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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자유 - 해직기자 김종철의 젊은이를 위한 한국 현대언론사
김종철 지음 / 시사IN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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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방진 신문팔이

 

 

 

 

 

 

 

우리는 누구나 녀석을 알고 있었다. 녀석은 정말 이상한 신문팔이였다. “동아일보요, 서울신문이요, 중앙일보요, 민국일보요, 내일 아침 한국이요, 내일 아침 조선이요, 경향신문 있습니다. 신아일보 있습니다.” (238쪽)

 

 

 

이상한 신문팔이 소년은 매일 저녁 9시쯤 좌석 버스로 서대문을 지날 때면 각종 신문을 외쳐댄다. 비좁은 시내버스를 비집고 올라와서도 정작 신문을 파는 데는 정신을 쓰지 않는 듯이 보인다. 그는 신문을 파는 일보다는 자신이 외쳐대는 대사를 즐기면서 그것 때문에 웃음을 참지 못해 하는 건방진 신문팔이 소년이었다. 잠깐 버스가 서 있는 동안에 신문을 팔면서도 서두르지 않고 여유 만만하게 외쳐대는 그 목소리와 느긋하면서도 일정하게 이어졌다 끊어지는 대사가 특이했다. 그 자신 그런 대사를 즐기고 있음이 틀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본 사람이 있으니 말이다.

 

지난 가을 추석날 저녁. 어떤 사내가 밤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날은 걸어서 광화문에서 서대문을 걸어가게 되었다. 문득 버스를 보낸 소년이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달이 비친 밤하늘을 쳐다보며 중얼거리는 것을 사내가 엿들었다. 버스에서 외쳐대는 소리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추석날 저녁 이후 며칠 뒤부터는 그 소년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소년이 버스를 놓쳤거나 아니면 감기라도 걸려 못 나오는 것일까? 그런데 10여 일이 지나도 소년의 모습을 목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년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잠바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고 예의 웃음기를 잃지는 않았으나 무엇인지 허전한 표정을 지으며 버스 창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옆구리에는 신문 뭉치가 들려 있지 않았다. 신문도 팔지 않으면서 왜 버스 정류소에서 배회하고 있는 것인가.

 

사내 하나가 광화문에서 서대문까지 걸어서 가다가 그 소년을 만났다. 둘이 대면한 것이다. 사내가 소년에게 신문을 팔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소년은 민국일보라는 신문사가 폐간되어 버리는 바람에 동아, 서울, 중앙, 민국일보라고 외칠 때 리듬에 맞춰 부르는데, 민국 일보가 없어져서 어색해 버린다는 거였다. 그 소년은 민국일보가 폐간되자 신문을 팔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소년은 신문 파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민국일보를 뺀 채 다시 외치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신문을 팔 것이라고 했다.

 

“말하나마나지요. 신문을 팔아야지요. 그렇지만 아직 소리가 그전처럼 신이 나질 않아요. 민국일보가 다시 나와 준다면 좋겠지만......” (247쪽)

 

 

소년이 다시 신문을 파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연습이 잘 안 되는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도록 소년은 나타나지 않았고, 민국일보는 다시 복간되지도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권력의 앞잡이가 된 신문들

 

이청준의 단편소설 <건방진 신문팔이>가 발표된 해는 1974년. 이때는 한국 언론의 암흑기였다. 유신 정권의 통제 속에 공정한 보도를 해야 할 신문은 강제적으로 폐간되었다. 민국일보처럼 정권에 밉보인 끝에 폐간하는 신문이 많았다. 일부 신문은 시퍼런 권력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서 그들의 앞잡이 역할을 했다. 권력의 힘을 믿고 폭력의 자유를 선택한 것이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만큼 민족 정론지를 자처한다. 자신들이 일제에 항거했으며,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 불씨를 지폈고, 민주화 이후에는 권력 감시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불행하게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이런 일방적인 주장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특히 젊은이들은 이들 거대 신문사들이 어떤 치욕스러운 역사를 감추고 있는지 짐작도 하지 못한다.

 

사실 역사를 돌아보면 한국 언론은 이미 일제 강점기부터 폭력의 자유를 마음껏 누려왔다. 강자인 일본 제국주의와 군사 독재에 언론의 자유를 포기하고 약자인 민중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유를 누렸다.

 

 

 

 

 

 

 

동아일보는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을 자신들이 항일 민족지였다는 주장의 근거로 내세운다. 1936년 8월 10일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를 지워서 게재한 곳은 몽양 여운형 선생이 사장으로 있었던 조선중앙일보였다. 그러나 그때는 인쇄 품질이 좋지 않아 총독부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리고 11일 뒤 동아일보에도 일장기가 지워진 사진이 게재된다. 이길용 기자가 경영진 몰래 편집해서 올린 사진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사장이었던 송진우는 이길용 기자를 불러다 “성냥개비로 고루거각을 태워버렸다”고 호통을 쳤다. 이사장 인촌 김성수와 고위 간부들은 사진 한 장 때문에 신문사가 무기정간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전전긍긍했다.

