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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자유>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책을 읽을 자유 - 로쟈의 책읽기 2000-2010
이현우(로쟈) 지음 / 현암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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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학생회장의 단식 투쟁

신문을 보다가 아주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하였다. 이름만 들어면 알만한 K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회장이 학교 단과대에서 운영하고 있는는 교육 제도 프로그램에 반발하여 며칠째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일반적으로 대학교 학생 시위라고 하면 대부분 등록금 제도 인상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본 이 기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학생 시위 내용이었다.  

K 대학교 정경대에서는 소속 학생들의 인문적 소양을 기르기 위한 목적으로 학과별 필독도서와 추천도서 그리고 학생이 결정한 도서들을 종합하여 2010학년도 신입생부터는 총 12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게 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정경대 소속 학생회장이 이 교육 제도 프로그램에 반발하여 1인 단식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시위 중인데 횟수로는 17일째라고 한다)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학생회장은   

"독서 권장 프로그램를 이수하지 못하면 장학금 신청이나 해외 연수 프로그램 등에 지원하지 못하게 하는 제한 규정이 있다"  "책을 읽기 싫다는 게 아니라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면서까지 독서를 강제하는 게 잘못됐다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학생회장의 주장에 대해서 정경대학 측에서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학생 소양에 필요한 책을 읽자는 교육 목적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강제성은 피할 수 없다"며 "학생들 의견을 반영해 추천도서를 4권으로 줄이고 우수이수자는 장학금 신청 때 인센티브를 주기로 했다" 면서 독서 권장 프로그램의 목적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장했다.  

신문상에서는 이 내용에 대해서 크게 중점적으로 보도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 기사 내용이 흥미로웠다.  내가 다니는 학교도 아닌데도 이 문제의 상황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졌다. <책을 읽을 자유>를 쓴 '로쟈' 이현우 씨가 말했듯이, 이것도 어떻게 보면 어떤 주제이든지 간에 '조사' 하고 '탐구' 하는 싶은 고질병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를 신문 기사자체로만 보는 것을 떠나서, 직접 K 대학교 정경대 게시판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 학생회장, 그 학장의 사정

학교 게시판에는 학생회장의 단식 투쟁에 대한 내용으로 시끌벅적하고 있었으며 학생회장의 시위에 대해서 찬반 논란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 논란의 중심에는 이번 사태에 대한 학생회장이 쓴 장문의 글도 올려져 있었다.    

학생총회에서는 수 차례나 정경대 학장과의 면담을 시도했고, 250명의 학생의 서명이 있는 독후감 제출 거부 서명서를 제출을 해도 학장의 답변은 냉담했으며 학생들의 태도가 독서가 싫어서 투정부리고 있다면서 면담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회장은 이번 시위의 목적은 인문학적 가치가 살아 숨쉬고 학생들의 자기 결정권이 존중받는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1학년 학생대표들이 학과실로 불러들이는 것이 마음 아프며 독단적인 선택이지만 어쩔 수 없이 단식투쟁을 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 학교 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학생회장의 글 http://community.khu.ac.kr/forum
 

K 대학교 사이트의 정경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독서 권장 프로그램에 대한 학장, 학과장의 입장에 대한 공지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공지사항에 대한 내용을 발췌해 소개해본다.  

   
 

 

 학장과 학과장 일동은 학생회장과 몇몇 학생들이 게시한 대자보들에 현재 본 사안과 관련하여 진행되고 있는 내용들이 심히 왜곡되어 전달되고 있어, 우리 정경대 학생들이 사실과 동떨어진 인식을 하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매우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이에 프로그램 도입 초기부터 지금까지 진행되어온 많은 회의와 토의의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 일자별 회의 주제와 내용 요약

 9월 15일 : 정경대 학생회 주관 학생총회 실시

 9월 17일 : 각 학과 1학년 대표 행정실에 건의사항 전달
- 프로그램 취지 동의하지만, 장학금 신청금지 조항 폐지, 다양한 수준의 책 선정, 독후감의 분량(띄어쓰기 포함 1,500자) 조정, 프로그램 이행 기간 연장 

 10월 4일 : 학장 주재 학과장 회의
- 1학년 대표 건의사항 논의 : 자기추천도서를 1권에서 4권으로 늘려 학생의 도서 선택의 폭을 넓히고 독후감 분량을 띄어쓰기 포함 1,800자로 축소

 10월 5일 : 정경대학장 각 학과 1학년 대표 면담
- 학과장회의에서 논의된 수정안 전달

 10월 11일 : 정경대 학생회장 및 부학생회장 단식 시작
- 교양교육프로그램 미이수시 적용되는 불이익 폐지 요구

 10월 14일 : 학과장 및 각 학과 1학년 대표 면담 / 학장주재 학과장 회의   
- 2차 수정안 협의 및 협의 결과 전달, 중간고사 이후 각 학과 1학년 총회 개최 후 재논의 하기로 결정
 

 출처: http://khsma.khu.ac.kr/contents/bbs/bbs_content.html?bbs_cls_cd=001001008&cid=10102911465733 

 

 
   

학생회장이 게시판에 올린 글은 10월 21일에 작성되었으며 정경대 사이트에 있는 공지사항은 10월 29일에 작성되었다.  아마도 교육 제도 프로그램에 대한 논쟁이 뜨거워지자, 정경대 측에서는 식을 줄 모르는 논쟁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정경대 1학년 학생대표들과 논의하기로 결정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잘못된 교육환경이 낳은 '독서' 논쟁

정경대가 도입한 프로그램은 학생들에게 독서를 통해서 대학생으로써 교양을 쌓는 동시에 이에 대한 참여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학생회장은 독서 권장 프로그램에는 학생들의 자율권을 박탈하며 1학년 학생들에게 독서에 대한 자유를 보장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K대 학생회장의 글이나 정경대 공지사항으로나마 이 논쟁이 누구 말이 맞다고는 단정짓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단지 독서에 대한 자유를 찾기 위해서 며칠 동안이나 단식투쟁을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 든다.  추운 날 아무 것도 먹지 않는, 자신의 몸이 망가지게 하여서 자신의 주장에 대해 동정을 요구하기 보다는 자신이 왜 독서 권장 프로그램에 반대하는지 정경대 학생들, 그리고 정경대 교수들과 진지한 대화를 해보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무턱대도 교육 제도를 도입하지 말라고 반대하기보다는 독서 교육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여 좀 더 나은 독서 권장 프로그램이 되도록 개선하는 쪽으로 진행하면 지금과 같은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 오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다 함께 토론을 하는 것이 학생회장이 바라는 인문학적 가치가 살아 숨쉬는 일, 그리고 플라톤이 자신의 저서 <향연 Symposion>에서 말하고자 한 생활 또는 학술상의 중요한 문제를 공동의 장소에서 철저하게 토론하고 해결하는 것이 심포지엄의 정신일텐데 말이다.   

그리고 정경대 학장이 학생회장의 면담을 거부하는 것도 옳지 않은 처사이다. 단식투쟁 시위가 계속되자 1학년 학생대표들만 불러 모으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도 아니다.  독서 권장 프로그램이 1학년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제도라고 하지만 이제 막 고등학생의 티를 벗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학생들이 이 회의에 진자하게 고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전 학년 학생대표들, 독서 교육에 어느 정도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하여 전방위적으로 문제 해결의 돌파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결국, 이 해프닝은 '독서' 라는 것을 강제로 해야될 것이냐, 안 해야되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 뿌리 깊게 자리잡은 교육 환경 구조상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문제로 봐야할 것이다.  

   

 

  독서를 외면하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 제도와 환경

<책을 읽을 자유>의 '독서 강국으로의 길' 이라는 글에서 이현우 씨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책을 안 읽는 이유가 우리나라 사회적 제도와 여건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독서' 와 '공부' 는 분리된 상태이다. 교과서에 수록된 글을 읽는 것도 어떻게 보면 학생들이 인식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하는 독서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이는 학생들이 자기 스스로 책 속 문장을 이해하고 생각하는, 올바른 독서 방법은 아니다.  

교실에서 교과서를 펴게 되면 평소에 책을 읽는 것처럼 정독하고 스스로 글을 쓴 저자의 생각에 대해서 생각할 수 없다.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최인훈 작가의 <광장>을 읽는다고해서 소설 속 주인공 명준의 죽음을 통해서 학생들이 직접 이데올로기가 낳은 인간성 상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소설 속 주인공 명준의 죽음에 대한 의미를 그대로 주입하여 앞으로 그들이 치게 될 학력고사나 수능 시험에서 좋은 점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중요 내용으로만 생각할 뿐이다. 

그러다보니, 중. 고등학생 통틀어 6년이라는 청소년 시기에는 독서를 읽을 시간이 없다. 이들을 유혹하는 컴퓨터 게임이나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것에 빠지는 청소년들의 정서를 자극하는 것들이 있기에 독서를 멀리하는 것도 있지만,  정작 정신적으로 유익한 활동인 독서를 배움의 장소인 학교가 외면한 것은 큰 문제이다.  학생들에게는 오직 학교 시험과 수능 시험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 청소년들이 자유롭게 독서를 할 수 있는 여건이 그리 마땅치가 않다.  멋드러진 교내 도서관에 수많은 장서를 보유한다고 해도 학생들이 마음 편히 책을 읽을 수가 있을까?  수능시험 걱정이 눈 앞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독서하는 능력을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책을 읽지 않게 된다. 학생들의 독서하는 습관을 유도하기 위해서 대학교 내에서 권장도서 100권 목록을 만든다고 해도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읽을 리 만무하다.  대학교에 와서도 학생들에게는 책을 읽을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막 입시 전쟁터에서 탈출한 고등학생들이 대학교에 오자마자 향하는 것은 저 넓은 캠퍼스가 아니라 취업 전쟁터이다.  고등학생 때 수없이 끼적거리던 수학의 정석, 맨투맨 영어문제집을 뒤로 한 채 이제는 TOEIC 문제집과 공무원 시험 교재를 펼치고 있다.  

