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 문학적 우정을 찾아서
장영은 지음 / 민음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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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점  ★★★★  A-






그대 없이는 못 살아 나 혼자서는 못 살아.

헤어져서는 못 살아 떠나가면 못 살아.

 

- 패티 김 그대 없이는 못 살아(1974) 노랫말 -



금속이 단단해지려면 단련 작업을 거쳐야 한다. 불에 달구고 나서 세게 두드리면 된다. 엄청 뜨거운 색을 띤 금속을 차가운 물에 담근다. 이 과정을 담금질이라고 한다. 한 편의 글이 제대로 완성되려면 글의 구성 재료인 글쓴이의 생각이 단련되어야 한다. 생각을 단련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내 머릿속에 오랫동안 박힌 편견이나 거짓 정보를 세게 두드리면서 빼야 하기 때문이다. 이걸 빼지 못하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글이 완성되었다고 해서 다 끝난 건 아니다. 글을 담금질해야 한다. 글쓴이의 주관적 감정이 너무 많이 들어간 글은 매우 뜨겁다. 글이 지나치게 뜨거우면 문장이 녹아내려서 엉성한 비문(非文)으로 변질되거나 논리적 구멍이 생긴다. 이런 글은 물렁물렁하다. 매우 연약해서 잊히기 쉽다. 반면에 완성도가 단단한 글은 독자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정확하고 냉철한 지성을 가진 독자는 글 속의 열기를 식혀줄 뿐만 아니라 비문과 논리적 구멍을 잘 찾는다.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글을 쓰면 뜨거워지는 여자와 뜨거운 글을 담금질하는 친구들의 우정을 주목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쓰기와 읽기가 교직 되면서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여성들의 우정 문학적 우정이라고 부른다.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의 뜨거운 글은 자신보다 여섯 살 어린 캐서린 맨스필드(Katherine Mansfield)가 담금질했다. 울프는 맨스필드의 세심한 논평에 감탄하면서도 그녀가 글을 발표하면 자신은 더 뛰어난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Margaret Mead)루스 베네딕트(Ruth Benedict)도 상대방이 쓴 글을 담금질하는 관계를 이어왔다. 울프와 맨스필드, 미드와 베네딕트, 이 네 사람은 글 쓰는 뜨거운 친구를 위해 믿을 만한 독자가 되어주었다. 잘 썼으면 칭찬해 주었고, 물렁물렁해진 글을 두드리는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살아있는 인간끼리 만나야만 우정이 맺어지는 건 아니다. 이미 글을 뜨겁게 쓰면서 살다 간 사람도 친구가 될 수 있다. 오직 기록으로만 남은 친구를 직접 만나면서 말을 걸 수 없다. 하지만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을 깊이 알아가면서 느끼는 친밀감은 어느 한쪽만 치우치는 일방적인 관계로 변하지 않는다. 또한 이런 형태의 우정은 금방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대면하는 경험이 있어야 우정과 친밀감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익숙한 생각을 뒤집는다. 아렌트는 자신보다 몇 세대 먼저 태어나고 살다 간 라헬 파른하겐(Rahel Varnhagen)을 절친한 친구라고 소개한다. 아렌트는 자신처럼 유대인 여성으로 살아온 라헬에 친밀감을 느꼈다. 라헬을 만나면서 뜨거워진 아렌트는 친구를 위한 전기(傳記)를 썼다. 이때부터 그녀는 유대인으로서의 자의식을 발견했고, 유대인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쏟는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관계가 포근하면 두 사람이 함께 덮은 공감대 이불은 점점 두꺼워진다. 하지만 둘 다 만족할 수 있는 관계의 적당한 온기를 계속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관계의 절대 온도는 없다. 상대방의 단점과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면 공감대 이불은 얇아지고 관계의 온도는 차가워진다. 자신과 반대되는 온도를 가진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시리거나 얼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믿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생기는 정신적 아픔은 성장통이 될 수 있다. 진실한 우정은 나보다 더 잘 되길 바라는 상대방의 단점이 멋진 장점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두드린다. 이런 좋은 친구를 곁에 두지 못하면 창작의 고통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러면 글을 쓸 수 없다. 담금질을 거친 문학적 우정은 두 사람의 능력을 더욱 빛나게 해 준다. 끈끈하게 엮인 우정을 먹고 자란 글은 튼튼하다.





cyrus의 주석



* 130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와 프랑스아 드 페늘롱의 텔레마코스의 모험에 등장하는 멘토르는 남성이다. 오뒷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나가며 자신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친구 멘토르에게 부탁했고, 멘토르는 기꺼이 텔레마코스의 스승이자 친구가 되었다.