 

 

보전(보성전문-고려대의 전신) 이사실에서 이 사실을 전화로 연락 받은 인촌은 앞이 캄캄해지는 것을 느꼈다. (…) 급히 동아일보사로 오는 자동차 안에서 인촌은 히노마루(일장기) 말소는 몰지각한 소행이라고 노여움과 개탄을 금할 수 없었다. (33쪽)

 

 

손기정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운 사건은 동아일보보다 조선중앙일보가 먼저라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정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의 뇌리 속에는 '동아일보가 먼저'라는 생각이 우세하다. 왜냐하면 동아일보가 창간기념일 등을 통해 그동안 '일장기 말소 사건'을 자신들의 최대 업적인 양 대대적으로 미화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1922년에 물산장려운동을 홍보했을 정도로 민족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다. 이로 인해 조선총독부의 감시를 받았고, 수시로 폐간을 당하여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러나 1930년대 후기부터 친일 행적을 보이기 시작했다.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김성수는 학병을 모집하는 글을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쓰는 한편, 전쟁물자 지원에도 앞장서는 친일 활동을 하였다.

 

조선일보는 1937년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을 ‘아군’이나 ‘황군’으로 불렀다. 그해 12월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1면 머리기사로 ‘아군의 승승장구’를 대서특필했다. 친일신문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일제 기관지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폐간년도인 1940년까지 조선일보의 신년호 1면은 대부분 일본왕의 신년 하례행사와 총독의 연두사로 채웠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친일 행각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놀라운 건 해방 이후 이들의 생존 방식이다. 신탁통치에 대한 찬반 논란이 거셌던 1945년 12월, 동아일보는 “소련은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한다”는 왜곡 보도를 내보낸다. 실제로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신탁통치를 주장한 쪽은 미국이고 소련은 시기가 짧을수록 좋다는 의견을 냈다. 동아일보의 보도는 명백한 오보였지만 그 여파는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동아일보의 보도 이후 신탁통치에 찬성한 세력은 좌익으로 몰리고 친일파와 미국을 상전으로 모시는 외세의존 세력들이 오히려 지배계층을 재구성했다. 다수 국민들의 반식민지․반외세 감정을 포착해 ‘신탁통치는 또 다른 식민통치’라는 선전구호 아래 국내의 자주·민주세력을 매도하고 친일파를 다시 등장하게 만들었다.

 

민족 자주의식을 말살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데 앞장섰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해방 이후에 신문 보도를 통한 이념 갈등을 고착화시켰다. 일제의 앞잡이들이 해방 이후 미군의 앞잡이가 됐던 것처럼 이 신문들은 좌익을 적으로 내몰면서 일제 시절에 쌓은 권력 기반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민족지를 참칭하는 것은 참으로 후안무치한 일이다.

 

 

 

 언론탄압 속 한 줄기 희망, 동아투위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는 반공을 명분으로 친일파 공화국의 탄생에 주도적으로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군부의 5·16 군사 쿠데타를 적극 지지했으며 유신독재를 노골적으로 찬양했다. 여기에 중앙일보도 찬양 일색의 기사와 논조를 보내기 시작했다. 정권의 폭압에 눈 감고 인권유린을 외면하고 역사를 왜곡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폭도들의 반란으로 매도했고 전두환 정권이 내려 보낸 보도지침을 충실하게 따랐다.

 

박정희 정권이 구사한 가장 반민주적인 통치행위는 언론의 비판에 재갈을 물린 공작이었다. 유신독재 아래서는 수시로 긴급조치를 선포해 특정 이슈에 대한 언론의 비판적 보도를 금지했다. 언론 공작 중 가장 심한 것은 비판적 언론인의 강제해직과 광고탄압이었다. 특정 언론사가 눈 밖에 나면 그 광고주들을 겁박해서 수입원을 틀어막았다. 국가안보를 위해 설치한 중앙정보부 같은 국가정보기관이 광고주인 기업인을 겁박하는 야만적 공작을 담당했다.

 

1974년 젊은 동아일보 기자들 중심으로 10.24 자유언론 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중앙정보부는 이 신문에 광고를 게재해 온 기업들을 압박했다. 동아일보는 곧바로 광고 해약사태에 직면했다. 신문은 광고면을 백지로 둔 채 인쇄됐다. 정권 측의 광고탄압이 알려지자 전국적으로 성원광고들이 답지했다. 그러나 독자들의 성원광고는 지속적으로 장기화할 수는 없다. 그것으로 신문사의 광고 수입을 대체하기엔 턱 없이 모자랐다.

