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펭귄클래식 2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01-165]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죽음 앞에 선 인간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수도원 묘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 고 은 <문의 마을에 가서> 중에서 -  

 

넓은 호밀밭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이 뛰어 놀다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잡아주는 일,
천국에서도 추락하려는 순수함을 지키고 싶은 파수꾼이 된
J.D. 샐린저

끝까지 '무소유'의 사상을 전파하다가 입적하신
법정 스님

옷 한 벌로 '아름다움'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천국에서도 펼치고 있을 거 같은 순백의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

신들이 살고 있는 신화의 세계, 올림포스 산으로 떠난 소설가
이윤기

하나님의 부름심을 듣고 하나님의 곁으로 떠난
옥한흠 목사님

   

올해도 참으로 많은 유명 인사들이 평안의 안식처로 떠났다. 이 지구상에 살아 숨쉬고 있는 모든 인간, 그리고 동식물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자신만의 위대한 대제국을 만들기 위해 전장에 뛰어든 용감한 알렉산더 대왕도, 거대한 중국 대륙을 지배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진시황제도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인간은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순리의 역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죽음' 앞에 서면 두려워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Vanitas, Vanitas

레프 톨스토이가 쓴 3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죽음'이라는 인간의 삶에서 보편적이면서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반 일리히의 죽음><세 죽음><습격>에 등장하는 인물에는 공통적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러다 보니, 세 편의 이야기가 무겁고 우울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작품 속 분위기도 어둡기만 하다.   

특히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는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사망선고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안정된 직장과 행복이 가득한 가정을 두고 있는 평범하기만한 삶을 살다가 갑작스레 찾아온 병으로 심신이 쇠약해지다가 결국에는 극심한 투병 끝에 천상의 빛을 따라 죽음을 맞게 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커튼을 달다가 넘어지게 됨으로써 생기게 된 어깨의 혹으로 인해서 죽음의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반 일리치의 일상을 표현하는 장면은 별다른 사건 없이 흐르고 있다. 아내와의 즐거운 시간, 사고계에서의 모임, 새 부임지인 시골로 내려와 화려한 장식품으로 거실 꾸미기, 동료들과 함께 한 카드놀이 등. 독자들이 지루하게 느낄 정도로 이야기가 단조롭게 흘러간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일상 생활을 통해서 허무적인 인간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16~17세기 유럽에서는 '바티나스(Vanitas)' 라는 미술 양식이 유행하였다. Vanitas는 '헛되다.' 즉 '인생무상'이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바티나스 그림에는 거울, 책, 악기, 과일 등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고 보편적인 물건들과 그 물건들 사이에서 해골을 배치함으로써 모두 세상의 삶이 일시적이고 부질없음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의 일상 생활은 행복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일리치가 점점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이전에 전개된 주인공의 행복한 삶은 독자들에게 삶의 허무를 느끼게 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죽음의 신과 함께 카드놀이를 하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의 신이 자신을 죄어오고 있음을 알면서도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려고 든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카드놀이를 통해서 죽음의 공포를 잠깐이나마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오히려 죽음 앞에 선 '인간' 일리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외에도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 참관 이후 자신도 일리치처럼 죽게 된다는 생각을 애써 외면하는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모습은 우리 삶에 가까이에 있는 죽음을 방관적으로 바라보는 어리석은 인간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사흘 밤낮을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나서야 겨우 숨을 거두다니! 사실 언제든,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나한테 똑같이 닥칠 수 있는 일이잖아.'  이런 생각이 들자 순간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어찌 된 조화인지 거의 동시에 '이건 이반 알리치에게 일어난 일이지 나한테 일어나 일이 아니야. 나는 이런 일을 겪을 리도 없고 또 나한테 일어날 리도 없어.' 라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이 그를 안심시키는 것이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박은정 역, 펭귄클래식, p 41 -   
 
   

죽음의 그림자는 항상 따라오면서도 인간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막상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죽음의 신이 찾아 오지 않을거라는 모순된 생각을 쉽게 하게 된다.  

이반 일리치가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서 카드놀이를 하듯, 인간도 즐거운 일을 통해서 우울한 마음들을 떨쳐내려고 한다. 인간은 죽기 전에 평소에 하고 싶었던 거에 집착하게 된다. 자신의 불행한 인생이 일찍 마감되는 것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던 에드거 앨런 포가 죽기 직전에 과도하게 음주를 즐겼는 것처럼 말이다. 수십 병의 독한 술을 들이켜부은 포는 길거리 한가운데에서 죽음의 신과 마주쳤다.  

죽음을 잊기 위한 행동들은 부질 없는 일이다. 두렵기만한 죽음의 손길을 피할 수 있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죽음의 손길로 향하고 있는 일이다. 결국, 이반 일리치가 참여한 카드놀이는 죽음의 신과 함께한 쾌락의 오락이었다. 카드놀이가 끝나고 난 뒤에도, 일리치의 마음 속에 불현듯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비쳤던 것은 24시간 그의 곁에는 죽음의 신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의 미학 : 삶과 죽음의 경계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묘지> 

 

<세 죽음><습격>의 결말에는 독특하게도 공통적으로 고요하고 적막한 자연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세 죽음>에서는 각기 다른 세 명의 사망자가 한 자리에 묻어 있는 무덤가 주위의 자연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숲은 온통, 햇살을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차갑고 흐릿하게 이슬에 덮여 있었다. 옅은 구름에 가려진 둥근 하늘에 희미한 빛이 어리며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땅 위의 풀잎사귀도 공중의 나뭇가지도 고요히 제자리를 지킬 뿐 작은 움직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나무 울창한 숲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날갯짓 소리나 사락사락 땅 밟는 소리만이 이따금 숲의 정적을 깨뜨릴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자연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하고 낯선 소리가 한 번 울렸다가 숲의 끝자락으로 사라졌다.  

- <세 죽음> 레프 톨스토이, 같은 책, p 176 -

 
   
  
  
<습격>의 결말 장면은 이야기 전개상 맞지 않아 보인다. 알라닌 소위가 죽어가는 장면 다음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치열한 전투 끝에 요새로 돌아오는 길 주위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부대의 병사들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전장을 벗어나 편안한 휴식을 기다리고 있는 요새로 돌아가는 도중에 신나게 음악을 부르고 있다.  
 

                                          중세 시대에 그려진 <죽음의 무도>
   
 

눈 덮인 산등성이 뒤로 모습을 감춘 태양이, 맑고 투명한 지평선 위로 미동도 없이 떠 있는 길고 가는 구름에, 저물어가는 장밋빛 햇살을 비추었다. 눞 덮인 산들은 보랏빛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고, 가장 높은 산봉우리들만 빨갛게 타는 일몰 속에서 놀랍도록 또렷하게 두드러져 보였다. 풀과 나무의 녹음은 거무스름해졌고 그 위로 이슬이 내려앉았다.  

거무스름한 덩어리 같은 군대의 무리들이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면서 풀이 무성한 초원을 따라 행진했다. 사방에서 탬버린 소리, 북소리 그리고 즐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6중대 제2테너가 목청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풍부한 감정과 힘으로 충만한 말고 낭랑한 테너의 목소리가 투명한 저녁 공기를 타고 멀리멀리 울려 퍼졌다. 

