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겁게 떠나간 여름이 남기고 간 깃털일까,

 

아니면 한 번에 9만 리나 날아다닌다는 전설의 붕새(一)가 남긴 거대한 깃털일까.

 

 

- cyrus 2012.10. 29  어느 가을날 -

 

 

 

 

 

 

 

 

 

 

 

 

 

 

 

 

 

 

 

 

 

 * 붕새 (一) : 『장자』〈소요유〉편에 나오는 상상 속의 새. 한번에 9만 리를 날아오르는데 날개는 구름처럼 하늘을 뒤덮고 파도가 3천 리에 이를 정도로 큰 바람을 일으킬 정도로 거대한 크기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정신세계를 마음껏 누리는 위대한 존재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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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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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계속 싸우는 이유는 국가가 조장하는 빈곤과 오랜 독재와 군국주의가 가져온

인간 파멸에 끝없이 희생되는 것에 지쳤기 때문이다. (프란츠 파농, p 531)

 

 

 

 

 

  제3세계 국가들은 지금까지도 못 사는걸까?

 

내가 다니는 학교 행정학과 3학년 전공수업 중에 ‘발전행정론’이라는 과목이 있다. 이번 2학기에 개설되어 있는 과목으로 수학하고 있다. 발전행정론은 발전도상국의 국가발전을 위한 전략과, 국가발전 추진 체제로서의 행정 체제의 발전 문제를 연구하는 행정학의 한 분야이다. 발전도상국의 발전 전략을 거시적으로 다루는 과목이라 오늘날 행정학과 과목 중에 구식에 속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에 크게 유행하다가 1970년대에 사라진 반짝 이론인 것이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이번에 신청한 전공수업 중에서 제일 관심 있게 공부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금도 발전도상국들의 빈곤은 4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니까. 과거에 ‘제3세계’라고 불리던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은 선진국들에 비해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채 가난에 허덕이고 있다. 사실 과목 내용 자체만 흥미로워서 공부하는 건 아니다. 발전행정론 수업이 토론방식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 과목을 안 좋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토론 방식은 한 주마다 교과서 한 챕터를 주제로 삼아 학생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토론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찬반 의견을 나누어 서로 팽팽하게 맞서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준비한 의견들을 서로 교환, 비교해나가면서 질문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몇 주 전에 했던 토론 주제는 ‘제3세계 국가의 저발전 원인과 대책’이었다.

 

25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각자 제3세계 국가의 저발전 원인에 대해서 의견을 말했는데, 다양한 내용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떤 학생은 기후가 열악해서 원조를 받아도 발전할 수 있는 환경적 여건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일부 제3세계 국가에서는 여전히 선진국의 경제 원조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렇듯, 제3세계가 발전하지 못하는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했다.

 

학생들의 토론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학자들 사이에서도 저발전의 원인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1960년대에 잠시 유행했던 발전행정론 역시 개발도상국으로 부상한 제3세계의 저발전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만들어진 학문 분야이다. 발전행정론의 유행이 시들어지면 또 다른 학자들은 저발전의 원인을 분석한 이론들을 가지고 나온다. 이처럼 시대가 바뀔수록 이들 국가의 저발전 원인을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진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이 이에 대한 답을 내놓으려고 하고 있지만,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 경제제도의 방향이 국가 발전을 좌우한다 

 

 

 

 

 

착취적 경제제도(북한)과 포용적 경제제도(남한)가 만들어 낸 빈곤과 발전의 결과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공동으로 저술한 경제학자 대런 애시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이 우리 발전행정론 토론을 듣고 있었다면 아마도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학생들이 주장한 기후 원인론, 원조 부족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주장하는 세계 저발전의 원인은 간명하다. 지구촌 빈부 격차는 지리나 문화 탓이 아니다. 정치, 경제 제도가 얼마나 포용적(inclusive)이냐, 착취(extractive)하느냐가 결정적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가 남북한의 차이를 비교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남북한이 이처럼 경제적으로 다른 길을 걸은 연원은 분명하다. 남한에서는 경제적 삶을 지배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규칙인 경제제도가 국민의 저축과 투자, 혁신을 보상해준 반면, 북한은 그렇지 못했다. 양측 모두 중앙집권화의 역사를 통해 성장이 가능했지만, 원래 그런 권력이란 좋게도 쓰이지만 나쁘게도 쓰이는 법이다. 남한은 박정희 정권하에서 수출과 혁신을 장려하고 공공재를 제공했지만, 북한은 탄압과 통제를 위한 권력을 휘둘렀을 뿐이다" (p 15)