 

당시만 해도 동아일보사의 총수입은 대체로 구독료와 광고료가 반반 정도여서 지금에 비하면 광고 수입의 비중이 그다지 높지는 않았다. 그러나 경영상 광고료 수입은 매우 중요했다. 광고 수입의 숨통을 조이는 공작으로 신문사 사주 측은 결국 비판적 기자들을 해직시키면서 중앙정보부와 타협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동아일보사는 130여명의 기자를 해직시켰다.

 

당시 동아일보에서 거리로 쫓겨난 기자들이 결성한 동아일보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는 언론 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 사회문화, 학계 및 교육 분야에서 실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1977~78년 엄혹하던 유신독재 말기에도 이들은 ‘동아투위소식’이라는 제3의 언론을 만들어 배포했다. 제도권 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반독재 시위와 인권탄압 사건들을 게재했다. 정권 측이 가만 둘리 없었고 동아투위는 위원장과 총무 상임위원 전원이 불법 연행, 구속, 기소당했다. 동아투위의 등장은 한국의 언론사와 민주화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으며, 제도언론에 맞서 언론의 사명을 일깨워주었다.

 

 

 

 진보 신문도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동아일보, 한겨레신문 전직 기자였으며 현재 통아투위 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원로 언론인 김종철은 ‘조중동’으로 대표되는 거대 신문사들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공개한다. 그러나 진보 진영에 위치하는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역시 연륜이 느껴지는 원로 언론인의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이들 역시 공정한 언론의 사명과 어긋나는 행보를 보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은 이승만 정권 시절 조선일보, 동아일보보다 가장 많은 발행부수를 기록한 중도 노선 신문이었다. 이승만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보도를 많이 내다가 잠시 폐간되기도 했다. 4월 혁명 이후 출범한 장면 내각 정권 시절에 복간되었다. 그러나 거대한 권력의 대세 앞에서 공정성과 중립성을 그대로 지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경향신문도 5.16 군사 쿠데타를 찬양하고 한때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장면 내각을 비판하는 논조를 펼쳤다.

 

한국 언론 보도의 가장 큰 문제점을 두 가지를 꼽자면 이념에 치우친 편향적인 논조를 펼친다거나 특정인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킬 수 있는 자극적인 상업주의적 보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박연차 게이트 사건에 조중동 보수 언론과 경향, 한겨레 등 진보 언론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인신공격성 보도를 내놓았다. 그랬다가 노 전 대통령 사망 이후 보수, 진보 언론은 추모 보도를 내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추모 열기에 보수, 진보 언론이 합세했다. 노 전 대통령이 죽기 전까지만 해도 ‘노무현 죽이기’에 나섰던 언론이 ‘노무현 살리기’로 돌변한 것이다.

 

 

 

 

 ♣ 힘있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신문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최근 종편채널 JTBC는 가장 영향력 있고 신뢰도 높은 손석희 보도담당 사장을 앵커로 내세워 사실·공정·균형·품위를 강조하는 뉴스의 시작을 알렸다. 종편채널에 재벌 기업들이 주주로 참여한 사실을 본다면 방송의 공정성을 기대하기 힘든 구조다. 과연 ‘언론-기업’으로 연결된 침묵의 카르텔을 JTBC가 깰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힘 있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뉴스’뿐만 아니라 신문도 나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과 대자본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공정한 사실을 보도할 수 있는 자유언론의 가치가 확립되어야 한다.

 

필화사건으로 동아일보사에서 해직당한 천관우 선생은 권력 앞에서 공정의 정도를 상실하고 무기력해지는 언론계를 ‘연탄가스 중독’의 비극이라고 표현했다. 연탄, 그리고 대놓고 기사 검열에 나서는 중앙정보부 기관원이 사라진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한국 신문은 왜 ‘힘 있는 사람이 두려워하는 신문’이 되지 못하는가?

 

힘없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폭력의 자유를 누리던 시대는 지났다. 한국 언론이 ‘보이지 않는 힘’을 무서워한다면 균형성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보수와 진보 매체는 종합적인 시각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다. 언론 보도가 위축된다면 공론의 장이 축소될 수 있다. 수용자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진실성이 있는 보도를 위해 검증의 저널리즘을 실천한다면 언론 보도의 신뢰를 높일 수 있다.