- <습격> 레프 톨스토이, 같은 책, p 235~236 -  

 
   

두 작품 속 주인공이 죽음으로써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법한데, 왜 마지막 장면에는 자연 풍경을 삽입하였을까?  자연 풍경을 보다 세밀하게 묘사하여 작가 본인의 필체를 과시하려 했던 것일까?  그렇다고 톨스토이는 오만한 작가가 아니다.  

두 작품의 결말에 그려진 '자연 세계' 는 삶과 죽음을 포괄하는 인간의 운명을 상징하고 있다. 생(生)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 이 숙명은 삶과 죽음을 구별하지 않는다. 작품 속 장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 곧 삶과 죽음이 가까스로 이어지는 있는 지점이다. 인적이 드문 고요한 자연 세계의 묘사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죽음을 두렵게 하기보다는 죽음의 엄숙성을 잔잔히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습격>의 결말에서 부대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전쟁터에서 만나게 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면서도 결국에는 인간 모두가 죽음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흥겹게 노래 부르고 있는 이들도 전쟁터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삶은 죽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해골로 상징되는 죽음이 춤을 추는 것처럼.      

  

 땔래야 땔 수 없는 죽음과 삶

 
톨스토이의 세 작품은 죽음과 삶의 거리감과 일치감을 함께 읽을 수 있다. 톨스토이가 결론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과 삶은 서로 모순된 것이면서도 하나일 수 밖에 없다는 진리이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서 생기는 공포감을 강조하기 보다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닫게 하고 있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문학으로 통해 무조건적으로 '죽음'을 미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이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얻게 해주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본다면 지금, 숨을 쉬면서 살아 움직이는 우리의 삶에 대한 경건하고 진지한 태도를 갖아야 할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죽어야 할 운명이다. 죽음에 대해 두렵다거나 무시하는 안일한 생각을 갖게 된다면 막상 찾아온 죽음의 신을 두렵게만 느껴지게 할 뿐이다. 죽음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의 전제하에, 죽음을 긍정적으로 포용하여 후회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하루하루가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수도원 묘지>
http://blog.daum.net/jidam55/13864340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묘지>
http://blog.naver.com/dkseon00?Redirect=Log&logNo=140049315921 

<죽음의 무도> http://blog.daum.net/gluon/7324899 

한스 홀바인 <대사들> http://blog.naver.com/dkseon00?Redirect=Log&logNo=140049315921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이에자이트 2010-10-21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 하면 너무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중단편을 권하고 싶어요.위에 소개한 작품들 참 괜찮거든요.특히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사회생활을 좀 해본 사람에게 꼭 읽히고 싶어요.그리고 톨스토이가 카프카스 지역에서 군복무한 경험을 그린 작품들도...

cyrus 2010-10-21 23:0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톨스토이 작품에서 몇 년전에 베스트셀러였던 단편집 밖에
안 읽었는데 그 책들이 청소년 독자들로 겨냥한 내용이다보니
톨스토이라는 이름의 대문호의 명성에는 약간 떨어진거 같아서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작품은 읽는데
그리 어렵지가 않았고, 깊이가 있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작품인거
같습니다.

그리고 자이트님이 언급하신 작품의 제목이 <카프카스의 포로>가
맞는지요?? 알라딘에 검색해봤는데 없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0-22 15:39   좋아요 0 | URL
예.그것도 있고요, 또 중편으로 '하지 무라드'도 있어요.그외에도 몇 편 더 있는데 지금 기억은 안 나네요.하지 무라드는 러시아에 귀순한 체첸의 지도자였어요.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있는데 러시아를 일본으로 체첸을 조선으로 대입해 놓고 읽으면 재밌어요.

cyrus 2010-10-22 16:0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톨스토이의 작품에 대해서 유익한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딧불이 2010-10-22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고나니까 톨스토이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지네요. 정성들인 리뷰 감사히 읽었습니다.

cyrus 2010-10-22 14:28   좋아요 0 | URL
이 작품,, 그렇게 길지도 않고, 작품 주제도 인간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좋습니다.
역시 이 작품을 통해 톨스토이가 대문호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거 같았습니다^^

2010-10-22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2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0-10-22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추워지면 생각나는 작가인데, 여기서 만나니 반가운 마음에 얼른 읽었습니다.

cyrus 2010-10-22 16:03   좋아요 0 | URL
이 작품 말고도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톨스토이의 작품
<크로이처르 소나타>와 <무도회가 끝난 뒤>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비로그인 2010-10-22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 프리디히리, 그리고 바니타스.. 몇몇의 단어들이 묘하게 얽혀 뭔가 제게 전해주네요! 오늘도 뭔가 생각할 거리와 책의 느낌을 좀 얻어 갑니다. ^^
 
분신 열린책들 세계문학 11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序): 기 우

열자(列子)의 ‘천서편’이라는 내용에는 고대 중국의 기(杞) 나라 사람의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기 나라 사람은 하늘이 무너지면 피할 곳이 없을 것이라고 걱정하여 식음을 전폐하고 있었다. 이를 본 친구는 그 사람이 너무 딱하게 여겨 ‘하늘은 기운이 가득 차서 이루어진 것이니 마땅히 떨어지지 않는다.’ 고 일깨워 주었다고 한다. 그러자 기 나라 사람은 친구의 말에 근심을 풀었다고 한다. 그래서 기 나라 사람의 걱정이라는 뜻의 ‘기우’(杞憂)라는 단어가 나오게 된 것이다. 지금은 쓸데없거나 안 해도 될 걱정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Homo anxietas  

 

사람들도 살다보면 기 나라 사람과 같은 경험을 한 번쯤은 겪었을 것이다. 살면서 처음 비행기를 타본 사람에게는 재난영화처럼 비행기가 날다가 추락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기도 하고, 외출을 하기 위해서 새로 산 옷을 입으려 하는데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지 괜히 두근거리기도 한다. 심지어 기 나라 사람처럼 2012년에 지구 종말이 닥쳐오지 않을까 불안해하기도 한다. 사실 열거한 사례들 이외에도 현대인들은 살면서 크던 작던 많은 걱정을 한다. 그러나 걱정이 무조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걱정은 우리가 앞으로 해야할 일에 대해서 예상되는 위험을 대비할 수 있는 일종의 심리적인 경보(警報)이다. 단지 현대인들이 여러 가지 사회적 및 심리적 요인들에 쉽게 휘둘러서 너무 지나치게 걱정을 하고 있어서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너무 걱정만 머릿속에 달고 사는 Homo anxietas, 즉 걱정하는 인간이다. 살면서 너무 걱정만 하게 된다면 사회 활동을 하는데 지장을 준다.

