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풍경 1 파리의 풍경 1
루이세바스티앵 메르시에 지음, 송기형 외 옮김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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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중엽의 프랑스는 계몽사상에 흠뻑 취해 있었다. 그런데도 사회적으로는 절대군주제와 신분제도가 엄격하게 유지되는 등 봉건 잔재가 온존했다. 이런 와중에 지배계급인 성직자와 귀족들은 대토지를 소유하고도 세금을 면제받았을 뿐만 아니라 관직을 독점하는 등 온갖 특권을 누렸다. 국가 재정을 전적으로 부담하면서도 정치적 권리를 전혀 보장받지 못한 평민들의 심기가 편할 리 없었다. 사회적 모순이 팽배해 혁명이 배태될 수밖에 없는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불평등은 문명 자체, 범위를 좁히면 잘못된 체제에 주된 원인이 있다. 구조화한 불평등은 언젠가 폭발하기 마련이다. 장 자크 루소는 1755년에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발표했다. 루소가 생각한 불평등 원인은 문명 그 자체였고, 그것을 정당화할 자연법은 없었다. 이는 불평등을 해결하려면 당시 사회를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함을 내포했다. 한 세대 뒤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의 정신은 그 연장선에 있었다.

 

루소와 같은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진리를 인간 사유의 결과물로 끌어내려 프랑스 혁명의 토양을 마련했다. 이런 와중에 루이 세바스티앵 메르시에라는 작가 겸 언론인은 혁명의 기운이 닿지 않는 파리의 땅을 한가롭게 밝으면서 돌아다녔다. 그는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그대로 글로 기록했다. 책 제목은 《파리의 풍경》. 1781년부터 1788년까지 총 12권으로 출판한 책(국내 번역본은 총 6권)은 위조본이 나올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 책 때문에 메르시에는 파리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했다. 사실 위조본은 경찰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출판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인기를 식을 줄 몰랐다. 출간 당시 《파리의 풍경》의 인기는 볼테르와 루소의 책과 맞먹을 정도였다. 이 책은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불꽃이 피어오르기 전 나름대로 평화로웠던 파리의 생생한 모습을 담고 있다. 얼핏 보면 파리를 찾는 다른 유럽 관광객이나 파리에 진출하려는 지방 사람들을 위한 신변잡기 책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 책에는 화려하고 평화로운 파리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메르시에는 감상에 현혹됨이 없이 파리라는 거대한 텍스트를 정면으로 읽어낸다. 그는 파리 토박이임에도 불구하고, 파리 전체를 돌며 “파리는 어떠한 곳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고 답을 구한다. 관찰과 사유를 통해서 얻은 결과물은 천여 개가 넘은 단상으로 정리했다. 메르시에의 글쓰기 방식은 20세기 초 근대 파리의 거리를 산책하면서 관찰했던 것을 짧게 메모한 발터 벤야민보다 훨씬 앞선다. 메르시에가 바라본 파리는 종잡을 수 없는 곳이다. 계몽주의 사상의 나라답게 자유와 평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사회를 개선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하다. 그러나 국가가 모든 것의 중심에 있고, 지배의 타성에 젖어 무기력한 파리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 전제 군주시대의 색채가 너무나도 짙다. 책에는 사치와 향락에 빠진 귀족들, 신분 상승을 위해서 파리 중심부로 모여든 지방의 젊은이들, 그리고 가난에 허덕이는 시민 등 다양한 인간군상이 등장한다. 메르시에는 점점 사람들이 모여 넘쳐나는 파리를 ‘몸에 비해 과도하게 큰 머리’를 가진 존재로 비유한다.

 

파리는 나라라는 몸에 비해 과도하게 큰 머리 같다. 하지만 이제는 이 혹을 잘라내기보다는 내버려두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 번 뿌리가 내리면 근절이 불가능한 잘못된 일들이 있는 법이다. 마지막으로 파리는 인류를 집어삼키는 구렁텅이라고 볼 수 있다. (10쪽, 발췌 인용)

 

그가 걱정하는 ‘잘못된 일’이란 게 무엇일까. 메르시에는 물질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파리의 현실을 지적한다. 부자와 빈자와의 경제적 격차는 점점 커지고, 빈자를 도와주어야 할 종교인들마저도 마몬의 유혹에 사로잡혔다. 이제 파리에는 검소, 절제, 미덕을 찬양하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잘못된 일’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고, 기록하지 않는다. 전제정치와 불평등은 파리지앵들을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였고, 더 이상 사회를 바꾸려는 의지조차 보이지도 않는다.

