이 됩니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인다 할 수 있어요~
 
여성과 미술 - 열 가지 코드로 보는 미술 속 여성
주디 시카고 &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지음, 박상미 옮김 / 아트북스 / 2006년 2월
평점 :
절판


 

 

 

그리스 신화에 예술을 관장하는 9명의 여신이 나온다. 그녀들의 이름은 무사이(Mousai). 문학, 음악, 역사 등에 능하고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다. 뮤즈(Muse)는 무사이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미술관(Museum)은 본래 무사이가 머무는 곳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무사이 중에 미술에 능숙한 여신이 없다. 그래서일까? 오랫동안 여성은 미술의 세계에 동참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미술학교에 입학하는 여성이 드물었고,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다고 해도 누드화를 그리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남성들은 누드화 그리는 여성이 정숙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정작 그들은 여성 누드화를 마음껏 그렸고 누드화 감상을 즐겼다. 그렇다 보니 미술사에 여성은 없었다. 남성 미술은 미술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높이 인정받았지만, 여성 미술은 낮게 평가받았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미술사의 어느 지점에서든 많은 여성 미술가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르네상스에 활동한 소포니스바 안귀솔라(Sofonisba Anguissola)는 성공한 여성 화가였다. 그녀는 스페인 왕비에게 그림을 그리는 법을 가르쳤다. 안젤리카 카우프만(Angelica Kauffmann)은 초상화 분야에 독보적인 경지에 오른 화가이다. 그녀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 단체인 로열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Arts) 창립 회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프리다 칼로(Frida Kahlo)와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유명한 여성이다.

 

 

 

 

 

    

 

진정한 여성 미술 태동은 70년대부터다. 여성 미술가들이 모여 젠더구조와 여성 문제를 의식해 단체 활동을 한 것을 시작으로 페미니즘 미술사가 조명받았다. 주디 시카고(Judy Chicago)는 페미니즘 미술 1세대를 대표하는 화가이다. 1979년 그녀가 제작한 디너파티(The Dinner Party)는 페미니즘 미술사, 아니 현재를 포함한 미술사에서 기념비적 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거대한 삼각형 식탁 위에 클리토리스 모양의 서른아홉 개의 접시가 놓여 있다. 이 만찬의 주인공은 여성이다. 페니스를 과시하는 남성은 디너파티의 초대 제외 대상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처음 공개되었을 당시, 디너파티가 단지 외설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성 관객뿐만 아니라 페미니스트들까지 시카고를 비난했다. 하지만 시카고는 미술을 통해 여성의 몸에 대한 편견, 남성 중심의 사고에 정면으로 대항했다. 그리하여 자신의 문제의식을 공유한 남성 미술사가 에드워드 루시-스미스(Edward Lucie-Smith)와 함께 남성 중심 미술사가 잊거나 외면하고 있던 여성 미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발굴해 의미를 부여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 훌륭한 작업성과는 여성과 미술(아트북스, 2006)이라는 책으로 정리되었다.

 

이 책의 100자평에 따르면 책 내용이 오래된 것’(정확히 표현하면 오래전 글’)이라서 요즘 시대와 안 맞는다고 했다. 원서는 1998년에 발표되었고, 12년이 지나서야 번역본이 나왔다(현재 이 책은 절판되었다). 100자평 작성자는 이 책에 크게 실망했는지 별점 두 개를 부여했다. 70년대 중후반에 등장한 페미니즘 미술은 오래됐고,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절대로 그렇지 않다. 페미니즘 미술은 7, 80년대에 반짝 유행한 철 지난 예술사조가 아니다. 페미니즘 미술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의 페미니즘 미술가들은 여성 문제뿐만 아니라 인종, 계급, 퀴어(Queer) 문제까지 포괄하는 다양한 표현을 시도한다. 흑인 페미니즘 미술, 레즈비언 미술은 페미니즘 미술 2세대에 속한다. 국내에선 페미니즘 미술 2세대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적다. 고맙게도 시카고와 루시-스미스는 신세대 페미니즘 미술가들의 활동도 충실하게 소개했다.

