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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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다. 재미와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쉬고 싶거나 잠들기 위해 책을 들기도 한다. 또,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모르는 것을 배워 알기 위해 책을 뒤지기도 한다. 다양한 경험을 간접적으로, 손쉽게 퍼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책의 매력이다.

 

내가 바로 떠올린 책은 잠자는 우리 정신을 일깨우는 책, 그래서 우리가 마구 불편해지는 책이었다. 그런 책을 발견하는 감동이 얼마나 큰지에 대해서는 설명하기 쉽지 않다.

 

만약 휴식이나 재미를 얻고자 한다면,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음악 감상, 야외활동, 수면, 영화 감상 등을 통해서도 목적달성이 가능하다. 그러나 생각의 날을 세우고 성찰의 폭과 깊이를 키우는 데 책에 비할 만한 것은 없다. 철학책이 존재하는 이유도 거기 있을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하는 책을 읽는 데서 얻는 만족감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처럼 내적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독서는 대부분 묵독할 때, 즉 소리 내지 않고 읽을 때 가능한 것 같다.

 

소리 내어 책을 읽게 되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상념은 물리칠 수 있겠지만, 깊이 있는 사색 속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그런데 묵독의 역사는 소리 내어 읽기의 역사에 비해 짧다고 한다. 고대의 도서관에서만 해도 다들 소리 내어 웅얼거리며 책을 읽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당시 독서가들이 얼마나 집중해서 책을 소화해낼 수 있었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책이 많지 않던 시절이니, 어쩌면 같은 책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을 테고, 반복적인 독서가 암송으로 이어지고, 암송을 할 수 있을 정도니 의미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오늘날에는 읽을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에 더 효율적인 독서법으로 묵독이 요구되었을 것이다.

 

책을 소리 내어 읽건 소리 없이 읽건, 책의 글자가 제공하는 사전적 의미, 즉 글쓴이가 애초에 의도한 의미를 파악하는 데서 그친다면 독서의 묘미는 줄어든다. 책 읽는 이가 자신만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것이야말로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고 할 수 있다. ‘한 텍스트가 갖는 의미는 독서가의 능력과 욕망에 따라 확대될 수 있다’고 하지 않는가.

 

심지어 대단한 독서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우리 자신이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똑같은 책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의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만 해도 다시 읽어 보니, 그때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독서가는 분명 수동적인 의미수용체만은 아니다. 책 읽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의미를 생산하면서 변화해간다. 침묵한 채 정신을 긴장시키고, 찬찬히 문자를 눈으로 집중해 따라갈 만큼 내 마음을 사로잡는 책을 발견해 낸다면, 이미 변화의 출발점에 섰다. 우리가 그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이전의 나일 수 없다.

 

책 읽기와 관련한 좋은 점들을 나열하자면 길다. 그럼에도 책 읽기는 솔직히 위험하기도 하다. 천식을 유발하는 책 먼지만 위험한 것은 아니다. 시력이 약해져서 안경을 써야 하고, 심지어 보르헤스와 같은 작가처럼 영영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 두꺼운 안경이 없으면 책을 읽을 수 없는 나는 지금처럼 책을 계속 보다가는 언젠가 시각장애인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곤 한다. 비록 곁에서 책을 읽어 줄 사람을 구하거나 점자책을 활용하는 등 다양한 대안을 찾기야 하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는 없을 테니 얼마나 괴로울까!

 

그런데 무엇보다도 독서의 가장 큰 위험은 현실의 삶과 단절되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읽는 습관이 지나치게 되면 실제 삶을 질식시킬 수도 있다고 우려를 표명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책 읽기의 중독에 빠지면 진짜 현실이 아니라 책 속의 현실에 갇혀 삶을 등한시할 것도 같다. 나는 책이 내 삶의 주인공이 되도록 내버려두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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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tyana 2014-03-04 2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경신의 <도서 대출 중>에서 본 <독서의 역사> 리뷰가 떠오르네요. 책장에 꽂아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먼지 털고 한 번 펼쳐봐야 겠네요. ^^;;

cyrus 2014-03-04 23:5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Tatyana님. 저도 오래전부터 읽으려고 생각했는데 이제서야 읽은거예요. 제가 독서를 좋아해서 그런지 이 책 지루하게 느껴질 줄 알았는데 재미있었어요. 한 번 읽어보셨으면 합니다. ^^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 - 문학과 예술로 읽는 서울의 일상
류신 지음 / 민음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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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Scene #1 판타스마고리아의 산책자

 

휴식 삼아 천천히 거니는 일을 산책이라 한다. 어릴 때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혼자 등하교할 무렵이 아마도 누구에게나 처음 세상 밖으로 산책하는 경험일 것이다. 입학식을 하고 일주일 정도 부모의 손을 잡고 다니다가, 드디어 혼자 큰길로 나가서 학교까지 오가는 길은 두려우면서도 무언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이때 세상은 새삼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고, 내가 모르던 질서가 길 위에 무섭게 군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치 그동안 읽어내지 못하던 책 안에 깊숙이 박혀 있던 진리를 깨우치는 것처럼, 혼자 걷는다는 것은 행간을 읽게 되는 것이고 ‘세상 속 존재’로서 자신을 깨우는 순간이기도 하다.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자본주의의 급속한 진전에 발맞춰 휘황찬란하게 돌아가는 도시를 ‘판타스마고리아(Phantasmagoria, 요술환등)’라고 비유한 바 있다. 당시 그가 관찰했던 도시는 프랑스 파리였다. ‘산책자’는 그 도시의 불편한 징후를 읽어내는 예민한 관찰자쯤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도시가 불러일으키는 끝없는 욕망의 포화상태, 그 속에서 결국 좌절할 수밖에 없는 개인의 삶을 예견하는 존재인 셈이다. 벤야민이 보기에 시인 보들레르야말로 당대의 산책자였다. 보들레르에게 산책은 존재의 조건과 같은 것이었고, 벤야민에게 산책자라는 유형을 만든 것은 파리라는 도시였다.

 

근대화된 도시 공간 속에서 산책하는 일은 풍경 속에서 거닐며 사색하던 철학자들의 산책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뚜렷한 목적 없이 군중 틈에서 배회하며 거리의 풍경을 관조하는 산책자는 자신이 본 대도시의 충격을 회상하고 성찰하면서 묘사하는 동시에 이러한 충격이 주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현실과 대조적인 꿈을 꾸는 사람들이다.

 

도시의 산책자, 그들은 걷는 자들이며 방랑하는 자들이다. 걷는다는 것은 도시에서 가장 기본적인 경험의 형태다. 그들이 도시의 공간을 이용하여 움직이면서 어떤 구속이나 장소의 확보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흘러 다니는 동안 도시라는 ‘텍스트’가 완성되어 간다.

