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문예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London Review of Books, LRB)의 편집장 메리케이 윌머스(Mary-Kay Wilmers)의 에세이 선집 서평의 언어7월 초에 샀다. 8월 초부터 읽기 시작했고,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읽고 있다. 서평의 언어에 수록된 모든 글의 분량이 너무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아서 일주일 내로 다 읽을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독서 진도가 더디다.







                              평점


         3점  ★★★  B







* 메리케이 윌머스 서평의 언어: <런던 리뷰 오브 북스> 편집장 메리케이 윌머스의 읽고 쓰는 삶(돌베개, 2022)




여유로운 시간을 쪼개가면서 여러 책을 동시에 읽다 보니 책 읽는 속도가 느린 것도 있다. 사실 서평의 언어를 느리게 읽게 만드는 원인이 책 속에 있다. 윌머스의 글에 미국 및 유럽의 역사나 명사(名士)와 관련된 일화 등이 언급된다. 이 내용들을 모르면 금방 읽을 수 없다.


윌머스의 글을 처음 접한 국내 독자들의 눈과 머리는 영국적인 색채가 낯설다. 글의 색채를 독자들이 좀 더 편하게 느낄 수 있게 역자는 역주를 많이 써야 한다. 혹자는 역주가 너무 많으면 독자는 본문과 역주를 같이 읽게 되고, 독서에 몰입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역주가 너무 적어도 문제다. 역주가 없으면 독자는 글 속에 있는 생소한 단어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부분 독자는 모르는 단어나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만나면 그냥 넘기는데, 나처럼 문장 속 생소한 단어에 호기심을 가지거나 그 의미를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독자는 그냥 못 지나친다. 이런 유형의 독자는 윌머스의 글을 느리게 읽는다.


서평의 언어에 표시된 역주가 총 몇 개인지 세어보지 않았다. 역주 개수를 일일이 세보고 싶지 않다. 한 편의 글에 들어있는 역주 개수가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주를 더 써넣어야 할 글이 몇 편 있다. 그중 한 편이 나는 영국 시민이었소라는 제목의 글이다윌머스는 나는 영국 시민이었소에서 유명 인사들의 부고를 소개하고, 그 부고를 작성한 사람과 부고가 쓰인 시대적 배경을 나름 분석하면서 비평한다. 나는 영국 시민이었소역주 없이 언급된 용어나 인물명은 다음과 같다.



오나시스(29~30), 마우마우 무장투쟁(38), 베런슨(41), 프리드리히 블룸(41), IRA(42), 위트릴로(46)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오나시스위트릴로만 누구인지 정확하게 안다.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선박왕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그리스의 사업가다. 위트릴로(Maurice Utrillo)는 프랑스의 화가다. 나머지는 몰라서 인터넷에 검색해서 확인해봤다.


경건함에 버금가는은 백과사전 편찬자의 글 쓰는 방식을 분석한 글이다. 윌머스는 이 글에서 <피어스 실링 백과사전>에 실린 여러 개 항목을 인용한다. <피어스 실링 백과사전>위키피디아(Wikipedia)와 같다고 보면 된다. 백과사전 항목에 편찬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잘못된 정보가 여과 없이 반영되어 있다윌머스가 인용한 백과사전 항목 중에 그런 내용이 있다.



* 81


 유대인에 대해서는 오늘날 ()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이들 몇몇을 배출했다는 말과 함께 스피노자, 멘델스존, 하이네, 베토벤, 슈베르트를 언급한다.

 


백과사전 편찬자는 베토벤(Beethoven)과 슈베르트((Schubert)를 유대인 출신 음악가라고 했는데, 두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다.




약속들 중에서, 257


 하드윅의 에세이는 클래리사와 태스를 비롯한 문학작품 속 여성 주인공들의 운명, 그리고 이들이 남성과 일탈적 관계를 맺은 대가로 치른 형벌을 이야기한다.

 


클래리사는 영국의 작가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의 서간체 소설 클러리사 할로(Clarissa; or, The History of a Young Lady)의 주인공이다. 작품 분량이 대하소설만큼 방대한데, 8권으로 된 번역본(김성균 옮김, 지만지, 2012)이 있다.