 

책 본문 전체를 루시-스미스가 집필했고, 본문 옆에 있는 곁다리 글모두 시카고가 썼다. 시카고의 글이 부수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녀의 곁다리를 무시해선 안 된다. 사실 이 책에서 곁다리가 제일 중요하다. 왜냐하면, 시카고는 남성 미술가 또는 남성 미술 비평가들이 공감하지 못하는 페미니즘 미술의 가치를 재차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카고는 피부색, 민족에 관계없이 미술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많아져야 여성을 부당하게 재현하는 남성 중심의 미술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의 주장에 불편한 형님들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페미니즘 미술은 단지 여성만을 위한 미술이 아니다. 남자를 포함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미술’이라고 생각한.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미술이라는 표현을 보자마자 눈치를 챈 독자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 표현의 원본은 벨 훅스(Bell hooks)의 저서 제목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문학동네, 2017)이다. 시카고는 여성과 미술서문에서 벨 훅스가 제안한 대항적 시선(oppositional gaze)’이라는 개념을 빌려 미술 현장에 팽배해 있는 남성 중심 문화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페미니즘 미술은 남녀, 성 소수자 모두 표현의 자유를 누리려는 미술적 사회운동이다. 남성 · 이성애 중심의 미술은 여성 · 성 소수자들의 창작 기회를 제한한다. 특히 성 소수자 예술가는 여성 예술가보다 많이 대접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시카고와 루시-스미스의 글쓰기는 공통으로 여성 미술에 주목하고 있지만, 두 사람은 가끔 서로를 밀당(밀고 당기는)’한다. 루시-스미스는 여성만이 여성 미술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표방하는 방식이 페미니즘 미술의 약점이라고 지적했다. 시카고는 루시-스미스도 남성 미술비평가처럼 여성 미술을 소극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드러낼 수 있다면서 디스한다. 두 사람 말이 옳다. 우리나라에 나혜석, 천경자 같은 독보적인 여성 예술가들이 등장했지만, 여전히 협동 정신으로 무장한 단체 행동주의 성격의 페미니즘 미술이 주목받지 않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에 게릴라 걸스(Guerilla Girls) 같은 행동하는 페미니즘 미술 단체가 나올 수 있을까? 남성 고유의 시각을 넘어서는 여성 예술가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야 한다. 그녀들의 도전을 남성 혐오로 격하하는 것은 부당하다. 우리나라 페미니즘도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대안적 이해의 틀로 자리 잡을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미술을 바라보는 시야의 폭이 넓혀질 수 있다. 페미니즘 미술의 가치가 바로 여기에 있다.

 

 

 

 

 

 

Trivia

 

 

 

  

 

* 시카고는 서문에 미국의 페미니스트 역사학자 거다 러너(Gerda Lerner)의 저서 <역사는 왜 중요한가> 문장을 인용했다. 아마도 이 책은 1997년에 나온 <Why History Matters>일 것이다. 그런데 번역본에는 이 책이 ‘1977에 발표했다고 잘못 소개했다. 역자는 원서명을 역사는 왜 중요한가라고 옮겼는데, 책 주제의 특성상 역사는 왜 문제인가로 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이 책은 왜 여성사인가?(푸른역사, 2006)로 번역되었다.

 

 

* 40쪽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70쪽 밀레의 이삭줍기도판이 원본과 다른 좌우 반전형태로 나왔다. 미술 관련 분야 책을 주로 만드는 출판사답지 않은 실수이다.

 

 

* 98쪽 영국 출신의 예술가 수 코우(Sue Coe)의 출생연도를 ‘1651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고치면 ‘1951이다.

 

 

 

 

 

* 146쪽에 이브 엔슬러(Eve Ensler)<보지 되찾기>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한 문장이 있다. <보지 되찾기>는 여성 성기에 관한 이야기를 과감하게 풀어낸 연극 작품이며 원제는 <The Vagina Monologues>, ‘버자이너 모놀로그이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2-05 15: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6 13:11   좋아요 1 | URL
전쟁이 끝나고 남성들이 제대하고 직업장으로 돌아왔을 때 여성은 다시 집에 머무르게 됩니다. 전시에 동원된 여성의 노동력은 애국심으로 포장되었어요. 그래서 여성의 노동력이 남성 노동력만큼 인정받지 못했어요.

sprenown 2017-12-05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쭈~욱 밀고 가세요. 재능을 버리지 마시고, 길게 보세요! 훌륭합니다.^^.