현대인들이 느끼는 불안한 심리 상태를 도스또예프스끼의 『분신』에 등장하는 골랴드낀을 통해서 잘 나타내고 있다. 자신의 하인 뻬뜨루쉬까에게 온갖 불만과 잔소리를 다 해놓고선 나중에는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후회를 한다. 직장에서 높은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 혹은 단체 내에서 선배 입장인 사람들에게는 자신보다 아래인 사람이나 후배에게 잔소리를 하고나면 나중에 자신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봐 걱정하기도 한다. 필자도 군 생활 시절에 이런 경우를 겪은 적이 많았다. 나보다 계급이 아래인 후임병에게 심한 갈굼(잔소리, 꾸중, 혼내기 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는 군대 은어)을 하고나면 이 녀석이 심하게 갈굼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병영 생활 조사 설문지에 나를 영창으로 보내기 위해서 내 이름을 적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었다. 다행히도 걱정 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골랴드낀의 기우는 자신의 분신이 막장으로 행동하면서 돌아다닐수록 심해진다. 막돼먹은 분신의 행동을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던 골랴드낀은 해괴망측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 분신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분신에게 기가 눌린 골랴드낀은 자신의 의사를 강경하게 표현하기보다는 오히려 최대한 온순하게, 그리고 정중하게 표현한다. 막상 편지를 다 써놓고는 혹시나 또다시 분신의 비위를 상하게 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을 한다.   
 


 

 지나친 불안이 만들어낸 분신   

 

 

사람이 너무 걱정에 집착하여 살게 되면 심리적 상태도 불안정하게 된다. 결국에는 사고(思考)와 감정에 이상이 생기고 현실과의 접촉을 상실하는 정신 분열증으로 발전한다. 골랴드낀의 행동에도 정신 분열증 환자의 전형적인 증세와 유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이걸 그냥 내버려 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순순히 포기할까, 말까? 그래. 괜찮겠지? 

  그래, 좋았어. 멀찌감치 서서 내가 아닌 듯 구는 거야.> 골랴드낀 씨는 계속 생각했다. 

 <그냥 다 흘려 보내는 거야. 내가 아니야. 그러면 돼. 그자도 제멋에 사는 사람이니.  

 물러설지도 몰라. (중략) 위험은 무슨? 여기 어디 위험이 있다는 건지 내게 가리켜  

 보라지! 시시한 일이야! 별거 아냐.....!>

 - 도스또예프스끼 『분신』, 석영중 역, p 129 -

정신 분열증 환자는 자신의 증상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미쳤다고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골랴드낀도 자신이 처한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그냥 ‘될 대라는 식’으로 수수방관하고 있다. 골랴드낀은 너무 불안과 걱정에 지나친 나머지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과 행위의 주체인 자아마저 분열되고 말았다. 오리지널 골랴드낀은 현실적 자아이며 분신 골랴드낀은 내면적 자아인 것이다. 분신 골랴드낀은 오리지널 골랴드낀이 했던 방약무인한 행동들을 따라 한다. 그러나 오리지널 골랴드낀은 분신의 행동에 분을 삭히지 못하고 있으며 쩔쩔매고 있다. 과거에 자신이 했던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골랴드낀에게는 현실적 자아만 남고 있어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결국 두 개의 모순된 자아의 분열이 심각한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분신』에서 보여주는 세밀한 심리 묘사는 정말 뛰어나다. 그러나 이 작품 발표 당시 반응은 너무 싸늘했다.『가난한 사람들』발표 이후로 도스또예프스끼에 대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비평가 벨린스키마저도 이 작품을 외면했으며 심지어 번역가인 석영중 교수도 역자 후기에서『분신』의 전체적인 미흡함을 지적하고 있다. 자고 난 뒤 한 유명인이 되어버린 젊은 도스또예프스끼가 자신의 능력에 자뻑에 빠지다보니 문학적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이 러시아 문단에서 외면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작품이 나온 시기의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가난한 사람들』이 발표하고 난 이듬해에『분신』을 발표한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인기를 더 얻기 위해서 집착하다보니 젊은 도스또예프스끼는 너무 조급했던 것일까? 만약 그가 조그만 더 참고 마무리 교정만 열심히 했었더라면 냉담한 평가를 받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분신』이 발표하기 전에 11년 전에 니콜라이 고골은『코』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하였는데 두 작품은 플롯과 전개가 유사한 점이 많다. 두 작품의 주인공의 직업은 하급 관리이다. 고골의 작품은 주인공의 코가 갑자기 떨어져나가 자신의 분신인 마냥 관리 행세를 한다는 내용인데 비현실적인 전개와 분신 모티브는 나중에 발표된 도스또예프스끼의 작품과 비슷하다. 도스또예프스끼 본인도 ‘러시아의 작가는 모두 고골의 작품에서 나왔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고골이 러시아 문학에 끼진 영향은 어마어마하며 그도 고골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권위 있던 비평가 벨린스키는 『분신』을 읽고 난 뒤, 고골을 모방했을 것 같은 졸작의 구린내를 맡았던 것이다. 그러니 벨린스키로서는 도스또예프스끼의 차기작에 대해서 너무 기대했던 나머지 정작 읽고나니 실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7080 노래 제목 중에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 라는 것이 있다. 한번쯤 겪은 실패의 고통은 훗날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진실을 스스로 깨달을 수가 있다. 도스또예프스끼 입장에서는『분신』의 실패가 자신의 인생에서 기억하기 싫은 부분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처음으로 경험한 문학적 실패 덕분에 앞으로 나오게 될『죄와 벌』과『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과 같은 명작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10-22 1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2 14: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문 http://cafe.naver.com/openbooks21/742  

 

 네끄라소프처럼 독서하기 
  

새벽 2시, 밤이 깊으면 깊어질수록 편의점에 들어오는 손님의 인적은 드물어지고, 편의점 안에 있는 것은 오직 나와 진열된 물품뿐이다. 조용하다 못해 너무 고요하다. 딱 잠이 몰려올 수 있는 최적의 분위기이다.  

2년간의 군인으로서의 임무를 마친 뒤, 사회로 복귀하여 3개월째 밤 12시부터 아침 8시까지 아르바이트로 편의점 카운터로 일하고 있다. 군인 시절에도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했던지라 전역을 하고나면 원 없이 잠을 실컷 잘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우습게도 사회에 나와서도 야행성 활동은 계속 되었다. 아르바이트 모집 전에 편의점 사장님과 면접을 하면서 군 생활 시절에 많이 밤새봤다면서 나를 고용해달라고 자신 있게 어필했었건만 진짜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 줄이야.....   

편의점 안에 혼자서 카운터에 앉는 것도 그리 편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속도는 느리지만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래서 그렇게 지루하지는 않다. 심심하면 간혹 열린책들 카페에 올려져 있는 글들을 읽으니깐. 그러나 쏟아져오는 잠을 못 이기지 못해 피곤함이 몰려오는 것은 항상 느끼게 된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많지 않은 잠으로 지쳐있는 정신을 회복시키고 점심시간에 일어나면 그 때 몰려오는 피곤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하지만 낙천적으로 생각해보면 이 일도 나름 장점이 있긴 하다. 카운터에 앉아 있으면 멍 때린다거나 컴퓨터 모니터만 보는 게 아니다. 개인적으로 하고 있는 공부와 독서를 한다. 새벽 2~3시 이후부터는 손님이 드문드문 오게 되고, 편의점 내부는 조용해서 공부와 독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편의점에서 읽었던 책은 도스또예프스키의 처녀작『가난한 사람들』이다. 광대한 도스또예프스키의 문학 지대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에 관련된 일화가 재미있다. 러시아의 시인 네끄라소프가 밤 새워 가면서 이 작품을 끝까지 완독하자마자,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러시아의 권위 있는 문예 비평가였던 벨린스키에게 원고를 주면서 “새로운 고골이 나타났다.”라는 말을 남겼단다. 당시 신인 소설가였던 도스또예프스키의 천재성을 한 눈에 알아 봤던 것이다. 이 작품이 얼마나 훌륭했기에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신인 소설가에게 ‘새로운 고골’이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걸까?  도스또예프스키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서 나도 네끄라소프와 심정을 느끼면서 그의 처녀작을 밤 새워 읽게 되었다.  