 

 

남북한이 보여주는 차이에는 전 세계 부국과 빈국의 차이를 통해 일반 이론의 모든 요소를 설명할 수 있다. 저발전의 원인은 바로 '제도'에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포용적인 제도'는 발전 성공으로 이끌며 모두를 끌어안고 잘살게 만든다. 반면 지배계층만을 위한 수탈적이고 '착취적인 제도'는 정체와 빈곤을 가져온다. 사유재산이 보장되고 법체제가 공평무사하게 시행되고, 누구나 교환 및 계약이 가능한 경쟁 환경을 보장하는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는 포용적인 제도가 발달되어 있다.

 

착취적인 제도에 의한 국가의 경제는 곧 패망으로 가는 길이며 저발전이라는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착쥐적인 제도에 의한 국가 실패를 지도자의 무지 탓으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무조건 옳은 말은 아니다. 소수 엘리트가 수탈적 제도를 선택하는 건 경제발전으로 가는 길을 몰라서가 아니라 포용적 제도가 불러올 창조적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창조적 파괴가 불러올 결과는 부와 소득분배에 그치지 않는다. 정치 권력도 분산시키며 다원화된 사회로 변모된다. 이렇게 되면 수탈적 체제의 지배층이 인민을 통제하기는 더 이상 어렵다. 이러한 착취적 제도에 의한 저발전 상태는 현재 북한의 김정은 체제뿐만 아니라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고대 로마, 구 소련, 해방 이후 제3세계 국가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가난한 국가라고 여겨지고 있는 저발전 상태의 일부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도 군부, 관료 독재 체제에 의한 착취적 제도가 작동되고 있다.

 

 

 

 참을 수 없는 예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진부한 이론 

 

책의 공동 저자는 경제 발전에 지리적 위치를 강조하는 제레드 다이아몬드, 문화적 차이를 중시하는 막스 베버, 선진국 경제학자들이 잘 가르쳐 주기만 하면 가난한 나라도 부자 나라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책의 뒷표지 심지어 책 마지막 장까지 이 책에 대한 수많은 찬사들을 할애하고 있다. (심지어 자신의 이론을 비난한 제레드 다이아몬드까지도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하지만 예비 노벨경제학상이라 불리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은 경제학자의 주장이라고해서 기존 학계를 뒤흔들 신선한 이론이 아닌 것을 감안하면 과찬이다. 사실 이 한 권의 책에 대한 수많은 찬사들은 몰이해를 넘어서 참을 수가 없이 요란스럽다. 

 

애쓰모글루의 주장은 '미시적 행위의 거시적 결과'라는 시각에서 설명한느 방법론적 개인주의를 전제하고 있다. 즉, 착취적 제도를 만들어 내는 국가의 지배자, 개인의 행위에서 저발전 현상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이미 1960년대 미국의 경제학자 맨커 올슨(1932~1998)에 의해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얼핏 고전적 엘리트 이론을 연상케 한다. 다음 책 본문에서 인용한 구절을 보자.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권력을 가진 자들이 빈곤을 조장하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지도자가 실수와 무지에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이라는 뜻이다. (p 109~110) 

 

 

