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1  확증 편향

 

 

 

 

 

 

 

 

 

 

 

 

 

 

 

 

 

심리학 용어에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증거나 자료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선택하는 경향을 말한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과 일치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일치하지 않는 정보는 자신의 의견에 맞도록 왜곡하거나 무시해버린다. 쉽게 말하면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보거나 듣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확증 편향의 원인은 자기논리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선입견 때문이다. 이러한 선입관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새로운 정보나 다른 의견은 틀린 정보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정보를 재해석(축소, 왜곡)하는 자기합리화가 발생, 자신의 편견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확증 편향의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하나의 거대한 집단 사고로 형성하게 되면 사회 갈등을 야기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확증 편향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사회적인 이슈를 하나를 꼽자면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와 인식이다.

 

 

 

 

 Scene #2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진 역사관

 

 

 

 

 

 

 

 

 

 

 

 

 

 

 

 

한국사가 2017학년도부터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된다. 한국사가 대학입학 시험의 독립·필수과목이 되는 것은 24년 만이다. 한국사의 수능 필수화는 일본의 역사왜곡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청소년들의 역사인식 수준이 낮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가 시작됐다. 한국인으로서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 교육이 필요한 건 자명하다.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을 겨눈 안중근 의사를 병원에 일하는 의사로 안다거나 ‘3.1절’을 ‘삼점일절’로 읽는 중·고등학생들이 있다면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심각하다. 6.25 전쟁이 몇 년 몇 월 며칠에 발발하는지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대학생도 있다.

 

정부의 한국사 수능 필수화 도입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도 있는 반면에 부정적인 여론도 있다. 한국사는 암기해야 할 과목이라서 청소년의 학습 부담이 커져 오히려 흥미가 잃을까 우려되기도 하며 평가 위주의 입시 제도를 통한 역사 공부가 과연 역사인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 수능 필수화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신중한 논의가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청소년이 올바른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서는 균형 있고 건전한 역사관이 들어있는 역사 교과서로 배워야 한다. 지난 8월 27일 한국사가 수능 필수 과목으로 지정되고, 3일 뒤인 8월 31일에 교학사에서 출판한 역사 교과서가 검정을 합격했다. 하지만 야당 및 일부 학계에서는 해당 교과서의 역사 왜곡이 심각한 수준이라며 이번 검정 합격을 취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친일파 인사들에 대한 미화, 군위안부 축소 기술, 식민지근대화론 일부 차용, 이승만 및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미화 등으로 일각의 비판을 받고 있다.

 

교과서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적 내용 및 역사관은 뉴라이트의 역사관과 일치하다. 뉴라이트 소속 교과서포럼은 2008년에 기존 역사 교과서의 내용을 문제 삼아 중점적으로 수정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를 출간했다. 교과서 검정을 받지 않았으나 편향된 내용 때문에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식민지 근대화론 옹호는 물론이요, 일제 강점기 동안의 항일 운동이 우파 위주로 비중이 작게 서술했다. 이승만의 활동을 내세우기 때문에 우파 가운데서도 김구와 안창호를 소박하게 그리거나 일부 폄훼했다는 비판도 있다. 역사학계는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편집자 중, 한국사 전공자는 한명도 없으며 교과서포럼이 일본의 극우 단체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과 유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김기협은 《뉴라이트 비판》에서 뉴라이트 역사관은 학문적으로 매우 부실하며 대안교과서 출판은 정치적 책략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책 제목처럼 김기협은 뉴라이트만 비판하고 있는 건 아니다. 뉴라이트 역사관이 등장하게 된 원인을 한국 사학계의 지배 담론인 ‘(식민지) 수탈론’에서 찾고 있다.

 

식민지 수탈론은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 한 이후 일본이 조선에서 행한 경제관련 기반 시설이나 정책들은 조선의 행복증진을 위함이 아니라 조선을 키워서 수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반대 입장이라고 보면 된다. 이를 비판하기 위해 나온 역사론이 ‘근대화론’이다. 그러나 수탈론 역시 근대화론 못지않게 역사학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민족주의적 사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의한 피해망상적 정서의 뒷받침도 받아왔다는 문제점이 있다. 김기협은 수탈론자들의 지나친 편향성에 대한 뉴라이트의 지적에 일부 공감하기도 한다. 결국 하나의 역사를 서로 상반된 입장으로 바라보는 뉴라이트와 주류 역사학계는 확증 편향이 만들어 낸 사고의 함정을 피할 수 없다. 편협된 사고의 함정에 빠진 이상 두 진영 간의 대립과 갈등은 장기화될 것이다. 자신에게 익숙하거나 오랫동안 믿고 있는 역사관과 조금 다른 내용에 반감을 형성하고 여기에 이념 대립 같이 더해진다면 ‘보수 대 진보’ 양상으로 싸움판이 더욱 커지게 된다.