 

 

 

 Scene #2 구보와 벤야민, 2014년 서울을 거닐다 

 

구보는 스물여섯 살인데도 장가를 가지 않았다. 직업도 딱히 없고 버는 돈도 시원찮지만, ‘가지 못했다’보다 '가지 않았다' 쪽이다. 어머니에게는 능력이 있는 자식이다. '어머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또 동경엘 건너가 공부하고 온 내 아들이, 구하여도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긴 하지만 말이다. 그 아들은 낮에 집을 나서 늦은 밤이 돼서나 들어온다.

 

그의 산책은 물속에 뜬 꽃가루의 브라운 운동처럼 목적이 없다. 구보의 길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새벽에 지하철이 끊겨 집에 도착해 피곤한 몸을 눕히기 곤란하다.

 

경성 시내를 주유했던 구보 씨를 2014년 지금의 서울로 소환해 서울의 일상을 미시적으로 탐사한다.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 발표된 지) 80년 만에 구보 씨는 서집을 나와 서울을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도서관 속에 파묻히다시피 살고 있는 벤야민을 만난다. 80년 만에 ‘어머니의 욕망을 물리치고’(『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구보 씨는 소설, 시, 회화, 조각 등의 문화 텍스트를 종횡으로 인용하면서 벤야민식 도시 읽기를 시도했다. 무엇보다 산책자 페르소나를 에세이처럼 창조한 것이 매력적이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꿈을 꾸던 어린 자본주의는 20세기를 거치며 나치즘, 전체주의라는 추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말았다. 다시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거친 어른 자본주의가 전지구를 휩쓸고 있는 시점에,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마르크스의 『자본』을 넘어선 텍스트로 자리할 수 있다는 전망은 과장이 아니다.

 

 

 

 Scene #3 서울 곳곳에 숨겨진 물신 찾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외국계 프랜차이즈 커피숍과 멀티플렉스 상영관, 대형서점 등은 별다른 화젯거리가 없는 커플, 시험 끝난 중·고생, 금쪽같은 점심시간을 맞이한 직장인들의 성스러운 순례지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말대로, 현대는 ‘쇼핑하는 세계’다. 현대인은 마트를 돌며 카트에 물건을 담듯이 심리상담, 외국어 회화 수강, 철학 강좌 모두를 ‘쇼핑하며’ 다닌다. 맞다. 우리는 그 맛에 산다. 쇼핑으로 얻은 활력 덕분에 지긋지긋한 일상으로 되돌아가 버티는 것이다. 일상은 수레바퀴처럼 반복되지만, 우리는 다행히도 매번 업그레이드되는 아이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월간 패션지를 통해 나날이 ‘새로워질’ 수 있다. 그렇다고 느낀다.

 

그러나 벤야민은 『아케이드 프로젝트』에서 그런 현대인을 향해 이렇게 일갈한다. 뭐? 너희들의 목표가 새로운 것이라고? “새로운 것은 (…) 패션이 지칠 줄 모르고 대변하려는 허위의식의 정수이다. 이 새로운 것의 가상은 마치 한 거울이 다른 거울에 비치듯이 영원히 동일한 것의 가상으로 비쳐진다. 이러한 가상이 만들어낸 것이 바로 ‘문화사’라는 환(등)상으로, 이 속에서 부르주아지는 허위의식을 만끽한다.”

 

판타스마고리아. 그것은 자본주의 도시공간을 방랑하는 현대인들의 집단적 꿈이 넘실거리는 베일이다. 도시인은 그 베일을 진보라고 믿지만, 벤야민이 보기에 이 모든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자본주의적 새로움이란 새로움의 탈을 쓴 반복일 뿐이다. 자본주의는 오직 하나밖에 모른다. ‘화폐’라는 가치 척도와 그것의 ‘증식’이라는 목표밖에!

 

그러나 상품은 고도의 화장술을 지니고 있기에 소비자는 결코 자본주의의 ‘쌩얼’을 볼 수 없다. 소비를 강요하는 사회, 빚을 권하는 사회에서 소비자들은 내가 주인이라고, 선택권은 내게 있다고, 그 선택으로 하루하루 고귀해진다고 착각한다. 그들은 그렇게 소비와 소유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입증한다.

 

마르크스의 ‘물신(物神)’ 개념을 벤야민은 그런 식으로 구체화했다. 그리고 2014년 구보는 오직 두 다리만으로 서울 곳곳에서 자본주의 소비 욕망이 꿈틀거리는 채 숨어있는 물신을 찾아낸다. 어떤 도시를 방문한다는 것은 그 도시의 영혼과, 그 도시 사람들의 영혼과 교감한다는 뜻”(고종석 『도시의 기억』)이라는 말처럼, 구보는 사사로운 기억과 도시의 역사, 문화, 예술, 언어, 인종을 인용된 텍스트의 씨줄과 날줄로 엮으며 도시의 영혼을 탐색한다.

 

 

“날아간 비둘기를 쫓아 소공동으로 길을 건넌 구보는 을지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롯데호텔 로비로 들어가 지하 아케이드로 내려가면서 벤야민이 말한 아케이드의 특성을 상기했다. ‘아케이드는 교통수단의 위험뿐만 아니라 변덕스러운 비바람도 차단하여 궂은 날씨에도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거나 안락한 기분 속에서 진열된 상품을 구경할 수 있는 안전지대를 확보한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유리 지붕만 없을 뿐이지 롯데호텔 지하 아케이드는 지상의 아케이드와 마찬가지로 산책자 구보가 무의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아케이드의 통로는 실내이면서 거리였다.”

 

(‘롯데호텔 아케이드’, 99쪽)

 

 

19세기 파리의 상가 아케이드를 관찰했던 벤야민의 통찰처럼 서울의 도시 공간은 내용물을 대중의 환상과 꿈으로 포장한다. 서울은 생존과 효용 가치에 목매단 이 시대 대한민국을 포장한 아케이드다. 박물관이다.

 

구보가 서울을 산책하는 목적은 ‘오늘, 우리의 삶을 둘러싼 대도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인 셈이다. 구보는 자본의 이익에 따른 공간의 불평등한 재분배, 철학의 부재 속에서 공간을 다만 정치구호로 전락시키는 현실을 문제 삼고 있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서울’이라는 구호 속에 숨어있는 음모와 허구를 밝히겠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실제로 살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서울이 진짜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던지겠다는 뜻이다. 관찰과 탐구 그리고 인용된 텍스트를 모아 구보는 질문의 답을 스스로 찾아 만든다. 그 노력의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완성해나가는 것이다.