19세기 말에 등장한 고전적 엘리트 이론은 사회는 권력을 가진 소수 엘리트와 가지지 못한 일반대중으로 구별되며, 소수의 동질적이고 폐쇄적인 정치지도자(엘리트)가 다수의 일반대중을 지배한다고 본다. 소수 엘리트 체제는 자율적이고 다른 계층에 책임을 지지 않으며, 사회전체나 일반대중의 이익보다는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정책을 결정한다. 대표적인 고전적 엘리트 이론은 파레토의 법칙(20대 80 법칙)과 미헬스의 과두제 철칙 등이 있다. 그 중에 과두제 철칙은 애스모글루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다. 소수의 사람이나 집단이 사회의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고 행사하는 정치 체제는 민주적, 다원주의적 체제와 구분된다. 이렇듯 애스모글루는 고전적 엘리트 이론을 경제 체제와 접목해서 저발전의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을 뿐이다.

 

 

 

 '포용적인, 너무나 포용적인' 제도의 결과는 시장실패

 

저발전 원인을 딱 한 가지 관점으로 정의하고 그것을 통해 저발전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도 일부 국가의 저발전 현상은 학자들의 명철한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애스모글루는 저발전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국가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은 착취적 제도를 포용적 제도로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제시했으나 저자가 간과하고 있는 허점이 몇 가지 있다.

 

사유재산이 보장된다는 것은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한다. 결국 오늘날의 '신자유주의' 경제제도와 비슷하다. 다만 포용적 제도와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신자유주의는 공정한 경쟁와 부의 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며 그로 인한 국가 내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포용적'과 거리가 먼 문제점을 낳고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경제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국가의 통제로부터 자유로워진 기업들은 자본을 독점화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 역시 '포용적 제도'의 취지랑 다르다.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고, 소득 분배가 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시장실패'로 이어지며 저발전의 원인이 된다 .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 정부 시절의 경제발전을 '포용적 제도'의 사례로 보기에는 어색한 점이 있다. 제3세계 국가에서는 경제사회의 원초적 자본축적의 결핍을 원인으로 경제발전을 주도하게 되고, 국가주도 산업화는 권위주의적 지도자의 출현을 조장하기 쉽다. 정치발전(민주주의)와 경제발전(자본주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하지만 양자의 과제가 동시에 진행, 달성된다는 건 쉽지 않다. 국가의 지도자들은 산업화의 효율적인 추진과 발전위기의 극복을 명분으로 대부분 권위주의적 리더십을 구사하며, 특히 민중부문에 대해서는 자본주의의 논리를 내세워 노동자들을 정치적, 경제적으로 배제시키는 정책을 실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통치제도는 민주적 정당성의 위기를 자초하여 민중저항을 유발하고, 이 와중에 경제적 측면의 효율성과 효과성마저 감퇴되면 저발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의 박정희 정부의 경제발전은 '예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특수적 사례인 셈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애스모글루는 한국 박정희 정부의 발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만 하는 게 아니라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취하고 있다.   

 

"한국의 사례처럼 착취적 정치제도에도 불구하고 경제제도가 포용적 성향을 띤 덕분에 성장이 가능하다 해도, 경제제도가 더 착취적으로 바뀌어 성장이 멈춰 버릴 위험이 상존한다."  (p 144)

 

 

 

부록을 제외한 본문만 해도 600여 페이지가 넘는 책에 한국의 사례가 소개되었다고 해서 그리 기뻐할 만한 일은 아니다.한국에 대한 평가는 여기저기 단편적으로 드러날 뿐이니까. 그리고 오늘날 한국의 사회와 경제는 포용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오는 권력 실세와 엘리트 관료의 부패는 아직 착취적 제도의 잔재가 남아 있다는 증거다. 점점 부의 양극화를 초래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문제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실자본주의의 폐해를 그대로 방치해둔다면 진정한 창조적 파괴를 물론, 고성장에 의한 국가 발전이 이루어질 수 없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가장 성공적으로 고성장한 한국은 또 다른 도약을 준비해야 한다. 실패한 국가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정치와 경제 체제의 포용성을 높이기 위한 청사진이 나와야 한다. 창의와 혁신을 북돋울 포용적인 제도의 정착이 중요하지만, 냉혈한과 경쟁만이 남아 있는 이 척박한 한국 사회 지도에 '포용'을 그려 넣을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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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리오 영감의 비극