cyrus 2017-12-06 13:13   좋아요 1 | URL
항상 저를 응원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부담스럽습니다. 좋은 소리만 들으면서 성장하는 것보다 가끔은 쓴소리도 듣고, 부족한 점을 채우면서 성장하고 싶습니다. ^^

2017-12-05 2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6 1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6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7-12-06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뭘 알아야 쓴소리를 하지요. 그냥 아마추어 입장에서 cyrus님의 해박한 지식과 열정, 글솜씨에 그저 감탄할 뿐이지요.^^..

cyrus 2017-12-06 13:56   좋아요 1 | URL
무조건 많이 알고 있어야 비판할 자격이 있는 걸까요? 저도 아마추어예요. 전문가들이 확인한 지식을 이용하고 편집해요. 이 과정에서 지식을 잘못 사용할 수 있고, 엉뚱한 내용이 전달될 수 있어요. 비판하기의 시작은 의문과 호기심이라고 생각해요. 상대방의 언어가 이해되지 않거나 미심 쩍으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요. ^^
 

 

 

오늘 유레카(yureka01)님 블로그에 공개된 반성문을 보신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저도 어제 박진성 시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 소식이 포털사이트 뉴스 메인에 많이 노출되지 않고 있습니다. 만약 어제 기사를 못 봤거나 유레카님이 반성문을 공개하지 않았으면 사건의 진실을 영영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작년에 성폭력 혐의를 받은 박 시인은 1년 간 법정 분쟁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박 시인의 무혐의 처분 소식을 전달한 뉴스가 그리 많지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 취재 대상에 대한 관심을 접고, 또 다른 먹잇감을 노리는 언론인들, 또 후속 기사를 내지 않는 언론인들. 그들의 잘못이 크지만, ‘약자(弱者)’악자(惡者)’라고 판단하여 돌을 던져 놓고도 관심을 잊은 익명의 군중도 책임이 있습니다. 제가 박 시인에게 돌을 던졌던 익명의 군중에 속했던 사람입니다. 오늘 유레카님의 반성문을 읽으면서 사실 검증을 하지 않은 다수 여론에 편승하여 돌을 던진 제 행동이 부끄러웠습니다.

 

알라딘 서재는 폐쇄적인 커뮤니티입니다. 이렇다 보니 올바르지 못한 편견은 쉽게 공개되고 삭제(혹은 비공개)되지 않는 이상, 오랫동안 전시됩니다. 또 커뮤니티 안에 형성된 다수 여론에 크게 휩쓸리기 쉽습니다. 다수 여론 분위기에 익숙하게 되면, 개인은 다수 여론에 적합한 기준에 따라 특정 인물을 평가하게 됩니다. 다수 여론이 커뮤니티 전체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지만,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기가 힘듭니다. 위험 신호를 감지한 사람은 소신 있게 다수 여론의 문제점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비판할 용기가 부족하고, 자신의 발언에 대한 후폭풍이 두려우면 끝내 침묵하게 됩니다.

 

우리 주변에 관심거리가 아주 많습니다. 그래서 어떤 것에 관심을 가져도 새로운 관심거리가 등장하기 때문에 기존의 것에 금방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또 인간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좋은 거든 나쁜 거든 자신이 상대방에게 했던 언행을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제가 저지른 잘못은 잊힙니다. ‘지저분한 잘못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에 씻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잘못으로 인해 (간접적/직접적) 피해를 본 당사자는 죽을 때까지 고통의 시간 속에 지내야 합니다. 그들에게 시간은 이 아니라 입니다. 피해자가 처한 상황을 생각하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남몰래 잘못을 숨기는 일은 비겁한 짓입니다. 따라서 저도 유레카님처럼 반성문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제 잘못을 공개한 게시물이나 댓글은 웬만하면 삭제하지 않습니다. 알라딘이 망하거나 제 서재 블로그가 완전히 폐쇄되지 않는다면 이 반성문을 끝까지 보관할 생각입니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7-12-04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5 11:16   좋아요 0 | URL
‘반성’도 독행일치를 실천하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사소한 잘못도 이게 왜 잘못된 것인지 짚고 넘어가야 해요. 상대방이 지적하지 못한 잘못은 자신이 스스로 살펴봐야 합니다. 그냥 놔두면 ‘고정관념’이 됩니다.