 

 

 

 Scene #4 구보의 산책은 아직 많이 남았다

 

“구보는 고독을 느끼고, 사람들 있는 곳으로, 약동하는 무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는 눈앞의 경성역을 본다. 그곳에는 마땅히 인생이 있을 게다. 이 낡은 서울의 호흡과 또 감정이 있을 게다.”(『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경성역은 구보가 본 건물이 현대화한 서울역의 한 켠에 있다. 그러나 80년 후에 가본 눈앞의 경성역 아니 서울역은 이제 ‘마땅히 인생’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오늘날 서울역은 소설가 구보 씨가 낭만적인 여행의 출발점으로 동경하던 경성역과는 너무 다르게 진화했다. 출발과 도착이라는 정거장의 역할 이외에 부차적인 기능이 너무 많이 입점했다. 소설가 구보 씨가 느꼈을 여행의 행복을 맛보기에는 역사가 너무 상업화됐다. 추억을 담기에는 역사가 너무 자동화됐다. (중략) 지하철과 버스와 택시에서 내린 사람들이 역사로 들어갔다. 들어가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채울 수 없었던 신기루 같은 욕망을 환멸하는 듯 보였다”

 

(‘서울역’, 61~62쪽)

 

 

판타스마고리아의 산책자 구보는 ‘처음 만나고 사랑을 맺은 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인 아름다운 서울’(패티김 ‘서울의 찬가’)이라는 판타지에 빠진 도시인들에게 말한다. ‘서울은 모든 욕망의 집결지입니다. 아시겠습니까?’(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1934년, 1964년 그리고 오늘 2014년, ‘서울역의 풍경은 많이 변했을지 몰라도 서울역의 본질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었다.’(류신『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서울역’, 62쪽)

 

구보는 벤야민처럼 19세기 말의 아케이드에서 같은 걸 서울에서 목도했다. 도시를 수놓은 거대하고 화려한 건축물과 그 안에 들어선 휘황찬란한 백화점을 어슬렁거리는 군중. 철골이 보이는 투명한 지붕 아래 길게 이어진 상점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시, 축소된 하나의 세계”였다. 순식간에 아케이드는 “상품들의 신전”이 되었고, 아케이드가 점점 증식되어 비대해진 서울은 “영혼 없는 군중이 사는 고립된 섬’이 되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 화려한 신전들에서 넋을 잃었다.

 

물신의 유행은 낡은 옛것이 새것으로 둔갑해 회귀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나를 새롭게 할 수 없다. 자기계발서도, 아이폰으로 접속하는 다량의 정보도, 쇼핑하듯 골라 듣는 강의도 마찬가지다.

 

가끔 우리는 기억상실을 극복하려 애쓰는 소설을 만난다. 주인공이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킬 수 없어서 자신의 몸에다 기억해야 할 일을 문자로 새겨 넣는 영화 <메멘토>처럼, 그런 소설의 글귀는 도시의 육체에 새겨 넣는 문신과 비슷하다. 도시의 기억을 보존하려고 하는 소설의 안간힘, 『서울 아케이드 프로젝트』로 그 산책자 구보의 안간힘을 좇아갈 수 있다. 서울을 그린 소설로 걷기 코스를 만들어서 실제로 그 문신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어머니와 도시인들에게는 백수로 보이지만 구보의 산책은 나름 투철한 ‘직업정신’과 그를 향한 연마의 자세가 있다.

 

구보의 산책은 아직 많이 남았다. 그가 자신을 새롭게 만든 길은, 이제 막 만개하기 시작한 자본주의 도시 안에서 모든 게 낯설다는 듯 질문하고 관찰하고 답하는 행위 자체였다. 그럼으로써 구보는 동시대인들이 갇혀 있는 매트릭스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었고, 그 안에서 맴도는 기괴한 환상들을 정지시킬 힘을 얻었다. 기존의 세상이 정지되는 바로 그 순간,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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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추락 - 프로이트, 비판적 평전
미셸 옹프레 지음, 전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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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프로이트의 마지막 인터뷰

 

오래된 전통을 보존하는 도시에는 꼭 크고 작은 박물관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대영박물관처럼 크고 유명한 박물관이 있는가 하면, 위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박물관도 있다. 이런 작은 박물관들은 대개 그 위인이 생전에 거처하던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한 경우인데, 위인이 생전에 쓰던 가구는 물론이고 옷과 책들, 모자와 펜 한 자루까지 세심하게 보관해놓은 곳이 많다.

 

이와 같은 개인 박물관 중에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박물관이 있다. 그의 박물관은 학자와 문인이 많이 사는 런던 북부의 햄스테드에 숨듯이 자리하고 있다.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런던에서 눈을 감았다. 유대인인 프로이트는 만년에 오스트리아가 나치스에게 점령당하자, 팔순의 노구를 이끌고 영국으로 망명했다. 런던은 서른 번이 넘는 구강암 수술로 병색이 완연한 노학자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프로이트는 생의 마지막 1년을 런던에서 지내다가 메어스필드 가든 20번지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 메어스필드 가든 20번지가 지금의 프로이트 박물관이다.

 

프로이트 박물관에 가면 그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프로이트가 망명한 1938년 겨울, BBC 라디오는 이 집에서 프로이트와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정신분석학을 처음 주장한 이래 나는 많은 이에게 비난과 모욕, 핍박을 받았다. 이제 시간이 흘러 세상은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인정해주고 있다. 나는 이 사실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나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자신의 숭배자를 까발리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의 발견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다윈의 진화론과 함께 지성사의 패러다임을 바꾼 3대 혁명으로 꼽힌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이성의 왕좌에서 끌어내리고 인간이 무의식의 노예에 불과하단 사실을 밝혀냈다.

 

지금까지 프로이트의 생애와 학문 세계를 조망한 책은 수없이 많이 나왔다. 프로이트 연구자들이 인정했던, 가장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은 영국의 정신분석가 어니스트 존스가 프로이트 사후 1953년부터 1957년까지 총 3권, 1500페이지에 달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그의 생애와 사상>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도 나오듯이 어니스트 존스는 프로이트 생전 그의 제자이자 추종자로, 국제 정신 분석 학회를 조직한 핵심 멤버 중 한 명이었다. 프로이트 옆에서 그를 오랫동안 지켜보고 그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제자이고 측근이기에 객관적으로 프로이트의 삶을 조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니스트 존스의 책보다 보다 실증적이며 균형적인 시각으로 프로이트를 접근한 책이 피터 게이의 <프로이트: 인생>이다. 900페이지가 넘는 피터 게이의 책은 이미 2년 전에 국내에 번역되었다. 피터 게이는 프로이트의 논문과 저서, 편지를 샅샅이 검토했을 뿐만 아니라 프로이트에게 정신 분석을 받았던 환자를 찾아가 인터뷰하는 등 발로 뛰며 이 평전을 썼다. 가장 큰 특징은 저자가 직접 정신 분석을 공부해 프로이트의 내면을 읽어내려 시도했다는 것. 이를 토대로 프로이트가 남긴 사소한 농담이나 실수에서도 행간을 읽어내는 방식으로 프로이트의 체취를 책 속에 담아냈다.