 

한국 현대사와 함께했던 언론의 옹졸한 행보가 남긴 흔적을 보면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조중동에 대한 분노에만 그쳤다면 이 책을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다. ‘힘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신문’은 있어도 힘 있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은 훌륭한 언론인들도 있었다. 그들의 업적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역사 앞에서 대하는 우리들의 올바른 자세이다. 특히 언론인을 꿈꾸는 젊은이라면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의 책은 필독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프랑스의 원수 샤를 드골은 반민족적 행위를 일삼은 독일 나치 협력자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기 시작했다. 이때 가장 먼저 법의 심판을 받은 피고인들은 언론인들이었다고 한다.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하던 시기 때 독일을 찬양하고 연합군과 드골 세력을 비난했던 기록의 증거들 때문에 ‘히틀러의 나팔수’들은 처벌을 받게 되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이 있다. 문장의 힘은 무력(武力)을 무력(無力)화시킨다. 하지만 펜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자신의 심장을 날카롭게 찌를 수 있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될 수 있다. 진짜 언론인은 힘 있는 사람을 찬양하는 건방진 ‘나팔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힘 있는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정론직필의 ‘명사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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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노동 - 노동은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상품으로 만드는가
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 이가람 옮김 / 이매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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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웃으세요, 웃으면서 일하세요!

 

“일곱 살짜리 애를 업고서 눈길을 헤쳐 가며 공장에 데려가고, 데려오고 했어요. 아이는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일했죠. 애가 기계 옆에 서서 일하는 동안 제가 꿇어앉아 음식을 떠먹인 적도 많았어요. 아이가 기계 옆을 떠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기계를 멈출 수도 없었으니까요.” 이 아이는, 증기기관에 석탄과 물을 공급하듯 일하는 동안 식사를 공급받는 ‘노동의 도구’였다. 벽지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는 어느 아이의 어머니가 1863년 영국 아동고용위원회에 제출한 증언을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인용한 것이다.

 

<자본론>이 출간된 지 백여 년이 지난 뒤 미국 델타 항공의 승무원 연수센터 강당이다. “여러분, 근무할 때는 진심을 담아 웃어야 합니다. 미소는 여러분의 가장 큰 자산입니다. 나가서 그 자산을 활용하세요. 웃으세요. 진심을 담아서 웃는 겁니다. 진심으로 활짝 웃으세요.” 강의를 하는 조종사는 미소를 승무원의 자산이라고 말했다. 얼핏 보기에는 공장 노동에 시달리는 19세기의 어린이와 20세기의 승무원을 둘러싼 환경의 차이는 아주 큰 것 같다. 그러나 이 둘의 차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지 못한 공통점에 이르게 된다. 승무원의 경우 서비스를 제공할 때의 감정 상태도 서비스의 한 부분이다. 그들은 항상 웃으면서 일을 해야 된다.

 

 

 

 

 ♣ 정신을 병들게 만드는 감정노동

 

미국의 사회학자 혹실드는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기분을 좋게 하려고 자신의 감정을 고무시키거나 억제하는 것을 ‘감정노동’이라고 불렀다. 그는 미국 항공회사의 승무원과 추심원을 대상으로 감정노동에 대한 연구를 하였으며, 타인의 기분을 좋게 하는 승무원이나 타인을 불쾌하게 하고 위축되게 만드는 추심원이 하는 일을 똑같이 상대방의 감정을 변화시키기 위해 수행하는 노동이라고 보았다. 항공 승무원과 추심원으로 대표되는 감정노동의 양극단을 묘사한 이유는, 이 두 극단 사이에 놓인 직업들에서 요구하는 감정적인 업무의 엄청난 다양성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미국 전체 노동자 중 3분의 1 이상이 감정노동을 포함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인정받지도 못하고, 존중받지도 못하며, 고용주들이 업무상 스트레스의 원인으로 고려한 적도 거의 없다시피 한 업무 차원을 경험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감정노동자 덕분에 공적 생활 속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날마다 완전히 모르거나 또는 거의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믿고 즐겁게 거래할 수 있는 것이다. 혹실드는 기업의 세계에 전면과 후면이 있다고 본다. 전면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후면은 그 서비스의 내용을 추심한다. 사회복지사, 주간 탁아 보모, 의사, 변호사는 비공식적인 직업 규범과 고객의 기대를 고려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감정노동을 감독한다. 감정노동에도 성별 차이가 있다. 남성이 종사하는 직업 중 감정노동을 포함하는 직업은 4분의 1 정도이지만, 여성이 종사하는 직업에서는 그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지속적인 감정의 억제, 감정 관리는 어떤 결과를 낳을까?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거짓된 자아를 지속적으로 연출하는 것은? 혹실드는 자아도취적 거짓 자아를 발전시키는 것이 남성에게 더 큰 위험이라면, 이타주의적 거짓 자아를 발전시키는 것은 여성에게 더 큰 위험이 된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의 대가로 기업은 이윤을 거둬들이지만, 상업적 목적을 위해 내면의 실제 감정과 달리 특정한 감정을 표출하는 업무를 오래도록 하게 되면 노동자들은 자기 소원, 소외, 진정성 상실 같은 결과를 초래한다고 한다.