그래서 K 대학교 정경대와 같은 경우네는 학생들의 독서 향상을 위해서 단순히 권장도서 목록만 들이내미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나은 실질적인 방법이랍시고 독후감 쓰기까지 권장하고 있는데, 오히려 학생들에게는 독서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소지가 있다. 지금 취업이 중요할 판에 여유롭게 책 읽고 독후감이라니?  장학금 인센티브 때문에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여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래서 대학생들이 책을 읽게 되는 단기적인 효과는 있겠지만 독후감 활동이 추가된 독서 권장 프로그램 역시 학생들에게 독서 활동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드는데 그 장기적인 효과를 주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책을 읽을 자유가 없는 우리나라 국민  

이현우 씨는 이런 고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책으로 사이토 다카시의 말을 빌어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대학입시나 입사시험에도 독서력을 묻고 평가하는 방식이 도입되는 것을 고려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런 제도를 통해서 학생들이 멀리하고 있던 책을 가까이 하겠지만 이들이 평생동안 책을 읽게 한다는 보장이 없다.  우리나라에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독서능력평가가 실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특목고 입학 목적 및 특별활동 기록에 의의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형적인 사회 환경 때문에 영영 책 한 권 제대로 읽을 수 없는 불행한 민족인 것일까?   정부와 교육 기관에서는 학생부터 어른들까지 다양한 연령의 국민들이 독서 습관을 형성하기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제도들을 도입하고 있으며 지금도 실시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의 독서 수준은 선진국의 독서 수준과 비교하면 많이 낮은 상태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유치원 때부터 조기교육으로 영어 공부한다고, 책을 외면하고,  

초.중,고등학생이 되면 책을 읽고 싶어도 학교 시험 그리고 수능시험에 집중하느라, 책을 외면하고, 

대학생이 되면 취업 준비하느라, 책을 외면하고, 

그나마 생활이 보장된 직장을 구했지만 자식들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리고 가족들이 살기 위한 집을 마련하기 위해 고생해서 일을 하다보면, 책을 또 외면하고. 

정년 은퇴하여 이제 좀 편안해진 여생에 그동안 읽고 싶었던 책을 읽으려고 해도, 예전보다 많이 떨어진 시력 때문에 책의 문자를 읽지 못한 상황이라면. . . . .   너무 분하고 억울할 일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책을 잘 읽지 않은 것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들 특유의 독서 기피증, 그리고 현실과 동떨어진 독서 권장 프로그램과 권장도서 목록의 양산으로만 원인으로 몰아세우기 보다는 우리나라가 모든 사람들이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땅인지 그 근본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기념관 벽면에는 'Freedom is not free' 라는 글귀가 새져겨 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책을 읽기에는 척박한 지대이지만 환경 탓만 할 수는 없다. 힘들겠지만 우리 스스로 책을 읽을 자유를 찾아보고 조금이라도 책을 읽으려는 노력을 가져야 한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자유 역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 기사 출처  [조선일보]  2010년 10월 23일자  

http://blog.naver.com/ndolphin?Redirect=Log&logNo=20060149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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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11-06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참...착잡한 소식이군요.소설가 이호철 씨가 어떤 강연에서 우리나라 청소년 시절 오로지 교과서 참고서만 읽고 독서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에 이 뒤처짐을 나중에 메울 방법이 없다고 한 적이 있었지요. 특별히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한 우리나라는 고졸학력자와 대졸학력자의 교양차이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겁니다.

cyrus 2010-11-06 22:20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하면서도 비록 저희 학교는 아니지만,
잘못된 교육 제도와 환경 때문에 '독서' 라는 좋은 활동 가지고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니,, 씁쓸했습니다. 그렇게 큰 논쟁은 아닐텐데
말이죠.

다이조부 2010-11-06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에는 고려대학 이야기 인줄 알았어요. 요즘 들어 고려대학 활동이 참 다양하다

싶어서 혀를 찼는데, 졸업생도 모교의 행태에 관하여 부끄러워하는 것을 들은적이.....

근데 검색해보니까 경희대 이야기 이네요.


cyrus 2010-11-06 23:28   좋아요 0 | URL
신문에서는 크게 떠들지는 않지만, 학교내에서는 시끄러운거 같더군요,
게시판에는 학생회장의 시위에 부정적으로 보는 쪽이 많더라고요,
하긴, 단식투쟁은 좀 오바인 것도 있긴합니다.

반딧불이 2010-11-07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을 '책을 읽을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로 바꿔읽으니까 저는 찔리는 구석이 많네요. 늦잠자고 일어나 아점겸 한끼먹고 저물녘에 피자한판으로 때우고 청소도 안하고 책으로 벽을 쌓고 있는 제 꼴이 보여서요.

cyrus 2010-11-07 13:54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말은 저렇게 했지, 실상은 독서보다는 TV 보고, 주말 저녁에는
친구 만나러 가고, 이리저리 읽어야 할 책이 미뤄질 때가 많답니다.
바쁜 일상에 치이고, 주위에 각종 해야될 일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가까기하기가 어려운거 같습니다.

양철나무꾼 2010-11-07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상누각이라는 말이 떠올라요.

저희 아들의 경우,초등학교 때는 화려한 독서와 독후감 쓰기를 자랑했는데,
중학교 들어가더니 한달에 책 두권을 겨우 읽어요.
그중 한권은 필독서.

저 때는 넘쳐나는 책을 다 읽을 시간은 없고,독서평설을 봤던 기억이 있어요.

다이조부 2010-11-07 09:23   좋아요 0 | URL


ㅋ 저도 학창시절에 독서평설을 용돈으로 구입해서 사 봤던 기억이

나네요. 주전머리 할 돈도 마땅치 않았을텐데 말이죠 ㅎㅎ

cyrus 2010-11-07 13:57   좋아요 0 | URL
그나마 초등학생 때는 책을 읽게 되지만, 중학생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입시 전쟁에 입문하는 레벨(?)이니깐
독서가 멀어지는 거 같네요. 제가 중학생 때는
그렇게 고등학교 입시에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은 환경이라
어느 정도 책을 읽을 시간이 많았었는데,, 요즘 학생들은
학원 다니느라, 공부하다보니 책을 멀리하는거 같네요.

비로그인 2010-11-07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책을 몇 권 읽는 것도, 어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저는 더 중요한 것은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리해보고 그 책에 대해 비판할 점이나, 더 발전적으로 방향을 생각해 보는 것도 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제가 받아온 학교 교육에서는 그런 건 아예 해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대학을 가서도 막상 그런 자리가 있어도 입을 다물게 되고, 사회에 나오면 바쁘고 힘들어서 사정이 여의치 않게 되다 보니 깊이 생각해야 할만한 책들이 점점 외면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제 스스로 정리를 더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들긴 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의 "20대때 무조건 많이 읽어라" 하는 말을 그 나이에 들은 것이 꽤나 다행스러워지네요~

cyrus 2010-11-07 22:3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책 한 권 다 읽고 덮는것보다는 다시 한 번 내용을 곱씹어보고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정리하는 것도 좋습니다.
독서 토론 모임을 하고 있는 현상이 있긴 하지만. 바람결님 말씀대로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사정이 여의치 않은게 흠이죠.

교고쿠도 2010-11-08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음, 저는 고등학교때 몰래(?) 대여점에서 이상문학상 수상집이나 그 외의 순문학 계열의 책들을 빌려 읽었습니다. 그때는 굉장히 가족들에게 눈치가 보이는 시절이었기 때문에(공부는 안하고 이상한 책만 읽는다고), 저런 식으로 몰래 읽었지만 아무래도 책읽기는 제 숙명인듯 합니다. ^^

cyrus 2010-11-08 15:48   좋아요 0 | URL
ㅎㅎ 대여점이나 대형서점에서 몰래 읽기 스킬..^^
독서하는데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거죠.
저도 몰래 읽어보려고 하지만, 저 같은 경우에는 집이나
도서관에서 주로 읽다보니, 적응이 쉽게 안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교고쿠도님은 독서가 숙명이다보니 그런 스킬이
자연스러운거 같습니다.

비로그인 2010-11-12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가 책을 많이 읽지 않지만 교과부에서 강제로 책을 읽게 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이 글은 제가 우리아이들이라는 잡지에 쓴 글입니다.


꼴통과학기술부

글쓰기 강연을 하러 경남 창원시를 갔다. 강연을 듣는 분들은 모두 어린이책시민연대라는 단체 회원이다. 창원에 사는 분들도 있었지만 진해, 부산, 울산, 남해, 멀리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다. 대단한 정성이다.

어린이책시민연대는 학교, 시설 같은 곳에서 책 읽어주기 활동과 좋은 책 보내기 사업, 학교도서관사서도우미 활동, 어린이독서관련 초청강연회도 여는 활동을 하면서 책 읽는 문화를 만들어 가고 어린이 독서 환경과 관련해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는 일을 하는 단체다. 최근에는 일제고사반대 1인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요즘에는 교육과학기술부(교과부)에서 시행하려고 하는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을 반대하는 운동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책을 좋아하는지라 독서인증제가 궁금했다. 도대체 독서인증제가 무얼까? 책을 읽은 것을 인증한다? 우리나라는 ‘기가막히고코가막히는’ 발상을 하는 허접한 귀신들이 너무 많다. 도대체 처음에 이런 희귀한 발상을 한 단체는 누구였을까? 그 단체는 듣보잡(듣도보도못한잡놈)이었던 ‘전국독서새물결모임’이다. 이 단체는 2000년 2월 결성됐고, 2002년 7월에 교육인적자원부(현재 교과부)에서 사단법인으로 인가를 받았다. 2001년도에는 교육인적자원부 주관 전국 단위 교과교육연구회 활동에서 최우수 연구회로 선정됐고, 2003학년부터 지금까지 우수교과연구회로 선정됐다. 교육인적자원부는 현재 교육과학기술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교사들을 쫓아 낼 정도로 희안한 짓을 많이 하는 교과부에서 뽑은 우수교과연구회니 어떤 단체인지는 뻔할 뻔 자다.