 

파리인들은 계속적인 성찰과 노력에 의해 자유를 조금 더 얻어보았자 별로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것 같다. 파리인은 도시의 불행한 일들을 금방 잊어버린다. 그들은 고통을 기록해 두지 않는다. (52쪽)

 

다행히도 메르시에가 걱정했던 매너리즘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파리의 풍경》이 출간하고 나서 일 년 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다. 그래서 《파리의 풍경》은 자유와 평등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려던 혁명 직전의 프랑스 사회를 이해하는 중요한 책이다. 자유와 평등이 존재하지 않고, 부의 균등분배가 이루지 못한 파리를 너무나도 사실적으로 기록했기에 당연히 정부는 이 책의 인기를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메르시에의 책이 불티나게 팔린 사건은 사회적 모순을 감지하는 시민들이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이후부터 메르시에의 책은 파리 시민들의 기억 속에 잊혔다. 인기 작가 대열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사람은 루소와 볼테르였다. 메르시에가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그의 글은 풍속과 각종 사건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간략하게 적은 칼럼을 연상시킨다. 그의 글은 다소 지루한 면이 있다. 그렇지만 《파리의 풍경》이 혁명 이후에 잊힌 책이라고 해서 단순히 프랑스 혁명의 등장을 예고하는 텍스트 정도로만 평가한다면 이 책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한다. 메르시에는 우리의 도덕관과 상식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이율배반과 변화무쌍한 파리를 그대로 바라보고 기록했을 뿐이다.

 

어떤 기술을 완전히 익힌다는 구실로 지방을 떠나서 멘토도 친구도 없이 이 유혹의 도시를 찾아온 순진한 풋내기는 화를 당할지어다! 뻔뻔스럽게 쾌락이라는 이름을 도용하는 방탕의 덫들이 사방에서 그를 둘러싼다. 그는 부드러운 사랑이 아니라 그 모조품만을 만나게 될 것이다. 교태의 거짓말과 탐욕의 간계가 진심의 토로와 감정의 불꽃을 대신한다. 쾌락은 돈을 주고 사는 기만적인 것이다. (25쪽)

 

공교롭게도 프랑스 혁명 이후의 파리는 다시 유턴을 시작했다. 구체제보다 훨씬 빨리 부활한 것이 향락이었다. 단두대의 공포가 사라지기 무섭게 무도회장이 파리 곳곳에서 문을 열었고, 사기꾼, 투기꾼, 부패 정치인이 고개를 쳐들었다. 의회 의원들의 부패행위는 공공연해졌으며 처벌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세인의 부러움을 샀다. 메르시에는 프랑스의 최초 공화정을 무력하게 만든 나폴레옹 제정의 몰락(1814년)까지 지켜보고 눈을 감는다. 만약에 그가 십 년을 더 살았으면 물질주의에 지배된 파리를 더 지켜봐야 했을 것이다. 그는 알고 있었을까. 혁명 이전이나 이후나 대도시는 끝없이 타락할 것임을. 그래서 파리를 꿈과 성공의 도시로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경고한다. 신기하게도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에 나오는 순진한 라스티냐크의 등장을 예고한다. 메르시에는 ‘인류를 집어삼키는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은 유일한 파리지앵이다. 이 위대한 생존자는 타락한 도시의 영혼들이 사는 시대의 천태만상을 기록하는 데 성공한다. 발자크가 생전에 해내지 못한 <인간 희극> 작업을 12권으로 정리했다. 12권의 《파리의 풍경》은 90여 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발자크의 <인간 희극> 전체와 맞먹는 통찰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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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8-25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역사적 책도 있었군요. 국내에서도 12권으로 출간된 책 중 이것이 첫 권인가요?

cyrus 2015-08-26 10:05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제가 국내 번역본 권수를 언급하지 않았군요. 총 6권으로 완역본입니다. ^^;;

프레이야 2015-08-25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권이군요. 완전히 새롭게 발견하게 된 책입니다. 리뷰 감사해요^^

cyrus 2015-08-26 10:07   좋아요 1 | URL
최근 프랑스 역사학계에서도 주목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렇다 보니 이 책이 서울대학교가 주관하는 문화연구기관 이름으로 출판되었어요. 이런 좋은 책이 알려지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국내 번역본 권수는 6권입니다. 제가 깜빡 잊고 국내 번역본 권수를 언급하지 못했습니다. ^^;;

지금행복하자 2015-08-2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12권이라니~ 다 읽으려면 몇년이 걸릴까요? ㅎㅎ
좋은 책 감사해요~^^

cyrus 2015-08-26 10:09   좋아요 0 | URL
글을 다시 수정했습니다. 12권은 처음에 나왔을 때 권수고요, 국내 번역본은 6권으로 나왔습니다. ^^;; 한 권당 400쪽 조금 넘습니다. 그렇지만 프랑스 사회사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을 꼭 알아야 합니다.