 


 

약속들 중에서, 261~262


 몰 플랜더스내 지나친 자만심이 나의 몰락을 불러왔으며, 어쩌면 나의 허영심이 그 원인이었으리라라는 대사가 몰락한 모든 자매를 대변한 셈이다.



몰 플랜더스(Moll Flanders)다니엘 디포(Daniel Defoe)가 쓴 소설 제목이자 매춘부인 주인공의 이름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자에는 자로(동인, 2014)



약속들 중에서, 266

 

 진심만을 말하는 여성들도 있으나(준 대로 받은 대로에 등장하는 수다쟁이 이저벨라가 좋은 예다), 대다수 여성은 그렇지 않다.



준 대로 받은 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희극 작품이다. 원제는 ‘Measure for Measure’. 번역된 제목이 여러 개가 있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제목은 자에는 자로.
















* 로버트 브라우닝 로버트 브라우닝 시선(지만지, 2012)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사랑 시(지만지, 2011)



* 무슨 이런 어머니가중에서, 373

 

 그를 가르친 선생들은 대개 케케묵은 취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들이 우러러보던 작가들은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브라우닝, 예이츠, 제임스과는 달랐다.



브라우닝은 과연 누굴까? 엘리자베스 B. 브라우닝(Elizabeth B. Browning, 1806~1861) 아니면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 1812~1889)? 두 사람은 부부다.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실린 글의 날짜가 맞지 않는다. 저자나 편집자의 착오인가? 책에는 나르시시즘과 그 불만(Narcissism and Its Discontents)의 게재 날짜가 ‘198186로 되어 있다(118).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19811217에 실렸다고 나와 있다(141). <런던 리뷰 오브 북스> 공식 홈페이지(https://www.lrb.co.uk/)에 들어가면 두 편의 글이 발표된 날짜를 확인할 수 있다나르시시즘과 그 불만<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실린 날짜1980221이며 죽음과 소녀198186이다.


오자도 있다. 총제적 난국이다. 아니, 진짜 무슨 이런 책이 다 있지?



『서평의 언어』 중에서, 103




 

핸리 헨리




나르시시즘과 그 불만』 중에서, 112





 메이미 핀저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유대인 여성 핀저는 1995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열세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백화점에서 일하게 된다.


[원문]


 She was a good-looking Jewish girl, born in Philadelphia in 1885. When she was 13 she had to leave school to work in a department store.

 

19951885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로 2022-10-15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다가 짜증 나서 안 읽고 있는데 다른 사람도 이 책 별로라니까 왜 반갑죠!! ^^;;

cyrus 2022-10-15 20:04   좋아요 0 | URL
저만 안 좋게 본 건 아니었군요. 안심이 드네요. ㅎㅎㅎ

바람돌이 2022-10-15 1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집은 내가 모르는 책이 너무 많으면 재미가 없더라구요. 어느정도 섞여 있어야지.... 다른 나라 사람이 쓴 서평집은 아무래도 우리 나라 독서경향과 또 다를테니까 읽기가 힘들거 같아요. 그래서 전 이 책 소개가 나왔을 때도 굳이 왜? 햇거든요.

cyrus 2022-10-15 20:0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서평의 언어>와 몇 편의 글을 제외한 나머지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어요. 읽어야 할 문학 작품들이 엄청 많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ㅎㅎㅎ

2022-10-15 1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22-10-15 20:09   좋아요 1 | URL
이 글을 9월 초에 쓰기 시작했는데, 게을러져서 다 못 쓰고, 한동안 방치되었어요. 글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첫 문장을 고쳐 쓰지 못했어요. 오타 알려줘서 고마워요. ^^

그레이스 2022-10-15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다 만 책!이예요.