2004년 4월 17일, 그 전국독서새물결모임에서 ‘학생들의 독서 의욕을 고취하여, 자율적으로 독서하는 태도를 기르고 입시나 입사 과정의 독서능력 검정자료를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독서 능력을 인증하는 시험을 치렀다. 주관은 한국독서능력평가원, 후원은 〈중앙일보〉와 ‘홍선생교육’이었다. 응시료가 1만5천 원에서 5만 원이다. 아이들의 책읽기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속셈이었다. 이게 웬 떡이냐? 하고 ‘주식회사 홍선생교육’은 신바람이 나서 홈쇼핑 광고를 하면서 지점 모집을 했다. 이 독서능력인증제가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너무 뻔했다. 조선일보와 결탁한 한자능력검정시험의 응시자가 처음에 4천 명에서 현재 연 60만 명이 넘을 정도로 늘어났다는 사실에서 보듯이.

부산시교육청은 2004년 3월에 강원대와 연계해 독서인증시스템 제도를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아이들이 책을 너무 안 읽어서 국가경쟁력 전망이 어둡다나 뭐라나? 내가 보기엔 교과부 때문에 전망이 어둡다. 아이들에게 언제 책 읽을 시간을 주기나 했나?

교육인적자원부는 지난 2004년 10월 교육혁신위원회의 제안을 받아 ‘2008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을 공표했다. 그리고 이 개선안에는 학생들의 독서활동을 기록하는 ‘독서이력철’을 작성하여, 대학입시에 반영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교육혁신위원회는 지난 2005년 8월 7일 독서이력철 도입과 관련한 최종보고서를 심의, 의결하였으며, 이와 나란히 교육부는 '독서이력철'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고등학교 독서교육 활성화 방안'을 위한 제안과 공청회를 8월 28일 개최함으로써 '독서이력철'의 제도화를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척시켜 가고 있다.

2009년에는 부산, 경남, 울산이 19개 대학과 독서활동을 대입에 반영하겠다는 협약식을 체결했다. 어린이책시민연대를 비롯한 학부모ㆍ시민단체들은 “학생들의 독서마저 중앙정부에서 관리하는 것은 전체주의적 발상”이라며 반발했다. 올해 6월 발표한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은 독서인증제의 종합판으로 부산시교육청이 만든 독서지원시스템과 학교도서관프로그램(DLS)의 통합, 학생생활기록부(NEIS)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과 기술적인 문제도 심각한 위험성을 안고 있었다. 아니나 달라. 지난 9월 28일, 정부가 만든 학교전자도서관 지원시스템(DLS) 서버를 해킹해 전국 초·중·고생 636만6309명의 도서 대여 이력과 주소, 전화번호 등이 포함된 개인정보를 유출시킨 사람들이 경찰에 적발됐다. ㄱ·ㄴ업체는 2008년 초 전국 전자도서관 서버 50여개에 해킹 프로그램을 설치해 일선 학교에 도입되는 독서 통장 사업자에게 개인정보를 팔아 2억 원을 챙겼다. ㄷ업체 들은 서버관리 업체로부터 학교당 30만 원을 주고 개인정보를 사들였다. 이들 업체는 이렇게 취득한 정보를 이용해 전국 652개교에 학교당 500만 원가량을 받고 독서통장 시스템을 판매해 30억 원을 챙겼다. 독서통장은 학생 개개인이 언제 어떤 책을 빌려 읽었는지 은행 통장처럼 정리해 주는 프로그램으로 DLS 서버에 불법 접근해야만 가동이 가능한 일이었다. 교과부가 10억 원을 들여 보안프로그램을 설치해놨다고 자랑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05년 6월 13일 중앙일보가 부산시교육청의 독서인증제를 '교육혁명'이라 보도했다.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독서인증제를 교육계획의 주요 방안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끼리끼리 잘 놀고 있었다. 그러고 혁명을(?) 주도하신 강원대 팀, 부산시교육청에서 만든 게 다음과 같다. 이른바 컴퓨터 기반의 독서교육지원시스템이라는 것. 컴퓨터에 초중고 학년별 권장도서목록을 탑재해서 검증을 한다. 1단계는 초등 10개 문항, 중고등 30개 문항을 출제해서 그중 60%인 6개, 18개를 맞추면 통과. 2단계는 감상문 쓰기, 개요 짜기, 인터뷰 등 독후활동인데 초등 250자, 중등 400자, 고등 500자 이상 쓰는 건데 핵심 단어 채점 방식으로 평가한다. 핵심 단어 채점이란, 학생들이 쓴 글을 컴퓨터가 채점하는 거다. 키워드가 몇 개 들어가면 통과! 학부모들이 물었다. “그거 하면 뭐가 좋은데요?” “학교장상 수상하면 경시대회 실적처럼 수행에 점수 보태져요.” 너 잘났다.

대전시교육청은 채점방식에 한 가지를 더 추가했다. ‘책 수준점수’와 ‘득점점수’ 합한 ‘합계 포인트’ 산출. 책 수준 점수를 넣는다는 거다. 책에다 등급 매겨서, 등급 높은 거 읽고 인증 받으면 높은 점수를 주겠단다. 그러면 아래 등급 책부터 착실히 읽은 학생과 어쩌다 한번 읽으면서 높은 등급 책만 골라 읽는 학생과, 어느 쪽을 더 높이 평가한다는 말일까. 어이 상실.

교육과학기술부 속셈은 뻔하다. 초등학교 입학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 동안의 독서 이력을 가계부나 차계부 정리하듯이 관리한다는 것, 한마디로 이젠 아이들 머리까지 지배하겠다는 아주 유치한 발상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빼도 박도 못하게 입학 사정관제를 비롯한 대학 입시 전형에서 객관적인(?) 평가 정보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덕분에 독서지도사교육 시장만 신났다. 요즘 인터넷에 ‘독서인증제’나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이라는 낱말을 쳐 보시라. 학원부터 뜬다.

문제는 또 있다. 책을 강제로 선정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전혀 다른 이야기와 견줘 보자. 나는 요즘 한 달에 한두 번 백두대간을 구간별로 이어 타고 있다. 백두대간은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우리나라의 경계를 구분 짓는 산맥이다. 남쪽만 말하면 향로봉부터 지리산까지 684㎞이다. 지금 충북과 경북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백두대간 산행은 장난이 아니다. 칼바람이 부는 산에서 얼어 죽을 뻔하기도 하고, 끝없이 이어진 봉우리를 넘는데 온몸에 땀이 흘러 진이 빠지기도 하고,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걷기도 한다. 날파리가 따라 붙어 짜증이 나기도 하고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어 지루하기도 하다. 아니 누가 그걸 하래? 글쎄 말이다. 누가 강제로 시키면 내가 이걸 하겠나? 나는 반발심에서 절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좋아서, 내가 결정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재미가 있는 것이다. 산을 타는 날을 정하고 어디서 자고 언제 올라갈까 하는 계획을 세우는 일도 재미있다. 누가 나에게 어떤 산을 올라가라고 정해 주면 내가 그 산을 갈까?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책은 또 어떤가. 나는 지난 달 책을 50만 원어치 넘게 샀다. 살림이 거덜 날 정도로 위태로운 수준이지만 책을 사고 싶어 견딜 수가 없다. 책에는 이 세상에서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모든 일들을 경험할 수 있다. 내가 평생 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쿠바나, 인도, 중국, 알래스카에서 일어나는 일도 알 수 있다. 역사를 배워 내가 지금 어떤 세상에 살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지혜를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사람 만나는 게 재미있다. 책을 보는 것과 사람 만나는 게 무슨 상관이 있냐고? 책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 양반을 비꼬던 연암 박지원도 만나고, 썰 잘 푸는 소크라테스도 만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는 체게바라도 만나고, 지리산에서 빨치산으로 이름을 떨쳤던 이현상도 만나고, 지배자들의 횡포를 못 견뎌 봉건사회를 뒤엎으려던 전봉준도 만나는 것이다. 현재 세상에 없는 그 먼 옛날 사람들이, 술 한 잔 안 먹고 멀쩡할 때 논리 정연한 말로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를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집에서 앉거나, 뒹굴면서 들을 수가 있는 것이다.

책을 고르는 재미도 있다. 가끔 내가 생각했던 책이 아니면 실망하기도 하지만 그것조차 재미다. 그러다가 내가 고른 책이 재미있고 내가 몰랐던 것을 깨닫는 책이라면 읽으면서도 마음이 뿌듯하다. 계명대 김종성 문헌정보학과 교수의 말처럼 “어떤 면에서는 책을 읽는 행위보다 이러한 활동이 더 다양한 독서 문화를 함축하기도 한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독서생활에서 중요한 것 가운데 한 가지가 자신이 읽을 책을 찾고 고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말도 공감이 간다. 그런데 독서인증제 점수를 따려면 남들이 선정해 놓은 책만 읽으라고? 그것도 믿지 못할 ‘지식인’들이 선정해 놓은 책만을 읽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어디 그것뿐인가. 그런 책을 강제로 읽고 시험까지 봐야 한다고? 시험 본다고 강제로 책 읽기를 시키면 아마 나는 책 읽는 걸 포기할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가 강요하는 걸 가장 싫어하는 존재다. 그게 사람이다. 사람은 스스로 결정해서 스스로 행동하는 존재다. 스스로 결정해서 이룬 성취감보다 더 기쁜 일은 이 세상에 없다. 실패한다 해도 후회하지 않는다.

2009년 11월 12일 네이버지식인에 어떤 고등학생이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울산에 사는 고등학생인데요 독서인증제 하길래요. 그거 안 하면 머가 안 좋죠?”

그 밑에 누군가 답글을 달아 놨다.

“엄친아보다 대학 가기가 힘들다는 거, 엄친아보다 좀 무식하게 보인다는 거, 엄친아보다 좀 한심하게 보인다는 거, 것만 빼면 안 좋은 게 없네요.”