 

 

 

 

 ♣ 감정노동자, 함부로 대하지 말자

 

과잉 친철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럽다. 대형마트에 들어서면 여성 점원은 예의 ‘고객님 어서 오십시오’라며 허리를 90도로 꺾는다. 일순간 고객은 혹시 아는 사람인지 눈길을 주게 된다. 인사와 말투는 깍듯하고, 미소 역시 안면 신경을 마비시킬 정도로 얼굴에서 지워질 줄 모른다. 처음 어리둥절했던 심사는 이내 어색하고 불편함으로 바뀐다. 고객과 점원 사이, 무언가 설명하기 힘든 감정의 충돌과 부조화가 일어난 것이다.

 

감정노동자들의 감정적·정서적 소진은 일차적으로 대기업들의 고객제일주의 탓이다. ‘고객은 왕’이란 슬로건에 맞추자면 접객 종사자들은 노예 아닌 노예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상품의 질로 승부하는 고도 자본주의 시장에서 이러한 웃음과 친절 마케팅은 시대착오적인 게 분명한데, 여전히 상품의 조악함과 경영진의 무능을 엄폐하는 유효한 수단이 되는 서글픈 현실이다.고객은 또 어떠한가. 정말로 ‘왕’으로서 손색이 없는가. 종업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듯, 고압적인 자세로 억지를 부리고 함부로 하대를 하며 스스로 못난 꼴을 보인 ‘진상’ 손님은 아니었는지, 반성은 하되 아니라고 자신하기는 어렵다. 기업주와 함께, 우리 모두가 감정노동자의 노동강도를 참을 수 없는 수위로 높인 주범인 것이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다. 가족 관계에서도 어린아이가 아니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다 드러내지는 않는다. 부모 또는 자식으로서 감정 관리를 하고 기본예절을 지킬 때 화목한 가정이 유지된다. 물론 감정노동자와 고객의 관계는 경제적 거래 관계라는 조건이 있지만, 거래에 합당한 만큼 주고받는 것이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겠는가? 아무리 돈을 준다 한들 거기에 욕설을 듣고 뺨 맞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지는 않을 터. 둘러보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 중에도 감정노동에 종사하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감정노동과 그 치유에도 관심을 가져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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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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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두발로 걷기 시작한 것이 1백만 년 전이다. 그런 긴 세월을 뒤로하고 불과 수십 년 만에 인간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인 직립보행을 잊고, 속도문명의 경쟁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래서 요즘 청소년들은 어딘가를 걸어서 가려는 생각을 거의 안 하는 듯하다. 그들에게 이동은 자신의 두 다리를 움직여 공간을 주파하는 일이 아니라, 운송수단에 실려 수송되는 걸 뜻한다. 앉아 있거나 서 있기만 해도 자동차,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가 우리를 태우고 다니는 세상이 아닌가. 여기에 일찍부터 길들여져 있는 10대들은 운송수단을 타러 갈 때 걷는 것도 힘들어한다. 그마저 기꺼이 자식의 운전수가 되어 주시는 부모를 둔 10대들은 하루에 단 몇 분도 걷지 않는다. 생각의 속도와 영혼의 속도가 우리 몸의 공명(共鳴)을 따라가지 못하면, 삶이 척박해지고 황폐해진다. 세상이, 우리사회가 참 어지럽고 복잡하다. 오만가지 생각과 상상에 머릿속이 흐트러진 실타래처럼 어수선하다. 이럴 땐 무조건 걷는 게 최고다. 산이든 천변이든 동네길이든 걸어야 한다.

 

인생행로라는 말이 있듯이, 산다는 것은 길을 따라 걷는 행위다. 걷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온갖 근심걱정과 성급함을 잠시 멈추게 한다. 비록 간단한 동네 산책이라 하더라도, 걷다보면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주위의 나무나 돌 혹은 풀꽃 같은 사물이 눈에 잘 보인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오감이 절로 열려, 자연이 전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한다.걷는다는 것은 모든 주도권이 기계에서 인간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스스로 몸을 옮기는 내 다리의 주인으로서, 생각의 주인이 되는 즐거움이다. 아스팔트길은 느낌도 없고 이야기도 없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과는 전혀 달리, 발을 놀려 땅을 걷는 사람은 세상 앞에 벌거벗은 존재로 돌아와 나를 만나는 느낌을 갖고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히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 주지만, 그와 달리 걷기는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목적 없이 그냥 걷는다.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 존재를 에돌아가서 길의 종착점에 더 확실하게 이르기 위하여 걷는다.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과 얼굴들을 발견하고 몸을 통해서 무궁무진한 감각과 관능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기 위하여 걷는다.”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중에서)

 

브르통에게 걷기는 자기 몸의 감각을 깨우고 단련시키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이다. 기차나 자동차에 의지하여 수동적으로 존재하던 몸이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세계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우린 천천히 혹은 빠르게 걸으며 자기 몸의 고유한 리듬을 발견하게 된다. 걸음으로 몸의 상태를 살필 수도 있다.

