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펭귄클래식 28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은정 옮김, 앤서니 브릭스 서문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1001-165] 이반 일리치의 죽음

 

 

 

죽음 앞에 선 인간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수도원 묘지>  

겨울 문의에 가서 보았다.
죽음이 삶을 껴안은 채
한 죽음을 받는 것을.
끝까지 사절하다가
죽음은 인기척을 듣고
저만큼 가서 뒤를 돌아다본다.
모든 것은 낮아서
이 세상에 눈이 내리고
아무리 돌을 던져도 죽음에 맞지 않는다.
겨울 문의여, 눈이 죽음을 덮고 또 무엇을 덮겠느냐.

- 고 은 <문의 마을에 가서> 중에서 -  

 

넓은 호밀밭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이 뛰어 놀다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잡아주는 일,
천국에서도 추락하려는 순수함을 지키고 싶은 파수꾼이 된
J.D. 샐린저

끝까지 '무소유'의 사상을 전파하다가 입적하신
법정 스님

옷 한 벌로 '아름다움'을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천국에서도 펼치고 있을 거 같은 순백의 패션 디자이너
앙드레 김

신들이 살고 있는 신화의 세계, 올림포스 산으로 떠난 소설가
이윤기

하나님의 부름심을 듣고 하나님의 곁으로 떠난
옥한흠 목사님

   

올해도 참으로 많은 유명 인사들이 평안의 안식처로 떠났다. 이 지구상에 살아 숨쉬고 있는 모든 인간, 그리고 동식물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자신만의 위대한 대제국을 만들기 위해 전장에 뛰어든 용감한 알렉산더 대왕도, 거대한 중국 대륙을 지배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진시황제도 죽음 앞에서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고 만다. 그래서 인간은 삶과 죽음이 반복되는 순리의 역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죽음' 앞에 서면 두려워하는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Vanitas, Vanitas

레프 톨스토이가 쓴 3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죽음'이라는 인간의 삶에서 보편적이면서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반 일리히의 죽음><세 죽음><습격>에 등장하는 인물에는 공통적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러다 보니, 세 편의 이야기가 무겁고 우울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만큼 작품 속 분위기도 어둡기만 하다.   

특히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는 주인공 이반 일리치의 사망선고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다. 안정된 직장과 행복이 가득한 가정을 두고 있는 평범하기만한 삶을 살다가 갑작스레 찾아온 병으로 심신이 쇠약해지다가 결국에는 극심한 투병 끝에 천상의 빛을 따라 죽음을 맞게 되는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커튼을 달다가 넘어지게 됨으로써 생기게 된 어깨의 혹으로 인해서 죽음의 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이반 일리치의 일상을 표현하는 장면은 별다른 사건 없이 흐르고 있다. 아내와의 즐거운 시간, 사고계에서의 모임, 새 부임지인 시골로 내려와 화려한 장식품으로 거실 꾸미기, 동료들과 함께 한 카드놀이 등. 독자들이 지루하게 느낄 정도로 이야기가 단조롭게 흘러간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일상 생활을 통해서 허무적인 인간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16~17세기 유럽에서는 '바티나스(Vanitas)' 라는 미술 양식이 유행하였다. Vanitas는 '헛되다.' 즉 '인생무상'이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바티나스 그림에는 거울, 책, 악기, 과일 등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고 보편적인 물건들과 그 물건들 사이에서 해골을 배치함으로써 모두 세상의 삶이 일시적이고 부질없음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차지하고 있는 주인공의 일상 생활은 행복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일리치가 점점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다가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이전에 전개된 주인공의 행복한 삶은 독자들에게 삶의 허무를 느끼게 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죽음의 신과 함께 카드놀이를 하다

이반 일리치는 죽음의 신이 자신을 죄어오고 있음을 알면서도 처음에는 자신의 죽음을 부정하려고 든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카드놀이를 통해서 죽음의 공포를 잠깐이나마 벗어나려고 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오히려 죽음 앞에 선 '인간' 일리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외에도 이반 일리치의 장례식 참관 이후 자신도 일리치처럼 죽게 된다는 생각을 애써 외면하는 표도르 이바노비치의 모습은 우리 삶에 가까이에 있는 죽음을 방관적으로 바라보는 어리석은 인간의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에, 사흘 밤낮을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고 나서야 겨우 숨을 거두다니! 사실 언제든,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나한테 똑같이 닥칠 수 있는 일이잖아.'  이런 생각이 들자 순간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어찌 된 조화인지 거의 동시에 '이건 이반 알리치에게 일어난 일이지 나한테 일어나 일이 아니야. 나는 이런 일을 겪을 리도 없고 또 나한테 일어날 리도 없어.' 라는 지극히 평범한 생각이 그를 안심시키는 것이다.