‘엄마 친구 아들’(엄친아)하고 경쟁하는 것 빼면 안 좋은 게 없다는 얘기. 독서인증제가 별로 도움 안 되는 제도라는 말을 한마디로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정부는 다른 건 몰라도 이름 하나는 참 잘 짓는다. ‘주관적인 평가’를 ‘객관적인 평가’라고 하고, ‘대입제도 개악안’을 ‘대입제도 개선안’이라 하고, ‘교육퇴보위원회’를 ‘교육혁신위원회’라 하고 ‘독서교육 죽이기 방안’을 ‘독서교육 활성화 방안‘이라 하고 ’독서교육 종합방해 시스템’을 ‘독서교육종합지원시스템’이라고 한다. 남대문 앞에서 자리 깔고 작명소나 하나 차리면 나라 살림에 도움 많이 될 것 같다. 차라리 그 길로 나서지 제발 뻘짓 좀 하지 말고.

cyrus 2010-11-12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독서인증제에 대한 저의 생각도 가로수님과 비슷합니다.
올해 전역하고나서 신문을 통해서 독서인증제라는 제도를 알게 되었는데,,,
학생들에게 독서를 장려한다는 좋은 취지로 만들었다고해도 과연 그 시험이
학생들에게 평생 독서를 할 수 있는, 장기적인 효과를 줄 수 없는 것은 뻔한 일이고,
이 제도도 강제적인 독서를 장려하는 특징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은 사실이고요.
그리고 더욱 더 걱정 되는 것은 이 제도가 우리나라 입시 사회와 맞물려서 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학생들의 스팩으로 사용될 소지도 다분하다는 겁니다.
역시 독서는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관심의 책을 찾아서 읽고, 스스로 책의 내용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야지 올바른 독서인거 같습니다.
 
궁극의 리스트 - 문학과 예술 속의 목록사: 호메로스에서 앤디 워홀까지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3
움베르토 에코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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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 학당에 모여든 이 수많은 사람들은 누구...? 

 


그림에 담긴 목록 - 라파엘로 <아테네의 학당>
 

이 그림은 너무나 유명한 라파엘로의 <아테네의 학당>이다.  고대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수학자, 천문학자들이 학당에 한 자리에 모여 학문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이 그림에는 학당의 문 정중앙에 서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뿐만 아니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유명 학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일일이 설명하다가는 글이 삼천포로 빠질 우려가 있으니 간략하게 이름만 소개하자면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 기하학의 창시자 유클리드,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유명한 피타고라스 등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 재미있게도 이 그림을 그린 화가, 라파엘로 본인의 얼굴도 그려져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그림에 담겨져 있는 내용들을 알기 전에는 이 그림 속에 학당에 모여든 학자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하였다.  이들은 무엇에 대해 토론을 하려고 학당에 모여든 것일까? 어떤 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열심피 학문 전파에 열을 올리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추상적인 철학 문제 때문인지 혼자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기도 하다. 그림 속 수많은 인물들이 최근에 와서야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한 학자들이라는 것을 밝혀졌지만, 모든 인물들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아니다. 밝혀지지 않은 나머지 인물들은 이름 없는 학자 또는 학자의 강의를 듣으려는 학생들인 것이다.  

이 그림 한 폭이 <아테네의 학당>이라는 제목으로 오랫동안 불리어지는 이상, 그림을 보는 감상자들은 라파엘이 아테네의 학당에 모인 수많은 학자들을 그린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화폭에 담겨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를 통해서 감상자는 그림이 말하고자 하는 함의를 파악하는 것일뿐, 그림 속 자세한 의미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궁금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이다. 더구나 나처럼 그림 속 학자들 하나하나 확인하며 알려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감상자들이 그림의 중앙에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안다고 해도, 나머지 엑스트라로 등장하는 나머지 학자들은 감상자의 시선 밖에 있게 된다.   

그러면, 라파엘로는 20명 정도의 학자와 학생들만 그려 넣으면 될 것을, 왜 굳이 이보다 더 많은 학자와 학생들을 그렸을까?  아무리 이렇게 한 사람씩 세세하게 노가닥으로 그린다고 해도 감상자들은 그림 속 인물 전부 알려고 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아예, 이 그림 제목을 <아테네의 학당>이 아닌, <아테네의 학당에 모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그리고 소크라테스, 수학자 유클리드, 피타고라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 , , , 와 그 밖의 나머지 학생들>이라고 제목을 붙이면 감상자들은 라파엘로가 그린 인물들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라파엘로는 그런 긴 제목을 붙이기보다는(진짜로 그림에 긴 제목을 붙였다면 감상자 입장에서는 그림 볼 맛이 떨어질 것이다) 스스로 수고를 하면서 화폭에 수많은 인물들을 그려 넣는 쪽으로 택했다.

  

    

  예술가들의 무한성 극복하기   

 


무한성 극복하기 - M.C. 에셔 <천사와 악마>

 

이탈리아의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는 이번 신작인 <궁극의 리스트>에서 고대애서 현재까지의 문학과 예술 속에서 등장하는 목록에 대해 논하고 있다.  

에코는 대부분 문학가와 화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무한성을 표현하기 위해서 목록을 삽입한다고 말한다.  문학가는 소설이나 시에서 수많은 사물이나 인물들을 일일이 열거하는 언어적 목록,  화가는 붓으로 캔버스에 수많은 인물들을 그려넣는 시각적 목록을 취한다는 것이다.  작가나 화가들은 정도를 헤아릴 수 없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하나의 작품에 담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 이들에게는 무한성은 '하나의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것이며,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우주와 같은 '현실, 그 이상을 뛰어넘는' 속성이었다. 그래서 무한성이라는 속성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무한성의 존재들을 목록화하여 열거하는 방식을 택하였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것들 -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엄청나게 크거나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 지금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앞으로도 결코 알 수 없을 어떤 것에 마주하게 된 호메로스는 

하나의 표본, 예, 또는 지시로서 목록을 제시하면서  

나머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겨 버린다.  

- <궁극의 리스트> p 49 -

 
   

라파엘로가 <아테네의 학당>에서 수많은 학자와 학생들을 그린 이유도 에코의 주장을 비추어 보면 그의 본의를 짐작할 수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한성을 그림으로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아테네의 학당이라는 장소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학문들이 공존하고 있는 세계를 함축하여 말하고자 하였으며, 비록 이름 없는 학자와 학생들일지라도 라파엘로는 학당 내부에는 많은 인물이 가득히 있다는 점과 저 수많은 인물들 틈에서도 학문에 대해서 토론하는 학자와 학생들이 더 있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결국, 감상자들은 이 그림 하나로 아네테 학당 속 인물들 전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숨겨져 있는 그 이상의 존재들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목록(List)의 매력에 사로잡히다  

 


수집물 그리고 호기심의 창고 - 프란스 프랑켄 2세 <예술과 호기심의 컬렉션>
 

시대가 변화갈수록, 목록의 용도도 변화하였다. 15~16세기 신항로 개척 시대가 오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지리와 자연에 대한 학문으로 쏠리게 되었다. 항해술의 발달로 인해서 신대륙의 문물들이 서양으로 유입되기 시작하였다. 학자들과 상류층 귀족들은 점점 복잡해져만 가는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자신들이 수집한 희귀한 자연물과 고고학적 유물들을 목록화시키게 된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박물관, 동물원 등이 만들어졌으며 스웨덴의 린네는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생물 분류법인 이명법을 확립하여 분류학을 발전시켰다. 그리고 디드로와 달랑베르 등 다양한 학자들이 이 모여 여러 학문을 집대성하기 위해서 <백과전서>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이런 학문적 결과물이 있기에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질서를 부여하여 나열할 수 있는 목록을 만들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이 있었다.  

이런 목록화의 습성은 현대의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특히 프랑수아 라블레의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독자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의미한 목록과 같은 서술 방식을 택하고 있어서 지금까지도 난해한 작품으로 정통이 나있다. 이들은 작품의 주제와 내용을 떠나서 단지 수많은 개념들을 분류, 나열할 수 있는 목록에 대한 과잉된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실용적 목록이 난무하는 현대 사회


실용적인 목록 - 대형마트 할인용품 광고 전단지
 

하지만, 역사 속에서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예술가들에게만 목록에 향한 욕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도 이 세상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목록화'되고 있으며 우리는 스스로 목록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목록들을 즐기고 있다.  

에코는 목록에도 중요한 차이의 구분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실용적인 목록과 시적 목록으로 나누고 있다. 실용적인 목록은 우리 일상 생활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식당 메뉴표, 국어사전, 전화번호부, 그리고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의 할인품목 광고 전단지 등이다. 반대로 시적 목록은 앞에서 언급한 라파엘로나 라블레, 조이스처럼 예술 형태를 통해서 탄생된 목록을 말한다.   

마르크스<자본론>에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부는 엄청난 상품들의 축적으로 그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하였다.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실용적인 목록도 늘어나기 시작하였다.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있는 근대에서는 백화점의 쇼윈도에 진열된 상품이 자본주의가 만든 실용적 목록이었다면 지금은 자신의 목적과 취향에 따라서 직접 상품을 구입하려는 소비 의사가 반영된 자신만의 실용적 목록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인터넷 쇼핑에서 볼 수 있는 장바구니 기능이다.  소비자가 구입하기를 원하는 상품들을 자신의 장바구니 기능에 입력함으로써 자신만의 목록이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장바구니 목록에서도 인간의 목록화에 대한 심리를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이 구입하고 싶은 물건을 바로 살 수는 없지만, 그 물건을 찜하여 장바구니 목록에 입력하게 되면서 소비의 욕구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품을 구입했다는 일종의 만족감도 동시에 느끼게 된다. 그래서 사고 싶은 상품만 있으면 무조건 장바구니 목록에 담으려는 특성이 있는 인터넷 쇼핑 중독자의 모습은 실용적 목록을 만들려고 하는 집착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그칠 줄 모르는 인간의 무한한 소유욕을 조금이나가 해결하기 위해서 말이다.