오뒷세이아의 멘토르가 성숙하고 덕망 높은 남성을 상징하는 데 반해, 텔레마코스의 모험에서 멘토르는 다른 존재로 등장한다.[] 전쟁에서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텔레마코스를 돕기 위해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가 멘토르로 변신해 텔레마코스와 함께했다는 프랑수아 드 페늘롱의 설정은 흥미롭다. 자연스럽게 스승과 친구의 자리를 왜 그토록 오랫동안 남성들이 차지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든다.


 가까이에서 아테네가 다가왔는데, 체격과 음성이 멘토르와 흡사한 여신은 그에게 날개 돋친 말을 쏘았다


- 김기영 옮김, 오뒷세이아》 (민음사, 2022년), 

2267~269행, 44쪽 -



[오뒷세이아에 묘사된 멘토르도 미네르바(그리스 신화의 아테네)가 변신한 인물이다.




* 245





제임스 조임스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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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12-05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저 ˝조임스˝에서 빵 터짐요~~]

조이긴 조이는 작가네요 증맬루.

cyrus 2023-12-07 06:29   좋아요 0 | URL
문학동네에서 <율리시스> 나왔던데 어제 바로 주문했어요.. ㅎㅎㅎㅎ

stella.K 2023-12-05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글은 혼자선 못 쓰지. 내가 여기에 낙서 같은 글이라도 올리는 건 봐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글치않아도 찜한 책이야. 나중에 혹시 중고샵에 나오면 그때나 사 볼ᆢㅋ

cyrus 2023-12-07 06:30   좋아요 1 | URL
누님과 한 지역에 살았으면 제가 책 빌려주고 싶어요. ^^

그레이스 2023-12-07 0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로 <오뒷세이아>에서도 아테네가 멘토르로 변신해서 텔레마코스의 여행을 돕는데,,, 프랑스와 드 페늘롱의 특별한 설정이라고 말할만한 변주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cyrus 2023-12-07 07:05   좋아요 1 | URL
<텔레마코스의 모험>이 두 권으로 번역되어 있는데, <오뒷세이아>의 멘토르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요. ^^

얄라알라 2024-01-07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제 고민에 대한 답이 담겨 있어서 그럴까요?
작년말부터 요즘, 최근 읽은 글 중에 가장 쏘옥 쏘옥 마음에 와서 박혔어요.
고맙습니다 cyrus님!!

cyrus 2024-01-08 06:36   좋아요 1 | URL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은 많아요. 그런데 상대방의 글을 꼼꼼하게 읽는 사람은 많이 없어요. 사실 저 또한 글을 쓰고 싶은 사람에 속해 있어서 상대방의 글을 내 글을 보는 만큼 읽진 않아요. 그리고 글쓴이에게 글에 대해서 의견을 내는 것도 조심스러워요. ^^;;
 
갈대 속의 영원 - 저항하고 꿈꾸고 연결하는 발명품, 책의 모험
이레네 바예호 지음, 이경민 옮김 / 반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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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점  ★★★★★  A+









이 생명 이제 저물어요. 언제까지 그대를 생각해요.

노을 진 구름과 언덕으로 나를 데려가 줘요.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감고 바람이 되면 그대의 별들도 띄울게.

 

- 이문세 5집 수록곡 <시를 위한 >(1988) 중에서 -





책은 물건이 아니다. 책은 생명 그 자체다. 최초의 책은 미생물들의 보금자리인 흙으로 빚어져서 만들어졌다. 흙을 비옥하게 만들어주는 미생물들은 책의 일부가 되었다. 책은 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이야기를 활짝 피우게 하는 토양이다인류는 기름진 책을 펜으로 경작(culture)했고, 책 위에서 자란 교양(culture)을 먹으면서 자라왔다고대 이집트인들은 갈대로 책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 갈대를 파피루스(papyrus)’라고 부른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집트 파라오의 딸은 파피루스 밭에 버려진 갓난아기를 건져낸다. 공주는 그 아기를 아들로 삼아 모세(Moses)’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그녀는 모세의 목숨만 건지지 않았다. 갓난아기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까지 만들어지게 될 한 편의 이야기까지도 건져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하지만 이름이 영원히 기억되려면 우선 그 이름을 빛나게 해주는 이야기가 남아 있어야 한다. 북간도에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청년 윤동주는 가을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을 헤면서 여러 사람의 이름을 부른다. 소학교 때 책상을 같이 했던 아이들의 이름.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그가 사랑한 시인들의 이름까지. 동주가 언급한 소중한 사람들은 너무나도 멀리 있다. 그렇지만 이네들의 이야기는 동주의 가슴 가까이에 있다. 불행하게도 동주는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한 채 일찍 눈 감았고 바람이 되었다. 그가 원고지에 띄운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과 이야기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되었다.