2017-12-04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4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5 11:0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답글이 늦었습니다.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제 견해를 밝히고 싶었습니다. 답글을 ‘비밀’로 할 것인지, 아니면 공개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제 블로그에 비밀 댓글이 많이 달리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대화를 나누든지 간에 투명성 있게 대화를 나누고 싶었어요. 소신 있게 제 입장을 밝히겠습니다. ***님의 의견들을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저도 박진성 시인 관련 사건에 대한 언론 자료를 더 찾아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상세한 답변을 하지 못한 내용 몇 개가 있을 거예요. ***님의 의견을 회피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여전히 제가 모르는 것이 많고, 제대로 확인하고 나서 답변을 정리하고 싶습니다만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1. 시인이 ‘자살하겠다’면서 협박했다는 피해자의 진술은 알고 있습니다. 시인의 언행은 잘못됐고, 가벼운 농담으로 볼 수 없습니다.

2. 정말로 그런 목적으로 자살을 시도했다면 비판받아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저는 시인이 자신의 억울한 상황이 답답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봤습니다.

3. 시인이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제기한 피해호소인 A는 무고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또 다른 B는 허위 글 작성으로 명예훼손죄로 인정됐습니다. 지금까지 내용은 언론에 보도된 것들입니다. ‘그들이 없는 사실을 지어낸 것이 아니다’고 볼 수 있을까요?

4. 박 시인이 송 시인을 고소했다는 내용이 보도된 기사가 딱 한 건 있군요. 올해 1월 24일에 한겨레가 보도했습니다. 검색해야만 찾을 수 있는 기사입니다. 송 시인이 자신의 트위터에 박 시인의 자살 시도를 비꼬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게 ‘비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송 시인의 반응이 지나쳤습니다. 송 시인의 문제 발언은 무조건 악의적으로 공격하는 안티페미니스트들의 성격상 집중 공격을 받을 만했어요. 박 시인 무혐의 처분 판결 이후로 안티페미니즘 여론이 커진 건 사실입니다.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 확산되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안티페미니스트들은 박 시인을 ‘페미니스트들에게 억압받는 남성들’을 대변하기 위해 희생한 영웅 급으로 미화할 수 있어요. 그건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오히려 박 시인을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앞서 3번 답변에 언급했지만, 박 시인은 안티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높이려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닐 겁니다.

5. 성범죄 가해자가 마음만 먹으면 피해자의 고소를 허위 고소로 몰아세울 수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더 논의하고 싶지만, 솔직히 제가 법학 관련 지식에 빈약해서 제 입장을 밝힐 수가 없었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6. 제 반성문에 언급된 ‘익명의 군중들’이 ‘문단 내 성폭력 공론화를 주도한 페미니스트’를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독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는 표현을 썼군요. 저는 사실 확인도 없이 다수 여론에 동참하는 일반 대중의 반응을 비판했습니다.

***님의 의견에 일일이 답변해드리지 못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최대한 ‘가짜 뉴스’와 ‘선동’을 피하면서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알아보려고 노력해봤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무엇이 사실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 시인 사건을 기점으로 안티페미니스트의 역풍이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이 분위기를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막막합니다.

2017-12-04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sprenown 2017-12-04 2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사를 보지 못해 박진성 시인 사건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이렇게 떳떳하게 반성문을 게재하는 것도 용기입니다. 자신의 잘못과 오판에 대해 반성하고, 성찰하는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꼰대같은 얘기지만 너무 자책 하지 마시고, 저도 그렇지만 좀 더 신중하고, 비판적인 안목과 시각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cyrus 2017-12-05 11:25   좋아요 1 | URL
SNS나 블로그에 정치 및 사회적 현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떳떳이 밝히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편견이나 다수 여론에 쉽게 빠져들어요. 또 식견이 있는 ‘전문가’처럼 행세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어제 제 글쓰기를 ‘딜레탕트’, ‘스노비즘’이라고 언급한 거 기억하시죠?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만에 빠지면 글의 문제점을 보지 못해요. 언론 보도를 인용하는 글쓰기를 자제할 생각입니다. 그냥 리뷰나 열심히 써야겠어요. ^^;;

sprenown 2017-12-04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전에 인터넷 검색을 해서 기사를 찾아보니 박시인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리트윗 1000이면 그게 학설이 됩니다. 트위터에서 리트윗 2000이면 그게 기사가 됩니다. 트위터에서 리트윗 3000이면 그게 진실이 됩니다.” 이게 언론과 SNS의 폐해라는 생각이 듭니다. 냄비근성....