 

  

 

이런 실용적 목록에 향한 인간의 욕망은 자본주의,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과 아이패드의 등장은 인간의 목록화에 대한 욕망을 더욱 더 부추기고 있다.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보유한 스마트폰과 아이패드를 통해서 앱스토어에서 관심 있는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한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자신만을 위한 애플리케이션 목록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여러가지 신의 이름들이 나열된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부터 수많은 애플리케이션들을 저장할 수 있는 지금의 스마트폰까지, 인류는 공통적으로 '목록 만들기'를 추구하였고 List-holic이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로 목록에 지나친 집착을 보이기도 하였다. 역사의 발전, 그리고 지금의 세상이 있기까지에는 어쩌면 목록이라는 특수적 용도의 기록물이 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세상은 목록화되고 있다. 그 목록화의 발전에 의해서 생긴 사회적, 문화적 산물들이 또 다른 세상의 모습으로 구축될 것이다. 그리고 그 목록화되고 있는 세상의 중심에는 우리 인간이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List-holic이면서도 Cataloger(목록 편집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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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6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베르토 에코 기호학자로도 유명한데,그의 전작들을 읽으면서...
기호학자라는 프로필이 왜 필요한가 갸우뚱 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요.
님의 리뷰랑 페이퍼를 읽으니,이 책 꼭 읽어주고 싶어요~^^

cyrus 2010-10-27 00:01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책입니다. 사실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읽다가
기호학적 지식의 어려움에 좌절한 적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이번에 나온 책은 그리 어렵지도 않고, 다양한 그림들과
문학 작품 텍스트들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이
흥미로우면서도 재미있기도 합니다.
참고로, 제 글에 사용한 그림 중에서 프랑켄 2세의 그림만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답니다. 나머지는 제가 책 속 내용과
관련된 그림들을 골랐고요.

saint236 2010-10-27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까 말까 고민중이었는데 이 글을 읽고 바로 보관함에 보관합니다. 에코는 정말...걸물인것 같아요.

cyrus 2010-10-27 12:01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saint236님^^

가격은 좀 착하지 않은게 흠이지만,,,
이전에 출간된 <미의 역사><추의 역사>의 가격과 비교하면
조금 착해진 편입니다. 그리고 구입하고 읽어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겁니다. 내용이 참으로 흥미롭고
책 속에 수록된 그림들도 볼만하고요.

반딧불이 2010-10-27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블레나 조이스의 목록이 대체 어떤 리스트인지 정말 궁금해지네요. 인간이 모두 리스트홀릭이라면 저도 이참에 실용적인 리스트든 시적 리스트든 하나 만들어야할까봐요.

cyrus 2010-10-27 12:04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에 있는 마이리스트가 실용적인 리스트의 한 예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자신에게 실용적
도움이 되는 목록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 소개된 라블레와 조이스의 텍스트를 읽어보시면..
감당하지 못할겁니다. 비록 2페이지 정도 소개하고 있지만
정독하기가 부담스러울겁니다. 참고로 텍스트 출처는
라블레<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조이스는 <율리시스>
<피네건의 경야>입니다. 특히 조이스는 난해한 문학성으로
유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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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네하라 마리 지음, 노재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다카다 상은 왜 벗었는가?   

 


종합격투기 대회 프라이드FC <남제 2006> 오프닝 당시의 모습.   

일본 전통 속옷 훈도시를 입은 채 큰 북을 치고 있는 사람이  

다카다 노부히코 프라이드 총괄본부장이다.  

당시, 이 장면을 TV로 목격한 나는 그의 세리머니,

아니, 브라운관에 비치는 그의 엉덩이가 민망하였다.   

큰 북 뒤에 높은 단에 서 있는 5명의 남자는 이 대회 때 참가하는  

격투기 선수들이다. 그 중에 비 일본인 선수들도 있는데, 

코 앞에 있는 훈도시를 입은 다카다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4년 전이다. 지금은 미국의 UFC의 흥행과 일본 진출에 밀려 사라진, 그 때는 일본 내에서 인기를 끌었던 프라이드 FC의 경기를 자주 보곤 하였다.  

최근에 첫 패배를 기록했지만, 그 당시에는 한 번도 져본 적이 없었던 '60억분의 1의 유전자'         에밀리아넨코 효도르,        

하이킥의 달인 미르코 크로캅, 주짓수 최강자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 등등...  화끈한 플레이와 스타성을 고루 갖춘 세계 최고의 격투기 선수들이 일본에 모여 한바탕 Fight를 치루고 있는 것이 프라이드 FC였다. 

그리고, 이들의 화끈한 싸움만 재미있는 것이 아니었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진행되는 대회 오프닝도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주었다. 그런 오프닝의 중심에는 항상 이 남자가 있었으니. . .      

 


다카다 노부히코.  

실제 사생활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평소에 TV에 비친 모습이나 세리머니를 보게 되면  

약간의 마초 기질이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 이름은 다카다 노부히코.  예전에 일본 내에서 레슬링 선수 겸 이종격투기 선수로 활동하다가 프라이드 FC 총괄본부장(쉽게 말하면, 대회 전체를 여는데 지휘를 하는 사장)이 된 나름 일본 국민들에게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나이다. 프라이드 FC 단체의 흥행에는 일본 관중들의 구매력에 있다고 판단했던 그는 항상 큰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관중들이 생각치도 못한 거대한 오프닝 행사를 준비하였다.  다카다 본부장이 양복을 입은 채 직접 탭댄스를 추기도 하고, 100명의 오케스트라가 대회 시작을 알리는 오프닝 음악을 연주하는 등 항상 볼거리가 많은 퍼포먼스를 제공하였다. 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일본 관중들이 프라이드 FC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눈과 마음을 사로잡게 만드는 프라이드 FC만의 오락적인 요소가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2006년에 열린 <남제男祭>라는 흥행 이벤트에서 다카다 본부장은 파격적인 오프닝 세리머니를 하게 되었다.   위의 사진처럼 일본의 전통 속옷인 훈도시 한 장만 입은 채, 커다란 북을 치는 반 누드 세리머니를 한 것이었다. 이벤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남자들만의 격투 축제' 라는 뜻을 잘 표현해주었으며 덤으로 수 만 명이 모인 관중들에게 자신의 '남자다움' 을 과시하게 되었다.  과거 현역 선수 시절에 다져진 근육들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 그에게는 남제 2006 오프닝 행사는 평생 기억이 남을 아주 뜻깊은(?) 세리머니였다.  

하지만, 생방송으로 TV 중계로 보고 있던 한국 태생인 나는 민망하기만 하였다. 대형 격투기 단체의 사장이라는 명함을 가진 다카다인데 어떻게 저런 세리머니를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저기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 중에서도 여성들이 많았을텐데, 어떻게 저런 반 누드를 감행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의 용기가 가상하면서도 (이제 곧 50이 되는 나이에 불구하고, 탄탄한 근육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부러웠고) 한편으로는 남성 기질을 너무 지나치게 과시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이런 볼만한 장면을 눈 앞에 본 일본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이 들었을런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감추는 것이 먼저냐?, 부끄러움이 먼저냐? 

4년 전의 궁금중은 이번에 출간된 요네하라 마리의 <팬티 인문학>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훈도시는 일본 전통 사회에서는 남자들 사이에서는 '남자다움'을 표현하는 속옷인 것이다. 그래서 다카다가 저런 민망한 속옷만 입었던 것이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팬티'로 대표하는 속옷을 통해서 인류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다. 특히 반짝이는 생각으로 무장하여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마리 여사는 속옷만 입고 있다거나 벌거벗은 상태에서 느끼게 되는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의 형성 과정에 대해서 역발상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속옷 한 장만 걸쳐 있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쉽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벌거벗은 신체의 부위를 가리는 것이 부끄러움을 느끼는 인간이 취하는 자연스러우며 정상적인 행동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리 여사는 인간이 이에 대해 부끄러워서 감추는 것이 아니라, 감추기 때문에 부끄러움이 생긴다고 말한다.  

만약에 옷 한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사람옷을 입은 사람이 단 둘이 있다고 하자.처음에 벌거벗은 사람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옷을 입은 사람의 눈에는 옆에 벌거벗은 사람에 대해서 민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벌거벗은 사람이야말로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결국, 두 사람이 느끼고 있는 부끄러움에 대한 인식은 서로 달라지는 것이다. 벌거벗은 사람은 옷을 입은 상대방이 느낀 감정과 태도가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은 이제서야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면서도 자신의 상태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벌거벗은 부위를 가리고나서야,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문화적 차이에서 형성되는 수치감

그러나, 모든 인간이 자신과 다른 타인의 모습과 감정 등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다른 문화적 차이에서 인간은 쉽게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마리 여사는 다양한 문헌들과 유년 시절의 경험을 통해서 수치심 형성의 과정에 대한 색다른 관점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는데, 일본 특유의 생활 방식들도 소개하고 있다. 인간이 수치심에 생겨나게 한 근본적 원인은 그 나라의 생활 방식에서 드러나는 문화적 특징과 차이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책 속에 소개된 문화적 사례는 옛 우리나라 생활 모습을 비추어보면 낯설지가 않다.  

   
 

  저는 가고시마 현의 농촌에서 자랐습니다. 그 무렵 시골에서 속옷이라고 하면 여자들을 속치마, 남자들은 훈도시였습니다. 밭에서 몸을 격렬하게 움직여야 하니 남녀 모두 옷자락을 접어 올려 끈으로 묶었습니다. 남자들은 흥이 나면 훈도시도 거추장스러워 벗어버리곤 했습니다. 그냥 성기까지 전부 드러내고 일에 열중했지요. 이런 광경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집 안에서는 물론이고 길을 걸어가다 보면 언제든지 눈에 들어오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는 사람도 보여주는 사람도 모두 수치심을 못 느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덧붙이자면 여자들은 아이에게 젖을 먹일 때 전혀 거리낌 없이 사람들 앞에서 유방을 드러냈습니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았던 광경을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당시 새로운 군대가 들어온다는 말이 있어 마을에서는 몇 번이나 주의사항을 교육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사람들 앞에서 하반신이나 유방을 드러내지 않아, 그런 광경을 보면 기분 나빠할 것이니 주의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중략)

사람들은 결코 부끄럽기 때문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외국인에게 실레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엉덩이를 그대로 드러나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부끄럽다'는 인식은 훨씬 나중에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 <팬티 인문학> 'M.H.라는 여성이 쓴 편지 내용의 일부' , 요네하라 마리, p 107~108 -(* 본문에 있는 밑줄은 저자가 표시한 부분)

 
   