- <이반 일리치의 죽음> 레프 톨스토이, 박은정 역, 펭귄클래식, p 41 -   
 
   

죽음의 그림자는 항상 따라오면서도 인간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막상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죽음의 신이 찾아 오지 않을거라는 모순된 생각을 쉽게 하게 된다.  

이반 일리치가 질병의 고통과 죽음의 공포를 잊기 위해서 카드놀이를 하듯, 인간도 즐거운 일을 통해서 우울한 마음들을 떨쳐내려고 한다. 인간은 죽기 전에 평소에 하고 싶었던 거에 집착하게 된다. 자신의 불행한 인생이 일찍 마감되는 것을 이미 직감하고 있었던 에드거 앨런 포가 죽기 직전에 과도하게 음주를 즐겼는 것처럼 말이다. 수십 병의 독한 술을 들이켜부은 포는 길거리 한가운데에서 죽음의 신과 마주쳤다.  

죽음을 잊기 위한 행동들은 부질 없는 일이다. 두렵기만한 죽음의 손길을 피할 수 있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을 죽음의 손길로 향하고 있는 일이다. 결국, 이반 일리치가 참여한 카드놀이는 죽음의 신과 함께한 쾌락의 오락이었다. 카드놀이가 끝나고 난 뒤에도, 일리치의 마음 속에 불현듯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비쳤던 것은 24시간 그의 곁에는 죽음의 신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의 미학 : 삶과 죽음의 경계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묘지> 

 

<세 죽음><습격>의 결말에는 독특하게도 공통적으로 고요하고 적막한 자연 풍경이 세밀하게 묘사되고 있다.  <세 죽음>에서는 각기 다른 세 명의 사망자가 한 자리에 묻어 있는 무덤가 주위의 자연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숲은 온통, 햇살을 받지 못한 채 여전히 차갑고 흐릿하게 이슬에 덮여 있었다. 옅은 구름에 가려진 둥근 하늘에 희미한 빛이 어리며 서서히 동이 트기 시작했다. 땅 위의 풀잎사귀도 공중의 나뭇가지도 고요히 제자리를 지킬 뿐 작은 움직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오직 나무 울창한 숲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날갯짓 소리나 사락사락 땅 밟는 소리만이 이따금 숲의 정적을 깨뜨릴 뿐이었다. 그때 갑자기 자연 세계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상하고 낯선 소리가 한 번 울렸다가 숲의 끝자락으로 사라졌다.  

- <세 죽음> 레프 톨스토이, 같은 책, p 176 -

 
   
  
  
<습격>의 결말 장면은 이야기 전개상 맞지 않아 보인다. 알라닌 소위가 죽어가는 장면 다음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치열한 전투 끝에 요새로 돌아오는 길 주위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부대의 병사들은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전장을 벗어나 편안한 휴식을 기다리고 있는 요새로 돌아가는 도중에 신나게 음악을 부르고 있다.  
 

                                          중세 시대에 그려진 <죽음의 무도>
   
 

눈 덮인 산등성이 뒤로 모습을 감춘 태양이, 맑고 투명한 지평선 위로 미동도 없이 떠 있는 길고 가는 구름에, 저물어가는 장밋빛 햇살을 비추었다. 눞 덮인 산들은 보랏빛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고, 가장 높은 산봉우리들만 빨갛게 타는 일몰 속에서 놀랍도록 또렷하게 두드러져 보였다. 풀과 나무의 녹음은 거무스름해졌고 그 위로 이슬이 내려앉았다.  

거무스름한 덩어리 같은 군대의 무리들이 규칙적으로 소리를 내면서 풀이 무성한 초원을 따라 행진했다. 사방에서 탬버린 소리, 북소리 그리고 즐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6중대 제2테너가 목청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풍부한 감정과 힘으로 충만한 말고 낭랑한 테너의 목소리가 투명한 저녁 공기를 타고 멀리멀리 울려 퍼졌다. 

- <습격> 레프 톨스토이, 같은 책, p 235~236 -  

 
   

두 작품 속 주인공이 죽음으로써 이야기를 마무리지을 법한데, 왜 마지막 장면에는 자연 풍경을 삽입하였을까?  자연 풍경을 보다 세밀하게 묘사하여 작가 본인의 필체를 과시하려 했던 것일까?  그렇다고 톨스토이는 오만한 작가가 아니다.  