갈대 속의 영원책을 애지중지해 온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을 기리는 책이다. 과거에 만들어진 책들은 아주 연약했고 수명이 짧은 편이었다. 자유로운 독서를 허용하지 않는 권력자에 의해 파손되거나 망각의 시간에 흠뻑 젖어버린 책들은 지구상에 남아 있지 않다. 완전히 사라져버린 책들은 제목만 전해질 뿐이다. 책은 죽어서 제목만 남긴다. 다행히 운이 좋으면 내용 일부만 살아남는다. 책을 사랑한 사람들은 단순히 책만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독자로 살지 않았다. 책을 보존하는 보호자를 자처했다. 그들은 책이 사라지면 그 속에 있는 지식과 이야기도 같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집트의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3(Ptolemaeos III)는 책을 매우 좋아했다. 그는 세상에 있는 모든 책을 가지고 싶어 했다. 왕은 자신이 모은 책들을 보관할 수 있는 거대한 건물을 세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왕의 개인 서재는 도서관이 되었다. 하지만 튼튼하게 도서관을 지었어도 연약한 책들을 완벽하게 보호하지 못한다. 도서관은 전쟁의 소용돌이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책을 사랑하지 않은 권력자는 도서관을 파괴하거나 폐허가 된 도서관을 재건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의 허점을 적나라하게 공개한 책을 두려워한다. 용감한 독자는 책을 학살하는 권력자의 횡포에 맞서 싸운다. 책을 경작할 때 사용된 펜은 권력에 저항하는 무기가 된다.


알렉산드로스(Alexandros)는 트로이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Achilles)가 나오는 호메로스(Homer)일리아스를 가장 좋아했다. 이 한 권의 책에 푹 빠져버린 왕은 아킬레우스처럼 영웅담의 주인공이 되길 원했다. 그의 야망은 한 권의 위대한 책이 되는 것이었다책은 유한하고 불완전한 인류를 영원히 기억되고 완벽한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해준다. 책 덕분에 세상을 살다가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무덤으로 들어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모든 이야기가 다 좋을 순 없다. 책은 우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해로운 이야기를 걸러내지 못한다. 부당한 권위를 두 눈 똑바로 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키는 책은 영원히 덮을 수 없다. 오히려 최악의 세상 한가운데에 펼쳐져 힘차게 펄럭거린다. 반면에 진실을 짓밟고 자유를 억압하는 자들의 이야기는 책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종이책이 아니다. 못된 권력자와 불한당 앞에서 딸랑거리는 요란한 종(bell/servant)이다.


우리의 몸과 인생은 한 권의 책이다. 이제 우리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 수 있으며 한 편의 글로 기록한다. 내 삶을 기록해야 기억할 수 있다. 그러려면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 갈대 속의 영원은 책을 사랑한 사람들을 잊지 않은 책들, 만인의 사랑을 받는 책이 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 cyrus의 주석



* 25

 

 세상을 지배하려는 순간이 도래할 즈음,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커다란 선물로 클레오파트라를 현혹하고자 했다. 그는 금이나 보석이나 향연에는 클레오파트라가 눈 깜짝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야 매일 헤프게 썼으니 말이다. 한번은 술 취한 새벽, 도발적인 표정을 지으며 엄청난 크기의 진주를 식초에 녹여 마셔버린 적도 있었다.[주1] 그래서 그는 클레오파트라가 지루한 표정으로 무시하지 않을 만한 선물을 선택했다. 도서관에 비치할 20만 권의 책을 그녀의 발아래 가져다 놓은 것이다.

 


[주1] 클레오파트라가 자신의 진주 귀걸이를 식초에 녹여 마셨다는 일화는 과장된 전설이다. 식초에 든 진주는 녹긴 하지만, 순식간에 녹지 않는다. 진주가 녹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전설이 사실이라면 클레오파트라는 완전히 녹지 않은 진주를 삼켜야 한다. (참고: KISTI의 과학향기 칼럼, 클레오파트라, 진주 숨은 비밀?, 200578일 작성)






* 415



 

 고대의 두루마리가 교체되면서 우리는 시, 연대기, 모험, 허구, 사상의 보물을 영원히 잃어버렸다. 수 세기 동안 부주의와 망각은 검열이나 광기로 인한 파괴보다 훨씬 많은 책을 파괴해갔다. 그러나 우리는 말의 유산을 구하기 위한 큰 노력을 알고 있다. (얼마나 많았는지 알 수 없는) 도서관은 소장한 자료를 꼼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획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 하나하[2] 모두 복사하는 참을성 있는 작업에 착수했다.