          김홍도 <들밥>

조선 시대의 농촌 사회에서는 농촌 공동체의 일원들이 자급자족하며 생활을 하였다.  농촌 일에는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모여 서로 거들어 주면서 품을 지고 갚는 품앗이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공동체적 유대감이 강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힘든 밭일을 하는데에도 남자들은 자연스럽게 윗도리를 벗게 되고, 여자들 역시 김홍도의 풍속화 속 아낙네처럼 저고리를 풀어 가슴을 드러냈을 것이다. 벗고 다니는 생활이 일상화된 이들에게는 '부끄러움'의 감정을 느끼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팬티 인문학>의 본문 속 일본의 모습처럼 우리나라도 외국 문화의 물결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 물결의 영향으로 19세기 말부터 근대화의 싹이 틔우기 시작하면서 아시아의 변방국가인 조선에도 외국인들이 오게 되었다. 외국인들은 조선이라는 사람들의 복장을 보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남녀 모두 가리지 않고 길거리 한복판에서 벗고 다니는 조선 사람들의 모습이 서양인들의 눈에는 이채로웠을 것이다. 반면에 벽안의 서양인들을 처음 본 조선 사람들도 그들을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입고 있는 얕은 한복이 아닌, 서양인들이 입고 있는 양복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서양문화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작은 호기심은 대한제국의 근대화에 박차를 가하였다. 서양 문물 수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개화론자들은 서양인들처럼 남성들은 하이 칼라의 양복을, 여성은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을 것을 권장하였다.  대한제국이 서양 열강과 같은 강대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서양인들의 사고 방식과 문화를 습득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예전에 고수하던 전통 문화들은 자연스럽게 배격하게 이르게 된다.  

일본 가고시마 현의 마을 사람들이나, 근대의 조선 사람들에게는 외국인들의 문화를 접하면서 강한 문화적 충격을 받는 동시에, 자신들의 문화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했을 것이다. 특히, 일본, 중국, 유럽 열강들에게 동네북이 된 대한제국에 살고 있는 개화론자들에게는 추락한 조국의 위상을 눈 앞에 목격하면서, 미개한 조선 사회의 문화에 대해서 자괴감에 빠지기 쉬웠다.  서양문화 숭배에 대한 강박관념이 자신들 스스로 문화적 수치감을 형성하게 만들었다.      

    

 

  ごめんなさい (미안합니다) 마리 여사, 당신의 말이 꼭 옳은게 아니에요.

요네하라 마리 여사는 '부끄러움'이 인간이 신체를 감추기 때문에 생긴다고 참신한 주장을 하고 있지만, 워낙에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는 지금 사회의 모습을 비추어 볼 때, 그녀의 주장에 대해서 재고를 해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패션 유행을 보게 되면, 수치심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신체를 감추기보다는 남들이 볼 수 있게 드러나게 하는 패션이 유행하고 있다. 속옷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 룩에서부터, 여성의 각선미를 강조하게 하는 핫 팬츠까지 이런 복장들은 신체를 감추지 않는 개방적인 패션이다.  

그래서, 유행에 민감한 여성들에게는 이런 복장들을 거리낌없이 입게 된다. 이들은 이것도 하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 않다. 신체 부위의 과한 노출은 상대방에게 수치감을 불러 일으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마리 여사의 말과는 반대로 신체를 감추고 있는 사람들이 감추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 하고 있다.  그리고 속옷과 각선미를 드러나는 옷을 입은 사람들은 이런 주위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일말이라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의도적으로 야한 복장을 입어 자신의 신체 일부를 노출시켜서 상대방의 시선을 즐기는 '노출녀'라고 부르는 여성들도 있다.   

  

 

  진짜로 부끄러워 해야할 사람은 누구일까?

자신과 다른 문화적 차이에 의해 생기게 된 수치감은 마리 여사의 주장과는 반대로 전개되는 경우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수치감에 대한 잘못된 시선과 인식도 가지게 된다. 핫 팬츠나 시스루 룩이 하나의 패션 양식으로 자리잡은 것도 있지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공장소에서도 지나친 신체 부위 노출에도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아름다움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공장소에서 어머니들의 모유 수유는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젖가슴을 대놓고 아기에게 젖을 주는 모습에 대해 주위의 시선이 곱지가 않아서 그런지, 아기를 키우는 여성들에게는 마음 놓고 모유 수유를 해줄 수 있는 장소가 많지 않아서 불편함을 느끼고, 대부분의 육아 여성들 스스로 공공 장소에서의 모유 수유는 금기된 행동이며 한다는 자체를 부끄럽다고 생각하게 된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과시하기 위해 가슴 라인이 드러나는 옷을 입은 여성,  

아기에게 젖을 물리기 위해 한 쪽 가슴을 드러내야 하는 여성. 

이 둘 중에서 진짜로 부끄러워 해야할 사람은 누구일까? 모유는 아기들의 성장 발달에 아주 좋은 천연적인 식품이다. 그리고 모유 수유를 하면 어머니 입장에서는 여성들의 불치병인 유방암 등을 예방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모유 수유는 어머니와 아기 사이의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사랑스러운 행동이다. 그런데 어머니와 아이, 서로에게 좋은 모유 수유를 우리는 부끄러워 해야될까? 모유 수유를 하고 있는 어머니와 아기의 모습이 더 아름답지 않은가? 김홍도의 풍속화 속 아낙네처럼 어머니들이 편안하게 모유 수유를 할 수 있는 사회가 올 수 있을지 의문이 된다.

이런 수치감에 대한 이중성을 가진 우리 사회를 보면서 마리 여사의 말의 실효성이 떨어져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  마리 여사의 말처럼 원래 인간은 자신의 노출된 신체 부위를 감추고 나서 부끄러움을 느껴야 지극히 정상적인데 말이다. 이와는 반대로 주위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신체 부위를 노출하려는 사람들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다거나, 의도치않게 신체 부위를 노출해야 하는 상대방들을 보면서 오히려 수치감을 형성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서 거대한 사회집단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문화적 수치감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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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0-25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꿩이 숨을 때 머리만 들이밀고 숨는다죠~
불난 목욕탕에서 탈출할 때,얼굴만 가린다는 얘기도 들은 것 같구요.

전 일본과 우리나라의 비슷한 듯 하면서도,미묘한 문화적 차이를 버거워하는 1人이라서 말이죠~^^

cyrus 2010-10-25 11:02   좋아요 0 | URL
뭐 마리 여사의 책들이 공통적으로 일본과 구 소련 문화를 소개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책은 일본 문화와 전통 복장에 대해서
많이 언급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일부는 우리나라 문화와
비슷한 것도 있었고요. 하지만 저도 일본 문화와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26 2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카다 노부히코 이야기를 하면서 요네하라 책으로 자연스레 넘어가는 글의 전개가 참 좋습니다.

90년대 초 이후 공공장소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젊은 엄마를 본 적이 없습니다.여자의 유방 하면 예전엔 아기 젖먹이는 것을 연상했는데 요즘 세태는 완전히 섹스를 연상케 되었습니다.그러니 공공장소에서 아기에게 젖을 못 물리는 것이지요.

cyrus 2010-10-26 23:57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공공장소에 지나친 노출을 자제하고 금기시하여할 판에
오히려 모유 수유를 금기적 행동으로 보면,, 정말 여성의 유방에 대한
사람들의 아이러니한 시선이 문제가 있는거 같습니다.

그리고 자이트님도 혹시 예전의 프라이드나 이종 격투기에
관심이 있으신지요?? 오늘도 자이트님의 서재에 올리신 글을 읽었지만,
정말 저도 자이트님의 연령이 궁금하기도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10-27 16:07   좋아요 0 | URL
요즘은 인터넷에 투기종목 경기가 많이 올라 있어서 구경도 하고 또 관심있는 주먹타법은 직접 모방해서 연습도 하고 그럽니다.정통복싱,입식타격,종합격투기에서 쓰는 주먹타법의 차이점을 연구해서 연습하는 편이지요.요즘은 종합격투기의 주먹연타에 관심을 가지고 연습하고 있습니다.운동 특성상 연습상대가 없이 혼자 하니 문제지요.작년 내내 왼손잡이 자세 연습을 했더니 이젠 길이 들었습니다.

10대에서 80대까지의 모든 연령과 재밌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당연히 그들 연령대에 맞는 대중연예인 이야기에 거의 통달하고 있지요.

cyrus 2010-10-27 16:56   좋아요 0 | URL
와~~ 사실 자이트님의 글과 서재 이미지 사진을 보면서
대략 자이트님이 중년을 바라보는 분인줄 알았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네요^^;;
격투기의 주먹연타 언급까지 하시면 나이가 젋으신거 같은데요.

그래도 다양한 연령분들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시다니
부럽습니다. 그러면서도 항상 서재에 들리면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제가 이런 글을 참 좋아하거든요ㅎㅎ

노이에자이트 2010-10-27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그런데 동양권에서도 필리핀 같은 데는 40넘어서도 링에 서는 복서들이 꽤 있어요.북미나 중남미는 말할 것도 없구요.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너무 일찍 은퇴하는 편이죠.

그런데 노년이 아니라면 10대도 중년은 바라봐야지 뒤돌아볼 순 없지요? 80노인에겐 10대 부터 60대까지 다 요즘 젊은 것들이니까요.

제가 오래된 책도 좋아하고 집에 70년대~2000년 초반까지의 시사주간지나 월간지가 있어서 종종 읽지요.물론 최신 연예뉴스도 좋아합니다.오늘 보니 신세경 누나와 종현군이 연애를 한다네요.이쁜 여자는 누나라고 부르는 최신유행을 제가 선도하고 있습니다.이 유행을 알라딘에 퍼뜨리고 싶은데...

cyrus 2010-10-27 21:20   좋아요 0 | URL
음,, 댓글이 달면 달수록 자이트님의 연령을 추정하기 힘드네요^^;;
그래도 자이트님의 취향이 저랑 비슷하다나는 사실을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저도 오래된 책과 헌책방 가는 거 좋아합니다.
그래도 젊은 나이에 너무 조숙해도 좋지 않은 것도 있어서
당연히 연예 뉴스도 주위 사람들과 어느 정도 대화할 수 있는 정도만
알려고 합니다.