지금행복하자 2015-08-26 15:50   좋아요 0 | URL
확 끌립니다. 일단 책값이 후덜덜하군요 ㅎㅎ
소장가치는 있겠어요., 제가 힘들면 도서관에라도 소장하도록 하든지 해야겠어요 ~^^

cyrus 2015-08-26 15:58   좋아요 0 | URL
공공도서관에 찾기 어려운 책일지도 모릅니다. 스무 개 넘는 대구 도서관 중에 6권 모두 소장되어 있는 곳이 딱 한 군데뿐이었습니다. ^^;;


지금행복하자 2015-08-26 16:02   좋아요 0 | URL
정말요? 이런 책이야말로 도서관에 소장해줘야 하는데요~~ 희망도서로 일단 신청을 해봐야겠어요 ~ ^^

AgalmA 2015-08-26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 보면 참 부러워요. 그에 비해 한국은 참 여러모로 안타까운...왜곡하려는 자들은 득실하고...

cyrus 2015-08-26 10:14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가면 갈수록 사회의 어두운 진실을 고발하는 사람들을 자꾸 거짓으로 모함하는 세력이 있어요.

transient-guest 2015-08-26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가 테마가 되는 책이군요. 이런 책이 나오기 힘든 한국의 풍토가 아쉽습니다.

cyrus 2015-08-26 10:15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이 번역되지 못하는 풍토도 아쉽습니다.

stella.K 2015-08-26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저작에 무한 신뢰와 존경을 보내고 싶어. 발자크도 그렇고.
현재는 6권만 번역된 거고, 앞으로 6권이 더 번역되어 완역한다는
목표겠지?
뭐 베스트셀러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너처럼 꾸준히 찾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프랑스에 대한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읽을지는 장담 못하겠다.
하지만 분명 탐나는 책임엔 틀림없어.

cyrus 2015-08-26 15:26   좋아요 0 | URL
우리말로 번역해서 나온 책이 총 6권이에요. 이 책 번역에 참여한 사람이 7명이나 됩니다. 그만큼 국내에 덜 알려진 책을 번역한 분들이 대단해요. 그런데 책값이 대학교재 가격이랑 비슷해요. ^^;;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 서울의 삶을 만들어낸 권력, 자본, 제도, 그리고 욕망들
임동근.김종배 지음 / 반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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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누군가에게는 기회의 땅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차별의 도시다. 한강의 기적과 그것이 빚어낸 명암, 꿈을 갈망하고 욕망을 소비하는 메트로폴리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은 광적으로 서울에 몰렸다. 개발 연대기 서울 행정은 인구 분산과 교통난 해소, 택지개발, 아파트 건설에 맞출 수밖에 없었다. 아파트는 욕망의 응집체다. 이 욕망은 재개발과 투기라는 이름으로 무한증식하며 허물고 새로 짓기를 반복한다. 한국인의 ‘내 집 갖기’ 욕망은 세계 최고 수준인 교육열 못지않다. 집의 소유 여부, 크기, 위치가 ‘계층’ 판단의 기준이 되다시피 해 도시서민 제1의 목표 역시 ‘내 집 마련’에 맞춰지곤 한다. 엄청난 마력을 발휘하는 아파트는 모든 이의 꿈을 획일화하며, 거주자들은 자기만의 성을 쌓아간다. 하지만 꿈은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기만 하다. 수십 차례에 걸쳐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나왔지만, 아파트 가격의 폭등을 멈추지 못했다. 이로 인해 빈부 격차는 더 벌어졌다.

 

사회를 조정·통제하는 정치적·사회적 요인과 제도는 그 도시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도시개념에 무지한 사람들은 이 거대한 도시를 마치 경제성장, 주거환경의 혁신적 결과로 착각한다. 사실은 서울은 그때그때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허물어지고 구축됐다. 그 안에 사는 인간은 이같이 파괴적인 순환에 저절로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반비, 2015)은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서울의 변천 과정에 숨어있는 공공적 욕망에 주목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자본 그리고 욕망의 토대 위에 존립한다. 이 욕망의 시발점을 보려면 행정구역이 새롭게 개편되면서 점점 도시의 모습으로 갖추기 시작하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서울시는 1960년대 초반부터 시민아파트를 짓기 시작했다. 이 사업은 시가 아파트의 골조만 짓고, 입주자가 내부공사 일체를 맡는 방식이었다. 실적 위주로 밀어붙인 아파트 짓기는 1970년에 와우아파트가 무너지는 대형사고를 낳았다. 70년대에는 유신정권이 민간부문에 의한 주택건설을 확대하기 위해 세금 면제, 재정 지원 등 다양한 유인책을 내놨다. 압구정동, 여의도, 잠실 등지의 아파트는 대부분 이때 지어졌다. 각종 개발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이 아파트 개발 사업에 참여한 대형 건설업체들을 끌어모아 힘을 얹어주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할이 축소되고 건설업체의 역할이 증대되었다. 80년대 말부터 주택난이 발생했지만, 정권수립에 도덕성이 없는 전두환 정권은 국민 불만을 물가안정으로 잠재우려고 했다. 멈출 줄 모르는 집값 폭등이 민심이반 현상으로 크게 번지게 되자 노태우 정권은 승부수를 걸었다. 수도권 주변의 5개 신도시 개발이 한꺼번에 진행되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아파트’라는 단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투자를 넘어서 투기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이런 투기 광풍 속에 건설업체는 입맛대로 분양가를 책정하여 고수익을 챙겼다. 정권과 대형 건설업체는 서민의 눈에 보이지 않는 상호연대를 구축하여 ‘한국 자본주의’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독자는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을 통해서 개발사업의 성공신화에 가려진 불편한 이해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권력과 자본, 욕망이 무수히 교차하는 도시 ‘서울’은 일종의 무대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도시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정부의 조종에 따라 춤추는 꼭두각시 인형이다. 정부의 정책 블루스로부터 시작된 도시의 춤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지금 어디선가 커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또 다른 욕망은 수십 년 후의 서울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모두 궁금해하지만 누구도 예측하기 힘들다. 주식 투기에 뛰어들었다가 잠시 지옥에 경험했다는 과학자 아이작 뉴턴도 모를 것이다. 뉴턴은 주식시장 전망을 묻는 한 투기꾼에게 “나는 천체의 무게를 측정할 수는 있어도 미친 사람들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뉴턴 같은 천재에게도 우리 삶을 지배하는 욕망의 힘은 알쏭달쏭한 불가해의 영역이다. 하지만 확실히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고전경제학이 말했던, 그 꼭대기 위에 앉아 욕망을 제어한다던 ‘보이지 않는 손’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대해진 도시 내부에는 보이지 않는 셈법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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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미원주 2015-08-31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 권력은 한 특정한 개인이라기보다는 집단적 이기심을 끌고 가는 세력이라고 생각해요. 거대도시 서울의 흥망성쇠에 대한 담론을 대담 형식으로 잘 담아놓은 책이라서 저도 읽어보려해요. 리뷰 잘 읽고 갑니다.