건수하 2022-10-16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지 하고 있던 책이었는데 사이러스님 글 보니 지나쳐도 되겠다 싶네요.. 찾아보며 읽으신 것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

꼬마요정 2022-10-1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cyrus님 글 읽고 이 책 다 읽었습니다. 그냥 모르는 건 모르는대로 넘겼어요 ㅎㅎ 말씀처럼 너무 정보가 없어서 다 찾다가는 이 책 못 읽을 것 같아서요. 확실히 성향이 우리나라랑 다른 것 같아요. 인상깊은 글도 있구요.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sonn71 2022-11-03 1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가지 궁금한데요. 평점을 무슨 기준으로 매기나요? 본인 취향인가요? 아니면 다른 기준이 있나요? 몇몇 오탈자 찾아내는 건 잘 하시네요. 그런데 본인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무슨 이런 책이 있지?˝하고 내던지는 비뚤어진 독서습관이 있나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서평을 하는 건 넌센스아닌가요? 그러면 교정보는 수준의 저급한 감상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잘 모르면 아는 척 좀 하지 마세요. 위키백과 수준의 상식을 누가 모릅니까? 다시 물을께요. 평점을 무슨 잣대로 매기나요?
 
다클리 - 미국 고딕의 검은 영혼
릴라 테일러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4점   ★★★★   A-






미국의 작가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 에세이 공포문학의 매혹》(홍인수 옮김, 북스피어, 2012)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The oldest and strongest emotion of mankind is fear, and the oldest and strongest kind of fear is fear of the unknown.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홍인수 옮김, 9)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이 내린 공포의 정의에 부정할 심리학자는 거의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문장은 심리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인정한다우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을 마주치면 긴장한다. 긴장감이 팽팽해지면 공포감은 더 커진다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한 미지의 존재는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 그들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어디에 속하지도 않은 영역 속에 있다미지의 존재가 의인화된 것이 괴물이다괴물로 알려진 존재는 공공의 적이 된다.


그런데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미지의 영역으로 한정시켰다. 우리가 괴물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괴물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지(旣知)의 존재,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존재 역시 괴물로 치환된다그 괴물은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있거나 때론 숨어 있기도 하다. 


고딕 소설(Gothic novel)은 공포문학의 초기 양식이다. 고딕은 하늘로 향해 뾰족하게 치솟은 첨탑이 있는 중세 시대의 건축물을 뜻하는 단어였다. 고딕 소설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딕 스타일의 건축물을 배경으로 한다. 고딕 소설의 주인공은 이곳에서 초자연적 현상을 경험한다. 러브크래프트는 공포문학의 매혹에서 고딕 문학의 계보를 설명하면서 앤 래드클리프(Ann Radcliffe)를 거론한다러브크래프트는 잔혹함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소설 속 장면을 효과적으로 묘사한 래드클리프의 필력을 극찬한다. 래드클리프는 결말에 가서야 등장인물들을 벌벌 떨게 만든 망령의 실체를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밝힌다. 러브크래프트는 기괴한 환상을 와장창 깨뜨려버리는 작가의 글쓰기를 짜증 나는 습관이라고 표현하면서 비판한다. 러브크래프트는 래드클리프를 비판하면서 다시 한번 책의 첫 문장에 있는 공포의 정의를 상기시킨다.


그렇지만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하는 공포의 정의와 이를 반영한 비판적인 견해가 무조건 옳다고 볼 수 없다. 러브크래프트보다 먼저 태어난 래드클리프도 공포의 정의를 내렸다. 그녀는 공포의 본질적인 의미를 명백하게 보이는 잔혹성이라고 규정한다. 러브크래프트가 낯설고 불확실한 미지의 존재를 마주하면서 생기는 공포를 선호했다면, 반대로 래드클리프는 예측 가능한 기지의 존재의 행동을 볼 때 느껴지는 공포를 주목했다. 래드클리프가 창조한 망령은 처음에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존재였다가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명백하게 보이는 존재가 된다. 따라서 우리와 가까운 명확한 존재도 괴물이 될 수 있다.