네끄라소프도 도스또예프스키에 대해서 모르는 상태에서 이 작품을 접했을 것이다. 책은 새벽 2시부터 읽기 시작했다. 간혹 몇 몇 손님이 들어와 흐름이 끊기기는 했지만 다행히도 독서를 하는 도중에 피곤함이라는 불청객은 찾아오지 않았다. 4시 10분에 책을 다 읽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난 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러시아의 우석훈이 나타났다.” 

  

 


 공포 경제학적 소설

작품 속 남녀 간의 러브 스토리에는 당시 러시아 빈곤층의 현실과 애절함이 숨어져 있다. 보통 사람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고독과 상대적 박탈감이다.『가난한 사람들』속에 숨겨진 공포의 경제학을 발견하면 서늘한 진실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88만원 세대』출간했던 당시, 우리나라 기성세대들 뿐만 아니라 88만원 세대들까지 우석훈 박사의 지적에 대해서 당혹감과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것처럼...   

 

 

3년 전, 어느 경제학자가 쓴 독특한 제목의 책이 서점가뿐만 아니라 사회에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름은『88만원 세대』. 이 한 권의 책은 우리나라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젊은 세대의 현실과 이로 인해서 발생한 세대 간의 경제학적 갈등을 날카롭게 집어내고 있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20대들은 ‘88만원 세대’라는 불명예스러운 직함을 달게 되었다. 이 책은 우석훈 박사의 단독 저작이 아니라 박권일이라는 사회부 기자와 함께 쓴 것이다. 그래서 박 기자 특유의 취재의 눈은 88만원 세대가 겪고 있는 어두운 생활 모습을 적나라하게 포착하고 있다. 우석훈 박사는『88만원 세대』출간 이후에도 ‘한국경제 대안 시리즈’라는 제목의 책을 냈는데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포함해서 4권 정도 나왔다. 그의 책들은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알려고 하지 않는 불편한 사회적 진실들을 경제학적 관점으로 비판, 분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그의 연구 활동을 ‘공포 경제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스또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도 일종의 공포 경제학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전제적인 작품 구성은 가난한 하급관리 마까르 제부쉬낀과 역시 가난한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와의 연애 모드로 설정하고 있다. 서술도 두 사람 간의 서신 교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얼핏 보면 그냥 가난한 연인들이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사랑을 속삭이고 연애하는 이야기라고 단정지을 수 있지만, 끝까지 읽어보면 가볍게 읽을 단순한 연애 소설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편지 내용에는 두 인물이 처하고 있는 상황을 알 수 있는 구절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제부쉬낀은 넥타이와 셔츠 하나도 일 년에 한 번 살까 말까 하는 정도의 가난한 상태이다. 재미있게도 알렉세예브나는 그런 제부쉬낀을 동정하면서도 제발 가난한 티를 내면서 살지 말라고 사랑의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자신도 제부쉬낀을 동정하고 챙겨줄 수 있는 그런 부유한 입장도 아니고 그럴 잔소리할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결국 이 두 사람의 가난한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된다. 알렉세예브나가 시골 농장 대지주인 비꼬프와 청혼하기 때문이다. 알렉세예브나의 청혼 사실을 알고 그녀에게 보낸 제부쉬낀의 마지막 편지에는 사랑의 실패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다. 가난한 처지와 사랑의 실패가 제부쉬낀을 두 번 죽이게 된 셈이다.  
 

 

  

 

 가난이 죄인가요?

 

제부쉬낀은 자신의 가난한 처지를 겨냥한 알렉세예비치의 잔소리가 불편했던 것일까? 결국에는 참고 있었던 불편한 감정을 편지 통해서 털어 놓는다.  

 

 

 

  하지만 나의 소중한 친구여, 당신에게서 그런 말을 듣는 게 너무 괴롭습니다! 이런 소릴  

  한다고  화를 내지는 말아요. 제 가슴속은 번민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까다로운 법이죠. 선천적으로 그래요. 이미 옛날부터 느끼고 있었던 일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보통 사람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쳐다보고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을 곁눈질로 쳐다봅니다.  

  주변을 항상 잔뜩 주눅이 든 눈으로 살피면서 주위 사람들이 한 마디 한 마디에 신경을 씁니다. 

  누가 자기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닐까, 혹은 다른 사람들이 <뭐 저렇게 꼴사나운 놈들이 

  다 있어!>,  <대체 저렇게 가난한 사람은 무슨 느낌을 갖고 살까?>, 아니면 <이쪽에서 보면  

  어떤 꼴을 하고 있고 저쪽에서 보면 또 어떤 꼴일까?> 등등의 말들을 할까 봐 남의 말에  

  일일이 신경을 씁니다. 

   - 도스또예프스키『가난한 사람들』석영중 역, p 129 -

이 구절을 보게 되면 인간의 심리 묘사에 대한 도스또예프스키의 뛰어난 관찰력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이 쓰고 있을 19세기 중반 러시아의 가난한 사람들이나 수 백 년이 지난 지금의 빈곤층들의 마음은 같을 것이다. 단지 '가난'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인 취급하는 따가운 시선은 빈곤층들의 마음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며칠 전에 빈곤층 자녀일수록 정서 불안이 심각하다는 통계의 기사를 접했다. 특히 열 명중 한 명 꼴로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의심 증상이 있다고 한다. 이런 빈곤층 자녀와 ADHD 발병의 상관 관계의 원인을 자녀를 향한 빈곤층 부모의 소홀한 훈육과 일반 가정보다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점을 들고 있으며 낮은 경제력 때문에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것도 또 다른 원인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권위 있는 연구소의 자료라도 그냥 믿어버리지 말고 꼼꼼히 따져가며 읽어야 한다. 단순하게 빈곤층 가정 입장 쪽으로 원인으로 몰아가는 주장을 그대로 믿게 되버리면 오히려 빈곤층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꼴이 된다. 정신학계에서는 ADHD의 원인을 정확하게 규정하여 밝혀진 바가 없으며 다만 여러가지 연구 결과들을 가지고 원인을 추측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그 중에는 정서 박탈 같은 심리 사회적인 요인도 정서 장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빈곤층 아이들에게 향하는 주위의 시선들이 그들을 불안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우스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픈 봉원 어린이의 추억

 