cyrus 2015-08-31 16:46   좋아요 1 | URL
지리학에 낯설어서 어려울 줄 알았는데 대담 형식으로 풀어서 그런지 책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겨자이언 C가 부릅니다. '겨자를 찍어 먹어요'

 

안녕. 쉽지 않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죠. 먹고 싶은 게 더럽게 많죠. 매운 음식 먹고 싶죠? 매운 음식 안 좋아하는데도 매운 음식 먹고 싶을 거야. 그럴 땐 이 겨자를 찍어 먹어요. 매워도 조금 찍어 먹어요. 그러면 건강에 좋을 거예요.

 

 

 

향신료란 물의 열매, 잎, 줄기, 뿌리 등을 건조한 후 분쇄해서 만든 것이다. 오랜 기간 보관이 가능하고, 적은 양으로도 강한 향을 낼 수 있다. 불편하여 나라와 나라 사이가 지금보다 멀었던 옛날, 어렵사리 구한 식물의 향을 좀 더 오래 즐기려 만들어진 향신료는 그래서인지 이름부터 이국적인 맛이 느껴지고 평범하던 음식은 그 향기 하나로 색다른 음식이 된다. 의약품이 귀했던 고대에는 향신료가 약초처럼 쓰였다. 향신료의 역할은 식욕을 돋우는 역할 이외에도 악취 제거나 소화촉진 등을 들 수 있다. 중세유럽 십자군 원정을 계기로 더욱 널리 퍼져나가 15세기경에 이르러서는 쌀이나 은, 상아 등과의 무역이 가능했을 정도로 가치가 높았다. 바스쿠 다가마와 콜럼버스가 인도를 찾아 항해에 나선 이유는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향신료는 여러 가지 종류가 많지만, 개인적으로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겨자 소스다. 냉면을 먹을 때 빼놓지 않는 양념이 바로 겨자다. 맛있는 냉면의 조건은 깊은 맛이 나는 육수겠지만, 사실 톡 쏘는 맛의 겨자 때문에 냉면을 즐겨 먹는다. 생선회를 먹을 때도 겨자가 빠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간장에 겨자를 섞어 먹는데 나는 그렇게 먹지 않는다. 생선회를 아예 겨자에 바로 찍어서 먹는다. 다른 사람에 비하면 음식에 겨자를 많이 찍는 편이다. 코에서 톡 쏘는 느낌이 들고, 입과 코안에 감도는 매운 기운이 눈동자로 올라와야 한다. 그러면 얼굴은 약간 붉어지고, 눈에 눈물이 살짝 나오려고 한다. 눈, 코, 입 전체로 매운맛이 확 올라왔다면 겨자의 맛을 제대로 느꼈다고 볼 수 있다. 겨자의 맛에 중독된 탓에 음식을 겨자에 찍어 먹기보다는 아예 젓가락으로 겨자를 떠서 먹는다. 옆 사람이 보기에는 매운 소스를 아무렇지 않게 먹는 내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한다. 매운 음식을 지나치게 먹으면 장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 나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적당한 양을 먹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한 번 길들인 입맛, 한 번에 바꾸기 참 쉽지 않다. 겨자를 먹어야 스트레스가 풀리고 마음속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하다. 나는 비강(콧구멍 안)이 좁은 편인 데다가 비염 증세가 약간 있어서 콧속으로 숨을 쉬는 게 조금 답답하게 느낀다. 이럴 땐 겨자를 먹어줘야 한다. 톡 쏘는 기운이 비강에 가득 차면 콧속의 답답함이 조금이나마 잊힌다. 다른 사람들을 잘 모를 거다. 겨자가 얼마나 매력 있는 향신료인지를. 지금까지 나처럼 겨자의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겨자 맛이 왜 좋은지를 설명해줘도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일본 요리계의 전설 로산진은 겨자의 우수성을 알싸한 맛과 향기에서 찾는다. 그는 맵지 않은 서양 겨자를 귀하게 여기는 일본인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마도 여기서 로산진이 언급하는 서양 겨자가 노란 빛깔이 나는 머스터드소스일 가능성이 있다. 로산진은 우리에게 ‘와사비’ 또는 ‘고추냉이’로 알려진 일본 겨자가 최고라고 치켜세운다. (‘와사비’는 일본말이므로, ‘고추냉이’라고 쓰는 것이 낫다) 그러면서 일본 겨자를 비프스테이크에 곁들여 먹어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다. 겨자 마니아로서 로산진의 주장에 동의한다. 겨자에 찍은 족발이 맛있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 것이고, 삼겹살에도 잘 어울린다. 사실 나도 머스터드소스를 겨자만큼이나 좋아하지 않는다. 머스터드소스도 겨자의 열매나 씨로 만드는 향신료라서 톡 쏘는 맛이 남아 있으나 매운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모든 음식에 겨자를 발라 먹는 것을 좋아했다. 시간표처럼 철저하게 규칙적으로 살았던 칸트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겨자를 휘저었다고 한다.