 

그러나 이 책마저도 프로이트를 설명하기에는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옹프레다. 그는 ‘반(反)철학사’라는 제목의 6권짜리 책을 통해 전통철학에 반기를 든 비주류 철학자이다. 특이하게도 그가 프로이트 숭배자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셸 옹프레는 피터 게이 못지않게 어마어마한 분량의 프로이트에 관한 모든 자료를 근거로 소개하면서 신랄하게 자신의 숭배자를 까발린다. 프로이트가 무의식과 욕망이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하며 인간 내면의 '불편한 진실'을 낱낱이 까발렸다면 환자의 정신을 분석하던 이 위대한 유대인 자신의 심리상태는 과연 어땠을까.

 

 

 

 ♣ 프로이트와 비밀의 열쇠

 

작품과 작가의 삶은 무관하거나 혹은 그래야 한다는 ‘몰개성’ 이론이 글쓰기 일반을 대변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것은 훌륭한 작가가 지녀야 할 덕목으로 제시된 것이었지만 작가의 삶의 편린들이 작품 해석에 불필요하게 개입하는 것을 방지하는 나름의 유용함도 있었다. 그러나 프로이트의 경우는 전혀 다르다. 그의 정신분석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 삶에 대한 소소한 것까지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는 자전적 연구의 한 구절에서 자신의 삶과 정신분석의 역사는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뒤엉켜있다며 이렇게 고백했다.

 

 

 

 

 

살바도르 달리 「관료의 프로이트적 초상화」 1936년

 

불멸의 그리스와 현대의 차이에는 프로이트만이 존재한다. 불멸의 그리스 시대엔 신플라톤 학파의 순수한 인체가, 현대에는 정신분석학에 의해서만 열리게 되는 서랍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살바도르 달리)

 

 

 

“정신분석과의 관련성을 배제한다면 나의 개인적 경험들은 아무런 흥미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프로이트의 개인사를 자세히 들춰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정신분석의 핵심 개념들을 이해하는 ‘열쇠’를 발견할 수 있다. 아마도 프로이트는 자신의 손에 몰래 쥐고 있는 이 ‘열쇠’를 주변 사람들에게 공개하기가 꺼리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이론은 철저한 자기분석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로이트는 죽어서 자신의 이름만 남길 원했지만, 영원토록 숨기길 원했던 비밀의 ‘열쇠’는 무덤으로 가져가지 못했다. 그 열쇠는 지금 자신을 숭배했던 철학자 미셸 옹프레의 손에 쥐어졌다.

 

옹프레는 정신과 의사가 되어 프로이트를 상담용 소파에 편히 눕게 한다. 혹시 프로이트가 당황할까봐 그가 그토록 좋아했던 시가 한 대를 슬쩍 내밀어본다. 드디어 그가 ‘자유연상’을 하기 시작하면 옹프레는 굳게 잠겨 있는 프로이트의 책상으로 다가간다. 그러면서 책상의 서랍에 숨겨진 물건 찾듯이 그 안에 보관된 ‘프로이트 엽서’에 적힌 지적 우상의 내면을 과감히 드러낸다.

 

 

 #1 첫 번째 서랍 : 아버지 야콥 프로이트

 

프로이트의 책상 가장 큰 비중을 자지하는 서랍 하나를 열어 보면, ‘아버지’가 있다. 그의 생애에서 아버지가 차지한 자리는 결코 작지 않다. 프로이트가 인간 사회의 근원을 이룬다고 생각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성(性)적인 환각이 부모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가설에서 시작된다. 즉 아버지를 (어머니를 사이에 둔) 경쟁자로 증오하는 남자아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거세할 것이라며 불안해하는데, 여성의 생식기를 관찰함으로써 거세의 실제적인 가능성을 발견한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경쟁하기를 포기하고 대신에 아버지를 자기와 동일시하고 내면화함으로써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아버지 야콥 프로이트는 보헤미아에서 빈으로 이주한 상인이었다. 장사는 동유럽에서 유대인들이 경제적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었으나 아이가 많은 프로이트 일가는 늘 가난에 쪼들렸다. 어느 날 소년 프로이트는 아버지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는다. 아버지가 젊을 때, 새 모자를 쓰고 거리를 걷다가 한 독일인에게 모욕을 당한 이야기였다. 독일인은 일부러 야콥의 모자를 떨어뜨리며 “이 유대인 놈아, 인도에서 내려가지 못해!” 하고 소리를 질렀다는 것이다.

 

소년 프로이트는 당연히 아버지가 맞서 싸웠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런 불평 없이 차도로 내려가서 진창에 떨어진 모자를 주웠을 뿐이었다. 당시 동유럽에서 유대인이 이런 대우를 받는 건 다반사였으나 프로이트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이 일은 아버지를 ‘절대적이고 완벽한 이상형이었던 남자’로 생각하던 프로이트를 실망에 빠뜨렸고 후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대표되는 그의 정신분석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결국, 아버지와의 개인적 경험과 인상을 토대로 현상을 분석하고 이론을 만든 것이다. 이에 대해 옹프레는 근친상간에 대한 욕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이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화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한다. 따지고 보면 프로이트는 콤플렉스의 전시장과도 같았다. 핍박받는 소수 민족 출신에다가 변변치 못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니 질투와 그로 인한 죄의식 등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2 두 번째 서랍 : 자기검열

 

프로이트는 유명해지기도 전인 1885년 벌써 14년간의 모든 메모, 편지, 논문 발췌문, 작업 중 원고를 일차로 없애버렸고, 이후 같은 자료 파괴 행위를 여러 번 반복했다. 심지어 한번은 젊었을 때 “동성애적 경향”을 이야기할 정도로 절친했다가 결국 절교하게 된 친구 빌헬름 플리스에게 보낸 편지를 플리스 사후 미망인에게서 돈을 주고라도 사들이려 했다. 물론 없애버리기 위해서. 프로이트는 전기 작가들을 골탕 먹이려고 그렇게 없앤다고 짓궂게 농담을 했다. 진심이 무엇인지야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죽은 뒤에 자신을 잘 알지도 못할 것이 분명한 전기 작가에게 편집당할 재료가 된다는 것이 싫었을 수도 있다. 무의식과 의식의 편집권을 둘러싼 투쟁이 전공의 하나인 그가 자신의 삶의 편집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의 삶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남에게 노출되는 것을 매우 꺼려했다. 그래서 말하자면 자신의 삶에 대한 위생 처리를 해 버린 것이다. 생전의 프로이트의 태도를 익히 보아온 존스가 프로이트 사후에 아무리 용기를 내 전기를 써도, 스승에 대한 존경과 그가 내린 무언의 지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3 세 번째 서랍 : 오류, 조작

 

