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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클리 - 미국 고딕의 검은 영혼
릴라 테일러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2년 9월
평점 :
평점
4점 ★★★★ A-
미국의 작가 러브크래프트(H. P. Lovecraft)의 에세이 《공포문학의 매혹》(홍인수 옮김, 북스피어, 2012)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된다.
The oldest and strongest emotion of mankind is fear, and the oldest and strongest kind of fear is fear of the unknown.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의 감정은 공포이며,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것이 미지에 대한 공포이다.
(홍인수 옮김, 9쪽)
러브크래프트는 자신이 내린 공포의 정의에 부정할 심리학자는 거의 없을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문장은 심리학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인정한다. 우리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을 마주치면 긴장한다. 긴장감이 팽팽해지면 공포감은 더 커진다.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한 ‘미지의 존재’는 예측하기 어려운 존재다. 그들은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어디에 속하지도 않은 영역 속에 있다. 미지의 존재가 의인화된 것이 ‘괴물’이다. 괴물로 알려진 존재는 공공의 적이 된다.
그런데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다. 그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을 미지의 영역으로 한정시켰다. 우리가 괴물을 무서워하는 이유는 괴물의 정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지(旣知)의 존재, 즉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존재 역시 괴물로 치환된다. 그 괴물은 우리의 일상에 가까이 있거나 때론 숨어 있기도 하다.
고딕 소설(Gothic novel)은 공포문학의 초기 양식이다. 고딕은 하늘로 향해 뾰족하게 치솟은 첨탑이 있는 중세 시대의 건축물을 뜻하는 단어였다. 고딕 소설은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고딕 스타일의 건축물을 배경으로 한다. 고딕 소설의 주인공은 이곳에서 초자연적 현상을 경험한다. 러브크래프트는 《공포문학의 매혹》에서 고딕 문학의 계보를 설명하면서 앤 래드클리프(Ann Radcliffe)를 거론한다. 러브크래프트는 잔혹함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소설 속 장면을 효과적으로 묘사한 래드클리프의 필력을 극찬한다. 래드클리프는 결말에 가서야 등장인물들을 벌벌 떨게 만든 망령의 실체를 장황하게 설명하면서 밝힌다. 러브크래프트는 기괴한 환상을 와장창 깨뜨려버리는 작가의 글쓰기를 ‘짜증 나는 습관’이라고 표현하면서 비판한다. 러브크래프트는 래드클리프를 비판하면서 다시 한번 책의 첫 문장에 있는 공포의 정의를 상기시킨다.
그렇지만 러브크래프트가 생각하는 공포의 정의와 이를 반영한 비판적인 견해가 무조건 옳다고 볼 수 없다. 러브크래프트보다 먼저 태어난 래드클리프도 공포의 정의를 내렸다. 그녀는 공포의 본질적인 의미를 ‘명백하게 보이는 잔혹성’이라고 규정한다. 러브크래프트가 낯설고 불확실한 미지의 존재를 마주하면서 생기는 공포를 선호했다면, 반대로 래드클리프는 예측 가능한 기지의 존재의 행동을 볼 때 느껴지는 공포를 주목했다. 래드클리프가 창조한 망령은 처음에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존재였다가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명백하게 보이는 존재’가 된다. 따라서 우리와 가까운 명확한 존재도 괴물이 될 수 있다.
릴라 테일러(Leila Taylor)의 《다클리: 미국 고딕의 검은 영혼》(Darkly: Black History and America’s Gothic Soul, 2019)은 1927년에 나온 《공포문학의 매혹》을 더 낡아빠진 책으로 만들어버린다. 재미있게도 테일러는 미국 고딕을 분석한 자신의 책에 단 한 번도 ‘러브크래프트’를 언급하지 않는다. 러브크래프트는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와 함께 미국 공포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하지만 생전에 러브크래프트는 흑인을 무척 싫어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는 흑인과 혼혈인이 미국을 세운 백인인 앵글로 색슨족(Anglo-Saxon)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한 공포스러운 존재는 백인 중심 공동체의 평화를 파괴하는 사악한 인종으로 묘사되어 있다. 테일러가 러브크래프트의 인종 혐오를 까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흑인을 ‘미국의 괴물’로 보이게 만드는 미국 고딕을 비판한다.
흑인성(Blackness)은 흑인을 괴물로 만드는 데 적합한 여러 가지 설정을 담고 있다. 가난, 범죄, 마약 중독, 난잡한 성생활. 이 모든 것은 백인의 인종적 편견이 반영된 흑인성이다. 백인은 흑인성을 두려워했다. 일상적인 공포를 억누르기 위해 흑인을 멸시했고, 그들을 철저히 배제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과격한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미국의 괴물을 집단 폭행했고 처형했다.
테일러는 흑인에 대한 백인의 두려움이 수백 년에 걸쳐 ‘전략적 공포’로 길러져 왔다고 말한다. 노예로 살아온 흑인은 자신을 가혹하게 대한 백인을 증오한다. 백인은 흑인에게 보복당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다. 흑인의 피 한 방울이 섞이면 더러워진 백인의 피는 흑인의 피라고 믿는다. 흑인은 백인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보이는 괴물’이 된다.