sprenown 2017-12-05 11: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경험하시는 것 같네요..너무 의기소침하지 마시고, 앞으로도 깊이 있고, 알찬 리뷰 기대할게요^^.

cyrus 2017-12-05 11:40   좋아요 0 | URL
‘좋은 경험(잘못을 저지르고, 혼자 반성하는 루트 반복)‘이 많아져서 문제입니다. 이러면 반성의 진정성이 떨어지거든요.. ^^;;

sprenown 2017-12-05 1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반성문을 진심을 담아 공개하는데 진정성이 떨어지겠어요? 더 심한 욕을 하고, 무책임하게 비난하였던 자들은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는데..다들 그 마음 알거예요.. 좋은 하루 되시길.^^.!
 

 

 

데생(dessin), 드로잉(drawing), 그리고 소묘. 이 세 가지 용어는 모두 같은 뜻이다. 화가의 성향과 관계없이 소묘는 창작하면서 기본적으로 거쳐야 할 필수과정이다. 즉 그림을 그리기 위한 사전 준비 단계라 할 수 있다.

 

 

 

 

 

 

 

 

 

 

 

 

 

 

 

 

 

* 조르조 바사리 이태리 르네상스의 미술가 평전(한명출판사, 2000)

 

 

 

최초의 미술사학자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소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회화, 조각, 건축 이 세 가지 분야의 공통분모로 소묘를 꼽았으며, 소묘에 예술가의 감정 등 본질적인 것이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바사리의 표현에 따르면 소묘라는 아버지로부터 태어난 자매가 회화와 조각이다. 그런데 어째서 소묘가 아버지일까? ‘어머니는 어디에 있는가? 바사리는 회화와 조각의 아름다움을 여성으로 비유했다. 그의 말 속에는 여성을 배제한 남성 중심 미술이라는 편협성이 깔렸다. 애초에 여성을 ‘(능동적) 창작자가 아닌 ‘(수동적) 창작 소재로 설정하고 있다. 남성 중심 미술에 대한 각성이 일어나기 전까지 여성은 그림 교육을 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고, 여성 화가들의 업적은 높이 평가받지 못했다.

 

남성 중심 미술에 대한 비판은 다음에 다뤄 보기로 하고, 본 주제로 들어가도록 하자. 흔히 소묘를 연습용 그림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소묘를 아버지라고 비유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화가 지망생은 소묘의 가치를 알아본 바사리의 말을 반드시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미술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학생들에게 소묘 훈련을 시킨다. 소묘를 그리는 일은 그림(출품작)’이라는 실전을 위한 연습이다.

 

 

 

 

 

 

 

 

 

 

 

 

 

 

 

 

* 피에르 코르네트 드 생 시르, 아르노 코르네트 드 생 시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들(시공아트, 2012)

 

 

 

거장들은 소묘 그리기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이 남긴 소묘에서 그림 한 점이 탄생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소묘는 창작의 흔적을 따라가 볼 수 있는 연구 대상이며 완성된 작품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다. 대충 그린 듯한 소묘도 컬렉터들이 노려볼만한 수집품이며 최고 경매가를 기록하기도 한다.

 

 

 

 

 

 

 

 

 

 

 

 

 

 

 

 

 

 

* 세계 거장 드로잉 컨셉북 : 고야, 달리(CK북스, 2014)

* 세계 거장 드로잉 컨셉북 : 와토, 호퍼(CK북스, 2014)

* 세계 거장 드로잉 컨셉북 : 렘브란트(CK북스, 2014)

    

 

 