 

겨자에 대한 사랑은 절대로 변함이 없다. 맛이 너무 강해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지만, 겨자를 적당하게 먹으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겨자가 건강에 좋다고 설명해도 사람들이 통 믿지 않으니 참. 겨자는 몸이 찬 사람에게 좋다. 나도 몸이 쉽게 차는 체질인데 겨자를 먹으면 몸에 열이 올라와서 혈액 순환이 잘 도는 것 같다. 그 대신 몸에 열이 많은 체질의 사람은 겨자를 자주 먹어선 안 된다. 조금은 의외의 상식인데, 겨자에 천식 증상을 완화해주는 셀레늄과 마그네슘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이제는 울면서 겨자를 먹지 말고, 건강을 위해서 웃으면서 겨자를 살짝 찍어 먹어보자.

 

 

매워도 조금 찍어 먹어요. 그러면 건강에 좋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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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8-23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프와 삼겹살을 고추냉이와 함께 먹어도 색다른 맛일 것 같아요. ^^

cyrus 2015-08-24 18:21   좋아요 0 | URL
‘쌈장+돼지고기’ 조합도 좋지만, 자주 먹으면 쌈장의 짠맛이 질려요. ^^

에이바 2015-08-2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시를 좋아하는 건 고추냉이의 공이 팔할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회로 먹죠. 초장에 찍어서... 머스타드 종류는 다 괜찮아요. 그 중에서는 톡 쏘는 맛이 있는 디종 머스타드가 좋아요. 허니 머스타드는 별로고요.

cyrus 2015-08-24 18:22   좋아요 0 | URL
제가 소스의 종류와 맛에 대해서 잘 몰라요. 디종 머스타드는 처음 들어봅니다. 머스타드 소스도 종류별로 있는가 보죠? ^^

stella.K 2015-08-24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자가 확실히 묘한 매력이 있기는 하지.
잘못 먹으면 머리통 한쪽이 튀어오르는 총알을 맞은 느낌이랄까?ㅋ
그래도 먹을 기회가 그다지 많지가 않아.
나는 겨자 보다 하니 머스터드를 더 선호하는 편이긴 해.
언젠가 삶은 계란에 양파를 으깨 머스터드로 버무려 소를 넣은 모닝빵을
먹은 적이 있는데 맛있더군. 그후 몇번 만들어 먹은 적도 있는데
오늘은 왠지 당기는군.ㅋㅋ

cyrus 2015-08-24 18:25   좋아요 0 | URL
총알 맞은 느낌, 표현이 아주 좋은데요. ㅎㅎㅎ 저는 허니 머스타드를 먹을 기회가 많지 않아요. 치킨을 머스타드에 찍어 먹어도 되는데, 이상하게 소스를 찾지 않아요.