여전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은 제도권 학계에서 완전히 수용되지 못하거나 늘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놀라울 만한 독창성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검증 가능성은 여전한 시빗거리다. 정신분석의 유일한 도구가 언어이고, 대상을 충분히 재현하지 못하는 언어의 한계로 인해 이런 비판은 불가피한 것이지만 지나치게 직관에만 의존한 프로이트의 어처구니없는 추론 또한 분명히 지적되어야 한다.대표적인 것이 프로이트가 분석한 도라의 사례다. 그에 따르면 도라는 자신의 아버지, 아버지를 간호하는 내연녀, 내연녀의 남편 K씨 모두와 동일시하며 동시에 증오한다. 프로이트는 도라와 K씨와의 스킨십에 대해서도 작용(자극) 반작용(흥분)이라는 생리, 물리학적 관점으로만 접근한다. 이처럼 기계적이고 경직된 해석과 가부장적인 권위로 환자의 주장을 묵살하는 독단, 그리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성욕으로 환원시켜 설명하려는 방식은 그의 측근들조차 돌아서게 만든 주요 원인이었다. 그에게 진찰받고 난 1년 후에, 도라의 정신 상태는 더욱 피폐해졌으며 몸이 극도로 허약해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임상 치료에 관한 한 정신분석은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없는 이유다. 수많은 치료 실패와 재발 사례들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프로이트의 환자들에 관한 사례들은 프로이트가 직접 조작하고, 환자를 가상으로 만들어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유명한 환자 중 한 명인 ‘안나 O’가 정신분석으로 치료됐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니었다. 늑대 인간 사례로 알려진 러시아 청년 세르게이 판케예프도 프로이트로 인해 치료된 것이 아니라 92세에 사망하기까지 70년간 10명의 정신분석가에게 치료를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 네 번째 서랍 : 코카인과 담배

 

과거에 코카인이 만병통치약으로 각광받던 시절이 있었다. 주범은 놀랍게도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였다. 그는 아편 중독에 시달리던 동료 의사를 코카인으로 10일 동안 치료한 후 "완전히 해방시켰다"며 코카인을 중독 위험이 없는 기적의 약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코카인은 전 유럽을 휩쓸었다. 그러나 그 동료 의사는 나중에 코카인 중독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프로이트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5년간 코카인을 규칙적으로 흡입하면서 “중독성 없이 지속적 행복감을 제공한다”는 예찬과 함께 주변에 권하기도 했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애연가였다. 죽기 전까지 말 그대로 줄담배를 피웠다. 그로 말미암아 말년에 구강암으로 서른 번의 수술을 거듭하면서도 그는 담배를 결코 놓지 않았다. 치료제로 복용하던 코카인에는 중독되지 않았던 그가 오히려 담배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시가는 그에게 지적인 자극제였고, 프로이트는 그것 없이 정신분석학의 탄생은 불가능했다고 고백했다.

 

 

 

 ♣ “나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프로이트 박물관에 흘러나오는 프로이트의 육성에서 마지막 한 줄의 문장이 인상 깊다. “나의 투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말은 프로이트의 평생을 압축한 것일지 모른다. 실제로 그의 인생은 탄생부터 사망까지 투쟁으로 점철됐다. 그리고 조용해 보이는 이 남자는 무쇠보다 더 강한 의지로 모든 장애물에 맞섰다. 일찍이 프로이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신념을 가진 인간은 무한정 강하며 결코 죽지 않는다.” 실제로 그랬다. 유대인이라는 태생도, 교수의 길을 포기하게 만든 가난도, 정신분석학에 쏟아진 학계의 비난과 공격도, 빈 시민들의 경멸 어린 시선도, 심지어 죽음마저 그를 무릎 꿇릴 수 없었다. 그는 강한 적을 만나면 더욱 강해지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아무리 강철 같은 의지를 지녔더라도 그 역시 한계가 있는 육체를 가진 인간이었다. 무의식을 분석해 인간 심리의 저변을 해석해내고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진 프로이트도 욕망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프로이트의 이론에 따르면 그 자신이 콤플렉스, 신경증(히스테리, 공포불안), 도착증 환자였던 셈이다. 학문적 기여도에 비해 오랜 세월 학계의 변방에 남아있었던 그는 세상이 자신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해 주기를 바랐고 노벨상에 대한 욕심도 남달랐다. 상담용 소파에 누운 프로이트의 이런 이야기를 그 자신이 직접 들었다면 어떤 진단을 내릴까? 분명한 점은 프로이트도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환자였다.

 

미셸 몽프레의 책은 매우 논쟁적이어서 프로이트의 추종자들에겐 상당히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사상가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될 수 있다는 기본적 인식을 전제한다면, 그의 도발적인 문제제기는 프로이트의 생전이나, 또는 그의 사후 줄기차게 따라다녔던 ‘비판’의 연속선에서 이해할 때 유익할 것이다. 물론 이 ‘비판’에 대해서는 프로이트의 후예들이 대답을 해야 하겠지만. 옹프레의 프로이트 평전이 나오더라도 그와 프로이트 추종자들 간의 투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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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3-11-26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어쩐지 털보들의 나날이로군요.

cyrus 2013-11-26 22:56   좋아요 0 | URL
요즘 형님도 수염이 잘 나는가보죠? ㅎㅎㅎ

루쉰P 2013-11-26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여전히 독서에 날을 새우고 진보하는 청년으로 지내고 계시는 군요 ㅎ
너무 오랜만에 와서 인사 드리죠? ㅋ
프로이트도 저에게 상당히 관심이 많은 사람이에여.
저도 항상 저의 무의식에 관심이 많거든요.
공부한다고 책상에 영어 책을 피면 15분 뒤엔 전 정확하게 휴대폰을 들고 웹툰을 보고 있어요...
왜 일까...대체 내 무의식의 무엇 땜에 이럴까...
이런 생각을 곧잘 합니다 ㅋ
여전히 좋은 글이에요 ㅋ 왠지 나중에 교수님 하실 거 같은 포스 ㅋ

cyrus 2013-11-26 22:57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루쉰님.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요즘 저도 프로이트 심리학에 관심이 있어서
<꿈의 해석>도 조금씩 읽어보고 있는 중이에요. 심오하면서도 수긍가는 부분도 있지만,
융 심리학도 공부해볼만 합니다. 저도 이번 학기 졸업반인데 딴 짓하고 싶은 생각이 많아요 ㅋㅋㅋ
 
늑대와 함께 달리는 여인들 - 원형 심리학으로 분석하고 이야기로 치유하는 여성의 심리
클라리사 에스테스 지음, 손영미 옮김 / 이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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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내면이 무엇을 원하고 말하는지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마음의 고통은 사라진다.

 

 

- 칼 구스타프 융 -

 

 

 

 

 

 

 ♣ "당신 때문에 실망했어요!"