그런 예를 쉽게 들어보자면, 8월 18일에 방영된 <황금어장 - 무릎팍 도사>에 출연한 개그맨 이봉원 씨가 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언급을 하는데 사실은 지금과 같이 성격이 쾌활하지도 않았으며 의외로 어렸을 때 무척 내성적이고 소심했다고 밝혔다. 허름한 단칸방에 여섯 식구가 살 정도로 집안이 너무 가난했었고 얼마나 가난했었으면 초등학생 때 학교에 가면 옷도 만날 같은 것만 입고 다녔다고 한다. 봉원 어린이(?)의 짝꿍은 당시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예쁜 여자아이였는데 가난한 티를 내고 다니는 봉원 어린이를 무척 싫어했던가 보다. 얼마나 싫어했었으면 책상에 선을 그어 봉원 어린이에게 선 넘어 오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대부분 남성이라면 옛 초등학생 시절에 한 번쯤은 겪어봤을 상황이다. 그래서 여자 짝꿍의 어이없는 으름장에 대항하여 자신의 책상 권리(?)를 찾기 위한 대립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의 소심한 봉원 어린이는 그만 주눅이 들어 하루하루를 긴장감 속에서 살았다고 한다. 손가락 하나라도 짝궁의 책상 범위로 넘어오지 않기 위해서.....  이봉원 씨는 녹슬지 않은 재치있는 개그로 썩 유쾌하지 않은 어린 시절을 재미있게 풀어놓았지만 지금의 빈곤층 아이들의 불안한 마음은 아마도 어린 봉원 씨가 느꼈던 심정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몇 몇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든 보이지 않는 벽을 통해서 이들과의 접촉을 피하려고 한다.  
 

 

 

 ‘가난한 사랑 노래’는 이제 옛 말?

 

지금은 과거보다 경제도 좋아졌고 대부분 잘 사는 사람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봉원 씨와 같은 이런 웃지 못할 상황은 당시 못 살았고 소박했던 시대의 재미있는 추억으로 볼 수가 있다.  하지만 오히려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지 못한 일부 사람들이 있다. 특히나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자녀를 낳아 기르는 부모가 된다면 곤란하다. 그런 부모는 자식들에게 가난한 집안의 아이와 어울리지 말라고 교육을 할 것이다. 어렸을 때 가난한 짝꿍과 어울리면 괜히 자신도 가난한 아이로 볼게 될까봐 책상 위에 선을 그었던 것처럼 그런 부모들은 자신의 집안이 가난하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마음껏 뛰어 놀고 어울려야 할 아이들의 순수한 동심에도 선을 그어놓는다. 더 무서운 사실은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똑같이 따라하는 습성이다.

그런 잘못된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커서도 부모의 못된 생각을 되물림받게 된다. 자신의 이상형은 무조건 돈이 많아야 하며, 대기업 임원과 같은 생활이 보장되는 사람을 만날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성격보다는 우선적으로 배우자의 직업, 재산 보유 그리고 집을 가지고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서 먼저 따지고 보려고 한다. 결국 가난한 형편인 사람들에게는 결혼은 그림의 떡이다. 이제 가난한 사랑이라는 것도 그들에게는 꿈꿀 수도 없는 사치스러운 연애일 뿐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
 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
 돌아서는 내 등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
 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 신경림 『가난한 사랑 노래』중에서 -

이 시처럼 가난하고 애틋한 추억의 감정이 있는 사랑은 이제 옛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은 이 시 구절처럼 사랑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려야할 정도로 자신의 삶을 자포자기한다거나 현실을 비정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간혹 우리보다 힘든 생활고에 살면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분들은 세상에 대한 믿음과 진실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적지만 그런 분들이 있기에 차갑기만한 현실 속에서도 아직도 따뜻한 인간애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은 정말 축복인거 같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10-20 0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 Sharing #4 - 앙드레 지드 <좁은 문> (마감)
좁은 문 - 펭귄 클래식 펭귄클래식 5
앙드레 지드 지음, 이혜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1001-240] 좁은 문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 누가복음 13장 24절

 ↳ Re: 굳이, 그 힘든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할까?

- cyrus  

 

 
   

 도대체 나는 누구랑 결혼한 거야? 
 

‘나는 영국과 결혼했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의 발전을 위해서 한평생 동안 헌신하는 대신에 사랑과 결혼을 포기해야만 하는 자신의 상황을 재치 있게 표현하였다. 본인 자신도 한번쯤은 사랑을 하고 싶은 여성이었으니 몰래 남자 귀족들과 연분을 나누었고, 그들과의 스캔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과 연애는 했을 뿐, 결혼은 하지 않았다. 만약 결혼을 하게 된다면 제대로 나라를 다스릴 수 없게 되며 마음속으로는 권력 쌓기에 혈안이 되어 여왕에게 달콤한 말로 추파를 던지는 귀족 남정네들의 꿍꿍이를 그녀 스스로 간파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리자베스 여왕은 평생 독신으로 살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는 하느님과 결혼했다’라고 말하면 당사자는 어떤 생각이 들게 될까? 그리고 이미 법적으로 부부가 성립된 관계라면?  이런 일은 상상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실제로 일어난 사례이다.

슬하에 2남 1녀의 자식이 있으며 평범한 맞벌이 부부였던 철이와 순이. 철이의 부인 순이는 교회에 자주 찾아가는 보통 사람과 다를 게 없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런 순이가 계속 다니던 A 교회를 가지 않고, 이번에는 다른 B 교회를 가게 되었다. 철이는 순이가 다른 교회에 가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눈 여겨 보지는 않았다. 순이가 새로 다니는 교회도 기독교 교회였으니까. 그러나 그 후로부터 순이의 일상 습관이 예전과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일이 끝나는 대로 무조건 B 교회로 갔으며 밤 10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이러니 집안 관리도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오전 내내 일 하다가 일이 끝나면 무조건 B 교회로 갔으니 자식들 양육이 제대로 될 리가 없을 것이다. 철이는 이런 순이의 변한 모습이 걱정이 되어서 B 교회의 이단성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면서 순이에게 그 문제의 교회에 가지 말라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순이는 철이의 말을 한 쪽 귀로 흘러버렸다. 심지어 순이는 좀 더 교회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서 자신이 다니던 일도 그만두기에 이르렀다. 이 두 사람의 갈등은 잠자리에까지 커지게 되었다. 순이는 ‘하나님과 결혼했다’라는 말을 하면서 철이와의 잠자리를 거부하기도 한다. 