[2] 하나하나의 오자. 책 한 권을 꼼꼼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 하나하나 읽는 참을성이 있어야 오자 한 개 정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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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3-04-16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원한 서사의 꿈이야말로
모든 닝겡들이 희망사항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 그리고 보니 이스칸다르
는 자신의 위대한 페르시아
원정을 시로 표현해줄 호메
로스가 같은 이가 없음을
레알 한탄했다는 믿거나 말
거나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stella.K 2023-04-16 19: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멋진 책 같다.
그런데 나 자신을 사랑하려면
일기도 써야한다고 생각해. ㅎㅎ
암튼 너의 리뷰도 멋지고
책도 멋질 것 같다. 책 좋아하는 사람이면 꼭 읽어봐야겠다.^^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Odysseus)는 고향으로 향하는 긴 항해 중에 여러 난관을 통과한다. 우리는 어려운 고비를 난관이라고 말하지만, 이 단어에 지나가기 어려운 곳이라는 뜻도 있다
















* 호메로스, 천병희 옮김 오뒷세이아(도서출판 숲, 2015)




호메로스(Homeros)의 서사시 오디세이아 12권에 그 유명한 세이렌(Siren) 자매가 등장한다. 세이렌은 매혹적인 목소리로 사람을 유혹하는 존재다. 키르케(Kirke)는 오디세우스 일행의 귀향을 돕기 위해 세이렌의 유혹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밀랍으로 귀를 막고 재빨리 지나칠 것. 그런데 키르케는 오디세우스의 용맹함을 부추기는 듯한 말도 한다. 그대 자신은 원한다면 (세이렌의 목소리를) 들으세요.”[주] 산전수전 겪은 오디세우스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난관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그는 아내도 자식도 잊어버리게 만든다는 세이렌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부하들은 귀를 막고 오디세우스 자신은 돛대에 묶은 채 귀를 열어 두도록 했다.

 

고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오디세우스의 무모한 행동이 지적 호기심또는 알려고 하는 본능적인 욕구에 의해서 발현된 것이라고 해석했다. 목숨을 걸면서까지 미지의 세계를 경험하거나 낯선 존재를 직접 봐야 직성이 풀리는 묘한 심리. 그것은 모험가 기질이 다분한 오디세우스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누구나 다 가지고 있다. 오디세우스를 신에게 사랑받는 영웅이 아닌 우리와 어느 정도 비슷한 인간으로 바라보자. 우리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마르지 않는 호기심은 거대하고 복잡한 세상을 몸과 머리로 이해하는 데 필요한 원동력이다. 호기심을 충족하려면 모든 감각을 동원하면서 경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스스로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 다이앤 애커먼, 백영미 옮김 감각의 박물학(작가정신, 2023)




감각의 박물학은 감각을 이용해 지구라는 행성에서 일생일대의 모험을 하면서 살다 간 과거 오디세우스들, 그리고 떠나고 없는 오디세우스들이 경험해본 적이 없는 지구에서 모험을 시작한 현재 오디세우스들의 이야기다. 이 책을 쓴 이야기꾼 다이앤 애커먼(Diane Ackerman)은 인문학과 과학을 주제로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글을 쓰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저자가 생각하는 감각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레이더망이다. 우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불확실한 세상을 향해 각자만의 레이더망을 내민 채 모험하고 있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우리는 난관이 산적한 세상 한가운데에 뛰어든 오디세우스요, 모험가다


후각을 선호하는 오디세우스는 향수에 관심이 많다. 미식가 오디세우스에게 식당은 그들이 꼭 거쳐야 하는 섬이다. 미식가 오디세우스는 섬과 같은 식당을 어디든지 경유한다. 대담한 미식가 오디세우스는 잘못 먹으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음식 재료를 맛보고 싶어한다. 심지어 맛있다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오물처럼 보이는 괴상한 음식까지도 먹는다. 그들에게는 별미가 보물이다
















* 올리버 색스, 장호연 옮김 뮤지코필리아: 뇌와 음악에 관한 이야기(알마, 2012)




호메로스가 묘사한 오디세우스의 후예들은 좋은 노래를 듣기 위해 남들보다 귀가 더 크게 여는 모험가다. 우연히 듣게 된 멜로디를 잊지 못하면 그 멜로디가 나오는 곡을 어떻게든 찾아낸다. 더 나아가 그 곡을 부르거나 만든 가수 또는 음악가의 또 다른 곡까지 듣는다. 음악은 쉴 틈이 없는 인생 모험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수많은 오디세우스를 위로해주는 힘이 있다. 신경의학자 올리버 색스(Oliver Sacks)가 말한 대로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음악을 사랑하는(Musicophilia) 본능이 있다.