 

 

 

 

 

 

 

 

 

 

 

 

 

 

 

 

 

 

 

고리오 영감은 백만장자였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그는 두 딸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베푼다. 아내의 죽음 이후 고리오 영감은 두 딸의 성장과 교육에 무서운 집착을 보이고 결혼 적령기가 되자 좋은 곳에 시집을 보낸다. 큰딸은 귀족, 둘째 딸은 부유한 은행가와 결혼한다. 이후 일을 그만 두고 고리오는 두 딸의 결혼 지참금을 대주느라 자신은 빈털터리가 되어 병들어 죽는다. 돈에 의한 비정상적인 부성애는 딸들을 불효녀로 만들고 아버지를 비참하게 죽게 만든다. 두 딸의 삶 역시 고리오 영감의 부성매만큼이나 비정상적이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돈'이 인간을 지배하고 가족 관계마저도 왜곡시킨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위기의 베이비부머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견인한 지금의 50대들, 이른바 베이비부머로 이름 붙여진 부모 세대들이 본격적인 은퇴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조부모와 자식을 부양하며 세대 간의 버팀목 역할을 했지만 정작 본인을 위한 노후준비는 소홀했다. 한국판 ‘고리오 영감’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결혼문화연구소에 의하면 대한민국 평균 결혼비용이 1999년에 비해 2.7배 증가한 2억 808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결혼 관련 국민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경기 불황 속에서도 호화결혼식과 자녀 집 장만 유습은 중산층과 서민 가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결혼을 앞두는 자식들보다 더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부모들이다. 자식들의 눈에는 부모들 입장은 안중에도 없고 남들은 다 그렇게 하는데, 나만 왜 그렇게 해 주지 않느냐며 대든다. 자식 전세자금이라도 마련해주고 나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고 늙고 병들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을 할 여유마저 없다.

 

이들은 노후 자금을 교육비에 사용할 정도로 재테크 목적의 최우선 순위로 자녀 교육을 꼽는다. 이렇다보니 우리 사회 경제활동의 중추를 담당하는 베이비부머 절반은 은퇴 준비를 시작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은퇴준비가 되지 못해 홀가분한 퇴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회 잔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들은 고령화 사회가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외환위기 이후 사회구조가 급변하는 가운데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심각한 노후소득보장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소비 수준이 잔뜩 높아진 베이비붐 세대들은 그동안 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의 축적에 소홀했으며, 이 상태로는 자신의 긴 노후생활을 대비하기에 절대 역부족이다. 주로 자신의 주택 형태로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최근 주택에 대한 수요 감소와 이에 따른 가격 하락 현상에 직면하여 앞으로 재무적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이나 현행 퇴직연금 및 개인연금 등 사적연금 시스템에 의한 노후소득보장 기능 또한 절대적으로 미흡하다.

 

대부분의 40대는 부모로부터 풍요로운 자산을 물려받지도 못했고, 민주적 토양에서 20~30대를 보내지도 못했다. 나라에서든 기업에서든 가정에서든 중심역할을 해야 하는 연령대지만 수년째 계속되는 경제침체로 스스로도 보전하지 못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정부나 정치권, 기업의 정책에서 40대는 열외대상인 듯하다. 무상보육, 청년실업, 퇴직자, 장애인, 여성에 대한 대책은 있어도 40대를 위한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시대 부모님들의 슬픈 자화상, 베이비부머

 

우리 부모들의 자식 사랑은 유별나다. 맹목적인 사랑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먼지까지도 털어내 보태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젊은 시절, 살림은 어려워도 자식만큼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살았지만 지금도 멋대로 자란 우리들을 위해 늙어서도 막일을 서슴지 않는다. 오히려 가진 게 넉넉지 않은 것이 부모 가슴에 한으로 남는다.

