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예찬 - 다비드 르 브르통 산문집 예찬 시리즈
다비드 르브르통 지음, 김화영 옮김 / 현대문학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가 두발로 걷기 시작한 것이 1백만 년 전이다. 그런 긴 세월을 뒤로하고 불과 수십 년 만에 인간은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인 직립보행을 잊고, 속도문명의 경쟁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래서 요즘 청소년들은 어딘가를 걸어서 가려는 생각을 거의 안 하는 듯하다. 그들에게 이동은 자신의 두 다리를 움직여 공간을 주파하는 일이 아니라, 운송수단에 실려 수송되는 걸 뜻한다. 앉아 있거나 서 있기만 해도 자동차,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가 우리를 태우고 다니는 세상이 아닌가. 여기에 일찍부터 길들여져 있는 10대들은 운송수단을 타러 갈 때 걷는 것도 힘들어한다. 그마저 기꺼이 자식의 운전수가 되어 주시는 부모를 둔 10대들은 하루에 단 몇 분도 걷지 않는다. 생각의 속도와 영혼의 속도가 우리 몸의 공명(共鳴)을 따라가지 못하면, 삶이 척박해지고 황폐해진다. 세상이, 우리사회가 참 어지럽고 복잡하다. 오만가지 생각과 상상에 머릿속이 흐트러진 실타래처럼 어수선하다. 이럴 땐 무조건 걷는 게 최고다. 산이든 천변이든 동네길이든 걸어야 한다.

 

인생행로라는 말이 있듯이, 산다는 것은 길을 따라 걷는 행위다. 걷기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온갖 근심걱정과 성급함을 잠시 멈추게 한다. 비록 간단한 동네 산책이라 하더라도, 걷다보면 평소 무심히 지나쳤던 주위의 나무나 돌 혹은 풀꽃 같은 사물이 눈에 잘 보인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오감이 절로 열려, 자연이 전하는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한다.걷는다는 것은 모든 주도권이 기계에서 인간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스스로 몸을 옮기는 내 다리의 주인으로서, 생각의 주인이 되는 즐거움이다. 아스팔트길은 느낌도 없고 이야기도 없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것과는 전혀 달리, 발을 놀려 땅을 걷는 사람은 세상 앞에 벌거벗은 존재로 돌아와 나를 만나는 느낌을 갖고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걷는다는 것은 세계를 온전히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때 경험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돌아온다. 기차나 자동차는 육체의 수동성과 세계를 멀리하는 길만 가르쳐 주지만, 그와 달리 걷기는 눈의 활동만을 부추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목적 없이 그냥 걷는다. 지나가는 시간을 음미하고 존재를 에돌아가서 길의 종착점에 더 확실하게 이르기 위하여 걷는다. 전에 알지 못했던 장소들과 얼굴들을 발견하고 몸을 통해서 무궁무진한 감각과 관능의 세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기 위하여 걷는다.” (다비드 르 브르통, <걷기 예찬> 중에서)

 

브르통에게 걷기는 자기 몸의 감각을 깨우고 단련시키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이다. 기차나 자동차에 의지하여 수동적으로 존재하던 몸이 스스로의 동력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세계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는 것. 우린 천천히 혹은 빠르게 걸으며 자기 몸의 고유한 리듬을 발견하게 된다. 걸음으로 몸의 상태를 살필 수도 있다.

 

몸이 건강하면 발걸음도 가볍고 경쾌하다. 걸을 때 비틀거리거나 몸을 가누지 못하면 몸에 이상이 왔다는 증거다. 숨을 가다듬으며 오직 걸음걸이에만 집중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멈추고, 생각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가본다. 낯선 사람, 집들, 골목길들을 발견하고 불어오는 바람, 들려오는 소리들을 감각하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그렇게 발끝부터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며 온몸으로 세계와 마주하는 행위가 바로 걷기다.

 

걷는 것은 분명히 건강에 이롭다. 그렇지만 건강을 위해 걷는 것만은 아니다. 길을 걸을 때 생각들이 가장 잘 떠오른다. 사색하기에 좋은 시간은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는 때가 아니라 두리번거리며 걸을 때다. <걷기 예찬>을 읽다 보면 보름 동안 도보여행을 한 청년 루소의 고백을 듣게 된다. ‘나는 한 번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며 이렇게 뿌듯하게 존재하고 살아본 적이 없었다. (중략) 나는 그때 혼자 걸어가면서 했던 생각들과 존재들 속에서만큼 나 자신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저자는 걷는 행위에 필요한 것은 시간과 공간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또한 그 둘이 얼마만큼의 양이냐 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걷기도 하는 그 고즈넉한 즐거움의 초대에 기꺼이 응하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뭔가에 쫓기듯 바삐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렇다면 우리 일상에 걷기가 사라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걷기예찬>을 읽다보면 여유가 없어 걸을 수 없다는 핑계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걷는 일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과 단절하여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에게 길을 걷는다는 것은 일종의 대화이다. 그러므로 걷기 예찬은 삶의 예찬이요, 생명의 예찬인 동시에 깊은 인식의 예찬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스피 2013-09-12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언제나 멋진 리뷰시네요^^

cyrus 2013-09-14 00:00   좋아요 0 | URL
잘 지내시죠? 카스피님. 읽으면서 생각난 걸 정리해봤는데, 걷는 걸 무척 좋아해서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

잘잘라 2013-09-13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비가 왔고 오늘도 비 예보가 있는데 지금은 햇빛이 반짝반짝해요. 햇빛 받으러 나가려구요. 님의 리뷰를 읽으니 햇빛 받으며 조금 멀리까지 걷고싶어집니다.

cyrus 2013-09-14 00:01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메리포핀스님! 잘 지내시죠? 아직 여름이 가을이 온다고 해서 시샘을 부리네요. 여기 대구는 어제 비가 왔는데도 덥하고 습하네요. 날씨가 선선해야 걷을 맛이 나는데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