 

감각은 지구에 거주하는 오디세우스들의 동반자다. 하지만 이 동반자에게도 약점이 있다.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때론 엉뚱한 결정을 하도록 유도할 때가 있다(착시, 환청, 기억 왜곡 등). 심하면 우리를 위험에 빠뜨리기도 한다(중독). 그래도 우리는 살아야 한다. 감각은 우리를 자유롭게 만든다. 오디세우스가 된 우리는 모든 감각이 열려 있어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세상을 즐기듯이 모험할 수 있다. 우리는 단순히 세상을 완벽하게 이해하기 위해 모험하지 않는다. 인생 모험의 궁극적 목적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세계에 맞춰 성장하면서 확장하는 라는 존재를 찾기 위한 것이다. 감각을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이해하는 일이다.





[] 오뒷세이아1249, 천병희 옮김,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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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 그림으로 읽는 철학사
미셸 옹프레 지음, 변광배.김중현 옮김 / 서광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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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 이제부터 접시를 깨뜨리자.

 

- 김국환의 노래 <우리도 접시를 깨뜨리자>(1991) 중에서 -





라파엘로(Raffaello)<아테네 학당>은 고대 그리스 지성사를 되살리고자 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중 하나다. 학당 안에 철학자와 수학자, 천문학자들이 모여 있다







그림 중앙에 학당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이 있다. 그들은 고대 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플라톤(Plato)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플라톤의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있고,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손바닥은 을 향하고 있다. 두 사람의 자세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플라톤은 현상의 순수한 본질인 이데아(idea)를 추구했다. 우리가 지각하는 이 세계의 현상들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상 그 자체를 이해하려고 했다. 그는 현상을 관찰하고, 분류하고, 분석했다. 플라톤이 가리키는 하늘이 관념적인 이데아를 상징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리키는 땅은 구체적인 현실을 상징한다.






 

이처럼 라파엘로는 학당에 모인 수많은 학자를 알 수 있도록 상징물(Attribute)을 그려 넣었다. 허리를 숙여 컴퍼스로 도형을 그리는 사람은 수학자 유클리드(Euclid) 혹은 아르키메데스(Archimedes). 유클리드는 컴퍼스와 눈금 없는 자만 가지고 도형을 그려야 한다고 했다. 전설에 따르면 아르키메데스는 죽기 직전 땅바닥에 컴퍼스로 원을 그리고 있었다. 로마 병사가 아르키메데스의 집에 침입하자 아르키메데스는 내가 그린 원을 밟지 마라고 말했다. 로마군 대장은 자신들을 괴롭힌 병기를 만든 아르키메데스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아르키메데스를 만나면 반드시 생포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병사는 전란 중에 태평하게 원을 그리고 있는 아르키메데스를 알아보지 못했고, 그를 죽이고 말았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존경하는 위대한 철학자와 그의 학문 정신을 기리기 위해 초상화나 그와 관련된 일화를 소재로 작품을 그렸다. 철학자를 본받고 싶어서 그림 속 철학자의 얼굴에 화가 본인의 모습을 그려 넣기도 했다. 이런 그림의 제작 의도를 관람자에게 알리려면 철학자임을 암시하는 상징물이 반드시 그려져 있어야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미셸 옹프레(Michel Onfray)아리스토텔레스의 악어: 그림으로 읽는 철학사그림이 된 철학을 시대별로 정리하고, 저자 나름대로 철학이 함축된 미술 작품의 상징물을 분석한 책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그림자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동굴로 비유했다. 그래서 미술 작품에 묘사된 동굴이 플라톤과 그의 철학을 의미할 수도 있다. 현실을 이해하고픈 욕망이 강했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자연 현상과 만물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해 무수히 많은 기록을 남겼다. 그가 쓴 많은 책 중에 현재까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많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그의 박식함이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동물을 분류하고 관찰한 기록을 토대로 동물지(historia animalium)를 비롯해 박물학 관련 문헌을 썼다고 한다. 동물지대 플리니우스(Gaius Plinius Secundus)박물지(Naturalis historia)와 함께 세계 최고(最古)의 백과사전으로 평가받는다.[주1]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이 직접 악어를 관찰한 뒤에야 그것에 대해서 견해를 드러냈다. 플라톤이라면 악어를 관찰하지 않고도 악어가 무엇인지 설명했을 것이다. 악어를 관찰하면서 동물지를 쓰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 실제로 있다. 옹프레는 이 그림을 소개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개요를 설명한다.