릴라 테일러(Leila Taylor)다클리: 미국 고딕의 검은 영혼》(Darkly: Black History and America’s Gothic Soul, 2019)1927년에 나온 공포문학의 매혹을 더 낡아빠진 책으로 만들어버린다. 재미있게도 테일러는 미국 고딕을 분석한 자신의 책에 단 한 번도 러브크래프트를 언급하지 않는다. 러브크래프트는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와 함께 미국 공포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하지만 생전에 러브크래프트는 흑인을 무척 싫어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는 흑인과 혼혈인이 미국을 세운 백인인 앵글로 색슨족(Anglo-Saxon)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한 공포스러운 존재는 백인 중심 공동체의 평화를 파괴하는 사악한 인종으로 묘사되어 있다. 테일러가 러브크래프트의 인종 혐오를 까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흑인을 ‘미국의 괴물로 보이게 만드는 미국 고딕을 비판한다.


흑인성(Blackness)은 흑인을 괴물로 만드는 데 적합한 여러 가지 설정을 담고 있다가난, 범죄, 마약 중독, 난잡한 성생활. 이 모든 것은 백인의 인종적 편견이 반영된 흑인성이다. 백인은 흑인성을 두려워했다. 일상적인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흑인을 멸시했고, 그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과격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미국의 괴물을 집단 폭행했고 처형했다.


테일러는 흑인에 대한 백인의 두려움이 수백 년에 걸쳐 전략적 공포로 길러져 왔다고 말한다. 노예로 살아온 흑인은 자신을 가혹하게 대한 백인을 증오한다. 백인은 흑인에게 보복당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흑인의 피 한 방울이 섞이면 더러워진 백인의 피는 흑인의 피라고 믿는다. 흑인은 백인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보이는 괴물이 된다.


흑인을 차별하는 사회제도가 사라졌어도 흑인에 대한 암묵적인 차별과 공포는 여전히 백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흑인과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을 테러리스트나 야만적인 악마 숭배자로 묘사되는 영화는 계속 나오고 있다. 미국의 백인은 무서운 흑인’ 또는 ‘문란한 흑인 여성이라는 편견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 그들은 흑인 인어 공주의 등장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심지어 백인에게 차별당한 아시아인들마저도 흑인 인어 공주를 비난하는 ‘반 흑인 여론에 동참하고 있다. 흑인 인어 공주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어 공주가 하얀 피부와 금발의 아름다운 백인으로 영원히 남길 바란다. 상상의 존재의 외모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매력을 보호하기 위해서 백인성(whiteness)과 순혈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인어는 인간과 물고기의 몸이 합친 괴물이다다른 인종의 피 한 방울도 섞이는 것을 싫어하는 순혈주의자들이 백인 여성의 피와 인간이 아닌 물고기의 피가 섞인 ‘잡종 괴물 인어 공주를 선호하고 있다니. 코미디에 가까운 모순이다.


다클리공포를 협소하게 정의한 러브크래프트의 한계를 반박하는 동시에 그가 공포문학의 매혹에서 다루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미지의 존재에만 집착한 러브크래프트는 인종 차별주의가 반영된 흑인에 대한 전략적 공포를 외면했다. 미국의 소설가 랠프 엘리슨(Ralph Ellison)이 표현한 것처럼 백인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흑인을 투명 인간(Invisible Man)으로 취급했다. 여기에 테일러의 견해를 덧붙이면 흑인은 미국의 투명한 괴물’이. 백인은 흑인에 대한 공포감을 해소할 수 있다면 그들을 때려죽여도 되며 수상한 행동을 하면 총으로 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흑인을 억압하는 전략적 공포는 명백하게 보이는 잔혹성’에 해당한.


공포와 괴물의 정의는 시대가 변하면서 끊임없이 변주된다. 미국 백인 국민을, 미국 백인 국민에 의한, 미국 백인 국민을 위한, 말 그대로 순수한 미국 고딕과 공포 장르는 없다. 괴물을 분류하는 기준은 개인 또는 한 집단의 주관적인 판단과 편견이 뭉쳐진 이분법적 사고다. 이 비합리적인 기준을 해체하면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순혈주의가 만든 고딕과 공포 장르는 불편하다. 자신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타자를 괴물로 몰아세우면서 공포를 즐긴다는 것 자체가 기이하면서도 더 무섭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 원서에 도판이 있지만, 번역본에는 모든 도판이 빠져 있다.