 

 

 

 

 

프랑수아 제라르  「프시케와 에로스」  1797년

 

 

영어로 사랑한다는 표현은 'Make love'와 'Fall in love'라고 하는데 '사랑'이라는 뜻을 깊이 표현한 것은 전자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랑을 ‘Amour'(아모르)라고 부르는 유래를 신화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모르는 이성간의 사랑을 뜻하며 로마 신화에서는 큐피드, 그리스에서는 에로스라고 불리는 연애의 신이다. 그는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늘 황금 화살을 갖고 다녔는데 그 화살에 찔리면 사랑에 빠진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뛰어난 미모로 아프로디테의 노여움을 산 프시케를 혼내주러 갔다가 실수로 자신의 화살에 찔려 사랑에 빠지고 둘은 부부가 된다. 큐피드는 자신의 모습을 보려고 하면 영원히 헤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하고 동생의 행복을 시기한 언니들의 부추김으로 프시케는 약속을 어긴다. 그녀의 행동에 크게 실망한 큐피드는 떠나게 되고, 프시케는 남편을 찾아 온갖 시련 속에서 죽음의 위기를 맞게 된다. 큐피드는 프시케를 구하고 아프로디테에게 간청하여 결혼을 허락 받는다. 비로소 프시케는 불로불사의 생명을 얻는다.

 

이 큐피드와 프시케의 신화는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여러 가지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 프시케가 약속을 어긴 것은 사랑의 미성숙과 도전을 의미하고 둘째, 남편의 사랑을 되찾고자 시련을 겪는 동안 프시케의 영혼은 성숙하고 셋째, 그 고통의 시간을 통과한 후에야 진정한 사랑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사랑의 느낌으로 빠져들 때 그의 어떤 부분이 나를 매혹시키는 걸 느낀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진부한 관계’ 혹은 ‘권태로운 관계’로 사랑의 화면이 변경되면 나를 ‘뻥’ 가게 만든 그 부분 때문에 속이 뒤집히는 걸 경험하게 된다. ‘당신이 있어 행복해요!’가 ‘당신 때문에 실망했어요!’로 바뀌는 것이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아마도 쌍방과실이라 봐야 할 것이다.

 

매일 아무 불만, 걱정 없이 마냥 행복한 사랑이라는 것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사랑에 대한 인간의 믿음은 먼지처럼 쌓였다가 털려나간다. 그리고 먼지가 다시 내려앉는 것처럼 믿음은 헛되이 되풀이된다. 서로의 인생에 그늘을 드리우지 않고 저마다의 완벽한 나날을 향유하는 사랑. 하지만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상상이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행복과 또 꼭 그 만큼의 고통을 가지고 태어나니까. 물론 실연이 주는 고통의 크기에는 한계가 없고 인간의 마음은 부서지기 쉽다. 이별은 어느 한 순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갈등이 쌓이면서 끝내 폭발하는 결과물이다. 그런 힘든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이별 전후의 얼마간은 상대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한다. 다 그 사람 잘못 같고, 함께 했던 지난 시간이 무의미해지면서 허무감이 든다.

 

 

 

 ♣ 진실을 찾으려는 야성적 본능의 호기심

 

만약에 실연당한 여성이 내면의 ‘야성’을 유지하는 여걸이었다면 고통의 시간을 의연하게 대처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심리분석학자이자 심리 상담 전문의인 클라리사 에스테스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여성 본연의 야성을 되찾자고 주장한다. ‘야성’, ‘늑대’라는 단어는 남성에게 어울리는 고유 명사다. 반대로 여성은 ‘여우’라고 말한다. 클라리사 에스테스는 융의 분석 심리학을 사용하는 ‘아니무스’(Animus, 여성의 무의식 속에 들어 있는 남성적 요소)를 근거로 멸종 위기나 다름없는 늑대를 부른다. 본래 여성(woman)의 어원은 늑대(wolf)에서 유래했으며, 여성과 늑대는 선천적으로 사랑이 넘치고 적응력과 직관력이 뛰어나며 씩씩하고 용감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어머니 늑대'의 원형을 세계 민담이나 설화, 동화에서 찾고 있는데 프시케의 모습에서도 ‘어머니 늑대’의 원형을 볼 수 있다. 자신의 모습을 프시케에게 절대로 보이지 않으려는 에로스는 ‘어머니 늑대’ 특유의 호기심을 억누르는 존재다. 프시케 입장에서는 남편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에로스는 자신의 정체를 알려는 프시케의 호기심을 잊기 위해서 그녀를 왕비 못지않은 편안하고 화려한 생활을 누리게 해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프시케의 언니들은 자신들보다 잘 살고 있는 프시케가 부럽고, 질투한다. 그녀들은 에로스가 프시케에게 한 약속을 어기도록 부추기는데 프시케의 마음에 숨어있던 야성적 호기심의 본능을 깨우게 만든 셈이다. 프시케는 경고의 위험성을 알면서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프시케의 진짜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동화 <푸른 수염> 삽화, 귀스타브 도레 그림

 

 

푸른 수염은 아내에게 진실을 깨닫는 데 필요한 열쇠만 못 쓰게 막는다. 이는 그녀의 여걸, 즉 일의 진상을 알고자 하는 여성의 본능을 없애는 행위다. 야성적 직관을 잃은 여성은 심각한 위험에 빠진다. 푸른 수염의 이 말에 복종하는 것은 정신적인 자살 행위와 같다. 그 무서운 비밀의 문을 열어야 비로소 자신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73쪽)

 

 

야성적 호기심을 발현하는 프시케의 행동은 클라리사 에스테스가 ‘어머니 늑대’의 원형을 찾아 낸 이야기, <푸른 수염>의 아내와 비슷하다. 푸른 수염은 새 신부인 아내에게 자신에게는 정말 중요한 열쇠 하나를 맡긴다. 그 열쇠는 그동안 자신의 전 아내들을 잔인하게 고문하고 살해한 ‘죽음의 방’이었다. 푸른 수염은 외출하면서 아내에게 자신의 성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 하는 조건을 달면서, 절대로 ‘죽음의 방’ 열쇠만큼은 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그러나 푸른 수염의 아내 역시 남편의 약속을 어기게 된다. 아내는 언니들과 함께 수수께끼의 열쇠에 맞는 방을 찾아보는 게임을 같이 하는데 진실을 찾으려는 야성적 본능이 드러난다.  