옹프레를 유명하게 만든 대표작은 총 열한 권으로 이루어진 반철학사(Contre-histoire de la philosophie)’ 시리즈. 반철학사는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주류 철학과 철학사에 가려지거나 잊힌 소수의 철학과 비주류 철학자들에 주목한다. 옹프레는 반철학 계보에 속한 에피쿠로스(Epikouros)의 쾌락주의를 추종한다. 그는 에피쿠로스를 비롯해 그의 철학을 계승한 쾌락주의자들의 초상화나 관련 그림이 단 한 점도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성과 도덕을 중시한 주류 철학을 계승한 학자들은 쾌락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폄하했다. 당연히 예술가들은 주류 철학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옹프레는 주류 철학사뿐만 아니라 주류 미술사의 한계를 지적한다. 그는 미술사 연구가들이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심지어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았던 서양미술사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를 언급했다.


니체(Nietzsche)는 고결한 도덕주의자를 양성하는 데 몰두한 주류 철학과 기독교 윤리를 비판한 반란의 철학자. 니체를 계승한 옹프레는 반철학의 망치를 휘두르면서 너무 오랫동안 굳어버린 주류 철학사의 통념을 깨뜨린다. 데카르트(Descartes)는 합리주의 철학과 프랑스 철학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옹프레는 그런 데카르트를 비판적으로 재평가한다. 그동안 우리는 데카르트 이전에 활동한 철학자를 망각한 채 데카르트의 업적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철학사를 답습하고 있었다


철학사는 인류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철학자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아니다. 그렇지만 철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몇몇 전문가와 철학도들은 철학사 자체를 기념비로 여긴다. 그들은 기념비가 된 철학사에 반짝반짝 광이 나도록 끊임없이 닦기만 한다. 빛나는 철학사에 새겨진 철학자들의 이름과 명성에 흠집이 생기는 것을 그들은 원하지 않는다. 그러한 태도는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 즉 철학(philosophy)이 아니다. 그것은 맹신이다. 맹신은 쉽게 깨지지 않는 도그마(dogma)를 만든다


철학사가 신성한 기념비가 되지 않으려면 반철학의 망치를 손에 쥐어야 한다. 반철학의 망치는 주류 철학사가 외면한 소수의 철학자들을 발굴하기 위한 작업 도구가 아니다. 아무도 깨뜨리지 못한 주류 철학사의 한계와 통념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런 다음, 망치로 인해 생긴 빈틈에 불순물로 치부되었던 비주류 철학사를 주입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이 수월하게 이루어진다면 (니체가 강조했듯이) 우리가 옳다고 믿었던 윤리, 전통, 그리고 모든 가치를 재평가할 수 있다철학() 깬다고 세상이 깨어지나.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주1] 박물지2021년에, 동물지는 올해 초에 처음으로 번역되었다두 권 모두 같은 출판사가 펴냈다. 번역자도 같다.





* 28, ‘크산티페의 물 항아리편 중에서

 




 산파 어머니와 조각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자신이 그의 어머니와 같은 일을 한다고 말하기 좋아했다. 왜냐하면 그는 정신들을 그 배아 상태에서 분만시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정신을 분만시키는 기술을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라 부른다. [2]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이렇게 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다고 한다.[주3] 한 사람은 크산티페로, 그녀에게서 람프로클레스라는 아들 하나를 두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의인 아리스티데스의 딸 미트로로, 그는 그녀와 지참금 없이 결혼했는데 그녀에게서 소프로니코스와 메넥세노스라는 두 명의 아들을 두었다.”



[2] 옹프레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설명할 때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Diogenes Laërtius)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김주일, 김인곤, 김재홍, 이정호 옮김, 나남출판, 2021)을 자주 인용한다.

 

산파술’이라는 명칭이 더 많이 알려진 소크라테스식 논변은 소크라테스 질문법’, ‘소크라테스 대화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소크라테스식 논변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이 프로타고라스(Protagoras)였다고 주장했다. [참고: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9권 독자적인 철학자들, 8. 프로타고라스, 270]



[주3] 아리스토텔레스가 아니라 소크라테스이 책의 앞부분은 김중현 교수가 번역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다고 했다라고 잘못 썼다실제로 라에르티오스의 책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그(소크라테스)는 두 여인과 결혼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한다.’ [참고: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 2권 이오니아 학파 · 소 소크라테스학파, 5. 소크라테스, 158]

 

 



* 67 [옮긴이 미주]





 Marc-Aurele(121-180): 로마 제국의 6황제,[주4] 로마 제국의 황금시대를 상징해 온 인물이다. 스토아 철학이 담긴 명상록을 남겼다. 기독교도가 그의 재위 기간에 그전보다 많은 피를 흘렸지만 황제 그 자신은 결코 박해를 주도하지 않았다. 그는 기독교도를 좋아하지 않았다 한다.


 

[주4]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16 황제다.





* 68 [원저자 각주]

 




틴토레 틴토레토(Tintoretto)





* 87

 




피에르 놀라스크 베르제레 → 

피에르 놀라스크 베르즈레(Pierre Nolasque Bergeret)


93피에르 놀라스크 베르즈레라고 표기되어 있다.