 

산업화 역군으로 앞만 보고 달렸던 베이비부머들이 가정에서 왕따나 다름없는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직장에서 물러나면 따뜻한 가정이 자신을 맞아주리라 기대하지만 막상 가정으로 돌아오니 자신을 대하는 자녀들의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하다. 자녀에게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했건만 이들은 위로와 사랑은커녕 외면하기 일쑤다. 딸이나 아들은 오히려 사랑을 언제 베풀었느냐는 듯 아버지를 퉁명하게 대하곤 한다. 실제로 60대 남성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 요즘 막 은퇴하고 있는 베이비부머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린 자식 더러운 똥오줌도 / 그대 마음 하나도 거리낌 없는데 / 늙으신 부모님 눈물과 침 떨어지면 / 그대는 도리어 미워하고 싫어하네 / 그대의 몸뚱어리 어디에서 나왔는가 / 아버님의 정기와 어머님의 피라네 / 그대여 늙어가는 부모님을 공경하오 / 젊으실 때 그대 위해 살과 뼈가 닳으셨소.”

 

 

《명심보감》에 수록된 ‘팔반가팔수’(八反歌八首) 중 제3절의 내용이다. 이것이 바로 자식을 향한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다. 사랑스러운 자식을 위해 늙어서도 고생하지만 자식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대신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우리 자식들은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 한 세상을 살아왔는데 이젠 자식들 기반까지 닦아줘야 하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그나마 믿었던 자식들마저 부모의 심정을 외면하고 있다. 자기 밖에 모르는 다 큰 자식에 의해서 지금도 대한민국 부모들의 살과 뼈는 닳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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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10.8  대구대학교 안철수 강연회 단상

 

 

 

 

 

 

 

 

 

 

 

 

 

 

 

 

 

 

 

 

 

 

 

 

과거 대선 후보자들은 국민들을 위한 ‘착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착한’ 공약들을 내세웠다. 대선의 새 얼굴인 안철수 후보의 정치 비전은 그동안 출마해 온 대선 후보들이 내세웠던 ‘착한’ 공약들과 비슷하다. 그래서 구체적 방안이 없는 원론적인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안 후보의 정치 비전을 아마추어 보듯이 그리 가볍게 볼 내용은 아니다. 안 후보는 국민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내세우는 정책 공약을 경계해야 한다며 자신의 정치 비전을 비판하는 입장을 반박했다. 그는 정책 공약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것들을 토대로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자신의 정치 비전을 ‘개혁’이라는 단어를 붙여 소개하고 있다. ‘개혁’(Reform)의 의미를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쇄신’과 혼동하기도 한다. 사전적 의미는 같지만 학문상 의미로 보면 차이가 있다. 사회과학에서의 ‘개혁’은 현재보다 더 나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기존의 제도나 기구를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을 말한다. 반면, ‘쇄신’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제도나 기구를 새롭게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는 ‘정책 변동’을, 후자는 ‘신규 정책 형성’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안 후보의 정치 개혁은 문제점 있는 구 정치 제도 및 정책을 사회 발전에 적합하도록 재정비, 점검한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안 후보는 정책 문제와 관련하여 'PDS'을 강조했다. PDS란 'Plan-Do-See'의 약자로 기획의 3단계 절차를 말한다. 정책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 먼저 목표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Plan) 난 뒤, 구체적인 내용을 실행한다(Do). 마지막에는 정책 실행에 대한 평가(See)를 통해 향후보완대책을 수립한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정책들 중에는 평가 단계를 꼼꼼하게 실행된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안 후보 역시 정책 실패의 반복이 이어지는 문제점을 평가 단계의 부재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정책이 순조롭게 잘 실행되고 있는지, 아니면 문제점이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정책을 만드는 정치가가 아니다. 바로 정책 형성의 참여자이자 정책의 수혜자인 우리 국민들이다.