 

 


* 53




 

 9학년 때 영어 선생님이 오래된 포(E. A. Poe) 작품집을 주셨다. 오래전에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붉은색 표지는 해지고 종이는 누렇게 변한 그 책을 약간 경외감을 가지고 받았던 건 기억난다. 비싼 건 아니었지만 그 낡은 책은 대형 서점에서 바로 산 것과는 달리, 대물림되거나 우연히 발견된 것처럼 특별하게 느꼈다. 갈까마귀’[주1]는 내가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암송한 시였다.



[1] 포의 시 ‘The Raven’까마귀(큰까마귀)’로 번역해야 한다. 갈까마귀의 영문명은 ‘Daurian jackdaw’. 큰까마귀와 갈까마귀는 학명도 다른 종이다.





* 58

 

 내가 어렸을 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백마 탄 왕자/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은 쓰레기에 세뇌되는 걸 원치 않았고 당시에 흑인 공주가 없었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에 대해 처음 배운 사실은 그는 파시스트였다로 기억한다.[2] 어쨌든 나는 그런 종류의 판타지에 흥미가 없었다.

 


[2] 월트 디즈니와 관련된 음모론이 상당히 많다. 디즈니가 독일의 나치(Nazi)를 지원하는 반유대주의자라거나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의 회원이라는 소문이 있다. 모두 억측일 뿐 사실이 아니다. 디즈니가 파시스트였다라는 주장 역시 근거 없는 소문이다.





* 203~204

 

 현대 폐허의 숭고함은 그것이 가진 상대적인 새로움에 있다. 옛 건물의 용도와 이력은 친숙하고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먼지로 돌아갈 것이라는 데서 오는 매혹과 혐오 사이의 이분법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으며, 사진, 폐허 포르노 웹사이트, 다큐멘터리, 공포 영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장례식을 애도하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문명의 종말을 흘낏 보는 것에는 묵시록 이후의 세상을 맛본다는 음침한 즐거움이 있다. 유진 태커(Eugene Thacker)는 이같이 모호한 구역을 우리 없는 세상(world-without-us)”이라 불렀다.[주3] 이는 인간 없는 세상, 인간이 하찮은 존재가 된 장소는 어떻게 될 것인지 살짝 엿보는 것이다.

 


[3] 우리 없는 세상”이라는 용어는 유진 새커의 저서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 철학의 공포(김태한 옮김, 필로소픽, 2022)에 나온다.






* 220




 

 외계인에서 복제된[주4] 인간들이 지구를 지배하게 될 게 명백해지고 진짜 인간 생존자들은 몇 안 남은 상황에서 복제인간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깨어 있는 것뿐이었다.



[4] 오자. 외계인에게 복제된



댓글(7)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10-10 14: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배자의 입장에서 타자를 가혹하게 억압한 경험은 그 지배자에게는 타자의 저항에 대한 공포가 내재되어 있을거 같아요. 그런 공포를 지배자 - 백인들은 흑인을 괴물로 나타내는 것으로 또 해소하는거겟죠. 미국 문화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는 책일듯하여 흥미가 갑니다.

cyrus 2022-10-15 11:41   좋아요 1 | URL
네, 이 책의 주요 내용을 잘 말씀하셨어요. ^^

미미 2022-10-10 16: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신과 비슷한 것에 대한 질투도
마찬가지일까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나와 비교 할 수 있는
대상을 질투하고 혐오하는 것일지 모른다고요.^^

cyrus 2022-10-15 11:44   좋아요 1 | URL
맞아요. 상대방의 약점이 내 약점과 비슷하다면 애써 그 상대방과 비교해서 그를 깔보려고 하죠. 그러면 내 약점이 사람들의 눈에 덜 띄게 되죠. ^^;;

2022-10-10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5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10-15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클리 - 미국 고딕의 검은 영혼
릴라 테일러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독자 북펀드에 참여했다.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괴물 크툴루는 돌진하는 소형 증기선에 부딪혀 머리가 터져버린 채 죽었다. 얇은 분량의 《다클리》는 흑인과 황인종을 백인을 위협하는 사악한 존재로 설정한 인종차별주의자 러브크래프트의 머리를 제대로 뚫어버린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싹한 의학의 세계사 - 웃기고 때로는 속이 뒤집히는 질병들
데이비드 하빌랜드 지음, 이현정 옮김 / 베가북스 / 202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점