예전에 군대 있을 때 이쁜 여자 연예인 이름 뒤에는 '~님','여신님'이라고
붙이면서 불렀던 적이 생각나네요. 그게 군인들 사이에서 유행이거든요.

노이에자이트 2010-10-28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한 두살 가지고도 네가 형이네 내가 형이네 하고 다투는 게 신물나서 호칭파괴를 위해 나이 어린 여자에게도 누나라고 부르는 게 재밌습니다. 해보십시오.재밌습니다.

지금 아이돌 스타에 대해 모아놓은 자료가 나중엔 귀중한 역사자료가 될 겁니다.
 
발명 마니아 - 유쾌한 지식여행자, 궁극의 상상력! 지식여행자 9
요네하라 마리 지음, 심정명 옮김 / 마음산책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코덱스 레스터(Codex Leicester)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1519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평생 동안 수많은 메모와 스케치들을 남겼다. 그가 종이에 기록된 내용들은 한 사람이 알기에 엄청난 양의 지식이다. 자연과학으로 분류하는 해부학, 동물학, 식물학에서부터 토목공학과 기계 등 그의 관심 영역이 광범위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다 빈치 자신의 왼손잡이임을 이용하여 거울을 통해서 볼 수 있는 뒤집혀진 문자, 일명 '거울 문자'로 기록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남긴 노트들은 현재 6000여 장, 총 10권이 현존하고 있으며 각각 노트에 붙여진 이름명이 다르다. 다 빈치가 활동하던 중세나 르네상스 시대에는 종이들을 묶어 책으로 만든 필사본을 코덱스(Codex)라고 불렀는데 다 빈치가 남긴 코덱스들은 전 세계 박물관이나 도서관에서 보관되고 있다.  

 

1995년, MS 회장 빌 게이츠‘코덱스 레스터 (Codex Leicester)' 원본을 3500만 달러(한화 약 350억 원)에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구입하기도 하였다. 빌 게이츠 본인 스스로 가장 아끼는 보물 1호로 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노트라고 말할 정도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천재가 남긴 노트의 보존 가치가 높다. 
 

빌 게이츠가 사들인 코덱스 레스터에는 그 유명한 헬리콥터, 잠수함, 낙하산 등의 설계도가 그려져 있다. 그 당시 시대로서는 앞서가는 훌륭한 아이디어들이다. 하지만 다 빈치는 무수히 쏟아낸 아이디어들을 종이에만 기록할 뿐, 직접 설계를 하지 않았다. 왜 설계 하지 않은 것일까? 그 당시로서는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는 기계라서 그런 것일까? 물론 시대가 15세기이다보니 다 빈치 본인이 직접 만들기에는 약간은 실현이 불가능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다 빈치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해서 쉽게 포기하는 그런 인물이 아니다. 실제로 다 빈치는 노트에 그렸던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직접 만들어 그의 제자가 시범으로 비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오래 날지 못해 땅으로 추락하여 비행을 시도한 제자는 큰 부상을 입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만약에 다 빈치의 비행기가 성공했더라면 라이트 형제보다 무려 500여 년 정도 앞선 최초의 비행자로 기록될 수 있었을 텐데.....    

 

사실 다 빈치는 자신이 만든 발명품 때문에 세상이 어지럽히지 않기를 바랬다. 당시 다 빈치에게 무한 총애를 주고 있던 밀라노 공작 스포르차 공은 다 빈치의 발명 노트를 보고 크게 감탄을 하였다. 그리고 이 발명품으로 자신의 힘을 확장하는데 이용할 마음까지 갖게 되었다. 다 빈치의 발명품을 무기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명 노트 하나 가지고 다 빈치와 스포르차 공은 동상이몽을 꾸고 있었다. 다 빈치는 스포르차 공의 계획이 영 탐탁치 않았다. 자신의 발명품이 전쟁터에서 사용하게 된다면 죄 없는 시민들이 잔인하게 살육당하는 것이 뻔하였으며 그는 이런 무서운 미래가 두려워지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다 빈치의 노트의 발명품들은 지금까지도 코덱스 레스터 안에서 남게 되었다. 다 빈치가 실제로 발명품을 만들었다면 역사상 보기 드문 천재로 평가를 받는 동시에 르네상스 시대의 권력 구조도 달라졌을 것이다. 

 

   

 
 

 요네하라 마리's 코덱스 퍼블릭(Codex Public)  

 

레오나르도 다 빈치 사후 500여 년 뒤. 일본의 어느 여성 에세이스트가 다 빈치의 코덱스와 비슷한 형식의 노트를 기록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요네하라 마리의『발명마니아』이다.  

 

제출 마감이 임박한 상황 속에서 칼럼을 쓰고 있을 때,   

 

집에서 키우고 있는 반려동물들이 자신 앞에서 어리광을 부리면서 밥 달라고 보챌 때도, 

 

몸 속에 점점 퍼져나가는 암세포가 자신에게 참기 힘든 고통을 주고 있을 때에도

 

마리 여사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바로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다 빈치처럼 거창한 발명품도 아니며 마리 여사의 수많은 아이디어 일부에는 도저히 현실 불가능하면서도 황당한 것들도 있다. 그의 그림들을 보게 되면 예전 어렸을 때 에디슨처럼 발명왕이 꿈꾸면서 생각나는 대로 그린 그림이 떠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그녀 역시 다빈치처럼 자신이 기록한 발명품들을 실제로 만들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코덱스는 다 빈치의 코덱스보다 퍼블릭(Public)하다. 그녀의 발명품은 단순히 자신만의 생각에서 떠오른 아이디어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한번쯤은 생각해본 고민과 문제들을 토대로 아이디어를 만든 것이다. 읽다 보면 '아! 나도 살면서 이런 불편을 겪었는데.....' 라고 공감을 일으킨다.   

 

교통 체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울트라 초 변신 만능(?) 자동차,  더운 날, 길거리에서 시원함을 느낄 수 있는 에어컨, 코골이를 막는 방법, 남성들 소변기에서 오줌 눌 때 안 튀는 방법, 누워서 책 읽는 방법 등등..... 살면서 겪게 되는 불편한 점을 해결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다 빈치의 코덱스가 암호 같은 거울 문자로 이루어져서 일반인들이 쉽게 읽을 수 없지만, 마리 여사의 코덱스 퍼블릭에는 독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자신의 발명 아이디어에 대해서 일말의 자랑과 과시를 찾을 수 없다. 자신이 직접 세부적인 도안을 곁들인 발명품 그림들을 손수 그렸는데 항상 그림 서명에는 본명이 아닌 '아라이 야요' 라고 표기하고 있다. 에세이스트로 유명한 마리 여사의 그림 실력을 볼 수 있으면서도 또 다른 인물을 탄생시킴으로써 숨어 있던 제2의 능력에 대해 겸손한 그녀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녀 특유의 문체로 아이디어의 탄생 과정을 위트 있게 설명하고 있어고, 그림에서도 그녀의 유머가 묻어나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지루하지는 않았다. 

 

  

 

 자연주의자 마리 여사   

 

 

그녀의 발명품은 단순히 인간에게 유익한 발명품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는 핏줄이나 다름없는 자식이며서도 분신인 반려동물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도 소개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여행하는 방법, 집 안에서 바쁘게 일하면서도 모든 반려동물들을 쓰다듬을 수 있는 기계를 제안하기도 하며 그의 그림에는 반려동물에 대한 애정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반려동물 사랑을 넘어서 자연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인간 중심주의에 빠진 독자들을 일깨워주는 글들도 있으며 대부분 그의 발명품들은 친환경적이기도 하다.

 

밤하늘의 큰곰자리를 향해 죽은 노라(犬)의 이름을 붙여 '노라자리'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볼 때는 마음 한 구석에 찡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과 동물 간의 보이지 않으면서도 따뜻한 교감을 느낄 수 있었다. 생전에 마리 여사가 염려했던 천국과 지옥에서의 인구 과밀 현상만 안 일어난다면 지금쯤 천국에서 노라와 함께 놀면서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발명여왕 최후의 발명, 『발명마니아』 

 
이 책의 제일 마지막 글에는 발명왕 에디슨이 밝히는 최후의 발명을 언급하는 일화가 있다.  

(꼭 읽어보시길.....)

어쩌면 마리 여사의 최후의 발명을 꼽으라면 바로 이 책, 『발명마니아』라고 말하고 싶다. 정확한 정보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이 그녀가 죽고 난 뒤인 일본에서 2007년에 출간된 걸로 알고 있다. 그녀는 2006년에 난소암으로 사랑하는 노라가 있는 곳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요네하라 마리라는 이름을 모르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 제목만 보고 발명에 대한 과학도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막상 읽어보면 엉뚱하기만한 발명품에 대한 글만 늘어놓고 있으니 황당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최후의 발명품인『발명마니아』는 독자들에게 휴머니즘적 유머를 제공하고 있다.  

  

마리 여사의 글을 사랑하는 마니아 독자들 뿐만 아니라,  

세상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따분함을 느끼고 있는 독자들,   

불치병에 맞서서 투병 중인 독자들,

짧으면서도 재미있는 그림과 글을 원하는 독자들 그리고  

현재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반려동물들을 먼저 보낸 경험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읽으면 좋다. 우울한 사람에서부터 웃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까지  

이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자신이 웃고 있는 얼굴을 확인할 수 있으니깐.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0900222 

 

마리 여사의 글을 처음 접했던 책이 <대단한 책>이라는 서평 모음집이었다. 마리 여사를 처음 만난 책치고는 그 책에는 암 투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마리 여사를 볼 수 있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런 어두운 면을 찾아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이 책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 간혹 암 투병에 대한 언급이 나오기는 하지만 독자들을 위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재미있게 설명하고 그림을 그려넣은 마리 여사의 밝고 활기찬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보기 좋았다. 이 책을 통해 모든 사람들, 동물들에게 유쾌상쾌한 웃음을 전해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잠시나마 투병의 고통을 잊게 해준 웃음 안정제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전 세계 사람들은 인류가 살아가는데 이익이 된 발명품을 만들어 낸 토머스 에디슨에게 '발명왕'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붙여주면서 그의 공로를 기리고 있다.  