 

“민주주의란 다수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의 지지로부터 형성된 권력이 견제 받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본질이다"

 

안 후보는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말을 인용하면서 올바른 민주주의의 모습을 강조했다. 이 말을 역으로 표현하자면 지도자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국민의 적극적인 견제와 지지가 필요하며 이것 또한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정치와 정책 형성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참여는 곧 우리가 원하는 정책 탄생으로 귀결된다.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간에 국민은 정치와 정책에 대한 관심의 끈을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된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정의가 구현된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온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저절로 우리 곁에 오는 것도 아니다. 투표 참여 의무와 권리를 지니고 있는 우리 국민, 즉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야 할 우리 대학생들의 이성으로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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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10-1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요즘 안철수 교수님이 무척 바쁘십니당^^
 

 

 

 

 

 

 

 

 

 

 

 

 

 

 

 

 

 

 

 

이번 학기 시간표는 특이하다. 전공인 행정학과 수업만 듣는게 아니라 타과 전공 수업도 듣게 되었다. 그런데 복수전공인 경영학과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행정학과 학생이 잘 신청하지 않는 수업을 듣고 있다. 그것이 바로 회화과 전공 수업인 '서양미술사'다. 교양 수업이 아니다. 실제 3학점 회화과 2학년 전공필수 과목이다. 대학 졸업하기 전까지 인문학에 가까운 수업 한 번이라도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그 꿈(?)이 서양미술 과목을 공부하는 것으로 실현된 것이다. 사실 회화과 수업을 신청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서양미술을 확실하게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공부 없이 이것저것 책을 읽어가면서 독학 아닌 독학을 하다보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술사조의 범위가 좁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애초에 흥미가 없었던 경영학과 수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별천지나 다름없는 회화과 전공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었기에 강의 듣는데 별 불편함은 없다. 게다가 회화과 특성상 강의실에 여학생이 많다보니 오히려 이런 강의 분위기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공부 의욕이 더 넘친다고 해야 되나...?

 

그리고 서양미술사 과제도 마음에 든다. 특정 서양 미술 사조의 특징에 대해서 논하면 되는 건데, 그냥 단순히 서술하는 게 아니라 특정 주제를 정해서 독창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첫 번째 과제가 중세미술의 특징에 대해서 조사, 작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종교미술에 가장 많이 다루는 '수태고지'를 중심으로 중세미술 양식의 각 특징을 정리해봤다.    

 

 

 

 

 수태고지(受胎告知) 도상의 의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수태고지」1472~1475년경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리라” (「누가복음」 1장 26~38절)

 

수태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는 『신약성서』「누가복음」 1장 26~38절을 바탕으로 한다. 하느님의 사자(使者)인 대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임신을 알리는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이것을 '처녀수태'라고 말한다. 기독교 미술의 오랜 주제 중 하나로써 수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다.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과 비잔틴 미술에서는 우물가의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와 외경(外經)으로 전해지는 실 잣는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의 두 가지 형식이 별도로 다루어졌으나, 그 후 고딕 미술에서는 독창적인 형식이 나타났다. 명상 중인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나타나는 장면이다. 이때 마리아는 대개 서 있거나 앉았거나 무릎을 꿇고 있다. 천사는 보통 가브리엘 한 사람만을 그리고 있으나 2∼3명의 천사를 함께 그리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하느님의 사자로서 성령의 비둘기를 그리는 경우도 있다. 또 천사는 백합꽃을 들고 있는 때가 많은데, 이 꽃은 하얗고 암수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마리아의 처녀성을 상징한다.