소묘에 대한 관심이 적은 편인지 국내에서는 화가의 소묘집이 잘 나오지 않는다. 소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육용 책은 많다. 요즘 나오고 있는 드로잉북은 일반 독자가 소묘를 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스케치북이다. 소묘를 볼 수 있는책이 그리 많지 않다. 2014년에 세계 거장의 드로잉 컨셉북이라는 이름을 단 소묘집 세 권이 출간되었다. 이 시리즈는 와토, 호퍼, 고야, 달리, 렘브란트로 구성되었다. 앙투안 와토(Antoine Watteau)는 프랑스 로코코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이고,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실주의 화가이다. 정말 특이한 조합이다. 귀족풍 느낌이 물씬 드는 화려하고 섬세한 로코코(rococo) 양식과 무심하면서도 서늘한 호퍼의 화풍에 특별한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고야, 달리는 꽤 괜찮은 조합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 모두 같은 스페인 출신 인데다가 개성 넘치는 그로테스크(grotesque)를 구현한 작품을 남겼기 때문이다.

 

 

 

 

 

 

 

 

 

 

 

 

 

 

 

 

 

 

* 고야, 영혼의 거울(다빈치, 2011)

* 함순용 상처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함박누리, 2017)

 

 

 

 

필자가 고야와 달리에 관심이 많아서 공공도서관에 소장된 고야, 달리를 볼 수 있었다. 도판이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시원시원한 판형이다. 도판에 대한 세부 설명은 없다. 마음 편하게 소묘를 감상하면 좋겠지만, 그래도 화가가 소묘를 통해 무얼 나타내려고 했는지 이해하려면 화가의 삶을 소개한 관련 도서를 참고해야 한다. 특히 고야, 달리에 고야의 판화집 로스 카프리초스(Los Caprichos)에 포함된 작품의 소묘 몇 점이 수록되어 있어서 먼저 이 판화집의 제작 배경을 알아두는 것이 좋다. 고야의 판화를 확인할 수 있는 책으로는 고야, 영혼의 거울(다빈치, 2011), 상처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함박누리, 2017) 등이 있다. 참고로, 상처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로스 카프리초스에 수록된 모든 판화 작품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책이다. 고야, 영혼의 거울같은 경우, 판화집 일부만 소개되어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상처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의 도판 상태다. 적지 않은 작품을 보통 판형의 책 한 권에 모두 담으려는 바람에 도판의 선명함이 사라졌다. 한 점도 누락하지 않고, 스케치북만한 판형으로 만들어진 로스 카프리초스완전판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야, 달리에 소묘 감상을 방해하는 몇 개의 오식이 보인다. 4카프리코스카프리초스의 오식이다. 50쪽에 앙다르시아의 개가 나오는데, 정확하게 고치면 <안달루시아의 개(Un Chien Andalou)>이다. <안달루시아의 개>는 달리와 루이스 부뉴엘(Luis Bunuel)이 공동 제작한 전위영화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달리의 친구로 알려진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페테리코 카르시아 로사라고 표현하는 건 문제 있다.

 

 

 

 

 

 

 

내가 아는 로사는 절대로 남자가 아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2-03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03 17:03   좋아요 1 | URL
저는 소묘 실력이 형편 없어서 그림 그리기를 포기했어요.. ㅎㅎㅎ

sprenown 2017-12-03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럼 미술평론 하세요 신춘문예 곧 있어요^^.

cyrus 2017-12-04 14:42   좋아요 0 | URL
저는 제 글쓰기를 딜레탕트(아마추어), 스노브(지적 허영)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얼핏 보면 깊이 있어보이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책을 참고해서 내 입맛에 맞는 내용을 조잡하게 편집하는 거예요. 비평 수준의 글을 쓸 능력이 없어요. ^^

sprenown 2017-12-04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예요.. 님은 충분한 능력과 자격이 있는 것 같은데요..본격적으로 좀더 준비하시고, 한번 도전해 보세요.. 이 좁은 알라딘 서재에서만 활동하기에는 아까운것 같아요.^^

cyrus 2017-12-04 16:03   좋아요 0 | URL
제가 능력과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지금부터 준비하는데 투자해야 할 시간이 부족해요. ^^;;

sprenown 2017-12-04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무래도 직장생활하면서 시간내기는 좀 힘들것 같습니다만, 길게 보고 준비하는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덕업일치‘를 이루는 삶이 얼마나 좋습니까?

cyrus 2017-12-05 11:11   좋아요 0 | URL
‘덕업일치’를 실천하신 분들이 존경스러워요. 그 분들은 의지가 강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