* 95 [옮긴이 미주]

 




Simone de Beauvoir(1980-1986) [주5]

 


[주5] ‘1908’의 오자. 보부아르(Beauvoir)의 출생 연도는 1908년이다.





* 101 [옮긴이 미주]





César Borgia(1475-15070[주6]



[주6] ‘1507’의 오자. 체사레 보르자(César Borgia)의 사망 연도는 1507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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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1-15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정될 부분이 여러부분이네요. 책읽다보면 가끔 오탈자가 보이기는 하는데, 잘못된 내용은 다음에는 수정되면 좋겠어요. 잘읽었습니다. cyrus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 - 이상한 나라의 언어적 판타지
정계섭 지음 / 어문학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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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   ★★★   B






루이스 캐럴(Lewis Carrol)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 In Wonderland)는 정말 이상한이야기다. 어린이를 위한 동화인 줄 알고 읽었다가 도무지 읽히지 않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물담배 피는 애벌레(caterpillar), 씩 웃으면서 스르륵 몸통부터 사라지는 체셔 고양이(Cheshire cat), 정답 없는 수수께끼를 내는 미친 모자 장수(Mad Hatter). 범상치 않은 등장인물도 그렇고, 이들이 앨리스와 주고받는 말은 난해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후속작 거울 나라의 앨리스(Alice Through the Looking Glass, 약칭 거울 앨리스’)도 상당히 난도 높은 문학작품이다. 앨리스는 거대한 체스판으로 이루어진 거울의 세계로 들어간다. 이 소설에 진화생물학 용어로 알려져 유명해진 붉은 여왕(Red Queen)’이 나온다. 거울 앨리스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상세한 주석 없이는 읽기 힘들다. 수학자 마틴 가드너(Martin Gardner)는 앨리스 연구가로 유명하다. 그는 앨리스거울 앨리스의 난해한 농담뿐만 아니라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사소한 내용에 대한 주석을 곁들인 주석 달린 앨리스(The Annotated Alice)[주]을 펴내기도 했다. 두 편의 앨리스에 매료된 어른들은 지금도 이야기를 꼼꼼하게 읽으면서 자신만의 견해를 덧붙인다. 앨리스의 무엇이 어른들을 매료시켰나. 앨리스는 읽을 때마다 색다른 재미를 안겨준다

 

숲 해설가로 활동 중인 정계섭의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는 두 편의 앨리스에 나오는 언어로 된 퍼즐과 철학적 대화를 분석한 해설서다. 저자는 언어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철학 연구소 교수를 지낸 적이 있다캐럴은 수학, 논리학, 언어를 이용해 난센스(nonsense)와 말장난 만드는 일을 좋아했다. 앨리스가 어려운 이유는 상식을 전복시키는 난센스와 무의미한 말장난이 이야기 곳곳에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작중인물 간의 대화에 나오는 말장난과 농담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시대(Victorian Age)의 사회적 분위기와 수학 및 논리학에 대한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 어렵다.


거울 앨리스험프티 덤프티(Humpty-Dumpty)는 문장에서 중요하지 않은 단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언어학자이자 궤변가다모자 장수는 앨리스에게 수수께끼를 낸다. 까마귀와 책상은 어떤 점에서 닮았나?(Why is a raven like a writing desk?)” 앨리스는 수수께끼에 흥미를 느끼지만, 나중에 답을 알지 못해 포기한다. 저자는 답 없는 수수께끼를 국면 전환용 논점 일탈이라고 주장한다. 모자 장수는 궤변을 늘어놓는 자신의 이상한 행동을 교묘하게 가리기 위해 앨리스(그리고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에게 절대 풀 수 없는 수수께끼를 낸다.


앨리스거울 앨리스는 언어학, 수학, 논리학으로 세워진 텍스트의 미로다. 이 미로에 설치된 장애물은 독자의 생각을 중지하게 만드는 온갖 말장난과 역설이다. 루이스 캐럴의 앨리스는 텍스트의 미로를 즐겁게 헤매고 싶은 독자에게 도움 주는 책이다.




  


※ 미주(尾註)알 고주(考註) 



[주1] Alice: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최인자 옮김북폴리오, 2005.




* 117[저자 19]




 빌헬름 폰 훔볼트(Wilhelm von Humboldt, 1767~1835), 베를린대학[2] 설립자. [중략] 그의 동생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자연의 발명[3]은 한 편의 서사시처럼 감동적이다.