해피북 2015-08-24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자를 몸에도 양보해보세요 ㅋ
겨자를 푼 물에 동일한 양의 밀가루를 넣고 반죽해준후 거즈에 발라 덮으면 천연파스 가 된답니다 주위할점은 너무 많이 바르면 화상 위험있대요ㅋㅂㅋ

겨자하면 뭐니뭐니 해도 간장에 겨자를 살짝 풀고 쫄깃하고 탱글한 회 한점 찍어 먹는게 최고인거 같은데 키루스님은 겨자에 바로 찍어 드시는군요 ㅋ 저도 나중에 도전~~~을!

cyrus 2015-08-24 18:27   좋아요 0 | URL
지난번에 종편 채널에서 하는 건강 관련 방송에서 겨자찜질을 본 적이 있어요. 그 방송을 본 어머니가 제가 겨자를 많이 먹어도 아무 말도 안 해요. ^^
 
로산진의 요리왕국
기타오지 로산진 지음, 안은미 옮김 / 정은문고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요즘 누구를 만나든지 주된 화젯거리는 음식과 요리다. 방송에서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가 대세다. 차려주는 밥상만 받던 남자들이 요리를 취미로 삼기 시작했다.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사랑받는 남편의 조건으로 요리를 꼽는 것이 이젠 특이한 일이 아니다. 음식은 더 이상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닌, 눈과 혀로 즐기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맛있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굳이 미식가에게만 국한된 즐거움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즐길 수 있는 인생의 낙이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는 활동을 통해 특별한 미학적 즐거움을 얻듯 미식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술품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 화가의 화풍을 연구하고 공부하듯이 진정한 맛을 즐기기 위해서도 다양한 경험뿐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다. 물론 굳이 음식 만드는 일에 이렇게 꼼꼼하게 준비할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겠다.

 

요리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작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떤 음식재료가 좋은지 어떤 메뉴가 어떠한 그릇에 담겨야 하는지 등을 경험을 통해 배워야 한다. 요리에 대한 열정, 인내와 재능도 필요하다. 이 세 가지 자격을 모두 갖춘 진정한 요리사가 바로 기타오지 로산진이다. 일부 독자에게는 아직 생소한 이름이다. 일본의 요리 만화 <맛의 달인>의 주인공인 가이바라 유잔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로산진은 요리를 맛으로만 즐기던 개념에서 벗어나 음식, 그릇, 장식 등이 하나의 통합된 예술로 태어나야 한다는 신념을 지닌 요리사다. 그는 일본 요리뿐만 아니라 일본의 도예를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음식가 멋드러지게 돋보여주는 효과를 그릇에서 찾은 것이다.

 

《로산진의 요리왕국》(정은문고, 2015)는 로산진의 요리 철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막상 그의 글을 읽어보면 요리에 대한 지론이 지극히 평범하다. 일단 그는 재료를 중시한다. 이것은 모든 요리의 기본이다. 이를 간과하여 원가를 줄이기 위해 나쁜 재료를 사용한다면 아무리 정성 들인 요리라도 그것은 음식이 아니다. 로산진은 신선한 재료를 고르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재료를 소홀히 여기는 요리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의 미각에 무신경하다. 로산진이 들려주는 일화 한 꼭지는 기본이 충실하지 못한 이류 요리사의 예를 잘 보여준다. 로산진은 일류 요리사를 구하는 면접시험에서 지원자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무엇을 좋아하느냐?’ 아주 간단한 질문에 지원자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재료를 좋아한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답하는 지원자는 절대로 로산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로산진은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가 왜 맛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 맛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흔히 일류 요리사가 되려면 처음에 하는 일이 손에 칼을 쥐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담을 접시를 닦는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일류 요리사를 위해 허드렛일을 하면서 경험을 쌓기도 한다. 밥 짓는 일은 음식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일류 요리사는 밥 짓기를 자신의 조수 요리사에게 맡겨도 된다. 일류 요리사는 중요한 음식을 잘 만들면 된다. 그런데 로산진은 밥 짓기를 신경 쓰지 않는 요리사의 행태를 지적한다. 이런 요리사는 자신의 명성이 밥 짓는 일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밥 짓기도 요리다. 로산진은 자신의 요리 철학을 고수하면서도,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서 권위적이지 않다. 다만, 화학조미료나 설탕 사용을 조금이라도 허용하지 않으며 일본의 국민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초밥을 ‘남자의 먹을거리’로 비유한 대목에서 그의 단호한 고집스러움과 남성우월주의가 드러나기도 한다. 잔반도 음식재료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 위생 문제를 생각하면 전적으로 동의하기가 힘들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500cc 맥주잔에 따른 맥주가 맛있다고 생각한다. 500cc 맥주잔으로 맥주를 마셔야 청량감이 더 느껴진다고 한다. 사실 종이컵으로 맥주를 마시면 확실히 맥주 특유의 시원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같은 음식도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로산진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릇이 본래 가지고 있는 음식의 맛을 살리는 셈이다. 《로산진의 요리왕국》을 읽으면서 한편으로는 과연 모든 음식에 점수를 매길 수 있는 ‘절대미각’이 존재할까 하는 의심을 하여본다. 아무리 산해진미를 먹어도 당대에 심오한 음식 맛을 제대로 깨닫기는 어렵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미각과 맛난 요리를 맘껏 먹을 수 있는 환경이 받쳐주어야 음식에 대한 눈이 뜨인다. 그만큼 예민한 미각을 갖기란 어렵다. 나는 로산진이 절대미각의 소유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미각에만 의지하는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촉각, 후각, 청각, 시각이 미각을 받쳐주고 적절히 조화시킨 음식에서 진정한 맛을 느껴볼 수 있다고 믿는다. 어찌 보면 미각 하나만으로 맛을 감지하기에는 인간의 감각은 그리 날카로운 것이 아니라는 한계를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모 일간지에 실린 《로산진의 요리왕국》 서평을 우연히 봤는데 제목이 이렇다. ‘한국에 슈가보이 백종원이 있다면 일본엔 이 사람이 있다!’ 셰프테이너 열풍에 맞춰 나온 책이라고 해서 이런 식으로 제목을 쓰면 곤란하다. 서평 제목이 마치 로산진과 백종원의 요리 철학이 비슷하다는 의미로 보일 수 있다. 로산진이 살아 있다면 설탕을 첨가하는 백종원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서평 제목만 보고 로산진이 백종원처럼 훈훈한(?) 성품을 지닌 요리사로 착각하는 독자가 없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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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8-22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lf 먹을거면 마요네즈 왜 먹는지 이해 안 된다는 백주부 요리 썩 반기지 않지만, 원재료의 맛만이 중요하다는 식의 요리도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cyrus 2015-08-23 16:26   좋아요 1 | URL
사실 맛으로만 음식을 좋다 나쁘다고 구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누군가가 맛있는 음식이 내 입맛에는 별로일 수 있고, 반대로 맛없는 음식이 누군가에는 맛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만병통치약 2015-08-22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 아이들이 절대미각에 가까와요. 아이들이 다 그런지도 모르겠지만요. 식당가서 조금 맛이 없다 싶으면 절대 손도 안대요. 어디가서 밥먹을 때 아이들먹는거 보고 따라 먹으면 정확합니다. ㅋㅋ