 

 

 

 

 Scene #3  콤플렉스가 만든 확증 편향적 역사 인식

 

 

 

 

 

 

 

 

 

 

 

 

 

 

 

 

“일본인들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문화를 무시한다.” (5쪽)

 

유홍준 교수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확증 편향적인 역사 인식의 문제점을 단 한 줄로 제대로 요약했다. 1981년 고고학자 후지마라 신이치가 일으킨 구석기 유물 조작은 일본보다 앞선 한반도 고대 문화에 대한 일종의 열등감이 만들어 낸 최악의 사건이다. 이 사건 또한 사실을 부정하고 자신(일본 역사학계)에게 유리한, 그것도 거짓된 정보를 자기 합리화하는 확증 편향이 원인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일본, 특히 우익은 과거의 역사는 바뀌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자신의 눈을 스스로 가리고 왜곡을 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역시 잘못된 역사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앞에서 말한 근대화 수탈론은 일본 강점기 때 받은 피해의식이 개입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근대사 콤플렉스’로 볼 수 있다. 일본의 고대사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으나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문호 개방 덕분에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빠른 근대화 발전을 이룩했다. 과거 일본이나 지금 역사를 왜곡하려는 오늘날 일본의 모습이 혐오스럽다고 해서 그들의 문화마저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역사관이다.

 

한 때 국내 역사학계 내에서 고대 삼국이 일본을 지배했다거나 백제의 한 갈래가 일본을 건설했다는 주장이 주목받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주장을 뒷받침만한 확실한 유물이나 사료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이러한 역사적 주장은 한반도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일본문화를 무시하는 확증 편향적인 태도로 빠질 우려가 있다. ‘일본의 고대문화는 우리가 만들어준 것’, ‘일본의 천황은 백제 왕의 후손이니까 결국 한반도 사람’이라는 일반화의 오류를 하나의 역사적 통념으로 인식하게 된다.

 

 

 

 Scene #4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확증 편향적 역사관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익숙한 역사만 알려고 하는 확증 편향적 태도는 단순히 편협적인 사고에 갇힌 채 비합리적인 행동을 보여주는 것 자체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인간 자신은 스스로 논리적이며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편향으로 가득 찬 결정을 선택하게 된다. 이는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에 혼란을 주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다. 오직 ‘내 생각’이 무조건 옳다고 믿는다. 자기 생각에 비판적 의견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회 집단에서 드러나는 확증 편향은 그냥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심각한 심리적 현상이다.

 

한국사가 필수 과목이 된 이상, 한동안 잠잠했던 역사 교과서 논란이 다시 한 번 점화될 가능성이 높다. 보수 성향의 여당이 집권하고 있는 지금, 뉴라이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자신들이 만든 대안 교과서를 다시 한 번 강조하거나 자신들의 역사관과 일치한 교과서 검정 찬성에 동조할 것이다.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진 역사 싸움에 가장 큰 피해자라면 수험생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다. 수험생들은 공부해야 할 분량이 많아져서 부담스럽고, 교사들은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혼란스럽다. 한 쪽 이념에 치우친 역사를 가르치다가 학부모들로부터 비난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나 역사를 가르치는 역사 선생님이나 신중의 자세를 취하기 위해서는 많이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진 역사를 구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학과(행정학과) 2학년 2학기에 ‘근현대사와 한국정부론’이라는 과목이 개설되어 있는데 나랑 개인적으로 친분 있는 교수님이 강의를 맡게 되었다. 그러자 어제 교수님이 페이스북 메시지로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근현대사와 한국정부론> 강의를 맡게 되었는데 현대사 중심으로 가르치면 문제가 될까요?“

 

역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서 민감하게 걱정을 하신 거 같았다. 일부 대학 교수는 대놓고 편향적인 역사를 가르쳐서 문제가 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자 나는 소신 있게 대답했다. 나는 그 분의 지도 역량을 믿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거라 믿고 있다. 확증 편향의 함정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교수님, 이번 학기에 2학년 과목인 ‘근현대사와 한국정부론’ 강의를 담당하시는군요. 저는 근현대사 중심으로 가르치는 쪽에 대해서 나쁘지 않게 봅니다. 우리나라 정부 수립 이후부터 현 정부까지를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가르치려는 근현대사의 범위라고 정한다면 이것 또한 대학생들이 배워야 할 역사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됐다하더라도 과연 국사 교과서 뒷부분에 있는 현대사를 교사들이 충분히 그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내용 분량도 그리 많지 않은데다 학기 말 무렵에 배우기 때문에 현대사 학습을 소홀히 여기는 부분이 있거든요. 학습 진도 맞추기에 급급하다보면 그냥 수박 겉핥기식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현대사는 대학교에서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우리나라 정부의 정통성, 정부 활동의 업적과 과오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나라 정부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대학에서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데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편향적인 역사관 한 쪽으로 기울어진 채 지도하는 것입니다. 좌우 균형 선상의 관점으로 현대사를 가르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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