 

 

 

 ♣ ‘삶/죽음/삶’의 여신을 받아들인 프시케

 

다시 프시케와 ‘여걸’ 이야기로 되돌아가 보자. 결국 프시케는 그동안 궁금했던 에로스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야성적 본능의 대가는 에로스가 그녀를 떠나버림으로써 이들의 사랑은 파멸에 이르고 만다. 산산이 깨어진 사랑, 즉 이별과 실연을 겪게 되면 고통스러운 감정의 사이클을 겪는다. 처음에는 분노였지만, 그 다음은 ‘차였다’는 모멸감, 그리고는 ‘또 누군가를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괴로운 나날을 보낸다. 문득 옆에 아무도 없다는 허전한 생각도 들고, 초라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에드바르트 뭉크  「여자의 세 시기 (스핑크스)」 1894년

 

 

여성은 육체를 통해 삶/죽음/삶의 주기와 아주 가까이 살고 있다. 특히 사랑하고 창조하고 믿는 천부적인 본능을제대로 보전한 이들의 경우 모든 생각과 충동이 자연스러운 리듬에 따라 생겼다가 사라진다. (180쪽)

 

 

 

불처럼 뜨겁게 활활 타오르는 사랑이 이별 후에 식어가고, 먼지가 된 사랑의 재를 털어내지 못하는 감정의 사이클은 우리 삶의 주기와 비슷하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지만, 다시 한 번 새로운 삶이 탄생한다. 클라리사 에스테스는 이런 삶의 주기를 ‘삶/죽음/삶’의 여신이라고 부른다. 여걸은 ‘삶/죽음/삶’의 여신을 받아들일 줄 알고, 그걸 볼 줄 안다.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삶의 주기를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인한 늑대처럼 말이다.

 

‘사랑’(Amour) 없는 ‘영혼’(Psyche)은 죽은 거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에로스를 떠나보낸 프시케는 절망하지 않았다. 그녀 곁에는 '삶/죽음/삶'의 여신이 있었다. 에로스는 다시 만나기 위해 자신을 싫어하는 아프로디테의 과제를 마다하지 않는다. 여러 차례 위기를 맞게 되지만 프시케는 신의 계락을 두려워하지 않고, 강인한 인내력으로 고난을 극복한다. 에로스와의 재회는 진정한 사랑의 부활이다. 즉 영혼이 다시 살아남은 것이다. 완전한 사랑을 누리기 위해서는 언젠가 마주하게 될 이기적인 욕심과 망상을 포용하고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 클라리사 에스테스는 현대사회에서 ‘여걸’이 사라지면서, ‘삶/죽음/삶’의 원형 또한 그 의미가 왜곡되고 퇴색되었다고 말한다.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삶/죽음/삶’의 주기를 이해하고 유지해야 된다.

 

 

 

 ♣ 잃어버린 야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여걸을 되찾고 싶거든 덫을 피하라.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도록 본능을 단련하고, 마음껏 뛰고, 소리치고, 원하는 것을 차지하라. 또 그것에 대해 모든 걸 알아내고, 눈으로 마음을 표현하고, 모든 걸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빨간 신을 신고 춤을 추라. 단, 그 빨간 신은 반드시 직접 만든 신발이어야 한다. (250쪽)

 

 

여걸은 훌륭한 여성의 지지자다. 마음보다는 머리로 움직이고, 충동적이기보다는 이성적일 것이며, 상처받지 않으며 그 자체로 완전함을 추구할 것이다. 결국 잃어버린 야성을 되찾기 위해서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의 문제가 되는 거다. 야성을 억눌리는 덫이 외부에 있는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될 수도 있다.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자신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의 문제이다. 세상에 바라보는 가치관을 바꾸고 자신의 내면을 바꾼다면 삶을 바꾸는 데 일조할 수 있다. 그것이 행복에 기여하는 것이다.

 

내 안의 호기심을 발현하여 다양한 체험을 마다하지 않고, 외로움과 고독, 실연에 의한 상처도 모두 원초적 에너지로 승화킬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홀로 밤을 지새우는 여성들이여! 무의식 속에 숨어있는 여걸, 즉 원초적 야성과 본능을 살살 꾀어내시라! 그러면 내 안의 무기력한 자아는 오늘로 죽을 것이다. 이제 늑대와 함께 춤을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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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20 17: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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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없는 에세이 - 지적 쓰레기들의 간략한 계보
버트런드 러셀 지음, 장성주 옮김 / 함께읽는책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 금성에서 온 진보주의자, 화성에서 온 보수주의자

 

혹시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공자의 사상을 현실과 동떨어진 케케묵은 보수 이념일 뿐이요, 어느 박물관 한 귀퉁이의 골동품처럼 여길지도 모른다.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시절 중국의 개혁을 부르짖던 집권세력은 공자의 사상이 봉건주의와 자본주의의 상징이라며 그를 대대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나 죽의 장막 속에서 ‘악의 뿌리’인 양 뽑히고 땅바닥에 패대기쳐졌던 공자는 오늘날 다시 살아나 중화인민의 추앙을 받고 있는 반면 요란했던 문화대혁명은 오히려 ‘반동의 역사’요 ‘잃어버린 세월’로 비판받고 있으니 얼마나 역설적인가. 공자가 부활한 것은 중국사회가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시장경제를 추구하면서 겪는 가치관의 혼란과 사회적 갈등을 치유할 필요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 등 조화를 바탕으로 사회통합의 윤리를 강조해온 공자사상의 의미가 재평가된 것이다.

 

성인 반열의 공자 같은 인물과 사상에 대해서도 시대와 정치상황에 따라 그 평가가 극과 극으로 바뀌는 판이니, 현실 정치인에 대해서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권좌를 떠난 지 오래인 이승만 또는 박정희에 대한 평가도 크게 엇갈린다. 주된 이유는 바로 앞서와 같은 이념적 잣대 때문이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의 노선이란 서로 다른 잣대와 색안경을 갖는 것이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기 마련이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밥그릇이 걸린 문제라는 생각 때문에 더욱 치열해지지만 근본적으로는 이념의 차이 때문이다. 이념이 다르니 인간과 사회를 보는 시각, 정책과 시스템도 달라진다. 미국의 진보주의자 조지 레이코프는 『도덕, 정치를 말하다』에서 보수주의는 엄부자모(嚴父慈母)의 가정, 진보주의는 자부자모(慈父慈母)의 가정에서 연원하는데 양측의 모든 차이는 여기서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보수는 자기관리·도덕·권위·자율·질서·동질성·자기이익을 중시한다. 이익추구는 자제력을 이용하여 자립을 이루려는 방식이다. 반면 진보는 다른 사람을 위한 감정이입(측은지심)·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사회적 연계·양육·공정함·행복을 중시한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는 우선 내 자신이 행복해져야 하고, 사회적 연결을 발전시켜야 한다.

 

 

 

 ♣ 교조주의가 정치와 무슨 상관인가?

 

어느 사회나 진보와 보수가 있게 마련이고 그들의 조화로운 공존이 역사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의 현실은 이미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암울하게 만든다. 이런 시대를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진보냐 보수냐를 편 가르는 정치권의 이념의 양극화다. 이러한 이념의 양극화는 정치적인 경쟁과 논쟁의 수준을 넘어 우리 사회의 균열과 갈등을 조장하고 있으며, 국가 정체성의 근간마저 흔들고 있다.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두고 진보, 보수의 경합을 벌이는 현 상황도 역사적 진전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대결이 이념양극화 수준에 이르렀다면, 더 이상의 ‘진전’이 아니라 ‘정체’이며, 편집증에서 벗어나자고 분열증을 앓는 격이다.