cyrus 2015-08-23 16:27   좋아요 0 | URL
만병통치약님의 아이들이 먹을 만한 맛있는 음식을 찾아주는 내비게이션 같습니다. ㅎㅎㅎ

지금행복하자 2015-08-23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맛의 달인은 정말 열심히 봤었는데.. 재료에 대한 열정은 맛의 달인에서도 충분히 알수 있었어요. 그릇에 얽인 일화도 기억나고 우메보시도 기억나네요. 요리의 재료에 대한 이해가 요리의 시작이라는 말. 공감가네요~
요즘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이상한 조합의 요리들이 좀 많아 당황스러워서요~ ㅎㅎ

cyrus 2015-08-23 16:30   좋아요 0 | URL
맹꽁치라는 별명이 붙게 된 셰프처럼 경험과 실력이 아직 부족한 상태에서 방송에 나온다면 평생 욕을 안고 가야합니다. 셰프테이너 열풍 때문에 그들이 만드는 퓨전 요리가 무조건 좋다고 보는 사람이 있어요.


stella.K 2015-08-23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이 있었구나. 모르면 정말 일본의 백종원은 아닐까 싶은데
옳은 지적같다.
나는 최근까지도 요리엔 관심도 재주도 없는 줄 알았는데
엄마 간호하면서 새삼 관심을 갖게 되더라구.
그전까진 주로 난 설거지 담당이었거든.
게다가 여기저기 요리쿡 방송이 나가고 있으니,,,ㅋ
이책 읽어보고 싶어지는군.^^

cyrus 2015-08-23 16:32   좋아요 0 | URL
글의 시대적 배경이 1950년대라서 요즘 시대와 맞지 않은 내용도 있고, 국내 독자에게 생소한 일본 음식 재료가 나와요. 이 책에 일본 음식 재료 사진이 없어서 아쉬워요. 독자의 호불호가 엇갈리는 책일 겁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 현대 의학이 놓치고 있는 삶의 마지막 순간, KBS 선정 도서
아툴 가완디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떻게 늙어 가야 하는지 아는 것이야말로

삶이라는 위대한 예술에서 가장 어려운 장이다.”

 

(앙리 프레데릭 아미엘)

 

 

 

흰머리는 천천히 피어난다. 드문드문 새치에서 시작해 희끗희끗 귀밑을 파고들다 슬금슬금 정수리로 올라가며 중원을 장악한다. 은빛 중년이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인정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탓일 게다. 인생 후반전에 들어서는 중년은 생일이 더 이상 반갑지 않다. 삶도 계절처럼 순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든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영원히 살아갈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이런 사실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불로초를 구하던 진시황의 고사부터 최근 눈부시게 발전해가고 있는 유전자 연구나 생명복제에 이르기까지 이 모두가 생명의 영속성을 갈구하는 데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노화현상이 두드러지게 되고 특히 갱년기에 들어서면 누구나 신체변화를 절감하게 된다.