 

지구의 독자들에게 삶에 대한 희망과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인간애와 유쾌한 유머가 버무린 아이디어들을 남긴 요네하라 마리 여사에게 이제부터 단순히 발명만 즐길 줄 아는 발명마니아가 아닌 지구상 유일의 '발명 여왕' 이라는 칭호를 붙여주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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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0-12 0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0-12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 유전학적으로 완벽해지려는 인간에 대한 반론
마이클 샌델 지음, 강명신 옮김 / 동녘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키가 작아서 슬픈 남성들이여 
 

작년 말에 ‘루저(Loser)’라는 말이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었다. TV 예능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한 어느 여대생이 키가 180cm 이하 의 남자와는 사귀기 싫으며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말을 한 것이다. 이 방송 전파가 되고난 후 관련 방송 프로그램 게시판에는 네티즌들의 비난이 줄을 이었다. 졸지에 네티즌들에게 뭇매를 당한 것부터 시작해서 ‘루저녀’라는 좋지 않은 별칭이 붙여진 발언 여대생은 한동안 곤혹을 치러야 했고, 비난의 여파는 방송 프로그램까지 미칠 정도로 컸다. 남자 시청자들은 해당 관련 방송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신청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되었고, 결국 방송 프로그램은 폐지되기까지 이르렀다. 그 후에도 ‘루저’는 지금까지도 각종 포털 사이트는 물론이고 방송에서까지 패러디하여 부정적인 의미가 담겨져 있는 유행어로 자리 잡게 되었다.  

키 180 이하 남성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루저 논란이 좀 잠잠하나 싶더니 한 달 전에도 또 한 번 ‘루저’ 논란이 불거졌다. 한 결혼정보회사 2곳이 남성 고객의 키인 158cm가 너무 작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사이트 가입을 거부시킨 것이다. 관련 해당 업체들은 키 작은 남성을 원하는 여성 회원이 적어 주선이 어렵다는 이유로 165㎝ 이상으로 회원가입기준을 정해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인권위원회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결혼정보회사가 회원 가입을 거부한 것을 불합리한 차별이라고 판단, 해당 업체에 관행을 개선하도록 권고 조치를 내렸다. 또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신체적 조건으로 서비스 이용을 배제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차별행위에 해당 한다”고 말했다. 

 
  

우생학의 그늘에 갇혀버린 현대 의학  

 

인간은 자신에게 주어진 모습과 능력에 대해서 남들과 비교를 하여 더 우월해지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외모에 콤플렉스 하나라도 생기게 되면 쉽게 지나치지 못한다. 신체적 콤플렉스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형 의술의 힘을 빌려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외모를 가꾸게 된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이란 만족을 모르는 불가사의라는 팔만대장경 속의 격언대로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성형 치료를 여러 번 받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외모를 갖출 때까지 얼굴에는 들이대는 메스 질은 수십 번 해야지 직성이 풀린다. 결국, 무리한 성형 의술로 인해서 이전의 용모는 온데간데없고 몰골이 흉해지게 된다. 얼굴에는 온전한 살덩어리는 찾을 수 없고 끔찍한 흉터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신체적 외모뿐만 아니라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도 의학의 힘을 빌린다. 배리 본즈,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이 세 사람은 미국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홈런왕이면서도 금지약물 복용이라는 사실이 밝혀져서 ‘약물 슬러거’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새미 소사는 2006년 시즌에 600홈런이라고 대기록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약물 복용 사실로 인해서 야구팬들은 그를 외면했다. 그는 충분히 더 뛸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듬해에 자신의 소속팀인 시카고 컵스로부터 퇴출당하기도 한다. 소사의 쓸쓸한 말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에는 새미 소사가 역대 시카고 컵스 팀에서 배출한 최고의 선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카고 컵스 구단은 소사의 등번호 21번을 영구결번을 시켜주지 않기로 결정했다. 뛰어난 활약을 한 은퇴선수에게 소속 팀에 활동할 때의 등번호가 영구결번으로 지정이 되면 영광스런 훈장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새미 소사는 영구결번의 명예를 받을만큼 충분한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약물복용이라는 야구 인생의 오점 때문에 은퇴해서도 그리 후한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얄궂게도 2007년 시즌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의 배리 본즈가 통산 756호 홈런이라는 기록을 남겼으나 일명 ‘BALCO 스캔들’이라고 부르는 스테로이드 복용 의혹으로 인해서 대기록의 명성에 흠집이 생기고 말았다.    

 

 


프랜시스 골턴(1822~1911)
 


아돌프 히틀러(1889~1945)
 

의학 기술은 질병을 치료하는데 사용되는 주된 목적은 상실되고 외모와 능력이 뛰어난 우월한 인간 완성의 손쉬운 도구로 전락되었다. 힘이 넘치는 헤라클레스와 영원한 미의 상징 비너스를 되기 위한 인간의 끝없는 집착이 의학 기술의 이용 목적을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그러나 어두운 욕망의 집착에는 아직까지 사라지지 않은 우생학의 그늘이 있다. 우생학은 유전 법칙을 기반으로 인간 종족의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학문이다.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손자인 프랜시스 골턴이 창시한 우생학은 우월한 유전인자를 가진 인간을 육성하고 열등한 유전인자의 인간은 의도적으로 억제하는데 의의를 두고 있으며 독일의 히틀러가 시행한 극단적인 유태인 학살은 우생학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 후로 우생학은 인류의 살육과 인권 침해 우려로 인해서 폐기되었지만 아직도 우생학의 흔적은 남아 있다. 유전학적 질병에 걸린 환자를 강제로 피임시키는 우생법안은 부분적으로 세계 곳곳에 남아 있으며 유전인자의 개선에 중점을 둔 기존의 우생학을 뛰어넘어 환경과 교육의 개선으로 인류를 개량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인 우생학인 우경학으로 발전되었다.  
 

  

 

제2의 김연아, 박지성 만들기 : 노력이냐? 재능이냐?  

 

우생학에 사로잡힌 인간의 욕망은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자 앞에서 자신의 부족한 한계를 실감한다. 마이클 샌델은『생명의 윤리를 말하다』라는 책을 통해 우생학에 사로잡힌 인간의 심리를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우월한 능력의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내부적 요소인 재능보다는 외부적이며 인위적인 요소의 노력을 중요시하는 대중의 무지함을 지적하고 있다.  

 

피겨 스케이팅 최고의 기록을 남긴 김연아 선수나 영국 프리미어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는 축구선수 박지성을 보면서 대중들은 끊임없는 노력만이 천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중매체는 그들이 지금까지 유명 선수로 발돋움하기 전의 활동들을 언급하여 그들의 노력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노력이 만든 실력을 강조하고 있다. 김연아가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하고 난 뒤에 피겨 스케이팅을 배우려는 여자 어린이들이 증가한 점과 박지성이 영국 프리미어리그 진출한 뒤에 유소년 축구 교실의 학생 수가 늘어난 것을 보면 오직 노력을 통해서 제2의 김연아, 박지성을 꿈꾸는 어린이들, 그리고 그 뒤에는 부모님의 든든한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또 마이클 샌델은 부모들이 노력을 최우선시하는 세상의 틀로 자녀들을 구속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 심지어 자녀의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생명 공학적으로 조작하는 사례를 언급하기도 한다. 부모가 완벽한 자녀 만들기에 집착, 과잉 교육을 하게 되면 자녀의 육체적, 정신적 성장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말한다. 생명 공학까지 언급하면서까지 부모의 과잉된 자녀 교육을 비판하는 저자의 의견이 좀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자녀의 재능과 적성을 모르는 채 오직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제적으로 교육시키는 우리나라의 극성적인 부모들의 모습을 보면 마이클 센델의 지적이 단순히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유전공학과 프로메테우스 
 

마이클 샌델은 유전복제 기술이 윤리적인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사들이 옹호하는 이유도 우생학의 흔적이 남긴 산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배아줄기세포가 단순한 세포 덩어리냐 아니면 인간의 일부로 규정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딜레마적인 논란에 대해서는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지만 배아 복제 기술이 단순히 우월성을 위한 목적의 맞춤형 인간 만들기에는 반대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우월성에 사로잡혀 유전 공학에 의존하다보면 사회 집단 내에서 유지되고 있는 평등과 공정성이 무너질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그리고 생명은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정의하고 겸손이 깃든 인간적 연대감이 형성되는 인간적인 윤리관을 제안하고 있다. 찬반론자 사이에서 인간 복제 문제에 관한 공방은 치열하지만 유전 공학이 단지 인간에게 이로운 점도 있기에 일부 국가에서는 유전 복제를 허용하고 있는 추세이다. 저자의 바림직한 소망은 추상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상적인 모델이지만 유전 공학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에게는 센댈의 제안을 한 쪽 귀로 흘러 보내서는 안 된다. 올바른 윤리적 가치관이 확립된 상태에서 좀 더 인간에게 이로운 점을 줄 수 있는 의학 기술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는 흙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빚어냈다. 프로메테우스라는 이름에는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있다. 프로메테우스는 이름 그대로 신들의 소유물이었던 불의 유용함을 알고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주다가 제우스가 내린 죄로 독수리들에 간이 뜯기는 벌을 받게 되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행동이 자신에게는 불리함을 알면서도 자신이 완성시킨 인간들을 위해 무모하게 불을 훔쳐냈다.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의 고마움을 모른 채 지구의 주인인 마냥 살고 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프로메테우스의 능력까지 훔쳐내고 있다.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소유물인 불을 훔치려고 했듯이 말이다.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친 죄로 벌을 받았듯이 인간 복제 중심의 유전공학으로 인해서 인간이 해로움을 입지 말라는 법이 없다.시대가 가면 갈수록 유전공학의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만큼 프로메테우스의 이름처럼 인간 배아복제가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과 앞으로 닥쳐올지도 모르는 해로움를 바라볼줄 아는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야할 때이다. 
 

 

 

 

* 관련기사 인용 출처   

 

[키작은 ‘루저’ 결혼정보회사 가입거부는 차별] 경향신문 2010년 9월 15일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9151112541&code=9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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