3점   ★★★   B






오싹한 의학의 세계사의 원제는 ‘How to Remove a Brain: And Other Bizarre Medical Practices and Procedures’. 제목의 의미만 알아도 이 책에 주로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대충 느낌이 온다. 오싹한 의학의 세계사과거에 성행했던 특이한(bizarre) 의료 기술과 처방전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한 책이다뇌를 제거하는 법(How to Remove a Brain)’미라를 만드는 과정 중 하나. 기원전 3500년 전의 고대 이집트인들은 송장을 미라로 만들 때 뇌를 들어냈다. 그들은 심장을 인간 존재의 중심을 상징하는 장기로 여겼고, 그대로 남겨두었다. 제거한 뇌와 콩팥을 제외한 나머지 장기들은 영혼으로 부활하는 송장을 위해서 병에 담아 관 속에 넣었다. 그렇다면 미라 제작자들은 뇌를 어떻게 제거했을까? 끝에 갈고리가 달린 철사를 코에 쑤셔 넣어 뇌를 조금씩 빼냈다.


세균의 실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과거의 사람들은 나쁜 공기가 질병의 원인이라고 믿었다. 흑사병은 유럽사에서 가장 악명 높은 전염병이다. 흑사병을 일으키는 페스트균은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이 사실을 몰랐던 의사들은 나쁜 공기보다 더 고약한 악취로 흑사병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의사들이 권고한 악취의 종류는 다양했는데, 그중 하나가 인간의 방귀였다. 의사의 처방전을 따르는 사람들은 방귀를 유리병에 저장했다. 자신이 사는 곳에 흑사병 환자가 생기면 병을 열어 방귀를 들이마셨다


오싹한 의학의 세계사는 특이한 의료 기술뿐만 아니라 과학적이지 않은 민간요법이나 돌팔이 의사들의 엉터리 치료법도 소개한다그렇다고 이 책이 의학사의 어두운 면만 보여주는 건 아니다. 인류의 목숨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의사들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우리는 양질의 의료 기술을 받으면서 살고 있지만, 여전히 유사 의학과 민간요법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다달이 뜨고 지는 주기와 인간의 행동 및 건강 상태의 연관성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속설이다. 특히 몇몇 과학자와 페미니스트는 여자들이 함께 살거나 일하면 월경 주기가 같아진다동기화 이론을 신봉한. 동기화 이론을 주장한 학자의 연구 방식에 결함이 있다고 지적한 반론들은 오래전에 나왔다.


책의 저자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기반으로 상식으로 둔갑한 가짜 의학 정보를 비판한다. 이런 유익한 내용을 전달하는 저자의 노력을 칭찬해주고 싶다. 하지만 이 책에도 잘못 알려진 내용,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다.




* 29




 

 1942에 교황 인노첸시오 8세는 혼수상태에 빠진 후, 세 명의 어린 소년으로부터 수혈을 받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넷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고 한다.

 


‘1942‘1492의 오자. 인노첸시오 8(Innocentius VIII)의 주치의 자코모 디 산 제네시오(Giacomo di San Genesio)는 세 명의 소년에게 뽑아낸 피를 교황에게 마시게 했다. 의사가 실패한 치료를 기록으로 남겼고, 교황은 세계 최초로 수혈을 받은 사람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치의의 증언은 사실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Jacalyn Duffin, History of Medicine: A scandalously short introduction, University of Toronto Press, 1999, p. 171.)




* 91


 해파리에 쏘이면 고통스럽겠지만 다행히 치명적일 정도는 아니다. 또 통증은 대개 24시간 정도 지나면 저절로 사라진다.



몇 시간 안에 죽음을 이르게 할 정도로 치명적인 독을 가진 해파리도 있다.




* 145

 

 잭 더 리퍼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연쇄살인마 가운데 한 명이다. [중략] 그는 (그가 여자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1888년에서 1891년까지 대략 5~11건의 살인을 저질렀다.