 

노령인구의 부양을 경제·사회적 차원에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대응법이라고 할 수 없다. 노년에 닥친 개인이 인생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인가 하는, 인생론적 차원의 접근법 또한 필요하다. 특히 ‘노인’은 있어도 ‘원로’는 찾아보기 힘든 사회가 된 지 오래인 우리 현실에서 잘 늙어가는 지혜를 터득하는 일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아툴 가완디의 《어떻게 죽을 것인가》(부키, 2015)는 이런 우리에게 적지 않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가완디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늙음’과 ‘죽음’이다. 이렇게 둘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먼저 늙음에 대해 말한다. 노화에 성공한 사람은 편안하게 죽음을 맞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생에 대한 미련 때문에 불안과 공포 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일단 노인 소리를 듣기 시작할 때는 자신이 노년기에 접어들었고 멀지 않아 죽음에 도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여한 없는 일생을 살아왔다면 죽음을 준비하는 문제는 비교적 쉽게 풀리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노화는 항시 보편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생명체에게 있어서 다른 특별한 과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숙명인 죽음이 죄가 아니듯, 늙어감 역시 잘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노년의 위축되고 초라한 모습을 편안한 심정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죽음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한 절대 고독이므로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이기가 전혀 쉽지는 않다. 현대 의학이 발달한 덕택에 수명을 오래 연장할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되었다. 현대 의학은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는 데 거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러나 가완디는 의학적 싸움에 고통스러워하는 환자와 가족들을 지켜보면서 ‘오래 사는 것이 축복이다’라는 희망적 기대에 의문을 가진다.

 

암 투병 중인 저자의 아버지는 고통스러운 방사선 치료를 받았지만, 고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생명유지만을 위한 치료를 멈추고 호스피스를 택한 그는 거의 마지막까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의사들은 노화과정을 자연스러운 삶 일부로 보기보다 ‘질환’으로 취급해 치료하려고만 한다. 고작 한 달을 더 살기 위해 환자는 병실에서 죽음과 고통스러운 전쟁을 선택한다. 수술에 성공하더라도 남은 생만 비참해질 뿐이다. 의사는 환자를 살릴 방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생을 어떻게 보낼 것이며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의료인 입장에서는 죽음을 돕는 일보다 개인의 우선순위를 도출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더 어렵다. 의사인 가완디는 의학적 충동과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하는 상황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고 고백한다. 환자의 고통과 죽는 순간을 가까이 보는 의사의 고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년의 가장 큰 고통은 고독과 소외이다. 자식이 보험이 아닌 세상이 되어 이제는 생존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는 노인들이 많아졌다. 이러한 노인들은 세상과 시대를 원망하고 자학하며 후회와 절망 등 해로운 감정으로 노화를 가속하고 있다. 환자나 주변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는 노화가 슬프고 믿어지지 않아 피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성장과 노화는 한 뿌리에서 시작된 것, 우리는 그것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모르는 척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서 읽어낸 노년은 그래서 참 아프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신의 두려움과 희망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선택해야 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서 자신의 가치와 믿음을 찾고, 연장된 생애를 보다 의미 있고 소중하게 인식하여 심리적 성숙 안정을 꾀할 수 있어야 한다. 부담을 주는 값비싼 수술로 생명을 조금 늘리기보다는 환자를 잘 보살피는 일이 중요하다. 생명을 연장하려는 인간의 욕심은 죽음을 유예하는 일일 뿐이다. 우리 모두 공평하게 한 살씩 나누어 가질 것이다. 주름은 더 깊어질 것이고, 몸은 더 약해질 것이다. 그 주름과 그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다. 늙음을 인정하기로 한다. 이렇게 책 한 권에서 나는 배운다. 늙음과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지금을 잘 살아내기 위한 제일 나은 방법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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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5-08-22 0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몇년전 아버지의 죽음을 격은 뒤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암투병 8개월만에 가셨는데.. 가시고 남은 자리가 깨끗한걸 보고.. 아버지가 당신의 죽음을 예감하셨구나. 그래서 정리를 다 하셨구나~ 라는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자식된 입장에서는 서운하고 안타깝지만 생을 마감하는 당사자에게는 꼭 필요한 시간일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마지막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져계시다는 느낌보다 이제 편안해지겠구나하는 안도의 표정이 아버지의 얼굴에서도 읽혔었어요. 저희는 생명연장안한다고 동의서에 사인해서
당신 가는 길을 중환자실이 아닌 일반병실에서 그래도 자연스럽게 맞이할수 있었던것도 다행이라 싶구요.
아직 젊을때 여유가 있을때 죽음을 충분히 생각하고 잘 죽고싶다는 생각해요. 아이들하고도 이렇게 죽고싶다고 이야기도 나누고요~~
잘 늙고 잘 죽어야할텐데 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 더 공 들여야할것 같아요~~

cyrus 2015-08-22 21:25   좋아요 0 | URL
행복님의 선택 덕분에 아버지께서 아주 편안하게 좋은 곳을 가실 수 있게 되었군요. 죽음을 생각한다는 게 어찌 보면 어둡게 보일 수 있지만, 언제 다가올지 모를 일이기에 여생을 허투루 보내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