 

몸이 건강하면 발걸음도 가볍고 경쾌하다. 걸을 때 비틀거리거나 몸을 가누지 못하면 몸에 이상이 왔다는 증거다. 숨을 가다듬으며 오직 걸음걸이에만 집중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멈추고, 생각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본다. 낯선 사람, 집들, 골목길들을 발견하고 불어오는 바람, 들려오는 소리들을 감각하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그렇게 발끝부터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며 온몸으로 세계와 마주하는 행위가 바로 걷기다.

 

걷는 것은 분명히 건강에 이롭다. 그렇지만 건강을 위해 걷는 것만은 아니다. 길을 걸을 때 생각들이 가장 잘 떠오른다. 사색하기에 좋은 시간은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때가 아니라 두리번거리며 걸을 때다. <걷기 예찬>을 읽다 보면 보름 동안 도보여행을 한 청년 루소의 고백을 듣게 된다. ‘나는 한 번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며 이렇게 뿌듯하게 존재하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중략) 나는 그때 혼자 걸어가면서 했던 생각들과 존재들 속에서만큼 나 자신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저자는 걷는 행위에 필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 둘이 얼마만큼의 양이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걷기도 하는 그 고즈넉한 즐거움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뭔가에 쫓기듯 바삐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렇다면 우리 일상에 걷기가 사라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걷기예찬>을 읽다보면 여유가 없어 걸을 수 없다는 핑계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걷는 일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단절하여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에게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일종의 대화이다. 그러므로 걷기 예찬은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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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9-1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언제나 멋진 리뷰시네요^^

cyrus 2013-09-14 00:00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카스피님. 읽으면서 생각난 걸 정리해봤는데, 걷는 걸 무척 좋아해서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

잘잘라 2013-09-13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비가 왔고 오늘도 비 예보가 있는데 지금은 햇빛이 반짝반짝해요. 햇빛 받으러 나가려구요. 님의 리뷰를 읽으니 햇빛 받으며 조금 멀리까지 걷고싶어집니다.

cyrus 2013-09-14 00:01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메리포핀스님! 잘 지내시죠? 아직 여름이 가을이 온다고 해서 시샘을 부리네요. 여기 대구는 어제 비가 왔는데도 덥하고 습하네요. 날씨가 선선해야 걷을 맛이 나는데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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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황금시대 / 제이 하먼 / 어크로스

 

 

벌집에서 영감을 받은 아파트의 발코니, 고래 지느러미를 그대로 베낀 풍력 터빈 회사의 터빈 날. 자연이 가진 놀라운 기술과 오늘의 첨단 과학을 비즈니스와 결합시킨 새로운 패러다임이 소개되어 있다. 자연의 탁월한 과학 원리를 모방한 생체 모방 기술이 기존의 산업에 어떤 자극을 주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기술들은 아직까지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할 정도로 신 분야지만 지구 곳곳에서 시작되는 골드러시를 밝히는 미래 산업으로 각광받을 가능성이 높다.

 

 

 

 

 

 

 

 

 

 

 

 

 

 

 

 

 

 

* 인기 없는 에세이 / 버트런드 러셀 / 함께읽는책

 

 

‘20세기의 볼테르’로 불리는 버트런드 러셀의 이 에세이집은 인기 없는 책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예언과 달리 1950년 출간 즉시 러셀의 책들 가운데 가장 널리 읽힌 책이 됐다. 러셀은 그해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몇 년 전부터 러셀의 책들이 많이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는데 그의 명성을 확고히 해준 대표작이 이제야 나오게 되었다. 반어적인 제목이 독자의 눈길을 끄게 만든다. 러셀의 글은 위트가 넘치지만 그 안에 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엄숙하고 오만한 사람들과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엄숙과 오만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신의 글을 ‘인기 없는 에세이’라고 정했을까? 이 글을 쓰기 전에 이미 가장 저명한 지식인으로 알려진 그는 반어적인 제목을 통해 오만을 스스로 버리고 여전히 엄숙하고 오만한 사람들과 대항하려는 지적 의지가 돋보인다.

 

 

 

 

 

 

 

 

 

 

 

 

 

 

 

 

 

 

 * 기술과 문명 / 루이스 멈퍼드 / 책세상

 

 

루이스 멈퍼드는 미국의 사회학자, 도시학자, 건축사가, 철학자, 문명비평가, 사회운동가로서 제도권의 학적 시스템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연구와 방대한 저작을 통해 독창적인 사상의 지도를 그린 인물이다. 기술의 역사를 문명사적 관점에서 고찰한 우리 시대의 고전이기도 한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기계에 대해 가지는 이 같은 물음에 훌륭한 통찰을 제공한다. ‘문명사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멈퍼드는 균형, 붕괴, 재생이라는 테마를 통해 원기술 시기, 구기술 시기, 신기술 시기로 재구성한 천 년의 역사를 훑어가면서 기계가 물리적 환경 속에서 빚어낸 물질적 변화보다 문화에 미친 정신적 영향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옛 그림을 보는 법 / 허균 / 돌베개