잭 더 리퍼가 여장 남자라고 주장한 사람 중 한 명이 코난 도일(Conan Doyle)이다.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가 저지른 것으로 공식적으로 확인된 살인 사건은 총 5이다. 이를 ‘Canonical Five’라고 부른다.




* 170




 

 60cm에 달하는 가이드 와이어 사타구니에서 가슴 상부까지 이어져 있어서 제거해야 했던 환자도 있다.



오탈자. 가 빠졌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2-10-10 0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492년의 수혈은 비극적인 결과네요. 네 명 모두 피해자가 되었으니까요.
의학사를 보다보면 이전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데, 지금과는 다른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잘읽었습니다. cyrus님, 차가워진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휴일 보내세요.^^

cyrus 2022-10-10 13:30   좋아요 1 | URL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면, 그때 당시에 어린이나 젊은 사람의 피가 몸에 좋다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에요. 놀랍게도 지금도 젊은 사람의 피를 수혈하면 노화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어요. 젊은 사람의 피에 근육을 되살리는 성분이 발견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효과가 언제까지 지속되는지, 부작용에 대해서 알려진 것이 없거든요.

오늘은 어제보다 더 춥네요. 서니데이님도 마지막 휴일(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공휴일입니다..ㅠㅠ) 잘 보내세요. ^^
 




니체 읽기 모임에 참석한 이후로 니체의 저서와 니체 관련 도서를 꽤 많이 샀다내가 가지고 있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번역본은 총 4이다. 민음사(장희창 옮김), 펭귄 클래식(홍성영 옮김), 열린책들(김인순 옮김), 청하(최승자 옮김)이다. 책세상 판본(정동호 옮김)과 사색의숲 판본(백승영 옮김) 살지 말지 고민 중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김인순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열린책들, 2015)

 

* 프리드리히 니체, 홍성광 옮김, 서문 레지날드 J. 홀링데일, 서문 옮긴이 진은영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펭귄 클래식 코리아, 2009)

 

* 프리드리히 니체, 장희창 옮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민음사, 2004)

 

* 프리드리히 니체, 최승자 옮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청하, 1984)




책이 많아졌지만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읽은 책을 다시 펼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보면 미처 보지 못한 오자를 발견할 때가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박찬국 옮김 아침놀》 (책세상, 2004)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오뒷세이아(도서출판 숲, 2015)




번역자가 쓴 주석에 있는 오류도 종종 발견한다. 박찬국 교수가 번역한 아침놀3번 역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르케(Kirke)에 대한 설명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마법에 뛰어난 여신인 키르케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해 돼지로 변하게 한다.

 

(박찬국 옮김, 아침놀424)

 


키르케의 마법으로 돼지로 변한 사람은 오디세우스가 아니라 그의 부하들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박찬국 옮김 우상의 황혼》 (아카넷, 2015)




예전에 언급한 적이 있는데, 박 교수의 역주 오류는 우상의 황혼에도 있다. 재미있게도 잘못 쓴 역주 역시 키르케와 관련이 있다.



 빵과 서커스는 독재자들이 대중의 불만을 달래기 위해서 제공하는 음식과 오락을 가리킨다. 키르케는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마녀로, 자신의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물에 빠져 죽게 했다


(18)



노래로 뱃사람들을 유혹한 존재는 키르케가 아니라 세이렌(Siren)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박찬국 옮김 《비극의 탄생》 (아카넷, 2007)







 반성이 아니라 참된 인식이, 무서운 진리에 대한 통찰이 햄릿은 물론이고 디오니소스적 인간에게도 행동을 유발하는 모든 동기를 말살해 버린다. [중략] 인간은 한 번 보게 된 진리를 의식하고 있는 한, 도처에서 삶의 공포 혹은 삶의 부조리를 보게 된다. 이제 그는 오 리아의 운명이 상징하는 것을 이해한다


(117)



오 리아햄릿(Hamlet)의 연인 오필리아(Ophelia)의 오자.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22-10-09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책 덕후이십니다. 👍👍👍
아 저는 진짜 같은 책을 출판사 다르다고 사지는 않아요. ㅎㅎ

cyrus 2022-10-10 13:32   좋아요 2 | URL
같은 내용의 책을 안 사는 게 현명한 결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