종교에 집착하는 순이의 태도와 엉망이 된 가정생활에 진저리가 난 철이는 결국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하였다. 결국 법정 판결은 종교생활에 심취하여 가정을 돌보지 않은 순이가 이혼에 큰 책임이 있다며 이혼 청구소송에서 철이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순이는 종교 문제를 제기하는 철이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본인 스스로 가정 생활 안정에 대한 노력을 보이지 않은 점과 단지 교리의 덕목을 가지고 성 관계를 거부하는 것은 가정파탄에 큰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지상의 사랑을 추구하는 남자, 신의 사랑을 추구하는 여자  

 

우리나라의 철이와 순이의 사례를 비추어 볼 때, 앙드레 지드『좁은 문』에 등장하는 제롬과 알리사 커플의 경우는 사랑과 종교의 갈등에 얽매여 두 사람 다 헛물켠 사랑으로 비극적으로 끝나고 만다. 알리사는 마음속으로 제롬을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런 세속적인 사랑이나 행복보다는 하느님을 따르는 삶에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반면 제롬은 알리사를 지켜 줄 수 있는 사람은 자기밖에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종교를 향한 알리사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려고 여러 번 설득한다. 하지만 이 둘의 사랑은 끝내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알리사와 결혼하는 것. 제롬의 머릿속에는 오직 그것뿐이었다. 자신 인생의 첫 관문이 알리사와의 결혼이다. 그런데 결혼하기 위해서 그 관문을 통과하기에는 너무 비좁다. 하지만 제롬은 성경 속에 있는 ‘좁은 문에 들어가기를 힘쓰라’라는 구절을 듣고 나서, 그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한다. 알리사를 사랑해줄 수 있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존재와 구애 때문에 괴로워하는 알리사를 위해서 3년이나 되는 군 생활을 하기로 스스로 결정한다. 그리고 알리사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내면서 알리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이 아직 식지 않았음을 표현하였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 둘의 마음은 점점 쇠약해져가고 있었다. 제롬의 마음에는 이미 그녀를 만나기 전부터 예전의 알리사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스치기도 한다. 그리고 알리사와의 잦은 편지 왕래하는 것도 지쳐만 갔다. 아무리 설득해도 알리사는 종교의 교리를 강조하면서 사랑에 대해 강경한 입장만 드러내고 있을 뿐이고 오히려 설득이라기보다는 종교적 논쟁으로 확대되어 서로 다투기 일쑤이니 결국에는 자신이 추구하고자 한 지상의 사랑의 합일점을 찾지 못하고 만다.  

알리사는 이보다 더 심하다. 제롬과의 만남 자체를 두려워하기에 이르며 몸도 점점 약해져만 갔다. 알리사가 죽기 전에 쓴 일기에서 기독교적인 인간의 완성을 위해서 스스로 지상의 사랑을 포기해야만 했던 자신의 신앙에 대해서 의문을 갖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처한 투병의 삶 역시 하나님이 결정하는 것이라고 만족하기에 이른다. 

  

 

 

 나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지드의 해석

『좁은 문』이 출간된 지 101년이 지난 지금도 알리사의 태도에 대해서 엇갈린 의견들이 공존하고 있다. 신의 사랑을 위해서 지상의 사랑을 거부하면서 헛되이 죽어가는 알리사를 통해, 비인간적인 자기희생을 추구하는 종교적 교리의 허무함을 강조한다는 평가와, 반대로 알리사를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추구한 ‘성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것은 제롬의 경험을 실제로 겪어봤으며 그 경험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상한 작가, 앙드레 지드의 중립적인 해석이다. 그는 자기희생적인 교리를 강조하는 개신교 신비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이상적인 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알리사의 행동에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나의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은 다양한 관점과 해석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드의 중립적이면서도 애매모호한 해석에 대해서 독자들은 쉽게 수긍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특히 종교적 교리에 따르기 위해서 자신 스스로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허구적인 테두리 안에 가두려고 한 알리사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본다는 점에 대해서는 지드는 종교의 추구에 대해서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지상의 양식

유년 시절의 지드는 엄격한 종교적 계율을 강요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라왔다. 그 시절에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사망과 자신에게 강요하는 종교적 분위기는 지드를 심신 적으로 병약하게 만들었다. 그리고『좁은 문』의 주인공 제롬처럼 그도 외사촌 누이 마들렌을 사랑하게 된다. 마들렌 역시 알리사처럼 지드의 사랑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이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된다.

사랑의 방황을 겪은 질풍노도의 시기에 지드는『지상의 양식』이라는 한 편의 산문을 구상하게 된다. 그리고 마들렌과의 결혼한 지 2년 뒤인 1897년에 정식 출간하게 된다. 발표 당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지만, 그가 1947년에 노벨 문학상 받은 이후, 그의 처녀작은 뒤늦게 서야 문학적 평가를 받게 된다.  

 

이 작품에서 지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구속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 육체와 정신에 대한 자유를 찾으려는 능동적인 태도를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 책의 1927년판 서문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간략하게 표현되고 있다.  

 

 

  “나의 이 책이 그대로 하여금 이 책 자체보다 그대 자신에게 - 그리고 그대 자신보다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도록 가르쳐주기를.“  이것이 바로 그대가『지상의 

  양식』의 머리말과 마지막 문장들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지상의 양식』1927년판에 붙이는 서문, 앙드레 지드, 김화영 역, 민음사, p 14 - 

 

그리고 1장에서는 무조건적인 신앙을 추구하는 자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신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신을 찾게  

 될 때까지는 어디를 향하여 기도를 드려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다가 결국 신은  

 도처에, 아무 곳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분,  

 그리하여 사람들은 아무 데서나 무턱대고 무릎을 꿇는 것이다.

  -『지상의 양식』앙드레 지드, 김화영 역, 민음사, p 20~21 - 

 

 

만약에 제롬이 알리사에게 이런 문장을 편지로 썼다면 알리사의 태도에 변화가 올 수 있었을까? 이 문장을 읽었다고 해서 알리사의 마음 깊이 박힌 신의 사랑을 한순간에 바뀔리는 없지만, 제롬을 향한 지상의 사랑을 숨기기 위해서 일부러 신의 사랑으로 포장하여 모순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알리사에게는 이에 대해 스스로 재고해봤을 것이다.  

 

『좁은 문』은『지상의 양식』이 발표된 지 3년 후에 출간되었다. 이 때는 마들렌과의 결혼 생활을 하고 있어서일까?  자신의 처녀작에는 지나친 신앙을 경계하는 생각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그 뒤에 발표한 소설에 등장하는 알리사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이라기보다는 중립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점에 대해서는 지드의 아이러니한 종교적 관점을 확인할 수 있다.  

 

 

 

 
 공감이 아니라, 사랑이어야 한다. 
 

제롬과 알리사.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에 다투던 그들의 사랑싸움은 결국에는 종교적 차이에 의한 대립으로 끝나고 말았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남녀 간의 사랑을 부정적으로 보게 된 알리사의 지나친 종교적 금욕주의로 말미암아 비극적 결말을 맺는다. 반면, 제롬은 신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을 부정하면서도 알리사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통과해야 하는 좁은 문을 목사의 설교만으로 단정적으로 짓는 무모한 결정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알리사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알리사가 죽은 뒤에도 알리사를 향한 희망 없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이 만든 좁은 문을 파괴하기 보다는 오히려 들어갈 수 없는 그 좁은 문을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다.

그들이 끊임없이 주장하고, 찾고자 했던 ‘사랑’은 결국에는 ‘공감’이었다. 사랑과 공감은 서로 다른 것이다. 지드는『지상의 양식』에서 어떤 사람을 만날 때면 오직 그의 남들과 다른 면 때문에 흥미를 느꼈음을 고백하였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공감일 뿐이며 순간적으로 삶의 다양한 형태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을 하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사랑을 추구한 제롬과 알리사가 빠른 시일 내 헤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한 것은 단순히 이들이 서로 사랑하기 보다는 서로 각기 다른 사랑의 지향점에 대란 공감만 있었던 것뿐이다. 알리사의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유화적으로 다가온 제롬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 자신은 알리사보다 심한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도 알리사처럼 종교적 영향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알리사는 제롬이 아무리 설득을 해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스스로 자신의 신념을 더욱 더 공감하게 만드는 꼴이 되고 말았다. 결국은 이들의 관계는 사랑이 아니었으며 이들의 결혼 성립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것이다.  