 

 

 

 수태고지 도상으로 살펴보는 중세미술의 특징

 

 

 (1) 비잔틴 미술 (Byzantine art)

 

 

 

 

 

 

 

 

 

 

 

 

 

 

 

 

 

 

 

 

 

작자 미상, 이콘화「수태고지」1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한 330년부터 시작되어 터키의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된 1453년까지 동방 기독교 사회에서 전개된 미술 양식이다. 비잔틴 회화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아름다움을 배제한 종교적 색채이다. 봉건 영주들을 위한 세속적인 그림 등 비종교적인 미술도 있었지만, 이는 기독교 미술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성경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과 자유보다는 정통 교리와 교회의 강령을 표현하는 데 충실하였다. 비잔틴 미술의 화가들은 자연을 똑같이 그리거나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성서의 내용과 종교적 가르침을 미술의 언어로써 가르치고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2) 로마네스크 미술 (Rpmanesque art)

 

 

 

 

 

 

 

 

 

 

 

 

 

 

 

    

 

 

(左) 『수녀원장 메셰데의 히타의 성복음집』중 수태고지, 1020년경

(右) 프레스코화 「수태고지」 (물렛가락을 든 마리아), 12세기 중엽

 

4세기에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면서, 동로마에서는 비잔틴 미술이 독자적으로 발달하였으나 서유럽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인하여 멸망하고 세력권은 분할되었다. 이에 따라 서유럽에서는 예술이 한동안 암흑기를 겪었으나, 11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도 비잔틴 미술의 전형적인 특징인 그림을 통한 교의 해설, 즉 '그림으로 보는 성서'로서의 성격이 확립하게 된다. 비잔틴 회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양식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고 전반적으로는 사실에 구애받지 않고 강한 색채와 힘 있는 묘선을 구사하여 형태에 있어서 강렬한 표현력을 주고 있다.『수녀원장 메셰데의 히타의 성복음집』에 실린 수태고지 삽화는 유려한 선 묘사와 활기 있는 채색에 특색이 있다. 12세기 중엽, 카탈루냐 지방에서 그려진 수태고지 프레스코화 속 인물들은 전체와의 조화를 꾀하여 신장, 왜곡 등의 변형이 가해져 있다. 

 

 

 

 (3) 고딕 미술 (Gorhic art)

 

 

 

 

 

 

 

 

 

 

 

 

 

 

 

 

 

 

 

 

 

 

시모네 마르티니「수태고지」1333년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수태고지」 12세기 중엽

 

 

 

고딕 미술은 12세기 후반부터 15세기 말까지, 서유럽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로마네스크 미술의 발달의 결과로 형성되었으면서도 많은 점에서 로마네스크 미술과는 대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12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회화, 건축에 로마네스크 성격이 남아 있었을 정도로 과도기적 성향을 나타냈다.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에는 흘러내리는 의상의 부드러운 곡선과 가느다란 몸매의 미묘한 우아함이 표현되었다. 이전의 비잔틴, 로마네스크 회화 양식과 새로운 표현방법이 어떻게 절충되어 효과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본격적인 고딕 미술은 12세기 말부터 약 1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이전의 비잔틴, 로마네스크 회화와 마찬가지로 고딕 미술도 신학적 상징의 해석을 중요시했지만 거기에 화려한 색채를 통한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성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특히 고딕 건축을 대표하는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유명하다. 색채 대비의 아름다움에, 투과의 영롱함을 결부시켜 어두운 성당 안에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과 빛을 통해 화려하면서도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중세미술의 재발견

 

중세미술은 성경 속 이야기와 같은 상징을 담은 작품만 제작된 기독교 미술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성화만 기독교 미술로 선을 그으면 표현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이는 성도들끼리 교감하자는 것이다. 성화는 비잔틴 양식부터 고딕 양식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았다. 화가들이 성서 속 장면을 재현해 신의 섭리를 시각적인 언어로 보여줘 감동을 줬다. 당시 성화는 신을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그래서 다른 회화사조에 비해 중세미술의 가치는 저평가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중세미술도 다른 회화 양식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시대를 거듭할수록 기독교적 원칙에 바탕을 둔 상징성을 중시하면서도 외래양식을 혼합하여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는 독창적인 표현으로 발전하였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이제 중세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구상, 입체, 미적 가치 등 형식과 내용에 제한을 두지 말고 폭넓은 이해로 중세 미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세 미술의 특징은 기독교적 윤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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