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문예지 <런던 리뷰 오브 북스>(London Review of Books, LRB)의 편집장 메리케이 윌머스(Mary-Kay Wilmers)의 에세이 선집 《서평의 언어》를 7월 초에 샀다. 8월 초부터 읽기 시작했고,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읽고 있다. 《서평의 언어》에 수록된 모든 글의 분량이 너무 짧지도, 그렇다고 길지도 않아서 일주일 내로 다 읽을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독서 진도가 더디다.
평점
3점 ★★★ B
* 메리케이 윌머스 《서평의 언어: <런던 리뷰 오브 북스> 편집장 메리케이 윌머스의 읽고 쓰는 삶》 (돌베개, 2022)
여유로운 시간을 쪼개가면서 여러 책을 동시에 읽다 보니 책 읽는 속도가 느린 것도 있다. 사실 《서평의 언어》를 느리게 읽게 만드는 원인이 책 속에 있다. 윌머스의 글에 미국 및 유럽의 역사나 명사(名士)와 관련된 일화 등이 언급된다. 이 내용들을 모르면 금방 읽을 수 없다.
윌머스의 글을 처음 접한 국내 독자들의 눈과 머리는 영국적인 색채가 낯설다. 글의 색채를 독자들이 좀 더 편하게 느낄 수 있게 역자는 역주를 많이 써야 한다. 혹자는 역주가 너무 많으면 독자는 본문과 역주를 같이 읽게 되고, 독서에 몰입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역주가 너무 적어도 문제다. 역주가 없으면 독자는 글 속에 있는 생소한 단어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부분 독자는 모르는 단어나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을 만나면 그냥 넘기는데, 나처럼 문장 속 생소한 단어에 호기심을 가지거나 그 의미를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독자는 그냥 못 지나친다. 이런 유형의 독자는 윌머스의 글을 느리게 읽는다.
《서평의 언어》에 표시된 역주가 총 몇 개인지 세어보지 않았다. 역주 개수를 일일이 세보고 싶지 않다. 한 편의 글에 들어있는 역주 개수가 많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주를 더 써넣어야 할 글이 몇 편 있다. 그중 한 편이 『나는 영국 시민이었소』라는 제목의 글이다. 윌머스는 『나는 영국 시민이었소』에서 유명 인사들의 부고를 소개하고, 그 부고를 작성한 사람과 부고가 쓰인 시대적 배경을 나름 분석하면서 비평한다. 『나는 영국 시민이었소』에 역주 없이 언급된 용어나 인물명은 다음과 같다.
오나시스(29~30쪽), 마우마우 무장투쟁(38쪽), 베런슨(41쪽), 프리드리히 블룸(41쪽), IRA(42쪽), 위트릴로(46쪽)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오나시스’와 ‘위트릴로’만 누구인지 정확하게 안다. 오나시스(Aristotle Onassis)는 ‘선박왕’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그리스의 사업가다. 위트릴로(Maurice Utrillo)는 프랑스의 화가다. 나머지는 몰라서 인터넷에 검색해서 확인해봤다.
『경건함에 버금가는』은 백과사전 편찬자의 글 쓰는 방식을 분석한 글이다. 윌머스는 이 글에서 <피어스 실링 백과사전>에 실린 여러 개 항목을 인용한다. <피어스 실링 백과사전>은 위키피디아(Wikipedia)와 같다고 보면 된다. 백과사전 항목에 편찬자의 주관적인 생각과 잘못된 정보가 여과 없이 반영되어 있다. 윌머스가 인용한 백과사전 항목 중에 그런 내용이 있다.
* 81쪽
유대인에 대해서는 “오늘날 (…) 예술과 문학 분야에서 가장 위대한 이들 몇몇을 배출했다”는 말과 함께 스피노자, 멘델스존, 하이네, 베토벤, 슈베르트를 언급한다.
백과사전 편찬자는 베토벤(Beethoven)과 슈베르트((Schubert)를 유대인 출신 음악가라고 했는데, 두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다.
* 『약속들』 중에서, 257쪽
하드윅의 에세이는 클래리사와 태스를 비롯한 문학작품 속 여성 주인공들의 운명, 그리고 이들이 남성과 일탈적 관계를 맺은 대가로 치른 형벌을 이야기한다.
‘클래리사’는 영국의 작가 새뮤얼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의 서간체 소설 《클러리사 할로》(Clarissa; or, The History of a Young Lady)의 주인공이다. 작품 분량이 대하소설만큼 방대한데, 총 8권으로 된 번역본(김성균 옮김, 지만지, 2012)이 있다.
* 『약속들』 중에서, 261~262쪽
몰 플랜더스의 “내 지나친 자만심이 나의 몰락을 불러왔으며, 어쩌면 나의 허영심이 그 원인이었으리라”라는 대사가 몰락한 모든 자매를 대변한 셈이다.
몰 플랜더스(Moll Flanders)는 다니엘 디포(Daniel Defoe)가 쓴 소설 제목이자 매춘부인 주인공의 이름이다.
* 윌리엄 셰익스피어 《자에는 자로》 (동인, 2014)
* 『약속들』 중에서, 266쪽
진심만을 말하는 여성들도 있으나(『준 대로 받은 대로』에 등장하는 수다쟁이 이저벨라가 좋은 예다), 대다수 여성은 그렇지 않다.
『준 대로 받은 대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희극 작품이다. 원제는 ‘Measure for Measure’다. 번역된 제목이 여러 개가 있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제목은 ‘자에는 자로’다.
* 로버트 브라우닝 《로버트 브라우닝 시선》 (지만지, 2012)
*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사랑 시》 (지만지, 2011)
* 『무슨 이런 어머니가』 중에서, 373쪽
그를 가르친 선생들은 대개 케케묵은 취향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들이 우러러보던 작가들은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브라우닝, 예이츠, 제임스―과는 달랐다.
‘브라우닝’은 과연 누굴까? 엘리자베스 B. 브라우닝(Elizabeth B. Browning, 1806~1861) 아니면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 1812~1889)? 두 사람은 부부다.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실린 글의 날짜가 맞지 않는다. 저자나 편집자의 착오인가? 책에는 『나르시시즘과 그 불만』(Narcissism and Its Discontents)의 게재 날짜가 ‘1981년 8월 6일’로 되어 있다(118쪽). 『죽음과 소녀』(Death and the Maiden)는 ‘1981년 12월 17일’에 실렸다고 나와 있다(141쪽). <런던 리뷰 오브 북스> 공식 홈페이지(https://www.lrb.co.uk/)에 들어가면 두 편의 글이 발표된 날짜를 확인할 수 있다. 『나르시시즘과 그 불만』이 <런던 리뷰 오브 북스>에 실린 날짜는 1980년 2월 21일이며 『죽음과 소녀』는 1981년 8월 6일이다.
오자도 있다. 총제적 난국이다. 아니, 진짜 무슨 이런 책이 다 있지?
* 『서평의 언어』 중에서, 103쪽
핸리 → 헨리
* 『나르시시즘과 그 불만』 중에서, 112쪽
메이미 핀저의 경우는 더 복잡하다.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유대인 여성 핀저는 1995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열세 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백화점에서 일하게 된다.
[원문]
She was a good-looking Jewish girl, born in Philadelphia in 1885. When she was 13 she had to leave school to work in a department store.
1995년 → 188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