 

 

우리 옛 그림을 모두 13장의 주제로 분류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대표작품을 선별하여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상징의 세계를 풀어냈다. 서점에서 직접 이 책을 훑어봤는데 도록이 꽤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림에 담긴 ‘상징’을 매개로, 우리 옛 미술에 관심은 있으나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몰랐던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우리 그림의 특징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림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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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cene #1  확증 편향

 

 

 

 

 

 

 

 

 

 

 

 

 

 

 

 

 

심리학 용어에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증거나 자료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선택하는 경향을 말한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자신의 의견에 맞도록 왜곡하거나 무시해버린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보거나 듣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확증 편향의 원인은 자기논리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이러한 선입관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새로운 정보나 다른 의견은 틀린 정보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재해석(축소, 왜곡)하는 자기합리화가 발생,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확증 편향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하나의 거대한 집단 사고로 형성하게 되면 사회 갈등을 야기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확증 편향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사회적인 이슈를 하나를 꼽자면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와 인식이다.

 

 

 

 

 Scene #2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진 역사관

 

 

 

 

 

 

 

 

 

 

 

 

 

 

 

 

한국사가 2017학년도부터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된다. 한국사가 대학입학 시험의 독립·필수과목이 되는 것은 24년 만이다. 한국사의 수능 필수화는 일본의 역사왜곡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의 역사인식 수준이 낮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한국인으로서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교육이 필요한 건 자명하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을 겨눈 안중근 의사를 병원에 일하는 의사로 안다거나 ‘3.1절’을 ‘삼점일절’로 읽는 중·고등학생들이 있다면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심각하다. 6.25 전쟁이 몇 년 몇 월 며칠에 발발하는지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대학생도 있다.

 

정부의 한국사 수능 필수화 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도 있는 반면에 부정적인 여론도 있다. 한국사는 암기해야 할 과목이라서 청소년의 학습 부담이 커져 오히려 흥미가 잃을까 우려되기도 하며 평가 위주의 입시 제도를 통한 역사 공부가 과연 역사인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 수능 필수화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신중한 논의가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청소년이 올바른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균형 있고 건전한 역사관이 들어있는 역사 교과서로 배워야 한다. 지난 8월 27일 한국사가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고, 3일 뒤인 8월 31일에 교학사에서 출판한 역사 교과서가 검정을 합격했다. 하지만 야당 및 일부 학계에서는 해당 교과서의 역사 왜곡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번 검정 합격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친일파 인사들에 대한 미화, 군위안부 축소 기술, 식민지근대화론 일부 차용, 이승만 및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화 등으로 일각의 비판을 받고 있다.

 

교과서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적 내용 및 역사관은 뉴라이트의 역사관과 일치하다. 뉴라이트 소속 교과서포럼은 2008년에 기존 역사 교과서의 내용을 문제 삼아 중점적으로 수정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했다. 교과서 검정을 받지 않았으나 편향된 내용 때문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식민지 근대화론 옹호는 물론이요, 일제 강점기 동안의 항일 운동이 우파 위주로 비중이 작게 서술했다. 이승만의 활동을 내세우기 때문에 우파 가운데서도 김구와 안창호를 소박하게 그리거나 일부 폄훼했다는 비판도 있다. 역사학계는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편집자 중, 한국사 전공자는 한명도 없으며 교과서포럼이 일본의 극우 단체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유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기협은 《뉴라이트 비판》에서 뉴라이트 역사관은 학문적으로 매우 부실하며 대안교과서 출판은 정치적 책략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책 제목처럼 김기협은 뉴라이트만 비판하고 있는 건 아니다. 뉴라이트 역사관이 등장하게 된 원인을 한국 사학계의 지배 담론인 ‘(식민지) 수탈론’에서 찾고 있다.

 

식민지 수탈론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한 이후 일본이 조선에서 행한 경제관련 기반 시설이나 정책들은 조선의 행복증진을 위함이 아니라 조선을 키워서 수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반대 입장이라고 보면 된다. 이를 비판하기 위해 나온 역사론이 ‘근대화론’이다. 그러나 수탈론 역시 근대화론 못지않게 역사학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민족주의적 사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의한 피해망상적 정서의 뒷받침도 받아왔다는 문제점이 있다. 김기협은 수탈론자들의 지나친 편향성에 대한 뉴라이트의 지적에 일부 공감하기도 한다. 결국 하나의 역사를 서로 상반된 입장으로 바라보는 뉴라이트와 주류 역사학계는 확증 편향이 만들어 낸 사고의 함정을 피할 수 없다. 편협된 사고의 함정에 빠진 이상 두 진영 간의 대립과 갈등은 장기화될 것이다. 자신에게 익숙하거나 오랫동안 믿고 있는 역사관과 조금 다른 내용에 반감을 형성하고 여기에 이념 대립 같이 더해진다면 ‘보수 대 진보’ 양상으로 싸움판이 더욱 커지게 된다.