 

이념 갈등에 의한 분열 증세의 가장 큰 특징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진보는 보수를 수구 부패 독재세력, 보수는 진보를 친북 무능 교조주의적 분열세력으로 낙인찍고 이런 판단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보수가 이룩한 국가발전 및 경제성장, 국가경영능력은 안중에도 없고 진보의 독재 타도 및 민주화, 권위주의불식 등도 무시된다. 서로를 비도덕적이라고 비난한다. 이런 행태는 정치인들 스스로를 비도덕적으로 보이게 하고 깊은 논리적 대화나 토론을 희석시킨다.

 

한국 정치인들은 정치에 있어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면서도 실제는 등한시하고 있다. 교조주의적 이념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통 부재의 정치를 하고 있어 산적한 국정 현안이 여야 간의 대화와 타협 없이 표류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버트런드 러셀은 『인기 없는 에세이』에 수록된 ‘이 모든 게 정치와 무슨 상관인가?’라는 글에서 교조주의와 정치의 불편한 관계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1947년에 쓰인 글답지 않게 교조주의에 대한 러셀의 경고는 교조주의의 위험성을 망각한 채 대립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유효하다.

 

거듭 말하는 바이지만 교조주의 체제에는 두 가지 단점이 있다. 하나는 거짓 믿음과 중요한 현실 문제를 결부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문제의 광신주의를 공유하지 않는 이들에게 극심한 적의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정치와 무슨 상관인가?」59~60쪽)

 

러셀이 보는 ‘교조주의자’는 광신자다. 이념적 광신자들의 위세는 실용성과 역사 보존 및 전 세대에 대한 존경을 앞지른다. 순수에 관한 광신자 본인들의 견해만 중요할 뿐이다. 이들은 자신의 신념이 먹혀들어가지 않거나 무시되면 화를 내고 상대를 부질없이 적대시한다.

 

 

 

 ♣ 건전한 자유주의자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 개선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인간의 ‘인정받고 싶은 욕망(튜모스; Thumos)’을 역사의 원동력이라 했다. 헤겔의 말대로 그 같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은 정치나 종교와 같이 사람들의 신념체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곳에서 돋보이게 드러난다. 꼭 자신의 주장이 인정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의견으로 상대를 강박하고 남의 말은 경청하지 않으며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욕망은 정치나 종교와 같이 사람들의 신념체계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곳에서 돋보이게 드러난다. 꼭 자신의 주장이 인정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의견으로 상대를 강박하고 남의 말은 경청하지 않으며 인정하려 들지 않기 때문에 싸움박질로 좋은 얼굴끼리의 대화마저 급기야는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헤겔은 어떤 명제인 테제(These)가 나왔을 때 그것에 반하는 안티테제(Anti-these)가 나와 서로 대립하며 그 같은 대립이 지양되었을 때 신테제(Synthese)’에 이른다고 했다. 역사가 변증법적인 과정을 부단히 되풀이 하면서 발전한다고 하는 견해는 확실히 그럴 듯하다. 그렇지만 헤겔이 말하는 정-반-합의 역사 변천과정은 결코 순조로운 것이 아니다. 한 고비 한 고비를 넘을 때 사람들은 피를 흘리고 사회질서가 뒤집히는 혼란과 고통이 수반되는 잔인한 과정이다. 이념 대립과 갈등은 정파들에 의해 정권 쟁취를 위한 탐욕의 방편으로 이용될 때 폭발 임계점을 넘어서기 쉽다.

 

러셀은 그러한 교조주의의 함정에 벗어나 인류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철학을 존 로크의 ‘경험적 자유주의’라고 말한다. 경험론이 진지하게 추구되고 완결되는 것은 성찰과 자기 개선을 통해서였다. 건강한 자유주의자는 자기 의견을 독단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광신자, 교조주의자의 특징이다. 자기 의견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새로운 증거가 나오면 언제든지 철회할 수 있어야 한다.

 

 

 

 ♣ 초보 사회인을 위한 철학

 

확실성을 추구해온 근대적 합리성은 불확실성의 증폭에 직면하고 있다. 인간이 발견한 진리는 언제나 부분적이고 가설적인 것에 지나지 않음에 유념하는 탈근대적 지성이 요구되고 있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성향 가운데 하나로 ‘판단유보 능력’이라는 것이 지목된다.

 

러셀은 1950년에 집필한「초보자를 위한 철학」이라는 글에서 이미 ‘판단유보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런 능력을 배울 수 있는 유일한 학문이 바로 철학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모호한 영역을 끌어안을 수 있는 판단력, 객관적으로 검증된 결과라 할지라도 의문 부호를 붙이면서 숨겨진 또 다른 가능성을 탐색하는 지적 호기심이 있어야 한다. 열린 감각, 열린 사고, 열린 경험이 있어야만 올바른 습관이 길러진다. 이것이 현실의 경험에 기초해 올바른 습관과 삶의 신념을 열심히 다지는 지성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나의 의견이 틀렸다고 해서 불안에 떨거나 나와 상반되는 입장에 격노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의견이 자명한 진리라는 확실성만 믿은 채 상대방을 열 받게 하고 신념이 지나치면, 대화 불능 상태인 문제 많은 초보 사회인에 불과하다. 러셀의 표현을 빌려서 좀 더 심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지적 쓰레기'다. 어떤 진리라고 주장되는 것도 영원히 옳을 수 없고, 그것에 반대되는 진리가 언제든 나올 수 있으니, 오히려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더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닐까? 자신이 발견한 진리가 한 줌 밖에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관찰하고 실험하며 경험에 기초한 신념을 쌓아가는 것이 더 낫고 양자에게는 이롭다.

 

사람마다 이념적 성향이 다를 수 있고, 또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면서 합리적인 지향점을 찾아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민주국가에서는 나와 다른 도덕관도 인정하고 남과 나의 잘잘못을 함께 봐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거기다 내가 지면 내 밥그릇이 깨지는 것으로 알기에 더 싸운다. 자신들의 교육이념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몹쓸 사람인 양 매도하고 흑백논리로 재단하는 것은 과연 옳은 태도일까. 한국사회도, 정치인들도 이제는 편향된 이념노선과 독선적 교조주의의 낡은 외투를 벗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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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저받 2013-11-18 0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철학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알고 싶은 사람인데 리뷰 보니 이 책 재밌어보이네요. 현 사회의 나쁜 점을 개선하려는 진보나 현 사회의 좋은 점을 지켜가려는 보수, 두 이념 모두 중요하고 가치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개인의 권력이나 욕심을 채우는 데 이념을 사용하면서 사회적인 대의를 지키는 것처럼 합리화시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함.. 철학이나 사회학 공부하시는 분들은 참 말빨이 좋으신 것 같아요^^ 잘봤습니다 무튼 위시도서리스트에 올려놔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