흑인을 차별하는 사회제도가 사라졌어도 흑인에 대한 암묵적인 차별과 공포는 여전히 백인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흑인과 백인이 아닌 다른 인종을 테러리스트나 야만적인 악마 숭배자로 묘사되는 영화는 계속 나오고 있다. 미국의 백인은 ‘무서운 흑인’ 또는 ‘문란한 흑인 여성’이라는 편견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 그들은 ‘흑인 인어 공주’의 등장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 심지어 백인에게 차별당한 아시아인들마저도 흑인 인어 공주를 비난하는 ‘반 흑인’ 여론에 동참하고 있다. 흑인 인어 공주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어 공주가 하얀 피부와 금발의 아름다운 백인으로 영원히 남길 바란다. 상상의 존재의 외모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운 매력을 보호하기 위해서 백인성(whiteness)과 순혈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인어는 인간과 물고기의 몸이 합친 괴물이다. 다른 인종의 피 한 방울도 섞이는 것을 싫어하는 순혈주의자들이 백인 여성의 피와 인간이 아닌 물고기의 피가 섞인 ‘잡종 괴물’ 인어 공주를 선호하고 있다니. 코미디에 가까운 모순이다.
《다클리》는 공포를 협소하게 정의한 러브크래프트의 한계를 반박하는 동시에 그가 《공포문학의 매혹》에서 다루지 못한 것을 보여준다. 미지의 존재에만 집착한 러브크래프트는 인종 차별주의가 반영된 흑인에 대한 전략적 공포를 외면했다. 미국의 소설가 랠프 엘리슨(Ralph Ellison)이 표현한 것처럼 백인은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흑인을 투명 인간(Invisible Man)으로 취급했다. 여기에 테일러의 견해를 덧붙이면 흑인은 ‘미국의 투명한 괴물’이다. 백인은 흑인에 대한 공포감을 해소할 수 있다면 그들을 때려죽여도 되며 수상한 행동을 하면 총으로 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흑인을 억압하는 전략적 공포는 ‘명백하게 보이는 잔혹성’에 해당한다.
공포와 괴물의 정의는 시대가 변하면서 끊임없이 변주된다. 미국 백인 국민을, 미국 백인 국민에 의한, 미국 백인 국민을 위한, 말 그대로 순수한 미국 고딕과 공포 장르는 없다. 괴물을 분류하는 기준은 개인 또는 한 집단의 주관적인 판단과 편견이 뭉쳐진 이분법적 사고다. 이 비합리적인 기준을 해체하면 누구나 괴물이 될 수 있다. 순혈주의가 만든 고딕과 공포 장르는 불편하다. 자신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타자를 괴물로 몰아세우면서 공포를 즐긴다는 것 자체가 기이하면서도 더 무섭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알
* 원서에 도판이 있지만, 번역본에는 모든 도판이 빠져 있다.
* 53쪽
9학년 때 영어 선생님이 오래된 포(E. A. Poe) 작품집을 주셨다. 오래전에 잃어버리기는 했지만, 붉은색 표지는 해지고 종이는 누렇게 변한 그 책을 약간 경외감을 가지고 받았던 건 기억난다. 비싼 건 아니었지만 그 낡은 책은 대형 서점에서 바로 산 것과는 달리, 대물림되거나 우연히 발견된 것처럼 특별하게 느꼈다. ‘갈까마귀’[주1]는 내가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암송한 시였다.
[주1] 포의 시 ‘The Raven’은 ‘까마귀(큰까마귀)’로 번역해야 한다. 갈까마귀의 영문명은 ‘Daurian jackdaw’다. 큰까마귀와 갈까마귀는 학명도 다른 종이다.
* 58쪽
내가 어렸을 때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보지 않았다. 부모님은 내가 백마 탄 왕자/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은 쓰레기에 세뇌되는 걸 원치 않았고 당시에 흑인 공주가 없었다. 월트 디즈니(Walt Disney)에 대해 처음 배운 사실은 “그는 파시스트였다”로 기억한다.[주2] 어쨌든 나는 그런 종류의 판타지에 흥미가 없었다.
[주2] 월트 디즈니와 관련된 음모론이 상당히 많다. 디즈니가 독일의 나치(Nazi)를 지원하는 반유대주의자라거나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의 회원이라는 소문이 있다. 모두 억측일 뿐 사실이 아니다. ‘디즈니가 파시스트였다’라는 주장 역시 근거 없는 소문이다.
* 203~204쪽
현대 폐허의 숭고함은 그것이 가진 상대적인 새로움에 있다. 옛 건물의 용도와 이력은 친숙하고 인지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먼지로 돌아갈 것이라는 데서 오는 매혹과 혐오 사이의 이분법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고 있으며, 사진, 폐허 포르노 웹사이트, 다큐멘터리, 공포 영화를 통해 우리 자신의 장례식을 애도하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문명의 종말을 흘낏 보는 것에는 묵시록 이후의 세상을 맛본다는 음침한 즐거움이 있다. 유진 태커(Eugene Thacker)는 이같이 모호한 구역을 “우리 없는 세상(world-without-us)”이라 불렀다.[주3] 이는 인간 없는 세상, 인간이 하찮은 존재가 된 장소는 어떻게 될 것인지 살짝 엿보는 것이다.
[주3] “우리 없는 세상”이라는 용어는 유진 새커의 저서 《이 행성의 먼지 속에서: 철학의 공포》(김태한 옮김, 필로소픽, 2022)에 나온다.
* 220쪽
외계인에서 복제된[주4] 인간들이 지구를 지배하게 될 게 명백해지고 진짜 인간 생존자들은 몇 안 남은 상황에서 복제인간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법은 깨어 있는 것뿐이었다.
[주4] 오자. → 외계인에게 복제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