두 작품의 결말에 그려진 '자연 세계' 는 삶과 죽음을 포괄하는 인간의 운명을 상징하고 있다. 생(生)의 섭리라고 할 수 있는 이 숙명은 삶과 죽음을 구별하지 않는다. 작품 속 장소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선, 곧 삶과 죽음이 가까스로 이어지는 있는 지점이다. 인적이 드문 고요한 자연 세계의 묘사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죽음을 두렵게 하기보다는 죽음의 엄숙성을 잔잔히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습격>의 결말에서 부대원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것은 전쟁터에서 만나게 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것이면서도 결국에는 인간 모두가 죽음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흥겹게 노래 부르고 있는 이들도 전쟁터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결국, 삶은 죽음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해골로 상징되는 죽음이 춤을 추는 것처럼.      

  

 땔래야 땔 수 없는 죽음과 삶

 
톨스토이의 세 작품은 죽음과 삶의 거리감과 일치감을 함께 읽을 수 있다. 톨스토이가 결론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죽음과 삶은 서로 모순된 것이면서도 하나일 수 밖에 없다는 진리이다. 따라서, 독자들에게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서 생기는 공포감을 강조하기 보다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닫게 하고 있다. 하지만, 톨스토이가 문학으로 통해 무조건적으로 '죽음'을 미화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것도 아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한 번쯤은 생각해보고, 이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얻게 해주고 있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본다면 지금, 숨을 쉬면서 살아 움직이는 우리의 삶에 대한 경건하고 진지한 태도를 갖아야 할 것이다. 어차피 인간은 죽어야 할 운명이다. 죽음에 대해 두렵다거나 무시하는 안일한 생각을 갖게 된다면 막상 찾아온 죽음의 신을 두렵게만 느껴지게 할 뿐이다. 죽음이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의 전제하에, 죽음을 긍정적으로 포용하여 후회하지 않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하루하루가 평안하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수도원 묘지>
http://blog.daum.net/jidam55/13864340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눈 덮인 묘지>
http://blog.naver.com/dkseon00?Redirect=Log&logNo=140049315921 

<죽음의 무도> http://blog.daum.net/gluon/7324899 

한스 홀바인 <대사들> http://blog.naver.com/dkseon00?Redirect=Log&logNo=140049315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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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0-21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 하면 너무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그의 중단편을 권하고 싶어요.위에 소개한 작품들 참 괜찮거든요.특히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사회생활을 좀 해본 사람에게 꼭 읽히고 싶어요.그리고 톨스토이가 카프카스 지역에서 군복무한 경험을 그린 작품들도...

cyrus 2010-10-21 23:00   좋아요 0 | URL
네, 저도 톨스토이 작품에서 몇 년전에 베스트셀러였던 단편집 밖에
안 읽었는데 그 책들이 청소년 독자들로 겨냥한 내용이다보니
톨스토이라는 이름의 대문호의 명성에는 약간 떨어진거 같아서
아쉬운 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작품은 읽는데
그리 어렵지가 않았고, 깊이가 있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작품인거
같습니다.

그리고 자이트님이 언급하신 작품의 제목이 <카프카스의 포로>가
맞는지요?? 알라딘에 검색해봤는데 없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10-22 15:39   좋아요 0 | URL
예.그것도 있고요, 또 중편으로 '하지 무라드'도 있어요.그외에도 몇 편 더 있는데 지금 기억은 안 나네요.하지 무라드는 러시아에 귀순한 체첸의 지도자였어요.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있는데 러시아를 일본으로 체첸을 조선으로 대입해 놓고 읽으면 재밌어요.

cyrus 2010-10-22 16:0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톨스토이의 작품에 대해서 유익한 정보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딧불이 2010-10-22 0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고나니까 톨스토이에게 가까이 가고 싶어지네요. 정성들인 리뷰 감사히 읽었습니다.

cyrus 2010-10-22 14:28   좋아요 0 | URL
이 작품,, 그렇게 길지도 않고, 작품 주제도 인간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 생각해볼만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좋습니다.
역시 이 작품을 통해 톨스토이가 대문호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거 같았습니다^^

2010-10-22 1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22 14: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굿바이 2010-10-22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추워지면 생각나는 작가인데, 여기서 만나니 반가운 마음에 얼른 읽었습니다.

cyrus 2010-10-22 16:03   좋아요 0 | URL
이 작품 말고도 펭귄클래식에서 나온 톨스토이의 작품
<크로이처르 소나타>와 <무도회가 끝난 뒤>도 읽어보려고 합니다.

비로그인 2010-10-22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톨스토이, 프리디히리, 그리고 바니타스.. 몇몇의 단어들이 묘하게 얽혀 뭔가 제게 전해주네요! 오늘도 뭔가 생각할 거리와 책의 느낌을 좀 얻어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