   

생 텍쥐페리 ‘사랑은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라고 말하였다. 제롬과 알리사, 그리고 우리나라의 철이와 순이처럼 종교라는 하나의 관점을 마주 보다가 마지막에는 파멸을 겪게 되는 것처럼 남녀 간의 사랑도 종교 이외에도 경제적 요건, 성격 차이 등으로 마주 보다가 사랑이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도 오게 된다. 물론 서로를 이해하고 바라보기 위해서는 마주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고정된 채 마주 볼 수는 없다. 가끔 위나 아래, 옆이든 주위의 시선도 봐야하기 때문이다. 생 텍쥐페리의 말처럼 사랑이 오래 가기 위해서 같은 방향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연애 미경험자로서 이렇게 해야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과 다른 상대방의 관점을 수용하고 조화시키려고 각자가 노력한다면 마주 보던 관점들이 점점 같은 방향으로 바라보면서 사랑의 갈등이 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혹시 자신과 배우자의 관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공감이면서도 억지로 함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사랑이라고 우기고 있지 않은지,『좁은 문』을 읽은 연인들은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양철나무꾼 2010-10-17 0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멋진 말을 생 텍쥐베리가 했단 말이죠?^^
저도 고전을 좀 읽어야 할텐데 말이죠.
앙드레지드는 중학교 때 필독서로 읽고 독후감 써서 무슨 상까지 받았었던 것 같은데 말이죠.
지금 님의 리뷰를 읽으니,기억이 너무 새로워 안 읽은 책 같아요~

cyrus 2010-10-17 14:01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
살면서 처음 읽은거랍니다. 진짜에요ㅎㅎ
이거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읽은 고전이나 문학작품들도
올해 들어 처음 읽은거랍니다.
예전에는 고전에 관심도 없었는데,,,
올해 군 전역 이후에 고전과 문학에 대해서 슬슬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읽게 되는거 같습니다.

2010-10-17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8 0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8 14: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야간 비행 / 남방 우편기 펭귄클래식 37
생 텍쥐페리 지음, 앙드레 지드 서문, 허희정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사람을 위한 소네트     

내가 태어난 이래로 아홉 번이나 태양이 자전에 의해 거의 같은 지점으로 되돌아가기를 거듭했을 때 지금 내가 마음속으로 흠모하는 영광스러운 여인이 처음 눈앞에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베아트리체’라고 부르는 바로 그녀가 말이다. (중략) 바로 그 순간 심장의 은밀한 방 안에 기거하고 있던 생명의 기운이 너무나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때 생명의 기운은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나보다 강한 신이 있구나. 그가 나를 지배하게 될 것이다.” (중략) 그리고 정말로 그때부터 줄곧, 내 영혼과 결혼한 사랑의 신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인생』단테 알리기에리, 박우수 역, 민음사, p 19~20 - 
 

이제 막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던 9살짜리 소년은 자신보다 한 살 아래인 어여쁜 소녀를 본 순간 느꼈던 감정의 엑스터시(Ecstasy)를 이렇게 표현하였다.  

9년 후, 어엿한 청년이 된 소년은 길을 가다가 사랑의 신과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축복을 내리는 여인’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 베아트리체라는 소녀를. 청년에게는 사랑의 신과의 재회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사랑의 신이 먼저 따뜻한 미소가 머금은 인사를 건네자 청년은 9년 전에 느꼈던 황홀했던 감정을 또렷이 떠올렸다. 그 짧은 만남 이후로 청년의 뜨거운 심장 속에는 베아트리체라는 숭고한 여성이 살아남게 되었다. 이제 다시 만날 수 없는, 마음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이상적인 프리마돈나(Prima donna)로.  

수줍은 성격의 청년은 베아트리체에 향한 사랑의 감정들을 직접 표현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꽃 한 송이에 꿀벌들이 모여들듯이 그녀 주위에는 수많은 구혼자들이 몰려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하지 못하고 있는 감정들을 마음속에 담아두기에 너무나 벅찼던 것일까?  청년은 마음 속 감정들을 마구 토해내듯이 베아트리체를 위한 소네트로 표현하였다.  

축복의 재회 이후 7년 뒤, 베아트리체는 예고 한 마디 없이 신들이 살고 있는 천상계로 떠나고 말았다. 9살 때의 첫 만남부터 16년 동안 사랑의 신 앞에서 고백 한 마디도 못 해본 체 소네트를 쓰면서 사랑앓이를 해야 했던 청년은 망연자실하였다. 메마른 청년의 영혼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준 사랑의 신이 떠나다니. 베아트리체가 죽은 이후에도 청년은 자신의 심장 밖으로 그녀를 쫓아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라틴 어 고전들을 읽어도, 다른 여성과 결혼하여 가장이 되어서도 청년은 베아트리체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심장 속에 살고 있는 환상의 여인을 잊지 않기 위해서 소네트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청년은 지금까지 써온 베아트리체를 위한 소네트들을 모아 『새로운 인생』이라는 책을 완성하여 발간하였다. 이 책은 훗날 『신곡』이라는 르네상스 문화를 대표하는 장편 서사시를 완성시킨 단테 알리기에리의 처녀작으로 남게 되었다.      

 

   


 하늘을 나는 단테, 자크 베르니스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처녀작인『남방 우편기』에는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어느 비행사의 삶과 애상(哀傷)의 감정을 서정적이면서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남방 우편기』의 주인공인 비행사 자크 베르니스는 9살의 단테처럼 어린 나이에 평생 연정을 품게 될 주느비에브라는 여인을 보자마자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주느비에브와의 첫 만남 당시 자크의 나이는 13살이었고, 주느비에브는 이보다 두 살 위인 15살이었다.  사랑하는 여인과의 첫 만남을 13살의 자크도 9살의 단테 못지 않게 순간의 감정을 생명의 약동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그도 역사 단테처럼 사랑하는 여인을 신적 존재로 부여하고 있다.    

당신은 요정이었던 것이다. 기억이 난다. (중략) 여전히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때 조종 소리 
 를 덮으면서 부엉이들이 사랑을 찾아 서로서로를 불렀다. 떠돌이 개들은 동그랗게 모여 달을  
 향해 짖어댔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갈대 하나하나가 모두 살아났다. 계속해서 달이 떠오르 
 고 있었다. 그러면 그대는 우리의 손을 잡고 귀를 기울여 보라고 말했다. 우리를 안심시키는  
 좋은 소리는 바로 대지의 소리니까 말이다.》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남방 우편기〕생텍쥐페리, 허희정, 펭귄클래식코리아, 
    p 160~161 - 

베아트리체와 주느비에브와 얼마나 아름다웠길래 두 남자들은 그녀들을 사랑의 신과 요정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베아트리체가 사랑의 신인 아프로디테라면 주느비에브는 요정이 아니라 모든 자연물의 생명력을 관장하는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가 연상된다. 자크는 단테보다 한 술 더 떠서 주느비에브와의 첫 만남의 순간을 사랑의 기운으로 생명이 약동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동물들의 울음소리와 식물들을 열거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단테의 표현과 비교하면 자크의 표현에는 사랑의 생동감이 느껴진다.  단테의 멋들어진 표현은 상투적으로 느끼게 된다.