 

 

 

 

 Scene #3  콤플렉스가 만든 확증 편향적 역사 인식

 

 

 

 

 

 

 

 

 

 

 

 

 

 

 

 

“일본인들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문화를 무시한다.” (5쪽)

 

유홍준 교수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확증 편향적인 역사 인식의 문제점을 단 한 줄로 제대로 요약했다. 1981년 고고학자 후지마라 신이치가 일으킨 구석기 유물 조작은 일본보다 앞선 한반도 고대 문화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이 만들어 낸 최악의 사건이다. 이 사건 또한 사실을 부정하고 자신(일본 역사학계)에게 유리한, 그것도 거짓된 정보를 자기 합리화하는 확증 편향이 원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일본, 특히 우익은 과거의 역사는 바뀌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신의 눈을 스스로 가리고 왜곡을 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역시 잘못된 역사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앞에서 말한 근대화 수탈론은 일본 강점기 때 받은 피해의식이 개입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근대사 콤플렉스’로 볼 수 있다. 일본의 고대사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으나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문호 개방 덕분에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빠른 근대화 발전을 이룩했다. 과거 일본이나 지금 역사를 왜곡하려는 오늘날 일본의 모습이 혐오스럽다고 해서 그들의 문화마저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역사관이다.

 

한 때 국내 역사학계 내에서 고대 삼국이 일본을 지배했다거나 백제의 한 갈래가 일본을 건설했다는 주장이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주장을 뒷받침만한 확실한 유물이나 사료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역사적 주장은 한반도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일본문화를 무시하는 확증 편향적인 태도로 빠질 우려가 있다. ‘일본의 고대문화는 우리가 만들어준 것’, ‘일본의 천황은 백제 왕의 후손이니까 결국 한반도 사람’이라는 일반화의 오류를 하나의 역사적 통념으로 인식하게 된다.

 

 

 

 Scene #4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확증 편향적 역사관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익숙한 역사만 알려고 하는 확증 편향적 태도는 단순히 편협적인 사고에 갇힌 채 비합리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것 자체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인간 자신은 스스로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편향으로 가득 찬 결정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혼란을 주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오직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다. 자기 생각에 비판적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 집단에서 드러나는 확증 편향은 그냥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심각한 심리적 현상이다.

 

한국사가 필수 과목이 된 이상, 한동안 잠잠했던 역사 교과서 논란이 다시 한 번 점화될 가능성이 높다. 보수 성향의 여당이 집권하고 있는 지금, 뉴라이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자신들이 만든 대안 교과서를 다시 한 번 강조하거나 자신들의 역사관과 일치한 교과서 검정 찬성에 동조할 것이다.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진 역사 싸움에 가장 큰 피해자라면 수험생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수험생들은 공부해야 할 분량이 많아져서 부담스럽고, 교사들은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혼란스럽다. 한 쪽 이념에 치우친 역사를 가르치다가 학부모들로부터 비난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나 역사를 가르치는 역사 선생님이나 신중의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는 많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진 역사를 구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학과(행정학과) 2학년 2학기에 ‘근현대사와 한국정부론’이라는 과목이 개설되어 있는데 나랑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교수님이 강의를 맡게 되었다. 그러자 어제 교수님이 페이스북 메시지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근현대사와 한국정부론>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 현대사 중심으로 가르치면 문제가 될까요?“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서 민감하게 걱정을 하신 거 같았다. 일부 대학 교수는 대놓고 편향적인 역사를 가르쳐서 문제가 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나는 소신 있게 대답했다. 나는 그 분의 지도 역량을 믿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거라 믿고 있다.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교수님, 이번 학기에 2학년 과목인 ‘근현대사와 한국정부론’ 강의를 담당하시는군요. 저는 근현대사 중심으로 가르치는 쪽에 대해서 나쁘지 않게 봅니다. 우리나라 정부 수립 이후부터 현 정부까지를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는 근현대사의 범위라고 정한다면 이것 또한 대학생들이 배워야 할 역사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됐다하더라도 과연 국사 교과서 뒷부분에 있는 현대사를 교사들이 충분히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내용 분량도 그리 많지 않은데다 학기 말 무렵에 배우기 때문에 현대사 학습을 소홀히 여기는 부분이 있거든요. 학습 진도 맞추기에 급급하다보면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현대사는 대학교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우리나라 정부의 정통성, 정부 활동의 업적과 과오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정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대학에서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데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편향적인 역사관 한 쪽으로 기울어진 채 지도하는 것입니다. 좌우 균형 선상의 관점으로 현대사를 가르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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