[주2] 독일 베를린에 있는 대학교는 총 네 개다. 이 중에서 제일 먼저 설립된 대학교는 베를린 훔볼트대학교(Humboldt-Universität zu Berlin)이다. 1810년에 설립된 당시 대학교 이름은 베를린대학교. 1826년에 교명이 베를린 프리드리히 빌헬름 대학교(Friedrich-Wilhelms-Universität zu Berlin)로 변경되었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독일이 서독과 동독으로 분열되면서 수도인 베를린도 분열되었다(서베를린, 동베를린). 소련이 점령한 동독에 속한 베를린대학교는 1949년에 현재 교명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맞서 서독의 자유주의 진영 교수들은 1948년에 베를린 자유 대학교(Freie Universität Berlin)’를 세웠다. 베를린에 있는 두 개의 종합대학교를 베를린대학교라 부르면 어느 대학을 가리키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훔볼트대자유대라고 각각 구분해서 써야 한다.



[주3]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자연의 발명이라는 제목의 책을 쓰지 않았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삶과 업적을 조명한 안드레아 울프(Andrea Wulf)자연의 발명: 잊혀진 영웅 알렉산더 폰 훔볼트(The Invention of Nature: Alexander von Humboldt‘s New World, 양병찬 옮김, 생각의힘, 2021)라는 책이 국내에 번역되었다. 저자는 자연의 발명을 훔볼트의 저서로 잘못 소개했다. 훔볼트의 저서는 총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코스모스(Kosmos).




* 146[저자 33]


 샘 로이드(Sam Loyd, 1841~1911), 신문과 잡지에 1만 개가 넘는 퍼즐을 연재하여 퍼즐의 왕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의 해답 까마귀와 책상 모두 에드거 앨런 포가 썼으니까라는 억지에 가깝다.[반론]

 

[저자의 주석에 대한 반론] 샘 로이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7장에 나오는 미친 모자 장수의 답이 없는 수수께끼에 대한 세 가지 답을 제시했다. 저자가 한 가지 답(‘까마귀와 책상 모두 포가 썼다’)만 언급해놓고선 억지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억지에 가깝다. 샘 로이드가 제시한 세 가지 답은Alice: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울 나라의 앨리스116쪽에 있는 5번 주석에 나온다그런데 5번 주석에 있는 내용에도 오류가 있다.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의 시 까마귀소설로 잘못 소개했다


참고로 Alice: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번역한 최인자는 조앤 K. 롤링(Joan K. Rowling)의 판타지 소설 해리 포터와 불의 잔(문학수첩, 2000)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문학수첩, 2003)를 번역했다. 하지만 원문을 무시한 오역과 비문이 상당히 많아 독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 162[저자 42]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원자로 세상 만물을 설명한 형이상학적 원자론을 주창한 그리스 사상가. 연금술이 화학의 발전에 못지않게 근대 화학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주4]



[4] 고대 원자론의 창시자는 레우키포스(Leukippos). 그의 제자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을 완성한 학자다. 현재 일부만 남아 있는 데모크리토스의 글에 레우키포스의 원자론이 언급되어 있다. 최근에 나온 철학 분야의 책들을 살펴보면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를 고대 원자론자로 소개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정오표


* 10





엘리스 → 앨리스




* 40





앨리스는 부끄러워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영낙없는 7살의 소녀이다.


영낙없는 영락없는





* 45





새앙쥐 생쥐





* 46





모리스 모리셔스(Mauritius)





* 51[저자 24]

 




 이 책과 <논리 게임> 등에서 발췌하여 이상한 나라의 추리 파일(조은희 역, 보누스, 2015) 번역되었다.

 

보누스, 2015) 보누스, 2015)





* 60[저자 1]





유크리드 유클리드(Euclid)

 

 



* 64[저자 3]





화엄일승법화엄일승법(華嚴一勝法)





* 113





프레게(G. Frefe) 프레게(G. Frege)

 




* 186쪽: 윌리암 제임스 윌리엄 제임스



* 203[저자 19]: 네델란드 네덜란드



* 211쪽: 디지탈 디지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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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3-09 1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해보니 저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어본적이 없군요 😅 왠지 읽었던 기분이 드는건 너무 유명해서 그런거겠죠?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cyrus 2022-03-10 21:03   좋아요 1 | URL
디즈니의 앨리스가 유명해서 원작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거예요. ^^

초란공 2022-03-09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놀랍습니다. 꼼꼼하게 주석에 대해 언급해주셔서 놀랍네요. 출판사에서 꼭 확인해야 할듯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cyrus 2022-03-10 21:07   좋아요 0 | URL
어문학사가 양질의 문학 해설서를 잘 만드는 출판사 중 하나인데, 좋은 책에 간혹 오탈자가 많은 편이에요. 몇 년 전에 제임스 조이스 권위자인 김종건 교수가 쓴 조이스 해설서를 읽은 적이 있어요. 그 책도 오탈자가 많이 보였어요. ^^