   
  

 

 

 슬픈 베아트리체, 주느비에브  


단테는 베아트리체에게 고백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16년간의 짝사랑은 슬프게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자크는 주느비에브와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지만 결혼 생활은 그리 행복하지 못했으며 오래 가지도 못했다. 전 남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서 죽었다는 죄책감은 마음이 연약한 주느비에브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트라우마였다. 주느비에브 자신도 물론 자크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마음속에 깊이 박힌 트라우마는 자크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활짝 피우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자크가 자신을 냉담하게 외면할 수 있다는 두려움의 망상에도 시달리게 된다.

 

주느비에브의 불안정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그리고 사그라지고 있었던 사랑의 불씨를 다시 한 번 지피기 위해서 자크는 주느비에브와 함께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곳으로 이리저리 다니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주느비에브의 마음은 조금씩 병들어 가고 있었고, 육체마저도 쇠약하게 된다. 결국, 슬픈 베아트리체는 자크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을께요.....  

 

자크는 자신의 애마인 우편기를 통해 하늘을 날아다니면서 주느비에브를 향한 사랑의 감정들을 공중 위로 날려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비행기 아래에 보이는 광활한 자연의 대지 앞에서 잊어야 할 감정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만다. 대지 위의 자연물들을 움직이게 하는 대지의 요정인 주느비에브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어두컴컴한 밤하늘에도 우편물을 목적지에 전달하기 위해서 홀로 비행해야만 하는 자크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들 사이에서의 비행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비행기 주위에 있는 하늘과 대지에 위치하고 있는 모든 자연물들을 죽은 주느비에브의 분신의 일부처럼 여기기도 한다. 특히 그에게는 달은 사랑하는 사람이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 어두운 밤하늘을 훤히 비쳐주는 주느비에브라고 생각한다.    

 

 《‘비가 오나 보군.’  

   손을 뻗자 세찬 빗방울이 느껴졌다. 
   ‘이십 분 후면 다시 해안으로 돌아갈 거야. 거기는 평지니까 덜 위험하겠지.....’
   그런데 갑자기 왜 이렇게 밝아지는 거지!  구름 걷힌 하늘에 별들이 물로 씻긴 듯 말갛게  

   반짝였다. 달은.....  아, 달은 모든 전등 중에 가장 밝게 빛나는 전등이다!  

   아가디르 착륙장이 전기 광고판처럼 세 번 반짝였다.
    “저런 불빛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내겐 달이 있는 걸.....!”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남방 우편기〕생텍쥐페리, 허희정, 펭귄클래식코리아, p 235 -

주느비에브가 죽고 나서도 위험한 야간 비행을 멈추지 않았던 이유가 주느비에브에 대한 그리운 기억과 오래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잠시나마 자연의 광경을 통해서 스스로 달래려는 것이 아니라, 대지의 자연물로 상징되는 주느비에브를 잊지 않기 위해서 홀로 위험한 비행을 자처한 것이 아닐까?  사랑하는 자를 먼저 떠나보내 생기게 된 공허감과 그리움을 잊기 위해서 틈만 나면 소네트를 썼던 청년 단테처럼 말이다.   

  
  

 


 아직 못 다한 이야기

내게 불어오는 바람아 / 너는 내 얘기를 어서 그녀에게 전해주렴
    내 몸을 적시는 빗방울아 / 너는 그녀 향길 어서 내 몸에서 씻어주렴
    내게 내리쬐는 태양아 / 너는 여길 떠나 어서 그녀에게 비춰주렴
    뭐든지 볼 수 있는 하늘아 / 그녈 볼 수 있게 어서 너의 눈을 빌려주렴.

    - 김진표(Feat. BMK) 「아직 못 다한 이야기」중 일부 -   

 

 

생텍쥐페리의『남방 우편기』중 자크의 비행 장면을 읽으면서 갑자기 이 노래의 가사가 떠올랐다. 하늘, 태양, 바람, 빗방울.....  이 모든 것들이 공존하는 구름 위의 세상은 비행사들을 매혹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별천지다. 하지만 이 미지의 세계가 주고 있는 원시적이고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빠지게 되면 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악천후 속에서도 자크는 위험을 무릅쓰고 비행을 하면서 하늘과 대지의 아름다움만 느낀 것이 아니라 자연의 도움을 통해 주느비에브를 찾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주위에 있는 하늘의 자연들은 위험 요소가 아닌 자신의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주느비에브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하늘을 나는 단테' 자크 베르니스는 새벽 찬 이슬 맞아가면서 비행한 끝에 결국에는 그토록 찾고 싶었던 '하늘의 보물'이며 '베아트리체'인 주느비에브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주느비에브를 만난 곳은 인적이 드문 모래만 가득한 사라하 사막 한가운데에서..... 주느비에브가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하늘 위에 빛나고 있는 별을 바라본 채.....  

 

 "여기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도다." 

 

단테는『새로운 인생』의 첫 페이지부터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하였다. 베아트리체를 향한 단테의 애틋한 사랑은 700여 년이 지난 옛 이야기로 남게 되었지만 지금도 그가 남겼던 소네트 속에는 이제 막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이 있는 천국에서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지금도 단테와 베아트리체와의 사랑이 불멸의 사랑으로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자크 베르니스의 죽음으로써 『남방 우편기』가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로 끝난 것이 아니다. 그의 사랑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다. 프랑스의 작가 앙드레 지드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위험천만한 일에 진심으로 열성을 다해 헌신하며 그 임무를 완수하고 나서야  

  행복한 휴식을 찾는다

 

  - 『야간비행, 남방 우편기』[서문] 앙드레 지드, p 9 -
 

자크는 주느비에브를 찾기 위해서 위험한 비행에 열중하였다. 하지만 자신의 우편 배달 임무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은 비극적이라기 보다는 사랑과 일에 열중한 한 남자를 위해 신이 주신 행복한 휴식인 것이다. 그리고 단테가 죽어서 베아트리체를 만난 것처럼 죽어서 주느비에브가 살고 있는 별로 간 자크에게도 이제 아름다운 사랑이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될 것이다.  

 

  다카르에서 툴루즈에 알림. 우편물이 다카르에 잘 도착함.  

 그리고 프랑스-아메리카 우편기의 조종사는 무사히 천국으로 도착했다고 함. 이상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쎈연필 2010-10-13 14: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생떽쥐베리...
정성 어린 서평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0-10-13 22:55   좋아요 0 | URL
정리가 안 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생 텍쥐페리의 이 작품뿐만 아니라 같이 수록된
<야간비행>도 이야기가 좋답니다. 이 작품 역시
조종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거든요.

2010-10-13 18: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3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